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1회 재물만을 탐하고 사리(私利)를 쫓으니, 봉록을 깎이고 수명까지 잘리어 두 가지 증거가 맺히다
자줏빛 표지에 황금 방목이 무엇이기에,
부귀한들 어찌 쌓인 덕만 하랴.
소매 속에 몇 번 나비 같은 꿈 꾸었건만,
붉은 문 앞엔 달팽이처럼 맴돌고 마네.
관 하나만 남기면 본디 내 것 없나니,
반평생을 남 위해 무얼 다퉜던가.
재물 지키려 탐욕을 부리는 이들을 비웃나니,
한 푼 두 푼 손바닥에 몇 번을 굴렸던고.
사람이 가장 깨뜨리기 어려운 것은 이욕(利慾)에 대한 탐심이다. 이욕을 탐하면 오로지 자기 손에 살이 붙고 자루가 불리는 것만을 생각하여, 체면도 돌아보지 않고 친지도 돌아보지 않으며 수치도 모르게 된다. 그리하여 마침내 국법도 두려워하지 않고 천리(天理)도 두려워하지 않게 된다. 관리의 경우가 더욱 심하다. 농사짓거나 장사하는 자들은 착취하고 탐해도 그 한도가 있지만, 관리가 되고 나면 사람을 때리고 꾸짖을 수 있고 부릴 수도 있어 세력이 펼쳐지니, 탐심의 싹을 조금이라도 드러내면 즉시 한 무리가 달려들어 떠받들고 꾀어대어 걷잡을 수 없게 된다. 명목을 빌려 교묘히 착취하고, 세금에 과징을 얹고, 되를 깎아 쌓아 모으며, 종이 값까지 무겁게 받아낸다. 드러놓고 채찍질하는 것도 모질지만, 뒤로 은밀히 손을 대는 것이 더욱 흉악하다. 명절 예물, 생신 예물로 무소 잔이며 금 술잔, 비단 족자며 금수(錦繡) 병풍, 고화(古畫)며 고병(古甁), 명인의 서첩에 진귀한 완물(玩物)들——그것들이 어찌 진심으로 보내는 선물이겠는가. 필경 겉으로는 드리는 척하면서 사실은 빼앗아 가는 것이다.
뇌물은 아침마다 들어오고,
채찍 소리는 날마다 들리니.
문 아래 백성들과 어울리나,
열 집 중 아홉 집이 불타는 듯하네.
이것도 어쩔 수 없는 형편에서 나오는 일이다. 사모관대를 한 번 쓰고 하루라도 관청에 앉으면 그날로 은자(銀子) 얼마씩이 배정된다. 봉록을 헌납하고 곡식을 적립하며, 군량과 공역을 돕고 말을 사고 집안 재물을 헌납하기를 한 번 두 번 계속해야 한다. 나는 가난한 서생이 집에 사방 벽만 남은 채로 어디서 그것을 구해올까 하는 것을 본다. 오늘날 인재들이 지방관을 떠나면 곧 상소를 올려 불량한 지방관을 꾸짖어, 백성을 착취하고 뇌물을 받으며 자리를 팔고 승진을 사들인다고 한다. 그렇다면 그들에게 묻노니, 평소에 진정으로 왕래를 끊고 임기를 마치고 선발을 받을 때, 같은 고향 사람에게, 관할 아래 있는 이에게 찾아가 서첩이며 수건을 보내지 않았던가? 다만 사족(士族)과 서민에게 죄를 짓는 것보다는 요로(要路)의 인사에게 죄를 짓는 것이 낫다 하겠다. 양심에 부끄러운 것보다는 예절에 부끄러운 것이 낫다고도 하겠다. 선물이 다소 박하더라도 무방하지만, 내 명절을 더럽혀 남의 환심을 사는 것은 무슨 까닭인가? 더구나 집안을 살찌운다는 것에 이르면, 하늘의 섭리가 가장 교묘하다. 《당서(唐書)》에 기록되기를, 저승에 약잉사(掠剩使)가 있어 사람의 남은 재물을 빼앗는다고 한다. 재상 이교(李嶠)는 가난하였고 장열(張說)은 부유하였다. 어느 스님이 말하기를, "장 재상은 만족을 모르는 귀신왕으로, 명부에 열 개의 쇠 화로가 있어 그의 횡재를 주조한다"고 하였다. 이것이 모두 음으로 주재하는 것이 있음이다.
빈부는 모두 조물주에 달렸으니,
누가 가난을 피하고 부유함을 꾀하랴.
지혜로운 자는 반드시 운명에 맡길 줄 알아,
멈추기도 하고 흘러가기도 하는 대로 따르네.
