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성석 (醉醒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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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회 제비 날개 잃고 탐욕으로 본을 삼다 가업을 이어받지 못한 못난 후손만 남다

탐욕과 음란으로 법을 삼으니 이미 서늘한데, 제비 날개 같은 자손에게 의로운 가르침이 어디 있으랴.

개처럼 명예만 탐하여 오직 지름길만 달리고, 파리처럼 아첨을 배워 다만 담장만 따라가네.

예로부터 잘못 들어온 것은 끝내 나가기 마련이고, 자고로 방탕하면 반드시 멸망을 자초하는 법.

현인을 닮았다 하면 웃음이나 나고, 저 다섯 계수나무 날마다 향기롭구나.

『좌전(左傳)』에 이르기를, "자식을 사랑한다면 의로운 방법으로 가르치어 사악한 길로 빠지지 않게 하라" 하였다. 자식을 가르치는 것은 첫 번째 일이니, 자손의 어질고 어리석음은 자신의 한 생의 화복에 관계될 뿐 아니라, 조상의 영욕에도 관계되기 때문이다. 이 관계가 매우 중하거늘 마음을 써서 가르치고 훈계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속담에 이르기를, "사랑은 가슴 안에 있고 엄함은 얼굴에 있다" 하였다. 호랑이와 이리를 제외하고 어찌 부자의 정이 없겠는가. 그러나 한결같이 아끼기만 하여 먹이고 입히어 살이 오르고 얼굴이 둥그렇게 하며, 비단을 입히는 것이 당장 보기는 좋을지라도 이는 살아 있는 시체일 뿐이다. 우둔한 자는 남에게 경멸을 받고, 유약한 자는 남에게 능멸을 받으니 이미 조상의 치욕이 된다. 또 강폭한 자는 완강하게 재앙을 불러들이고, 방탕한 자는 방종하게 집안을 망친다. 이것은 다만 부모에게 식견이 없고 교육이 없는 탓이다. 우둔한 자는 개발하여 밝게 만들지 못하고, 유약한 자는 진작하여 결단하게 만들지 못하고, 강폭한 자는 억제하여 너그럽게 만들지 못하고, 방탕한 자는 절제하여 삼가게 만들지 못하는 것이다. 이를 재질에 따라 쓸 수 있게 하고 병에 따라 약을 주는 것이라 하는데, 비록 평범함을 현철로 바꾸지 못하더라도 그래도 둔재를 중재로 올릴 수는 있다. 이 교법은 옛날 사람들에게는 태교(胎敎)도 있었다. 이 이치는 매우 옳으나 행하기 어렵고, 오직 부엄모자(父嚴母慈)만이 그 책임이 아버지에게 있다.

집에 엄한 어른이 있으면 현명한 자식이 많고,

집을 세우고 경영할 마음이 있으니 명예가 대대로 흐르리라.

아버지가 자식을 가르치는 데에는 몸으로 가르침이 있다. 몸으로 가르침이란 자신의 몸을 본보기로 삼아 자식에게 보여주는 것이다. 스스로 부모에게 효도하되 뜻을 헤아려 봉양하기를 마음과 힘을 다하지 않음이 없고, 형제에게 우애하되 한마음으로 어려움을 함께하여 사랑하고 공경하지 않음이 없다. 부부가 화목하여 서로 공경하기를 손님처럼 하고 절대 반목하지 않으며, 친구에게 신의를 지켜 서로 절차탁마하고 오랜 약속을 잊지 않는다. 신하가 되면 몸을 잊고 나라를 위해 몸과 집을 돌아보지 않는다. 사람됨이 정직하되 오만하거나 강팍하지 않고, 사람됨이 겸손하되 비굴하거나 아첨하지 않는다. 집에서는 절검하되 인색하고 구두쇠스럽지 않으며, 집에서는 갖추되 사치스럽지 않다. 큰 지혜는 어리석은 것처럼 보이고, 큰 기교는 서툰 것처럼 보이되, 세상에 경시받지도 않고 세상의 기피도 받지 않는다. 자손이 기꺼이 현인을 닮으려 한다면 하는 일마다 스스로 과오가 없다.

또 말로 가르침이 있다. 말로 가르침이란 말로써 교화하고 인도해주는 것이다. 도리가 불분명한 것은 그를 위해 분석해주고, 세상 물정에 밝지 못한 것은 그를 위해 짚어준다. 좋은 일과 좋은 사람이 있으면 본받으라 가르치고, 좋지 않은 일과 좋지 않은 사람이 있으면 교훈으로 삼으라 한다. 거듭 반복하기를 꺼리지 않고 부지런히 권면한다.

몸으로 전범(典型)을 보이고, 훈계와 교육을 아끼지 않네.

어질고 어리석음이 바뀌는 사이에, 나무는 먹줄을 빌려 곧아지는구나.

만약 스스로 좋은 사람이 되려 하지 않고 좋은 말도 하지 않는다면, 자제 중에 가르침이 없어도 허물을 덮고 집안을 바로잡는 자가 몇이나 있겠는가? 이 역시 집안이 망하고 이름이 없어져 남에게 웃음거리가 될 뿐이다.

명(明) 시대에 중원(中州)에 한 진신(縉紳)이 있었는데 성은 여(呂)였다. 스스로는 자기보다 나은 사람에게는 매우 조심성 있게 하고, 아랫사람에게는 매우 거만하게 굴었다. 다른 사람의 돈은 체면도 불구하고 탐하면서 뇌물 쓰는 일에는 주저 없이 썼고, 두 구절의 글 덕분에 거인 하나를 얻었다. 거인이 되자마자 책은 뇌리에서 내팽개치고 오직 음주와 호색에만 빠졌다. 남에게 좋은 농토가 있으면 갖은 수를 다해 빼앗으려 하였다. 남에게 좋은 부인이 있으면 마음을 써서 자기 것으로 만들려 하였다. 백성들은 그를 뱀처럼 두려워하고 상관들도 전갈처럼 무서워하였다. 마흔이 넘어 더 이상 과거에 오르기 어렵다는 것을 알고 관직을 도모하였다. 천금을 더 써서 의진(儀真) 지현(知縣) 자리를 얻었다.

