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성석 (醉醒石)

글자 크기

읽기 모드

언어

* 简体中文에는 아직 이 챕터 번역이 없습니다

제14회 미처 다시 살지 못하고 묏자리를 부끄럽게 하고 가난해도 연달아 높은 과거를 거머쥐다

회계(會稽)의 한 줌 흙,

보는 이마다 남겨진 부끄러움이 있구나.

빈천은 또한 인지상정이거늘

어찌 원망과 탄식을 낳겠는가.

때가 왔는데 기다리지 못하여

발을 헛디디고 매와 솔개의 무리에 들었네.

바람 아래 떠도는 꽃이 되어

가지로 돌아갈 길이 끝내 어디 있는가.

도랑에서 허망하게 죽었으니,

붉은 붓이 부끄러워 거두지 못하는구나.

나는 원하노니, 같은 침금(寢衾)에서 경계가 되기를,

사대부와 여인들이여, 힘쓸지어다!

빈천과 부귀가 갈리는 자리에서는 남자도 꿰뚫어 보기 어렵다. 그러므로 차가운 창가에서 팔짱을 끼고, 고요한 방에서 슬피 노래하며, 세 번 상소하고 여러 차례 문을 두드리는 일까지 벌어진다. 명성에서는 서로 질투하고 이익에서는 서로 기울어, 몇 명이나 벼슬에 나아가겠는가. 아직 과거에 합격하지 못했을 때는 어깨 힘이 세고 천거해 줄 사람이 간절하여 같은 뜻의 동창도 돌아볼 겨를이 없다. 이미 한 자리를 얻으면 빨리 손에 쥐고 먼저 선점하기에 급급하여 동년(同年)과 동서(同署)도 돌아볼 겨를이 없다. 늙음을 탄식하고 낮은 자리를 탄식하는 마음 하나에, 이미 친구와 소원해지는 지경에 이르렀다. 빈천할 때 거친 아내와 함께 지키다가 조금이라도 두각을 나타내면 첩을 들이고 음란을 일삼으며, 심한 경우 함께 식사하던 사이를 반목으로 몰아가니, 이 아내에 대한 박정함도 마땅한 것이겠는가? 진(晉)나라 회계왕 도자(道子)나 송나라 재상 채경(蔡京)이 권세로 부자형제를 원수처럼 몰아간 것을 보라. 또 가난한 처지에 편안하지 않은 사람은 어느 누가 국가를 위해 일하겠는가.

몇 해나 차가운 창가에서 고개 숙여

마음은 오로지 고관이 되기만 바랐네.

일단 뜻이 펴지는 날에는

청사(靑史)에 부끄러움 남기는 줄 모르는구나.

가난과 비천함에 편안하지 않은 마음은 마침내 오륜의 좀벌레가 된다. 왕돈(王敦)·환현(桓玄)같이 명분을 해치고 반역을 꾀하며, 먼저 동료와 친우를 해치고 이어서 군주마저 능욕하여, 마침내 조종(祖宗)의 제사를 끊고 처자와 형제 족속을 멸족시킨 것이 모두 "열사는 노년에도 웅지를 버리지 않는다"거나 "아버지는 구주의 패자요 아들은 오호(五湖)의 군장"이 되겠다는, 늙음을 탄식하고 낮은 자리를 탄식하는 데서 비롯되었다.

예부터 순(舜)과 도척(盜跖)은 길이 갈렸으니,

오직 의(義)와 이(利)의 갈림길에서였다.

이곳에서 조금이라도 어긋나면

의관을 걸친 말과 소가 될 따름이라.

부녀자에 대해 말하자면, 글을 읽고 도리를 아는 이가 매우 드문데, 어찌 큰 식견과 큰 절제가 있겠는가! 게다가 혹 굶주림과 추위에 쫓기고 저쪽과 비교되며, 옆에서 조롱하여 견디기 어렵고 친척들의 냉담함을 참기 어렵다. 방목(榜目)에서 남편 이름 하나 찾아낼 수도 없고, 몸에서 낡은 옷 한 벌 벗길 수도 없으며, 늘 오르막 없이 좌절만 겪는 남편을 부추길 수도 없으니 통곡할 만하다. 그러나 "굶어 죽는 것은 작은 일이요 절개를 잃는 것이 큰일이다"라 하였으니, 눈뜨고 이 가난한 선비가 아직 살아 있거늘 또 다른 사람을 안는다면 어찌 하루 이틀의 은정도 없겠는가. 지나치게 윤리를 내던지는 것이니! 이래서 주매신(朱買臣)의 아내가 천고에 웃음거리가 된 것이다.

가난과 비천함은 참으로 슬픈 것이지만

부부의 의리가 얕지 않았거늘.

도랑물이 갑자기 동서로 갈리니

애석하다, 잘못을 다시 고치기 어렵구나.