명나라에 일찍이 한 어사(御史)가 있었는데 문생(門生)에게 이렇게 말하였다. "은재(銀財)에는 분수와 한도가 있어 함부로 취할 수 없다. 내가 일찍이 운남을 순찰하다가, 밤에 관아에 있을 때 신기가 불안하여 잠을 이루지 못하였다. 내가 빌기를, '이곳에 혹 원한을 품고 고하려는 이가 있는가?' 하였다. 그러자 황홀하게도 금갑을 두른 신인(神人)이 앞에 나타나 말하기를, '그대에게 은자 천 냥이 있으니 특히 고하러 왔소' 하였다. 내가, '어디 있소?' 하니 답하기를, '관아의 공좌(公座) 옆 벽돌 아래에 있소' 하였다. 내가 공좌를 치우고 벽돌을 들춰 보니 과연 은정(銀錠) 스무 개, 합계 천 금이 있었다. 내가, '어떻게 집으로 가져가겠소?' 하니 신인이 말하기를, '고향과 성명, 사는 곳을 적어두면 내가 전해 드리겠소' 하였다. 나는 말대로 써서 은 위에 얹고 벽돌로 덮었다. 후에 순찰을 마칠 무렵, 상을 당한 동년(同年) 한 명이 찾아와 어느 지현(知縣)을 위해 천거를 부탁하며 사백 금을 주어 각각 이백씩 받자 하였다. 나는 굳게 사양하였지만 동년이, '네가 받지 않으면 잊어버릴까 두렵다. 반드시 네가 받아야 내 마음이 놓인다' 하기에 마지못해 받았다. 임기를 마치고 집에 돌아와 문득 이 일이 생각나, 집사람을 시켜 삼생(三牲)을 준비해 몰래 빌었다. 그러자 홀연히 신인이 다시 나타나, '은자가 서재 긴 탁자 아래에 있소' 하였다. 다음 날 집사람을 시켜 탁자를 들춰 보니 과연 전의 은자가 나왔는데 수가 팔백에 그쳤다. 내가, '원래 은자가 천이었는데 지금은 팔백뿐이니 이백은 어디 갔소?' 하니, 저녁에 신인이 다시 나타나 말하기를, '아무 동년의 이백이 그것이오' 하였다. 나는 온몸에 식은땀이 흘렀다. 이로 보건대 사람의 모든 행동은 귀신이 다 안다. 이쪽에서 얻으면 저쪽이 줄어드니, 수에는 일정함이 있다. 이를 보고도 억지로 구할 수 있겠는가?"
재물 쌓는 것이 천억에 달하지 않는 건,
새끼줄 문에 사는 자, 명이 본래 가난하기 때문이네.
탐욕스러운 자는 허망하게 분주히 굴지만,
사람의 재주는 하늘의 솜씨에 막히는 법.
내가 들으니 광동에 위진사(魏進士)라는 이가 있었다. 수재(秀才)였을 때 집이 극히 가난하여 옷 입고 밥 먹는 것조차 감당하기 어려웠다.
등불 없어 늘 달빛을 빌리고,
문은 있지만 바람은 막지 못하네.
시루 속에 때로 먼지가 일고,
주머니 속엔 돈이 늘 비어 있네.
그는 오로지 글 읽는 데만 전념하고 살림살이는 별로 돌보지 않았다. 아내 쪽 가문이 조금 넉넉하고 아내가 부지런하여 아침저녁을 겨우 꾸려나갔다. 아내는 늘 글 읽는 것을 원망하여 혼수를 다 써버리고 이 지경으로 가난하게 되었다고 하였다. 위진사는 억지로 달래기를, "원망하지 마시오. 혹시라도 과거에 붙으면 당신이 옷 입고 싶을 때 옷을 얻고 밥 먹고 싶을 때 밥을 얻을 수 있게 해주리다. 혼수의 열 배를 갚아도 어렵지 않소" 하였다. 뜻밖에도 과연 향시(鄕試)에 합격하고, 이어 진사에도 합격하여 삼갑(三甲)에 들었다. 추관(推官)에 선발되어 먼저 도찰원(都察院)에서 관정(觀政)을 행하게 되었다. 그때 당장 장반(長班), 말 고용, 교제 비용 등이 들었다. 관정이 끝났으나 선발 시기가 아직 멀었다. 그런데 고향이 멀어 왕래가 불편하였으므로 부득이 북경에서 기다릴 수밖에 없었다. 반 년을 묵으며 방 세에 밥값, 경조사 공비(公費)가 들었고, 관직을 선발받을 때는 상사에게 보낼 예물을 마련하느라 또 얼마간의 빚을 졌다. 음력 이월 이십오일에 서울에서 제비뽑기로 선발하였다. 뽑힌 것이 호광(湖廣) 강릉부(江陵府)였다. 이 제비뽑기도 하나의 명목에 불과하다. 좋은 부(府)는 필경 몇몇 경관(京官)이——동년이거나 좌주(座主)이거나——와서 부탁하며, 임지에 부임한 뒤 자기를 돌봐주기를 기대하고 자리를 미리 확보해 두었다. 대개 제비뽑기는 남·북·중으로 나누거나 상·중·하로 나눈다. 위진사는 광동 사람이므로 통 속에 일부러 강릉과 광동 두 개의 제비를 넣어두었다. 광동을 뽑으면 본성(本省)이라 선발 대상이 아니므로 자연히 강릉이 되었다. 혹은 호광 사람 하나가 짝으로 뽑게 하여, 호광 사람이 강릉을 얻지 못하면 그 자리가 또 위진사에게 돌아왔다.
관리의 폐단은 짙은 구름 같아,
달빛 거울도 어둡게 하는구나.
우직한 자는 쌓인 장작이 되어,
풍당(馮唐)도 깊이 탄식하였네.
