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성석 (醉醒石)

글자 크기

읽기 모드

언어

* 简体中文에는 아직 이 챕터 번역이 없습니다

제6회 고재(高才)가 세상에서 본색을 잃고, 의기(義氣)로운 벗이 고아를 생각하여 녹봉을 반씩 나누다

《만강홍(滿江紅)》:

조물주는 증거가 없어, 동군(東君)이 제멋대로 가로세로 부린다. 강물의 꽃이 붓 끝에 찬란하고 이낭(李囊)의 험준한 구(句)가 있다 해도, 유신(柳神)이 즙을 물들여 주지 않으면 금자(錦字)가 베틀 속에 깃들기를 기약하기 어렵다. 비록 하루아침에 강가의 주연에서 뜻을 얻더라도, 어찌 기이한 일이랴.

그러면 무엇을 할 수 있겠는가, 뜻을 가볍게 내지르며, 료우(僚友)를 얕보고, 당세를 업신여기는 것. 보라, 예로부터 경박하면 영화를 오래 누리기 어렵다. 더구나 한 가슴 가득한 능멸하는 뜻이 높은 하늘 두터운 땅에도 용납될 곳이 없어, 마침내 이류(異類)가 되어서야 마음이 식는다. 누구에게 하소연하랴.

대저 사람은 무언가를 믿어서는 안 된다. 믿는 것이 있으면 반드시 믿는 그것에서 실패한다. 수영을 잘하는 자는 물에 빠지고, 말을 잘 타는 자는 떨어지니, 이는 필연의 이치다. 그러므로 권세를 믿는 자는 권세로 죽고, 힘을 믿는 자는 힘으로 죽으며, 꾀를 믿는 자는 꾀로 죽고, 속임을 믿는 자는 속임으로 죽으며, 재주를 믿는 자는 재주로 죽고, 지혜를 믿는 자는 지혜로 죽는다. 권세·힘·꾀·속임은 본래 그물이요 함정이요 올가미이니, 사람을 몰아넣는 것이므로 굳이 말할 필요도 없다. 그러나 재주와 지혜란 사람의 보물이 아닌가? 위로는 나라를 다스리고 천하를 평정하며, 아래로는 풍요를 누리고 공명을 취한다. 그런데 어찌하여 믿어서는 안 된다는 것인가? 맹자(孟子)께서 잘 말씀하셨다. "분성괄(盆成括)은 작은 재주가 있으나, 군자의 대도(大道)는 듣지 못하였으니, 그 몸을 죽이기에 충분할 뿐이다." 이제 예로부터 재주를 믿고 의기양양하던 자들을 몇 명 들어 살펴보기로 한다.

당(唐) 때 두사인(杜舍人)이라는 이가 있었는데, 약관(弱冠)에 과거에 급제하여 이름이 경성(京城)을 진동하였다. 언젠가 어느 절에 유람하다가, 선승(禪僧)이 가사를 걸치고 홀로 앉아 있었다. 승려가 두씨의 성명을 물어보고 또 어떤 공부를 했느냐고 물었다. 곁의 사람이 연달아 급제했다고 자랑하였다. 승려가 웃으며 말하였다. "모두 모르는 일입니다." 두씨가 탄식하며 이상히 여겨 시를 남겼다.

집은 성 남쪽 사곡(社曲) 곁에 있는데,

두 그루 신선의 계수나무가 한꺼번에 향기로웠네.

선승은 이름과 성씨도 알지 못하였으니,

비로소 공문(空門)의 의미가 깊음을 깨달았네.

형제 둘이 진사에 급제하니 속인(俗人)들은 얼마나 굽실거리겠는가마는, 황면구담(黃面瞿曇)을 놀라게 할 수는 없었다. 이 시절 스스로 돌아보면 별다른 영광도 보이지 않으나, 이는 다만 사람이 알아주지 못하는 것일 뿐, 아직 비방하는 자는 없었다. 또 정예신(鄭禮臣)이 있었는데, 처음 한원(翰院)에 들어가 자랑하기를 그치지 않았다. 자리를 함께한 여러 사람이 모두 상대할 수 없어 즐거운 웃음이 크게 줄었다.

자리를 돋우는 기녀(妓女)가 제비(籌)를 하나 내리고 예신을 가리키며 말하였다. "학사(學士)의 말씀은 자랑이 지나치시지만, 학사의 한때 청귀(淸貴)함도 남의 귀에 달린 것입니다. 이극(李隙)·유승옹(劉承雍) 같은 이도 일찍이 그런 처지였으니, 어찌 그 명성을 더할 수 있겠습니까?" 여러 사람이 모두 웃었다. 예신은 가득 따라 스스로 벌주를 마시고 다시는 말하지 않았다. 학사(學士)의 귀함도 기녀에게 당면으로 꾸짖음을 받고 벌을 달게 받으며 감히 사양하지 못하였으니, 오만이라는 한 글자는 쓸 곳이 없음을 알 만하다. 그러나 이 또한 다만 비방을 받는 것에 그쳤을 뿐, 아직 나에게 해를 끼친 것은 아니었다. 소영사(蕭穎士) 같은 이는 재주를 믿고 물건 보듯 남을 얕보아, 항상 술병 하나를 가지고 교외를 홀로 거닐며 홀로 잔을 기울이고 홀로 읊조렸다. 마침 폭풍우가 갑자기 쏟아지자 자색 옷을 입은 노인이 어린 동자를 데리고 비를 피하러 왔다. 영사는 그들이 한가롭고 초라하다 하여 크게 업신여기며 모욕하였다. 잠시 뒤 비가 걷히자 수레와 말이 갑자기 이르러 노인이 말에 올라 떠났다. 좌우에 물어보니 왕 상서(王尚書)였다. 이튿날 아뢰는 글을 갖추고 문을 찾아 사죄하니, 왕이 행랑 아래로 이끌어 앉히고 꾸짖었다. "그대는 문학을 자부하여 이토록 거만하게 구니, 겨우 일제(一第)에 그칠 것이다!" 영사는 이 때문에 감히 다시 사과(詞科)에 응시하지 못하여, 결국 양주공조(揚州功曹)로 마쳤다. 이는 오만이라는 한 글자 때문에 진취(進取)에 장애가 된 경우다. 그러나 이것도 다만 벼슬길이 막히고 더딘 것에 불과하였을 뿐, 아직 곤경에 빠져 죽음에 이르지는 않았다. 또 진통방(陳通方)이라는 이가 있었는데, 젊어서 급제하였다. 같은 해에 급제한 왕파(王播)는 나이가 오십육이었다. 통방이 장난스럽게 그의 등을 두드리며 말하였다. "왕 늙은이, 왕 늙은이, 일제(一第)를 선물하노라." 왕이 몹시 원망하였다. 통방이 집안의 상(喪)을 당하여 귀향하고, 왕이 연달아 높은 과거에 올라 이미 감철(監鐵)을 판단하는 자리에 있었다. 통방은 곤궁하여 동년(同年) 이허중(李虛中)에게 부탁하여 천거해 줄 것을 청하였다. 왕이 할 수 없이 강서원관(江西院官) 자리를 내어 부임하게 하였는데, 채 임지에 이르기도 전에 다시 절동원(浙東院)으로 바꾸었다. 절반쯤 왔다가 또 남릉원(南陵院)으로 바꾸었다. 이러기를 몇 차례, 곤경과 좌절이 나날이 심해지자, 자신의 잘못을 되돌아보며 아는 이에게 말하였다. "내가 우연히 희롱하였는데, 왕공이 이렇게 깊이 원한을 품을 줄은 몰랐도다." 왕이 재상에 오르자 통방은 절망하며 죽었다. 이는 바로 목숨과 집안까지 오만함 속에서 잃어버린 것이다. 오만한 사람치고 좋은 결말을 맺는 자가 없음을 알 만하다. 사람마다 책을 읽어 다 알고 있으면서도 많은 이들이 또 이를 밟는 것은 오직 재주와 지혜를 믿는 것이 지나친 탓이다. 시(詩)에 이르기를,

