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혼견몽영(魂牽夢縈)
자연은 침전으로 돌아와 책을 읽으려 했지만, 어쩐지 힘이 실리지 않았다. 마음속에는 끊임없이 미무림의 이런저런 광경과 아누의 모습이 떠올라, 책 속의 글자도 띄엄띄엄 읽힐 뿐, 내용이 도대체 무엇을 쓴 것인지 끝내 이해하지 못한 채 흐지부지되고 말았다. 그는 자신의 이런 황당함을 자각했다. 독서는 본디 그의 한가로운 일상이었는데, 오늘 대체 자신은 어떻게 된 것인가? 가장 일상적인 일조차 이렇게 산만하고 어수선하게 하고 있다니. 이건 너무나 자신답지 않았다. 그는 몸을 일으켜 침전 안을 서성이며 손가락 마디로 자신의 이마를 두드리면서 이 반상(反常)을 자책했다. 그러다 자신도 모르게 발걸음이 그날 자신의 몸에서 뽑아낸 두 대의 화살 앞으로 향해 있었다.
한편, 그 적갈색 화살 두 대는 그날 침전으로 돌아온 후부터 상수에게 명해 구석의 높은 선반에 두게 하여 언제든 눈에 띌 수 있도록 해 두었다. 그것은 그가 마음속으로 그 화살의 주인에게 감상(賞識)의 정을 품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혹은 그녀)는 때맞춰 두 종족의 전쟁을 해소하여 평화롭게 막을 내리게 했고, 설령 그를 다치게 하는 수단을 썼다 하더라도 그에게 손속을 남겨 두어 딱 그만큼만 그쳤던 것이다. 그는 마음속으로 그 은혜를 받아들였으니, 그래서 미무림까지 가서 진상을 캐 본 것이었다. 그런데 뜻밖에도 미무림 속에 이토록 사랑스러운 어린 공주가 숨어 있을 줄이야, 그리고 이 어린 공주가 마침 이 두 대의 화살의 주인이라는 사실 또한 전혀 생각지도 못한 일이었다.
두 화살을 바라보며, 자연은 또다시 아득히 넋을 놓았다. 아누의 이런저런 모습들을 아득히 떠올리며, 자연은 저도 모르게 빙그레 웃었다. 그녀의 소녀다운 응석을 웃고, 그녀의 그 불같고 억지스러운 성정을 웃고, 더욱이 나이는 어리지만 부드러운 마음을 지녔음을 웃었다. 그녀는 인간 아이를 구하려고 자신의 몸을 위험에 던졌고, 두 종족의 평화를 위해 최고의 반격 기회마저 포기했다. 아마 그녀가 구두사괴와 사투를 벌인 것도 마을 주민들을 지키기 위함이었을 것이다, 자연은 생각했다.
가슴에 손을 얹고 자문해 보면, 실은 천족 안에서 그 자신은 고독한 존재였다.
그는 천족 사람들의 특성과 취향과는 정반대였다. 천족의 화려하고 시끌벅적함에 그는 전혀 무감했고, 차라리 홀로 조용히 있는 편을 택하여, 온갖 번화함과 농염함을 모두 바깥에 차단하고, 홀로 그 처량한 고독감을 음미하려 했다. 부군(父君)의 깊은 기대는 그로 하여금 어려서부터 모든 탐욕스러운 향락을 버리게 만들었고, 시간이 흐르면서 그 자신도 그런 탐욕스러운 향락을 이해하지도 좋아하지도 않게 되었다. 온 천족의 흥망성쇠와 영욕을 짊어진 막중한 책임을 진 몸으로서, 그는 아무리 해도 즐거워질 수가 없었다. 그래서 미무림에서 소의를 보았을 때, 그는 마치 또 다른 자신을 보는 듯했다. 그 책임을 위해 끊임없이 자신을 갈고닦는 모습에, 그는 진심으로 감탄과 연민을 느꼈다. 이런 고통을 겪어 보지 않은 자라면 누구도 그 참뜻을 알 수 없을 터였다. 그는 알았다. 바로 그 자신이 그렇게 한 걸음 한 걸음 오늘에 이른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나이가 들면서 그는 점차 깨닫게 되었다. 자신이 짊어져야 할 것이 단지 천인 일족에 대한 책임만은 아니라는 것을.