부임하자 향신(鄕紳)·거감(擧監)·생원들이 찾아오면 만면에 봄바람 가득하였다. 예물을 받으면 다과 상자만 돌려주고, 세금을 징수할 때는 검량 화모(火耗)를 단지 15%만 더하고, 소송을 처리할 때는 원고 피고 증인 할 것 없이 각각 한두 냥씩 받았다. 음식을 살 때는 한 냥에 서너 전만 주고도 일 년치를 미리 영수증으로 받았다. 세금을 줄 때는 열 냥에서 한두 냥을 떼고 일 년치를 미리 빌렸다. 강도를 잡으면 그것이 자신의 밥벌이가 왔다는 것이다. 오늘 한 명을 끌어들이고 내일 한 명을 끌어들여 돈을 받아야 풀어주었다. 토호를 조사하면 그것이 돈 뜯어낼 명분이 되었다. 이쪽에서 한 명 잡고 저쪽에서 한 명 잡아 재물이 있어야 멈추었다. 향신을 받들어 그 청탁을 들어주고 그를 위해 빚을 받아주되 백성이 재앙을 당하는 것은 아랑곳하지 않았다. 생유(生儒)를 대할 때는 덕정을 칭송하게 하고 조근(朝覲) 때 잡아두게 하여 결국 백성의 피를 짜냈다. 아문관(衙官)에게는 두터운 예물이 아니면 직책을 맡기지 않고, 두터운 보석금이 아니면 문서에 서명하지 않아 모든 사람이 그를 위해 긁어모으는 도구가 되었다. 이서(吏胥)에게는 야합한 자에게는 더 많은 직무를 주고 정탐을 잘 하는 자에게는 더 많은 심부름을 시켜 사람마다 모두 활용하였다. 상사 중 탐관에게는 돈을 주고, 탐관이 아닌 자에게는 인맥을 찾았다. 고과(考語) 상에는 흠을 미덕으로 만들어 올리고, 계찰 때는 넘길 수 있으면 흐리멍덩히 넘기고 넘기기 어려우면 극력 뚫으려 하며 매번 남을 대신 희생시켜 자기를 살렸다.

하늘에 눈이 없다고 모두 탄식하고, 땅에 피부가 적다고 무리가 놀라네.

이리의 탐욕에 범의 포악함을 겸하여, 온 고을이 재앙과 위험을 받았구나.

생유(生儒) 고시에 이르러서는 정무라 할 일이었다. 첫 번째 자리는 향신의 자제요, 마지막 자리는 자신의 돈신(錢神)이었다. 기름진 음식 먹이고 절기 선물 보내는 자들이 또 한 층을 차지하고, 외롭고 재능 있는 자들은 모두 제쳐졌다. 동생(童生) 안수(案首)로 결정 진학하는 경우에도 또 명분을 만들어 반드시 삼백 냥을 받았다. 삼십 명 안에 들어 부취(府取)를 바랄 경우에는 반드시 삼십 냥을 받았다. 진학을 품달하고 과거를 품달하는 일에도 모두 돈을 받았다. 참으로 향신도 입과 마음이 달랐고, 사민(士民)의 쌓인 원한과 분노가 깊었다. 팔 현의 지방에서 이런 식으로 관리를 하면 단 하루도 편히 있을 수 없는 것이었다. 그러나 그의 뚫고 들어가는 재주에는 어찌할 수가 없었다. 그 말도 듣지 않고 설명도 듣지 않는 독한 마음에 의지하고, 때려도 안 무서워하고 욕해도 겁내지 않는 두꺼운 얼굴에 의지하여, 돈의 삼 할은 사람 결속에 쓰고 칠 할은 자기 주머니에 넣으며, 상사 예물과 경중(京中) 서첩(書帖)을 빠뜨리지 않고, 오 년을 버텨 과도(科道) 중에서 천금을 써 기댈 기둥을 만들고, 다시 이부(吏部)에서 수백 냥을 써서 인맥을 찾아 부속(部屬)자리를 하나 얻었다.

돈이 많으면 명예도 높고, 재산이 왕성하면 승관이 되는구나.

대문을 밀고 집에 들어오니, 이것이 바로 뚫고 들어가는 재주로다.

부(部)에서 한동안 차갑게 앉아 있다가 인맥을 써서 구강(九江) 초분(抽分) 자리를 도모하였다. 관문 위에는 이미 많은 포청(包攬) 건달들을 거느렸다. 또 이런 무급 순라 군관들이 있으니 이미 충분하였다. 게다가 또 집 사람들을 파견하여 장강(長江) 큰 배들을 탐지하게 하였다. 무겁게 실린 화물 보고를 받으면 모두 화물을 내리게 하고 검사한다 하여 트집을 잡아 배 이상의 세금을 요구하였다. 화물에 밀수품이 나오면 어찌하든 열 배를 받고 죄를 묻겠다 하였다. 화물을 그냥 그에게 바쳐도 모자랄 지경이었다. 큰 상인마다 억울함을 호소하고 작은 장사꾼마다 원통함을 부르짖었다.

이익을 위해 송곳 같은 것도 탐하고, 구하기를 수고로움 아끼지 않네.

배를 지고 험한 파도를 건너는 저 행상들을, 누가 불쌍히 여기랴.