기이한 재주가 세상에 드문 것이라 하나,

팔고 자랑하면 기이하지 않아지네.

만약 공자(孔子)와 안자(顔子)가 이 시대에 태어났다면,

여러분의 면목도 펼치기 어려우리.

그런데 또 이상하기 짝이 없어 사람의 뜻밖에서 나온 일이 있으니, 한 사람이 재주를 믿고 오만하며 세상을 분개하다가 이류(異類)로 변한 것이다. 이류가 된 뒤에도 오히려 사람의 말을 하여 스스로 후회하고 원통함을 밝혔다. 천천히 자세히 이야기해 보겠다. 당 명황(唐明皇) 때, 농서(隴西) 사람 이미(李微)라는 자가 있었는데 황족(皇族)의 자손으로 괵략(虢略)에 살았다. 젊어서부터 박학하여 시(詩)·사(詞)·서(書)·한(翰)에 능하지 않은 것이 없었다. 진정 붓을 들면 천 마디 글이 나오고, 말을 세우면 기다릴 것도 없이 글이 나왔다. 그러나 재주를 믿고 남을 얕보아 눈 아래 사람이 없었다. 같은 시대의 재자(才子)들인 이백(李白)·두보(杜甫)·고적(高適)·잠삼(岑參) 같은 이들도 그는 한 발짝도 양보하려 하지 않았다. 공명(功名)이라는 두 글자를 손에 틀어쥐고 경상(卿相)을 즉시 이룰 수 있다 여기며 날마다 방자하고 거리낌 없이 굴었다. 당시 사람들도 그가 재자라 말하며 감히 그와 맞서려 하지 않았다. 그러자 더욱더 스스로를 높이고 자대(自大)하였다. 약관(弱冠)이 되기 전에 향시(鄕薦)를 받아 경사(京師)로 올라갔다. 뜻밖에 열 번을 치러도 한 번도 급제하지 못하였다. 이는 재주를 지나치게 믿어 과거의 격식에 맞추려 하지 않거나, 혹은 성급하고 거칠어 실수하여 격식에 맞지 않는 일이 많아 자주 낙방하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한 가지 좋은 점이 있었으니, 당(唐) 때는 일 년에 한 번 시험을 치렀기에 지금의 삼 년에 한 번과는 달리, 비록 열 번이라도 겨우 십여 년이 지체될 뿐이었다. 이미는 한 번 낙방할 때마다 시관(試官)을 한 번씩 욕하며 눈이 멀어 글자를 알아보지 못한다고 하였다. 또 급제한 자들을 욕하였다. "노랑부리 어린 것들, 썩어 문드러진 두건 쓴 것들이 다 붙어 가고, 우리 같이 높은 재주를 가진 자가 낙방하니, 저들이 무슨 낯으로 나를 보겠는가!" 이처럼 분개하고 불평하며 방종하고 거리낌 없는 말이 마음속에서도 입에서도 하늘을 원망하고 남을 탓하는 것이 그칠 줄 몰랐다. 열한 번째 시험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일제(一第)를 얻었으나 이름 차례는 높지 않았다. 당조(唐朝)의 자격으로, 무릇 진사 급제자 가운데 앞 몇 명은 칠품(七品) 경관(京官)으로 선발하고, 그 나머지 높은 자는 현령(縣令), 그 다음은 현승(縣丞), 또 그 다음은 현위(縣尉)·승위(丞尉)의 무리였다. 잘 하면 위사(尉史)로 발탁되고 심지어 서대(西台)에 발탁되기도 하며, 그러지 못하면 다시 사과(詞科)에 응시하였다. 사과에 연달아 높은 성적을 거두면 한림(翰林)이나 대성(台省)의 관원이 될 수 있었다. 이 때문에 이미는 비록 진사가 되었으나 현위(縣尉)로 선발되었고, 다시 하남(河南) 상구현위(商丘縣尉)로 조보(調補)되었다. 스스로 황족의 높은 재주를 자부하는 터에 하급 관직에서 속리(俗吏)들과 어울리자니 늘 울울하여 즐겁지 않았다. 더욱 거만하고 방자하여 마구 업신여기고 희롱하는 것이 끝이 없어, 동료들이 모두 견디지 못하였다.

