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성석 (醉醒石)

글자 크기

읽기 모드

언어

* 简体中文에는 아직 이 챕터 번역이 없습니다

제5회 뜨거운 피를 맹세하여 나라에 보답한 세훈, 외로운 제사를 온전히 받들어 목숨을 바친 열부

이 모든 것이 비록 하늘이 내린 충정의 복이라 하나, 또한 사람의 힘에 힘입은 것이기도 하다. 저 손씨를 보라. 만약 고부인(郜夫人)의 은의(恩誼)가 평소에 미리 맺어지지 않았다면, 또한 충의(忠義)의 감동이 그 순간에 솟아나지 않았다면 어찌 되었으랴. 몸은 군사의 약탈을 당하고, 아이는 어부에게 맡겨져, 두 사람 각각 갈 곳을 찾았으니 이 일은 손을 놓아 버릴 만도 하였다. 그런데 어찌 다시 군중(軍中)에서 도망쳐 나왔으며, 또다시 어부의 집에서 아이를 훔쳐 왔는가? 어찌하여 떠다니는 나무토막을 붙들고 함께 물에 잠기면서도 손을 놓으려 하지 않았는가? 어찌하여 연밥을 씹어 함께 굶주리면서도 홀로 살기를 거부하였는가? 이는 하늘의 뜻이 충신에게 후사(後嗣)를 남기려 함이요, 사람의 힘이 죽음을 무릅쓰고 고아를 지킨 것이니, 이 또한 화동구(花東丘)의 은의가 이를 이끌어낸 것이다. 그렇지 않았다면 일개 여류(女流)로서 책도 읽지 않고 세상 일도 모르는 처지에, 명분이 무엇인지, 절의(節義)가 무엇인지를 어찌 알았으며, 고아를 지킴을 이토록 중히 여기고 자신의 목숨을 이토록 가벼이 여겼겠는가?

은혜 깊으니 목숨이 짧음을 알고,

의리 무거우니 몸이 가벼움을 깨닫네.

고아를 보존할 의리가 아니었다면,

공손(公孫)의 이름이 홀로 빛났으리.

이 세 가지 일은 모두 명조(明朝)의 기이한 사적(事蹟)이다. 또 한 사람이 있으니 성은 요(姚)씨요, 세직(世職)을 가진 집안이다. 그의 시조는 일찍이 신국공(信國公)을 따라 복건(福建)을 평정하고 양광(兩廣)을 취하는 데 전공을 세워, 이로써 흥화위지휘첨사(興化衛指揮僉事)라는 직위를 얻었다. 평소에는 기절(氣節)도 있고 식견도 있는 편이었다. 대저 세직(世職) 가문에는 어리석은 자가 가장 많으니, 관직을 받은 것이 당연하다 여겨 책 읽기를 마다하고 문리(文理)를 통하려 하지 않으므로 입에서 나오는 말이 상스럽고 거동이 거칠어 문관들의 업신여김을 받기 일쑤였다. 더구나 이 직책이 그다지 나쁜 것도 아니어서, 궁마(弓馬)를 익히지 않고 직업도 닦지 않은 채 군졸을 착취하고 군량을 허위로 보고하다가 고찰(考察)을 받을 때 곤장 두 대를 맞더라도 일은 파면되어도 직위는 그대로이며 녹봉은 계속 받을 수 있으니, 그 때문에 쉽사리 나태해지는 법이다. 그러나 요씨는 책을 두어 구절이나마 읽었으며 궁마도 익히고 직무에도 마음을 썼던 사람이다.

한밤에 병법서를 펼치고,

가벼운 활로 독수리를 쏘아 떨구었네.

영웅의 뜻으로 때로는 뱃전을 치며,

스스로를 곽(霍)·표(驃)·요(姚)에 견주었네.

태평한 시절의 장관(將官)들 중 지위 높은 자들은 문인 행세를 하며 시나 짓고 글이나 논하려 든다. 그는 이것이 무부(武夫)의 할 일이 아니라 여겨, 다만 《무경(武經)》과 《백장전(百將傳)》을 읽고 《통감(通鑑)》을 보는 것으로 충분하다 생각하였다. 시를 읊어 적을 물리치겠다는 것인가? 지위 낮은 자들은 오직 탐욕과 음주에 빠졌다. 그는 병사들을 극진히 아끼고, 술을 절제하며 욕심을 줄였다. 무공인(武恭人)을 아내로 맞았는데 역시 장관의 딸로서 성품이 온화하고 처신이 유순하여, 동서를 대할 때는 자매처럼, 노비를 대할 때는 자식처럼 하였다. 부부 사이는 진정 어수(魚水)와 같았다. 십여 년 동안 양측 사이에 털끝만큼도 불화가 없었다.

창문 너머 나직이 웃으며 이야기하고,

붓 끝에 봄 산(山)과 초생달을 그리네.

구황(求凰)의 금슬(琴瑟)이 화합을 이루고,

손님 대하듯 경건하니 한·양(漢梁)의 집안과 다름없네.