전 왕조 때에도 이런 이가 있었으니, 회남(淮南) 땅에 사는 막(莫)씨라 전해진다. 막 노인에게는 아들이 없고 딸만 셋이었다. 두 명은 전처 소생인데 한 명은 같은 마을 부호의 아들 장(蔣)씨 장랑(大郎)에게 시집보내고, 다른 한 명은 본현 아전 한(韓)씨 한제공(韓提控)에게 시집보냈다. 오직 셋째 딸만이 후처 소생이었다. 태어날 때부터 뛰어난 용모로, 가느다란 눈썹과 넓은 이마, 고운 이와 맑은 눈을 가져 모든 이가 복 있는 사람이라 하였다. 게다가 여공 바느질에 이르지 않는 것이 없을 만큼 솜씨가 뛰어나고 영리하였다. 부모는 평범한 사람의 아내감이 아니라 하여 반드시 옛 선비 집안의 사람을 골라 주겠다고 하였다. 하루는 본현에 새로 합격한 수재(秀才) 중에 소(蘇)씨가 있었다. 할아버지는 효렴(孝廉) 통판(通判)이요, 아버지도 수재였다. 비록 관가 집안이었으나, 할아버지는 공교롭게도 청렴한 관리가 되어 자산을 남기지 못하였고, 아버지도 공교롭게도 젊어서는 공자처럼 살아 경영을 하지 않다가 후반생에는 그저 독서만 하는 고지식한 선비가 되어 경영하려 해도 할 줄을 몰랐다. 전답이 거의 다 없어지고 이 몇 권의 책만 남아 가난해도 떠나지 않았다. 그래서 아들이 두 구절을 읽어 수재가 된 것이다. 막 노인은 그가 젊고 외모도 반듯하며 또 옛 집안임을 보고 오히려 사람을 보내어 데릴사위로 맞으려 하였다. 소수재가 거절하며 속류를 싫어하였다. 막씨 집에서 거듭거듭 매파를 통해 우겨 이루었다. 강가에서 비취 날개가 짝을 이루고, 진관(秦館)에서 아름다운 피리 소리 어우러지듯. 소씨 집에서 조금이나마 예물을 마련하였다. 장모가 예단을 많이 주려 하였으나 막 노인이 말하였다. "글 읽는 선비 집안이라 번화함을 좋아하지 않으니 뒷날 논밭 몇 마지기를 더 주겠다." 그래서 혼수도 그저 보통 수준이었다.

혼인한 지 얼마 되지 않아 막 노인이 갑자기 풍증(風症)을 앓았다. 두 딸이 급히 집에 달려와 재산을 일시에 챙기며 장랑과 한제공이 한통속이 되었다. 한제공은 가족을 이끌고 살림집을 차지하였고, 장랑은 논밭을 모두 빼앗아 소작료를 거두면서도 장모와 처제를 들볶기를 안에 감춰 둔 살림이 있을 것이니 꺼내어 균분하자고 하였다. 장모가 소수재에게 소송을 내라 하였으나 늙은 선비가 말하였다. "책 속에 황금이 있고 책 속에 천 가마 양식이 있다 하였거늘 그것들을 두고 무슨 다툼을 하겠습니까?" 소수재도 감히 입을 열지 못하였다. 그 두 집은 논밭을 얻어 겨울에 쌀 한 섬을 봄까지 묵혀 한 냥 서너 전에 팔고, 여름에 은 한 냥을 겨울까지 빌려 두 섬 쌀을 거두었다. 재산을 얻은 자는 두 관청 서반(書辦) 자리를 사서, 일 년에 참(參)을 받고 이 년에 자리를 구하고 삼 년에 이과(移考)하여 모두 좋은 과방을 얻었다. 화려한 옷에 노한 말을 타고, 가난한 선비는 눈에도 두지 않았다.

흉년에 이웃은 부자가 되고,

시절이 기울어지니 악한 관리가 높아진다.

미꾸라지는 물도랑에서 활개 치고,

북명(北溟)의 곤어(鯤魚)를 비웃는구나.

다만 막 노인의 족제(族弟) 막보헌(莫甫軒)만이 소수재가 재물에 연연하지 않음을 보고 "이 사람은 끝내 발달할 날이 있을 것이다."라고 하였다. 그런데 소수재 집안은 또 아버지마저 세상을 떠나 어쩔 수 없이 장사(葬事)에 돈을 써야 하였다. 장모도 세상을 떠나자 두 매형이 말하기를 "그쪽의 친외삼촌이니 우리와는 무관하다."라 하여 어쩔 수 없이 또 염습을 치렀다. 수중이 갈수록 궁해졌다. 사방이 상여(相如)처럼 막막하고 빈 주머니는 두보(杜甫)처럼 가난하였다. 집안에 생계가 없어 훈장을 할까 생각하였으나 나이가 젊어 사람들이 학식이 부족하고 노성하지 않아 위엄이 없다 하여 청하는 사람이 없었다.

막보헌이 백방으로 도모하여 주홍려(周鴻臚) 집에서 읽기 공부 짝을 찾아 주었는데, 일 년에 겨우 오육 냥이었으나 그래도 밥은 해결할 수 있었다. 소수재가 가자마자 새벽부터 밤까지 쉬지 않고 글을 읽었다. 주 공자가 물려 말하였다. "형, 소제가 모신 것은 그저 정의일 뿐입니다. 이렇게 하시면 소제가 오히려 불편합니다." 또 친구를 불러 글을 짓기도 하여 두 사람이 제목을 받아 오후까지 지었는지 안 지었는지도 모를 지경에 "내일 보충합시다, 일단 술이나 마십시다."라고 하였다. 소수재가 여전히 한편에서 고개를 끄덕이며 생각에 잠겨 있는데, 종이와 붓이 이미 빼앗겨 버렸다. 술을 마시면 반드시 노래하며 밤새 흥청거렸다. 소수재는 술을 많이 마시지 않고 노래도 할 줄 몰라 늘 그가 고지식하여 흥을 깬다고 하였다. 또 기방 구경을 가자고 하면 핑계를 대고 피하니 달리 행동하여 도움이 안 된다고 하였다. 훈장이 관아에 없으면 읽기 짝이 어찌 혼자 앉아 있겠는가. 앉아 있더라도 음식은 반드시 때를 놓치고 하인들은 반드시 게을러졌다. 은근히 쫓겨나 스스로 발을 붙이지 못하게 되었다.

뭇 사람이 취했는데 깨어 있기 어렵고,

깨어 있는 자는 괴롭게 미움을 받는구나.

지팡이처럼 굳은 사람은 영월(寧越)을 비웃어도,

거처를 점쳐 보는 데 마음 두지 않는다.

집에 돌아오자 주 공자도 날을 계산하여 절반의 사례비만 보냈다. 소수재는 스스로 학문을 황폐하게 할까 봐 또 문회(文會)에 참여하였다. 순번이 돌아와 음식 준비를 해야 할 때는 두꺼비도 개구리 속에서 한 칼을 맞으려 하듯, 어찌 막씨의 바느질과 전당이 필요하지 않겠는가. 한 끼 밥도 마찬가지였다. 소수재가 말하였다. "거친 밥과 나물국은 유자(儒者)의 일상이오." 막씨가 말하였다. "체면도 있으니 작은 고기 반찬도 하나 있어야 합니다." 모두 그녀가 처리하였다. 게다가 집안의 일상적인 의식(衣食)과 친척들의 조그마한 예절도 모두 이 여인 덕분이었다.