위진사가 부임지를 얻고 가마를 빌려 타고 서주(徐州)에서 수로로 회수(淮水)와 장강을 건너, 절강·강서를 거쳐 광동으로 갔다. 선조에게 제사를 올리고 친족에게 작별을 고한 뒤, 부인과 함께 임지로 올라갔다. 그런데 이 부인은 귀에 늘 관리 생활이 좋다는 말만 들어왔으므로, 금을 긁어모으고 은산(銀山)을 이루는 것인 줄만 알았다. 임지에 도착하니 길에는 가마꾼과 수행원이 맞이하여 체면이 자못 위엄 있어 보였다. 관아에 들어서자 각 부·현의 향신(鄕紳)들이 선물을 보내와 꽤 번잡하였다. 다만 위추관은 새로 부임하여 자연히 거리를 두었으므로 마지못해 한두 가지만 받았는데, 그것도 봐줄 만하였다. 관아에 있는 동안 날마다 일은 있었지만, 그것도 무안(撫按)과 번臬(藩臬), 수순(守巡)의 공문을 처리하고 부당(府堂)의 첩문(牒文)을 처리하는 것뿐이었다. 온종일 자신의 정신을 소모하며 남을 위해 종이 값을 쌓는 일뿐이었다. 일 년 남짓 지나, 대순(代巡)이 한 번 장부를 조사할 것을 위임하였는데, 부·현에서 여비와 숙식비 명목으로 백 금 정도가 들어왔다. 평소에는 단오절과 세모 두 차례 전성(全省)의 현관(縣官)들이 와서 절 예물을 보내는 것에 의존할 뿐이었는데, 한 사람당 넉 냥 정도였다. 거기다 멀고 작은 현은 빠져서 보내지 않는 곳도 있었다. 부인이 말하기를, "좋기는 한데, 교관(敎官)이나 한 자리 한 것이군. 한 절기에야 좀 활기가 생기지. 그쪽은 배알하는 것도 많고 학교에 한 번 들를 때마다 속수(束脩)가 한 번씩 들어오니까." 이런 한가롭고 사소한 말들이 가장 사람을 부추기고 흔드는 법이다. 선물을 받을 때마다 모두 부인이 거두어들였다. 그녀가 패물을 하고 옷을 만들려 할 때, 위추관이 가난할 때 쓴 돈 때문에 안 된다고 하면 그녀는 투정하고 울어댔다. 위추관도 어쩔 수 없이 억지로 따랐다. 바야흐로 구슬과 비단을 사 오게 하고 임금을 치를 때, 값을 깎는 것은 물론이요 은의 성분까지 따지게 되니, 이미 위추관의 명의로 착취하고 편취하는 이름을 뒤집어쓰게 되었다.
맹호는 신령스러운 위엄이 있건만,
여우 요괴에게 빼앗기고 마네.
여우가 빌린 위세로 온갖 짐승을 놀래우니,
대권이 곁으로 넘어감을 한탄하노라.
청에는 단규(單規)라는 이서(吏書)가 있었는데, 교활한 아전이었다. 그는 교대로 광동에 부임하는 관원을 접대하였다. 부인과 집사에게 몰래 예물을 바쳐 환심을 샀고, 관내의 안팎 사정을 모두 파악하였다. 또 부임하고 나서는 부인이 돈을 탐내어 실권을 쥐고 있음을 간파하였다. 그 무렵 본부에 진치(陳箎)라는 대호(大戶)가 있었는데 집이 매우 부유하면서도 못된 짓을 즐겨하여, 집 안에 수십 명의 가정(家丁)을 두고 큰 강에서 밀수 장사를 하고 근처 마을 집들을 약탈하였다. 하루는 병순도(兵巡道)의 동년이 탄 관선(官船)을 습격하였다. 순도가 매우 긴박하게 추적하여 부·현에 사흘마다 기한을 정해 독촉하고 순도가 보름에 한 번 보고를 올렸으며, 포졸들이 뿌리를 캐고 있었다. 공교롭게도 진씨 집의 하인들이 약탈하여, 금은과 비단 같은 물건을 가져올 때마다 진치가 은전으로 쳐서 값을 주고 물건은 사람을 시켜 다른 성에 내다 팔았다. 그래서 하인들 몸에는 장물이 없어 눈에 띄지 않았다. 이번에는 크게 약탈하였는데, 하인들은 매번 진치가 반값도 안 되는 돈을 준다는 것을 알기에 조금씩 몸에 지니고 있었다. 물건이 생기자 빨리 처분하려다가 값을 몰라 팔러 다니다가 일찍이 눈 밝은 포졸에게 발각되었다. 또 창부(娼婦) 주영(周英)의 집에서 嫖하다가, 그 집의 설아(雪兒)와 초운(楚雲) 등 자매들이 모두 아름답고 돈 뜯어내는 데 능하였는데, 각각의 도적들은 돈이 쉽게 들어오다 보니 그 집에서 호기롭게 쓰고 금은을 상으로 뿌렸다가 포졸에게 들이닥쳐 한꺼번에 묶였다. 공술에 진치의 하인들이라고 하였고, 또 열 명 이상의 도당이 모두 진씨 집에서 잡혔다. 진치는 포졸과 포관(捕官)을 매수하여 결국 귀인(龜子)에게 뒤집어씌웠고, 상사에게 통보하였다. 진치는 극도로 교활하고 완악하여 사건이 생기면 돈을 쓰기를 잘 약속하다가, 사건이 끝나면 뒤집어 갚지 않았다. 관아 사람들이 알기에 일부러 한 구멍을 남겨 두었다. 포관의 초기 공술에 "진치 의남(義男)은 관계없음"이라는 한 구절을 지우지 않은 채 두었다. 순도가 형청(刑廳)에 넘겨 다시 심문하니, 위추관도 정사를 주의 깊게 살피는 사람이라 공술 요약을 자세히 읽었다. 생각하기를, '강해(江海)의 큰 도둑에게는 반드시 큰 소굴이 있을 것이다. 창가(娼家)는 그 씀씀이 처이니, 재물을 탐내어 신고하지 않은 것일 수도 있다. 그렇지만 주범이라면 수년 동안 키워온 주인을 버리고 며칠 묵은 귀인에게 넘기는 이치는 없다' 하고 곧 패를 발하여 진치를 소환하였다.
