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성석 (醉醒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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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9회 사소한 원한으로 두 목숨을 해치고, 음욕에 눈이 멀어 일시에 화를 부르다

손뼉 치며 광부를 비웃노니, 색(色)에 눈이 멀어 제 몸을 잊었구나.

함정과 올무를 놓아 어리석은 자를 빠뜨리고, 고요한 밤 탄환처럼 내달려 썩은 나무 꺾듯 하였으나,

즐거움을 이루려 했건만.

운우(雲雨)는 잠깐이요 왕법은 속이지 못하나니.

용의 여의주를 건지노라 스스로 명주를 얻었다 여겼으나,

한때의 쾌락 끝에 목이 잘려 피로 얼굴이 물드는구나.

[우조 〈낭도사(浪淘沙)〉]

일이 이루어지면 어떤 명목이 되고, 이루어지지 않으면 어떤 결말이 되는가 — 이는 양초산(楊椒山) 선생이 나라의 일을 주장함에 대해 논한 말이다. 내가 생각건대, 사람이 나라의 일에 임하여 참으로 붉은 마음 흰 뜻으로 慨慷히 짐을 지되, 일이 이루어지면 충의의 이름을 구하지 않아도 되고, 이루어지지 않더라도 충의의 귀신이 되는 것이 무슨 대수겠는가. 다만 나쁜 짓을 저지르는 자들은, 혹 경솔히 일을 벌이거나, 혹 극도로 간교하여, 일이 이루어지면 간악하고 도둑질하며 속이는 것으로 귀결되고, 이루어지지 않으면 교수형이나 참형이나 유배를 면치 못한다. 이러한 결말, 이러한 명목이 참으로 가소롭지 않은가. 그러면서도 이런 보잘것없는 결말과 명목을 무릅쓰고 명예와 이익을 도모하되, 잠깐의 쾌락을 탐하니, 이는 배를 갈라 구슬을 감추는 것과 다름없다. 술과 색의 쾌락이란 한순간에 지나지 않으니, 무엇이 그리 중요하단 말인가. 이것이 바로 태조 고황제 여섯 가지 훈계 중에 금하신 것, "그릇된 짓을 하지 말라"는 것인데, 어찌 사람들은 깨닫지 못하는가. 경사(京師)는 황궁 아래 있어, 위무는 부와 현이 맡고, 순찰은 오성(五城)이 맡으며, 거기에 더하여 집사 아문, 동창, 포영, 금의위(錦衣衛)가 있다. 각 관아 아래 수많은 기교(旗校)와 번역(番役)이 있고, 각 기교와 번역 곁에 또 수많은 도우미와 부하가 있다. 더욱이 이름을 사칭하는 자, 줄에 기대는 자까지 있으니, 진짜 사람들이 개미처럼 모여들어 감시의 눈이 촘촘하기 담장 같건만, 사람들은 여전히 두려워하지 않는다. 오늘 칼을 쓰고 죽으면, 내일 또 그런 자가 나타나고; 이 사건이 마무리되면 저 사건이 이미 발각된다. 요컨대 사방의 악인들이 모여들고 각 성(省)의 야망가들이 집결한 곳이다. 전도(前途)에 관한 것이라면 살두(活切頭), 비과해(飛過海), 가인(假印), 원납(援納), 가납(加納), 매결(買缺), 발선(挖選), 좌결(坐缺), 양결(養缺) 등 온갖 폐단이 있다. 돈과 양식에 관한 일이라면 포람(包攬), 작위(作偽), 단흠(短欠), 계연(稽延)의 폐단이 있고, 구매에서는 영침(領侵), 모파(冒破), 타흠(拖欠)의 폐단이 있다. 이를 보건대, 본색(本色)을 징수하여 운반할 때 엄히 책벌하면서도 간사한 해상(解商)의 손에 넘어가면 흙모래처럼 흩어지니, 법령이 삼엄하여 본색 납부가 극히 까다롭다. 열 냥을 거둬도 한두 냥에 미치지 못하고, 한번 불량으로 퇴짜를 맞으면 물에 가라앉은 듯 사라진다. 차랍(茶蠟), 안료(顏料), 비옷은 체납이 수년에 이르고, 철과 구리의 구매, 초와 유황도 체납이 수만에 이르니, 폐단이 백 가지로 터져 나온다. 형벌 문서에 이르러서는, 위로는 청탁과 뇌물이 있고, 아래로는 법을 농간하고 문서를 왜곡함이 있으니, 이는 모두 사람을 잡아 공갈하는 깡패들의 밥벌이다. 그래서 경사에 공갈 깡패가 성행한다. 이 사람들을 생각해 보면 그래도 영리한 사람들이건만, 영리한 사람들이 어쩌다 이리 영리하지 못한 짓을 하는지 모르겠다. 사람들은 그들이 공갈로 남을 해친다 하지만, 하늘은 일부러 그들을 혼미하게 만들어 목숨을 잃을 짓을 하게 하는 것이다. 내 말인즉슨, 이들은 모두 앞만 보고 뒤를 잊으며, 이익을 보면 해를 잊어, 명목과 결말을 생각하지 않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생각하면 어리석은 자도 성인이 되고, 어두우면 어리석은 자도 미치광이가 되나니.