선비의 살림살이는 서툴어

내조는 어진 여인에게 기댈 수밖에 없구나.

뜸 위에서 읽었다는 옛 현자의 이야기,

아름다운 이름이 길이 빛나 사라지지 않으리.

처음 혼인하고 얼마 안 되어 외간상(外艱, 아버지 상)을 만나 한 번의 과거가 미뤄졌다. 복상(復喪) 후에는 학사(學師)에게 인사를 드리러 가야 하는데 억지로라도 마련하지 않을 수 없었다. 다행히 그해 유고시험이 있어 부현(府縣)의 눈치를 보지 않고 일등으로 과거에 나아갈 자격을 얻었다. 처음에는 초가집의 기세로 해원(解元)을 손에 쥔 것처럼 여겼다. 모범 문제를 찾고 시책(時策)을 고르고 표(表) 대목을 읽고 판례를 외워 매일 밤중까지 잠을 자지 않았다. 이 여인을 속여 집안일이 자신의 마음을 나눌까 봐 시탄이 없어도, 쌀이 모자라도 털끝만큼도 알게 하지 않았다. 그를 위해 청모변(靑毛邊) 도포, 모변(毛邊) 바지, 모직 적삼을 만들고, 인삼을 바꾸고, 남경 왕래 노자까지 모두 땅을 파고 하늘을 두들겨 상처를 째어 마련하였다. 시험에 들어가기 전 친척들이 예물을 보냈다. 시험이 끝난 뒤 친척들이 문안하였다. 평소 아주 냉담하던 두 매형도 친근해졌다. 막씨는 매우 기뻐하였다. 시험장에서 나와 집에 돌아오자 날마다 술자리가 있었다.

한가할 때 막씨는 집이 좁으니 합격하면 다른 방을 빌려야 한다는 계획을 세웠다. 집안에 사람이 없으니 몇 가구를 들여야 하고, 지금 당장 필요한 것은 아무개 집에서 빌릴 수 있고, 지금 도움이 될 이는 아무개 친척이 기꺼이 나서 줄 것이라 하며 하루 종일 기쁨이 눈썹 위에 머물렀다. 발표 날이 가까워지자 직접 문 앞을 쓸고 말끔한 평상복을 입었다. 거리에 빨리 걷는 사람이 보이면 문틈으로 살피며 들어오라고 잡아당겼다. 점점 아무개가 합격하고 아무개가 합격하였다는 소식이 들려오는데 유독 남편만 빠지니 몹시 기분이 좋지 않았다. 소수재도 두 마디 큰소리로 위로하였다. "팔구 성(成)짜리 은도 다 나갔는데 나는 순은이라, 못 쓸 리가 없고 다만 삼 년이 늦을 뿐이오."

때가 맞지 않으니 어찌하겠는가,

좁은 창가에 술 한 잔 들고 높이 노래하리.

건장(乾將)의 검도 언젠가는 용이 되리니,

화음(華陰)의 흙을 고이 갈아 두리라.

소수재는 일등을 받아 과거 자격도 있고 이름 있는 선비가 되었으니 좋은 훈장 자리를 구할 수 있을 법도 하였다. 그러나 좋은 자리는 모두 사람들이 차지하여 내놓지 않았다. 그럭저럭 자리를 구해도 훈장 자리를 지키는 데는 비결이 있다. 첫째는 큰 가마에 호화 교자(轎子)를 타고 성대한 복장에 준수한 시동을 데리고, 오늘은 어느 스승에게 인사하고 내일은 어느 명사를 청하여 소과(小考)의 선두 몇을 꿰어 두어, 당당한 기상으로 주인집을 놀라게 하고 학생들을 누르며 함부로 대하지 못하게 한다. 둘째는 겸손하고 공손하게 한마디에 세 번씩 "예" 하며 주인에게도 아첨하고 학생에게도 아첨한다. 글을 지으면 글자마다 원을 그려 모든 글자가 훌륭하다 한다. "영식이 반드시 높이 합격할 것이요, 노선생은 틀림없이 봉군(封君)이 되실 것입니다."라고 한다. 또 밥 나르는 관아 하인 앞에서도 낯빛을 꾸미어 온통 부드러움과 아양으로 사람을 움직여 떠나가게 하지 않는다. 가장 못한 방법으로는 주인을 위해 매나 개 노릇을 하고, 학생을 위해 한가한 잡일을 해주며, 주인을 위해 소송을 처리하거나 학생을 위해 도박을 거들고 기방을 함께 가거나 청탁에 도움을 주어도 몸을 붙일 수 있다. 소수재는 진실한 사람이라 이 세 가지 중 어느 것도 하지 않았다. 자리를 구하는 것도 몰랐고 자리를 지키는 것도 몰랐으니, 첫 해는 잘되다가 이듬해에는 점차 뜸해졌다.

아첨이 이미 습성이 되었으니,

명분으로 묶기 어렵구나.

"도도평장아(都都平丈我)"라 해야

주머니가 넉넉함을 보전할 수 있다.

다행히 두 입이 쓰는 것이 많지 않아 그럭저럭 꾸려 나갈 수 있었다. 게다가 당고(堂考)·계고(季考)도 요즘은 허명(虛名)이 되어 돈 한 푼 주지 않는 상이 없어졌다. 가난이 알려지자 순무(巡撫)가 출발할 때 등불 기름 값으로 빈한한 자들을 돕고 학교에서 꾸러미를 주어 몇 돈을 마련하기도 하였다. 월월 넘기며 또 과거에 이르렀다. 부현(府縣)에서 모두 인정(人情)이 필요하였다. 어쩔 수 없이 부(府)에 "전번에 일등을 하였고 청년으로 뜻이 있으니 두루 받아들여 주시기 청하노라."는 정장(呈子)을 올렸다. 부에서 한 자리를 배정받았고 도에서 삼등 두 번째를 받았다. 과거가 일찍 정해진 덕에 앞에서 사망한 이, 복상(服喪)한 이가 있어 한 자리를 보충하였다. 처음에 부부가 낙담하여 두 자리를 얻지 못하고 이등 과거를 얻었는데, 이번에 보충하여 또 기회가 좋다며 주먹을 쥐고 결의를 다져 거인(擧人) 합격을 바라게 되었다.