그러나 둘 다 나이가 이미 삼십여 세가 넘었다. 요지휘(姚指揮)는 두려움 때문이 아니라 오로지 서로를 아끼는 마음에서 자식 문제를 꺼내지 않았다. 오히려 무공인이 그를 위해 첩을 들이려 하였다. 요지휘가 말하였다. "지금이 어느 때라고 첩 얘기를 꺼내는 게요? 요즘 사람들은 모두 태평성세라 하지만, 문관들은 우리 무관을 얕보고, 무관들은 스스로를 아낄 줄 모릅니다. 내 관할에 군졸이 몇이나 있는지도 모르고, 그 가운데 누가 내 군졸인지도 알지 못합니다. 군졸 하나가 줄면 나는 쌀 한 석(石)의 녹봉이 생겨도 보충하러 가지 않습니다. 남은 자들은 훈련을 거부하고, 군기(軍器)의 화약은 몰래 빼돌려 팔아 버립니다. 보충이나 훈련 얘기를 꺼내면 쓸데없는 일 만든다 핀잔을 듣습니다. 또 이익에 눈이 멀어 화를 모르는 향신(鄉紳)과 부호들이, 이쪽에서 나는 면주(綿紬)와 능(綾)을 일본에 가져가면 다섯 배의 이문이 생기고, 자기(磁器)와 완물(玩物)과 서적 값으로도 그만큼 남는다는 소리를 듣고, 가난한 무뢰한들이 자본금과 뒤를 봐달라 청하면 그 말을 받아들여 배를 짓고 물건을 만들어 해방(海防) 관병더러 막지 말라 억압합니다. 내가 나가도 그들이 오는데, 이는 오랑캐에게 길을 열어 주는 것이 아니고 무엇이겠소? 하루아침에 내 쪽 배에 왜인이 가득 실려 내지(內地)로 들이닥치면, 예측할 수 없는 변고가 일어날 때 어찌 막겠소? 더구나 이 길이 열리면 상선이 오가고, 가난한 백성과 간악한 무리들이 약탈을 꾸밀 것이니 이것이 바로 해적이오. 바다 위에서 이미 일이 많아진데다, 지방에서는 해마다 흉년이 들어 관가에서 수시로 독촉하니 백성들이 살아가기 어렵소. 이는 내란도 보장할 수 없는 형편이오. 만약 안팎으로 내통하고 합세한다면 이 연해와 내륙 모두가 편안할 수 없으니, 이것이 어찌 무관이 베개를 높이 하고 편히 잠잘 때이겠소? 첩이 무슨 당치도 않은 소리요!"

시국이 위태롭기 불 위에 올라선 것 같으니,

지혜로운 사람은 잠자리에서도 섶 위에 누운 걱정을 하네.

어찌 규방의 즐거움에 빠져,

바다 위의 먼지를 잊겠는가.

무공인이 말하였다. "그것이야 나랏일이니 당신 혼자 걱정해서 될 일은 아니지요. 다만 당신이 삼십이 되도록 자식이 없으니, 설마 조부가 물려준 금대(金帶)를 종족에게 남기려 하시는 것은 아니겠지요?" 요지휘가 말하였다. "당신과 나는 서로 깊이 사랑하고 아직 나이도 젊으니, 자식이 없을 것이라 어찌 알겠소. 첩을 들인다 하면, 자식을 낳을지 못 낳을지도 모르거니와 그 성품이 어떨지도 알 수 없소. 설령 당신의 본래 성품이 인자하고 투기하지 않는다 하더라도, 만약 그 사람이 분수를 지키지 않으면 이미 번거로운 일이 생기는 것이오. 또 지금 당신과 나는 한 남편, 한 아내로서 거리낌도 의심도 없이 탁 트인 마음으로 얼마나 즐거운지 모르오. 한 사람이 더 생기면 이 사람은 지나치게 총애받는다, 저 사람은 소원하게 대한다 서로 의심하게 될 텐데, 무슨 연유로 두 의심 사이에 끼어들겠소? 그러니 들이지 않는 것이 옳소."

홀로이면 다툼이 없고,

둘이면 의심이 생겨나네.

백발이 되어도 이 노래를 부르며,

원망의 씨앗을 영영 끊을 수 있기를.

무공인이 말하였다. "당신은 당신 말을 하고, 나는 나대로 하겠어요." 그는 스스로 중매쟁이에게 분부하여 두루 첩을 구하게 하였다. 또 생각하기를, 사람의 정서상 색(色)을 좋아하지 않는 이가 없으니, 만약 용모가 자기보다 조금도 낫지 않다면 그이가 자기를 더 그리워하여 그 여자에게 마음을 두지 않을 터이니 기어이 얼굴이 예쁜 여자를 구해야 한다. 그러나 얼굴이 고우면 심성이 순수하지 않을 수 있고, 그이의 시원스럽고 소탈한 기질과 맞지 않을 것이니 반드시 심성도 알아보아야 한다 하였다. 그리하여 여러 사람을 찾아보았으나 마음에 드는 이가 매우 드물었다. 스스로 가서 얼굴을 살피고, 또 성품을 알아보고, 다시 사주를 봐 주어 자식을 낳을 상인지 아닌지 점도 쳐 보았다. 그 때문에 몇 달을 지체하고 칠팔십 냥의 은자를 들여 그를 위해 첩 하나를 구하였다.

요염한 색(色)은 꽃처럼 곱고,

향기로운 마음은 버들처럼 부드럽네.

어린 나이 이팔(二八)에 불과한데,

몸가짐이 풍류(風流)로 가득하네.