하루는 동료들과 함께 술을 마시다가 몇 잔을 더 마시자 술기운에 말하였다. "나는 황족의 자손으로 재주가 천(遷)·고(固)를 능가하오. 그대들은 주둥이가 세 자나 길고 손이 다섯 근이나 무거워 도대체 무엇인데, 감히 나와 함께 있으려 하는가!" 동료들이 모두 눈을 흘기며 미워하였으나 어쩔 도리가 없었다. 이미의 임기가 차서 선발을 받아야 할 때, 당사자(當事者)들이 그의 방자함을 싫어하여 천거하려 하지 않으므로 곧장 서울로 올라가 조보(調補)를 받지 못하고 결국 퇴거하여 집에 있게 되었다. 더욱 오만하여 사람들과 통하지 않았다. 때때로 시와 부(賦)를 지었는데, 한결같이 불평불만뿐이었고, 굴원(屈原)처럼 임금을 충성하고 나라를 걱정하는 뜻은 조금도 없고, 오히려 양운(楊惲)처럼 비방하고 참을 수 없는 뜻이 있었다. 평소의 쇠라도 씹을 것 같던 기운이 모두 목놓아 울며 한을 삼키는 심정으로 변하였다. 시시때때로 글자 하나 모르면서 높은 자리를 차지한 자들과, 권세를 잡고 일을 하면서 자신을 이끌어 주지 않는 자들을 생각하며, 한 입에 물이라도 집어삼키고 싶은 기분이었다. 이런 생각이 생겨나면서 훗날 이류로 변하는 씨앗이 심어졌다. 시(詩)에 이르기를,

그림으로 말을 그린 자가 말 태(胎)에 들어가듯,

원한과 분함이 어찌 재앙이 되지 않겠는가.

예로부터 불성(佛性)은 오직 평등하니,

육도(六道)를 벗어나야 연대(蓮台)에 앉을 수 있으리.

이미는 집에 있기를 한 해 남짓, 이미 관직의 재산이 바닥났다. 나날의 생활이 궁해지자 어쩔 수 없이 출유(出游)를 생각하여 지인들을 찾아다니며 도움을 청하였다. 무언가를 얻어서 절반은 처자(妻子)의 의식(衣食)에 쓰고, 절반은 서울로 올라가 조보(調補) 비용으로 쓰려 하였다. 생각을 정한 뒤 노자를 마련하고 행리를 챙겨 처자에게 작별을 고하였다. 하인 둘을 데리고, 하나는 응영(應榮), 하나는 의록(宜祿)이라 하였다. 괵략(虢略)에서 남쪽 길을 잡아 호광(湖廣) 땅에 이르렀다. 당시 부현(府縣)의 장리(長吏) 중에 동년(同年) 고구(故舊)가 많지는 않았으나, 이미는 평소 재명(才名)이 있어 사람들이 모두 경중(敬重)하였다. 더구나 그가 오만하고 방자하여 사람들이 또 그를 두려워하였다. 어찌 오만하고 방자한데 사람들이 도리어 두려워한단 말인가? 대저 재주 있는 사람은 입을 열면 글이 되어, 무엇이든 풍자하려 하면 혹은 부(賦)를 짓거나, 혹은 시를 짓거나, 혹은 전기(傳記)를 지어, 사람들이 그것을 전하고 칭송하는 법이다. 만약 좋지 않은 일이 있으면 당대에 풍자를 당하고 후세에 웃음거리가 될까 두려워하니, 사람들이 그를 두려워하는 것이다. 옛사람이 이르기를, "재주 있는 선비의 말 화살을 피하고, 문사(文士)의 붓 화살을 피하라." 하였으니, 바로 이런 사람들을 두고 한 말이다. 이때 여러 관장(官長)들이 저마다 문을 열어 맞이하고 연회를 베풀어 즐기며 음식을 대접하였다. 부탁하는 것이 있으면 들어주지 않음이 없었다. 작별할 때는 저마다 후히 선물하여 그의 자루를 채워 주었다. 이미는 오히려 부족하다 여기며 또 금릉(金陵)으로 갔다. 금릉은 옛 제왕의 도읍으로 승적(勝跡)이 매우 많았다. 이미는 여기저기에 제영(題詠)하니 사람들이 칭찬하였다. 이곳 관장들의 대접도 호광과 마찬가지였다. 거의 일 년이 되어 받은 선물이 이삼천 금에 이르렀다. 이미는 마음이 조금 가벼워져 괵략으로 돌아갈 계획을 세웠다. 길을 가다가 또 관직 때의 일이 떠올라 울울하여 즐겁지 않았다. 예전의 원한과 분한 생각이 다시 말과 안색에 드러났다. 하루는 여분(汝墳) 땅에 이르러 몸이 지침을 느끼고 하인에게 여관을 구하게 하여, 며칠 편히 쉬며 천천히 가려 하였다. 뜻밖에 갑자기 광증(狂症)이 발작하여 부르짖고 날뛰기를 호랑이나 늑대 같이 하였다. 두 하인은 도무지 무슨 영문인지 알지 못하였다. 앞으로 가면 때리고, 물러나도 때리며, 가서 시중들면 발로 차고 입으로 물었다. 시중들지 않으면 또 우레처럼 고함을 쳤다. 문 빗장이든, 지게미든, 갈퀴든 손에 잡히는 것은 닥치는 대로 때렸다. 두 하인은 낮에도 편할 수 없고 밤에도 편할 수 없었다. 열흘 남짓 되자 날뛰는 것이 더욱 심해져 머리를 풀어헤치고 옷을 벗어 던져 체면이 말이 아닌데도, 그저 거리로 나가려 하였다. 두 하인이 어찌 막을 수 있겠는가. 갑자기 어느 날 밤, 여관 문을 열고 곧장 달아나 버렸다. 하늘이 몹시 어두워 두 하인은 쫓아갈 담도 없어 그냥 내버려 둘 수밖에 없었다. 이튿날 아침 두 곳에서 찾아보았으나 종적이 없었다. 오가는 사람들에게 물어봐도 아무도 본 사람이 없었다. 강가와 우물가를 두루 건져 보아도 아무 실마리가 없었다. 할 수 없이 여관에서 한 달을 무작정 기다렸으나 소식이 없었다. 두 사람은 아마도 죽었겠거니 여기고는 검은 마음을 품어, 주인 집안도 돌아보지 않고 주모(主母)가 집에 있고 어린 주인이 아직 어림도 생각지 않은 채, 이 은자와 물건들을 반으로 나누어 각자 몫을 챙기고 연기처럼 사라져 버렸다. 이미의 처자는 집에서 기다려도 사람도 오지 않고 소식도 오지 않았다. 아들이 겨우 열다섯여섯 살로 아버지를 찾으러 가자니 담이 없어 멀리 나서지 못하고, 집에 앉아 있자니 의지할 곳이 없어 진실로 고통이 이루 말할 수 없었다.