남경으로 출발하기 전에 막씨가 말하였다. "한 번은 낯설고 두 번째부터 익숙해지는 법. 이번에는 꼭 거인을 합격하여 제 자랑이 되어 주세요." 소수재가 말하였다. "반드시, 반드시 그렇게 하겠소." 이전에 소수재가 남경으로 향시(鄕試)를 보러 갈 때 집에 아무도 없어 막씨 집 숙모에게 부탁하여 함께 지내게 하였는데 이번에도 마찬가지로 부탁하였다.

하룻밤 꿈속에서 흑흑 울다가 깨어났는데, 숙모가 물으니 "꿈에 남편이 합격하지 못하였다는 소식을 들어 슬퍼하였습니다."라고 하였다. 숙모가 말하였다. "꿈에 죽으면 살게 되고 꿈에 흉하면 길하다 하네. 꿈에 합격 못한 것이 바로 합격할 징조라오." 막씨는 여전히 기분이 좋지 않았다.

길흉이 마음에 너무 걸리어

꿈에서도 혼이 놀라는구나.

언제쯤 붕새가 되어 날아올라

규방 속 이 마음을 달랠 수 있겠는가.

다음 날 소수재가 집으로 돌아와 말하였다. "이번에 세 가지 글 제목이 다 맞았소. 경제(經題) 두 편은 전에 지어보고, 두 편은 기억하고 있으니 이번에는 반드시 합격이오." 막씨가 말하였다. "그렇다면 숙모의 해몽이 맞군요. 숙모, 잠시 더 계시며 도와주세요." 하늘이 기뻐 뛰는 마음으로 발표만 기다렸다. 그런데 뜻밖에 또 다른 집으로만 가 버렸다. 막씨가 전번에는 꿈속에서 울었는데 이제는 낮에 울었다. 소수재도 긴 한숨을 쉬며 말하였다. "삼 년을 더 해도 안 되겠구나." 막씨가 울다가 멈추고 두 눈썹을 치켜올리며 눈을 부릅뜨고 말하였다. "사람의 생에 몇 번의 삼 년이 있겠어요! 이 가난, 어찌 견딜 수 있겠어요!" 또 울기 시작하였다. 소수재는 본래 기분이 좋지 않은데 이 닦달을 어찌 당하겠는가. 할 수 없이 밖으로 나가 숙모에게 위로를 맡겼다.

참으로 소계(蘇季)처럼 유락하여

슬픔을 머금고 베틀을 내려오지 않는구나.

또한 박옥(璞玉)을 껴안은 이로 하여금

맑은 눈물이 비단 옷을 적시게 하는구나.

이로부터 오로지 한숨과 우울함뿐이었다. 소수재의 의식을 전혀 돌봐 주지 않고, 만나면 가난을 탓하며 의복에 돈을 썼다고 나무랐다. 소수재는 이때 작은 훈장 자리를 겨우 구하여 날마다 관사에서 자며 그를 피하였다. 사람의 의기는 북돋우면 왕성해지는 법인데, 집에서 이처럼 꺾이고 눌리니 글 가르치는 것도 마음이 없어지고, 과거에 응시하는 것도 게을러지며, 훈장 자리도 제대로 된 자리가 아니었다. 시험 준비도 흥이 나지 않았다. 전에 따르던 이들도 모두 그를 우둔하다고 비웃게 되었다. 현(縣) 시험에 이름이 오르지 못해 직접 나서서 겨우 한 자리를 보충하였다. 부(府)에서는 여전히 밀려 이것은 힘으로 밀어붙일 수 없는 것이었다. 유고(遺稿)에 이르자 겁이 났다. 연줄을 쓰려 하였으나 아내에게 말하기 어려워 막보헌에게 부탁하였다. 막씨가 크게 노하며 말하였다. "그 사람이 직접 낮은 자세를 취하지 않으면서 삼촌을 시켜 오다니. 제 얼굴에 붙은 것도 이미 다 벗겨졌는데 무슨 것이 더 있겠어요. 그이는 몇 백 명 안에서 빠져나오지 못하면서 대장(大場)에서 합격하려 하다니. 이런 돈을 써봤자 물에 빠지는 것입니다, 절대 안 됩니다." 막보헌이 말이 먹혀들지 않음을 보고, 할 수 없이 한 차례 도와주기로 의논하였다. 두 매형을 찾아가니 모두 돈이 없다고 핑계를 댔다. 일이 급해져 다시 막씨를 설득하여 비단 두세 냥을 전당 잡혀 마련하였다. 막보헌이 비용을 포괄하여, 부(府)에서 한 자리를 얻고 도(道)에서 요행으로 한 자리를 얻었다. 이번에 두 매형이 각각 한 주의 회비를 내어 노자로 삼았다.

떠날 때 소수재는 기운을 내어 배를 불태우고 강을 건너듯 결의를 다졌다. 막씨도 창자를 끊을 수 없어 매화를 바라보며 갈증을 면하려 하였다.

돌 속에서 연성의 벽옥(壁玉)을 얻었건만

능양(陵陽)이 세 번이나 바쳐 거절당했구나.

피가 소매 가득 물들었으니

속에 들어 있는 함을 쪼개어 줄 이 있어야 하리.

