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성석 (醉醒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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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0회 궁한 처지의 이에게 의사(義士)가 금을 내놓고, 은혜에 크게 보답하여 현사(賢士)가 의로움을 취하다

험준한 기운이 찬 산처럼 굳세고, 흉금이 만경(萬頃) 유리(琉璃)처럼 맑으며, 뜨거운 창자 조목조목 더욱 공경스럽구나. 영웅의 기질이여, 천금도 아끼지 않아 같은 병에 걸린 이를 돕는도다.

마른 대나무에 청한한 소리를 불어넣고, 서로 가련히 여김에 반드시 맹세가 필요하지 않으며, 극맹(劇孟)과 주가(朱家)를 항상 자처하는도다. 마음이 밝고 맑으니, 높은 풍모를 고금이 마땅히 노래해야 하리라.

[우조 〈어가오(漁家傲)〉]

사람에게 가장 비천한 것은 인색함이라는 한 줄기 창자이다. 가장 끊어내기 어려운 것도 인색함이라는 한 줄기 창자이다. 자신에 있어서는, 돈이 산처럼 쌓여도 한 푼도 가볍게 쓰려 하지 않고, 쌀이 태창(太倉)처럼 많아도 한 알도 가볍게 나누려 하지 않는다. 남에 있어서는, 가장 가까운 친지와 친구가 기아와 추위와 곤궁한 처지에 있어도, 한 되가 한 말보다 낫건만 한 되도 주지 않으려 하며; 환난과 유리(流離)의 때에 한 냥이 열 냥보다 낫건만 한 냥도 보내 주려 하지 않는다. 차라리 천도(天道)가 넘침을 꺼리는 지경에 이르러, 아랫사람들이 재물에 혹하여, 한 푼 한 푼 쌓아온 것이 한 번의 불이나 물에 내맡겨지고, 도적에게 침략당하거나, 혹은 관리에게 빼앗기거나, 간악한 자에게 속아 빼앗기기도 한다. 심한 경우 가문이 쇠하고 복록이 끊어져 친족에게 돌아가도 조금도 은혜를 알지 못하며, 혹은 세도가 꺾이고 자산이 비어 남에게 의지해도 역시 걱정해 주지 않는다. 그제야 좋은 것은 돌아온다는 이치와 인색함이 이롭지 않음을 안다. 어찌 그 호걸들이 일찌감치 꿰뚫어 보지 못했으랴. 그들은 가득 차면 반드시 이지러지고, 모이면 반드시 흩어진다는 것을 알았다. 어찌 이 두터운 재물을 끌어안아 남의 질시를 받고, 하늘의 꺼림을 범하겠는가. 하물며 땅강아지 같은 미물도 서로를 돌볼 줄 아는데, 어찌 같은 잇속과 나이와 이익을 가진 이들이, 그 호소하는 소리를 듣고도 외면하고, 전전하는 꼴을 보면서 돌보지 않겠는가. 그래서 배면(裴冕)은 집안 재산을 기울여 장건봉(張建封)에게 주었고, 범순인(范純仁)은 곡식을 베풀어 석만경(石曼卿)에게 두루 도왔다. 만경은 그래도 옛 친구였지만, 건봉은 바로 우연히 만난 사람이었다. 머리카락을 잘라 짚을 끊어 밤눈 속에서 범규(范逵)를 배불리 한 것은, 어찌 넉넉한 집안이었겠는가? 오직 의리가 재물보다 무겁기 때문에 이름이 천고에 높이 남은 것이다.

장부는 의기(義氣)를 중히 여기니, 썩어 없어질 것이 어찌 족히 헤아리겠는가.

풍훤(馮諼)이 예전에 의리를 사두니, 명예가 끝없이 흘러오도다.

그러므로 자신의 것을 잘라내어 남의 궁핍을 구제하기는 어렵고; 서로 알지 못하는 사람을 구제하기는 더욱 어렵다. 서로 알지 못하는 사람을 구제하기 어렵지만; 자신이 가난하여 빌려야 할 때 구제하는 것은 더욱 어렵다. 의협스러운 대장부에게 있어서는 바로 어렵지 않다. 이 사람은 가정(嘉靖) 연간에 절강(浙江)과 직예(直隸)가 맞닿는 지방, 평망(平望) 근처에 살았다. 성은 보(浦), 이름은 기인(其仁), 자는 준부(肫夫)이다. 아버지는 곡식을 사고파는 장사를 하여 방도 한 채 있고, 밭도 몇 무, 은자도 몇 냥이 있었다. 어려서부터 유쾌하고 기개가 있어, 아버지가 과일을 주면 곁에 있는 머슴이 바라보는 것을 보고 그 자리에서 주어 버렸다. 아버지가 말했다. "내가 특별히 너 주는 건데, 어째서 남한테 줬느냐?" 그가 말했다. "그도 먹고 싶잖아요." 사람들은 모두 그를 바보라 웃었지만, 그 재물을 가볍게 여기고 사람을 아끼는 마음은 드러났다.

慷慨함은 하늘이 준 것이요, 돕고자 하는 마음은 오래된 것이로다.

어찌 높은 자리에 올라야, 비로소 사흘의 단비를 내리겠는가.

약관(弱冠)이 가까워질 무렵 부모가 차례로 돌아가시니, 의복과 식사, 관곽(棺槨)에 은자를 다 써 버렸다. 또 큰 무덤을 쌓았는데, 석양(石羊)과 석호(石虎)만 없었다. 사람들이 말했다. "아가씨, 죽은 분은 돌아가셨으니, 산 사람은 살아야지요. 은자 몇 냥쯤 남겨 두어 입이라도 먹여야 하지 않겠소?" 그가 말했다. "나는 아직 날이 길고, 좋은 날도 올 테지요. 그때 좋은 옷도 있겠지만 부모님을 일으켜 입힐 수는 없고; 좋은 음식도 있겠지만 부모님을 일으켜 드실 수는 없으니, 그때 후회하면 늦겠지요. 이 수의(壽衣)와 장례만큼은 아낄 수 없소." 사람들이 또 웃으며 말했다. "저 입 걸린 녀석! 가난해지면 무덤 위 나무를 베어다 며칠 땔 수 있겠지. 그 땅도 뼈를 파내고 팔면 몇 냥이 될 테니, 두고 보자." 다만 그들은 알지 못했으니:

자벌레도 펴지는 날이 있건만, 구천(九泉)의 귀신은 돌아올 때가 없도다.

천하에서 검소함으로 다투지 말고, 나무 그늘의 풍목지비(風木之悲)를 더욱 깊게 하라.