장강의 물결이 크건만 그는 걸고 넘어지며 돈을 갈취하려 하였다. 이 큰 배들 수백 척을 묶어두어 관문에 막아놓았다. 바람이 심할 때마다 서로 부딪쳤다. 어느 날 객선을 수백 척 막아두었다가 갑자기 큰 바람이 불어 닻과 밧줄이 모두 감당하지 못하여 서로 부딪쳐 배가 부서지고 죽은 자가 수백 명이 넘었으니, 다만 그의 탐욕과 사기 때문이었다. 객상들은 이익을 도모하지 못할 뿐 아니라 목숨조차 보전하지 못하였으나 그는 전혀 개의치 않았다. 다만 사람들이 말하기를 그 재앙이 그 자신에게 미치지 않으면 반드시 자손에게 미칠 것이라 하였다.

일 년 임기가 차자 은 십여만 냥을 얻었다. 사람을 잘 받들고 돈도 기꺼이 쓴다는 것을 믿어 이삼 년을 더 버텨 지부(知府)를 얻을 수 있다 여겼다. 기대하지 않았으나 공도(公道)는 가리기 어려운 법. 임기가 끝날 때 이른바 신발 벗어달라며 만류하는 유랑 백성 몇 명을 결국 찾아내었고, 무고하게 피해 입은 자들은 원수처럼 미워하였다. 임기가 끝날 때 이른바 비뚤어진 늙은 수재 몇 명이 비석을 세우고 사당을 지어주기도 하였지만 높은 재주를 지닌 자들은 뼛속까지 미워하였다. 향신이 청탁을 말할 때는 여덟 번 칼질을 해주는 것처럼 일시적으로 친한 척하다가도 나중에 일이 지나고 사람이 가면 받들어 올려 잘못을 옳다고 해주는 것도 달갑지 않게 여겼다.

허물을 덮는 때가 있으나 더러운 자취는 밝혀지지 않음이 없어.

이름과 실제는 늘 서로 부합하는 것이니, 탐관의 명예가 어찌 오래가랴.

그리하여 사신(士紳)들은 그의 추행을 웃음거리로 삼아 농담하고, 소민들은 그의 악행을 가요로 엮어 서로 전하여 부르니, 사람들의 귀에 들어가지 않을 수 없었다. 다음 번 대계(大計)에 그는 팔구 일 전부터 예물을 보내 순찰 무위사(巡撫按)와 본부(本府) 형청(刑廳)에 보호를 구하였다. 다만 본현(本縣)의 아래 지현이 그를 미워하여, 공식(工食)을 가장 앞서 제하고 이 년 치를 미리 방출하였으며, 전량(錢糧)에 화모를 요구하여 몇 한(限) 치를 미리 징수하였다. 먼 해의 이미 징수한 것으로 미해결된 것은 모두 빼앗아가고, 각종 예비 무해 자금도 모두 회수하였다. 또 창고 중의 해결해야 할 전량을 가져가고 종이 속전(贖錢)으로 충당하였으나 채우지도 못하였다. 결국 반 년을 공짜로 해주고도 부족하여 미웠던 것이다. 그의 예물은 받기도 하였고 보살펴달라는 서신에도 응하기는 하였다. 그러나 그의 문서 담당 서리를 수시로 탐문하게 하여 평일의 부정과 사재(私財)도 꺼내놓게 하고, 대계 때에도 사실에 따라 처리에 내놓았다. 임기를 마친 사람은 눈앞에 없으니 결국 정분이 적었다. 그가 평일에 사람을 협박하고 때리고 가두고 돈을 뜯어낸 것이 탐욕과 잔인함과 아울러 행해진 것인데, 이제 단지 탐욕 한 글자만으로도 상사의 인정을 얻은 것이었다. 대찰(大察)이 관례대로 그를 위민(爲民)으로 처분하였다.

가산은 산처럼 높이 쌓였으나, 백성의 원한도 산처럼 쌓였구나.

한 번 파직으로 창생에게 사례하였으니, 그래도 죽이지 못한 것이 원한스럽구나.

소식을 들었을 때 마침 또 좋은 직책을 도모한 참이었다. 또 말하기를 앞 임무 없이는 현임에 없을 것이라 하였으나, 이 말은 말로는 되지만 실행은 안 되는 것이었다. 짐을 챙겨 집으로 돌아갈 수밖에 없었다. 애석하게도 이 오사모를 쓸 수 없고 이 원령을 입을 수 없어, 경관(京官)을 자칭하고 상관을 만나고 향음주례에 참석하기는커녕, 다만 집에서 답답하게 지낼 뿐이었다. 후실에 첩이 많아 다섯 아들을 낳았는데, 오봉(五鳳)이라 불렀으니 맏이는 봉주(鳳咮), 둘째는 봉익(鳳翼), 셋째는 봉지(鳳趾), 넷째는 봉령(鳳翎), 다섯째는 봉모(鳳毛)라 하였다.

또 스스로 해학하며 말하였다. "나에게 이 다섯 아들이 있으니, 거북이나 망팔이 되는 것도 있고, 관리가 되는 것도 있다. 내가 지금 각각 이삼만 냥을 나누어 주어 각자 큰 집을 짓고 앞에는 정원, 뒤에는 연못을 만들게 하겠다. 나는 노인이 되어 기녀들과 청객(淸客)들을 데리고 닷새에 한 번씩 돌아가며 공양을 받으며 여생을 즐기며 육가(陸賈)처럼 되는 것이 어떤가." 사이좋은 친구들이 말하였다. "당신은 마땅히 즐거워해야 합니다. 그러나 이 다섯 영식이 훌륭한 스승과 좋은 친구를 청하여 잠심하여 독서하여 과거에 올라야 합니다." 여러 첩들도 권하는 자가 있었다.