명예의 깨끗함과 더러움은, 나뉘는 것이 한순간에 달렸도다.

이 사람의 성은 왕(王)이요, 항렬로 넷째이며, 절강 사람으로 경사에 흘러들어 살아, 사람들은 소왕사(小王四)라 불렀다. 그는 태어날 때부터 좁은 창자 같은 심보를 지녔으면서도, 겉으로는 동정처럼 넓은 흉금을 가진 척 꾸몄다. 위로는 권세 있는 환관 감독 모씨(毛實)와 교유하고, 부위(府衛)의 훈척 관가들과도 사귀었으며, 중간으로는 요직 아문의 서리와 기인 패거리가 있었고, 아래로는 칼을 차고 다니며 풍문을 잡아 그림자를 쫓는 건달 무뢰배들이 있었다. 그래서 조금이라도 흠이 있는 자는 모두 그의 입에 든 먹이나 다름없었다. 화해를 사려 하면 그가 나서서 중재하고, 화해를 사지 않으려 하면 고발하는 자는 고발하고 증인이 되는 자는 증인이 되어, 집안을 망하고 목숨을 잃지 않으면 멈추지 않았다. 심지어 분수를 지키는 부유한 백성에게도 일을 핑계 삼아 무고장을 날릴 줄 알았다. 그래서 경사에서 이름을 얻고 집안을 일으켰으니, 아무리 풍기 있는 성 위의 어사가 그를 잡으려 해도 쉽지 않았다. 설령 잡아 처벌하려 해도, 황상의 성지가 아닌 이상, 다른 거물급 배경으로 반드시 벗어나는 방법을 찾아냈다.

사람을 무는 것이 호랑이보다 교활하고 원숭이보다 간사하여,

여구(黎丘)의 술법처럼 더욱 깊이 환상을 부리는구나.

왕장(王章)이 상위(象魏)에 높이 걸렸어도,

그물을 뚫고 나온 큰 고기를 막을 수 없도다.

집에는 본처 한 명과 첩 두 명이 있었고, 가까운 친척으로 형제 왕삼(王三)이 있었다. 돈 벌기가 쉽다고 여기며 날마다 조방(朝窠)을 들쑤시고 기방을 드나들었다. 얼굴이 예쁜 부녀자를 보면 반드시 손에 넣어야 직성이 풀렸다. 하루는 기명창(器皿廠) 앞을 지나가다 어떤 아이가 "뜨거운 호떡이요, 불처럼 뜨거워요!" 하고 외치는 소리를 들었다. 그 소리가 채 끝나기도 전에 좁은 골목 안에서 "화소(火燒) 사세요" 하는 대답 소리가 들려왔다. 그 목소리는 마치:

꽃 아래 봄새의 고운 지저귐 같아, 지나가던 사람의 발걸음을 멈추게 하는 것 같았다.

왕사는 그 소리가 곱다고 여겨 일부러 걸음을 늦추었다. 골목 끝에서 갈대 발을 걷어 올리며 여인 하나가 걸어 나왔으니, 마치:

울타리 너머로 한 가지 붉은 살구꽃이 내밀어, 동풍에 흔들리는 자태가 유연하도다.

황동전 열 닢을 집어 아이에게 건네고, 버들가지 광주리에서 화소 여섯 개와 파파(波波) 네 개를 골라 갔다. 이번에 왕사는 유심히 살펴보았으니:

새벽 단장 아직 정돈 못 한 듯 녹운(綠雲) 같은 머릿결이 느슨하고, 배꽃 같고 엷은 안개 같이 곱구나. 눈빛은 옥처럼 흘러 넘치고, 두 뺨이 살짝 붉어 분도 연지도 바르지 않았건만 더욱 아름답네. 파릇파릇 두 봉우리 무산(巫山)에서 솟아나고, 봄날 가는 손가락 옥처럼 새로 갈아놓은 듯. 길고 길어 한 치도 줄지 않고, 가냘프면서도 풍만하구나. 이 고운 용모, 마땅히 마음속 그리움을 더욱 짙게 하리.