보준부는 부모를 위해 은자를 몇 냥 썼지만, 다행히 사람됨이 계산에 능하고 변통이 있으며 신의가 있고 또 慷慨하여 살아갈 수 있었다. 다만 慷慨했기 때문에 집안을 이루지 못했다. 몸에 은자가 몇 냥 있으면, 친지가 상을 당하거나 일을 치르는데 정말 가난하고 궁한 자를 만나면 주었고, 돈이 몇 꾸러미 있으면, 친지가 경제 활동을 할 수 있지만 밑천이 없는 자를 만나면 주었다. 방이 몇 칸 있으면, 서당 선생이 죽어 방 하나만 남아 팔아 장례를 치르고 처자가 몸 붙일 곳이 없으면 한 칸을 내주었다. 늙은 족숙(族叔)이 일흔에 자식 없이 홀몸으로만 남으면 데려다 봉양했다. 과부가 된 고모가 이십여 년 수절하며 불효한 아들이 외면하면 데려다 봉양했다. 그러다 보니 집안이 온전치 못해, 사람들은 양로원이 따로 없다고 말했다.

가난한 선비의 얼굴로 살겠다 맹세했으니, 넓은 집이라도 아끼지 않는도다.

밭이 몇 무 있었는데, 족형(族兄) 보기량(浦其良)이 백미(白米)를 운반하다 바람과 물에 조난하여 배상을 갚지 못하고, 그 밭을 몰래 팔아 버렸다. 그 사람이 와서 업을 일으키려 하고 족형이 와서 간절히 부탁하니, 그는 시비도 가리지 않았다. 사람들이 소송을 권하자 말했다. "족형이 불행하여 공무 때문에 집안을 망쳤으니, 의리상 마땅히 도와야 한다. 그가 빌리러 왔더라도 응했을 것이다. 이미 지나간 일을 공연히 돈을 아문에 낭비하며 무엇을 다투겠소?" 마치 일과 소송을 두려워하는 사람 같았다. 그러나 남의 일에 있어서는 과감히 나서며 한 번도 나약하지 않았다.

팔수(杕杜)에 깊은 정이 있으니, 우경(虞芮)의 다툼이 부끄럽도다.

억센 뼈대를 지고 있음을 허락하니, 어찌 여자 같은 행동을 하겠는가.

근처 마을에 성씨 과부가 있었는데, 대가(大家)로 할아버지는 효렴(孝廉) 통판(通判)이었고, 남편은 수재(秀才)였다. 일찍 과부가 되었고, 아들딸 하나씩이 아직 어렸다. 조상이 남긴 집 한 채와 이삼백 무의 기름진 논밭이 있었다. 한 조카가 있었는데 행실이 나빠, 그가 과부 홀로임을 업신여겨 어느 부사(副使) 집에 와서 투헌(投獻)하였는데, 값을 치렀는지 아닌지도 알 수 없었다. 여덟아홉 명의 늑대 같은 하인들이 차일 두른 배 두 척에, 앞에는 우툴두툴한 돌을 쌓고 뒤에는 비호기(飛虎旗)를 꽂아 세웠다. '진부(陳府)'라 쓴 두 개의 큰 등롱을 내걸고, 발판을 내리고 세 개의 빠른 노를 갖추었다. 작대기와 몽둥이를 빽빽이 갖추고, 뱀과 전갈 같은 호랑이 이리 같은 자들을 가득 실었다. 도착하는 곳마다 남녀 모두 놀라게 하고, 눈에 보이는 집집마다 닭과 개를 남기지 않았다. 바람처럼 일어나 기슭에 닿았다. 위세 있는 절월(節鉞) 패방(牌坊)을 메고 곧장 성씨 집에 갔다. 그 집에 삼사십 년 된 '소대 순량(昭代循良)' 패방을 떼어 내고 새것을 달았다. 조카를 데려와 말했다. "성씨 댁이 저희 아문에서 토지 값 일천이백 냥을 받았으니, 집과 논밭 모두 우리가 업을 일으켜야 합니다. 성씨 댁은 닷새 안에 집을 비우시오." 또 근처 소작인들에게 말했다. "내일 대상공(大相公)이 오셔서 경계를 박을 테니, 너희들은 소작 계약서를 써라." 예전의 주관 관리를 불러내어 打合(타합)시키며, 무마다 은 한 전, 동쪽 다섯 푼을 내야 소작을 줄 수 있다고 했다. 과부가 나와 따지려 하자, 이 거만한 하인들이 무슨 말인지 듣지도 않고 빨리 집을 비우라, 무안 당하지 말라고만 하더니 배에 올라타고 징 소리 한 번에 사라졌다.

황궁(帝閽)에 부를 수 없고, 승냥이와 호랑이가 횡행하는구나.

과부는 화도 나고 놀라 어쩔 줄을 몰랐다.

두 명의 장부 담당 관리가 말했다. "이것은 분명 족내(族內)에서 투헌한 것이오. 그런데 재산 없는 자가 돈을 받고 재산 있는 자가 공연히 집을 나가는 이치는 없소." 소작인들이 말했다. "이치로야 지금 원래 이치 없는 세상이오. 다만 소작 계약서를 달리 써서 우리한테 반 무당 돈을 더 받으려 하고, 더욱이 중간 사람에게도 돈을 내야 하니 어찌 감당하겠소! 성중 향관(鄕宦) 집에 귀속되면, 관리가 나와 소작료를 거두는데 모두 술밥을 내야 합니다. 동지(冬至)가 되면 관리들이 집에서 밥을 안 먹고 모두 소작인 집에 와서 폐를 끼칩니다. 붉은 서명의 고시(告示)로 첫 한도 둘째 한도 셋째 한도로 소작료를 거두는데, 한 알도 부족하게 하면 안 됩니다. 흉년을 만나 추수가 안 되어 한 두 말이 모자라면 그래도 따져 볼 수 있지요. 한두 섬이 모자라면 한 해에 한 번 대조를 맞추자 하면서, 전답이 있으면 전답을 쓰고, 전답이 없으면 자기 몸을 담보로 씁니다. 전답을 쓰면 내주고 가면 그만이지만, 몸을 담보로 쓰면 한 해에 보증금을 또 내야 합니다. 보증금이 부족하면 잡아다 때립니다. 맞아 죽으면 그냥 주인이 의남(義男)을 때려 죽인 것이요, 공연히 목숨만 버리는 것입니다. 지금 우리 마을에서도 논을 지을 수가 없게 되었어요!"

하늘에 메뚜기 떼가 없어도, 사람 중의 해충이 괴롭구나.