당 위에는 비록 공복(公服)이 있으나, 무릎 앞에는 아직 포의(布衣)로구나.

좋게 해주려 자격증에 힘쓰면, 만 리에 붕새처럼 날아보게 하랴.

그는 하늘을 우러러 크게 웃으며 말하였다. "무슨 책을 읽는다는 것인가, 무슨 책을 읽는다는 것인가! 은전(銀錢)만 있으면 된다. 삼백 냥이면 수재 하나를 살 수 있고, 사백 냥이면 감생(監生)이고, 삼천 냥이면 거인이고, 만 냥이면 진사다. 요즘 어느 시험관이 수재를 팔지 않고 청탁을 듣지 않는가? 감생은 직접 돈을 내는 것이다. 향시(鄕試)의 대주고(大主考)도 팔고, 방고(房考)가 내렴에 쓰이는 것은 순안(巡按)이니, 이 청탁도 오백은 해야 하고, 내외렴을 정하는 것은 방백(方伯)이니 무치한 자도 천금을 요구하는 것이 명백하게 거인을 파는 것을 공도(公道)처럼 하는 것이다. 나중에 밖에서 소문이 흉흉해지면 어사가 방고를 바꾸는데, 두 쪽이 또 스스로 서로 바꾸니 팔지 않는 자가 없다. 돈만 있으면 된다. 처음에 삼천을 써서 또 만 냥을 써서 출신을 얻었다. 부드러운 무릎으로 사람에게 절하고 아첨하기를 불사하고, 두꺼운 얼굴로 사람을 때리고 욕하기를 불사하면 곧 돈을 긁어모을 수 있다. 위에서는 손이 좀 헐겁게 나누어 상사에게 주면 자연히 나를 신경 쓰지 않는다. 아래에서는 손이 좀 헐겁게 아역(衙役)들에게 남기면 자연히 가져다준다.

행운의 문을 열어 명성의 장에 뛰어들어라.

오늘날에는 오직 공방(孔方)만 있을 뿐이라.

그때가 되면 한 번에 열 배 이상의 이익이다. 집에 가져다가 전답을 사고 첩을 들이며 반생을 즐기니, 이것이 바로 효자(孝子)인 것이다. 무슨 책을 읽는단 말인가! 이 두 구절의 글과 한 자루의 붓에 의지한다면 머리가 희도록 늙어 죽을 때까지 기다려야 한다. 보라, 예로부터 재능 있는 자는 끝내 기이하게 가난하고, 청렴한 관리는 반드시 후사가 없다. 무슨 책을 읽고 무슨 청렴한 관리가 되겠는가!" 집에서 명목상 경학(經學) 선생과 향학(鄕學) 선생을 하나씩 두었다. 경학 선생은 서재에 있고 학생은 기생집과 도박장에 있었다. 향학 선생은 서재에 있고 학생은 유모 방에 있었다.

큰 아이와 둘째 아이는 나이가 좀 들어서 아버지가 경관으로 있을 때 반은 돈으로 반은 인맥으로 학교에 들어갔다. 과거 때 정시(正試)가 우열이 있어도 그들을 감히 건드리지 못해 유재(遺才)로 내보내지 않았다. 대수(大收) 때에 이르러 한 명은 팔십 금을 써서 방고(房考)에 뚫어 題目(제목) 관절(關節)을 사려 하였다. 아들이 도저히 못하리라는 것을 알고 모범 답안을 찾아 선생이 고치게 하고 아들이 외우게 하여 맞히기를 기대하였다.

큰 아들은 눈치가 빠르여 외운 것도 외우지 못하고 맞히기도 어렵다는 것을 알았다. 스스로 예닐곱 냥을 써서 공급소(供給所)에 가 입장하고, 대문에 들어가자 누군가 맞이하였다. 들어가서 하루를 눕고 반 밤을 보내며 죽과 밥도 있고 제목 종이도 있고 만두 과자도 있었다. 감군(監軍)이 따라다니며 세 번의 시험을 무사히 이름과 절개를 보전하였다. 둘째 아들은 눈치가 없어 삼문을 들어가 번호를 찾지 못하였다. 문자를 외워두고 제목을 기다렸는데 뜻밖에 맞지 않았다. 제목이 다르고 문장은 맞다며 두 편을 쓰기도 하였다. 나중에 외운 것을 잊어버려 쓸 수 없어 하는 수 없이 손을 놓으니 담장 위에 먼저 방이 나타났다. 그 방고를 안에서 찾느라 머리가 어지러웠고 다른 방까지 찾아가도 얻지 못하였다. 기러기 높이 날아가니 화살잡이가 어찌 찾겠는가. 시험 후에 매입자는 그 관절이 효과가 없다 하고, 매도자는 그가 일을 그르쳤다고 하여 서로 다투었다. 한쪽은 주묵권(朱墨卷)을 찾지 못하고 한쪽은 명백히 방이 나왔으니 일을 그르쳤다고 말할 수 없었다. 비록 좀 떼어먹기도 하였으나 사오천 금도 썼다.

긁어모아 기름과 지방을 쌓더니, 함부로 과거 이름을 탐내었구나.

원래 허공에서 왔으니, 자절로 교묘한 곳으로 사라지는구나.