들어오기 전부터 무공인은 이미 그를 위해 시비(侍婢) 하나를 구해 두고 방 안을 깨끗이 꾸며 주었으며, 자신의 방과 다름없이 이불과 물건들을 갖추었다. 오히려 요지휘가 말하였다. "너무 사치스럽게 하지 마시오. 처첩(妻妾)의 구분도 있어야 하오." 친지와 벗들의 내권(內眷)들은 모두 말하였다. "이제야 좋아졌군요. 끝까지 잘 이어지기를." 또 어떤 이는 말하였다. "투기하는 척하면서도 체면을 차리고 남들이 자기를 훌륭하다 믿게 하지만 뱃속에는 독이 가득하지요." 들어오는 날에 그 여자는 비단옷에 수놓은 요리(腰裏), 비취 비녀에 황금 깃을 한 채 마치 천선(天仙)처럼 왔다. 요지휘가 말하였다. "너무 화려하니 경국지색(傾國之色)이로구나." 하면서도 마음속으로는 이미 기쁨을 감추지 못하였다. 더욱이 이 여자가 구가(舊家)의 출신임을 알고 더욱 기뻐하였다. 성은 조(曹), 이름은 서진(瑞貞)이었다. 나이가 비록 어리나 거동이 단정하고 무게가 있었으며 경박한 태도가 전혀 없었다. 처신이 매우 정숙하고 온화한 성품을 지녔다. 공인을 섬김에 지극히 조심스러워, 공인은 그를 몹시 좋아하였다. 저녁마다 요지휘는 방해가 될까 싶어 감히 선뜻 그 방에 들어가지 못하였는데, 공인이 스스로 등불을 들고 그를 방으로 안내하여 마치 어린아이를 돌보듯 하였다. 아침에는 하인들에게 그의 잠을 깨우지 말라 당부하였다. 조서진은 또 분수를 잘 지켜, 요지휘가 그 방에서 하룻밤을 보내면 결코 이튿밤은 허락하지 않고 공인의 방에 있도록 하였다. 그 무공인은 마음을 써서 조서진의 월경 날짜를 알아내어 반드시 지휘를 보내어 임신이 되게 하였다. 서진이 어리고 지휘가 무부(武夫)라, 정(情)에 깊이 빠지면 어쩔 수 없이 조금 흐트러지는 일도 있었으나 공인은 조금도 개의치 않았다. 집안의 하인 며느리나 시비들 중 냉담한 눈으로 서로를 이간질하려는 자가 있어도 모두 웃음으로 흘려보냈다.

조각 마음이 강이나 바다보다 넓고,

두 귀는 금과 돌보다 굳건하네.

교언(巧言)이 피리 소리 같아도,

고요하고 차분하면 저절로 소용이 없어지네.

요지휘에게는 종자환(種子丸)을, 조서진에게는 조경환(調經丸)을 늘 복용하게 하였다. 그 결과 반 년도 되지 않아 서진이 이미 임신하였다. 공인은 크게 기뻐하며 미리 유모를 구하고 출산을 준비하였다. 달이 찼을 때 다행히 아들을 낳으니, 공인이 말하였다. "요씨(姚氏)가 오늘 후사를 얻었구나!" 요지휘도 기쁨을 이기지 못하였다.

향기로운 난초가 밤에 꿈속으로 들어와,

이 영특한 아이를 낳았네.

언젠가 창(戟)과 인수(印綬)를 잡을 것이니,

사씨(謝氏)의 지초(芝草)처럼 빛나리.

공인은 처음에는 만월(滿月)을 바라보다가, 만월이 지나면 백일(百日)을 바라보며, 단숨에 키워내고 싶어 안달이었다.

뜻밖에도 바다 위에 과연 사단이 일어났다. 절강(浙江)에는 왕직(汪直)·서해(徐海)가 있고, 민(閩)에는 소현(蕭顯)이 있으며, 광동(廣東)에는 증일경(曾一卿)이 있었는데, 혹은 번(番)과 통하는 중간상이기도 하고, 혹은 바다를 가로막는 대적(大賊)이기도 하며, 혹은 가난한 백성들을 불러 모아 왜이(倭夷)를 끌어들여 중국 내지(內地)를 짓밟았다. 연해에 호선(唬船)·사선(沙船)·초선(哨船)이 있다 하나 오랫동안 수리하지 않아 풍랑을 견디지 못하였다. 담당 지역에 목병(目兵)·오장(伍長)·십장(什長)이 있다 하나 열에 아홉은 배에 없었다. 비록 요충지 하나에 먼저 위소(衛所)가 있고, 소에 천 명이 있으며, 총기(總旗) 스물에 소기(小旗) 백에 백호(百戶) 열에 정천호(正千戶) 하나에 부천호(副千戶) 하나에 진무(鎮撫) 하나가 있어 적지 않은 것 같으나, 평소에 각자 잡역에 빠지고 한가로이 녹봉만 받아 챙기므로 절반도 대오(隊伍)에 남지 않았으며, 남은 자들도 모두 늙고 약하여 싸울 줄도 싸울 수도 없었다. 위(衛) 하나에 다섯 소를 통솔하여 위에 지휘사(指揮使) 하나, 동지(同知) 둘, 첨사(僉事) 넷, 진무 하나가 있으나, 관원 하나하나가 나라를 좀먹고 군사를 착취하는 해충이어서 아무 쓸모가 없었다. 군사가 약하다 하여 군사를 충원하면 또 군량을 늘려 병사를 기르고 총초(總哨)와 비왜(備倭) 파총(把總)·유격(游擊)·참장(參將)을 두어도 이보다 낫지 않았다. 배에서 만나면 화포와 화전(火磚)이 있어 적선의 그림자만 보여도 쏘아 대는데, 배가 가까이 오면 화기와 화살은 이미 다 써버려 오히려 그들의 화기에 우리 배가 불탔다. 육상 방어는 산이나 해안에서 소리 지르며 늘어서 있다가, 적이 상륙하여 병사 하나가 올라오면 각 병사들이 도망가 버리고 장관도 막을 수가 없었다. 이러니 왜구와 해적이 처음에는 연안에서 약탈을 일삼다가, 점차 관병의 실력을 알아채고 거리낌이 없어져 내지 깊숙이 곧장 흥화(興化)까지 쳐들어왔다.

세상이 태평한 날에,

사람들은 전쟁과 수비의 마음을 잃었네.

도적이 마음대로 내달리는데,

다만 숲처럼 많은 군사를 자랑했을 뿐이네.