집에서 거북점을 치고 운명을 점쳤다. 원래 막씨는 처음 시집올 때 소수재의 사주를 보았는데, 젊어서 과거에 올라 극품의 관직에 이른다 하였다. 뒤에는 빚 갚듯 과거마다 늦어졌다. 이번에는 떠돌이 술사가 말하였다. "이 사람은 청하되 귀하지 못하여 문명(文名)은 있어도 현달하지는 못합니다." "이번 과거에 합격할 수 있겠습니까?" "확실하지 않습니다, 확실하지 않습니다." 막씨가 뒤통수를 맞은 것 같았으나 아직 절망하지는 않았다.

그런데 소수재가 돌아온 것을 보니 표지에서 두 번째가 밀려 낙방하고 침울하게 돌아온 것이었다. 차마 말하지 못하였다. 막씨가 여전히 기다리고 있었고, 그는 스스로 포기하였다. 떠들썩함이 두려워 발표 날이 오면 또 밖으로 나가 버릴 셈이었다. 이편에서 막씨는 또 한 번 허탕을 쳤다.

위험한 누각에 혼자 기대서

눈길을 모아 남편 기다리는 듯.

하늘에 기러기 소식도 끊겼고

자색(紫色) 봉인 편지 보이지 않는구나.

소수재의 운수는 비록 험난하였으나 뜻밖에 이 여인의 마음이 완전히 변하였다. 전번에는 가난에 떠들었는데 이번에는 아예 견딜 수 없다고 떠들기 시작하였다. 소수재가 그 떠듦을 막으려고 일부러 강한 말을 내뱉었다. "당신은 그저 견디기 어렵다, 견디기 어렵다 하면서 정작 개가하겠다는 말은 못 하오. 나는 이렇게 멀쩡히 살아 있으니 남편 없다 할 수 없고, 세 끼가 모자라지 않으니 가난하다 할 수 없으며, 나쁘다 해도 수재 집 사람으로 풍속을 어지럽히는 말은 내뱉을 수 없소." 막씨가 말하였다. "무슨 말을 못 하겠어요! 남의 남편은 의기양양한데 당신만 이렇게 鱉처럼 죽은 것과 다를 게 무어예요? 남의 집은 흥청망청한데 우리 집만 꽁꽁 얼어붙었어요. 가난해서 못 견딘다, 개가하겠다는 것이 무슨 잘못이에요?" 소수재가 말하였다. "당신도 십여 년을 함께 지냈는데 어찌 삼 년을 더 견디지 못하오?" 막씨가 말하였다. "당신을 위해 십여 년을 견뎠으면 이제 놔줘도 되지 않겠어요? 삼 년 삼 년 하며 몇 번의 삼 년을 속여 왔는데 제가 또 들어야겠어요!"

한창 다투는 중에 한 제공(韓提控)이 방문하러 왔다. 두 번의 임기를 마치고 상경하여 납부하고, 또 이부(吏部) 화방(火房)에서 수고하여 강서 신간현(新淦縣) 현승(縣丞)으로 선발되었다. 녹색 꽃무늬 비단 원령(圓領)에 메추리 흉배, 사모(紗帽), 은 장식 허리띠, 말을 몰고 산채를 들며 작은 하인들이 방 안에 가득하였다. 부서진 의자를 끌어와 그 위에 앉아 알현을 청하였다. 소수재가 관사에 있다고 전하자 막씨가 아직 세수를 하지 않았다 하며 나가지 않았다.

오곡이 익지 않으면 돌피만 못하다 하니,

양 가죽에 호랑이 껍데기라도

그래도 빛이 난다.

마침 장랑이 은자 몇 냥을 계산해 두고 매형 편에 부탁하여 앞길을 도모하게 하였다. 한 현승이 그것을 빌려 쓰고는 후보 교독(敎讀) 임명장을 만들어 주어 그도 관복 차림으로 손님에게 인사하러 다니게 되었다. 막씨가 말하였다. "이것 봐요! 글을 읽지 않은 사람이 오히려 관리가 되네요. 당신 같은 신 선비를 붙들고 있어 무슨 소용이에요?" 소수재가 어쩔 수 없이 막보헌에게 가서 달래 달라고 부탁하였다. 막보헌이 막 들어오자 막씨가 울기 시작하였다. "삼촌, 당신이 저를 이 지경으로 만들었어요! 당신이 글 읽는 사람에게 시집가는 것이 좋다고 하더니, 십여 년간 어느 날 하루 기쁜 날이 있었나요? 옷 두 벌이라도 있으면 시험 남긴다며, 삼촌 얼굴 본다며 저를 다 내다 팔았어요. 하늘처럼 긴 세월, 어찌 이 시간을 보내겠어요? 삼촌이 주선하여 그이로 하여금 저를 내보내고 다른 사람에게 시집가게 해 주세요." 막보헌이 말하였다. "그런 말을 하다니! 남편을 버리고 또 다른 남편에게 가면 사람들이 비웃을 것이오. 연극에서 하는 주매신(朱買臣)이야기를 못 봤소?" 막씨가 말하였다. "회계 태수라니, 그이가 할 수 있겠어요? 그 뜻 없는 여인 같으니! 저는, 그이가 아무리 부유해도 다시 거들떠보지 않을 것이고, 저이가 아무리 가난해도 다시 거들떠보지 않겠어요." 말을 마치고 그냥 자리를 박차고 나가 버렸다. 막보헌은 말이 먹혀들지 않자 끝판 대사를 남겼다. "불현명하고, 불현명하구나! 나는 다시 당신 집에 발을 들이지 않겠소." 하고 떠났다.

완고한 마음이 바위처럼 굳어

헛되이 말로 얽어매려 하였구나.

잠깐의 마음을 시원하게 했을지 모르나

후에 붓과 종이에 오욕을 남기는 줄 어찌 알랴.

