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성석 (醉醒石)

글자 크기

읽기 모드

언어

* 简体中文에는 아직 이 챕터 번역이 없습니다

제4회 송죽의 절개 품은 열녀, 이름을 빛내다 고운 자태를 탐한 어리석은 아들, 화를 자초하다

위세와 재물은 기러기 털보다 가볍고, 맹세한 말은 꺾이지 않는다.

절개를 지키며 달을 벗 삼고, 어려움 무릅쓰며 얼음 같은 지조를 굳게 하네.

여인의 사표가 규방에 있으니, 미친 사내는 절부(節旄)도 부끄럽구나.

까마귀 머리 희도록 슬픔을 드러내지 못하니, 내 특별히 서리 같은 붓에 부탁하노라.

공융(孔融)은 장검(張儉)을 숨겨주었다가 일이 발각되자 형제와 어머니가 서로 먼저 죽겠다고 다투었다. 한 집안의 의로운 기개가 대대로 아름다운 이야기로 전하였다. 그런데 훗날에는 권세를 탐하고 위세를 두려워하여 강상(綱常)의 절의를 알지 못하는 자들이 있었으니, 아버지와 아들이 한마음이 아니고 형제가 한 뜻이 아닌 경우가 생겼다. 하물며 장사치 가운데, 규방의 여인 중에 늠름한 절개가 한 집안에서 나왔으나, 비록 일이 권력에 막혀 세상에 알려지지 못한다 하더라도, 나는 그것이 묻혀버리기를 원하지 않는다.

일찍이 들은 일이 있다. 한 여인은 남편이 죽은 뒤 개가하지 않고, 항상 죽은 남편의 초상을 그려 베개 곁에 두고 밤낮으로 바라보며 완상하였다. 어떤 사람이 이를 보고는 말하였다. "이것은 남편을 그리워하는 것이 아니라 그 용모를 사랑하는 것이니, 그보다 용모가 뛰어난 자가 있다면 결국 그 마음을 움직일 수 있다." 하여 자신이 총애하는 남창(男娼) 하나가 그 남편보다 용모가 뛰어난 것을 알고 그림을 그려 노파를 시켜 보냈다. 과연 그 부인은 재산을 챙겨 개가하였고, 남창은 배를 대고 기다렸다. 사흘이 채 지나지 않아 원래 혼인한 남자가 나타났으니, 바로 구레나룻 수염에 중년의 사내였다. 그때 남창은 자리를 피하였고 그 부인은 마침내 이 사내에게로 갔다. 나중에 전 남편 집에서 재산을 훔쳐 간음을 유혹하였다고 소송을 걸자, 이 사내는 얼른 이 여인을 귀인에게 넘겨 소송을 무마하였으니, 이미 네 번째 남편을 겪은 셈이었다. 이는 말할 것도 없다.

오강(吳江)의 한 부인은 재산이 있는 과부였다. 족숙(族叔)이 그 재산을 탐내어 속여서 한 토호에게 시집보내려 하였다. 부인이 몸을 빠져나가 현에 호소하였으나 현에서 공정하게 처리하지 않자, 마침내 직지(直指)앞에서 스스로 목을 찔렀다. 초(楚) 지방의 한 부인은 글을 잘하여 남편을 대신해 글짓기를 한 적이 있었다. 같은 글방의 귀공자가 이를 알고 남편을 독살한 뒤 오히려 장례를 매우 후하게 치러주어 부인은 눈치채지 못하였다. 나중에 온갖 수단을 써서 부인을 첩으로 삼으려 권세로 위협하자, 부인은 비로소 남편의 죽음이 의심스러움을 깨닫고 말하였다. "내 재주와 미모로 인해 남편을 죽게 하였는데, 다시 남편의 원수를 섬길 수 있겠는가!" 마침내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이 두 부인은 족히 열녀라 할 수 있다.

그런데 절강(浙江)에는 한 여인이 있어 아직 혼인하지 않은 약혼 언약을 지키다가 죽음으로써 순절하였으니, 더욱 흠모와 공경을 받을 만하다. 이것이 바로 이것이다.

한 번 허락함이 이미 정해졌으니 무엇을 몸으로 지키랴.

한 번 죽음으로 순절하였으니, 빼어나도다 이 굳건한 사람이여.