요지휘는 집에서 날로 전쟁이 일어남을 보고, 아내에게 자주 말하였다. "요씨 집안이 다행히 후사를 얻었소. 다만 이 한 몸에 가득 찬 뜨거운 피를 어느 땅에 쏟아야 할까요." 왜구가 쳐들어오자 부현(府縣) 관리들이 당황하여 위관(衛官)과 함께 군민(軍民)을 징발하고, 성을 나누어 방어하며, 문서를 보내 구원을 청하였다. 그때 총병(總兵) 한 사람을 청하였으니 성은 유(劉)씨였다. 보병 삼천을 이끌고 성에서 십오 리 떨어진 곳에 주둔하였는데, 다만 '구원병이 왔다'는 세 글자로 왜인을 겁주어 다른 곳으로 물러가게 하기를 바랄 뿐이었다. 왜인들은 전혀 아랑곳하지 않고 여전히 성 밖에서 약탈을 일삼았다. 남자들을 붙잡아 길잡이로 삼고, 여자들은 능욕하며, 어린아이들은 창에 꿰어 발버둥치며 목숨을 구하는 것을 낙으로 삼았다.

겁불(劫火)이 마을 곳곳을 뒤덮고,

피가 흘러 더러운 연못을 이루었네.

들판에서의 울부짖음에 온전한 집안이 없으니,

목민관(牧民官)은 또 어이 할꼬.

유총병도 명장이었으나, 왜인이 싸움을 잘하고 복병(伏兵)에 능함을 알기에 경솔하게 나아가 예봉을 꺾이기를 두려워하였다. 또 야외에서는 왜인이 영채를 급습할까 두려웠고, 군량은 성에서 공급받아야 하기에 왜인이 운반을 끊을까 두려워하였다. 공문 하나를 써서 봉화를 신호로 군사를 성 안으로 옮기고 성 안에서 문을 열어 맞이하기로 기약하였다. 건장한 병사 다섯을 선발하여 몸에 지니고 성으로 잠입하도록 하였다. 그런데 성 가까이 이르렀을 때 왜인과 마주쳐 중과부적으로 사로잡혔다. 영채에서 수색하여 문서를 찾아내고 자세한 내용을 물어본 뒤 다섯 명을 죽여 버렸다. 왜장(倭將)은 곧 성을 속여 함락시킬 계략을 꾸몄다. 중국인 가운데 전부터 왜영(倭營)에서 충성을 바친 자 가운데 유능하고 담이 크며 말솜씨가 있는 다섯 명을 골라, 죽은 다섯 명의 군복을 입히고 이름을 대신하여 문서를 가지고서 일부러 허겁지겁 성 아래 달려와 소리쳤다. 먼저 문서를 끌어 올려 살펴보고, 그 뒤에 사람을 끌어 올렸다. 성 안의 여러 관원들이 문서를 보니 총병이 입성하여 함께 지킨다는 내용으로, 모두 기뻐하지 않는 이가 없었다.

외로운 성이 버텨내지 못할까 두려운데,

왕사(王師)가 정벌하러 왔다네.

벼가 가뭄에 막 시들려는 참에,

하늘 가득 구름과 비가 드리우는구나.

그런데 요지휘만이 말하였다. "안 됩니다. 유총병의 군사가 성 밖에 있으니, 왜인이 성을 공격하려면 뒤에서 기습당할까 두렵고, 유총병과 싸우려면 성 안에서 군사가 나와 구원할까 두려워 앞뒤로 적을 받을 처지입니다. 지금은 서로 의지하는 형세입니다. 만약 군사를 옮기면 적이 두려울 것이 없게 됩니다. 오늘 입성하면 내일 바로 성을 포위할 것이니, 이는 적을 끌어들이는 것입니다. 절대 안 됩니다." 무관의 말은 문관들이 크게 받아들이지 않는 법이며, 무관 중에서도 말 잘하는 자를 보면 시기하여 트집 잡는 이가 있었다. 어떤 이가 말하였다. "성 안이 단약(單弱)하니 마침 군사가 와야 합니다. 만약 거절하여 들이지 않았다가 성 안에 무슨 변고라도 생기면 그가 말이 될 것이고, 또 군량 운반이 막히면 누가 그 책임을 지겠습니까? 들여보내어 함께 성을 지키면 짐을 함께 나눌 수 있습니다."

군사의 귀함은 양쪽이 서로 뿔처럼 돕는 데 있으니,

입술과 이처럼 차가움을 참지 못하네.

함께 외로운 성을 지키다가,

창공의 매가 날개를 꺾었구나.

요지휘가 또 말하였다. "손님 군사가 강하고 주인 군사가 약하면, 강한 손님이 주인을 눌러 오래가면 앉아서 산을 다 먹어 버릴까 두렵습니다." 여러 관원들이 또 말하였다. "다만 그들이 성을 지켜낼 수 있으면, 좀 먹히고 좀 소란스러워도 상관없습니다." 회문(回文)을 써주고 성 밖에서 봉화가 오르면 성 위에서도 봉화를 올려 문을 열기로 하였다. 이때 요지휘는 다만 입성이 적절치 않다고 말했을 뿐, 성을 속여 빼앗으려는 계략이 있으리라고는 생각지 못하였다. 이튿날 저녁이 되어도 유총병 쪽에서 사람이 돌아오지 않아 감히 경솔히 움직이지 못하였다. 왜영에서는 일찌감치 계략을 꾸미었으니, 먼저 중국인들을 관병처럼 꾸며 앞세우고 왜병 대부대는 뒤에서, 짚단에 불을 지르게 하였다. 성 안에서 보고 또 봉화를 올리자, 군사들이 문 가까이 오자 문을 열었다. 이백삼백 명이 들어오자 소라고동 소리가 한 번 울렸고, 앞선 군사들이 칼을 빼어 수비병을 베었으며, 왜병이 이미 들이닥쳤다.

소매 속에서 벌과 전갈이 나오니,

보는 자마다 놀라지 않는 이 없네.