[우조 〈계군요(係裙腰)〉]

왕사는 그녀가 들어가는 것을 지켜보다가 아이에게 물었다. "저건 뉘 집 여인이냐?" 아이가 대답했다. "병과(兵科) 서기 노인 진씨(陳氏)의 딸인데, 아직 혼인은 안 했어요." 왕사가 말했다. "내가 맞이하여 세 번째 첩으로 삼아야겠다." 그리하여 중매쟁이를 그 집에 보냈다. 노인 진씨도 남쪽 사람으로, 집이 가난하여 병과에서 대필 일로 연명하고 있었다. 처 장씨(張氏)와 아들 진일(陳一)이 있었는데, 나이는 스물이었다. 그는 여러 부류의 사람들과 어울렸다. 딸은 대저(大姐)라 불렸다. 중매쟁이가 그 집에 가서 먼저 축하를 건네며 말했다. "나으리 댁에 경사가 났어요. 이편 왕 나으리는 경사에서 가장 이름 높고, 가장 대단하며, 돈도 있고 세력도 있는 분이세요. 그 분의 마님이 해산하다가 중풍에 걸려 자리에서 일어나지 못하시는데, 살림을 돌볼 사람이 없다 하십니다. 따님이 예쁘고 능한 줄 알고 특별히 저를 보내어 살림마님으로 모셔 가고자 청하시는 겁니다." 자세히 물어보니 소왕사였다. 진일은 견문이 없는 젊은이라 말했다. "왕 넷째는 경사에서 알아주는 사람이니, 우리가 그에게 기대면 나중에 좋은 일이 있겠지요. 괜찮을 것 같습니다." 노인 진씨도 말했다. "우리에게 딸 하나뿐인데, 재산 있는 사람에게 맞추어 온 집안이 기댈 수 있으면 좋겠다." 오히려 장씨가 말했다. "이 혼사는 금방 결정할 수 없으니, 천천히 생각해 봐야 합니다."

덩굴 식물이 가냘프게 뻗어 나가니, 기댈 곳을 신중히 가려야 하네.

가지를 쑥대 밭으로 뻗으면, 중도에 꺾일까 두렵구나.

나중에 알아보니 소왕사 집에는 이미 첩이 둘이나 있었다. 장씨가 말했다. "이런 사람은 진정한 경화자제(京花子)요, 버들개지 같은 심성이로다. 아내가 있으면서 또 첩을 들이고, 첩이 둘이나 있으면서 또 버리고 셋째를 들이려 하니, 이다음에 또 예쁜 사람을 보면 우리 딸을 버리지 않겠느냐는 걸 어찌 알겠소." 그래서 말을 둘러대며 거절했다. "우리 같은 소가(小家)에서 딸 하나를 소중히 키웠소. 우리 내외가 노후를 의지해야 하니, 혼자 사는 사람에게 시집보내야지, 남의 첩은 시키지 않겠소." 여러 차례 오가며 말해도 진씨 집안은 끝내 허락하지 않았다.

어여쁜 여인을 경솔히 가벼운 사내에게 잘못 시집보내지 마소.

그 후 왕사가 말했다. "그쪽에서 혼자 사는 사람에게 시집보내려 하니, 내 동생 왕삼은 아직 아내가 없으니 왕삼에게 맞추어 주겠다." 또 한가로운 참견꾼이 진씨 집안에 말했다. "이 자가 남을 속여 넘기려 하는 것이오. 허락해 봐야 왕삼에게 시집보낼지 왕사에게 시집보낼지 누가 알겠소? 왕삼이라 해도 이름만 형제지, 실은 그 집에서 바구니 들고 저울질하는 머슴이나 다름없소." 이 때문에 진씨 집안은 끝내 허락하지 않았다. 얼마 지나 사람의 주선으로, 시재(施材)라는 군적(軍籍)의 사람에게 시집보냈다. 집에 방이 하나 있고, 또 방 두 칸 세를 받으며, 군량(軍糧) 두 명 몫이 있었다. 한 명은 자신이 직접 부역하고, 한 명은 매월 은 두 전 사 푼으로 어마감(御馬監)에 빈역을 사 놓았다. 한 달에 통틀어 거친 쌀 두 섬을 받아, 섬마다 쌀표를 팔면 황동전 팔백 닢씩, 은 한 냥 가치가 되어 석탄 사고 술 사기에 충분했다. 진대저는 그와 결혼하여 매우 만족스러운 날들을 보냈다. 아침에는 온돌 앞에 불을 피우고 사발에 물을 데워, 세수를 하고 나서 화소 몇 개나 달콤한 죽을 사다가 아침밥을 먹었다. 낮에는 부지런하면 솥에 쌀이나 좁쌀 밥을 지어 두 끼 먹고, 덜 부지런하면 국수를 사다 끓여 먹었다. 저녁에는 소주를 사서, 돈이 있으면 생선이나 고기 같은 반찬을, 돈이 없으면 두부나 파 마늘을 샀다. 기름 몇 푼, 장과 식초 몇 푼으로 그럭저럭 지냈다. 온종일 밤까지 온돌에 앉아, 그래도 한 쌍이 서로 좋게 지냈다.

배고프면 황량(黃粱)이 있고 피곤하면 담요가 있으니, 어디 가서 신선을 찾겠는가.

눈썹 나란히 더욱 아리따운 여인이니, 낙천부(洛川賦)를 읊으며 신선을 꿈꿀 필요 없네.