지나는 곳마다 땅이 붉고 마을이 비며, 눈 닿는 곳의 연기가 사라지고 불이 꺼지는구나.

마침 보준부가 걸어와서, 여러 사람들이 넋을 잃고 괴로운 글을 읽듯 서 있는 것을 보았다. 그가 말했다. "여러분! 나 하는 대로 하시고 나를 따라오시면, 진씨 댁이 업을 일으키지 못하게 할 수 있소." 여러 사람들이 물었다. "어떤 계책이오?" 보준부가 말했다. "진씨 아문은 지현(知縣)이 중개인의 문생(門生)임을 믿고 횡행하는 것이오. 그런데 이 지현이 좋은 관리가 되려 하여 혐의를 극도로 피하오. 내일 먼저 선제적 기선을 잡아, 현으로 몰려가 고발하면 지현이 틀림없이 내 말을 들을 것이오. 여러분이 나를 도와 주기만 하면 됩니다." 여러 사람들이 말했다. "괜히 일을 일으키는 게 두렵소." 보준부가 말했다. "일이 생기면 모두 내가 감당하겠소." 여러 사람들이 말했다. "오늘 말하기는 좋지만, 내일 혹시 나서지 않으실까 두렵소." 보준부가 말했다. "어찌 그런 이치가 있겠소! 내일 치라 하면 치고, 멈추라 하면 멈추고, 치명상을 입히지는 마시오."

마릉(馬陵)에 만 개의 화살을 매복하고, 밥 먹는 부뚜막 줄여 미친 사람을 유인하도다.

다음 날, 과연 한 척의 큰 배가 다섯일곱 척의 차일 배를 거느리고 왔다. 안에는 진 공자(陳公子)가 기생 둘을 끼고, 배동 둘을 데리고, 북을 치고 징을 울리며 이 마을로 접근해 왔다. 이 공자는:

[황앵아(黃鶯兒)]: 철에 맞는 복장에 검은 비단을 시험 삼아 입고, 가벼운 겉옷 위에 화사한 작은 복숭아꽃 같은 색깔, 옥고리가 검은 두건 위를 살짝 누르는 것이 교묘하다. 양말은 매끈매끈 한 줄기 같고, 걸음걸이는 가볍고 가볍게 몇 번 흔들리며, 주홍 신발을 천천히 끌어 단장이 뽐내는 것이 그럴싸하다. 가짜 풍류를 부리며, 살이 닿도록 늙은 어른 행세를 하며, 자기는 기품 있다 생각하는구나.

그 곳에서 이 기생과 노니는 것이:

[전강(前腔)]: 무성한 오얏나무 두 가지가 교태롭게, 동풍에 흔들려 버들가지를 누르며, 나풀나풀 물결 위를 오가며 뒤엉기도다. 꽃 가지에 기대어 한 번 손 뻗고, 꽃 심을 향해 한 번 건드리니, 미친 듯한 자태는 고치기 어렵도다. 요염함에 화가 나니, 갈대와 옥나무가 무슨 좋은 지기(知己)를 말하는가.

이 두 배동은:

[전강]: 어깨가 태산처럼 솟구쳤건만 끓는 물에 떨어진 새우처럼 허리만 굽어, 말소리 듣기 전에 먼저 훌륭하다고 외친다. 맑은 노래를 부채로 두드리며 돕고, 비위 맞추느라 걸음도 수고롭게 하며, 낮은 말소리는 남이 알까 두려운 것 같다. 마음도 조급하건만, 목청 크게 "아저씨"를 외쳐 관리 행세를 하는구나.

먼저 그 관리가 상륙하여 소작인들에게 대상공을 맞이하라고 했다. 보준부가 앞장서서 예닐곱 십 명을 이끌고 기슭가로 걸어갔다. 그는 먼저 사람을 시켜 기슭 근처의 진흙을 파서 헐렁하게 해 놓았다. 진 공자는 다행히 아직 상륙하지 않고 기생 하나를 껴안고 선창에 기대어 구경하고 있었다. 그때 보준부가 그를 향해 말했다. "당신이 어느 향관(鄕宦)이기에 감히 남의 전답을 빼앗으려 하오!" 진 공자가 바야흐로 얼굴을 굳히며 누구인지 따지려 할 때, 보준부가 치라고 외치자 기슭의 사람들이 한꺼번에 외치며 진흙 덩어리가 빗발처럼 쏟아졌다.

중이(重耳)가 위(衛)나라에 갔을 때 들사람이 흙덩이를 주었으니,

이 또한 매우 부끄러운 일이건만, 스스로 자초한 분함이로다.

차일 배들이 급히 강 건너로 밀려 나가 적어도 반 배분의 진흙 덩어리를 맞았다. 큰 배는 급히 밀 수 없어, 뒤 노꾼이 바삐 노를 젓다가 한 발짝도 움직이지 못했다. 앞뒤 밧줄은 아직 풀지 못하고, 판자 문짝은 모두 부서졌다. 탁자 위 그릇, 꽃병, 향로도 모두 부서지고 사람들이 몸 숨길 곳도 없었다. 보준부는 공자와 악행을 돕는 하인들만 치고, 배동과 기생 둘은 치지 말라고 했다. 배동들은 기생 곁으로 숨어들었다. 한 관리가 공자에게 말했다. "기슭에서 모두 당신을 보고 있소. 어서 두건을 벗고 도포를 벗어, 뱃전으로 오시오." 공자도 이에 따라 뱃전으로 기어가 노를 잡고 뱃사공 행세를 했다. 뒤 밧줄은 칼로 끊고, 앞 밧줄은 세게 흔들어 끊어, 건너편 기슭에 닿았다. 보준부는 이미 새 패방 현판을 배 위에서 두드려 가루로 만들었다.

새로 가져온 현판을 보내주었으니, 마치 지난 해 복숭아 부적 같구나.

진 공자는 몸을 빼내어 집으로 돌아가 급히 사람을 시켜 소장(訴狀)을 써서 땅 강도가 강탈했다고 고발하게 했다.