여행길에서 오직 하인에게 의지하는데,

의로운 하인이 예로부터 몇이나 있었던가?

주인을 배반하고 재물을 빼앗아 자기 이익을 꾀하면서,

괵략으로 돌아가는 길을 생각하지 않다니.

자, 이미는 그날 밤 문을 나와 이삼십 리를 걷다가 어느 산 속에 이르러 두 손으로 땅을 짚고 기어가게 되었다. 이 순간 마음속으로는 오히려 조금 또렷하였는데, 자신의 팔뚝에 털이 돋아남을 보았다. 걸어서 개울가에 이르러 비추어 보니 어느새 얼룩털 늙은 호랑이가 되어 있었다. 소리를 내어 보니 진정 천지를 놀라게 하는 것이었다. 한 번 뛰어 보니 진정 선풍처럼 돌았다. 스스로 원망스럽고 부끄러우나 어찌할 수 없어, 이제는 사람과 짐승을 잡아 먹게 되었다. 그때 상우(商於) 경계에서 전하기를, 이상한 호랑이가 사람을 잡아 먹는다 하여, 오가는 상려(商旅)들이 이른 아침과 저물녘에는 감히 다니지 못하고, 오직 사오미(巳午未) 세 시간에만 패를 지어 지나갔다.

예전에 우애(牛哀)가 호랑이로 변하였다 하는데,

어찌 문사(文士)도 우애가 될 줄 알았겠는가.

용을 따를 인연을 얻지 못하니,

산의 군주가 되어 분을 풀어야 하는가.