막씨는 끝이 날 기미가 없자 또 가만히 있을 수 없어 죽네 사네 하며 목을 매달려 하였다. 소수재는 관사에 피해 있고, 이웃들이 그를 찾아와 말하였다. "소 상공, 아씨가 어찌 된 것인지 돌아버린 것 같은데 상공은 관사에 계시니, 만약 무슨 일이 생기면 저희가 연루될까 걱정됩니다. 이 일은 저희가 나서면 안 되고, 뭐라 하기도 어렵습니다. 지금은 마치 지은 밥을 뭉치려는 것 같아 마음대로 되지 않습니다. 이것은 그이가 불인(不仁)한 것이지 상공의 불의(不義)가 아닙니다. 혹 그이에게 복이 없어 편치 않은 것이니, 상공께 더 좋은 연분이 있을지 모릅니다." 소수재가 한참을 침음하다가 말하였다. "다만 그녀가 십 년을 고생하며 지켰으니 처음부터 이별할 일이 아닌데 어찌 차마 그러겠소." 사람들이 말하였다. "그것은 그녀가 상공을 먼저 버린 것이니 상공과는 무관합니다." 소수재는 할 수 없이 "그녀가 하는 대로 들어야지."라 하였고, 사람들도 막씨에게 전하여 그녀의 마음을 달랬다.

막씨는 막보헌을 찾아가 의논하였으나 막보헌은 관여하지 않았다. 또 한 먼 친척 고모를 찾았는데, 그녀는 늘 중매를 하던 사람이었다. 처음에는 몇 마디 "결발부부이거늘 이래서는 안 된다."고 달랬다. 가난한 처지를 견디지 못하겠다는 말이 나오자 그 고모도 막씨와 함께 울더니 말하였다. "제가 좋은 사람을 찾아드리겠습니다." 부(府) 앞에 주막을 운영하는 서른 살 미혼 남자가 있어 그를 중매해달라 부탁했던 터였다. 그녀가 주선하며 말하였다. "소수재 아씨가 얼굴이 반듯하고 글씨도 쓰고 셈도 할 줄 압니다. 소수재가 부양하지 못하여 시집보내는 것이고, 글 쓰는 집안 출신입니다." 조카에게 말하기를, "한 노총각이 연이어 부모가 죽어 복상 중이라 아직 처를 구하지 못하였습니다. 논밭도 있고 집도 있으며 머슴도 한 가구 있습니다. 문 앞에 주막도 하나 있어 살림이 됩니다. 가면 위로 어른도 없고 아래로 종도 있어 가느다란 손을 움직이지 않고 안주인이 됩니다."라 하였다. 또 그 남자를 데려와 보게 하였는데, 은 닷 푼으로 사 온 정자관(紗巾)에 은 일곱 전어치 하늘색 얼음 비단 해청(海靑)을 입고 생사 속옷에 붉은 신에 비단 버선을 신으니 꽤나 멀끔하였다. 막씨도 단정하게 차리고 두 쪽이 서로 두세 번씩 훑어보니 서로 탐이 났다. 예물 몇 냥을 보내었다. 고모가 또 주혼(主婚)도 하고 중매비도 받았다. 소수재에게 알리자 수재가 말하였다. "저는 달리 할 말이 없습니다. 십 년 동안 그녀가 쓴 것이 많으니, 그녀에게 돌려주십시오." 또 눈물을 몇 방울 흘렸다.

십 년 같은 침금(寢衾)의 고통,

깊은 정이 어찌 쉽게 식겠는가.

헤어지는 길에 몇 방울 눈물,

박정한 이에게 부쳐 보내노라.

이 막씨는 마침내 주막 사내에게 시집을 갔다. 논밭이나 집이 어디 있겠는가. 주막 하나뿐인데 그나마도 세 낸 것이었다. 머슴 한 가구라 해도 그 두 사람뿐이었다. 막씨는 속은 것을 분명히 알았지만 말할 수가 없었다. 다행히 어릴 때부터 부지런하고 눈치가 빠른지라, 혼자 주도권을 쥐고 주막에서 돈을 세고 술을 팔며 마침내 그 환경에 적응하게 되었다.

주막 앞에 섰으니 탁씨(卓氏)인가 의심할 만하고,

소가죽 앞치마는 사마상여(司馬相如)와 다름없구나.

이편에서 소수재는 귀가 조용해진 것이 기뻤다. 부인이 굳은 기개가 있어 낡은 책이나 그릇, 헌 옷 하나도 챙겨 가지 않았다. 다만 돌아갈 집이 없어진 것이 문제였다. 다시 막보헌이 그를 가엾이 여겨 자기 집에서 어린 아들 하나를 가르치게 해주었다. 일 년에 열 냥 남짓을 주어 우선 몸을 붙일 수 있었다. 그러나 다시는 감히 주막 앞을 지나다니지 않았다.

그런데 어떤 못된 동료들과 경박한 젊은이들이 삼삼오오 소수재의 전처를 보러 갔다. 혹은 소수재를 비웃으며 말하였다. "마누라 하나 다루지 못하고 시집가게 내버려 두다니, 물렁한 사내다." 또 말하기를, "살림도 그럭저럭 살 만한데 부인이 시집가려 한 것은, 부인이 칼이 좋아 왔는데 그 사람은 되지 않아 사별한 것이니, 이는 제대로 된 수재가 아니다."라 하였다. 부인을 비웃는 이도 있었다. "수재를 버리고 주막 사내를 찾았으니 상향(上向)하지 않는 부인이다." 또 말하기를 "한 남편을 버리고 또 한 남편을 껴안으니, 참으로 박정한 악한 부인이다."라 하였다. 성안 전체가 한바탕 웃음거리로 삼았다.

소수재는 한편으로 돈이 없었고, 한편으로 마땅한 사람을 얻지 못할까 염려하여 마침내 장가를 들지 않았다. 두 해를 보내며 과거 때가 되자, 그를 학문에 들여보낸 지현(知縣)이 부속(部屬)을 거쳐 지부(知府)로 옮겼다. 그가 가난하여 처에게 버림받았다는 말을 듣고 실로 가엾이 여겨 앞 열에 뽑아 주었다. 학원(學院)에서도 천거 받아 과거 자격을 얻었다.

갑 속의 곤오(昆吾) 보검,

풍진 세상에 수놓은 꽃이 있구나.

하루아침에 다시 닦고 拭으니,

빛이 두우(斗牛) 성좌를 비스듬히 비추는구나.