기둥에서 원흉을 캐내고,
수레바퀴를 묻어 대간(大姦)을 꺾었네.
엄격한 철면(鐵面)으로 임하니,
행려의 길도 편안해지는구나.
막 소환이 진행될 즈음, 홀연히 대순이 무창(武昌)을 감사하도록 위임하여, 위추관은 부득이 행장을 꾸려 출발하였다.
그 이전에, 위추관이 부임하여 처음 무안·사도에게 인사를 다닐 때, 역풍을 만나 작은 포구에 배를 대고 홀로 앉아 무료하게 있었다. 선상에서 멀리 바라보니 저 멀리 소나무와 대나무 숲 사이로 은은히 전각(殿閣)이 보이고, 역풍 속으로 풍경 소리 몇 가닥이 실려왔다. 뱃사공에게 물으니 성수선사(聖壽禪寺)라 하였다. 위추관이 말하기를, "다른 관할이지만 가마를 타고 한번 구경이나 가보자" 하고 수행원을 많이 데리지 않고 도(道)를 열지 않은 채 숲 속으로 들어갔는데, 보이는 광경은 이러하였다.
대나무는 기울어져 손님을 맞는 듯하고,
소나무는 높이 자라 사람을 인도하는 듯하네.
강가 마을엔 인적이 드물고,
오솔길엔 이끼가 수놓여 있네.
숲을 돌아 들어가니 종소리가 이따금 들리고 피리 소리가 은은하였다. 몇 명의 사미승이 악기를 들고, 열 명쯤 되는 스님들이 향을 들고 맞이하러 나왔다. 산문(山門)에 이르니 또 노승 한 분이 있었는데, 구레나룻에 흰서리 같은 흰 머리, 얼굴에 달빛 같은 기품이 있어 몸을 굽혀 맞이하였다. 대전에 들어가 여러 부처에게 예를 올렸다. 방장(方丈)으로 들어가니 종이 창문에 대나무 집, 풍취가 그윽하였다. 작은 풀과 이름난 꽃들이 그윽하고 아름다워 쉬어갈 만하였다. 기물이 정갈하여 티끌 하나 없었다. 사방 벽에는 두방시화(鬥方詩畫)가 가득하였는데 모두 주지 도적(道寂) 스님을 칭송하는 것이었다.
이런 것도 있었다. "백 년 된 고목이 스님의 법랍을 알고, 한 조각 밝은 달이 예스러운 마음을 비추네."
이런 것도 있었다. "스무 해 동안 도성을 멀리하고, 한마음으로 고금을 가로질렀네."
이런 것도 있었다. "바람과 깃발에서 인연이 상(相)에 있음을 깨달았고, 밝은 거울에 본래 대(臺)가 없음을 깨쳤네."
이런 것도 있었다. "지혜는 선정 속에서 나오고, 깨달음은 세상의 앞장에 서네."
위추관이 보고 말하기를, "이 노승이 아마 도적 화상인 모양이다. 방외(方外)의 고인(高人)이니 빈주(賓主)의 예로 만날 수 있겠다" 하였다. 노승이 한참 겸손하게 사양하다가 옆으로 앉았다. 이내 차가 나왔고 과일과 다과가 늘어놓였는데 극히 정갈하였다. 서로 선종의 구두선(口頭禪)을 나누며 서로 높이었다. 대체로 관리가 선을 논하면 견해가 이미 속인을 넘어서고, 스님들도 그에 기대어 그렇게 말하는 법이다. 한참 앉았다가 재(齋)로 들어가니 먼 지방의 물산이 다 갖추어져 마치 미리 준비한 듯하였다. 위추관이 말하기를, "상인(上人)은 선림(禪林)의 명숙(名宿)이시니 참으로 속정을 떠나셨겠지요. 방금 사미들을 멀리까지 보내 마중하게 하고 이처럼 후하게 대접하시니 너무 과분합니다" 하였다. 옆에 서 있던 장난기 많고 입 빠른 어린 스님이 대답하기를, "사조(師祖)께서는 평소 쉽게 사람을 만나지 않으시고 예절도 생략하십니다. 사흘 전 선정(禪定) 속에서 귀인이 올 것을 미리 아시고 특히 저를 성내에 보내 채소를 마련하게 하셨습니다. 아침에 사미들에게 문 밖에 나가 맞이하라 이르셨기에 이렇게 된 것입니다" 하였다. 위추관이 말하기를, "도적 상인(上人)께서 과연 미래를 미리 아신다는 것이오?" 하자, 도적 화상이 말하기를, "그런 말씀을 감히 드리겠습니까. 그 아이가 지나친 말을 한 것입니다" 하였다. 위추관도 웃으며 허풍이라 여겼다. 그날 밤은 절에서 묵으며 도적 화상과 막역한 지기가 되었다. 절에서도 곧 '대단월(大檀越) 위 어른'이라는 대홍색 소두(疏頭)를 세웠다. 위추관은 허풍이라 여기면서도 일부러 시험해 보려고, 돌아오는 길에도 매번 지날 때마다 찾아갔는데 영접하고 대접하는 것이 처음과 한결같았다. 이번에도 위추관이 찾아갔다. 부(府)에 도착하여 예례대로 부·현 관아에 들러 창고와 인원을 점검하고 죄수들을 한 번 심문하였다. 이서(吏書)들에게 의심스럽고 가여운 몇 사람을 추려내게 하여 대순이 석방하도록 맡겼다. 부·현 정관(正官)에게 보좌 잡직의 현부(賢否)와 단속해야 할 나쁜 이서들을 물어 책자에 기록하여 대순의 표창과 경계에 대비하였다. 그때 마침 장태악(張太岳)의 모상(母喪) 귀향으로 양원(兩院)과 삼사(三司)가 모두 강릉으로 조문하러 가 있었으므로, 위추관도 우선 임지로 돌아왔다.