예로부터 흉악한 사람이 혹 이류로 변하는 자가 있었다. 곽황후(郗皇后)는 질투 때문에 구렁이로 변하였고, 신정(新鄭)의 부인은 시어머니에게 거역하다가 개로 변하였으며, 어떤 관리는 탐욕스럽고 악랄하여 소로 변하였고, 봉소(封邵)는 잔인하고 사나우며 살인을 좋아하여 호랑이로 변하였으니, 이는 혹 그럴 만한 이치가 있다. 그런데 이미는 문사(文士)인데 방자하고 거리낌 없어 이 지경에 이른 것이니, 어찌 슬프지 않겠는가! 거의 일 년쯤 되어, 진군(陳郡) 사람 이엄(李嚴)이 감찰어사(監察御史)로 임금의 명을 받아 영남(嶺南)에 공무를 보러 가는 길에 수레를 타고 상우(商於) 경계에 이르러 잠시 역참(驛站)에 묵었다. 칙명에 기한이 정해져 있어 감히 지체할 수 없었다. 이튿날 새벽에 일찍 일어나려 하니, 역의 아전이 아뢰었다. "경계의 고개에 이상한 호랑이가 사람을 잡아 먹은 지 거의 일 년이 되었습니다. 무릇 오가는 행려(行旅)들이 반드시 해가 높이 떠야 출발합니다. 지금 날이 아직 이르고 행인이 아직 드물어 호랑이가 반드시 나와 사람을 물 것이니, 잠시 멈추시고 해가 높이 뜨면 나아가시기를 청합니다." 엄이 믿지 않고 말하였다. "이런 큰길에 어찌 호랑이가 있겠는가. 이는 도적들이 사람을 겁주려고 일부러 퍼뜨린 말일 뿐이다." 역의 아전이 거듭 아뢰자 엄이 화를 내며 말하였다. "나는 천자의 사신으로, 앞에는 인도하는 자가 있고 뒤에는 호위하는 자가 있어, 기병(騎)과 수행원이 수백에 이르는데, 산택(山澤)의 짐승이 어찌 해를 끼칠 수 있겠는가!" 하며 곧바로 출발하였다. 역의 아전은 감히 더 말하지 못하고 그냥 두었다. 한 리도 못 가서 평탄한 길의 무성한 숲 속에서 과연 얼룩무늬의 사나운 호랑이 한 마리가 무성한 풀 사이에서 갑자기 나타나 엄의 말 앞을 가로막았다. 수행원들이 미처 대비하지 못하고 우르르 달아나 말도 겁에 질려 물러났다. 엄이 몹시 놀라고 두려워 대책이 없는데, 그 호랑이가 엄을 내려다보더니 급히 몸을 돌려 다시 풀 속으로 숨었다. 엄이 막 말을 진정시키는데, 호랑이가 사람의 말로 하는 소리가 들렸다. "기이하도다, 하마터면 나의 고인(故人)을 다칠 뻔하였구나!" 엄이 이 말을 듣고 마음속으로 놀라고 의아하여 생각하였다. '사람이 호랑이가 될 수 있는가? 그가 나를 고인이라 하는데 도대체 누구인가?' 망설이는 사이에 호랑이가 또 말하였다. "이 군(李君)! 이 군! 그대가 나를 완전히 잊었는가?" 엄이 그 목소리를 들으니 이미(李微)의 목소리와 꼭 닮았다. 엄과 미는 예전에 함께 진사에 급제하여 같은 성씨인데다 서로 몹시 친하였으나, 이미 몇 년이 지나 만나지 못하였다. 갑자기 그 목소리를 들으니 놀라움을 이기지 못하였다. 만약 이미라면 어찌 이런 기이한 일이 있겠는가? 그러나 그 목소리가 꼭 닮았다. 이에 호랑이에게 물었다. "그대는 누구인가? 혹시 고인인 농서의 이미가 아닌가?" 호랑이가 몇 번 소리 내어 울부짖으니 탄식하는 것 같기도 하고 우는 것 같기도 하더니, 한참 만에 대답하였다. "나는 바로 이미요. 헤어진 지 오래되었는데, 그대가 오히려 내 목소리를 알아보니, 그대는 진정 고인을 잊지 않는 자로다." 엄이 말에서 내려 호랑이에게 물었다. "그대가 어찌 이 지경에 이르렀는가? 기억하건대 엄과 그대는 과거장에서 십여 년을 함께하여 정의(情誼)가 매우 두터워 친형제나 다름이 없었고, 이후 그 뒤를 이어 동년(同年)의 벗이 되었소. 뜻밖에 내가 먼저 벼슬길에 올라 왕사(王事)에 분주하고, 그대도 이어 군현(郡縣)을 보좌하여 각각 공명을 위해 달렸소. 하늘 남쪽 땅 북쪽으로 흩어져 웃으며 나누던 이야기도 멀어진 지 꽤 오래되었소. 그대의 종적이 어떠한지 알 길이 없던 차에, 오늘 다행히 출사(出使)의 길에 그대를 만났는데, 그대는 풀 속에 몸을 숨기고 나와 만나려 하지 않으니, 어찌 고인의 옛 정의가 이러한가?" 호랑이가 또 몇 번 탄식하고 말하였다. "나는 이미 이류가 되어 모습이 흉측하오. 그대가 나의 모습을 보면 두렵고 미워서 얼른 가버리려 할 것인데, 어찌 예전의 정의를 생각하겠소? 그렇더라도 잠시 머물러 주시오. 내게 말하지 못한 속사정이 있어 고할 곳이 없었는데, 오늘 다행히 고인을 만나 비로소 마음속의 말을 다 털어놓고 싶소. 고인이 들어줄 수 있겠소?" 엄이 말하였다. "나는 평소 그대를 형으로 모셨으니, 모습을 보여도 무방할 것 같소. 이제 그리하기 어렵다면 배례(拜禮)를 올리고 그대의 말씀을 듣겠소." 이에 호랑이를 향해 두 번 절하였다. 호랑이가 말하였다. "나와 그대가 헤어진 지 오래되어 얼굴을 보지 못하였소. 그대의 벼슬길은 어떠하며, 지금 어디로 가는 길이오? 방금 그대에게 두 명의 관리가 앞을 가고, 역졸이 인수(印囊)를 들고 인도하며, 호위하는 사람들이 앞뒤로 무리 지어 길 위에서 소란스럽고 위세가 혁혁하였소. 어사(御史)로 출사하는 것이 아닌가? 아니면 어찌 기병이 저리 많겠소!" 엄이 호랑이에게 대답하였다. "이전의 이력은 그대가 아는 바요. 근래에 성은(聖恩)을 입어 특별히 발탁되어 어사의 자리에 오르게 되었소. 지금 명을 받들어 영남으로 출사하는 길에 이 곳을 지나게 되었소." 호랑이가 또 웃는 것 같기도 하고 슬픈 것 같기도 하게 말하였다. "그대는 문학으로 입신하여 조정의 반열에 올랐으니 영광스럽다 하겠소. 더구나 헌대(憲台)는 맑고 요긴한 자리로 온갖 관원을 살피는 권한을 나누어 받으니, 성명(聖明)하신 윤택이 남다른 것이오. 또한 황화(皇華)의 명까지 받았으니, 그대의 높은 재주로 이것을 능히 완수하리라 믿소. 고인이 이런 현달한 영귀(榮貴)를 얻었음이 마음 기쁘나, 나는 다시 사람이 되지 못하여 그대와 서로 볼 수 없어 다만 슬픔과 눈물만 더할 뿐이오." 엄이 또 말하였다. "지난날 나와 그대는 동년 교분이 깊고 두터워 다른 벗과 달랐는데, 그대가 이 불행을 당하여 이류가 되었소. 고인의 정의가 어찌 외양(外樣)으로 갈라지겠소. 어찌 풀과 나무 속에 굳게 숨어 있으려 하는가?" 엄과 호랑이는 주고받는 말이 끊이지 않았다. 수행원들은 모두 옆에 서 있었는데, 처음에는 두려워하다가, 차츰 그 말에 문리(文理)가 있음을 들으며 모두 귀를 기울여 수군수군 의논하였다. 호랑이가 엄에게 말하였다. "고인의 말이 간절하여 나의 모습을 보기 원하오. 나도 한 번 보여도 무방하다 여기오. 그러나 그대의 관리와 수행원들이 곁에서 수군거리고 있소. 내가 모습을 드러내면 반드시 놀라고 혐오할 것이오. 나는 이미 사람이 되지 못하는 터에 또 사람들의 미움까지 받는다면, 무슨 괴로움이 이런 것이겠소." 이에 또 말하였다. "그대가 모습을 보기 싫다면, 그렇다면 변호랑이가 된 사연을 자세히 말씀해 주시겠소?"