그런데 하루는 본관에서 공문이 내려와 그를 창평주(昌平州)로 배속하여 황릉(皇陵) 공사에 부역시키게 되었다. 청탁으로 빠지려 했으나 빠질 수 없었다. 아내가 어린 부녀자라 혼자 지내기 불편하니, 대저를 장인 집에 맡겨 두고 홀로 부역을 나갔다. 창평은 경사에서 육십 리 거리인데, 떠난 지 두 달이 넘도록 소식이 없었다. 사람을 시켜 소식을 알아봤더니, 어떤 이는 "내관 집으로 불려가 일 하러 갔다" 하고, 어떤 이는 "일이 너무 힘들어 내관에게 시달리다 도망쳤다" 하며, 또 어떤 이는 "담장 밖에서 나무 하다가 병마에 잡혀갔다" 하였으나, 확실한 소식이 없었다. 진대저는 직접 돈을 꺼내 오빠를 시켜 알아보게 했으나 역시 확실한 소식을 얻지 못했다. 이렇게 한 해 남짓이 지나도록 진대저는 생과부로 지냈다.

점을 쳐도 돌아올 기약이 묘연하니, 빈방에 홀로 자리 위에 등불 그림자만 흔들리네.

그 무렵 완량(阮良)이라는 자가 있었는데, 금화(金華) 사람으로 나이 스물네다섯이었으며, 진일과 의형제를 맺은 사이였다. 자주 집에 드나들었는데, 역시 불순한 마음을 품고 있었으며, 말마다 대저를 유혹하려 했다. 그러나 대저는 정절이 굳어 완량을 크게 상대하지 않았다. 완량은 늘 이렇게 말했다. "시씨(施) 매부는 소식이 끊어진 지 오래이니, 아마도 이미 돌아가신 것 같소. 매제 같은 날씬한 몸매에 꽃 같은 용모를 그이 때문에 낭비할 수는 없지 않소? 좀 활기 있게 움직여야 하오." 노인 진씨는 본분 있는 사람이라 말했다. "남편 있는 부인을 누가 데려가겠소? 성급히 보냈다가 남편이 죽지 않고 나타나면, 진흙으로 사람을 만들어 낼 수도 없는 일, 그 소송을 어찌하겠소?" 완량이 말했다. "매제가 시집가려 하면 내가 아문에 익숙하니 먼저 증명서를 받아 오겠소. 그게 뭐가 두렵겠소?" 오히려 진대저가 말했다. "먹을 것 입을 것이 있는데 왜 시집을 가요?"

우연히 만난 사이지만 부부 연을 맺었으니, 누추한 집에도 깊고 고운 절개가 있다네.

이런 식으로 또 한 달 남짓 지났다. 그런데 갑자기 어느 날, 두 사람이 걸어 들어왔다. 뒤에 선 사람은 청색 옷에 방건을 쓰고 눈가리개를 한 채 목에 밧줄을 묶어 함께 들어왔다. 무슨 말도 할 새 없이 노인 진씨를 한꺼번에 묶어 내순포 아문(內巡捕衙門)으로 끌고 가서 다섯 밤 동안 파출소에 가두었다. 진일은 당황하여 감히 나서지 못하고, 사람을 통해 이곳저곳 알아보니, 병부의 서기 한 명이 위조 인장 공문을 만들었는데, 노인 진씨가 그것을 누군가에게 판 적이 있다고 한다는 것이었다. 내관 아문은 돈이 있으면 살고 돈이 없으면 죽는 곳이었다. 황상이 민심 사정을 꿰뚫어 보시어 일찍이 안민창(安民廠) 화재 때 내외 집사 아문을 엄히 경계하신 바 있지만, 그래도 완전히 없애지는 못하였다. 노인 진씨는 억울함을 변명할 수 있었지만, 급박하게 석방되지도 못했다.

관법이 茶보다 쓰고, 아전의 독이 호랑이보다 독하니.

신명을 감동시킬 십만 냥이 없으면, 어찌 매질을 면하겠는가.

그때 완량이 찾아와 말했다. "이 사건은 분명 억울한 것이오. 하지만 아문에서는 당신 혼자만 억울한 것이 아니라, 큰 재력이 있어야 빠져나올 수 있소. 왕사는 수완 있는 사람이니, 그가 일찍이 매제를 첩으로 원했는데, 지금 말을 해서 매제를 그에게 보내면 감옥 문을 나올 수 있소." 장씨는 초조한 마음에 말했다. "그 왕사 타령만 하는구나! 천리(天理)가 있다면 저절로 나오겠지." 진대저도 완량을 한번 쏘아보며 말했다. "나는 시집 안 가요. 당신이 쓸데없이 나서지 않아도 돼요." 완량이 웃으며 말했다. "대저 씨, 밤이 길테니, 사람을 쥐어뜯지 않을까 걱정이오." 진대저가 화를 내며 말했다. "가세요! 앞으로 이런 허튼 소리 하러 오지 마세요!" 마침 때가 되었다. 완량은 체면을 잃고 문을 나서 얼마 가지 않아 왕사와 마주쳤다. 왕사가 말했다. "꼬마 완아, 어디 가는 길이야?" 완량은 환심을 사려고 말했다. "제가 오늘 좋은 마음으로 갔다가 오히려 무안을 당했어요." 왕사가 말했다. "누가 그 더러운 년이기에 표범 심장이라도 먹었냐고, 내 동생을 건드려? 내가 가서 그 머리채를 틀어쥐고 동생 원한을 풀어 주겠다." 끌어당기며 가려다 물었다. "어느 창부 집이야?" 완량이 말했다. "창부가 아니라, 대접을 받을 줄 모르는 진대아씨(陳大兒)요. 남편도 그림자도 없고, 아비는 잡혀 있으니, 내가 중매를 서서 형님께 보내드리고, 형님이 처리하시고 아비를 구해 주시라 했건만, 그 고약한 년이 화를 내며 문도 못 들어오게 하네요. 진일이는, 형님만큼이야 못하지만 그래도 이름뿐인 형제인데, 막아 주기는커녕 그냥 내버려 두더군요." 왕사가 말했다. "그러면 화내지 말고, 천천히 놀려 줄 테니, 우선 우리 집에 가서 술이나 한잔 하자."