그런데 보준부는 이미 사람들을 모아 현 앞으로 가서 억울함을 호소했다. 현관(縣官)은 이미 진씨 집안이 줄곧 방자한 줄 알고 있었다. 이번에 보준부가 말하고 여러 사람들이 울며 외치자, 성씨 과부 집안 고아와 과부를 능멸하고 전답을 공연히 빼앗으며 소작인들의 소작료를 횡으로 빼앗는다고 했다. 지현이 즉시 진씨 집 사람들을 잡아들이라 차사를 보내고, 여러 사람들을 위무하여 복업(復業)하게 하니, 진 공자는 이제 강탈을 고발할 수 없어 와서 계약서 구매를 변명하려 했다. 지현이 말했다. "고아와 과부의 전답은 그들이 계약서를 내놓지 않았으니, 분명 투헌된 것이오. 이 하인들은 반드시 처벌해야 하오." 공자가 말했다. "노부(老父)의 체면을 봐 주시오." 지현이 말했다. "바로 은사(恩師)를 위한 것이오." 거듭 구해도, 다만 중간인과 성씨 조카만 중하게 처벌하여 투헌의 길을 막았다. 보준부 이 한 번의 거사로, 진 공자는 재산도 얻지 못하고 도리어 한 차례 손해를 보았으며, 배 한 척도 망쳤다. 양고기도 먹지 못하고 온몸에 누린내만 뒤집어썼다.

이에 이르러 사람들은 보준부가 자신의 재산이 남에게 도둑으로 팔려도 가만히 있은 것은 능력이 없는 게 아니라, 다만 재물을 가볍게 여기고 의리를 중히 여겼기 때문임을 알았다.

하루는 단곡(短糶, 소규모 곡식 거래)을 하러 성중에 갔다가 채권을 받으러 갔는데, 본 관할 이장(里長) 대(戴) 씨를 만났다. 그가 세금 은자를 납부하러 왔다가 현 앞에서 도둑에게 소매치기를 당해 납부할 돈이 없었다. 관아에서 또 출석을 독촉하니 몹시 당황하고 있었다. 보준부가 그를 보고 사연을 물은 후, 몸에 지닌 은자 여섯일곱 냥을 꺼내 건네주어 한 차례 매질을 면하게 해 주었다.

서강(西江)의 물이 필요 없으니, 마른 물고기가 이미 새 생명을 얻었도다.

이 이장도 집안 살림이 있어 체면을 중히 여기는 사람이었다. 그의 도움을 받아 매우 감격하며 말했다. "대개 갑수(甲首)들이 이장을 만나면 가난하다 고통스럽다 하며 정전(丁錢) 한두 닢을 요구하려고 얼마나 많이 왕복을 하는가. 그분은 이처럼 慷慨하니 좋은 사람이다." 집에 돌아가서는 이 은자를 그에게 돌려주었다. 보준부가 말했다. "시간이 있으면 이렇게 급하게 안 해도 됩니다." 그를 남겨 밥을 먹게 하며 직접 준비했다. 이장은 그의 혼사가 높으면 높아서 안 되고 낮으면 낮아서 안 된다는 것을 알고 말했다. "아우는 이미 이십이 넘었는데 어찌 아직 혼인을 안 했소? 내가 보기에 단곡으로는 몸을 부양할 수 있어도 집안을 이룰 수는 없을 것 같소. 내게 은자가 몇 냥 있는데 아우에게 드릴 테니, 이자는 받지 않겠소. 아우는 좀 더 먼 곳에서 장사해 보시오." 이튿날 사람을 시켜 집으로 맞이하여, 은자 이백 냥을 꺼내 주며 말했다. "아우가 너무 적다 하거나 넘나들기에 부족하다면, 열흘 남짓 지나 백 냥을 더 드리리다."

소매가 길어야 춤추는 사람에게 도움이 되고, 보검은 열사(烈士)에게 바쳐야 하리.

보준부는 날을 잡아 은자를 허리에 차고 배를 불러 상주(常州)로 갔다. 오강(吳江)을 지나 오룡항(五龍港)에 거의 이를 무렵, 배 한 척이 기슭 옆에 가로 막혀 있고, 세 사람이 마주하여 통곡하고 있었으며, 서너 명은 땅에 앉거나 누워 신음하며 고통을 호소하고 있었다. 보준부가 말했다. "이건 분명 약탈을 당한 것이로다. 어디로 가는 것인지는 모르지만. 날씨가 차가운데 옷이 다 벗겨졌으니, 얼어 죽지 않아도 병이 들 것이니, 이들을 구해야겠다." 뱃사공이 말했다. "막 출발했는데 이런 재수 없는 일을 만났습니다. 괜히 관여하지 말고 가시지요." 보준부가 소리쳤다. "멈추라면 멈추어라, 아직도 노를 젓느냐?" 뱃사공은 할 수 없이 대었다. 보준부가 뛰어올라 물어 보니, 원래 복건(福建) 거인(舉人) 세 명이었다. 한 명은 성이 임(林), 한 명은 성이 황(黃), 한 명은 성이 장(張)이었다. 이 곳에서 도적을 만나 짐을 빼앗기고, 하인들은 다치고, 옷은 다 벗겨졌는데, 북경에 갔다가 복건으로 돌아가는 길에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할 형편이라 이렇게 통곡한다고 했다. 보준부가 말했다. "여러분이 경사로 가는데 은자가 얼마나 있어야 충분하오?" 임 거인이 말했다. "노비(路費)가 한 사람에 서른 금이오. 지금 옷과 이부자리도 열 냥 남짓은 있어야 하오." 보준부가 말했다. "그러면 여러분은 걱정 마시오. 모두 이 학생이 맡겠소. 가까운 소주(蘇州)에서 바로 마련하여 북상을 편하게 하시오." 가까운 마을에서 탁주 몇 잔을 사다가 추위를 쫓게 하고, 또 자신의 이불을 꺼내 바람을 막게 했다.

바람 비 내리는 녹림(綠林)의 밤에, 누가 범숙(范叔)의 추위를 가련히 여겼는가.

옷을 풀어 주고 밥을 밀어 주니, 이 덕을 간에 새기고 싶도다.

소주에 도착하여 창문(閶門) 근처에서 그들을 위해 숙소를 구했다. 담요와 비단 솜을 사서 이불을 만들어 주고, 세 거인을 위해 옷을 지어 주었다. 부재 명부를 분실하였기에 부(府)에서 조회를 해 주었다. 또 노비 서른 냥을 내주었다. 세 사람은 성명과 주소를 묻고 말했다. "타일에 반드시 보은하겠소." 두 쪽이 작별했다. 이 세 사람은:

병든 새가 탄환을 벗어나, 멀리 하늘을 찌르는 날개를 펼치는 것 같았다.

다만 이 보준부는:

풍훤(馮諼)이 의리를 사고 돌아와, 거문고 퉁기는 것이 얼마나 쓸쓸한가 같았다.