호랑이가 또 탄식하며 슬피 울며 말하였다. "말하자니 가슴이 아프나, 그렇다고 하지 않을 수 없어 그대에게 자세히 말하겠소. 나는 임기가 차서 집에 돌아와 쓸쓸하고 무료하여 오초(吳楚) 사이를 돌아다니며 당사자들을 방문하여 거의 일 년이 되자, 이삼천 금의 선물을 받아 괵략으로 돌아가 처자를 안착시키고 남은 자금을 가지고 서울로 가서 관직을 보충하려 하였소. 길에서 여분(汝墳)에 이르러 갑자기 광증이 발작하여 미쳐 날뛰고 소리를 지르며 인사불성이 되었소. 갑자기 어느 날 밤 문밖에서 내 이름을 부르는 소리가 들려 대답하고 나갔소. 길이 몹시 어두워 한참 걸어 어느 산 골짜기에 이르렀는데, 저도 모르게 손발로 땅을 짚고 걷게 되었소. 유난히 빠르고 편하여 기뻤소. 이때 마음이 더욱 사나워지고 힘은 더욱 배가 되어, 이리저리 뛰어 다녀도 뜻대로 안 되는 것이 없었소. 넓적다리 쪽을 보니 얼룩털이 짐승처럼 박혀 있어 마음이 몹시 이상하였소. 몸을 일으켜 서려 하나 그리 되지 않았소. 빠르게 달려 개울가에 이르러 그림자를 비추어 보니 분명히 사나운 호랑이였소. 마음속으로 슬프고 아파 거의 살기 싫을 지경이었소. 또 이미 이렇게 되었으니 어찌할 수 없다 생각하고 풀 속에 몸을 숨길 수밖에 없었소. 배가 무척 고팠으나 아직은 살아 있는 것을 잡아 먹지 않으면 혹시 다시 사람의 모습을 되찾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 생각하여 굶주림을 참으며 잡지 않았소. 오래 지나자 굶주림을 참을 수 없어 산 속의 사슴, 멧돼지, 노루, 토끼로 배를 채웠소. 또 시간이 지나자 모든 짐승이 나에게 먹힐까 두려워 모두 멀리 피해 가서 더 이상 얻을 수 없었고 굶주림이 더욱 심해졌소. 하루는 어떤 부인이 산 아래를 지나가는데, 마침 배고픔이 극도로 달하여 잡아 먹으려 하였소. 또 생각하니 그이도 사람인데, 내가 불행히 호랑이가 되었다 하여 어찌 또 사람을 먹어 죄를 더하겠소? 그냥 지나가게 두었소. 또 생각하니 굶주려도 먹을 것을 얻지 못하는 것이 하늘이 주신 것이어서, 이것을 놓치면 또 언제 먹을 것을 얻어 배를 채울지 알 수 없었소. 나아가려다 물러나려다 몇 번을 오가며 스스로를 억제하지 못하고 마침내 잡아 먹으니 그 맛이 매우 달고 좋아 사슴·코끼리와는 전혀 달랐소. 지금 그 여인의 머리 장식이 아직 바위 아래에 있으니 가져다 증거로 삼을 수 있소. 이후부터는 사람을 먹고 싶은 생각이 끊이지 않았소. 귀천(貴賤)과 노소(老少)를 막론하고, 걸어가든 짐을 지든, 내 앞을 지나가 힘 닿는 한 모두 붙들어 씹어 먹고도 남겨 두지 않았소. 늘 그리 하다 보니 더 이상 잡힐 것 같다는 두려움이나 죄를 범한다는 생각도 없어졌소. 처자를 생각하지 않는 것이 아니요, 벗들을 그리워하지 않는 것이 아니나, 다만 신명(神明)을 저버려 하루아침에 이류로 변한 것이 사람에게 부끄러워 분수로는 볼 수가 없소. 아, 나와 그대는 같은 해에 급제하여 교분이 본래 두터워 서로 백발이 되어 함께 조정에 오르기를 기약하였소. 그대는 지금 왕명(王命)을 입에 물고 천헌(天憲)을 손에 잡아 처자를 영귀(榮貴)하게 하고 고을을 빛내는데, 나는 숲 속에 몸을 숨겨 영원히 인세(人世)와 작별하였소. 뛰어 하늘에 호소해도 하늘은 나를 가엾이 여기지 않소. 엎드려 땅에 울어도 땅은 나를 아끼지 않소. 몸이 망가져 쓸 수 없으니, 이것이 정말 운명인가! 하늘이 사람에게 운명을 부여하여 처음엔 사람이었다가 끝내 이류(異獸)가 되게 하는 일은 없는 것이오. 죄업(罪業)이 깊고 무거워 이 지경에 이르렀으니, 달리 무슨 말이 있겠소!" 이렇게 소리 내어 울부짖으며 슬픔을 이기지 못하자, 엄이 또 물었다. "그대는 이미 이류가 되었는데, 포효하는 것뿐일 텐데 어찌 아직 사람의 말을 할 수 있소?" 호랑이가 대답하였다. "내 모습은 비록 호랑이나 마음은 오히려 사람이오. 예전의 일들을 순간도 잊지 못하오. 여기서 지내는 동안 세월이 얼마나 흘렀는지 모르겠으나, 다만 풀과 나무의 무성함과 시듦을 보며 때로 눈물을 흘려 풀을 적시고 나무를 적시오. 말할 사람이 없는 것이 한스러웠는데, 또한 사람과 말할 수도 없었소. 요즘 지나가는 나그네가 전혀 없어 굶주림을 오래 참다가 갑자기 달려오는 행렬을 보고 몸을 내밀었는데, 뜻밖에 고인에게 무례를 범하였으니 부끄럽고 황공하오." 엄이 말하였다. "그대가 이미 오래 굶주렸으니, 내게 여분의 말이 한 필 있으니 드리면 어떻겠소?" 호랑이가 대답하였다. "그것은 또 안 됩니다. 고인의 뒤를 따르는 말을 먹는 것이 어찌 고인을 해치는 것과 다르겠소? 