청주(靑州) 종사(從事)를 찾아 평원(平原) 독우(督郵)를 몰아내려 하니,

사람들은 번뇌가 단번에 사라진다 하지만, 나는 오히려 마른 다툼이 일어날까 걱정이네.

그런데 이 술이 좋지 않게 마무리되었다. 집에 도착하여 왕사가 술을 가져오라 했다. 먼저 볶은 뼈다귀 한 그릇이 나왔다.

고기 내장 순대 한 그릇, 그 밖에 삶은 닭과 구운 내장, 바삭한 돼지 껍데기가 나오고, 술은 궁중 술이었다. 막 마시려 할 때 왕삼이 들어왔다. 왕사가 앉으라 부르고 함께 앉아 술을 마셨다. 완량이 또 진대저 모자가 말을 듣지 않는다며 가증스럽다고 했다. 왕사가 소리 질렀다. "진대가 그리도 고고하다니, 내 어떻게든 그년을 한 번 욕 봬주겠다." 완량이 말했다. "저도 그년에게 한 번 보복하고 싶소." 왕삼이 말했다. "그년이 우리에게 시집오려 하지도 않는데, 어떻게 손을 대겠소?" 속담에 말하기를, 색욕의 담력은 하늘만큼 크다 하는데, 여기에 술까지 더하니 하늘보다 더 커졌다. 왕삼이 한참 생각하더니 말했다. "진일 모자가 집에 없는 틈을 타서 강제로 끌어다 집안에 가두어 두면, 내 마음대로 할 수 있지요." 완량이 말했다. "사형, 그러면 저는 손을 댈 수 없게 되는군요." 왕사가 이 거친 사내 또 잠시 생각하다가 말했다. "내게 절호의 계책이 있소. 그 뿌리를 끊어 버리면 진대를 차지할 수 있지." 아무 말도 않고 완량의 귀에 몸을 기울여 몇 마디를 속삭이며 말했다. "내일 밤 그대가 필요하오. 일이 이루어지면 순도 은 이십 냥을 줄 테고, 그대에게 좋은 신부를 구해 주겠소." 왕사는 또 왕삼에게도 조용히 말했고, 왕삼이 말했다. "너무 심하긴 하오." 그날 술자리가 파했다.

세 사람이 황금보다 단단하게 결의하였으나, 귀신 같은 계략으로 하늘과 땅을 짓밟으려 하는구나.

누가 알겠는가, 술 속의 모의가, 목숨을 잃는 계략을 빚어낼 줄을.

이튿날은 이월 초닷새였다. 진씨 집 모자는 집안에서 관청 일이 풀리지 않아 노인 진씨를 구할 길이 없다고 걱정하고 있었다. 그때 완량이 문을 들어서며 말했다. "어제 술김에 몇 마디 실례를 범했으니, 오늘 특별히 와서 사죄합니다." 진대저는 듣고도 상대하지 않고 뒤를 돌아 온돌 안쪽 벽을 향해 앉았다. 진일이 말했다. "동생, 내왕을 하려거든 앞으로는 말을 좀 삼가게." 완량이 말했다. "대저 씨가 화를 냈고, 어머니도 아직 언짢아 보이시니, 내가 가서 술이나 석 잔 대접하지요." 진일이 말했다. "됐어요, 됐어." 완량이 끌어당겨 놓지 않아, 둘이 곧장 가 버렸다. 이것이:

즐거움을 찾으러 갔으나 석 잔 술이 아직 끝나지 않았건만, 들어가도 일곱 자 몸을 다 채우기 어렵구나.