결국 큰 도련님이 눈치 빠르게 말하였다. "아버지는 원래 책 읽지 말라 하셨고, 삼천이면 거인이고 만 냥이면 진사라 하셨습니다. 이제 못 하게 되었으니, 그냥 좀 싸게 하는 것을 하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천칠백 냥으로 중서(中書) 자리를 얻겠습니다." 여 주사(呂主事)가 말하였다. "이는 돈 아끼지 않는 장사다. 그래도 거인이 본전이 좀 더 들어도 나중에 지현·통판 자리를 얻으면 훨씬 더 번다." 큰 도련님이 말하였다. "그럴 수 없습니다. 다음 과거까지 또 세고(歲考)를 버텨야 합니다. 당신도 돈을 쓰고 나도 힘들어야 합니다. 중서가 비용이 크다면 사백 냥으로 유사(儒士)를 납부하고 서간리(簡較)를 얻으면 즉 유사(有司)가 됩니다. 돈 있는 자는 중서뿐이라도 체면이 있습니다. 만약 내 말을 듣지 않고 기어이 거인을 사려 한다면, 사기는 샀어도 마지막에 들어가지 않겠습니다. 당신이 스스로 돈을 손해 보는 것이지요." 고집을 못 이겨 중서를 납부하였다. 다행히 면모를 바꾸어 진신 사회에 드나들었다.

둘째는 전처럼 과거를 계속 보았다. 못할까봐 이백 냥으로 편호 서리를 사서 번호를 연결하여 일곱 명이 같은 번호를 쓰게 하였다. 한 편에 백금씩 받으면 더 사례하겠다 하였다. 또 돈을 들여 등록 서수에게 정성을 들여 베끼게 하고, 돈을 써서 관절 방고의 방 안에 배치하였다. 알 수 없는 자가 가짜 관절을 가져와 몇십 냥을 꿀꺽하였다. 시험장에서 낙제하였으나 이미 천금을 허비하였다. 여 주사는 몹시 화가 나서 장차 폐물로 만들려 하였다. 그도 손 떼기를 바라며, 다행히 서책에는 둔하나 타산에는 밝아, 그냥 이자 놀이와 경영으로 나아갔다.

봉후(封侯)는 스스로 골격이 있고, 전사(田舍) 사람도 할 수 있다.

어찌 모필을 섬겨, 항상 전락의 슬픔을 더하랴.

다행히 셋째 아들이 있었는데 사랑하는 첩이 낳은 아들로 어려서부터 총명하고 수려하였다. 그는 스스로 책으로 아들을 고생시키려 하지 않았다. 오히려 그 첩이 열심히 책을 읽히고 선생을 후하게 받들어 글짓기를 시켰다. 열네다섯이 되어 글 두 구절을 쓸 수 있게 되자 선생이 크게 칭찬하며 기이한 재주를 가진 큰 인물이라 하였다. 글 한 편을 짓고 동전을 벌어 일찌감치 학교에 들어갔다. 그는 재주를 믿고 잘났다 여겨, 다른 이의 글이 볼 것 없다 하고 선배를 보면 부패한 인물 옛것에 막힌 인물이라 하였다. 계고(季考)와 당고(堂考)에서 자신이 수석 해원(解元)의 재질이라 자부하여 자연히 앞자리를 차지하고 힘을 쓰지 않아도 된다 하였다. 그러자 부모가 마음을 놓고 몰래 청탁하였다. 전열에 들어가자 자기 실력이라 인정하고 더욱 으스댔다. 이후로 선생을 따르지 않고 다만 시사(詩社)만 맺었다. 이 시사의 고질적 폐단은 서로 끌어올려주는 것이었다. 속 깊은 자들은 겉으로 그의 방자함을 이상히 여기면서도 그를 추켜세웠다. 그는 진심으로 받아들여 실없는 글 두 편을 간행하여 예물을 두텁게 하고 어느 노선생이나 노명공에게 서문을 부탁하러 다녔다. 매일 두건에 옥 매듭, 큰 가마에 높은 덮개, 모포로 싼 짐에 준마 같은 하인을 거느리고 손님을 방문하고 예물을 보내고 술자리를 청하였다. 명사들과 사귀는 것은 모두 많이 주고 조금 받으며 억지로 친한 척하였다.

교제하려면 황금이 있어야 하고, 황금이 다하면 명성이 비로소 일어나는구나.

여전히 경박한 아이들이 걱정되나니, 나를 가지고 장난감으로 삼을까 하여.

집에서는 그의 교유가 많고 또 큰소리치는 것을 보고 재주가 있다 여겨 인정하였다. 때로 부응해주지 않으면 자연히 이익을 잃었다. 그는 오히려 눈먼 시험관을 크게 욕하며 전혀 부끄러워하지 않았다. 집에서 그를 위해 용생(廩生)을 사려 하자, 그는 말하였다. "급제해도 용생이 무슨 소용입니까! 나의 재주로는 결코 북 가죽을 찢을 일이 없습니다." 아버지가 믿지 않아 백금을 써서 과거 두 번째 자리를 사주었다. 그는 이것이 자기 분수대로 얻은 것이라 하며 오히려 몰래 아버지가 쓸데없이 은전을 썼다고 원망하였다.

광기 어린 종복의 태도 하나, 그 속에 반드시 있지는 않구나.

큰소리가 사람을 두렵게 하지 않으니, 얼굴 갑옷이 열 겹은 두껍구나.

시험장에 들어가려 하면서 그는 말하였다. "두 형이 매번 수천의 은전을 날렸습니다. 나는 거인을 사는 것을 구하지 않으니, 다만 수천을 주어 시험장 비용과 기방 비용으로 써야겠습니다." 아버지도 천금을 주었고 스스로도 성(省)까지 따라갔다. 관에서 나누어주는 원령(圓領)은 경박하게 지어졌다 하여 입지 않고, 집에서 좋은 것 한 벌과 회소(懷素) 방식의 것 한 벌을 예비로 준비하였다. 또 많은 비단과 서각(犀角)·옥, 잔, 은그릇 완물을 들고 가 주고(主考)에게 드릴 것을 준비하였고, 수백 냥은 용처를 기다렸다.