천인은 삼계의 높은 자리에 몸을 두어 지극한 복보(福報)를 누리고 있으니, 응당 자비로이 몸을 굽혀 천하 중생의 고통을 살펴보아야 마땅하지, 높이 앉아 그저 이기적으로 향락을 누리며 그들을 하찮게 여겨서는 안 될 일이었다. 그러나 천족 안에서 그는 거의 지음(知音)이 없었으니, 심지어 자신의 아내조차 그를 이해하지 못했다. 신아는 일반 천인과 다를 바 없었으며, 특히 대황자비의 신분으로 부귀영화를 마음껏 누리고 천인들의 존숭을 받았지만, 유독 그만은 이해하지 못했다. 그래서 여러 해가 지나도 그는 신아에게 진한 정이나 격정의 불꽃 같은 것을 느끼지 못했으니, 그야말로 "말이 통하지 않으면 반 마디도 많다"는 말 그대로였다. 그들의 마음은 실로 서로 통하지 않았지만, 어쨌든 부군이 내린 혼사였고 게다가 정치적 연맹이었기에, 별다른 허물도 없이 비를 폐할 수도 없어, 그저 상경여빈(相敬如賓)으로 예의를 갖추어 나날을 보낼 수밖에 없었다. 그가 보기에 천녀들은 사실 다 똑같았다. 부군은 그가 혼인한 지 오래되었는데도 아직 후사가 없음을 안타까이 여겨 측비를 들이라고 몇 번이나 재촉했지만, 그는 조금도 마음이 움직이지 않았다. 천녀들이 다 똑같다면, 굳이 자신의 고민을 더할 이유가 있겠는가.
자신의 마음은 이미 오래전에 평온해졌다고 여겼는데, 그런데 아누의 출현으로 그 안에 물결이 일었다. 까닭 없이, 아누의 음성과 얼굴, 웃는 모습이 알 수 없이 그의 마음속에서 맴돌았다. 미무림에서 막 돌아왔을 뿐인데, 벌써 마음속이 그리움으로 가득 차다니? 그 자신도 대체 어찌 된 일인지 설명할 수 없었다. 늘 침착하고 자제력 있던 그가 이렇게 마음이 들뜨고 조급해지다니? 아누를 알게 된 지도 얼마 안 되었는데, 이런 얽히고설킨 골칫거리가 어디서 생겨난단 말인가? 그러나 이미 이렇게 얽히고설킨 골칫거리에 빠져 있지 않았다면, 책을 읽어도 마음이 어수선하여 무슨 말인지도 모르게 되는 일이 어찌 있을 수 있단 말인가?
자연은 한숨을 쉬며, 여전히 손가락 마디로 이마를 두드렸다. 이렇듯 황당무계한 자신을 어찌해야 할지 알 수 없었다. 바로 이때 상수가 자연의 용어검(龍御劍)과 아누의 음양비, 칠채유광검을 가지고 알현하러 왔다.
"대전하께 아룁니다, 상수가 뒷수습을 하다가 그 아수라족 아가씨의 비수와 검이 현장에 떨어져 있는 것을 발견했사온데, 어찌 처리해야 할지 몰라 함께 가져왔습니다." 상수는 지극히 공손하게 말하며 세 물건을 탁자 위에 올려놓았다.
음양비와 칠채유광검을 본 순간, 자연의 마음은 은은히 떨렸다. 방금 전 머릿속에 가득 차 있던 것이 바로 아누가 아니었던가? 청수진 봉황산에서 구두사괴와 뒤엉켜 싸울 때, 그 계집아이는 실로 온갖 재주를 다 부리며 신나게 싸웠고, 조금의 비겁한 기색도 없었다. 그녀의 찡그림과 웃음, 말과 성냄, 그 어느 것 하나 그의 마음에 깊이 새겨지지 않은 것이 없었다. 그는 지금껏 이런 여인을 본 적이 없었다. 온갖 특질을 한 몸에 모은 여인이었다. 그래서 이토록 인상 깊었던 것일까?
거기까지 생각이 미치자, 자연의 얼굴에는 다시 웃음이 떠올랐다.
"그 계집아이는 어쩌다 구두사괴와 싸우게 된 것인가?" 실은 이 물음에 대해 자연의 마음속에는 이미 정해진 답이 있었지만, 그래도 확실히 확인해 보고 싶었다.