이 여인의 성은 정(程)이요, 집은 구주부(衢州府) 개화현(開化縣) 성 밖이나 원적은 무원(婺源)이었다. 그 아버지 정 노인은 목재 상인으로, 항상 구주·처주(處州) 등의 고을에서 목재를 가려 절서(浙西)와 남직(南直) 등지에서 장사하였다. 그 때문에 개화에 거처하였다. 아내는 오씨(吳氏)로 역시 신안(新安)의 대족 출신이었다. 아들 하나를 낳아 이름을 정식(程式)이라 하였다. 9월에 딸을 낳아 이름을 국영(菊英)이라 하였다. 정 노인은 성실한 사람으로 남과 약속을 하면 어기지 않았다. 예컨대 누군가와 사시(巳時)에 만나기로 하면 결코 오시(午時)까지 미루지 않았고, 백 냥을 응락하면 결코 아흔아홉 냥으로 하지 않았다. 스스로 장사치라 하여 문필에 깊지 않지만 문필 있는 선비를 극히 아끼어 집에 서화(書畫) 몇 점을 모아 즐겼다. 자녀에게도 어려서부터 선생을 청하여 가르치게 하였으니, 이로 인해 국영도 글을 알고 글자를 깨우치며 글도 쓸 수 있게 되었다. 자라서는 수놓기와 여공(女工)·바느질을 가르쳤다. 보기에 단지 모습이 빼어나고 살결이 옥같이 희고 신선하며, 맵시 있고 나긋나긋하여 자태가 그윽하고 아름다울 뿐 아니라, 재주와 예능도 규방의 으뜸이었다. 정 노인 부부는 항상 말하였다. "우리 딸은 반드시 속된 사람의 아내가 되어서는 안 된다."

서릿발 기운 타고나 고운 자태 이루었으니,

예스러운 향기 방긋이 피어나는구나.

오직 난초와 짝을 지어야 마땅한데,

가시나무와 어찌 함께할 수 있으랴.

먼저 아들 정식의 혼인을 유가(儒家)의 딸로 맞이하고, 또 딸을 위하여 유가의 아들을 고르려 하였다. 같은 고을에 장 수재(張秀才)가 있었는데 그 아들을 장국진(張國珍)이라 하였다. 눈썹과 눈이 수려하고 거동이 단아하며 매우 총명하고 또한 독서를 좋아하였다. 다만 집안 형편이 매우 한궁(寒窮)하였다. 정 노인이 그 인품을 보고 재학(才學)을 알아보아 딸을 그에게 주려 하였다. 도리어 장 수재가 극력 사양하며 말하였다. "요즘 사람들은 장가들 때 오직 부유한 집에 붙어 혼수를 얻고 평소에 보살핌을 받으려고만 합니다. 그러나 이런 여인은 친정의 부유함을 믿고 남편을 업신여기고 시부모에게 오만하게 굴게 마련입니다. 더구나 수고로움에 익숙하지 않아 의식이 화려합니다. 그녀의 뜻대로 하자니 내 힘이 미치지 못하고, 뜻대로 못 해주자니 필시 집에 편히 있지 않을 것입니다. 높은 데 의지하지 않는 것이 나을 것입니다."

소나무와 잣나무의 자태는 구름을 찌르고,

여라초(女蘿草)의 바탕은 짧고 힘이 없어.

덩굴을 뻗어 스스로 서로 의지하나,

염려되는 것은 중도에 끊어지는 것이라네.

정 노인이 말하였다. "바로 그 한 단락의 논의가 높은 품격을 보여줍니다. 내 딸은 예부터 글을 알고 예를 갖추어 부유한 집 딸과는 다릅니다. 예물의 많고 적음을 따지지 않고 반드시 그에게 딸을 주겠습니다." 막 예물을 주려 하는데, 마침 청양(青陽)의 한 대호(大戶)가 있었으니 성은 서(徐)였다. 집이 매우 부유하여 전답이 끝없이 이어지고 향관(鄉官)들과 사귀기를 좋아하였다. 아들이 하나뿐이었는데 이름을 서등제(徐登第)라 하였다. 재산이 있다는 것을 믿고 외아들을 어려서부터 집에서 아끼고 비록 선생을 두기는 했으나 감히 책 한 줄 읽히고 글자 하나 쓰게 하지 않았다. 열서너 살이 되었는데도 글자를 한 자도 몰랐다. 이 서재 저 서재를 전전하며, 파강(破承)을 짓고 기강(起講)을 짓고 문자를 만든다 하지만 그 한 글자인들 자기 것이 있었겠는가? 선생은 단지 사례금만 탐하고 나중은 돌보지 않았다. 오직 반 층계를 오만스럽게 활보하는 것이 그나마 장기였다. 한 번 입을 열면 속기가 사람을 치받았다. 다른 이들은 부족한 점을 감출 줄 알았으나 그는 감추지도 못하였다. 지(之)·호(乎)·야(也)·자(者)를 함부로 내뱉어 남이 얼굴을 붉혀도 그는 붉히지 않았다. 열다섯 열여섯이 되어서는 화류 거리와 술집, 도박장에 이르지 않은 곳이 없었다. 시험이 있을 때마다 집에서 뒷돈을 대고 선생이 대작(代作)하는 자를 찾았다. 드러내 놓고도 쓰고 몰래도 썼으나 얼마나 돈을 썼는지 알 수 없었다. 급제하지 못하면 오히려 큰소리쳤다. "노 제학이 내 새로운 문장을 알아보지 못하고, 탐관(貪官) 제학이 내 진정한 문재를 취하지 못한 것이다." 이 방자하고 허황된 주둥이를 고치지 않았다. 이 사람은 참으로 이러하였다.