호리병 모양대로만 그리니,
이서들의 분주함이 허사로구나.
누가 공무에 열심인 자인가,
허심탄회하게 심리를 갈고 닦는 자라네.
관아에 돌아와서 이전의 미완 사건들을 처리하였다. 진치는 이미 단규를 찾아가 큰 인연을 부탁하고 있었다. 단외랑(單外郎)이 주장하기를, 천 금을 올리면 아무 일 없을 것이라 하였다. 진치가 말하기를, "위사부(魏四府)는 들으니 한 번도 손을 댄 적이 없다고 한다. 경솔히 들어갔다가 낯빛이 한 번 변하면 이 일이 더욱 어렵게 된다. 친밀한 고향 친척이 없으면 차라리 장각로(張閣老) 공자를 찾아가는 것이 낫겠다" 하였다. 단외랑이 웃으며 말하기를, "내가 당신을 위해 해줄 수 있는 것이니 그것이 당신에게 이롭지요. 장 공자는 삼천 금이 아니고서야 눈도 뜨지 않을 걸요!" 진치가 그 말이 맞다 여기고 따라서, 천 금을 단외랑에게 건넸다. 단외랑은 관리가 없는 틈에 먼저 집사에게 말을 꺼냈다. 집사가 말하기를, "마님이 간절히 원하십니다. 마님이 허락하면 어른도 따르지 않을 수 없습니다" 하였다. 단외랑이 일부러 부추기기를, "제가 보기엔 어른이 법을 매우 지키시니 마님도 어쩌지 못할 것 같습니다. 만약 된다면 만 금도 얻을 수 있겠지요. 집사도 천 금 정도는 얻을 수 있고요" 하였다. 집사가 말하기를, "소를 묶는 데는 소 묶는 방법이 있는 법이오. 모두 마님에게 달렸소." 집사가 가서 마님에게 말하니 과연 한결같이 응낙하였다. 단규는 육백 냥을 마님에게 넣어 주었고, 집사가 열에 하나를 더하여 육십 냥, 일을 처리한 뒷돈 삼십 냥이었다. 나머지는 단외랑이 챙겼다.
천 금으로 사자의 포효를 사들이고,
삼면에서 솔개와 올빼미를 방종하게 하였네.
위추관이 관아에 돌아와 저녁에 두 사람이 술을 마시고 자리를 파하고 나니, 부인이 미소를 지으며 말하기를, "일 년 넘게 관직을 지냈는데 오늘에야 큰 재물을 하나 얻었군요" 하였다. 위추관이 말하기를, "장부 조사하고 돌아와 가져온 여비와 숙식비 예물을 큰 재물이라 하는 것이오?" 하자, 부인이 말하기를, "그런 것을 큰 재물이라 하겠어요?" 하고는 소매에서 진치의 소장 한 장을 꺼내며 말하기를, "이 사람이 은 육백 냥을 주어서 내가 받았으니, 당신이 그를 원만히 처리해 주세요" 하였다. 위추관이 말하기를, "이 사람은 용서할 수 없소. 나는 바로 그를 잡아들여 이름을 세우려 하고 있었소" 하였다. 부인이 말하기를, "명성보다 이익을 도모함이 낫지요. 당신이 오늘은 관직이 좋다 내일은 관직이 좋다 하시더니, 이제껏 서울에 진 빚도 갚기에 부족하잖아요. 이 은자가 하나 생겼으니 갚으면 안 되나요?" 하였다. 위추관이 말하기를, "관직이 오래되면 절로 부유해지오. 마님은 이러지 마시오" 하자, 부인이 말하기를, "관직이 오래되면 절로 부유해진다고! 진사가 된 지 이 년, 추관이 된 지 일 년인데 겨우 이 모양이에요. 돈이 보여도 집지 않으면 늙어서도 일어나지 않아요. 무슨 소리를 해도 나는 이 은자를 받겠어요" 하였다. 위추관이 말하기를, "이걸 누가 들여온 것이오?" 하자, 부인이 말하기를, "하늘이 보내준 것이에요. 그렇게 고지식하게 굴지 말아요. 당신이 돈을 안 받겠다지만 승진할 때는 도둑질하고 바람피우는 자들도 당신 것을 바라거든요. 그저 묻겠는데, 지금 몇 냥이라도 챙겨 남에게 갚지 않으면 나중에 누가 빌려주겠어요? 더구나 이 사건은 다른 사람들이 이미 다 알아봤으니 당신이 일을 벌여 사람을 해치는 것이 무슨 소용이에요?" 하고는 분을 이기지 못하며 소란을 피우려 하였다.
호랑이 마음은 원래 용맹하건만,
이리 같은 본성이 더욱 탐낼 수 있네.
