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성석 (醉醒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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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5회 왕금의(王錦衣)의 분란은 원림에서 비롯되고, 사 부인(謝夫人)의 지혜가 권귀(權貴)를 굴복시키다

자줏빛 이끼와 창록빛 이끼가 오나라 궁전을 가리고,

삼월의 진나라 불길 속에 아각(阿閣)은 텅 비었네.

식초 속 날벌레처럼 분주히 제 일에 허덕이고,

씀바귀 베어 까치 집 짓느라 고달프기만 하네.

붉은 문은 몇 번이나 닫힌 채 기울어가는 달을 보았으며,

수놓은 휘장은 이따금 저녁 바람에 스치는 소리에 놀라네.

반 장도 되지 않는 몸을 누이는 것으로 충분한 것을,

저 어리석은 사나이가 날마다 근심하는 것을 비웃노라.

사람들은 늘 부귀한 자를 비웃기를, 부귀한 자는 그림 속의 산림 정자는 좋아하면서 진짜 산수와 정자는 좋아하지 않는다고 한다. 이는 부귀한 자가 하루 종일 주판알을 굴리고 홀(笏)을 쥐고 있느라 원유(園囿)에 갈 틈이 없다는 말이다. 사실 원유도 하나의 허상이다. 구불구불한 난간에 작은 화단을 만들어 대나무를 심고 꽃을 재배하면 충분히 소일할 수 있다. 그런데 결국 스스로 즐길 수 있는 것은 얼마나 되고, 유람할 수 있는 날은 얼마나 되는가? 한 사람의 정신을 쏟아 남들의 즐거움을 위해 제공하는 꼴이다. 심지어 원유가 없는 이가 남의 원유가 좋다는 소문을 듣고 온갖 계책으로 빼앗아 오기도 하고, 원유가 좁으면 넓혀서라도, 남의 것이 좋다 하면 온갖 방법으로 빼앗으려 한다. 남의 배치가 좋다고 하면 그대로 따라야 하고, 남의 집 화초가 좋다 하면 그것도 구해야 한다. 천 가지 방법을 궁리하느라 한 순간도 편하지 않다. 얼마 동안 바빠서야 남에게 잠깐 칭찬 몇 마디를 듣는 것뿐이다. 더구나 아무리 큰 원유라도 날마다 그 안에 있으면 눈에 익어 신기하지 않아진다. 차라리 발을 넓혀 어디서나 내 원림으로 삼고, 눈을 넓혀 어디서나 내 정자로 삼음이 낫다. 그러면 또 경치는 날로 새롭고 경계는 날로 변하는 것이다. 지금 좋은 원림을 가진 자들로는 권귀(權貴)의 집만 한 것이 없다. 그런데 권귀란 것은 가장 쉽게 사그라지는 것이다. 오직 권귀에게는 삼오십 년을 가는 일이 없기 때문이다. 원유가 좋으면 사람들의 눈을 가장 쉽게 끌어들인다. 서로 다투고 빼앗으니 어느 누가 오래 지킬 수 있겠는가? 이것이 빼앗고 차지하려는 마음을 식혀줄 수 있는 것이다. 세상 사람들은 어찌 알겠는가, 한때의 세력이 있으면 한때의 세력을 쓰는 것이지만, 세력에도 다하는 때가 있다는 것을. 세력이 황제에 이르면 극에 달하는 것이니, 누각은 '아방궁(阿房)'이나 '미루(迷樓)'가 되어 천하의 기교를 다하고, 산림은 '간악(艮岳)'이 되어 천하의 기화이목(奇花異木)을 모은다. 나라가 멀리 옮겨가면 서까래 하나, 나무 하나, 돌 하나를 어디서 찾겠는가? 다음으로 재상 이덕유(李德裕)의 '평천원(平泉園)'은, 자손이 내 돌 하나 나무 하나를 잃으면 자손이 아니라고 하였다. 지금은 어디 있는가?

난정(蘭亭)은 이미 사라지고,

재택(梓澤)은 황폐한 언덕이 되었네.

오늘과 어제를 굽어보며,

누가 오래 지킬 수 있겠는가?

지난 왕조 가정(嘉靖) 연간에 왕금의(王錦衣)라는 이가 있었다. 그가 좋아하여 가꾼 것은 화원이었는데, 나중에 이것이 다른 이의 마음을 끌어 빼앗으려는 이가 생겨났다. 그 첩(妾)의 한마디가 없었다면 원림은 물론 집안의 제사까지 모두 끊어질 뻔하였다. 이것이 또한 원정(園亭)이 화를 초래한 것이다.

산수에서 흥취를 부쳤으니,

잠시나마 몸과 마음을 즐겁게 하였네.

어찌 알았으랴, 계단 위에서 기웃거리며,

화환과 재앙이 서로 밀려들 줄을.

이 왕금의는 대흥(大興) 사람으로 무진사(武進士)에 의해 금의위(錦衣衛)에 임명되어 지휘사(指揮使)까지 역임하였다. 금의위는 비록 무직(武職)에서 요직인 관아이지만, 그는 본래 성품이 청아하고 우아하여 사대부들과 어울리기를 좋아하였다. 순성문(順城門) 서쪽 성 가까이에 원유 하나를 가꾸었다. 그 안의 객청(客廳)·다청(茶廳)·서청(書廳)은 모두 강남의 제도를 따라 매우 정갈하고 우아하였다. 돌아가는 회랑에 굽은 난간, 작은 정자에 밝은 창문이 있었다. 바깥에는 그윽한 오솔길이 구불구불 화목과 대나무와 바위를 감고 돌았다. 그는 시를 지을 줄 알았다. 진신(縉紳) 중의 명공(名公)들을 초청하고, 또 몇몇 산인(山人)과 사객(詞客)들을 모아 그 안에서 시사(詩社)를 결성하여 때때로 시를 지었다.