뱃속은 검디검으나 먹물은 아니요,

얼굴엔 얼룩얼룩하나 문장은 아니라.

도박장 속의 장원이요, 과거 방목엔 이름 없는 방주라.

노 서씨(老徐氏)가 또 말하였다. "나에게 이렇게 좋은 아들이 있으니, 반드시 아주 예쁘고 능력 있는 여자와 짝을 지어야겠다." 멀고 가까운 곳을 가리지 않고 좋은 집 딸을 알아보러 다니다가, 마침 정 씨 집 딸을 알아보게 되었다. 선생을 청하고 수놓기 스승을 청하였으니 글씨와 바느질을 할 줄 안다는 것은 말할 것도 없었고, 몰래 중매하는 이를 섞어서 상견하게 하니 모두 절세의 국색이라 하였다. 사람을 보내 청혼하였으나 정 노인이 허락하지 않았다. 이 노 서씨가 기어이 하려 하며 말하였다. "승낙한다면 오백 냥을 예물로 보내겠고, 혼수는 알아서 하면 된다." 정 노인이 말하였다. "나는 딸을 파는 것이 아닙니다." 또 허락하지 않았다. 마침내 중매인을 보내 장 수재에게 가서 어설픈 예물을 먼저 치르고 약정을 해두었다. 이것이야말로 이러하다.

봉황은 봉황과 짝하고, 난초는 지초(芷草)와 벗하나니.

저 갈대를 비웃노니, 옥을 탐하려 들었구나.

이때 노 서씨는 정 노인이 거듭 허락하지 않자 도리어 노기가 치밀어 말하였다. "세력 있는 자를 한 명 데려가면 따르지 않을 수 있겠는가!" 평소 사귀어 두었던 한 향신(鄕紳)이 있었으니 성이 왕(王)으로 거인(擧人) 지현이었는데, 일찍이 본성(本省) 독무(督撫)에서 행정을 맡아 부모 관리 노릇을 한 적이 있어 줄곧 그와 연줄이 닿아 있었다. 이번에 독무가 다시 세력을 회복하게 되자 서 씨 집에서 특별히 그를 청하여 중매를 서달라 하고 비단 네 필과 은 술잔, 십이 냥 절석(折席)을 예물로 주었다. 이 왕 향신이 사양하지 않고 모두 받았다.