굳이 절굿공이에 피를 흘릴 것도 없이,

손 한 번 뒤집어 이름 높은 성을 무너뜨렸네.

성 안이 들끓으며 유군(劉軍)이 곧 왜군이라 이미 입성하였다 하였다. 요지휘는 성루(城樓) 위에 있다가 갑옷을 입을 겨를도 없이 외쳤다. "군사들은 빨리 나를 따라 적에 맞서라!" 그러나 군사들은 이미 각자 뛰어 내려가 집안을 챙기고 있었다. 요지휘는 칼을 뽑아 앞장서고, 가신(家丁) 둘이 뒤를 받쳤다. 나머지 따른 자들도 몇 되지 않았다. 길을 따라 크게 외쳤다. "군민(軍民)이 한마음으로 적을 죽이자!" 불빛을 향해 나아가다 왜병과 마주쳤다. 몸을 내던져 칼을 휘둘러 한두 명을 쓰러뜨렸으나, 뒤를 이을 군사가 없어 마침내 왜인에게 죽임을 당하였다.

죽어서도 노기가 서릿발 같은데,

몸은 외로워 힘껏 싸우기 어렵네.

시신을 뉘어 명나라 성군(聖君)에게 보답하니,

뜨거운 피는 충심(忠心)과 함께 붉었네.

무공인이 집에 있다가 왜인이 입성하였다는 소리를 듣고 아직 반신반의하던 차에, 가인(家人) 하나가 달려와 말하였다. "왜인이 입성하였는데 주인어른이 몸소 나아가 싸우셨습니다." 공인이 말하였다. "이번에 가시면 반드시 돌아가시지 못하겠구나. 그이는 명관(命官)이고 나는 명부(命婦)이니, 그이와 함께 죽겠다." 그때 조서진이 말하였다. "마님, 어른이 이번에 가시면 반드시 충절을 다하실 것이니, 마님께서는 오늘 제사를 받들 분을 보존하는 것을 으뜸으로 삼으셔야 합니다." 이 말이 공인의 마음을 깨웠다. 공인이 "맞아, 맞아" 하며 급히 은자와 금주(金珠)를 챙기고 낡은 베옷으로 갈아입었다. 서진은 스스로 아이를 안았다. 집안의 가인들은 모두 성 위에 있거나, 둘은 지휘를 따라 싸우러 나갔다. 소식을 전하러 온 가인은 공인의 분부로 지휘의 소식을 다시 알아보러 갔다. 오직 가인 며느리 몇과 시비들만 데리고 사람들 틈에 섞여 성을 빠져나갔다. 두 시비는 어느새 보이지 않았다. 겨우 성 밖을 빠져나가 이삼 리도 못 갔는데, 함께 도망치는 피난민들이 넘쳤다. 가진 것 없는 가난한 자들이 일부러 "왜인이 온다!" 하고 소리를 지르면, 한바탕 우르르 달아나는 틈에 약탈이 벌어져 유모와 가인 며느리가 짊어진 옷 보따리를 빼앗겼다. 가인 며느리도 혼잡 속에 길을 잃었다.

난리 중에 간악한 무리가 일어나,

온 길에 떠돌아다니며 약탈하네.

겨우 한 몸의 죽음을 면했을 뿐,

어찌 금과 진주를 돌아볼 겨를이 있었으랴.

조서진은 수놓은 비단신에 발이 작아 걸음이 떨어지지 않는데다 아이까지 안고 있으니 더욱 더딜 수밖에 없었다. 이때 어찌 교자(轎子)나 짐승을 탈 수 있었겠는가. 공인이 할 수 없이 유모와 함께 그를 부축하여 걸었다. 한 리도 못 가서 앞에서 또 왜인 무리가 달려와 사람들을 닥치는 대로 몰아쳤는데, 죽이거나 여자를 납치하지는 않고 오직 보따리만 빼앗았다. 이는 지방 무뢰한들이 왜인 행세를 하며 행인의 짐을 빼앗는 것으로, 그래서 납치하거나 죽이지 않았다. 이를 알 리 없는 사람들이 어찌 도망치고 피하지 않겠는가? 무공인이 가져온 행리(行李)는 이번에 모두 빼앗겼다. 사람들은 이미 다 몰려나고 서진과 아이, 셋만 남았다. 무공인이 말하였다. "이 형편에 앞길을 어찌 가겠느냐? 차라리 성 안에서 스스로 목숨을 끊고 그이와 함께 죽는 것이 낫겠다." 서진이 말하였다. "마님, 저 역시 목숨이 아깝지 않습니다. 그러나 이 아이는 어른의 골혈(骨血)이요, 요씨 가문의 명맥이 걸린 분입니다. 마님께서 평소에 저를 아끼신 것도 이 골혈 때문이었습니다. 이제 어른이 절의(節義)로 돌아가셨으니 이 어린 분의 무게가 더욱 무거워졌습니다. 마님과 저가 죽으면 이 골혈을 누구에게 맡기겠습니까? 억지로 삶을 이어가는 것은 잠시나마 살면서 그분을 잠시나마 보살피기 위함이니, 이 모두가 고아를 보존하기 위함입니다."

치마를 두른 여인이라 여겼건만,

정(程)·저(杵)의 마음을 능히 지녔구나.

애절하게 흐느끼는 속에,

맑은 눈물이 옷깃을 얼마나 적셨던가.