마음 깊이 말 위의 생활을 경시하고,

뜻을 억눌러 맑은 선비들을 맞아들였네.

푸른 술로 밝은 달을 초청하고,

새 시로 맑은 가을을 읊조렸네.

왕금의에게는 북방의 거친 기운도 없었고 무부(武夫)의 기운도 없었으므로, 시사에서 감히 그를 가볍게 보는 이가 없었다. 황성 서남쪽 모퉁이는 모두 문관들의 거처로, 그가 손님을 좋아하여 사대부들과 사귀는 이가 많았다. 원유가 그윽하고 우아하여 구경할 만하였으므로, 공식 모임이 있을 때마다 첩지(帖紙)를 보내어 빌리곤 하여, 왕금의의 원이라는 이름이 났다. 부인이 세상을 떠나고 서울에서 얻은 두 명의 첩이 있었는데 별로 사이가 좋지 않았다. 사람을 시켜 양주(揚州)에서 소 나이어(謝氏) 성의 소실 한 명을 맞이하였는데, 용모가 아름답고 성격이 영리하였으며 시도 몇 구 지을 줄 알았다.

광릉(廣陵)의 꽃 가지에서 옮겨온 명화이니,

날렵하고 아담한 자태 힘없이 하늘거리네.

한 곡조 「후정화(後庭花)」 소리 더욱 아름다워,

고운 꾀꼬리 처음 우는 상림원(上林苑)에 올랐네.

서울에 오자 왕금의가 매우 마음에 들어하였고, 한때 사대부들이 시를 지어 축하하였다. 후에 일 년이 지나 아들 하나를 낳았다. 왕금의에게 아들이 없었는데 이 아들을 얻으니 금보(金寶)를 얻은 것 같았다. 또 사 소실이 견식과 재간이 있음을 보고 집안일을 그에게 맡겼다. 먼저 들어온 두 첩은 먼저 들어온 데다 서울 사람이기도 하여 몹시 기가 꺾였다. 그런데 사 소실은 그들을 잘 다스려 지나치게 질투하지 않았다. 또한 사대부들과의 교제에서 예의와 술자리 사이에 처리함이 조리 있었으니, 참으로 훌륭한 내조(內助)였다.

사귐을 헤아리는 것이 산도(山濤)를 알아보는 것이고,

침상 머리에 묵은 술이 나왔네.

때때로 머리카락을 잘라 아낌없이 보태어,

주인을 호탕하게 할 수 있었네.

왕금의는 무과 방목으로 출발하여 백호(百戶)를 얻어 거리를 관리하며 그럭저럭 날을 보냈다. 나중에 파견되어 대신 한 명을 압송하는 일로 천 금을 얻었다. 다시 이형천호(理刑千戶)가 되어서도 잘 되었다. 북진무사(北鎮撫司)를 맡게 되자 고양이가 날 생선을 안 먹겠는가, 돈이 들어와도 손이 떨리지 않았다. 다만 받을 수 있는 것은 받고 받을 수 없는 것은 받지 않으며, 법을 집행해야 할 때는 집행하고 인정을 쓸 수 있을 때는 인정을 썼다. 억지로 돈을 뜯지 않았지만 그래도 집안이 커졌다. 무종(武宗)이 남쪽으로 순행할 때 당인(堂印)을 대리하였다. 영왕(寧王)이 모반할 때 교통한 도독(都督) 주녕(朱寧)을 체포하였고, 후에 무종이 세상을 떠날 때 도독 강빈(江彬)을 체포하였으며, 세종(世宗) 초정(初政) 때는 사례감 태감 소경(蕭敬) 일당과 지휘 요붕(廖鵬) 일당을 체포하였다. 이전에 심문할 때 관대하게 해달라는 청탁이 한 번 있었고, 이후 이 몇 집을 적몰할 때는 모두 가산이 백만에 달하여 관리의 몫과 아전의 몫이 또 한 번 있었다. 가산이 커지지 않을 수 없었다. 그래서 주녕이 적몰될 때 돈을 주고 공식적으로 주녕의 해대문(海岱門) 밖 큰 화원을 사들였다. 요붕이 적몰될 때는 가격을 치르고 공식적으로 요붕의 평자문(平子門) 밖 큰 화원을 샀다. 요붕의 이 원유는 이미 넓고 훤하여:

명화가 길을 이끌고,

고목이 숲을 열었네.

구불구불 돌아가는 긴 회랑,

구불구불 백 자의 무지개처럼 뻗어있네.

높다란 누각이 웅장하고,

몇 겹 구름 안개 속에 가려져 있네.

문에는 자청빛 창록빛이 들어오고,

처마는 아득한 절벽에 기댔네.

물 위에 금벽(金碧)이 떠 움직이고,

당에는 맑은 흐름이 비치네.

낮은 난간 밖엔 이상한 소리 한 곡,

쏴아 듬성한 대나무는 바람에 부드럽게 춤추고.

한가로운 정자 안엔 맑은 그림자 몇 가지,

빼어난 높은 소나무는 달이 와도 움직이는 듯하네.

진귀하고 화려함이 부귀의 상을 쌓았고,

그윽하고 깊음에 은일(隱逸)의 풍취가 있네.

저 주녕의 원유는 더욱 비할 데가 없었다.

동남의 재목을 다 바치고,

서북의 힘을 다 기울였네.

물은 옥하(玉河)에서 빌려 흐르니,

한 줄기 맑은 물살이 옥을 쓴 듯하고.

당은 금궐(金闕) 가까이 열렸는데,

열 길의 큰 들보에 금칠을 하였네.