한참이 지나 초경쯤 되었을 때 장씨가 말했다. "밤이 늦었는데 왜 돌아오지 않느냐?" 그런데 완량이 무언가를 손에 들고 급히 들어왔다. 진일이 입고 나간 낡은 청색 도포였다. "방금 진일 형과 술을 마시고 나오다 장독자(張禿子)를 만났는데, 진일 형에게 돈을 빌려줬다며 받으려 한답니다. 하나는 갚겠다 하고 하나는 없다 하여 서로 다투다 싸움이 붙었어요. 저더러 이 도포를 증거물로 가져가서 빨리 가서 구하시라 합니다." 장씨가 말했다. "내가 임신 팔 개월이라 몸이 무거워 걷기가 불편한데." 완량이 말했다. "바로 그 몸집이 커야 사람들이 무서워한단 말이에요. 꼭 가셔야 해요. 제가 부축해 드릴게요." 한 손으로 부축하는 척 끌어당겨 문 밖으로 나갔다. 진대저는 무슨 일인지 몰라 집에서 불안한 마음을 품고 있었다. 이편에서 완량은 과연 진일을 청해 술을 마셨고, 하늘이 어두워질 무렵 기명창 앞에 이르렀다. 완량이 말했다. "공장 근처에 요즘 몰래 기방이 생겼으니, 잠깐 들러 보고 집에 가세." 억지로 끌고 갔다. 흙언덕 옆 인적 없는 곳에 이르자, 진일이 방심한 틈에 왕사가 벽돌 하나로 태양혈을 내리쳐 땅에 쓰러져 정신을 잃었다. 왕삼과 완량이 발길질을 더하여 즉시 기절시켰다. 세 마리 호랑이가 양 한 마리를 노리니, 목숨이 어찌 보전되겠는가. 완량이 몸에서 도포를 벗겨 가지고 장씨를 꾀어 오니, 장씨가 도착하여 아들이 땅에 쓰러진 것을 보고 몸을 숙여 살피려 하는 순간, 세 악인이 일제히 달려들어 장씨도 해치웠다.

교묘한 계략으로 즐거움을 구하고, 미친 모의로 금지된 것을 탐하였으니.

가련하다 모자의 목숨이여, 길가에 쓸쓸히 쓰러지는구나.

완량이 말했다. "진대저는 이제 돌봐 줄 사람이 없으니, 우리 함께 가자고." 또 장씨 몸에서 비단 치마를 벗겨 냈다. 완량이 앞장서서 진씨 집으로 달려가니, 진대저는 홀로 온돌 위에 멍하니 앉아 외로운 등불을 마주하며 소식을 기다리고 있었다. 갑자기 완량이 달려 들어오며 말했다. "어머니가 가시다 떠밀려 넘어져 기절하셨어요. 이 치마를 증거물로 가져오라 하시며 어서 가라 하십니다." 온돌 앞으로 와서 끌어당겼다. 진대저가 말했다. "나 혼자 가는 건 무서워요." 또 다른 사람이 들어와 함께 끌어당기며 말했다. "어서요, 어서요." 대저는 이때 당황하여 급히 소리를 지르려 했다. 완량이 탁자 위에서 부엌칼을 집어 들며 말했다. "소리 지르면 죽인다!" 앞서 온 사람이 입을 틀어막고, 또 한 사람이 슬쩍 들어와 등불을 불어 껐다. 완량이 몸을 진대저에게 겹치자, 진대저는 일찌감치 온돌 위에 눌려 넘어졌다. 양손은 각각 사람들에게 잡혔고, 완량은 이미 속곷을 벗기고 다리를 들어 올려 선두를 차지하였다.

계곡 꽃이 그윽한 향기를 품고, 향을 품어 바위 골짜기를 향하는데.

어찌 나비와 벌이 미쳐 날뛰며, 분분히 멋대로 경박하게 구는가.

진대저는 발버둥쳤으나 벗어날 수 없었고, 입 속의 기가 새어 나오지도 못하여, 그 무도한 짓을 한참 동안 당했다. 끝나자마자 또 다른 사람이 말했다. "이 음탕한 년, 내가 여러 번 데려오려 했건만 오지 않더니, 오늘은 내 손에 들어왔구나." 더욱 난폭하게 달려들었다. 진대저는 꼼짝없이 당하면서 마음속으로 생각했다, '이건 분명 왕사구나.' 또 한참이 지나 옆의 사람이 말했다. "이미 실컷 했으니, 내게도 양보해야 하지 않겠소?" 두 번째 사람이 몸을 빼고 또 한 사람이 덮치면서, 입을 막던 손을 놓아주었다. 진대저가 급히 소리쳤다. "강도가 사람을 죽이고 강간한다! 사방 이웃이여, 살려 줘요!" 한 번 외치자 이 패거리가 급히 일어섰다. 진대저도 몸을 일으켰는데, 이미 이 패거리가 부축하고 밀고 끌어당겨 방문 밖으로 끌어내려 했다. 그 중 한 사람이 진대저의 무릎 바지끈을 풀었다. 막 작은 골목을 돌아나가려 할 때, 골목 입구에서 이미 외치는 소리를 들은 사람들이 일어나 문을 열었다. 세 사람은 할 수 없이 진대저를 버리고 일제히 달아났다.