이제 그는 여전히 단곡밖에 할 수 없었다. 집으로 돌아오니 마침 대 이장을 만났는데, "보 형은 어찌 이리 빨리 돌아오셨소? 곡식을 얼마나 팔았소?" 하고 물었다. 보준부가 말했다. "오룡항에서 회시(會試)에 가는 거인 세 명이 도적에게 약탈당해 행리와 노비가 모두 없기에, 제가 대부분을 드리고 이제 다시 단곡을 할 참입니다." 다른 사람 같으면 반드시 이 사람이 확실하지 않아 쓸데없는 곳에 쓴 것이라거나, 아니면 기생집에 갔다거나 도박했다거나, 혹은 속으로 이 거짓말을 만들어냈다고 했을 것이다. 그 대 이장은 그를 의협스러운 사람으로 믿어 조금도 의심하지 않고 다만 말했다. "제가 드린 백 냥은 이미 마련되었으니 가져가서 영업을 하십시오." 보준부도 사양하지 않고 곧 가서 받아 왔다.

주고받음에 너와 나를 잊고, 간담이 멀리서 서로 비추는구나.

관중과 포숙아가 가난한 사귐 때, 다른 세상이지만 같은 도(道)를 생각하노라.

보준부는 원래 수완 있는 사람이어서, 대 이장이 이렇게 대해 줌을 보고 스스로 장사를 하여도 잘 되지 않는 것이 없었다. 바로 이 세 거인도, 궁한 처지에서의 도움이 친지의 그것과 달랐음을 생각하며 말했다. "그날 그분의 노비 보조가 없었더라면 어찌 경사에 가서 이 공명을 이룰 수 있었겠소? 그분이 옷을 만들어 주지 않았다면 얼어 죽어 관직도 할 수 없었겠지요." 세 사람이 의논하여, 절강과 직예 지방에서 그에게 가까운 곳을 찾아 살펴봐 줄 사람을 구하기로 했다.

은혜가 폐부 깊이 적시니, 감사함에 어찌 아침저녁을 가리겠는가.

장차 수후(隋候)의 구슬로, 이 맥맥한 정을 갚으리라.

뜻밖에도 황 진사(黃進士)는 병부 주사(兵部主事)에 선임되고, 임 진사(林進士)는 한림원에 선임되었는데, 오직 장 진사(張進士)만 사람을 통해 청탁하여 상주 부 추관(常州府推官)에 선발되었다. 이 두 지방은 팔차(八差) 지방이라 불렸다. 순무(撫按) 외에 조원(操院), 조원(漕院), 학원(學院), 염원(鹽院), 순조(巡漕), 순청(巡靑), 순강(巡江), 경기(京畿) 등 각각 탄핵과 추천이 있으니, 추천 받으면 다시 추천 받고, 탄핵 받으면 다시 받기 어려운, 극히 하기 어려운 지방직이었다. 그는 오직 보은(報恩)하는 마음이 간절하여 어쩔 수 없이 취임했다. 출발하기 전에 임, 황 두 분이 모두 예물과 서신을 위탁하며 장 사부(張四府)를 전송하였다. 임, 황 두 분이 말했다. "보준부는 환난지교(患難之交)이니, 오늘 연형(年兄)이 우리를 위해 그를 돌봐 주시고, 타일에 우리도 연형을 대신해 그를 살펴보겠습니다. 그가 올 때 포의(布衣)임을 꺼리지 마시고, 연형께서 격식을 깨고 대해 주십시오." 장 사부가 말했다. "이것은 소제(小弟)의 일이니, 힘을 다하지 않음이 없겠습니다."

오직 은혜 받은 곳이 있어, 마음에 새기어 감히 잊지 않는도다.

장 사부가 상주에 부임했다. 대체로 줄을 대고 빌붙으려는 자들은 찬 아궁이에도 불을 놓는 법이어서, 그를 놓아 주지 않았다. 시험에 합격했을 때 축하가 있고, 부임했을 때 축하가 있으며, 반년이나 석 달이 지나면 찾아와 이익을 도모하려 했다. 보준부는 결국 장사하는 사람이라 그쪽 사정에 어둡고, 또 보은하려는 마음이 너무 담담하여 관보(官報)를 찾아보거나 대선(大選) 보고를 보지 않았다. 상주는 그가 드나드는 길목인데도, 추관이 그 전날 구한 장 거인인지 알지 못했다. 오히려 장 추관이 그가 오지 않음을 보고, 사람을 시켜 은자 이십사 냥, 노주(潞綢) 두 필, 자신의 후보 서신과 임, 황 두 분의 서신 예물을 가지고 그를 찾았다. 곡식 거래 상점에서 찾았으나 이틀이 지나도록 찾지 못하고, 집에 가 보니 또 없었다. 이웃에게 물으니 말했다. "그분은 평소 강호에만 있고 집에는 별로 없습니다." 언제 돌아오는가 하니 말했다. "외지에 나간 사람이 어찌 때를 정할 수 있겠소?" 집안사람에게 물으니 말했다. "서른이 넘은 분인데, 이름 있는 진사·거인·감생(監生)·생원도 아니고, 장사꾼 집안에 지나지 않으시오. 반드시 유명한 집 큰 집안을 고르시어 재가한 농부의 딸에게는 장가가지 않으려 하시니, 이제 처실이 없어 철장군(鐵將軍)이 문을 지키고 있소." 심부름꾼은 할 수 없이 복명할 수밖에 없었다.

단혈(丹穴)에서 태어난 봉황 새끼처럼 스스로 생각하니, 벽오동에서 기탁하여 살아가도다.

소박한 가시나무 숲에는, 발 딛기를 기꺼이 하지 않는구나.