고송(古松)을 심어 길을 내니,

천목송(天目松)·괄자송(括子松)이 달처럼 흘러 환패(環珮) 모양이고 바람이 피리 소리를 보내네.

기이한 돌을 모아 산을 이루니,

태호석(太湖石)·영벽석(靈璧石)이 서면 용과 이무기 같고 앉으면 사자와 호랑이처럼 의심스럽네.

음침한 동굴과 골짜기에는 구름 연기가 머물러,

굽이진 오솔길 돌층계를 다할 길이 없고.

아득한 누각과 대(臺)는 해와 달에 연이어,

깊은 집과 은밀한 거처를 다 다닐 수가 없네.

참으로 기이한 꽃과 신선의 풀은 이름을 다 댈 수 없고,

지저귀는 새와 노니는 물고기는 모두 즐겁기만 하네.

왕금의가 그 안에서 성실하게 단장을 하였다. 청객(淸客)들을 불러 함께 지내며 거기서 착실하게 배치하고 꾸몄다. 이 명공(名公)과 거경(巨卿)들을 청하여 현판을 쓰고 시를 지어달라 하였다. 비록 석숭(石崇)의 '금곡(金谷)'이나 왕유(王維)의 '망천(輞川)'에는 비할 수 없지만, 북경에서는 하나 둘이라 손꼽히게 되었다. 봄이 되어 모란이 필 때, 여름이 되어 연꽃이 피는 때, 그 밖의 절기마다 자신은 큰 가마를 타고, 다른 이들은 화려한 수레와 준마를 타며, 사 소실과 여러 첩들을 데리고 원유로 가서 감상하였다. 왕금의가 사 소실을 이끌고 원유 안을 걸으며 말하기를, "이 곳은 나의 이런 꾸밈 덕분이오. 이 현판은 아무개가 새로 준 것이고, 이 길은 새로 낸 것이며, 이 집은 새로 지은 것이고, 이 나무는 새로 심은 것이오." 사 소실은 애매하게 좋다 하면서도 심히 달갑지 않은 기색이었다. 왕금의가 느끼고 말하기를, "무슨 마음 쓸 일이 있소?" 하자, 사 소실이 말하기를, "별일은 없어요. 다만 생각해 보니 이 두 사람은 무신(武臣)으로도 귀현하여 황제의 총애를 받았는데, 오직 교만하고 사치하며 권세를 부리고 돈을 위해 법을 어기다 오늘 적몰되어 우리 집으로 돌아왔으니, 이 얼마나 관직이 높으면 위험한 것인가요? 더구나 이곳은 황성 가까이에 있어 귀척(貴戚)이나 총신이 얼마나 많은데요. 우리 집에 세 개의 원유가 있고 다 잘 단장되어 이름이 났으니, 누군가 시기하거나 탐낼까 두렵습니다. 아이는 아직 어리고, 혹여 불시에 무슨 일이 일어날까 하여 마음이 편치 않습니다." 하였다.

조물주는 가득 차면 꺼리고,

사람의 마음은 탐욕이 많은 법이네.

뜻하지 않게 집안 어른이,

이토록 오래도록 깊이 생각하였구나.

왕금의가 말하기를, "그 두 사람은 역당(逆黨)에 속했기 때문에 이런 화를 당한 것이오. 나는 오직 공도를 받들고 법을 지킬 뿐이오. 아마 이런 화는 없을 것이오. 아이가 어려 이 재산이 사람들의 눈을 끌어 탐낼 것이 걱정된다 하지만, 옛말에 '천 년의 밭에도 팔백 명의 주인이 있다'고 하니, 영원히 지키는 이치가 없소. 또 '자손에게는 자손의 복이 있다'고도 하니 너무 걱정할 것 없소." 하고는 여러 첩들과 술을 마시고 집으로 돌아오니, 사 소실도 다만 그 걱정을 내려놓았다. 어느 날 위(衛)에 새로 육지휘(陸指揮)가 왔다. 강남 호적이며 일찍이 전부(典府)의 임지에서 황상이 즉위할 때 측근에서 따른 신하로 이런저런 승직을 거쳐 이에 이르러 대청에 올랐다. 왕금의는 원래 남과 잘 어울리는 사람이었고, 이 육금의도 잘 받들어 모시는 사람이라 서로 매우 두터이 사귀었으며, 그를 세 원유에 데리고 가서 노닐었다. 육금의는 꾸미는 것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며 매우 적절하였으므로 왕래가 가장 많아 통가(通家)가 되었다. 어느 날 육금의의 댁에서 술을 마시다 자식을 물으니, 육금의가 말하기를, "아들 하나로 이미 열여섯 살이오." 왕금의가 불러와 만나보니, 정말 일표인재였다.

옥처럼 빛나는 기골이 늠름하고,

백분(白粉) 바른 것 같은 맑고 고운 풍채.

눈은 가을 물처럼 맑게 흐르고,

눈썹은 저녁 산처럼 길게 이어지네.

제비턱은 큰 그릇임을 알게 하고,

호랑이 머리는 이상(異祥)이 트임을 열어주네.

젊은 나이를 가볍게 보지 말라,

하늘 길에서 날아오를 것이니.