소수재는 막씨를 잃은 뒤 집 걱정이 없어져 오로지 독서에 전념할 수 있었다. 늘 생각하였다. "한 번도 합격하지 못한 데다 처에게까지 버림을 받았으니 어찌 힘쓰지 않겠는가!" 또한 하늘이 그를 가엾이 여기는 듯 마침내 이십일 등으로 합격하였다. 온 성이 떠들썩하여 막씨가 공연히 한 아씨를 다른 사람에게 내어 주었다며, 누구네 여인이 평안히 와서 누리게 되었는지 모르겠다고 하였다. 막씨는 주막 안에서 사람들의 전갈을 분명히 듣고 손가락질을 받았지만 그저 모른 체하였다.

소수재가 돌아오자 막보헌이 그를 위해 방을 구해 주었고, 두 집 사람이 의탁하러 왔다. 중매인이 끊임없이 찾아와 어느 향관(鄕宦) 소저가 재모가 뛰어나고 혼수도 넉넉하다, 어느 부자 집 딸이 외모가 반듯하여 기꺼이 삼백 냥을 보태어 성혼하겠다는 말을 하였다. 소수재는 가난하던 시절 아내의 고생스러운 모습이 자꾸 눈에 아른거려 저절로 울먹이며 말하였다. "잠시 여유롭게 있겠소."

월궁(月宮)에서 처음 계수나무 가지를 나누니,

항아(嫦娥)가 다투어 요지(瑤池) 곁에 다가오려 하네.

다만 비취 날개 가볍게 나뉘던 그날을 생각하면,

형세에 쫓기어 눈물이 몇 줄기 흘렀는지.

막보헌도 변변치 않은 집안이라 조카를 위해 돌려세우려 해도 돌려세울 이치가 없어 그냥 두었다.

그렇게 지내다가 십일월에 상경하여 이월에 회시(會試)를 보아 마침내 연달아 합격하여 전시(殿試)에서 이갑(二甲)을 하였다. 관정(觀政)을 마치고 이듬해 선임되어야 하였다. 팔월에 휴가를 얻어 남쪽으로 귀향하니, 현관(縣官)이 행차 하인과 수행원을 딸려 보내어 인사를 다니게 하였다. 서른 남짓의 나이에 사모(紗帽) 아래에도 여전히 소장 진사의 기개가 있었다.

처음 도착하여 부현(府縣)에 인사를 다니다가 부(府) 앞을 지나는데 문득 "청향 피주(淸香皮酒)"라 쓴 주막 간판이 보였다. 카운터 옆에 단정하고 늘씬한 부인이 앉아 있었는데 바로 막씨였다. 소 진사(蘇進士)가 보고 말하였다. "내 가서 한번 만나 보고 어찌 나를 대하나 보리라." 가마를 멈추게 하고, 우산을 받으며 공복(公服)을 입은 채 주막 안으로 들어갔다. 주막 주인은 저쪽에서 돈을 세다가 관리가 오는 것을 보고 물러났다. 막씨는 가마에서 내리는 것을 보고 이미 소 진사임을 알아챘으나 부끄럽지도 성내지도 않은 채 얼굴을 꾸몄다. 소 진사가 앞으로 다가서며 공손하게 읍(揖)을 올렸다. 막씨가 말하였다. "당신은 당신의 벼슬을 하고 저는 제 술을 팝니다." 몸도 움직이지 않았다. 소 진사는 한번 웃고 떠났다.

뒤엎인 물은 다시 담을 날 없고,

떠난 부인은 다시 돌아올 때 없다.

서로 만나 그저 한번 웃고,

잠시 멈추어 서 있었노라.

생각건대 막씨의 마음인들 어찌 움직이지 않았겠는가. 그러나 이미 이 절정절의(絕情絕義)한 일을 하였으니, 비록 기쁜 얼굴로 흔쾌히 맞이하여도 기뻐하며 다시 합치는 일은 기대할 수 없었다. 더욱이 슬픔을 품고 울며 옷자락을 잡아당기며 스스로 허물을 고백한다 해도 불쌍히 여겨 다시 받아들이는 일도 기대하기 어려웠다. 차라리 굳게 하여 두 갈래로 갈라서는 것이 도리어 깨끗하였다. 그 마음속에서는 당시의 경솔함을 후회하지 않음이 없었겠지만 어찌할 수 없는 것이었다.

마음속 비통함을 스스로 탄식하며,

당시의 실수를 몇 번이나 후회하였던가.

아름다운 낭원(閬苑)의 나무를

문 앞의 복숭아꽃으로 만들어 버렸구나.

막씨와의 정의가 이미 끊어진 지 오래이니, 소 진사로서는 내조(內助)를 오래 비워 둘 수 없었다. 같은 고향 거인 심(沈)씨에게 열여덟 살 여동생이 있었는데, 아버지도 진사 지부(知府)를 지낸 사람이었다. 중매로 성사가 되었다. 처음 후한 예물을 보낼 때 청색 우산과 검은 하인들, 관리인이 함을 이끌고 교묘하게도 부(府) 앞을 지나가니 그 누가 소 진사가 함을 보낸다는 것을 모르겠는가. 혼례를 치를 때는 홍색 원령(圓領)에 은 허리띠, 사모(紗帽)와 검은 가죽신을 신고 안(雁) 亭을 따르며, 네댓 무리의 고수잡이와 수행원이 옹위하여 말 위에 의기양양하게 지나갔다. 막씨가 보고 한동안 멍하였다. 또 사람들이 말하는 소리를 들으니 "복 받은 여인이로다! 이미 만들어진 아씨가 있구나." 마음속이 벌레가 파고드는 듯 사슴이 뛰는 듯하였다. 울 수도 없고 웃을 수도 없었다. 쓸쓸히 생각하였다. 외로운 등불 아래서 함께 독서하고, 거친 밥과 된장으로 끼니를 이으며, 문회(文會) 때는 음식을 마련하고 시험날에는 차와 더운 물을 준비하던 것이 얼마나 힘들었는가! 지금 이 금빛 이불 비단 장막, 진기한 음식, 계집종 부르고 사내종 호령하는 것을 평지에서 남에게 내어 준 것이로구나! 딱 구 년을 합격하지 못하다가 삼 년 안에 합격하였다. 구 년의 고생을 보내고 삼 년을 더 견디지 못하였구나! 이 기분 나쁜 일들을 누구에게 고하겠는가. 그래서 생계는 여전히 이어가도 다만

시름이 마음을 얽매어

사람 앞에서 억지로 버티었다.