어찌 명분과 의리를 알겠는가,
오직 이익만을 탐내는 자들이여.
위 마님은 은자를 꺼내 보이지도 않고 그냥 자버렸다. 위추관이 집사를 불러와 짐짓 엄하게 말하기를, "이 놈들, 잘도 했구나! 누가 벌인 일이냐?" 모두 돈을 받았기에 서로 얼굴만 쳐다볼 뿐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문지기를 잡아 매질하려 하자 마님이 또 벌떡 일어나 말하기를, "당신이 나를 때리지 않으면서 그를 빌려 나를 때리는 것이오?" 하며 소리를 질러대자 위추관은 감히 아무 소리도 못 하였다. 사설(私設) 관아 아전을 문책하려 하자 또 소문날까 두려워, 다만 허점을 잡아 제때 관아를 지키지 않았다 하여 한 명에게 스물다섯 대를 쳐서 분을 풀었으나 며칠 동안 울분이 쌓였다. 상사에서 독촉이 오니 어쩔 수 없이 전과 같이 판결을 내렸다. 그 단외랑은 수완을 더 부려 마님에게 위추관을 몰아붙이게 하여 진치를 깨끗이 빠져나가게 하고 귀인에게 사형 판결을 내리게 하였다. 이로부터 진치는 베개를 높이 베고 근심 없이 지냈고, 귀인은 목을 늘어뜨리고 형을 받았다.
본디 사람을 죽일 뜻이 없었건만,
살인하는 돈에 끌려가고 말았네.
붓 끝이 창과 방패가 되어,
원혼이 구천에서 울부짖네.
위추관도 이 일 때문에 마님이 또 무슨 짓을 할까 두려워, 사설 관아의 경비를 매우 엄격히 하고 술자리에도 그다지 나가지 않았다.
얼마 뒤 안찰원(按察院)에서 패를 발하여 무창부를 순찰하니, 위추관이 먼저 부에 당도하여 관아를 봉쇄하고 모든 구멍을 막았다. 본부 지부 두 명에게 교대로 채소와 물을 들이도록 하였다. 또 마님에게 이르기를, "한 번은 괜찮지만 두 번은 안 됩니다" 하였다. 마님이 말하기를, "정말 구두쇠로군, 정말 구두쇠야. 두고 봐요." 문을 나서며 문지기에게 단단히 당부하고 갔다. 다만 위추관은 원래 본분을 지키고 잘 되려는 사람이었는데 이 일로 양심에 어긋남을 느꼈고, 또 남이 알까 두려워 마음이 답답하였다. 성수사에 가까이 다가가자 한 발짝이라도 빨리 물가에 올라 도적 화상과 이야기를 나누고 싶었다. 그런데 뜻밖에도 숲을 돌아 들어가니 종소리도 음악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절 문 앞에 이르자 작은 사미 한 명이 보고 황급히 가서 알리니 몇 명이 달려와 맞이하였는데, 어떤 이는 장삼만 걸치고 승모가 없었고 어떤 이는 짧은 저고리만 입고 가사가 없었다. 달려와서는 향봉(香棒) 하나도 미처 들지 못하였다. 방장에 이르니 탁자 위에는 먼지가 쌓이고 의자는 여기저기 흩어져 있었다. 도적 화상은 한참 만에야 나와 맞이하지 못하였다고 거듭 사과하였다. 대강 차를 마시고, 저녁 재가 나왔는데 평범한 음식뿐이었다. 마침 시중드는 사람은 여전히 그 장난기 많고 입 빠른 어린 스님이었다. 위추관이 그에게 말하기를, "네 사조께서 어찌 미리 아시지 못하셨느냐?" 하자, 그 스님이 말하기를, "정말로 사조께서 일러주시지 않아 어른을 소홀히 모셨습니다" 하였다. 도적 화상도 급히 죄를 빌면서 말하기를, "정말로 사연이 있습니다만 노승도 감히 말씀드릴 수가 없습니다" 하였다. 위추관이 말하기를, "무슨 사연이오? 상인께서는 말씀해 보시오" 하였다. 도적 화상이 말하기를, "이 일을 말씀드리기가 황당하게 들릴까 겁납니다. 이 절의 가람신(伽藍神)이 매우 영험하여, 귀인이 지나칠 때마다 사흘 전에 꿈으로 알려줍니다. 예전에 장각로께서 향시 때 바람을 피해 이 절에 오셨는데 가람신이 알려주었습니다. 그래서 장각로께서 크게 귀하게 되신 뒤, 밭 열 무(畝)를 상주(常住)에 헌납하시고 신령스럽고 현저하다는 현판도 남겨두셨는데 가람전(伽藍殿) 안에 있습니다. 이제까지 노공조(老公祖)께서 오실 때마다 보고해 왔는데, 이번에는 잘못되었습니다. 가람신이 나가 있는지, 다른 까닭이 있는지, 게을러 보고하지 않은 것인지" 하였다. 위추관이 말하기를, "과연 그런 일이 있단 말이오!" 하자, 도적 화상이 말하기를, "노승이 감히 거짓말을 드리겠습니까" 하였다. 위추관이 말하기를, "내가 무창에 갔다 돌아오는 데 열흘 남짓이면 됩니다. 상인께서 나를 위해 한번 물어봐 주시겠소. 무슨 까닭인지를" 하였다. 이 한 가지 물음에서 위추관은 아직 반신반의하는 상태였다. 그런데 뜻밖에도 이 노승이 정말로 가람신 앞에서 허풍을 떨며 말하기를, "당신은 한 절의 주인이며 절의 흥폐는 모두 당신에게 달려 있소. 어찌 귀인에게 알리는 것을 잘못하여 위추관에게 실례를 범하였소. 지금 알리지 않은 까닭을 물으니 빨리 고하시오" 하며 거듭거듭 말하고 또 말하며 염불처럼 외웠다. 마치 흙으로 만든 신이 귀가 있는 것처럼 대하였다. 다만 이렇게 된 것은 가슴 속에 이해득실이 뒤섞여 어지럽고, 입에서 나오는 말이 그칠 새가 없었기 때문이다. 축원이 끝나자 그 신인(神人)이 과연 영험하여, 밤중에 꿈에 나타나 그 까닭을 분명히 말해주었다. 노승이 매우 놀랐다.