왕금의가 한번 보고 말하기를, "인옹(寅翁)의 영손(令孫)이 참으로 뛰어납니다! 훗날의 공명이 인옹보다 훨씬 위에 있을 것이오. 학생은 멀리 미치지 못하겠소이다." 육금의가 말하기를, "연옹(年翁) 대인 같이 됩니다면 저희 가문의 행복이겠습니다." 다만 왕금의가 보기에 거동이 아직 속기(俗氣)에 가까웠고 말해보니 거칠고 졸박하였다. 왕금의가 말하기를, "영랑(令郞)의 전도는 말할 것도 없이 원대한 것이겠소. 그러나 학문을 잃지 않아야 하겠소." 육금의가 말하기를, "제 자식이 훗날은 다만 무관 하나면 될 것이니, 글자나 알면 족하지요." 왕금의가 말하기를, "인옹은 그렇게 말씀하실 것이 아니오. 우리 위(衛)는 다른 위와 달리 형사(刑事)를 담당하는 관아입니다. 창(廠)에서 올린 탄핵이든 외부에서 넘어온 것이든 안에서 내려온 것이든, 성지 하나를 받아 심문을 시작하면 비록 판결은 내리지 않더라도 초기 진술이 있게 됩니다. 이쪽 탄핵이 무거우면 법사(法司)도 어쩔 수가 없고, 또 정상과 법이 본래 가벼운데 성상이 무겁게 하려는 것도 있으니, 무겁게 하면 성지를 거스르는 것이고 무겁게 하면 공도를 해치는 것이라, 이 탄핵에서는 실로 완곡하게 억양을 맞추어 훗날 벗어날 길을 열어두어야 하오. 또 원래 탄핵이 무거운데 이치상 가벼워야 할 경우는 반드시 논리적으로 반박해야 사람들을 승복시킬 수 있소. 심문할 때는, 안쪽에서 혹 말로 공갈하여 진실을 얻거나, 혹 말로 유도하여 진실을 얻기도 하오. 사람이 쓰지 못하는 말은 이 장지(狀詞)와 조사 내용만으로는 얻을 수 없고, 사람이 만들어낸 말은 그 교묘한 변명에만 의존해서는 안 되는 것이오. 고정된 마음을 갖되 더욱 이치를 밝혀야 하오. 그래야 죄인에게 속지 않고 이속(吏屬)에게 기만당하지 않소. 영랑이 괜찮으시다면 내게 심문 판결 내용과 탄핵 본고(本稿) 몇 가지가 있으니 영랑에게 보내드리겠소. 통가로서 자주 저희 집에 오셔서 인제(寅弟)와 함께 이야기를 나눠드리겠소. 이 청년의 한가한 시절에 마음을 쓰기에 딱 좋은 때이니, 목이 마를 때 우물을 파면 이미 늦은 법이오."

학문은 반드시 때를 맞추어 해야 하고,

이치가 밝으면 결단이 서는 것이네.

천하 사람들이 억울하지 않다 칭할 때,

옛날의 밝고 지혜로운 자들에게 부끄럽지 않으리.

이후 육금의는 예물을 갖추어 아들에게 통가조카라 부르며 인사하러 가게 하여 가르침을 청하였다. 왕금의는 이 심문서와 판결소를 그에게 설명해 주었다. 육금의의 아들은 한가할 때 가르침을 청하러 갔고, 왕금의도 한가할 때 그를 불러 이야기를 나누었다. 사 소실은 손님을 대접하는 것이 매우 풍성하였다. 왕금의도 말하기를, "이 사람이 훗날 크게 귀하게 될 것이니 소홀히 대접하면 안 되오" 하였다. 사 소실은 더욱 정중히 대하였다. 이 소육금의는 그 집에서 얼마나 많이 먹고 마셨는지, 세 원유에도 자주 놀러 갔으니 따지고 보면 은혜가 매우 컸다.

밥을 먹여주는 은혜는 오히려 가볍다 하겠지만,

이끌고 깨우쳐 준 뜻은 특별히 따뜻하였네.

어찌 부친의 벗이라 하겠는가,

스승의 은혜보다 못하지 않을 것이네.

사 소실이 늘 말하기를, "요즘 젊은이들은 스스로 잘난 척하는 이가 많소. 당신이 이렇게 마음을 다하여 가르쳐주어도 대수롭게 여기지 않고 고마워하지 않을 것이오. 지금 아들이 이미 여덟아홉 살이 되었으니 한번 가르쳐보시지요." 왕금의가 말하기를, "그 아이는 어려 말해도 모를 것이오. 그냥 '사서(四書)' 두 구절이나 읽혀서 크면 관직을 이으면 되지요. 외동아들이니 너무 힘들게 하지 말아요." 이후 왕금의는 대례(大禮)를 간언하는 관리들을 심문하는 일을 모두 관대하게 처리하고, 또 산서(山西) 순안(巡按) 마록(馬錄)이 요인(妖人) 장인(張寅) 사건을 체포한 일을 심문할 때 사실대로 처리하여 성상의 뜻을 얻지 못하고 내각의 뜻도 얻지 못하자, 그도 급히 병을 핑계로 사직을 청원하였다. 이 세 원유에서 삼사 년을 한가히 유람하고 즐기다가 세상을 떠났다.

큰 나무는 타고 있으면서도 여전히 서 있거늘,

장군은 지금 어찌 되었는가.

오직 행락처(行樂處)만 남아,

봄 풀이 초록빛으로 넘실대고 있구나.

평소 문관들과 사귀는 것이 많았으므로 만시(輓詩) 두 수도 얻었다. 아들이 없는 젊은 첩 두 명은 서울 사람이라 모두 방아(房奩)를 챙겨 제각기 돌아갔다. 집안 주인이 어리고 재간 있는 집사들도 모두 날아가듯 떠났으며, 다만 몇 명의 늙은 종과 사동(使童)만 따랐다. 사 소실은 늘 탄식하며 말하기를, "오직 당신이 남을 돌봐줄 줄 알았건만, 당신을 돌봐줄 사람은 이제 없어졌군요." 하며 모자 둘이 그럭저럭 지냈다. 그 육금의는 황상이 호광(湖廣) 승천부(承天府)에 헌황제(獻皇帝) 능에 배알하러 가실 때 扈駕해야 하여 아들을 데리고 함께 갔다. 하남(河南)에 이르러 행궁(行宮)에서 두 번 불이 났다. 두 번째 불이 매우 크게 일어나 가까이 모시던 내관과 궁녀도 얼마나 타 죽었는지 모를 정도였다. 扈駕한 대신들은 연기와 불꽃 속에서 황상이 어디 계신지 알 수 없었다. 그런데 육지휘의 아들이 때가 되었는지, 목숨을 걸고 안으로 달려 들어가 호위하였다. 불빛 속에서 황상을 찾았는데, 승천(承天)에 있을 때 한 번 뵌 적이 있어 알아보고 곧바로 앞으로 나아가 업고 연기와 불을 무릅쓰고 나왔다. 이것이 비록 진명지주(眞命之主)는 수많은 신령이 도와주는 것이기도 하지만, 그가 목숨을 걸고 황상을 구한 공은 무엇에도 비할 수 없었다.