날을 잡아 정 노인을 찾아갔다. 화려한 오사모와 붉은 원령을 입고 양산을 펼치고 내방하였다. 정 노인은 한 번 보고 깜짝 놀랐다. 주인과 손님으로 앉아 입을 열자마자 혼사를 말하였다. 정 노인이 말하였다. "소녀가 이미 장 씨 집의 예물을 받았습니다." 왕 향신이 말하였다. "무슨 말씀이오! 이미 예물을 받았다면 어찌하여 서씨 댁에서 학생에게 중매를 서달라 하겠습니까? 이 중매는 반드시 학생이 서야 합니다." 정 노인이 말하였다. "실제로 예물을 받았습니다. 예물 문서가 지금 있습니다." 하고 가져오라 하여 보여주었다. 왕 향신이 보고 말하였다. "노인께서는 어찌 이렇게 헐값으로 파셨습니까? 이것은 예물이라 할 수도 없습니다! 학생이 오백 냥을 보장하고 혼수는 마음대로 정하시면 됩니다." 정 노인이 말하였다. "혼인에 재물을 논하는 것은 금수의 짓입니다. 실제로 이미 정해진 것이니 말을 바꾸기 어렵습니다." 왕 향신이 말하였다. "무엇이 바꾸기 어렵단 말씀입니까! 가난한 수재에게 노인께서 돈을 좀 더 얹어 돌려주면 그는 오히려 좋아할 것입니다. 노인께서 다시 서씨 댁에 회답하는 것을 좀 준비하면 사백 금이 남습니다. 이는 그쪽에서 노인을 구하는 것이니, 좀 남겨도 무방합니다. 저 학생도 요행히 급제했을 때 딸 셋을 혼인시켰는데 모두 조카나 외생(外甥)에게 보냈고 일인당 족히 삼백 냥씩을 받았습니다. 학생은 집안에 허례허식 하나씩만 주고 백여 금도 쓰지 않아 평일의 이자도 다 갚지 못할 정도였습니다. 노인께서는 구애받지 마십시오." 정 노인이 어찌 들으려 하겠는가. 왕 향신은 뜻을 이루지 못하고 떠나갔다.

달 아래 늙은 신선도 헛수고요,

봄 얼음은 녹기 어렵구나.

중매의 신이 선합이 능하나,

어쩔 수 없구나 돌이 굴러 어렵구나.

이때 노 서씨 부자가 집에서 왕 향신이 가면 안 될 리 없다며 기다리는데, 문지기가 왕 어르신이 오신다고 알렸다. 왕 향신이 오더니 양산도 펼치지 않고 공복도 입지 않은 채 걸어 들어오며 말하였다. "노부가 이십 년 거인, 이십 년 향관으로 지내면서 부탁을 얼마나 많이 했는지 모르지만, 이렇게 완고한 사람은 없었소." 노 서씨가 말하였다. "설마 듣지 않겠다는 것입니까?" 왕 향신이 말하였다. "완전히 듣지 않더이다! 내 생각에 천하에 여자가 가장 많으니 좋은 사람이 없을까요? 내 다른 데 알아보겠습니다." 말을 마치고 일어나 가려 하였다. 노 서씨 부자가 필사적으로 붙잡으며 말하였다. "잠깐만 더 앉아 계십시오." 왕 향신이 말하였다. "공 없이 녹을 받을 수 없습니다." 앉아서 왕 향신이 서등제를 가리키며 말하였다. "영식(令息)처럼 이런 인재라면 바로 부마(駙馬)도 고를 수 있겠소. 학생에게 딸이 아홉이 없는 것이 한스럽구나." 노 서씨가 말하였다. "부자가 어리석고 우둔하여 거절을 당하는 것이 마땅합니다. 다만 노대인의 금언을 따르지 않아서야 되겠습니까. 바로 집안에 체면이 좀 있는데, 이제 노대인을 청하여 혼인 하나를 구하지 못하면 남에게 웃음거리가 됩니다. 노대인께서 좀 주선해주십시오." 왕 향신이 말하였다. "학생도 별 주선이 없습니다. 다만 노인께서 제목을 내시면 학생이 하겠소."

고운 얼굴은 늘 화의 씨앗이 되나니,

천고(千古)에 이를 알면서도 탄식하노라.

다만 두렵구나 가는 눈썹 아름다워,

참새 다툼의 슬픔을 빚어낼까 하여.

노 서씨가 말하였다. "들으니 현령이 노대인을 매우 따른다 하옵니다. 사적으로 구하지 못하면 관에서 다투겠습니다." 왕 향신이 말하였다. "설마 고소장을 내는 것입니까?" 노 서씨가 말하였다. "바로 그렇습니다. 정 씨 집이 혼인을 어겼다고, 장 씨 집이 강제로 빙례를 하였다고 고소하십시오. 노대인이 한마디 해주시면 관에서 밝게 판결할 것입니다." 왕 향신이 말하였다. "학생은 독무의 총애를 입고 있어 작은 부탁은 다시 가서 말하지 않겠습니다. 이 혼인은 작은 일이니 노인께서 다른 사람을 청하십시오." 서등제가 말하였다. "기세를 다투는 것이지 재물을 다투는 것이 아닙니다. 일이 이루어지기만 하면 백 금이라도 제가 냅니다." 왕 향신이 말하였다. "낡은 신발 진영(破靴陣)은 건드리지 마시고, 다만 정 씨 집이 혼인을 어겼다고만 고소하십시오." 과연 서씨 집에서 고소장을 내고 왕 향신이 백 냥을 받아 끝까지 보증하여 고소가 접수되었다.