그런 말씀은 마시오." 엄이 또 말하였다. "그렇다면 바구니에 양고기 십여 근이 있는데, 드릴까요?" 호랑이가 기뻐하는 듯 말하였다. "이것이라면 고인의 선물을 받겠소. 그러나 나는 지금 고인과 이야기를 나누는 중이니 어찌 먹을 틈이 있겠소. 고인 앞에서 고기를 뜯으면 응대하는 것이 되지 않아 예의가 없지 않겠소. 그대가 가신 뒤에 남겨 두면 먹겠소." 엄이 좌우에게 양고기를 가져오라 하니, 호랑이가 또 말리며 말하였다. "잠깐, 아직 할 말이 있소. 나와 그대는 진정 형체를 잊은 벗이오. 부탁드릴 일이 있는데, 고인이 허락해 주겠소?" 엄이 말하였다. "평소의 고인 사이에 어찌 안 되는 일이 있겠소. 다만 무슨 일인지 알 수 없으니, 자세히 말씀해 주시오. 부탁을 저버리지 않겠소." 호랑이가 감사를 전하며 말하였다. "그대가 허락하지 않으면 어찌 감히 말하겠소. 이제 허락하셨으니 잊지 않겠소. 기억컨대 옛날 여분(汝墳)의 여관에서 광증이 발작하여 하인들을 마구 때리고 행장을 돌보지 않다가, 이윽고 황산(荒山)으로 달아나 이류로 변하여 다시는 시정(市井)에 들어갈 수 없게 되었소. 또 왔던 길도 잊었소. 비록 마음은 아직 또렷하나 이런 얼굴로 사람을 보면 사람들이 모두 황급히 피할 터이니, 어디에서 하인들과 재물이 담긴 자루를 찾겠소. 두 간악한 하인은 내 말과 의복 보따리를 모두 챙겨 달아났소. 처자는 아직 괵략에 있어 내가 돌아오지 않고 하인도 돌아오지 않으니, 매달려 애타게 기다리면서 어찌 내가 이류가 된 줄 알겠소! 그대가 왕사(王事)를 마치고 남쪽에서 서울로 돌아가는 길에 부디 하인에게 편지를 들려 내 처자를 찾아봐 주시오. 다만 내가 이미 죽었다고만 하고, 오늘의 일은 말하지 마시오. 듣는 사람을 놀라게 하고 나의 추함을 드러낼 것이니, 이것이 고인에게 바라는 바요." 엄이 공손히 두 손을 모아 말하였다. "삼가 가르침을 받들겠소." 호랑이가 또 말하였다. "나는 관직에 있을 때 동료들과 합이 맞지 않아 스스로 높이고 거만을 부려 얻은 것이 없었소. 임기가 차서 돌아올 때도 재산이 없었소. 아들이 아직 어려 스스로 설 수 없고 생계 방도를 알지 못하오. 그대가 대(台)의 높은 반열에 있고 평소 신의를 숭상하여, 옛날의 정분이 형제와 같았으니, 이제 이류가 되었다 하여 초심(初心)을 바꾸지 않을 것으로 믿소. 바라건대 나의 어린 아들이 외롭고 의지할 곳 없음을 생각하여 때로 그 곤궁함을 구제하여 길 위에서 굶어 죽는 일이 없게 해 주신다면, 이것이야말로 더없는 은혜요." 말을 마치고 또 크게 슬피 울어 마치 사람이 통곡하는 것과 같았다. 수행원들이 그 말을 듣고 울부짖음을 들으니 또한 마음이 아파 눈물이 떨어졌다. 엄도 흐느낌을 참지 못하며 말하였다. "엄과 그대는 기쁨과 슬픔을 함께 하기로 맹세하였으니, 그대의 아들은 나의 아들과 같소. 맡기시는 것은 무엇이든 힘껏 받들겠으니, 이 점은 염려하지 않아도 되오." 호랑이가 또 말하였다. "이미 허락을 받았으니 더는 걱정이 없소. 그러나 아직 부탁드릴 것이 있소. 나에게 옛 글 수십 편이 있는데, 평생의 정력(精力)을 모두 여기에 쏟았으나 아직 세상에 내놓지 못하였소. 비록 유고(遺稿)가 있다 하나 처자가 어리석고 아들이 어려 모두 흩어지고 말 것이오. 그대가 나를 위해 옮겨 기록해 준다면, 진정 문인의 문호(門戶)에 내걸지는 못하더라도, 아들과 후손에게 전하여 그들의 조부와 아버지가 비록 현달한 벼슬을 하지는 못하였으나 문인이었음을 알게 하는 데 귀할 것이오." 엄이 곧 수행하는 관리에게 호랑이의 말을 들으며 받아쓰게 하였다. 거의 스무 편에 문리(文理)가 매우 고원(高遠)하였다. 엄이 읽고 탄식하기를 두세 번 하며 말하였다. "그대의 글은 진정 고상하고 아름답구나. 그런데 오랜 시간이 지났는데 어찌 아직 마음속에서 잊히지 않았소?" 호랑이가 또 말하였다. "이것이야말로 내 평생 가장 득의(得意)하였던 작업이오. 오초(吳楚) 사이에 있을 때도 시시때때로 떠올랐고, 지금 초야(草莽) 속에서도 또 시시때때로 떠오르오. 어찌 묻어 두고 전하지 않을 수 있겠소!" 엄이 또 물었다. "그대의 부탁이 이것으로 끝인가, 아니면 아직 다하지 못한 것이 있는가?" 호랑이가 말하였다. "그대에게 시 한 편을 드려 내 모습은 비록 다르나 마음속은 다름이 없음을 표하고, 또 나의 회포를 펼치고 나의 분함을 풀고 싶소." 엄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하였다. "가르침을 듣고 싶소." 다시 관리에게 붓을 들게 하였다. 호랑이가 낭랑히 읊었다.

