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질투의 불길
신아는 힘겨운 걸음으로 풍화원 안으로 들어섰다. 얼굴은 이미 눈물과 콧물로 범벅이 되어 있었다. 상아는 내내 고개를 숙인 채 감히 소리 하나 내지 못했다. 공기마저 얼어붙은 듯하여, 숨을 쉬는 것조차 조심스러웠다.
"가서, 아버지께 돌아가 그 아수라 여인의 내막을 낱낱이 조사해 오라 해라." 문득 신아가 냉랭하게 상아에게 말했다.
상아는 그 말을 듣고 몹시 당황했다.
"왕비마마, 절대 안 됩니다! 대전하께서 방금 말씀하셨으니, 부디 경거망동하지 마십시오……"
"경거망동하지 말라니 무슨 소리냐? 그럼 나더러 가만히 앉아 죽음을 기다리며, 자연과 그 요녀가 다정하게 붙어 지내는 꼴을 지켜보기만 하란 말이냐?"
"왕비마마, 노기를 거두십시오! 부디 말씀을 삼가십시오!" 상아가 털썩 무릎을 꿇고 머리를 조아리며 말했다.
"그리하시면 투기라는 큰 금기를 범하시는 것입니다…… 대전하께서 마음속으로 누구를 좋아하시는지는 중요치 않습니다. 중요한 것은 마마의 정비 자리입니다. 게다가 대전하께서 방금 약조하시지 않았습니까, 마마께서 경거망동하지만 않으신다면 그 아수라 여인을 측비로 들이지도 않겠다고요. 그런데 어찌 굳이 대전하의 뜻을 거스르시려 하십니까? 스스로에게도 좋을 것이 없습니다."
"네가 무엇을 안다고?" 신아가 미친 듯이 울부짖기 시작했다.
"내가 줄곧 원한 것은 정비 자리가 아니라 자연의 마음이었다. 내가 얻지 못한다면, 그 누구도 얻게 두지 않을 것이다."
질투의 불길은 모든 이성을 태워 버리기에 충분했다. 자연의 노기는 단지 한 여인 때문만이 아니라 두 종족의 대의를 위한 것이기도 했으니, 두 종족의 그 예민하고 팽팽한 관계는 건드리는 즉시 어지러워질 수 있는 것이었다. 그러나 지금의 신아에게 그런 것이 눈에 들어올 리 없었다. 어려서부터 집안의 귀한 딸로 손바닥 안에 떠받들려 자란 그녀는, 오직 남의 보살핌과 관심을 누리기만 했을 뿐, 남을 보살피고 관심을 기울일 줄은 알지 못했다. 명문가 규수로서의 교양을 받기는 했지만, 그 모든 것은 겉치레에 지나지 않았고, 그 속내는 그저 자기중심적이고 속 좁은 여인에 불과했다.
두 종족 간의 전쟁 따위는 그녀에게 아무 상관 없는 일이었다. 어차피 고통받는 것은 그녀가 아니었으니 말이다. 오히려 자연의 마음속에 그녀가 있는지 없는지야말로 그녀가 가장 신경 쓰는 일이었다.
상아는 몹시 두렵고 심히 부적절하다고 여겼지만, 아랫사람의 신분으로 어찌 신아의 뜻을 거스를 수 있겠는가? 그녀는 그저 신씨 가문으로 돌아가 아누에 관한 모든 소식을 알아보는 일을 처리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모든 소식을 정리해 보니 어딘가 모르게 의미심장하고 기묘한 구석이 있었다. 자줏빛 눈동자를 지닌 아수라족은 왕후와 소전하뿐이었다. 그렇다면 자연과 함께 있었다는 그 아수라 낭자는 대체 누구란 말인가? 설마 왕후일 리는 없을 텐데. 하지만 막영이 본 것이 거짓일 리도 없고, 자연 또한 부인하지 않았으니, 이것이 대체 어찌 된 일일까? 만약 평범한 집안의 아수라족 낭자라면, 자연이 측비로, 심지어 시첩으로 들인다 해도 그리 큰 파문을 일으킬 리 없었다. 지난날 두 종족 간 전쟁의 핵심 원인은 천군이 아수라 공주를 비로 맞이한 데서 비롯된 것이었다. 공주에게는 공주의 배경이 있고 아수라왕이 뒤를 받쳐 주니 소란이 일면 목숨이 걸릴 만큼 위태로워지는 것이었다. 평범한 집안이라면, 설령 왕공대신의 딸이라 해도 천족에게서 억울한 일을 당한다 해도 아수라왕이 굳이 크게 나서서 천족과 맞서지는 않을 터였다.
