도축업자 선생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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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점

사진 뒷면의 여섯 자리 숫자 두 개를 죽어라 응시했다. 온몸에 벼락이라도 맞은 것 같았다. 소설을 쓸 때 무심코 두드렸던 두 숫자가 이제 현실에 나타난 것이었다. 아내와 오웨이의 친밀한 합성 사진 뒷면에.

핸드폰의 지도를 열어 이 좌표를 입력하니 검색 결과에 무작위로 보이는 주소가 나타났다. 백석진 영녕향 조산촌 사와자 45호.

사람이 사는 마을이었다. 게다가 멀지 않았다. 차로 여덟 시간 거리였다. 거기에 내가 필요한 진실이 있을까? 가보는 수밖에 없었다. 지금 달리 갈 곳도 없었으니까. 인피해골의 저주가 사실이라면 이제 하루도 채 안 남았다. 이유도 모르고 죽고 싶지 않았다.

손을 뻗어 오웨이의 옷 주머니에서 차 키를 꺼냈다. 지하통로를 나오니 출구에 과연 모래먼지로 뒤덮인 픽업트럭 한 대가 세워져 있었다.

차 문을 당겨 열고 운전석에 앉았다.

좌석의 가죽이 딱딱하고 차가웠다. 시체 껍데기 안에 들어앉은 것 같았다. 손을 핸들 위에 올리자 갑자기 한 가지 생각이 머릿속을 스쳤다. 오웨이가 마지막으로 여기 앉았던 것은 언제였나? 그는 이 길을 따라 시내로 들어왔다가 지하통로 벽 모퉁이에서 죽었다. 이제 나는 그가 앉았던 자리에 앉아 그가 출발했던 곳을 향해 달린다. 그가 마지막으로 고개를 돌렸을 때 백미러에 보였던 것도 이 모래판이었겠지.

키를 돌렸다. 엔진 소리가 울렸다. 기름통이 가득 찼다.

조수석에 반 병의 물이 놓여 있었다.

그 물을 오래 바라봤다. 손대지 않았다.

차를 몰아 질주하며 시간이 일 분 일 초 줄었다. 지평선이 밝아올 무렵 이미 시내를 벗어나 국도에 올라섰다. 길에 차는 거의 없었다. 길가는 전부 사람이 살지 않는 황무지로 나무 한 그루도 없었다. 간간이 볼 수 있는 마른 잡초 무더기가 밤바람에 흔들렸다. 쉽게 죽지 않겠다고 버티는 무언가처럼.

생기 하나 없고 단조로운 국도를 몇 시간 달리자 해가 중천에 솟으면서야 길 양쪽에 성긴 나무와 드문드문 작은 집이 보이기 시작했다. 더 달리자 길가 집들이 조금 더 모여들었고 길가에 호두나 밤 같은 견과류를 파는 노점도 생겼다. 뭔가를 먹지 못한 지 십여 시간이 됐다. 배속이 텅 빈 느낌이 견디기 어려웠다. 마침 길가에 찐빵 노점이 하나 있어 차를 세우고 내려가 찐빵 다섯 개를 사 허겁지겁 입에 털어 넣었다. 하지만 계산하려니 찐빵 노점 할머니가 핸드폰 결제가 안 되고 현금만 된다고 했다. 지갑이 텅 빈데 동전 하나도 없었다.

난감해 하고 있는데 찐빵 노점 할머니가 손을 흔들며 그냥 가라고 했다. 감사합니다를 연신 말하며 차로 올라탔다.

막 시동을 걸어 출발하려는 순간 찐빵 노점 뒤의 작은 집에서 낮지만 내 뒷목을 바늘로 찌르는 것 같은 질책하는 소리가 들렸다. "왜 보내줬나!"

손이 핸들 위에서 굳었다.

왜 보냈어.

이 말투였다. 이 말이었다. 쉬 선생 상담소 밖에서도 들었던 말. 이미 인피해골의 영역에 들어온 것이었다.

액셀을 세게 밟으며 더 이상 머뭇거리지 않았다.

찐빵 노점에서 멀어진 지 얼마 지나지 않아 내비게이션이 국도를 내려가 소로로 접어들라고 안내했다.

이 소로는 모래자갈 길로 노면이 울퉁불퉁하고 매우 평탄하지 않았다. 백미러에서 차가 지나며 일어나는 모래먼지 폭풍을 봤다. 그 모래먼지의 색이 차 몸에 묻어 있는 모래먼지와 같은 색이었다. 어둡고 누런, 녹슨 쇠처럼. 오웨이가 이 차를 타고 이 길을 시내로 갔을 것이었다. 그가 마지막으로 고개를 돌려 백미러로 봤을 때도 이 모래판이었겠지.

한 시간도 안 되게 더 달리자 노면이 갈수록 나빠지며 온몸이 흔들려 쑤시고 아팠다. 갑자기 차 앞부분이 가라앉으며 앞바퀴가 모래 구덩이에 빠져 꼼짝도 하지 않았다. 액셀을 끝까지 밟으니 타이어가 미친 듯이 헛돌며 제자리에서 갈수록 깊어지는 두 개의 홈만 파냈다.

액셀에서 발을 떼고 등받이에 기댔다. 머릿속에 갑자기 꿈속 장면이 떠올랐다. 픽업이 가라앉고 누런 모래가 밀려들어와 바퀴벌레가 가득한 검은 동굴로 사람과 차가 함께 추락하는 장면.