장 사부는 고개를 가로저으며 믿지 않았다. "당신이 잘못 찾은 것이오. 어찌 백여 냥을 꺼내 줄 수 있는 사람이 중년에 아직 가정이 없겠소?" 한창 서신을 수정하여 심 동년(沈同年)에게 부탁하여 방문을 청하려는데, 마침 순사(巡司)가 소주 감사를 위탁받은 차사로 오게 되었다. 그가 소주에 이르러 바로 패(牌)를 발하여 오강을 감사하게 했다. 이때 마침 절강과 직예에 가뭄과 메뚜기 떼가 있어 쌀값이 급등하여, 곡식 매매하는 자들이 모두 큰 이익을 얻었다. 보준부가 단풍진(團風鎭)에서 쌀 오칠백 석을 사 가지고 경구(京口)로 들어오다가, 대 이장의 아들이 관련 사건이 있다는 말을 들었다. 그는 동업자에게 배를 맡기고 직접 집에 가서 처리해 주었다. 이장 아들 대잠(戴簪)은 오강 창고 서리를 맡고 있었다. 현관이 경사에 입경(入京)하러 가면서 유임하여 창고에서 은자를 몇 가지 신청하여 자기 이름으로 된 종이 속환(贖換)으로 보충했다. 또 다음 해 인역(人役) 공식(工食)을 미리 내보내어, 한편으로는 은혜를 보이고 다른 한편으로는 입경 비용을 충당하려 했다. 그런데 뜻밖에 새로 부임한 삼부(三府)가, 처음에는 양 아문이 어지럽게 교체되는 것이 두려웠다. 전임자 간 후에는 다만 창고 서리와 계산을 맞추었다. 보충한 것은 내가 남의 꽁무니를 주워 주지 않겠다며 추징하지 않으려 하고, 미리 빌려준 것은 내 밥그릇의 것을 어찌 그가 먹을 수 있냐며 삭제해 주지 않으면서, 모두 창고 서리가 횡령한 것으로 몰아 추징하고 군역에 처하려 했다.

권관(權官)이 약탈한다는 말은 흔하지만, 어찌 남의 도적 노릇을 해 주겠는가.

행취(行取) 과도(科道)직으로 내보내 주면서, 다만 서리에게서 이식을 뜯는구나.

보준부가 와서 打合을 청하며 말했다. "공식(工食)은 지급해야 하는 것이나 다만 시기가 이른 것이오. 지금 공식 삭감을 대신 해 주시오. 종이 속환은 창고 서리가 가산(加算) 이 분 예에 따라 보상할 테니, 삼부께서 추징 보충해 주시기를 청합니다." 한창 이야기하는데, 진 공자가 보준부가 앞장서서 자기 체면을 망쳤다며 그를 혼내 주려 했으나, 현사(縣使)가 있는 동안 감히 하지 못했다. 마침 현사가 떠나니, 그의 쌀배가 오강 근처에 있음을 알아내어 사람을 보내 불러 세우게 했다. 그를 금령을 어기고 이익을 노리며 밀매 경계를 넘었다고 고발했다. 삼부가 보준부를 잡아들이고, 봉피(封皮) 두 장을 봉인하여 배를 봉인했다. 관에 몰수하려 하고는, 또 와서 값을 흥정했다. 백성을 위해 이익을 도모하는 게 아니라, 오직 자신의 사기꾼 짓을 늘려 가는 것이었다.

마침 장 사부가 도착하여 공무를 마친 후 전송할 때 말했다. "이 곳에 보기인(浦其仁)이라는 사람이 있으니, 인형(寅兄)이 한 번 방문해 주시기 바랍니다!" 이 '방문'이라는 말을 삼부는 잘못 이해했다. 나가서 심복 아리(吏書)에게 말했다. "이 지방에 보기인이라는 토호가 있소?" 아리가 말했다. "현재 밀매로 인하여 노야(老爺)의 철방(鋪)에 있습니다." 삼부가 말했다. "순원(按院)이 그를 원하는 것 같으니, 내일 먼저 비해(批解)를 일으켜 감사청으로 보내시오." 다음 날 압송 명령이 내려지자, 보준부가 말했다. "나는 바로 상사를 보고 싶소. 내 배는 분명히 호광(湖廣) 배로, 무호(蕪湖)와 허서(許墅)에 모두 배표가 있소. 금지는 당연히 본지에서 내보내는 것을 금지하는 것이지, 다른 지방에서 들여오는 것을 금지하지 않았소." 해원(解人)은 이미 철쇄를 채워 버렸다. 청(廳) 앞에 이르니, 갖은 비용이 오칠천 전이나 나갔다. 또 매질 비용이 얼마냐고 흥정하려 했다. 들어가 비해(批解)를 제출하자 해자(解子)가 아뢰었다. "보기인을 압송해 왔습니다!" 사부가 고개를 들어 보니, 보준부가 철쇄를 차고 단청 앞에 무릎을 꿇고 있었다. 사부가 급히 해인에게 말했다. "누가 족쇄를 채우라 했느냐? 빨리 치워라! 어서 문을 닫고 족쇄를 풀고 보 상공의 방건과 색의(色衣)를 가져오너라." 스스로 청(廳)을 내려가 한 손으로 끌어올려 내당으로 이끌었다. 보준부는 장 거인임을 알아보았다.

죄수의 굴레에 갇혀 죄없는 원숭이를 한탄하니, 누가 의이(薏苡)의 억울함을 밝혀 주랴.

어찌 알았으랴 남면(南面)한 이가, 뜻밖에도 옛 왕손(王孫)임을.

청사의 관리가 밖에서 방건 하나와 도포 한 벌을 빌려다가 보준부에게 주었다. 보준부가 말했다. "죄인이 감히 입을 수 없습니다." 장 사부가 말했다. "이것은 현관이 나의 은형(恩兄) 방문을 착오한 것이오. 은형께서 탓하지 마시오!" 보준부가 말했다. "실은 쌀을 팔다가 남의 무고를 당하여 방금 방 안에서 끌려온 것입니다." 사부가 말했다. "무슨 일이 있든 소제가 있으니 걱정 마시오." 반드시 빈주(賓主)가 나누어 앉았다. 스스로 은자 한 냥을 꺼내 현에서 밥을 마련하게 했다. 말했다. "임, 황 두 연형이 문안을 전하며, 예물과 서신이 있어 전에 사람을 보내 드렸소이다. 처실(妻室)이 없다 하던데, 정말 그런지요?" 준부가 말했다. "정말 없습니다." 장 사부가 말했다. "언제 배우자를 잃으셨소?" 준부가 말했다. "장가를 든 적이 없습니다." 사부가 말했다. "이것이 참 이상하군요, 어떤 까닭이오?" 준부가 말했다. "실은 높이 보면 올라갈 수 없고, 낮게 보면 내키지 않아 지금까지 늦어진 것입니다." 사부가 말했다. "그러면 형이 청춘 십여 년을 헛되이 보내신 것이군요. 소제가 심 형(沈年兄)에게 부탁하여 형을 위해 훌륭한 배필을 구하겠습니다."

형의 재주가 백란(伯鸞, 즉 梁鴻)과 같으니, 맹덕요(孟德耀, 즉 孟光)와 짝지어야 하리.

봄 산을 향해 붓을 적시니, 환하게 웃음 하나가 이루어지도다.