이렇게 앞뒤를 짜맞추어 생각해 보니, 신아의 머릿속에는 대담한 추측 하나가 절로 떠올랐다. 혹시 아수라족의 소전하가 바로 그 자줏빛 눈동자를 지닌 아수라 낭자가 아닐까? 아수라왕이 지난날의 전철을 거울삼아, 방법을 바꾸어 그녀의 아수라 공주라는 신분을 감추고 있는 것은 아닐까? 바로 그렇기에 자연도 이토록 신중하고 조심스럽게, 한 걸음 한 걸음 방비를 하며, 감히 그녀를 후궁으로 들이지도 못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이 대담한 가정을 바탕으로 신아의 마음속에는 이미 계산이 서 있었다. 만약 그녀의 가정이 사실이라면, 그녀는 그저 작은 불씨 하나만 던져도 들판 전체를 태워 버릴 수 있을 것이었다.
상아가 알아 온 소식 가운데 이 추측을 뒷받침할 만한 또 하나의 정보가 있었으니, 바로 아수라족 소전하가 오랫동안 인간계에 머물고 있으며, 인간계의 안성이라는 곳에서 얼마 전 심각한 역병이 돌았다는 것이었다. 다행히 모로가 손을 써서 역병은 곧 가라앉았는데, 대전하 또한 이번 구제 작업에 참여했고, 당시 곁에는 아수라 낭자 한 사람이 함께 있었다는 것이다. 사명성군의 말에 따르면 범인의 운수는 모두 그가 관장하는 바이니 안성의 역병에도 그 나름의 인과가 있는 법인데, 모로가 갑작스레 끼어든 것이 실로 그를 놀라게 했다고 한다. 어쨌든 범인에게도 범인 나름의 기운이 있는 법이니, 모로가 인간계의 모든 역병에 손을 쓰는 것은 아니었다. 게다가 대전하와 그 아수라 낭자까지 얽혀 있으니, 이는 확실히 사명성군의 특별한 주목을 끌었다.
아수라족의 소전하가 오랫동안 인간계에 머물고, 자연 또한 틈을 내어 인간계를 오간다니, 세상에 그런 우연이 그리 많을 리 있겠는가? 생각해 보니 아수라왕이 봉황을 몰래 용으로 바꾸는 수법으로 온 천하를 속였을지언정, 자연만은 속이지 못한 것이었다.
신아의 마음속 분노는 좀처럼 가라앉지 않았다. 자연은 그녀에게 이토록 다정하게 곁을 내어 준 적이 단 한 번도 없었다. 질투의 불길은 갈수록 거세게 타올랐다. 어떻게 해서든 그녀는 이 일을 그냥 지나칠 수 없었다.
분노가 좀처럼 가라앉지 않던 그때, 문밖에서 하인이 아뢰는 소리가 들려왔다.
"신육 신군께서 뵙기를 청하십니다."
신아가 막 거절하려던 참에, 신육이 씩씩거리며 성큼성큼 걸어 들어오는 것이 보였다.
"내가 부르지도 않았는데 어찌 함부로 들이닥치는 거예요?" 신아의 이 오라버니는 다른 집안의 오라버니들과는 달랐다. 그는 어려서부터 그녀에게 살가운 낯빛을 보인 적이 없었다. 집안 전체가 그녀를 애지중지하며 떠받들었지만, 유독 이 큰오라버니만은 그녀와 유난히 맞지 않았다. 지금 이 순간, 생각할 것도 없이 그는 분명 그녀를 못마땅해하러 찾아온 것일 텐데, 그녀가 어찌 그를 만나고 싶겠는가?
"일이 급하니 편법을 쓸 수밖에." 신육은 얼굴을 잔뜩 어둡게 하고 있었다. 먹구름이 짙게 뒤덮인 듯한 그 낯빛에서 이제 곧 큰 뇌우가 쏟아질 것만 같았다.
"너 대체 뭐 하는 짓이냐? 상아를 신씨 가문으로 보내서 무슨 수작을 부리려는 것이냐? 또 아버지더러 사명성군께 무슨 소식을 캐내라 시킨 것이냐? 너는 그저 분수를 지키며 대황자비 노릇이나 잘하면 안 되겠느냐? 네가 하는 짓이 제 무덤을 파고 불씨를 몸에 끌어들이는 것이나 다름없고, 게다가 신씨 가문에까지 화가 미칠 수 있다는 것을 모르는 것이냐?" 신육이 다짜고짜 신아를 호되게 꾸짖었다.