둘은 다시 힘을 모아 걸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한 번의 고함 소리와 함께 몇 명이 달려나와 길을 막았는데, 관병이었다. 두 사람에게 행리는 없으나 얼굴이 예쁜 것을 보고 말하였다. "다른 데로 가지 말고, 앞에 왜인도 있고 도적도 있으니 우리 진영으로 와서 즐겁게 지냅시다!" 하며 두 사람을 밀어 걷게 하였다. 조서진이 말하였다. "당신들은 관병인데 어찌 이렇게 무례할 수 있습니까? 이분은 요 어른의 부인이십니다." 관병이 말하였다. "무슨 요 어른 부인이야! 우리가 함께 자는 이들이 어느 날 부인 아가씨가 아닌 날이 없고, 진영에 이미 많지. 상관없어. 가려면 가고, 가기 싫으면 묶어서 데려가지. 또 무례하게 굴면 이 칼로 너 같은 사람 하나 베는 것쯤은 아무것도 아니야." 하며 칼을 빼어 들었다. 무공인이 말하였다. "베어라! 나는 조정의 명부(命婦)로, 성 안에서 이미 죽을 각오를 하였다." 관병이 일단 묶어 버리라 하자, 조서진이 침착하게 말하였다. "당신들 조급해할 것 없어요. 이분은 부인이시니 결코 몸을 잃지 않으실 것입니다. 차라리 이분을 보내 주시면 제가 당신들을 따르겠습니다." 여러 병사들이 말하였다. "무슨 부인이 두렵냐, 기어이 데려가야지." 한 명이 말하였다. "겁나는 건, 그 부인이 우리를 따라와 신나게 놀더니 돌아가라 해도 안 돌아가는 거 아니야?" 또 한 명이 말하였다. "이 여자는 나이도 어리고 예쁘장하고 말씨도 부드러우니, 이 여자를 따르게 하지. 그 늙은 것은 뭣 하러 데려가?"

군중에는 아몽(阿蒙) 같은 이가 없고,

기율(紀律)은 바람처럼 흩어졌네.

싸움에는 겁쟁이면서 오로지 약탈에만 능하니,

당당한 호랑이와 표범의 용맹이라 하겠는가.

이 병사들이 무공인을 몇 번 밀치며 말하였다. "가, 가! 이 늙은 것은 놔줄게!" 그러자 조서진이 말하였다. "저 마님께 몇 말씀 드려야겠습니다." 앞으로 다가가 품속의 아이를 공인에게 건네며 말하였다. "이 골혈을 마님께 드립니다. 마님께서는 어서 가십시오. 저는 결코 몸을 더럽혀 어른을 저버리고 마님을 저버리지 않겠습니다." 땅에 무릎을 꿇고 공인에게 절을 올리고 또 말하였다. "마님, 어서 가십시오. 함께 죽으면 아무 소용이 없고, 어린 분을 돌볼 사람이 없게 됩니다." 공인은 이미 그의 뜻을 알고, 두 사람 모두 몇 방울 눈물을 흘리며, 공인은 한 걸음 걸을 때마다 돌아보고 또 돌아보며 떠나갔다.

이 이별이 어찌 살아 헤어지는 것이랴,

두려운 것은 죽음으로 이별이 되지 않을까 하는 것.

눈물을 뿌려 풀 사이에 떨어뜨리니,

방울방울이 모두 피가 되었네.

서진은 일부러 주저앉아 말하였다. "피곤하니 잠깐 쉬어야겠어요." 병사들은 그가 어리고 아름다운 것을 좋아하여 잠시 쉬게 놔두고 서두르지 않았다. 한참을 앉아 있어 공인이 이미 삼오 리는 달아났을 것이고, 또 어느 방향으로 갔는지 알 수 없어 쫓아가기 어려울 것이었다. 병사들이 선 채로, 앉은 채로 한참 있다가, 한 명이 "가자"며 서진을 재촉하러 왔다. 서진이 말하였다. "어디로 가요?" 병사들이 말하였다. "우리 진영으로 가는 거지." 서진이 말하였다. "난 안 가겠어요, 죽어도 여기서 죽겠어요." 모두가 말하였다. "네가 한 말이잖아, 그이는 보내 주고 우리를 따른다고. 어찌 말을 바꿔? 목숨이 장난거리가 아니야!" 서진이 말하였다. "내가 목숨을 아끼는 줄 아세요? 다만 셋이 함께 죽는 것이 싫었을 뿐이에요. 이제 나는 죽어도 원이 없어요." 한 명이 앞으로 나와 말하였다. "헛소리 말고 빨리 가!" 그러자 서진이 두 눈썹을 치켜뜨고 눈을 부릅뜨며 말하였다. "조정이 당신들을 길러준 것은 조정을 위해 성지(城池)를 지키고 백성을 구하라는 것이었습니다. 지금 성지를 잃고도 구하지 못하면서 도리어 백성들을 약탈하고 있으니 왕법(王法)이 어디에 있습니까? 나는 오늘 죽을지언정 결코 당신들을 따르지 않겠습니다!" 여러 명이 갖은 말로 달래며 말하였다. "이런 도학(道學) 타령은 들어줄 사람이 없어. 가야 할 건 가야 해." 하며 밀고 당겼다. 서진은 죽기를 각오하고 또 거침없이 내뱉었다. "이 노예 같은 놈들아! 명관(命官)의 첩이 어찌 너 같은 노예를 따르겠느냐!"

절개를 지키며 죽는 것이 내 본분이니,

미친 놈들은 망령된 생각 품지 마라.

이 한 몸 피를 아낌없이 쏟아,

벽혈(碧血)이 되어 긴 길을 적시리.

이 병사들은 그의 미모를 탐하여 협박으로 따르게 하려 했을 뿐, 애초에 죽일 마음은 없었다. 하지만 천 번 만 번 역적 놈이라 욕을 퍼붓는 것을 당해내지 못하여, 놓아 주자니 작은 것도 안 되고 큰 것도 안 되어 공연히 반나절을 허비하였다. 한 명이 갑자기 흉심(凶心)을 품고 머리 위를 칼로 내리치니, 가엾어라, 서진은 마침내 역적을 꾸짖다가 죽고 말았다.