먼저 두 차례 차인이 정 씨 집에 갔다. 정 노인은 아무 영문도 몰랐다가 서 씨 집에서 혼인을 어겼다고 고소한 것임을 알게 되어 화도 나고 웃음도 났다. 정 노인은 하는 수 없이 술을 대접하였는데 차인이 육십 전을 요구하다가, 그렇지 않으면 딸을 관아로 불러내겠다 하였다. 정 노인도 방법이 없어 앞뒤로 직접 이십 전을 뇌물로 주었다. 이것이야말로 이러하다.

참새 다툼도 지붕을 뚫고, 여우 위세는 늘 금품을 갈취하네.

화는 날개 있는 것처럼 오나니, 가만히 앉아 있어도 침범해오는구나.

심리가 있는 날, 장 수재도 몇 친구를 청하여 한바탕 말하게 하였다. 현관이 먼저 왕 향신의 인정을 들은 뒤 말하였다. "형도 사정을 모르는 사람이오. 내 이제 형의 예물을 돌려드리겠소." 장 수재가 다시 말하였다. "서씨 집은 빙례를 한 적이 없고 강제로 혼인을 구한 것입니다." 현관이 말하였다. "그 일은 형이 간섭하지 마시오. 다만 형을 꺾지는 않겠소." 심리할 때 노 서씨는 어디선가 적삼 깃 하나를 꺼내 말하였다. "소인이 예전에 정 노인과 함께 장사를 하였는데, 양쪽 아내가 모두 임신 중이어서 적삼 깃을 찢어 증표로 삼았습니다. 그 후 소인은 아들이 태어나고 그 집에서는 딸이 태어나자, 소인이 금팔찌 한 쌍과 구슬 머리장식 두 개, 은 사십 냥을 보내 허락하심에 감사드렸습니다. 나중에 그 아내가 소인 집이 다른 현이라 길이 멀다며 장 씨 집에 다시 청혼한 것입니다." 정 노인을 부르자 정 노인이 말하였다. "소인은 비록 장사꾼이나 서 아무개와 만난 적도 없는데 어찌 깃을 찢는 일이 있었겠습니까? 금팔찌, 구슬장식, 은 냥을 받은 적도 없습니다." 지현이 말하였다. "천하에 어찌 이런 근거 없는 말이 있을 수 있단 말인가!" 중인(中人)을 부르니, 노 서씨가 매수한 건달로, 말하였다. "소인은 아전입니다. 십칠 년 전에 두 분이 목재 상인으로 모두 소인 집에 머무셨습니다. 두 분이 술을 마신 뒤 어떤 깃을 찢었는지는 모르나 소인을 중인으로 세웠습니다. 그 후에 무슨 예물을 보냈다는 것은 소인이 들었을 뿐 보지는 못하였습니다. 그 후 십여 년 동안 소인 집에서 장사를 하지 않았고, 삼 년 전에 서 아무개가 소인을 보내 정 아무개를 만나 큰 예물을 올리려 하였는데, 정 아무개가 길이 멀어 데릴사위를 들이자고 하였습니다. 서 아무개는 외아들이 싫다 하여 결국 지연되었고, 장 수재의 예물을 받은 것은 소인이 알지 못합니다." 지현이 정 노인을 가리키며 말하였다. "이렇게 양심 없는 교활한 자! 네가 혼인을 어기고 다시 빙례를 받은 것이 사실이로다." 정 노인이 말하였다. "소인은 청양(青陽)에서 장사한 적도 없고 이 아전도 없는데 어찌 중인을 세웠겠습니까? 모두 거짓말로 매수한 건달입니다." 그 건달이 말하였다. "내가 중매하러 갔을 때 당신이 술을 먹이며 머물게 하지 않았습니까? 내가 중매를 섰더니 당신은 아내와 의논하겠다며 기다리게 하고 몇 차례를 다녀왔는데, 어떻게 나를 모른다고 합니까?" 이것이야말로 이러하다.

거짓을 꾸며 하늘을 속이려 하니,

이치에 있을 법한 말로 속이는구나.

설령 소진·장의(蘇秦·張儀)의 재주라도,

응당 그 입을 봉해야 하리라.