하늘 법정이 높다 말하지 말라,
신의 눈에 비치지 않는 것이 없나니.
반 달이 지나 위추관이 다시 왔는데 여전히 전번의 멀리 나와 맞이하는 광경이 아니었다. 위추관이 보고 또 웃으며 말하기를, "가람신이 여전히 영험하지 못한 모양이군" 하였다. 그런데 노승의 입에서 머뭇거리며 말하기를, "영험은 합니다" 하는 것이었다. 위추관이 말하기를, "영험하다면 어찌 또 알리지 않았소? 그리고 내가 전날 부탁한 것은 어떻게 되었소?" 하였다. 도적 화상이 말하려다 멈추고 또 한참을 멈추었다. 위추관이 크게 웃으며 말하기를, "가람신 이야기는 여전히 나를 얼버무리는 것이군" 하자, 도적 화상이 또 오래 생각하다가, 말하려니 추관이 화낼까 두렵고 말하지 않으면 평소의 말이 모두 거짓이 되니 참으로 말하기도 삼키기도 어려웠다. 겨우 "말씀드리기 어렵습니다"라고 하자, 위추관이 말하기를, "나와 화상은 방외의 지기인데 할 말이 있으면 하시오" 하였다. 화상이 말하기를, "가람신이 이렇게 말하는데 화상도 믿기 어렵습니다" 하고는 의자를 조금 당겨 위추관 가까이 옮기더니 조용히 말하기를, "가람신이 말하기를, 노공조께서는 훗날 온 초(楚)를 다스리는 안찰사가 되시고 재상의 지위에 이르실 것이라, 이 땅도 그 관할에 들게 되기 때문에 매번 알려왔다고 합니다" 하였다. 위추관이 웃으며 말하기를, "그런 일은 없을 것 같소" 하자, 화상이 말하기를, "평소에 알려온 것이 그 때문이었습니다" 하였다. 위추관이 또 말하기를, "오늘 알리지 않았으니 내가 초를 다스리지 못하게 된 것이겠군" 하자, 화상이 말하기를, "참으로 말씀드리기 어렵습니다" 하였다. 추관이 또 재촉하니 화상이 말하기를, "신인이 말하기를, 근래 노공조께서 한 사람에게서 육백 금을 받으시고 살아있는 자를 잡아 죽은 자 대신 처리하시어 한 사람을 단죄하려 하시니, 천부(天符)가 이미 내려져 초를 다스리실 수 없게 되었기에 알리지 않은 것이라 하였습니다" 하였다. 이 몇 마디가 위추관을 두렵게 하였다.
화산 꼭대기에 선 듯하고,
푸른 바다 끝에 떨어진 듯하네.
땀이 두꺼운 갖옷을 뚫고 흘러내리고,
몸에 주인 할 정신이 없구나.
억지로 낯빛을 유지하며 말하기를, "하관(下官)은 본래 스스로를 갈고닦았는데 한때 잘못을 범하여 억울한 사람이 생긴 것은 있소. 하지만 재물을 받고 법을 굽힌 것은 실로 없소" 하고는 자리에 앉지 못하고 일어나 배로 올라갔다. 도적 화상이 오래도록 정중하게 배웅하며 죄를 빌었지만 붙들 수 없었고, 다만 절 문까지 배웅하였다. 위추관이 손을 잡고 말하기를, "방금 하신 말씀은 가벼이 누설하지 마시오" 하자, 화상이 거듭 감히 그러하겠다 하였다. 이 위추관은 돌아가는 길 내내 몹시 답답하였다. 귀인을 불러내어 자진하여 진술서를 제출하게 하고 같은 동료에게 부탁하여 자백을 뒤집게 하고 싶었지만, 진치가 알면 뒤집어씌울까 두려웠다. 게다가 이 사건은 이미 부(部)에 보고된 것이었다. 만약 지워버린다면, 진짜 소굴은 망을 빠져나가고 가짜 소굴만 형벌을 받는 것이 모두 내가 돈을 받은 탓이 된다. 웃음이 나는 것은: 가난 때문에 젖호랑이가 되었다가, 후회하여 울타리 양이 되었구나. 부(府)에 당도하여 봉을 전달하여 문을 열게 하고 곧바로 서재에 들어가 울적하게 앉아 있었다. 그 마님은 또 몇 가지 공무를 처리하려고 추관이 돌아오기만을 고대하고 있었다. 그런데 곧바로 서재로 들어간다는 소리를 듣고 "이상하기도 하지" 하며 서재로 들어갔다. 그런데 서재 안에서 위추관이 장화 발로 두 번 쾅쾅 구르며 말하기를, "팔좌(八座) 하나를 허무하게 날려버렸구나" 하는 소리가 들렸다. 위 마님이 웃음을 머금고 들어와 인사하며 말하기를, "무슨 팔좌를 날려버렸다는 것이에요? 좋은 것이라면 사람을 시켜 찾아오면 되지요" 하였다. 위추관이 말하기를, "당신의 은자 육백 냥 때문에 이부상서(吏部尚書) 한 자리를 팔아버렸소" 하였다. 마님이 말하기를, "이부상서 한 자리를 살 수 있다면 그것이 은자보다 낫겠지요" 하였다. 위추관이 앞서의 일을 자세히 이야기해 주며 말하기를, "어둠 속에도 귀신이 있어 네 필의 말로도 따라잡지 못하는 법이오" 하고 탄식하며 슬퍼하여 거의 눈물이 흘렀다.