옥 같은 몸이 더러움을 받지 않으니,

차라리 진주(秦柱)에 부딪혀 부서지기를 택했네.

몸은 부서져도 이름은 온전하니,

천추(千秋)에 남은 아름다움이 있으리.

무공인은 스스로 아이를 안고 어느 방향으로 가야 할지 몰라 사람들에게 길을 물어 왜인도 없고 병사도 없는 곳을 찾아갔다. 또 사람들이 속일까 두려워 노인이 순박할 것이라 여겨, 어르신 아주머니에게 얼마나 많은 말을 해가며 물었는지. 아이는 채 한 돌도 되지 않아 젖을 잃고 왜왜 울었다. 몸에 지닌 금주(金珠)를 꺼내어 집 안의 노파나 어린아이에게 밥을 얻어 스스로 씹어 먹였고, 또 남겨 두어 길 위에서의 굶주림을 달랬다. 길에서 분분히 듣는 말은, 군사도 왜인도 모르는 어떤 여자가 극히 표준하고 발이 작으며, 위에 무엇을 입고 아래에 무엇을 입었더라는 것이었다. 공인은 그것이 서진임을 알았다. 눈물을 흘리며 말하였다. "아, 너는 진정으로 우리 부부를 저버리지 않았구나. 너는 깨끗이 마쳤으나, 오직 나를 구하기 위해 이 아이를 내 품에 남겨 죽지도 못하게 하였으니 어찌하랴! 어쩔 수 없다, 서진의 말대로 살 수 있는 동안 너를 지키겠다." 오래 안기가 힘들어 등에 묶어 걸었으니, 행리도 없고 아이만 진 채 거지 꼴이었다. 그 때문에 길 위에서 아무도 거들떠보지 않았다.

남루한 차림으로 구걸하며 함께 가니,

아, 슬프다, 길 잃은 사람이여.

풍상(風霜)에 초록빛 귀밑머리가 시들어,

다시는 예전의 정기(精氣)가 없구나.

동으로 부딪히고 서로 부딪히며 며칠을 헤매다가, 하늘이 사람을 끊지 않았음인지, 홀연 어느 마을에 들어섰다. 대나무 집 안에서 한 부인이 보이는데, 마치 가인(家人) 요경(姚鯨)의 아내 같았다. 알아보려는 찰나, 그 부인이 이미 달려나오며 말하였다. "이분이 제 마님 아니십니까!" 두 사람이 마주 보고 통곡하였다.

가난하고 천한 한 몸이 가벼우니,

어디를 가든 가난하고 천할 뿐이리라.

부귀는 이제 어떻게 되었나,

마주 보니 눈물이 실처럼 흐르네.

요경의 아내가 말하였다. "마님과 공자(公子)가 평안하시니 다행입니다. 어른은 정말로 전사(戰死)하셨습니다." 무공인이 또 남편을 위해 울기 시작하였다. 공인은 지휘가 싸우다 죽었을 것이라 알고 있었으나 여전히 반신반의하였는데, 이 소식이 확실해진 것이니 어찌 울지 않겠는가. 이 소식이 어디서 왔느냐 물으니 말하기를, "요경이 집에 왔을 때 마님의 분부로 어른 소식을 알아보러 갔는데, 갔을 때 어른은 이미 돌아가셨더랍니다. 요녀(姚鯢)와 요표(姚豹)는 어른을 구하려다 중상을 입고 죽었다고 합니다. 그이가 마님께 회보하러 왔을 때 마님은 이미 문을 나서신 뒤였고, 도중에 추격해 오다가 마침 저를 만났습니다. 저한테 잠깐 친정에 있으라 하고, 자신은 마님을 찾으러 가면서 어른을 수습하여 매장하러 갔다더군요." 또 물었다. "어린 주인은 계신데, 작은 마님은 어디에 계십니까?" 말하기를, "길에서 군사들의 겁탈을 당하여 우리를 진영으로 끌고 가려 하기에, 저는 죽기를 다짐하고 따르지 않겠다 하였습니다. 그이가 형세가 좋지 않음을 보고 아이를 제게 건네며 스스로 따라가 저를 풀어 달라 하였고, 저는 풀려날 수 있었습니다. 그 뒤 어떤 부인이 역적을 꾸짖다가 살해당하였다는 소리를 들었는데 나이와 용모와 옷차림이 그이 같으니, 아마도 돌아가신 것 같습니다." 하였다. 요경의 며느리가 어린 주인을 받아 안으며 말하였다. "금대(金帶)가 아직 남아 있습니다." 이야기하는 중에 한 여인이 나왔는데, 요경 며느리의 어머니였다. 안으로 들어오기를 권하였다.

옛날에는 화려한 집에 드나들더니,

오늘은 초가지붕에 몸을 맡기네.

창상(滄桑)의 한(恨)이 다시 솟구치니,

두 눈썹이 근심으로 찌푸려지네.

집 안에 사람이 별로 없었다. 예순일곱 살의 늙은이가 따로 다른 방에 살고 있었다. 요공인은 요경의 아내에게 들나물을 따 오게 하고, 마을 술 한 동이를 사서 지휘와 조서진을 제사 지냈다. 다행히 요경의 아내는 초야(草野)에 있으면서도 주종(主從)의 예를 잃지 않았다. 며칠이 또 지나 요경이 와서 아내를 보고 말하였다. "한 길로 마님을 찾지 못하다가, 오히려 작은 마님의 시신을 발견하였습니다. 병사들이 그이를 끌려 하자 따르지 않고 도리어 욕하다가 살해당하였다더군요. 근처 사람들과 함께 대강 묻어 드렸습니다. 성 안의 왜인은 이미 물러갔고, 어른은 현관(縣官) 대리로 이미 빈소(殯所)를 차렸습니다. 지금 여기 와서 당신과 함께 성으로 돌아가려 하였는데, 마님이 이미 여기 계시고 어린 주인도 계시니, 이것이 요씨 가문의 다행입니다."