또 말했다. "형에게 무슨 일이 있으면 와서 말씀하시오. 내 문지기에게 일러 두겠으니, 첩(帖)이 있으면 즉시 전하도록 하겠소." 준부가 말했다. "한 가지 일이 있으나 갑자기 말씀드리기 어렵습니다." 사부가 말했다. "말씀해 보시오." 보준부가 말했다. "기인(其仁)이 서른에 아내가 없으니, 어찌 여유 재물로 드릴 수 있었겠습니까. 그것은 의형(義兄) 대치성(戴雉城, 즉 대 이장)이 빌려준 밑천이었습니다. 그날 드릴 때 그분은 아무 말도 없었고, 다시 밑천을 빌려주었습니다. 즉 기인이 은혜를 베풀 수 있었던 것은 대 형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대 형의 도움이 없었다면, 기인이 뜨거운 마음이 있어도 도울 방법이 없었을 것입니다. 이제 그 아들이 창고 서리로 있어, 전임 관원이 지출하고 후임 관원이 삭제해 주지 않아 억지로 결좌죄(坐贓罪)와 군역에 처하려 합니다. 대인께서 억울함을 밝혀 주실 수 있다면, 바로 근원을 찾아 보은하는 것입니다. 기인이 터무니없는 말로 이익을 취하려는 것이 아닙니다." 사부가 말했다. "대 형의 일, 인형(仁兄)의 일을 내일 呈文을 봉하여 보내시면, 소제가 즉시 청백하게 하겠습니다. 이 외에 아주 중요한 일이 있으면 와서 말씀하시오. 형을 위해 전지(田地)를 사고 아내를 얻는 비용을 감당하겠소."

은혜를 한 번 식사에서 깊이 받았으니, 천금 아끼기를 감히 하겠는가.

표모(漂母)는 비록 바라지 않았지만, 한 고조(韓侯)는 스스로 마음이 있었노라.

다음 날 과연 각기 呈文을 제출했다. 사부가 삼부에게 면담을 청하여 말했다. "쌀은 초(楚) 지방에서 왔으니, 각 관세 표(票)가 있는 것으로, 이는 경내에서 내보낸 것이 아니오. 마땅히 고발한 자를 엄히 처벌하여, 곡식 사재기 풍조를 막아야 하오. 대 서리의 종이 속환은 발락부(發落簿)에 기재되어 있으니, 이것도 전임 관원이 늘 하는 일이니, 인형(寅兄)이 한 번 징비하는 수고를 하시면 되오. 공식은 이미 영수증이 있으니, 이것은 서리가 횡령한 것이 아니오. 이 두 呈文 모두 이치가 있으니, 인형이 한 번 처리해 주시기 바랍니다." 삼부가 돌아와, 보준부의 쌀배를 즉시 풀어 주었다. 몰수될 것은 몰수되지 않고, 도리어 고발한 자를 매질하여 칼을 씌워 효시(梟示)하게 했다. 대잠의 일도, 보충한 것은 결국 추징 허가를 받고, 지급한 것은 결국 삭제 장부에 기입되었다. 군역은 물론이고 한 가지도 추궁하지 않았다. 대씨 집안도 바라던 대로 보상하고 싶었던 삭감분도 면하고 바치고 싶었던 분례(分例)도 면하게 되었다. 삼부 또한 보준부가 상소를 올릴까 두려워, 대 서리를 통해 협조하게 하여, 사부에게 드릴 혼인 비용을 도울 수 있게 했다.

상관이 날카로운 명을 내리자, 하관이 발을 받들어 따르는구나.

한마디 봄 같은 온기로, 마른 누런 것도 생명이 되어 살아나도다.

심 진사(沈進士)가 이 동년 공조(公祖)를 받들며 중매쟁이를 보내어 보준부를 위해 신부 감을 찾았다. 우연히 그 성씨 과부의 딸이 이미 열일곱 살이고, 과부가 그의 은혜를 생각하여 선뜻 허락하며 예물을 따지지 않았다.

그 해 의로움에 의지하였을 때, 이미 붉은 실로 묶어 놓은 것이로다.

사부가 수시로 청사 관리를 시켜 일을 물어 왔지만, 보준부가 말했다. "장 나리의 헌강(憲綱) 아문에 나도 감히 오지 못하고, 일도 감히 말씀드리지 못하겠습니다." 장 사부가 몹시 송구스러워, 심 진사에게 이백 냥을 빌려 그에게 혼인 비용으로 보냈다. 이 심 진사는 이백을 빌려 최소 사백 냥이라 하며 모두 청에 따랐다. 이로부터 보준부는 혼인이 늦었지만 마침내 명문의 아름다운 배필을 얻었다.

밝은 달이 빈 침상을 비웃고, 비단 이불이 남아돌아 한스럽더니.

달같이 고운 이 새로 들어옴을 기뻐하니, 아름답기가 부용(芙蕖)보다 낫구나.

남방 주둔군에서 끌어온 수레 가득한 의이(薏苡, 율무)를, 어떤 자가 수레 가득한 명주(明珠)와 犀牛라고 고발하여 억울한 누명을 씌우려 한 일이 있었다. 장 사부는 그의 성격을 알아, 재물에 급하지 않고 가볍게 번거롭게 청하지 않는 사람이라는 것을 알아 모두 스스로 보내 주었다. 최소 백여 냥에서 흥정이 시작되니 직접 오는 거래가 성사되기 쉬워, 다른 집에 가지 않을까 더 흥정이 잘 되었다. 저 준부는 장 사부의 명성을 손상시킬까 두려워 함부로 남의 원한을 사지 않으려 두세 건은 타협했으나, 그래도 천여 금이 생겼다. 전에 보준부는 집안이 없어 오두초미(吳頭楚尾)에서 날마다 밖에 있었는데, 이제 서른 남짓의 젊은 나이에 고운 낭자를 얻어 당신도 탐하고 나도 사랑하게 되었다. 강호가 위험하다 해도 밖에 나가고 싶지 않아, 다만 밑천을 내어 몇 명의 동업자에게 뱃길을 맡겼다. 조상이 남긴 집은 오랫동안 살지 않아 허물어져 있었는데, 이제 앞쪽 청(廳)과 뒤쪽 누각을 새로 개조했다. 밭 두 무는 족형이 팔아 버렸으나 다시 사 왔다. 예전에 위세를 부리던 진 공자는 아버지가 임지에서 죽었다. 평소 투헌한 토지 및 자녀를 담보로 저당 잡힌 것들이 모두 와서 소송을 걸었다. 관송(官訟)에 얽혀 가산이 탕진되고, 도리어 토지를 팔아야 하게 되니 그가 모두 좋은 값을 치르고 사들였다.