성에 이르러 첫 번째 시험 후 아버지에게 말하였다. "틀림없이 해원(解元) 하나를 드리겠습니다." 세 번 시험을 다행히 무사히 마치고, 청객과 배당(陪堂)을 데리고 남색과 기녀를 찾아 놀러 갔다. 방이 나오는 밤에 여 주사와 몇몇 배당은 밤새 통음하며 문을 열고 보고를 기다렸다. 그도 기생집에서 밤새 보고를 기다렸다. 집에서 이 집이 역과(歷科)에 꾸미는 가문임을 아는 자들이 먼저 와서 보고하였다. 그 집을 원망하는 자들은 일부러 보고라는 명목으로 그 창문 물건을 깨부쉈다. 방이 나왔으나 그의 이름은 없었다.

부귀는 비록 운명이 있으나, 공명도 재주에 의지하는 법.

그대 집이 진실로 보잘것없으니, 어찌 금대(金臺)에 오르기 쉬우랴.

기생집에서 주시(主試)를 크게 욕하였다. 아버지가 돌아가자 하여도 가지 않았다. "고국에 돌아갈 면목이 없습니다. 오직 은전 몇천 냥만 남겨두면 잠시 밖에서 울분을 풀겠습니다." 여 주사는 하는 수 없이 가져온 은전을 모두 그에게 주었다. 그는 밖에서 명기(名妓)를 찾고 도박판에 빠졌다. 은전이 다 떨어지면 표를 써서 빌렸다. 아홉 할 다섯 푼 이자도 따지지 않고 들어오는 족족 써버렸다. 여 주사와 그 첩이 의논하여 급히 혼인을 시켜 수습하려 하였다. 그러나 습관이 본성이 되어버렸으니 결국 수습할 수 없었다.

넷째 아들은 여 주사가 관리로 있을 때 낳은 아들이었다. 은전을 쉽게 보고 교만과 사치를 익히 보아 독서도 아무런 성취가 없었으며, 오직 으스대는 것만 배웠다. 매일 음식은 오직 풍성함을 추구하고 돈도 따지지 않았다. 옷은 새것이기만 하면 되고 가격도 따지지 않았다. 아버지가 앞의 세 아들이 모두 뜻을 이루지 못하는 것을 보고 그에게 독서를 시키려 하였다. 그는 말하였다. "세 형이 모두 책을 읽지 않는데 나만 책을 읽어야 합니까." 특별히 선생을 청하고 선생을 후하게 모시니 그래도 책 읽기를 하였다. 그러나 가지 않으면서도 오히려 선생을 붙잡아 유람하며 술을 먹이려 하였다. 그 선생도 마음이 있는 사람이라 공연히 집 밥만 축내는 것이 매우 불안하였다. 와서 책을 강론하고 글을 짓자 하면 그는 말하였다. "내 집 밥을 먹고 내 집 속수(束脩)를 받는 것으로 족한데 굳이 와서 사람을 괴롭히는 것은 무엇 때문입니까?" 아버지가 공부를 확인하러 오면 선생이 숨기지 못하고, 다만 영식은 당당한 인물이라 오직 외모만 익히고 책에는 크게 유념하지 않는다고 하였다. 그가 알게 되자 마침내 선생의 공양을 끊고 이틀을 굶겼다. 선생도 마침내 관을 사직하였다.

그의 벽은 방 안의 치장에 있었다. 그는 매일 공사를 일으켜 청을 짓고 누를 세우고 연못을 파고 산을 쌓았다. 한동안 꾸미니 높은 대와 작은 정자, 굽은 길과 그윽한 오솔길이 갖추어졌다. 마음에 안 들면 다시 허물고 짓기를 반복하여 편할 날이 없었다. 더구나 청누(廳樓)가 생기니 청누의 장식이 필요하고, 서방은 서방의 장식이 필요하며, 원정(園亭)은 원정의 장식이 필요하였다. 탁자와 의자, 병풍이 크고 작은 것, 높고 낮은 것이 각 장소에 맞아야 하였다. 금칠 검은칠에 상죽(湘竹) 대리석이 각자 맞는 색깔이어야 하였다. 또 서화(書畫)와 완기(玩器), 화고(花觚)와 솥, 분경(盆景)과 화죽(花竹) 모두 남에게 속아 사들이며 풍류 문아한 공자로 꾸미려 하였다. 처음에 여 주사도 원정(園亭)과 연못으로 노년을 즐기고 싶어 지적하여 도와주었다. 그러다가 은전이 쓰이는 것을 보고 아까워지기도 하였다. 멈추게 하려 해도 이미 멈출 수 없었다. 원래 먹기를 좋아하였으나 자기가 먹지 않고 손님을 즐겨 청하였다. 그러나 정식 손님이 아니라 잡스러운 손님이었으나 매일 요리를 하였다. 또 기녀를 부르고 가무단을 만들어 이원(梨園) 의상으로 꾸몄다. 자리에서 보고 눈이 뜨거워져 무대에 내려가고 싶었다. 그러나 인물이 왜소하고 얼굴이 볼품없었다. 단역을 하자니 너무 단순하고, 생역은 풍월이 없고, 외역은 의관이 없고, 정역은 풍채가 없었다. 오직 추역(丑役)이 좀 어울렸다. 더구나 추역은 큰 노래가 없었고, 그 목청도 그럭저럭 버틸 만하였다. 억지로 닷새 이레를 외우니 한두 출(出)은 외울 수 있었다. 익양강(弋陽腔)의 「주운비(駐雲飛)」는 매우 잘 부를 수 있어 채상점(採桑店)의 주점 종업원 역을 하며 여러 배당이 도와주었다. 다행히 이 얼굴이라 분장 없이도 그것이요, 절하고 꿇는 것도 생동감이 있어, 이 대목이 그의 일생 특기가 되었다. 집에서 매번 연극을 할 때면 이 대목은 반드시 그가 하였다.