큰 나무 장군이 쓰러졌으나,

아직 새싹이 돋아나는 것을 보네.

종묘(宗廟)에 기댈 분이 있어 다행이니,

하늘이 충정(忠貞)을 저버리지 않았구나.

안으로 들어와 마님께 머리를 조아렸다. 이튿날 아침에 정리하여 집으로 돌아갔다. 길에서 조서진의 무덤을 지나며 또 한바탕 통곡하였다. 죽음을 바쳐 주인을 온전하게 하고, 또한 몸을 바쳐 절개를 지켰음을 슬퍼한 것이다. 집에 이르니 다행히 집은 남아 있었고, 살림살이는 열에 하나둘이 남아 있었다. 무공인은 또 요지휘의 빈소(殯所)에서 지휘를 위해 통곡하였다. 집에 돌아오니 처량하고 참담하기 이루 말할 수 없었다.

거미줄이 처마에 가득하고 사방 벽이 텅 비었으며,

빈 창문에 적막하게 슬픈 바람이 일어나네.

한가한 섬돌에 하루 종일 인적이 끊기고,

며칠째 비바람에 짧은 쑥이 자라나네.

요공인은 그날 피난 때 황급히 몸에 수백 금과 금주(金珠) 보석을 지녔는데, 병사들에게 붙잡혔을 때 오직 끌고 가려 했을 뿐 수색은 하지 않았으므로, 길에서도 쓰지 않고 가지고 돌아왔다. 폐허가 된 성 안에 누가 금과 보물을 사겠는가. 요경을 보내 다른 부현(府縣)에 가서 은자로 바꾸어 조서진을 따로 관에 넣어 매장하게 하였다. 또 요경을 시켜 요지휘가 싸우다 절의를 다하여 죽은 것과, 요녀(姚鯢)·요표(姚豹)가 주인을 위해 죽은 사정, 그리고 조서진이 절개를 지키며 죽은 사정을 자세히 적어 부현에 올려 전달하고 상주해 줄 것을 청하게 하였다. 무릇 효자(孝子)와 순손(順孫), 의부(義夫)와 절부(節婦)는 몇 냥의 은자로 몽롱하게 거짓으로 얻을 수 있는 것들이 있다. 그러나 충으로 죽고 절의로 죽은 것만은 거짓말을 할 수 없고 또 감출 수도 없다. 분명히 한 장관(將官)이 전장에서 죽은 것이요, 분명히 한 여인이 길 위에서 살해당한 것이니, 이것이 어찌 된 연유인가? 요지휘는 말할 필요도 없다. 조서진의 경우 현관(縣官)이 유총병(劉總兵)의 체면에 나쁠까 두려워 안으로는 왜인에 조우하여 욕을 꾸짖다가 굴복하지 않고 죽은 절의로 올리고, 병사와 왜인은 원래 한 끗 차이가 없다고 하며 여러 차례 조사 결과가 일치하였다. 순무(巡撫)와 순안(巡按)이 함께 상주(上奏)하여 이부(吏部)에 논의를 요청하였다. 요지휘는 지휘사(指揮使)로 추승되어 사당을 세워 춘추로 제사를 지내고, 한 등급을 음서(蔭敍)하였다. 조서진은 패방(牌坊)을 세워 표창하고 유인(孺人)에 추봉되어 따라 제사를 받들게 하였다. 성지(聖旨)가 내려 모두 허가되었다. 요지휘의 아들은 넉넉한 지원을 받았으며, 무공인이 또 정성을 다해 아끼며 키워 장성하자 스승에게 나아가 배우게 하여, 열여섯 살에 문서를 지니고 서울에 올라가 지휘동지(指揮同知)의 음서를 받게 하였다. 무공인이 요지휘를 위해 첩을 두었던 것과, 그 뒤 간난(艱難) 속에서 업어 기른 이 사연이 이로써 매듭지어졌다. 어린 지휘도 안부를 여쭙고 음식을 섬기며 뜻을 받들어 기쁘게 하는 데 빠짐이 없었다. 무공인은 팔십 세를 누리고 돌아가셨다.

마음 가운데 담박하여 도모함이 없으니,

의심과 시기가 조금도 어지럽히지 못하네.

복과 수(壽)가 강녕(康寧)을 갖추었으니,

진정 이것이 훌륭한 분에게 돌아온 보답이로다.

이 절의의 일에서 요지휘의 일은 화(花) 장군과 충분히 비교할 만하다. 그가 성을 잃은 것을 말한다면, 화 장군도 태평을 지키지 못하였다. 손씨(孫氏)가 고아를 보존한 일은 오히려 무공인이 한 것으로, 간난(艱難)함이 서로 엇비슷하나 질투하지 않음에 있어서는 공인이 더 낫다. 고부인(郜夫人)의 일은 조서진이 한 것으로, 그 죽음은 같다. 그러나 서진은 위곡(委曲)하게 주모(主母)를 온전히 하는 일까지 더하였다. 이 두 가지 일은 모두 명조(明朝)의 큰 기이한 사적으로, 모두 천고(千古)의 법도로서 빛나기에 족하다. 만약 공인에게 의심하고 시기하는 마음이 있어 첩을 들이는 것을 미루었다면 요씨의 후사가 끊겼을 것이요, 만약 난리 속에서 업어 먹여 기르지 못하였다면 요씨의 후사 또한 끝내 끊겼을 것이다. 이러니 공인이 더욱 본받을 만하다. 질투하지 않는다는 한 글자, 그것이 짓는 복은 끝이 없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