등에 하늘을 짊어지기가 붕(鵬)의 등과 같고,

해를 향해 달려나가기가 우연(虞淵)을 향하는 것 같네.

뜨거운 불도 두려워하지 않았으니,

공을 간편(簡編)에 새길 만하네.

황상은 길에서 즉시 관직을 내리고 크게 상을 주었다. 서울로 돌아와 연달아 승진하여 불과 사오 년 만에 도지휘(都指揮)로 청(廳)을 장악하게 되었다. 그가 공사를 판결하는 것이 노련한 아전 같아, 사람들이 모두 그를 소년 노성(老成)이라 칭찬하며 배운 것이 있는 줄 알지 못하였다. 저 육지휘도 자신이 영리하여 심문을 잘 하였고 판결서도 그럴 듯하여 황상에게 잘 허가받는다고 자부하였다. 일찍이 왕금의가 한바탕 입을 쓴 것을 까맣게 잊었다.

새끼 새는 이미 날개를 편 뒤,

알과 날개로 돌봐준 것을 더 이상 돌아보지 않네.

무릇 사람은 가난하고 미천할 때는 제 한 몸도 보전하지 못하다가, 부귀해지면 여유가 생긴다. 육지휘는 원래 승천부에 있다가 서울로 와서 일찍이 부동산이 없었는데, 이제 전산(田産)을 마련하고 놀 만한 곳도 갖고 싶었다. 그러자 말 많은 자들이 말하기를, "원유는 왕금의의 것이 좋습니다. 왕금의가 죽었는데 그 아들이 쓸모가 없어 기생집 드나들고 노름이나 좋아하니 지키기 어려울 것입니다. 그를 찾아가 사들이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하였다. 육지휘가 말하기를, "해대문 밖 것이오? 좋은 원유지요! 나도 일찍이 그 안에 있으면서 부러워하였는데, 팔려고 할지 모르겠소. 아마 이삼천 냥은 들겠지요." 한 늙은 교위(校尉) 허도지(許都知)가 무릎을 꿇고 말하기를, "나리, 저에게 천이백 냥만 주시면 제가 가서 가져오겠습니다." 육지휘가 말하기를, "너무 적지 않겠소?" 허 교위가 말하기를, "적지 않습니다. 나리, 다만 재산을 얻으면 되는 것입니다." 육지휘가 웃으며 말하기를, "먼저 가서 이야기해 보시오. 내가 은자를 줄 것이오."

예전에 쉬며 노닐던 곳,

오래도록 꿈속에 그리워하였네.

세 치 혀를 빌려서,

그 열다섯 성(城)을 얻으려 하는구나.

이 때 왕금의가 죽은 지 칠팔 년이 되었고, 왕 공자는 이미 스무 살에 가까웠다. 일찍이 사 소실이 엄격하게 독촉하여 글을 읽고 바르게 살게 하였으나, 왕금의가 너무 응석을 받아주어 망쳐놓았다. 아버지가 죽고 어머니가 엄하게 하였지만 집 안에서만 엄할 뿐이었다. 열다섯 여섯 살이 되자 어울리지 못할 자들이 그를 꾀어 화류계를 드나들고 사고를 치게 하였다. 장가를 들었더니 또 처남이 하나 생겼는데 이 역시 패기 있는 공자라 밖에서 사고를 쳤다. 사 소실도 그를 말릴 수 없었다. 이 날 허 교위가 와서 이야기를 꺼내자, 왕 공자가 표범처럼 뛰어오르며 말하기를, "당신 집은 금의(錦衣)고 우리 집도 금의인데, 어째서 우리를 얕보고 우리 원유를 사려 하는 것이오? 팔지 않겠소, 팔지 않겠소. 당신 같은 놈이, 우리 어른을 모신 적도 있으면서 감히 이렇게 경박하게 구는 것이오!" 하며 때리려고만 하였다. 사 소실이 듣고 와서 물어보니 허 교위는 이미 내쫓긴 뒤였다. 그때 사 소실도 좀 분하였지만, 말하기를, "육지휘는 일찍이 우리 집 어른의 은혜를 받았는데, 내가 팔겠다는 말도 하지 않았는데 가볍게 와서 말한 것도 참으로 얕보는 것이오. 다만 정중하게 돌려보내면 될 것이지, 교위를 때려서야 되겠소."

평천(平泉)에서 함께 취했던 손님이여,

잔의 정이 아직 식지 않았건만.

미친 계략으로 빼앗으려 하니,

쉽사리 은혜의 물결을 저버렸구나.

이번에 돌아가자 좋지 않게 되었다. 허 교위와 육지휘가 함께 계략을 세웠다.