"마을 주민들의 진술에 따르면, 두 아가씨는 마을의 만춘 아가씨의 친구로, 특별히 산에 올라 붙잡힌 주민들을 구하러 왔다고 합니다."
"역시…… 그 계집아이는……" 이때 자연의 얼굴에 떠오른 웃음은 더욱 환해졌다. 아누의 어질고 의로운 마음씨에 대한 확신이 입증되었을 뿐만 아니라, "널리 좋은 인연을 맺는다"는 새로운 인식까지 더해진 것이었다.
"인간과 벗이 되기까지 하다니…… 미무림의 정령들과도 어울리고, 인간과도 벗이 되니, 아누의 마음속에는 귀천고하의 구분이 없는 듯하구나." 자연은 그렇게 중얼거리며, 마음속으로도 기뻐졌다.
"대전하께서는 오늘 기분이 매우 좋아 보이십니다." 자연의 웃음을 바라보며 상수는 다소 어리둥절했다. 평소 자연은 사람을 대함에 관대했고 냉랭하지 않았지만, 그 감정은 늘 안정되어 있어 뚜렷한 기복을 보인 적이 별로 없었다. 자신이 어려서부터 자연을 따르며, 그의 온화하게 사람을 대하는 웃음 뒤에는 그다지 진정한 편안함이나 즐거움이 없다는 것을 깊이 알고 있었다. 천군의 장자라는 압박은 그가 짊어진 무거운 짐이었으니, 그가 어찌 진정으로 편안하고 즐거울 수 있었겠는가?
그러나 오늘의 자연은 어딘가 다른 듯했다. 상수는 무엇이 다른지 말로 표현할 수 없었지만, 그저 어딘가 이상하다는 것만은 알 수 있었다.
"그런가?" 자연은 긍정도 부정도 하지 않았다.
"비수와 검뿐만이 아니다……" 자연은 상수가 탁자에 놓은 음양비와 칠채유광검을 손가락으로 가리키더니, 다시 높은 선반에서 두 대의 화살을 꺼냈다.
"내 두 화살의 상처 역시 그녀가 준 것이다." 자연은 다소 유쾌하게 웃었다. 이 아가씨는 참으로 흥미롭다, 실로 그의 시선을 잡아끌었다.
"대전하의 말씀은 아누 아가씨가……" 상수는 다소 믿기지 않았다. 이 소식은 너무나 놀라운 것이었다.
"그렇다, 그녀가 바로 아수라족의 어린 전하다." 자연은 용어검, 음양비, 칠채유광검과 두 대의 화살을 모두 함께 소매 속 건곤에 거두어 넣고는, 몸을 돌려 밖으로 걸어갔다.
자연이 나가려는 것을 보고, 상수는 즉시 뒤따랐다.
"나는 미무림에 다녀오겠다, 너는 따라올 필요 없다. 명심하거라, 미무림과 아누에 관한 모든 일에 대해 한 글자도 발설해서는 안 된다. 이는 두 종족 사이의 충돌, 나아가 개전(開戰)까지 일으킬 수 있는 일이니, 결코 소홀히 여겨서는 안 된다. 네가 한마디라도 누설한다면, 내가 용서하지 않을 것이라 여기거라."
"천군과 대황자비 낭랑도 포함되는지요?"
"그렇다." 자연이 단호하게 말했다.
따라오지 말라니? 상수는 마음속으로 다소 의아했다. 오랫동안 그는 거의 자연의 왼팔 오른팔이 되어 왔다. 그와 자연은 명목상 주종 관계였지만, 그 정의는 오히려 형제와 같아서, 앞뒤로 그림자처럼 자연을 따라다니는 것이 이미 변치 않는 철칙이 되어 있었다. 오늘은 대체 무슨 일인가, 따라올 필요 없다니?
자연이 떠나가는 뒷모습을 바라보며, 상수의 마음속에는 온갖 생각이 떠올랐다. 오늘의 대전하는 너무나도 이상해서 그로서는 다소 적응하기 어려울 지경이었다. 기분이 유난히 좋을 뿐 아니라, 걸음걸이마저 가벼워 보였다. 자연이 대체 무슨 속셈인지 그는 알 수 없었고, 그저 멍하니 자연의 뒷모습이 사라지는 것을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자연은 줄곧 걸어가, 구불구불하고 흐릿하여 분간하기 어려운 오솔길을 지나자, 그 확 트인 부지와 일자형 평옥이 갑자기 눈앞에 나타났다. 이곳을 떠난 지 겨우 어제였을 뿐인데, 그는 마치 삼 년이나 지난 듯한 느낌이었다. 아누를 다시 볼 수 있다는 생각에, 그의 마음속에는 말로 다 할 수 없는 설렘이 있었다.