어느 날 바로 거기서 이 추태를 꾸미고 있는데, 뜻밖에도 아버지가 왔다. 멀리서 보고 몹시 노하여 무대에서 크게 욕하였다. 그는 당황하지 않고 이 얼룩진 얼굴을 멍하니 바라보며 말하였다. "노야가 말씀하신 것이 바로 부드러운 무릎으로 사람에게 절하고 아첨한다는 것 아닙니까? 오늘 한번 시연해보는 것이지요. 당신들 관리 하는 자들이 당 위에서는 얼굴이 더 알록달록하고 문 뒤에서는 무릎이 더 부드러울 것입니다. 무대에서 하는 연기를 진지하게 여길 것이 무엇입니까?" 여 주사가 얼굴빛을 바꾸고 때리려 하자, 그는 단숨에 바람처럼 달아났다.

음탕한 아내와 못난 자식은 고칠 방법이 없으니.

후회스럽구나 이전에, 훈계의 바다가 너무 부족하였던 것이. 이 지경이 이미 이렇게 되었구나.

그 다섯 번째 영식은 태어나면서부터 어리석고 우둔하여, 배와 대추를 얻는 것 외에도 스스로 총명하였다. 다만 『백가성(百家姓)』만 읽었는데 한 구절을 하루 종일 읽었다. 자라면서 진짜 나귀처럼 둔하여 세상 물정을 전혀 몰랐다. 사람 앞에서는 한마디도 말을 못하였다. 사람에게 인사를 할 때는 반드시 하인이 알려주어야 하였다. 사람들과 술자리에서 주령(酒令)을 할 때면 오직 벌주만 마실 뿐이었다. 그런데 이 사람이 매우 풍류스럽고 예쁜 아내를 얻었으니, 알아보고 계산하며 글도 쓰고 시도 짓는 여인이었다. 이 꼼짝도 하지 않는 진흙덩어리를 만났으니 몹시 속이 상하였다. 더구나 어리석고 속되어 입을 열면 혐오스럽고 말을 하면 화가 나며 잠자리 사이에도 정취가 조금도 없었다. 그래서 처음에는 흐릿하고 답답하게 원망만 하였다. 나중에는 이 바보를 속이고 통제할 수 있음을 알아챘다. 이 바보는 술을 좋아하여 항상 만취하게 하고 인사불성이 되게 하였다. 또 호색하여 몰래 시녀를 건드리고 어린 남종을 짝으로 삼았다. 일부러 시녀와 남종 두어 명을 그에게 던져주고 스스로 따로 풍류를 찾았다. 주인이 이미 어리석어 집안일을 처리할 수 없어 모두 안사람에게 맡겼다. 안사람이 스스로 숨기는 병이 있으니 위세와 명령을 행하기 어려웠다. 전답의 세수(稅收)를 하인들에게 맡기니 날로 손해만 보게 되었다.

탐욕하며 오래 누린다는 것은, 세상에 이런 천리가 없다.

가르치지 않아 현명한 아들이 있다는 것은, 세상에 이런 인리가 없다.

오칠 년도 안 되어, 이 중서를 하던 아들은 경중에서 아버지의 가르침대로 오직 사람을 받들고 돈을 써서 사람과 결속하였다. 본부에서 분자(分子)를 모으는 우두머리 노릇을 하며, 안에서 바쁘게 알림 문서를 내고 술자리를 관리하고 편액을 관리하며 선물을 보내고 경조 예물을 보냈다. 자신의 분담금은 어디서 한 몫 피할 수 있겠는가? 다만 매일 진신들 사이에서 술 먹고 절하는 데 지내게 되었다. 또 사관(史館) 일을 도모하고 실록 편찬에 모두 은전을 써야 하니 집 재산도 절반이 사라졌다. 흠차(欽差)를 빌려 세력을 부리고 강서(江西)행을 맡으러 갔다가 구강에서 바람에 배가 부서져 물속에서 죽었다.

바람이 거세어 장강이 낮에도 어둡고, 파도가 미쳐 포범도 다시 없구나.

고래 타고 한번 가면 슬프게도 돌아오지 못하니, 아래에서 오래 막혀있던 혼백에게 보고하는구나.

둘째 아들은 아버지의 그 말을 듣고 돈만 있으면 된다 하여, 먹지도 않고 입지도 않고 쓰지도 않았다. 집 사람들을 몰아 농장으로 가게 하여 소작료나 빚에 조금의 여유도 주지 않았다. 또 나쁜 집 사람 몇을 써서 농장에서 몇몇 무적의 건달들을 받아들여 밑천 없는 장사를 하게 하였다. 둘째 공자도 작은 이익을 탐하여 그들의 월급을 받고 그들을 관리하였다. 일이 발각되자 이 집 사람들은 발각될까 두려워 모두 주인 집에 맡겨놓았다. 그 둘째 공자는 오히려 이 위민(爲民)된 주사(主事)가 아직 세력이 있어 일을 가릴 수 있다 여기고, 받아들였다. 이 건달을 빼내면 이 구덩이의 것은 내 것이 된다 생각하였다. 뜻밖에도 관아에서 한 번 치면 한 번 바치어 그의 집에 있다고 자백하였다. 지현은 바로 의진(儀真)에서 과거에 탈락한 수재였으니 그는 오직 법대로 하였다. 장물 창고를 만들었으니, 둘째 공자는 이미 옥문을 나갈 수 없게 되었다.

도적질에 관복으로 위장하면, 전대가 가득해도 우환이 없을 것인가.

도적질에 약탈에 의지한다면, 죄와 허물을 어찌 피할 수 있으랴.