차 문을 세게 밀고 뛰어내렸다. 발이 지면에 닿았다.

단단했다. 지면은 단단했다.

몸을 웅크려 발 옆의 모래흙을 손으로 파보니 손가락이 단단한 암석층에 닿았다. 길게 숨을 내쉬고 고개를 들어 주변을 한번 둘러봤다. 황무지, 모래 땅, 멀리 고목 몇 그루, 다른 것은 없었다.

동굴이 없었다.

하지만 좌표 지점까지는 아직 한 시간 정도의 거리가 남았다. 차가 못 가니 걸어가는 수밖에 없었다. 머리 위의 뜨거운 태양을 보다가 몸을 돌려 조수석 위의 반 병의 물을 바라봤다.

어차피 몇 시간밖에 살지 못하는데.

물병을 집어 뚜껑을 비틀어 열고 고개를 젖혀 한 번에 다 마셔버렸다. 빈 병을 좌석에 던져버렸다. 입에 느껴지는 것은 평범한 생수 맛이었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내비게이션이 마지막으로 표시해준 노선 방향을 따라 도보로 전진하기 시작했다.

조금 걷지 않아 핸드폰 배터리가 완전히 방전됐다.

내비게이션을 잃었고 시간도 잃었다. 사방에는 바람 소리와 내가 모래자갈 길을 걸으며 내는 묵직한 발소리뿐이었다. 계속 기계적으로 걸으면서 스스로에게 말했다. 길 끝에 마을이 있을 것이다. 그 마을에 내가 필요한 답이 있을 것이다.

태양이 서쪽으로 기울기 시작하자 그림자가 길게 늘어나며 비스듬하게 앞쪽 모래 위에 드리워졌다. 나보다 앞서 걷는 사람처럼. 내 그림자를 따라 걸었다. 그림자가 점점 길어지고 색이 점점 옅어지더니 마지막에는 황혼 속으로 완전히 사라졌다.

밤이 됐다.

사방이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발 아래의 모래자갈 길만 희미하게 윤곽을 분간할 수 있었다. 발걸음을 늦추며 더듬더듬 앞으로 나아갔다. 배고프고, 목마르고, 피곤했다. 이 세 가지가 동시에 나를 짓눌러 한 발짝 내딛을 때마다 마지막 남은 에너지를 소진하는 것 같았다. 얼마나 더 걸을 수 있는지도, 그 마을까지 얼마나 남았는지도 몰랐다.

쓰러질 것 같은 순간 바람의 방향이 갑자기 바뀌었다.

바람에 실린 냄새가 왔다. 흙도 아니고 마른 풀도 아닌, 도시에서는 거의 맡을 수 없는 것이었다. 향불이 타는 냄새와 종이돈 타는 눌린 냄새가 섞여 공기 중에 짙게 깔려 있었다.

이어서 울음소리가 들렸다.

한 사람의 울음이 아니었다. 여러 명이었다. 남자의 울음은 낮게 가라앉았고 여자의 울음은 날카로웠으며 노인의 울음은 쉬었고 아이의 울음은 가늘었다. 층층이 얽혀 어두운 어느 방향에서 밀려와 땅 아래에서 솟구치는 것처럼 깊고 멀었다.

걸음을 멈췄다.

이 울음소리, 두 번이나 들었다. 너무 익숙했다. 하지만 이번에는 환각이 아님이 확실했다. 지금 나는 현실의 황야에 서 있었고 사방은 진짜 어둠이었다. 이 울음소리도 진짜로 내 귓속에 파고들었다.

울음소리를 따라 앞으로 걸었다. 흙 언덕을 돌아가자 불빛이 보였다.

상여 행렬이었다.

행렬이 길지 않았다. 십여 명이 향불이나 지화를 손에 들고 천천히 걸었다. 발걸음이 정제되어 있었고 마치 같은 줄에 이끌리는 것 같았다. 앞에는 깃발을 메고 가는 남자 둘이 있었다. 흰색 깃발이 밤바람에 펄럭이며 필사적으로 버둥거리는 두 손 같았다. 행렬 가운데에는 검은색 관이 실려 있었다. 나무가 두꺼웠고 옻칠 면이 불빛 속에서 어둡게 빛났다.

아무도 나를 신경 쓰지 않았다.

행렬의 맨 뒤에 붙어 걸었다. 발걸음이 모래 위에 떨어지며 그들과 마찬가지로 무겁고 느렸다. 향불 연기가 코끝에서 피어올라 울음소리가 온몸을 감쌌다.

행렬이 흙 언덕을 돌아 탁 트인 곳으로 들어섰다.

고개를 들어 이 곳을 알아봤다.

크고 작은 묘비 수십 개가 어둠 속에 무질서하게 세워져 있었다. 어떤 것은 기울어져 있었고 어떤 것은 이미 모래바람에 깎여 비문을 알아볼 수 없었다. 가장 멀리 낡은 목조 가옥 한 채가 공동묘지 가장자리에 쓸쓸히 서 있었다. 창문 틈으로 희미한 누런 불빛이 새어 나왔다.

저 가옥이었다. 저 공동묘지였다.

여기 서 있으니 묘지의 모든 곳이 낯익었다. 전에 분명 이 곳에 왔었다. 어머니가 나를 데리고 왔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