사람 없는 곳에서 속삭이는 곳에서도

저절로 두 눈썹이 찌푸려졌다.

그래서 장사할 때 마음이 없고 혼들려 다소 고집스러워졌다. 한 젊은이가 나와 경박하고 입이 날카로운 자였다. "이 아낙네, 주막에 서서 아직도 아씨 행세를 하려는 기색이구나. 내 한번 놀려 줘야지." 하고는 석 근어치 술을 사러 왔다. 먼저 두 근 반 값만 꺼냈다. 막씨가 카운터 옆에 있을 때 일부러 걸어가 돈을 올려놓으며 "석 근 주시오."라 하였다. 막씨가 받아 세어보고 카운터에 내려놓으며 "모자랍니다, 팔 수 없습니다."라 하고 돌아서려 하였다. 그 젊은이가 싱글벙글 품 안에서 또 동전 몇 닢을 꺼내어 보태며 말하였다. "아주머니, 왜 이리 성급하세요! 성급한 탓에 부인 아씨 자리를 내놨으면서 여전히 성급하세요?" 막씨는 이 잘못된 일 하나로 얼마나 많은 비웃음과 욕을 받았는지 몰랐으나 면전에서 직접 비꼬는 이는 없었다. 젊은이의 몇 마디 말을 듣고 얼굴이 붉어졌다. 싸우려 해도 싸울 수 없어 그냥 석 근을 주었다. 젊은이는 여전히 웃으며 떠났다. 방으로 돌아와 탄식을 그치지 못하였다. 한 번의 실수를 후회하고 웃음거리를 만들게 된 것을 분하게 생각하였다.

밤이 깊고 술집이 조용해지자 주막 주인은 하루 종일 수고하여 드렁드렁 잠들었다. 막씨는 그런데 일어났다. 대들보에 목을 매어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이로운 말은 날카로운 창검이요,

가느다란 몸은 그림 대들보에 의탁하였구나.

마땅히 남은 부끄러움이 있으리니,

구름 속 기러기가 줄을 이루어 가네.

주막 주인이 오경(五更)에 깨어 옆을 더듬어 보니 사람이 없었다. 연이어 몇 번을 불러도 대답이 없었다. 일어나 찾다가 시신과 마주쳤다. 더듬어 보니 이미 높이 매달려 있었다. 급히 불을 켜고 황급히 내려 보니 숨이 끊어진 지 이미 오래였다. 왜 그랬는지 알 수 없어 점원을 심문하니, 아마 젊은이가 놀린 것 때문인 것 같다고 하였다. 그러나 그와 주먹다짐을 한 것도 아니고 위협을 가한 것도 아니어서 진짜로 물을 수가 없었다. 어쩔 수 없이 재수 없다고 여기고, 막씨는 목숨 하나를 내던졌으며 주막 주인은 다시 몇 푼의 돈을 들여 시신을 거두어 염하였다.

웃음을 살, 한 번 급제를 너무 중하게 여기다가

목숨 하나를 가볍게 버리는 꼴을 만들었구나.

소 진사가 듣고 은 이십 냥을 내어 막보헌을 시켜 좋은 곳에 묻어 주게 하였다. "한 번의 생각 착오로 이렇게 일찍 죽었구나. 십 년을 함께 지낸 정을 없앨 수는 없다!"라고 하였다. 장랑은 소작료를 강제로 걷다가 거짓 인명 사고를 일으켜, 원래 얻었던 막씨 집 논밭을 처리해 달라며 청탁해 왔다. 한 현승은 인장 대리를 꾀하다가 청탁 쪽지를 내어 원래 얻었던 막씨 집의 집도 보내어 왔다. 소 진사는 막 노인이 당초 사위를 고른 마음을 헤아려 막보헌의 작은아들을 양자로 삼아 집과 논밭을 모두 그에게 주어 혈식(血食)을 보존하게 하고, 아울러 양자에게 학교에 들어갈 것을 일러 막보헌의 평소 은정에 보답하였다. 그는 뒤에 벼슬이 방백(方伯)에 이르렀고, 두 아들을 두어 부부가 해로하였다.

글 읽는 사람은 머리가 굳어지면서 글을 읽어 부추장아찌와 등잔 기름으로 고생하건만, 어찌 한 번 이름이 오르기를, 어버이를 빛내고 자신의 몸을 드러내어 처자에게 관직의 영예를 내리기를 바라지 않겠는가. 그러나 독서는 내가 할 일이요, 부귀는 하늘의 명이니 빠르고 늦음과 성공과 실패는 모두 자신이 어찌할 수 없다. 그에게 시집가 처자가 되었다면, 현명한 이는 혹 혼수를 팔아 명류(名流)를 사귀게 하여 학업을 넓혀 주거나, 혹 대신 경영하여 마음을 오로지 공부에 쏟게 한다. 시험에 결과가 좋지 않아도 오히려 위로하고 격려하여 성공을 기다려야 하는데, 어찌 평소에 소란을 피우며 그로 하여금 책을 내던지고 생계에 나서게 하겠는가. 한 번 시험에 조금 불리하면 그 자신도 이미 부끄럽고 황공한데 거기다 또 닦달을 더하겠는가. 남편을 버리는 데 이르러서는 더욱 기이한 일로, 주매신 처의 뒤를 이을 한 사람이 되었다. 살아서도 비웃음을 남기고 죽어서도 악명을 끼쳤으니, 감히 이를 글 읽는 사람의 처자에게 고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