벌과 나비가 미쳐 날뛰어 몹시 시달렸으나, 차가운 향기 잃기 전에 얼마나 남았으랴.

다행히 꽃 지키는 방울 끈이 촘촘하여, 한 가지가 바위 기슭에 아직 남아 있구나.

진대저는 정신을 가다듬어 옷을 고쳐 입고, 이웃들에게 이 고통스러운 일을 말했다.

마침 내순포 파패(把牌)가 야간 순찰을 하고 있었다. 이 파패는 으슥한 곳을 잘 돌아다니며, 말을 타고 번청색 판자 쌍을 데리고, 저 멀리 올리브 씨앗 모양 등롱 한 쌍을 뒤따르게 하고 있었다. 어두운 그림자 속에 흙언덕 가에 두 취객처럼 쓰러진 것이 보였다. "빨리 사람을 불러 잡아다가 깨워라!" 하여 가서 잡으려 하니, 두 구의 시체였는데 누가 때려죽였는지 알 수 없었다. 급히 지방 주민을 불러 등불 아래 살펴보니, 그 중 한 사람이 말했다. "이 남자는 공장 앞에 사는 진일처럼 생겼소." 파패가 곧 사람을 보내 이 사람을 압송하여 피해 가족을 불러오게 했다. 일행이 달려오니, 진대저는 바로 그 곳에서 오빠와 어머니가 꾀임에 빠져 간 후 행방불명이라고 말하고 있었다. 차사가 기명창 아래 흙언덕에서 이미 맞아 죽었다고 말하자 큰소리로 통곡하였다.

한이로다, 홍안이 박명하여, 뼈와 살을 구덩이와 시냇물에 잃었구나.

문을 잠그고 이웃 몇 명과 함께 파패를 만나러 갔다. 오빠가 먼저 완량의 말에 따라 술 청에 이끌려 나갔고, 어머니도 완량이 오빠가 싸움에 휘말렸다며 꾀어 나갔는데 무슨 이유로 맞아 죽었는지 모르겠다고 고했다. 이경(二更) 무렵에는 두 사람과 함께 강간하러 왔는데, 그 중 하나는 말을 들어 보니 소왕사였다. 둘이 마치고, 이웃에게 들키자 달아났다고 했다. 파패가 즉시 각 지방 이웃들과 번기(番旗)를 합동하여 체포에 나섰다. 밤새 소란스럽게 찾아다녔지만 갔을 때는 이미 모두 도망쳤고, 가족과 가까운 이웃들이 잡혀 전전하며 공초를 끌어내다가 사흘 만에 모두 먼 곳에서 잡혀 왔다. 인명 사건이 중대하기 때문에, 비록 그를 돕는 자들이 많았어도 미룰 수 없었다. 원혼이 달라붙어, 도망가려 해도 도망갈 수 없었다.

하늘의 마음은 엄히 응보하고, 왕법은 간악함을 징계하나니.

우습구나, 어리석은 무리들이여, 함정에서 빠져나가기 어렵구나.

세 사람이 달아났지만 이미 공초를 넘긴 것이나 다름없었다. 파패가 진대저의 구술에 따라 절절이 심문하며 협목(夾) 형신과 매질을 가했다. 인명에 있어서 왕사는 주모자이고, 완량과 왕삼은 실행자였다. 강간에 있어서 첫 번째는 완량, 두 번째는 왕사, 왕삼은 강간 미수였다. 진일을 때려죽이는 데 처음 치명상을 가한 것은 왕사이고 나중은 완량과 왕삼이었다. 장씨를 때려죽이는 데 완량이 먼저 배를 걷어차고 그 다음 왕사와 왕삼이 발로 차고 때려 죽음에 이르게 했다. 진대저를 강간하는 데 칼로 공갈하고 무릎 바지끈을 풀며 밀친 것은 완량, 입을 막고 왼손을 잡아당긴 것은 왕삼, 등불을 끄고 오른손을 막으며 부축한 것은 왕사였다. 하나하나 공초가 명백하여, 마치:

진시황의 거울처럼 밝게 비추고, 우왕의 솥에 새기듯 하였으니.

간악한 행상이 비록 숨겨져 있었으나, 끄집어내니 조목조목 분명하구나.