여 주사는 비록 향신이라 하나 위민이 되어 관아에 나설 수 없었다. 돈으로 사람을 청탁하여도 현관의 주재를 당할 수 없어, 이 아들은 살아있으나 죽은 것과 같이 되었다. 셋째는 한번 빠지니 기방과 도박판에서 빠져나오지 못하였다. 기방은 그래도 괜찮으나, 하루에 두어 번 들락거리니 아무리 쥐어짜도 한계가 있었다. 도박에 이르자, 유의(劉毅)가 한 번 던져 백만을 잃듯이, 순식간에 집을 망하게 할 수 있었다. 도박에 흥이 나서 돈이 없으면 전답을 내놓았다. 한 번 내기에 몇 무(畝)씩, 한 번 내기에 몇 칸씩, 모두 다 잃어버렸다. 또 여기서 공을 들이느라 책을 읽지 못하여, 세고(歲考)에서 마침내 반납하고 말았다. 여 주사는 독서를 좋아하지 않았으니 책 읽는 자제도 독서를 하지 않게 된 것이었다.

주현(朱弦)을 오래 타지 않으면, 손이 껄끄러워 가시밭에 있는 것 같네.

배움이 날로 새로워지지 않으면, 어찌 한 번 파직을 면하랴.

넷째 공자는 원지(園池)와 정자와 수목이 이미 갖추어졌으나, 다만 궤짝이 날로 비어가고 고완(古玩)은 날로 늘어갔으나 손 밑이 극도로 말라갔다. 이 노예 같은 비굴함을 배웠으나 관리도 아닌데 쓸 곳이 없었다. 다행히 문 앞의 청객들은 형편이 좋지 않으면 찾아오지 않아 잡아당기는 자가 적었다. 그래도 방을 지키며 먹을 수 없고 고완을 보고도 모른 척해야 하는 형편이었다.

말하기를 토목 공사가 재앙이라 하더니, 오히려 일신의 재앙이 되었구나.

무릎 꿇을 자리도 이미 족한데, 높고 으리으리함이 무슨 소용인가.

다섯 번째 공자에 이르자, 어리석고 우둔하여 독서도 알지 못하고 가사도 알지 못하였다. 또 거문고 타고 바둑 두며 산과 물을 즐겨 낮 시간을 달래는 것도 알지 못하였다. 아내가 스스로 활동하려고 그에게 한 길을 열어주었다. 술은 입에서 떠나지 않고 색은 몸에서 떠나지 않았다. 사람이 금석(金石)의 형해라도 소모하게 되어 있거늘, 마침내 허약한 병으로 죽게 되었으니 나이도 젊고 아들도 없었다.

오두발로 몸을 숨기고, 취취에 기대어 한창의 나날을 즐겼구나.

피와 살이 얼마나 있겠는가, 날마다 쌍도끼에 찍히누나.

당초에 여 주사는 이 많은 백성과 상인의 골수를 긁어모은 것에 의지하여 집에 다섯 아들이 있었으니, 진정 관직 없어 한 몸이 홀가분하고, 아들 있으니 만사가 족하다 하였다. 다만 스스로 재물을 탐하고 긁어모아 청렴을 외면하며 좋은 본보기를 보이지 않았고, 또 독서와 품성 수양도 시키지 않았다. 황산곡(黃山谷)이 말하기를, "선비가 사흘 동안 책을 읽지 않으면 얼굴이 볼품없어지고 언어가 무미하여진다" 하였다. 무릇 집안 자제가 두 구절의 책이라도 읽으면 도리를 알고 응대를 알아 사람 앞에서도 속되지 않다. 바로 젊은 시절에는 책으로 그 몸과 마음을 붙들어 매어 함부로 생각하고 제멋대로 행동하며 예의에 맞지 않는 장소에 들어가지 않게 한다. 그러므로 집안에서 자녀를 가르치는 첫 번째 일은 독서를 시키는 것이다. 독서를 시키지 않고 오직 뚫고 들어가는 것만 도모하면 태만한 마음을 키우고 집안의 재앙을 불러들이니 더욱 옳지 않다.

여 주사는 스스로 좋은 본보기가 없었고 아들에게 독서도 시키지 않았으니, 당초에 돈 있고 아들 있는 것을 믿어 육가처럼 다섯 아들 사이를 돌아다니며 즐기려 하였으나, 뜻밖에도 이 다섯 아들은 혹 죽거나 혹 집이 망하거나 하였다. 가는 곳마다 오직 쓸쓸함만 보이니 어찌 즐거울 수 있겠는가. 일찍이 하늘이 그를 돕는 형편을 원망하지 않은 적이 없었으나, 모두 스스로 잘못인 것을 알지 못하였다.

덕을 쌓음도 드물고, 원대한 계모도 없구나.

사람이 착하지 못한데, 하늘에 무슨 허물이 있으랴.

그러므로 옛 사람이 말하기를, "황금이 가득한 상자도 자식에게 경전 하나 가르침만 못하다" 하였다. 가난한 집은 스스로 설 수 없어도 오직 독서하고 분수를 지키면 몸을 세울 수 있고, 부유한 집 자제는 교만하고 사치함에 익숙하여 어리석고 방탕해지기 쉬우니, 오직 독서하고 이치를 따르면 집을 보전할 수 있다. 재물을 도리에 맞게 얻고 자손을 잘 가르칠 수 있다면 바른 길로 얻어 바른 길로 지키는 것이니 오래갈 수 있다. 재물을 도리에 맞지 않게 얻어도 자손을 잘 가르칠 수 있다면 거슬러 얻어 바른 길로 지키는 것이니 그래도 잃지 않을 수 있다. 만약 오직 하나의 탐욕과 포악을 부리고 또 불초한 자손이 이어진다면, 망하지 않은 자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