멀리서, 그는 수사와 무지개다리를 지나 밀림 앞의 작은 공터에 아누가 땅에 주저앉아 있고, 작은 정령들이 시끌벅적하게 그녀를 둘러싸고 있는 것을 보았다. 그리하여 그는 천천히 수사로 걸어 들어가, 조용히 그들이 소란스럽게 떠드는 모습을 지켜보았다.
"아누, 웃어 봐……"
"아누, 노래 불러 줘……"
"아누, 춤춰 줘……"
"아누, 슬퍼하지 마! 우리가 있잖아!"
정령들은 저마다 한마디씩 아누를 달랬지만, 아누는 잔뜩 찌푸린 얼굴로 앉아 있었고, 얼굴빛도 좋지 않았다.
행아는 아누가 얼굴빛도 풀지 않는 것을 보고, 마음은 여전히 소의가 왔다가 다시 떠난 그 슬픔에 잠겨 있었지만, 그녀를 살며시 밀었다.
"그러지 마, 너는 잘 지내야 해, 그래야 소의도 마음을 놓을 수 있어. 수십 년은 금방 지나가."
"맞아 맞아 맞아!" 호랑이 요괴가 뛰쳐나와 "맞아"를 연달아 세 번 외치는 바람에, 겁 많은 행아가 깜짝 놀랐다.
"왜 사람을 놀라게 해?" 행아가 놀란 것을 보고, 원래도 심기가 불편했던 아누는 더욱 못마땅하게 호랑이 요괴를 나무랐다.
"저는…… 일부러 그런 게 아니라…… 그저…… 그저 소리가 좀 컸을 뿐이에요, 정말 죄송합니다." 아누가 언짢아하는 것을 보고, 호랑이 요괴는 분명 자기가 뭘 잘못했는지 모르면서도 서둘러 사과하며 잘못을 인정했다. 그는 그 김에 몸을 낮추어 나지막이 아누에게 물었다. "제가 당신을 태우고 밀림을 한 바퀴 돌아 기분 전환 좀 시켜 드릴까요, 어떠세요?"
호랑이 요괴가 아누를 태우고 밀림에 가서 기분 전환을 시켜 주려 한다는 말을 듣고, 모든 정령들은 서로 얼굴을 마주 보았다.
"소의가 어디 있는지 알아? 소청조도 나를 데려다주려 하지 않는데……" 아누는 마치 희망을 본 듯, 눈에 빛이 어렸다.
이때 정령들은 일제히 호랑이 요괴의 귀를 잡아당기고, 꼬리를 끌고, 엉덩이를 걷어차고, 주먹질과 발길질을 해 댔다…… 이런 것 저런 것 다 동원했다. 정말 눈치 없는 녀석이었다! 하필이면 그 얘기를 꺼내다니?
"저…… 저는 몰라요." 자기가 사고를 쳤다는 것을 깨달은 호랑이 요괴는 급히 이 진흙탕에서 빠져나오려 했다.
"거짓말이야!" 호랑이 요괴가 얼버무리는 것을 보고, 아누는 화가 나 호랑이 귀를 붙잡고 그를 몰아붙였다. "빨리 나를 소의한테 데려다줘!"
"나의 작은 아가씨, 먼저 조급해하지 마세요!" 거북 요괴는 동작이 비교적 느려서, 늘 사람들에게 서두르지 않고 여유롭고 침착한 느낌을 주었고, 그 때문에 마치 특별히 지혜로운 자처럼 보였다.
"영지는 그렇게 작은 한 그루로, 밀림 한구석에 숨어 있는데, 호랑이 요괴는 저렇게 몸집이 크고, 게다가 눈치 없는 녀석이니, 어디 소의가 어디 있는지 알겠어요?"
"그러게…… 그러게……" 정령들은 그 말을 듣고 저마다 맞장구를 쳤다.
"그럼 너희들 중 누가 아는데? 빨리 나를 데려다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