어느 날 왕 공자가 한량들과 함께 나가다가, 나오는데 마침 어떤 경화자(京花子)가 와서 말하기를, 주녕의 조카인데 충군(充軍)에서 사면받아 돌아왔다 하였다. 그가 말하기를, "우리 집 화원 하나가 땅까지 합치면 칠팔천이나 될 텐데, 당신 집이 임금을 속이고 나라를 해쳤다 하여 천이백 냥에 공식 구매하였소. 또 우리 집 지하 창고에 있는 은자 십여만 냥은 모두 몰수해야 할 흠장(欽贓)인데 죄다 파냈소. 이제 우리 은자를 돌려주고 우리 재산을 돌려주시오. 안 돌려준다면 고발하여 관으로 귀속시키겠소." 하며 귀신같이 소리를 질러댔다. 왕 공자가 화가 나 때리려 하고 관에 보내려 하자, 한량들이 말하기를, "그리 하면 안 되오. 그가 헛소리를 해도, 그가 있다 하고 공자는 없다 하면 대질을 해야 하오. 우선 참으시오." 이 왕 공자는 납창(蠟槍) 머리처럼 물러져 버려 어쩔 줄 몰랐다. 여러 사람이 조정하여 말하기를, "공자의 원유가 있으니 이 땅을 이 화자에게 주어 구설수를 없애는 것이 어떻겠소." 사 소실이 말하기를, "관부에 납부된 원가를 받아야 하오." 여러 사람이 말하기를, "이 가난한 화자가 어디서 돈이 있겠소. 이틀 소란을 피우다 보면 창(廠)이나 관아에서 알게 되면 그것이 우스운 일이 되오." 공자가 여러 사람에게 몰려 결국 퇴약(退契)을 써주었다.

세력이 강하면 재산이 날로 늘어나고,

때가 가면 다시는 지키지 못하는 법이네.

이 사람은 계약서를 얻어 허 교위에게 가서 천이백 냥을 받아냈다. 왕 공자의 이 한량들은 원래 그 패거리 속에서 함께 먹어온 자들이었다. 당일 왕금의가 수년에 걸쳐 경영한 이 땅은 이미 육지휘의 것이 되었다. 세상은 바뀌고 시절도 바뀌어, 공이 없는 쪽이 고달픈 법이네. 예부터 유람하는 자는 처음 만든 이가 아닌 것이니.

사 소실이 말하기를, "이 일은 분명 육지휘가 한 것이오. 그도 당신과 같은 지휘의 아들인데, 그는 앉아 있고 당신은 무릎 꿇고 있으면서 또 나까지 연루시키니 부끄럽지 않은가요! 당신은 지금 당신의 친척과 친구들이 어떤지 알았겠지요? 하나도 당신을 위하지 않는 자들이오." 왕 공자도 스스로 후회하고 마음을 다잡았다. 집에서 사 소실이 직접 글을 가르쳐 글자를 익히게 하고, 또 돈을 들여 금의위 천호(千戶) 직을 이어받게 하여 육지휘와 다시 동료가 되었으며, 또한 부친의 위신을 세우고 이 재산을 지켰다. 도리어 육지휘는 비록 총애를 받아 궁보요옥(宮保腰玉)까지 하고 즐거운 시절도 있었지만, 세상을 뜬 후에 사람들이 그의 간사함과 비리를 탄핵하여 마침내 삭탈되고 적몰되어, 이 두 원유는 또 누구의 손에 떨어졌는지 알 수 없게 되었다. 세력으로 남의 것을 빼앗은 자도 결국에는 남에게 돌아가는 것이다. 생각해 보면 이 이야기에서, 왕금의는 전원(田園)으로 인해 틈을 열어준 것이고, 육금의는 세력으로 남의 재산을 빼앗고도 누리지 못한 것이다. 이것이 자손을 위해 소와 말이 되려는 마음을 깨닫게 해주는 것이다. 왕 공자에게 이르러서는 어리석음에 속아 친구와 친척이 모두 배 안의 적국이 되었으니, 위태롭고 험한 것이었다! 입신(立身)에 있어서 밝고 지혜롭지 않으면 안 되고, 사람을 사귀는 데 있어서 삼가고 조심하지 않으면 안 된다.

그 쪽에서는 왕 공자가 돌아왔는데 말하기를, "큰일 났소. 그 망할 놈들이 나를 속였소. 답답하여 나오다가 마침 처남을 만났는데 처남이 '문에서는 집에 없다고 했는데 어떻게 나오셨소' 하였소. 내가 '문에서 몰랐소' 하고는 함께 걸었더니 처남이 '한 곳에 놀 만한 데가 있으니 가서 놀자'고 하였소. 큰 집으로 들어가니 이미 대여섯 명이 있었는데 옷차림새가 나와 비슷하고 거기서 노름을 하고 있었소. 처남이 나보고 하라 하기에 돈이 없다 하였더니, '괜찮소. 당신이 큰집안이라 노름 돈이 부족할까 봐 내가 보증하겠소'라 하며 이백오십 냥씩 우리 둘에게 꺼내주었소. 나도 한동안 따기도 했는데 처남이 잃어서 당하지 못하였소. 첫날 이틀은 삼백을 잃어 표를 하나 적어 돌아오려 하였더니 처남이 팔고 전부 빼가 며칠 동안 계속 처남은 따고 나는 잃었소. 내가 딸 때는 처남은 잃었소. 결국 천이백 냥을 잃었소. 또 표를 원하지 않고 재산을 달라 하기에 어떤 재산인지 몰라 어쩔 줄 몰랐더니 처남이 '순성문 서쪽 화원, 사방의 경계는 내가 아오. 우선 그것을 써주시오'라 하였소. 거절하였더니 여러 사람이 소란을 피워 나가지 못하게 하였소. 처남이 말하기를, '당신의 천 냥짜리 재산을 천이백 냥으로 쳤으니 당신이 이익이오'라 하였소. 막상 쓸 때 또 '가치가 없다'며 또 백 냥 표를 쓰게 하고 처남이 보증을 서서야 겨우 빠져나왔소." 사 소실이 말하기를, "아이고, 이것은 처남과 육지휘가 합세하여 당신을 속인 것이오. 이제 재산은 이미 육씨 집에서 접수하였소." 왕 공자가 말하기를, "이렇게 빨라요? 내 문서는 공란이었는데." 사 소실이 말하기를, "이런 어리석은 자, 이런 못난 자야, 당신 아비가 천사백 냥에 사서 더 지어 이천 냥이 들었는데, 당신은 천이백 냥에 잃고도 이익이라 하고 또 백 냥 표를 써주었단 말이오! 됐소 됐소. 이런 못난 자식을 낳아 이 보금자리마저 노름에 빼앗기고 말았구나." 왕 공자가 말하기를, "처남이 길을 만들어 나를 속인 것이오." 먼저 방에서 아내와 밤새 다투었고 아내가 몹시 화가 나 목을 맸다.