순포를 관할하는 마 태감(馬太監)이 공초를 보니, 살인과 강간 모두 큰 극형에 해당했다. 장씨의 배 속에 팔 개월 된 태아가 있었으니, 어미가 죽어 아이도 망한 것인데, 비록 때려죽인 것은 아니나 죽음에 이르게 한 원인이 있었다. 검시가 이미 밝혀진 터라, 그는 결국 무고한 세 사람을 죽인 사건으로 제목(題目)을 올려 형부(刑部)에 이첩했다. 요즘 형부는 비박(批駁)이 엄하고 참벌이 무거워, 사인 중에서도 무서워하는 길로 여겼다. 열 명 중 여덟아홉은 과거 출신 관료로, 강직한 이가 드물었다. 외청(廠衛材營)의 제참(題參)이 오면 감히 이의를 달지 않았다. 공초와 참어(參語)에 따라 조문을 찾아 맞추고, 일인이 무거워야지 가벼우면 안 되며, 들어가야지 나오면 안 된다는 것을 관직과 신분을 보전하는 묘책으로 삼았다. 원래 삼명(三命)으로 제참된 사건을 형부에서도 삼명으로 보아, 왕사는 능지처사(凌遲處死)로 의정하고, 완량과 왕삼은 즉시 처결로 의정했다. 소(疏)가 올라가니, 다행히 성주(聖主)께서 형옥을 삼가 신중히 여기시어, 뱃속 태아가 형체는 있으나 생명체로 볼 수 있는가에 대해 삼명이 맞는지 해당 부에서 재심하라 비하셨다. 앞번에는 형부가 포영을 따랐으나, 이번에는 형부가 성의(聖意)를 체념하여 감히 삼명으로 의정하지 않았다. 왕사·완량·왕삼을 모두 참형으로 의정했다. 그때 완량은 여러 차례 협형을 당하다 형부에서 이미 죽었다. 황상의 성지를 받들어: 왕사는 즉시 관원이 모여 처결하고, 완량은 시체에 형을 가하며, 왕삼은 감후 처결로 하고, 진대저는 석방하여 집으로 돌아가게 했다. 문서방에서 어명을 써서 홍본(紅本)과 함께 형과(刑科)로 보냈다. 과관이 서명하고, 교위가 형부로 지참했다. 금의위 관원이 범인을 결박하고, 형부 관원과 함께 서각두(西角頭)로 압송했다. 이때 도찰원에서 이미 어사 한 명을 감형(監斬)에 보내 놓았다. 왕사는 이에 이르러, 열 개의 입으로도 변명할 수 없고, 여덟 개의 팔뚝으로도 빠져나갈 수 없으며, 스무 쌍의 발로도 도망갈 수 없었다. 평소 술과 음식으로 거들어 준 깡패들과 본처, 두 첩도 그저 눈을 뜨고 그의 목이 잘리는 것을 볼 수밖에 없었다.

지금 흘리는 눈물을 거두고, 당일 잘못을 생각해야 하나니.

보라, 진씨의 아들은, 무슨 까닭에 진흙 속에 쓰러졌는가.

모두 왕사가 극도로 흉악하였기 때문에 천리(天理)가 반드시 제거하였으니, 그래서 귀신이 시켜 이런 짓을 하게 하고, 강간할 때 또 이 두 마디 공초가 나오게 한 것이다. 또한 천하에 두 사람을 죽이고 목숨으로 갚지 않는 일이 있겠으며, 강간을 저지르고 드러나지 않는 일이 있겠는가? 만약 그날 진씨 모자를 때려죽이고 나서 진대저마저 죽였다면, 이 사건은 누가 저질렀는지 알 수 없어 지방 이웃들이 큰 누를 당했을 것이다. 만약 세 사람이 진대저를 끌어다 후미진 곳에 숨겨 두고 천천히 강간했다면, 사건이 드러나지 않았을 것이다. 사람들은 오히려 진대저가 간부(姦夫)와 모의하여 모자를 죽이고 어딘가로 도망쳤다고 여겼을 것이며, 이것도 밝히기 어려운 의혹 사건이 되었을 것이다. 내가 웃는 것은:

화려한 집과 그림 같은 대들보도, 살면 무릎 들어갈 자리에 불과하고;

비단 이불 비단 장막도, 밤에 자는 것은 자리 하나에 불과하며;

용을 구워 봉황을 굽는다 해도, 먹는 것은 입 하나에 불과하고;

구슬 옷 화려한 바지도, 입는 것은 한 몸에 불과하다.

골수를 다 바쳐 해골을 봉양하니, 이것이 여색이요;

마소가 되어 자손을 위하니, 이것이 재물이다.

다만 보라, 진대저 하나 때문에, 자신의 본처와 두 첩을 백발이 되도록 함께 못 하고 어디에 맡겼는지도 모르게 했다. 은 이삼십 냥을 위해 자신의 목숨 하나를 보전하지 못하고, 마침내 형장에서 죽음에 이르렀다. 얻은 것이 무엇이기에 이 지경에 이르렀는가? 진대저의 남편과 아버지의 일에 대해, 사람들은 모두 왕사 무리의 기지에서 나왔다고 말한다. 진대저의 남편은 아직 종적이 없고, 그 아버지는 오히려 이 일로 인해 신원될 수 있었다. 이 광경을 보건대, 기심(機心)이 무슨 도움이 되겠는가! 만약 이 간악한 무리들이 평소 생각했더라면 — 일이 이루어진다 해도 한순간의 쾌락에 불과하고 좋은 명목도 없다. 이루어지지 않으면 반드시 집안이 망하고 몸이 죽는다 — 라고 했다면, 아무리 뜨거운 마음도 모두 차갑게 식었을 것이다. 아, 세 번 생각하는 사람이 드문 것이 안타깝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