광주리에 가득 쌓인 것을 기뻐하였건만,
천도(天道)가 밝게 드러남을 누가 알았으랴.
위주(魏州) 성의 쇠를 모두 모아도,
그 '착(錯)' 자를 주조하지는 못하리라.
마님은 그가 원망하고 낙담하는 것을 보고 말하기를, "당신은 내가 또 무슨 짓을 할까 봐 이런 귀신 같은 소리를 하는 것이군요. 아무래도 수재 시절에 가난귀신이 당신 몸에 붙어서 하는 말 같아요" 하였다. 마님은 말해봐야 들어먹지 않는다 싶어 유유히 가버렸다. 얼마 뒤 장강릉(張江陵)의 새 법례가 내려졌는데, 남방의 강해(江海) 도적과 북방의 마적은 사실이 확인되면 모두 때를 기다리지 않고 사형에 처한다는 것이었다. 명이 내려오고 부에 문서가 도착하자, 이 귀인과 여러 강도들이 모두 저자거리에 끌려가 참수당하였다. 가련하구나.
본디 꽃거리의 주인이었건만,
두목을 참수하는 포고와 무슨 관계이랴.
잡초와 쑥이 모두 베임을 당하고,
채색 붓으로 풍뢰(風雷)를 짜 내었네.
위추관은 이를 듣고 더욱 불안하였다. 임기도 차지 않아 병이 들어 쇠약해지자 부득이 사직을 청원하고 고향으로 돌아갔으며, 몇 년이 지나지 않아 세상을 떴다. 이로 보건대 마땅하지 않은 것을 얻으면 드러나서는 사람의 비난이 있고 어둠에서는 귀신의 책벌이 있다. 대장부의 마음이 밝고 환하여 한 끝도 취하지 않는다면, 귀신이 없더라도 구차해서는 안 되거늘 하물며 재물을 도모하고 사람을 해침에 있어서랴. 천박한 견해로 말하자면 최악은 부인이니, 어찌 그로 하여금 주도적으로 행동하게 할 수 있겠는가? 이 병의 근원은 먼저 책도 읽기 전에 관리가 되기 전에 이미 부귀영달의 마음을 품었기 때문이다. 일단 관리가 되고 나면 모두가 제멋대로 행하여, 일을 그르치지 않는 자가 없다. 청하건대 재물을 지키는 탐욕꾼들에게 묻노니, 재물을 탐하는 것이 처자를 부양하려는 것인가, 관직을 얻으려는 것인가? 만약 일신도 보전하지 못하고 마땅히 얻었을 봉록과 지위를 모두 깎이게 된다면, 경성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유명(幽冥)의 일은 전적으로 믿을 수도 없지만 믿지 않을 수도 없다. 법으로 돈을 긁어내고 백성을 착취하는 것은 더욱 안 될 일이다.
분수를 따르는 것에 이르면, 비록 남이 재물을 얻더라도 죄과는 결국 내가 짓는 것이다. 영리한 척 멋대로 행동하면, 비록 이 속에 물들지 않았다 하더라도 결국 밝으면서 밝지 못한 것이니 억울함을 씻고 원통함을 눈 녹이는 네 글자에 저버리는 것이다. 근래에 또 이서(吏書)를 비호하여 죄를 벗어나게 하고, 실제로 사람을 죽인 자가 도리어 원고가 되고, 무고한 자가 집을 망치고 목숨을 잃는 경우를 본다. 무고한 풀을 베고 서생을 지푸라기 보듯 한다. 독촉 패가 불같고 공문 반박이 구름 같으니 반드시 옥사를 만들어내려 한다. 대체로 공문 반박은 이서의 손을 빌리니 그들이 마음대로 흔들도록 내맡기는 것이다. 다만 한 사람의 원통함이 펴지지 않고 도리어 또 사람을 죽이고 집을 망치는데도 태연하게 돌아보지 않는다. 다만 사람의 원한과 하늘의 노여움이 두렵고, 아마도 면하기 어려운 바가 있을 것이다. 그러므로 옛날 옥사를 다스리는 경계에 이르기를, "오직 관(官)과, 오직 보복(反)과, 오직 내(內)와, 오직 재물(貨)과, 오직 청탁(來)은 그 죄가 동일하다" 하였다. 관은 관환(官宦)의 세력이요, 반은 은혜와 원한의 보복이요, 내는 처자식이나 사적인 청탁이요, 재물은 뇌물이요, 래는 청탁 서신이다. 총괄하자면 법으로 사람을 죽이는 것이 하나이니, 옥사를 담당하는 자는 삼가고 두려워할지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