어리석고 못난 탕자를 탄식하고,

박명한 홍안(紅顔)을 안타까워하네.

이 일은 원래 처남이 사람들과 짜서 육지휘를 받들어 그 어리석은 아들을 속인 것인데 사 소실이 밝혀냈고, 집안이 소란스러워지더니 아내가 목을 맸다. 그가 달려와 바로 시비를 걸려고 하니 마침 여동생이 멀쩡히 방에 앉아 있었다. 말하기를, "오빠, 남편이 잘못한 것이 아니라 당신이 가르쳐주고 훈계해야 하는데, 어찌 같이 짜서 속였소? 이것은 친척들이 할 일이 아니오." 처남은 낯빛이 굳어지며 말하기를, "말도 안 되는 소리!" 하였다. 그런데 왕 공자가 방으로 뛰어 들어와 말하기를, "뻔뻔스럽고 부도덕한 놈, 어찌 사람을 꾀어 노름을 하게 하였소? 이천 냥짜리 재산을 천이백 냥으로 만들었으니 내가 이익이라고? 당신은 육지휘의 배후에서 일하고 한평생 써먹으려 하는 것이오? 이런 짐승 같은 놈, 다시는 우리 집 문에 오지 마시오, 가시오!" 이때 또 사 소실이 와서 말하기를, "됐소, 원유는 육지휘가 이미 봉쇄해 갔소. 누가 좋은 사람과 어울리지 않고 저 망할 패거리들과 노름을 했소." 이것이 또 처남을 향해 욕하는 것이 되어 처남은 몸을 빼 걸음아 나 살려라 달아났다. 또 부끄럽고 화가 나 말하기를, "이 집은 이제 틀렸구나. 백 냥 가지고는 발을 붙이기 어렵겠다. 이제 아예 한번 해보자."

파리 같고 개 같은 무리들이 분분히,

작은 비린내를 맡고 함부로 달려드네.

다만 세력에 기댈 수 있음만 알고,

어찌 골육의 정을 돌아보겠는가.

이 두 가지 일은 원래 육지휘와 허 교위가 꾸민 것이다. 이전에는 왕 공자의 한량들을 이용하여 재산 가격에서 한량들과 가짜 주녕 조카가 나누어 가졌다. 이번에는 처남을 이용하여 재산 이익에서 처남과 여러 노름꾼들이 나누어 가졌다. 허 교위에게는 모두 몫이 돌아갔다. 그래서 또 허 교위에게 와서 말하기를, "육 어른이 처남 집 방을 봉쇄하였고, 처남이 소란을 피워 나를 국소(局所)에 고발하겠다 하였소. 처남의 누이를 죽음으로 몰아갔소. 내가 이제 위(衛)에서 그를 상대로 소장을 내겠소. 처남 집은 관아를 두려워하는 집이고, 사 소실은 체면을 중히 여겨 관에 나서려 하지 않을 것이니, 반드시 굴복하여 평자문 밖 원유를 육 어른에게 드리고 우리도 천여 냥을 챙겨 손을 씻읍시다." 하고 허황된 소장을 써서, 제도에 맞지 않는 방을 지었고 창녀집을 착취하였으며, 부친과 간통하였고 아내가 말리는 것에 화를 내어 어머니와 함께 목매어 자살하도록 핍박하였다고 하였다. 허 교위가 들고 들어가 허가받고 즉시 허 교위를 파견하였다.

비린내에 흠뻑 빠진 마음이 깊은 계곡 같아,

매와 매사냥개를 부려 쓰네.

한 장의 패문(牌文)이 불처럼 타오르니,

곤강(昆岡) 위 구슬도 돌도 타오르는구나.

대체로 사람을 잡으러 가는 관리는 사람을 잡기 전에 먼저 돈을 요구한다. 이 허 교위는 큰 국(局)을 벌이려는 것이어서 돈을 요구하지 않고 사람을 잡았다. 왕 공자를 매처럼 움켜잡아 관부 점포에 가두었다. 형세가 크니, 집에서 무슨 일인지 모르고 사례비와 관아 사용비를 모두 요구하는 것들이었다. 그 왕 공자를 점포에 가두고 오 분에 하루 관밥을 먹으며 친지도 만나지 못하게 하였다. 사 소실은 아들에게 큰 일이 없고 다만 속임수 국(局)인 줄 알았다. 어렵게 만들지는 않을 것이고 만약 한 번 다그치면 큰 소리를 낼 것이니, 우선 차갑게 두어 아들도 좀 급하게 만들어 이후에 두려워하며 함부로 다니지 않게 하자 하였다. 하루가 지나자 허 교위가 사태가 느슨해질까 두려워 사 소실에게 관에 나오라 하였다. 만약 사 소실이 "나는 관인(官人) 가문이라 나가지 않겠다"고 한마디 하면 그것이 핑계가 되었을 것이다. 그런데 사 소실이 뜻밖에도 검은 수건으로 머리를 싸매고 청삼(靑衫)에 낡은 신을 신고 말하기를, "가겠소." 허 교위가 도리어 깜짝 놀라 어쩔 줄 몰라 하며 말하기를, "소실 어른, 앞에 어른이 당상에 앉으셨습니다. 소실 어른이 어찌 나서겠습니까? 두 집 다 친척인데 이야기를 나눠 안에서 처리하지요." 사 소실이 말하기를, "전과 다른 시절이오. 전에는 소실이었지만 지금은 죄인입니다. 가지 않고 어쩌겠소?" 하고 작은 가마 하나를 불러 탔다. 허 교위도 어쩔 수 없이 따라 관 앞에 이르렀다. 허 교위가 조정하며 말하기를, "이 분이 어른의 은혜를 입지 않은 분이 어디 있겠습니까." 하며 돈을 뜯어 좋은 척 나쁜 척하여 백여 냥을 쓰게 하였다.