"무엇을 하려는 것이든 당장 그만두어라. 아버지도 너무 지나치게 너를 아끼셔서, 마음속으로는 불안해하시면서도 결국 너를 위해 여기저기 알아봐 주고 계시더구나. 이대로 가다가는, 내가 미리 일러 주지 않았다고 원망하지 마라. 대전하께서 이런 품행을 가진 대황자비를 용납하지 않으실 뿐 아니라, 네가 법과 이치에 어긋나는 짓을 저지른다면 나 역시 네가 내 누이라 하여 편들거나 손속에 인정을 두지 않을 것이다."
"오라버니……" 신아가 화가 머리끝까지 나서 신육을 손가락질하며 맞받아 소리쳤다.
"신씨 가문에서 오라버니만 내가 잘되는 꼴을 못 보시는군요. 내가 뭘 하든 다 트집이시고. 내 오라버니면서 도와주기는커녕 사사건건 반대만 하시고요? 나는 대황자비, 즉 군이고 오라버니는 신하인데, 무슨 자격으로 나한테 이래라저래라 하시는 거예요?"
"이건 군신의 문제가 아니다. 도리를 좀 헤아릴 수 없겠느냐? 나는 너를 위해서, 신씨 가문을 위해서 이러는 것이다. 네가 스스로 불구덩이에 뛰어들면서 신씨 가문까지 억지로 끌고 들어가 함께 파묻힐까 두려워, 그래서 미리 일러 주러 온 것이다."
"일러 주셔서 고맙군요! 오라버니는 말씀하셨고, 저도 들었으니, 이제 가셔도 돼요." 신아가 조금도 사양치 않고 손가락으로 문 쪽을 가리키며 축객령을 내렸다.
"천군과 대전하의 수행이 어느 정도인지 아느냐? 사람은 자신을 아는 것이 가장 귀한 법이다. 네가 무슨 짓을 하든 그분들을 속일 수 있으리라 헛되이 바라지 마라." 신육은 말을 마치자 다시 노기등등하게 소매를 떨치며 성큼성큼 자리를 떴다.
신육이 떠나가는 뒷모습을 바라보며 신아는 저도 모르게 울다가 웃었다. 자연의 마음에 다른 이가 자리하고 있음을 알게 된 그 순간부터 그녀의 세계는 무너져 내렸다. 어려서부터 원하는 것은 무엇이든 손에 넣었고, 인생에는 오직 전진만이 있을 뿐 물러섬이란 없었다. 자연이 그녀를 사랑하지 않되 다른 누구도 사랑하지 않는다는 것을 받아들이는 것이 그녀의 마지노선이었고, 그녀가 할 수 있는 최대의 타협이었다. 그런데 이제 자연의 마음이 다른 여인에게 가 있는 것을 냉담하게 지켜보라니, 그것은 죽는 것보다도 그녀로서는 받아들이기 힘든 일이었다.
자연이 그녀에게 인정을 베풀지 않는다면, 그녀 또한 자연에게 의리를 지키지 않는다 해서 원망하지 말라지.
죽을 거라면 다 같이 죽는 것이다. 무슨 이유로 그녀 혼자만 이 원한을 삼켜야 한단 말인가?
만약 그 아수라 여인이 정말로 공주라면, 아수라왕이 이 사실을 알고 나서 결코 가만히 있지 않을 것이었다. 두 사람의 정이 아무리 깊다 한들 반드시 갈라놓고 말 것이며, 결국 흐지부지 끝나는 결말을 맞을 것이었다. 어차피 깨진 항아리는 마저 깨는 법, 그녀는 이제 더 이상 개의치 않기로 했다.
어차피 자연도 그녀에게 다정했던 적이 없었으니, 냉대가 조금 더 는다 한들 무슨 상관이랴?
그렇게 생각이 미치자 신아는 손안에 선필 한 자루를 만들어 내어, 허공에 안성의 역병에 얽힌 이런저런 경위를 적어 내려갔다. 그러고는 일부러 '자줏빛 눈동자를 지닌 아수라 여인'이라는 문구까지 덧붙였다. 다 쓰고 나서 그녀는 숨을 깊이 들이쉬고 입으로 전송주를 외우며 선필로 허공을 가볍게 한 번 찍었다. 그러자 '편지'는 아수라 왕정을 향해 날아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