逆취(逆取)는 지키기 어렵고, 잘못 들어온 것은 반드시 잘못 나가는 법이라.

창상(滄桑)이 한순간에 변하니, 탐욕스러운 사람이 참으로 깨달아야 하리.

예전에 보준부는 무일푼이었는데, 이제 전사옹(田舍翁)이 되었다.

이런 식으로 한 해 남짓 지나, 황 주사(黃主事)가 장 사부에게 서신을 보내어 말했다. "보 형의 가정 문제는 연형(年兄)께서 이미 맡으셨소. 전정(前程)의 일은 소제가 한 팔을 거들겠으니, 그를 북으로 올 수 있도록 자원해 주시오." 황 주사가 그를 위해 감생(監生) 자리를 납부시켰다. 같은 고향 사람의 보증서를 찾아 은자를 납부시키고, 본 지방에 공문을 보내어 리적(里籍) 결장(結狀)을 가져오도록 하여, 장 사부가 경사로 떠나보내도록 했다. 보준부는 아름다운 아내와 두터운 재산, 앞 못과 뒤 정원으로 쾌적하게 지내며 문을 나서려 하지 않았다. 이제 돼지를 잡아 메는 형국이 되어, 장 사부가 또 두 가지를 마련하여 오륙백 금을 합쳐 그의 안가(安家) 비용과 노비로 삼았다. 전에 보준부는 가짜 방건을 쓰더니, 이제는 진짜 방건이다. 예전에 관아를 만나면 두건과 원령(圓領)을 갖추고 예부(禮部) 유사(儒士) 자격이었는데, 이제 진짜 북옹(北雍) 감생이 되었다.

다만 황금이 많아지면, 그대의 위상이 바뀌는 것이라.

어찌 차가운 등불을 연모하여, 학문의 바다에 잠길 필요가 있겠는가.

보준부는 끝내 대씨 집안에 대한 정을 잊지 않아, 대잠을 위해서도 두 번의 고과(考過)를 도와 함께 경사로 갔다.

경사에 도착하니 임, 황 두 분이 바로 찾아왔다. 임 길사(林吉士)는 자신이 아직 힘을 다하지 못했다고 연거푸 말했다. 이 임 길사에게 가까운 친척이 있어 남직(南直) 학원(學院)을 맡고 있었다. 일찍이 보준부에게 학적 하나를 넣도록 권했으나, 준부가 그 기회를 대 이장의 둘째 아들 대영(戴纓)에게 주어 학적에 들게 했다. 다만 그 정이 아직 다하지 않았으므로, 보준부가 또 이전 일을 꺼내어 대잠을 데리고 임, 황 두 분을 뵙게 하니, 두 분 또한 예의를 갖추어 대했다. 준부의 경사 체류 비용과 감생으로서의 폐백은 모두 황 주사가 감당했다. 1년 후 두 사람이 그를 위해 면정(面情)을 얻어 역만(歷滿) 발력(撥歷)으로 만들었다. 이때 준부가 세 분 환난의 벗과 사귄 지 어느새 사 년이 되었다. 임 길사는 산관(散館)하여 절강도 어사(浙江道御史)를 얻었다. 황 주사는 이부(吏部) 험봉사(驗封司) 주사로 바뀌었다. 이부 관리가 이부 일을 말하는 것은 극히 쉬운 일이었다. 두 사람이 납연(納捐) 합격을 도와, 보준부는 현승(縣丞)을 얻고, 대잠은 전사(典史)를 얻었다. 비록 자색 인끈과 금인(金印)은 아니나, 그래도 백성을 다스리는 부모관이었다.

돈도 생기고 세력도 생기니, 안 되는 일이 없다. 두 사람도 후보(候補)를 하게 되었다. 뜻밖에 임 어사가 순번이 되어 절강을 맡게 되었다. 황 주사 댁에 가서 말했다. "이번 짐은 나한테 넘겨야겠소. 다만 내가 절강을 순안(巡按)하니, 절강 결원을 위해 청탁하기가 어렵소. 이것을 연형에게 부탁하오." 황 주사가 또 손을 써서, 오정(烏程)의 관량 현승 하나와 장흥(長興)의 순포 전사 하나를 얻었다. 두 사람이 자격증을 받아 황 주사에게 감사 인사를 드리고 경사를 떠났다. 황 주사는 또 그들을 위해 몇 봉의 간절한 서신을 써서 수순(守巡) 당상(堂尊) 사부(四府)에게 보냈다. 오직 정의가 구산(丘山)처럼 무겁기에, 뱀이나 새처럼 보답하기를 아끼지 않는도다.

경사를 떠나 상주에 이르러 장 사부를 뵈었다. 장 사부는 그가 경사로 간 후에도 수시로 사람을 보내 예물을 보내며 돌봐 주었다. 이번에도 그에게 부임 비용을 더 내주었다. 두 사람이 집에 이르러 손님 방문 답례와 조상 제사를 지내고 한껏 행세하며, 가족을 데리고 부임지에 이르러 추천 서신을 제출했다. 이부 서신을 받들지 않는 자가 어디 있겠는가. 비사(批詞)가 빠질 리 없었고, 임 안원(林按院)이 이르자 좋은 임무도 생겼다. 상사(上司)도 그들이 대순(代巡)과 일맥이 있음을 알고, 더욱 우대해 주었다. 두 사람이 임지에서 모두 오육천 금을 거두었다. 임기가 차자, 이 세 분의 도움으로 보준부는 면양주(沔陽州) 주동(州同)이 되고 대잠은 진주(陳州) 리목(吏目)이 되었다. 세 분은 여전히 돌봄을 게을리 하지 않았다. 오히려 이 두 사람이 진퇴(進退)를 알아 말했다. "은자를 뽑아 둔 것으로 충분하다. 날마다 사람들 앞에 무릎을 꿇고 절하는 것보다, 겨울날 화로에 장작불 피우고 백주와 황계(黃雞)를 즐기며, 여름날 녹음과 마름꽃 연꽃 속에 푸른 마름과 흰 연밥을 즐기는 것이 낫지 않겠는가." 모두 벼슬을 그만두고 집으로 돌아가 즐겁게 지냈다. 요컨대 걸출한 선비는 아낌없이 뱉어낼 줄 안다. 가난할 때도 재물을 아낌없이 내놓을 줄 알고, 뜻을 얻었을 때도 관직을 아낌없이 내놓을 줄 안다. 두 가지 모두 재물을 가볍게 여기는 것이다. 그러므로 보씨와 대씨는 세상에서 드문 사람이요, 세 군자(君子)의 두터운 보은은 지나치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