우연히 광증으로 이류가 되어, 재난이 잇달아 피할 수 없게 되었네.

오늘은 이 발톱과 이빨을 누가 당할 수 있으랴,

그 시절 명성과 자취가 함께 높았건만.

나는 이류가 되어 봉래(蓬萊) 아래에 있고,

그대는 이미 수레를 타고 기세가 호방하네.

이 날 계곡과 산에서 밝은 달을 마주하며,

긴 휘파람도 이루지 못하고 다만 포효할 뿐이네.

엄이 읽고 크게 놀라며 말하였다. "그대의 재주와 행실은 내가 오래전부터 알고 있었소. 이제 이류가 된 뒤에도 오히려 이처럼 고매하니! 혜업(慧業)을 갖춘 문인은 마땅히 하늘에 태어나야 하거늘, 오늘 하늘에 태어나지 않고 짐승에 전락한 것은, 반드시 버린 행실이 있어 이 지경에 이른 것일 게요. 그대 스스로 생각해 보면 자책(自責)할 것이 없겠소?" 호랑이가 탄식하며 말하였다. "이의(二儀)가 만물을 창조함에 진정 친소(親疏)와 후박(厚薄)이 없소. 만약 조우(遭遇)하는 시기와 부여받는 운수가 어떠한지는 나도 알 수 없소. 그대의 말로 내 마음이 일깨워졌소. 만약 스스로를 자책할 것을 돌이켜 찾는다면, 나에게도 있소. 기억컨대 어릴 때 남양(南陽) 교외에서 과부 한 명과 정을 통하였는데 정의(情誼)가 매우 깊었소. 그 뒤 오가는 횟수가 잦아지면서 흔적이 드러났고, 그 집안에서 알게 되어 나를 해치려 하였소. 나는 그 부인과 이로써 다시 만날 수 없게 되었소. 내가 분함이 극에 달하여 바람을 타고 불을 지르니, 한 가족 몇 명이 모두 타죽었소. 처음에는 통쾌하다 하였으나 나중에는 몹시 후회하였소. 평생의 한스러운 일 중에 이것이 가장 심하오. 다만 사람을 죽인 까닭으로 이 업보를 받고, 다시 호랑이가 되어 사람을 잡아 먹으니 업이 나날이 깊어져, 또 어떤 업보가 올지 모르겠소. 이것이야말로 가슴을 치고 발을 구르며 통곡하고 눈물을 흘릴 일이오!" 엄이 탄식하며 말하였다. "그대의 오늘이 대체로 이 때문이오. 그러나 그대가 이미 후회할 줄 안다면, 마땅히 악도(惡道)로 일생을 마치지는 않을 것이니, 지나치게 자책하여 상심하지 마시오." 호랑이가 또 탄식하며 말하였다. "이미 끝났소, 다시는 바랄 것이 없소! 그러나 아직 한 마디가 있소. 그대가 사명(使命)을 마치고 서울로 돌아갈 때, 바라건대 다른 고을 길을 택하여 이 길을 다시 지나지 마시오. 오늘 나는 아직 깨달아 고인을 알아보았고, 마음속의 다하지 못한 말과 고할 곳 없던 사연을 이미 그대 앞에서 한 번 토해 냈으니, 내 일은 이로써 끝이오. 이후로는 다시 인세의 생각이 없을 것이오. 혹 본래의 성품을 잃고 망연히 아는 것이 없어질까 두렵소. 그대가 이 길을 지나면 나는 이미 알아보지 못하여 그대를 이빨 사이에서 부수게 되어, 마침내 선림(士林)의 웃음거리가 될 것이오. 이것이 내가 간절히 빌고 싶은 것이오. 그대가 여기서 일 리쯤 가면 작은 산이 하나 있는데, 그 위에 오르면 이 곳을 다 볼 수 있소. 그대에게 나의 모습을 보여 드리리다. 용맹을 자랑하려는 것이 아니라, 그대에게 내 사납고 흉측한 모습을 보여서 다시는 이 길을 지나지 않게 하려는 것이니, 이로써 고인을 대하는 나의 지극한 뜻을 알아 달라는 것이오." 엄이 모두 삼가 받들겠다고 하였다. 호랑이가 또 말하였다. "그대가 도성으로 돌아가 나의 벗의 처자를 만나거든 오늘의 일은 말하지 마시오. 나의 추함을 드러낼 것이니, 감사함이 크오. 이 때문에 두세 번 당부하기를 주저하지 않는 것이오. 그대가 명을 받들고 기한이 있으니, 나는 오래 붙들어 왕의 행차를 지체시킬까 두렵소. 그대와 작별하겠소. 부디 건강하시오. 서로 볼 날이 기약 없소." 엄이 두 번 절하고 말에 올라 돌아보니 풀숲 속에서 포효하며 우는 소리가 차마 들을 수 없을 지경이었다. 엄도 그를 향해 한바탕 크게 울고 나서 말을 몰았다. 한 리도 안 되어 과연 고개가 하나 있었다. 그 위에 올라 고개 아래를 바라보니, 호랑이가 숲 속에서 뛰쳐나와 포효하여 바위 골짜기가 모두 진동하였다. 엄은 그 말이 거짓이 아님을 깨닫고, 영남으로 내려가 맡은 공무를 하나하나 처리하였다. 일을 마치고 보니 또 반 년 가까이 흘렀다. 호랑이의 말을 기억하여 감히 다시 옛 길로 가지 않고 다른 길을 택하여 우회하여 돌아갔다. 호랑이의 최후는 알지 못하였다. 서울로 돌아가 복명(復命)을 마치자마자, 즉시 사람을 보내 호랑이가 준 시문(詩文)과 자신이 쓴 편지 한 통과 부의(賻儀)의 예를 갖추어, 마치 이미가 진짜 죽은 것처럼 이미의 아들에게 부고를 전하였다. 한 달 남짓 지나 이미의 아들이 괵략에서 서울로 와서 엄에게 찾아가 감사를 드리고, 선친의 영구(靈柩)를 찾아 고향으로 모셔 가려 하였다. 엄이 어쩔 도리가 없어, 이미가 오초(吳楚)로 나돌다가 여분(汝墳)에 돌아와 호랑이로 변하고, 서로 만나 입으로 시와 글을 구술하며 처자를 부탁하던 일을 처음부터 끝까지 모두 이야기하여 주었다. 그 아들은 통곡하며 돌아갔다. 엄은 고인의 정을 생각하고 또 이미 호랑이의 부탁을 받았으므로, 자신의 녹봉을 반씩 나누어 그 처자에게 지급하여 굶주리고 어는 것을 면하게 하였다. 그 아들도 문명(文名)이 있었다. 엄은 관직이 병부시랑(兵部侍郎)에 이르렀다. 예로부터 재사(才士)가 적지 않으나, 호랑이로 변한 자는 일찍이 들어본 바가 없었는데, 이것이 오만하고 방자한 한 생각으로 말미암은 것이다. 세상의 재사가 아닌 자들이 요행히 일제(一第)를 얻고 나면 동류를 능멸하고 선비와 백성들에게 폭악하게 구는 것이야 더 말할 것도 없지만, 위로는 천고(千古)를 업신여기고 아래로는 후세를 가볍게 여기니, 그들은 또 어떤 것으로 변할지 알 수 없다! 이엄(李嚴)에 이르러서는, 이류가 부탁한 것을 맡아 약속을 저버리지 않고 녹봉을 나누어 아들을 봉양하였으니, 가난하고 천한 사귐을 보고도 무관심하여 돌아보지 않고, 죽음과 망함에 처해서도 길 위의 사람처럼 대하는 자들과 비교하면 어질고 어질지 않음이 또 어떠한가? 낙장시(落場詩)를 짓기 게을러, 《황앵아(黃鶯兒)》 한 곡을 들어 보시라.

문채(文彩)를 뽐내어 경운(卿雲)도 박하다 하고,

재주를 믿어 높이 굴다가 자주 몸을 망쳤네.

예로부터 많은 이들이 기이한 곤경에 빠졌으니, 범에 먹혀 마음을 풀었구나.

분윤(蚡倫)에게도 글이 있어, 몸을 드러내어 말하니 참으로 믿을 만하네.

다시 깊이 생각하니, 만약 의로운 벗이 없었다면, 처자는 반드시 흩어져 떠돌았으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