당 위에 앉았던 옛 분,

묘목이 이미 무덤 위에 크게 자랐네.

남은 위엄이 어찌 다시 있겠는가,

소리 지르고 밀치는 것을 면하였을 뿐이네.

육지휘가 당에 앉아 죄인을 들이고 문에서 고함쳤다. 손가락 조이는 기구와 협봉(夾棒)을 땅에 내던지자 왕 공자가 울부짖으며 말하기를, "어머니, 이젠 아들이 끝났습니다. 아들이 오늘 죽겠습니다." 사 소실도 땅에 무릎을 꿇고 그에게 말하기를, "어찌 죽지 않기를 바라느냐? 네 아비가 일찍이 이 당에 앉아 천리에 맞지 않는 일을 얼마나 많이 했는지 알 수 없건만, 오늘 보응이 네 몸에 있구나. 그래도 살기를 바란단 말이냐!" 하고 쟁쟁하게 이렇게 말하였다. 저 육지휘는 낯빛을 굳히고 위에서 위세를 부리려다가 이 몇 마디를 듣고, 왕금의를 끌어내어 이야기하자니 일찍이 육지휘에게 은혜가 있는 분이고, 그 분이 천리에 맞지 않는 일을 하였다 하는데 오늘 자신의 일도 천리에 맞다고 말하기 어려웠다. 육지휘가 자신도 모르게 양심이 흔들려 거짓으로 허 교위에게 물었다. "이 분이 누구요?" 허 교위가 답하기를, "전임 왕 어른의 소실입니다." 육지휘가 말하기를, "우선 일어나시오." 사 소실이 자리에 섰다. 육지휘가 말하기를, "소장에 제도에 맞지 않는 방이며, 창녀집 착취며, 부친과 간통이며, 아내를 죽음으로 몰았다는 것이 어찌 된 것이오?" 왕 공자는 한마디도 대답하지 못하였다. 또 사 소실이 말하기를, "방은 원래 두 칸이 있었는데 이미 남에게 주었소. 착취는 누가 피해를 입었소? 부친과 간통은 그 아비가 죽을 때 그 아이가 겨우 열두 살이었소. 두 첩은 바로 친정으로 돌아가 시집갔소. 아내를 핍박하였다 하면 그 아내는 지금 집에 있소." 육지휘는 그 말의 이치가 엄정함을 듣고 또 마음속으로 생각하기를, 세 원유 중 이미 둘을 얻었으니 어찌 세력을 부려 또 그의 것을 빼앗겠는가 하니 마음이 편하지 않았다. 어쩔 수 없이 손을 들어 말하기를, "이 소장은 허위인 것 같소. 다만 그의 누이도 일찍이 목을 맨 것이 이유가 없지는 않으니, 나가서 내가 취소시키겠소."

엄하게 보복의 이치를 제시하고,

깊이 호랑이와 이리 같은 마음을 흔들었네.

일찍이 탐욕스럽고 잔인한 성품을 거두어,

두려워 감히 침범하지 못하였네.

집에 돌아와 사 소실이 말하기를, "그와 당신은 둘 다 지휘의 아들이오. 그는 앉아 있고 당신은 무릎 꿇고 있으면서 또 나까지 연루시켰으니, 부끄러워 죽지 않겠소? 지금 당신의 친척과 친구들의 모습을 보았겠지요? 하나도 당신을 위하지 않는 자들이오." 왕 공자도 스스로 후회하고 마음을 수습하였다. 집에서 사 소실이 직접 글을 가르치고 글자를 익히게 하였으며, 돈을 들여 금의위 천호 직을 이어받아 육지휘와 다시 동료가 되어 또 원유 하나를 지켜내었다. 도리어 육지휘는 비록 총애를 받아 궁보요옥(宮保腰玉)에까지 이르러 즐거운 때도 있었지만, 세상을 뜬 후에 사람들이 그의 간사하고 비리함을 탄핵하여 마침내 삭탈되고 적몰되어, 이 두 원유는 또 누구의 손에 떨어졌는지 알 수 없게 되었다. 세력으로 남의 것을 빼앗은 자도 결국에는 남에게 돌아가는 것이다.

생각해 보면 이 이야기에서, 왕금의는 전원으로 인해 틈이 생긴 것이고, 육금의는 세력으로 남의 재산을 빼앗아도 끝내 누리지 못한 것이다. 이것이 자손을 위해 소와 말이 되려는 마음을 깨우쳐 주는 것이다. 왕 공자에 이르러서는 어리석어 속아 친구와 친척이 모두 배 안의 적이 되었으니 참으로 위태롭고 험하였다. 입신하는 데 있어서 밝고 지혜롭지 않으면 안 되고, 사람을 사귀는 데 있어서 삼가고 조심하지 않으면 안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