지현이 듣고 크게 노하여 치려 하고 족치려 하였다. 마침내 차인을 보내 정 식을 잡아오게 하고, 서씨 집에서 예물을 보내 회답하게 하였다. 관아를 나와 정 씨 집으로 가서 장 수재를 불러왔다. 장 수재는 정 씨 집에 누가 될까 하여 기꺼이 받으려 하였다. 정 노인이 말하였다. "이게 무슨 도리입니까!" 하며 내주지 않았다. 서씨 집의 예물이 오자 정 노인이 밖으로 던져버렸다. 하루 남짓 혼란이 계속되었으나 결말이 나지 않았다. 서씨 집에서 관에 다시 품달하려 하자 차인이 조급해져서 정 노인의 목덜미를 잡으며 말하였다. "이렇게 관에 거역하면 잡아가서 몇 십 대를 쳐야 이 혼사가 이루어질 것이오." 끌고 당기는 와중에 정 노인이 한순간 기가 막혀 가래가 치밀어 땅바닥에 쓰러졌다. 안에서 아내와 딸, 며느리가 모두 뛰어나와 물을 먹이고 손을 비볐다. 정 노인이 겨우 두 마디를 내뱉었다. "내 딸이 불행하여 권세 있는 집에 핍박을 받는구나. 내가 죽더라도 내 아들은 내 말을 지켜라. 나는 구천에서 눈을 감으리라." 말을 마치자 가래가 다시 치밀어 올라 일시에 숨이 끊겼다.

한 번 약속한 생사를 굳게 지키고,

서로 기약하기를 함께 움직이지 않으리라.

저 번복하는 자들을 보면,

천고에 수염 있는 사내도 부끄러워하리라.

이때 온 집안이 통곡하였다. 현의 차인들은 사람이 죽을까 봐 바람처럼 달아났다.

정 씨 집에서는 서씨 집의 예물 상자를 모두 부수고 밖으로 내던졌다. 그리고 장 씨 집에 알려 상중에 혼인하러 오게 하였다. 장 수재는 현관이 노할까 두려워 감히 오지 못하였다. 정 씨 집에서는 스스로 염습하고 상을 시작하였다. 그런데 서씨 집에서는 말하였다. "한 번 시작한 것은 멈출 수 없다. 정 노인이 죽었으니 아들이 어리다. 내가 먼저 혼인을 어겼다고 고소하겠다. 비록 그쪽에서 인명 사고를 고소하더라도 상쇄될 것이다." 반드시 왕 향신에게 끝까지 보증해달라 하고 은 십 냥을 여비로 주었다. 왕 향신은 외생(外甥) 자격으로 독무에게 고소하였다. 독무는 비준하였다. "혼인을 어기고 관에 항거하는 것은 법기(法紀)를 심히 무시하는 것이다. 즉시 해당 현에 엄히 심사하여 결말을 짓게 하고, 혼인을 이룬 날짜를 취해 보고하라." 지현은 왕 향신이 성(省)에 올라갔다는 말을 먼저 듣고 이미 조급해하던 터에 헌부(憲批)를 보고 황급히 차인을 보내 정식을 잡아 왔다. 정식도 분연히 관아에 나갔다. 어머니가 또 분부하였다. "아들은 아버지의 말을 바꾸어서는 안 된다." 정식이 말하였다. "아버지의 뼈가 아직 차가운데 어찌 차마 아버지의 명을 어길 수 있겠습니까?" 그의 아내도 와서 말하였다. "이 일은 반드시 죽기로 다투어야지 이러저러 할 수 없습니다."

의를 취함에 같은 마음이 있어,

혼인의 맹세 지키기를 맹세하였구나.

도리의 말로 서로를 갈고닦으니,

옛 도리를 아직 찾을 수 있도다.

정식이 관아에 이르렀다. 지현이 말하였다. "상사께서 일자를 정하여 서씨 집과 혼인하라 하셨으니, 거역해서는 안 된다." 정식이 말하였다. "아버지는 실제로 그에게 허락하지 않으셨고 예물도 받지 않으셨습니다." 지현이 말하였다. "너도 이렇게 헛소리냐! 부유한 집을 놔두고 가난뱅이에게 시집가다니. 천하에 이런 어리석은 사람이 있겠는가! 바로 나 같은 중매인에 독무 같은 주혼인도 충분한데. 또 강짜를 쓴다면 너를 독무에게 압송할 것이니, 온 집안이 가루가 될 것이다." 정식이 말하였다. "죽고 사는 것은 운명에 달렸습니다. 만약 품행을 무너뜨리고 절개를 없애는 것이라면 소인은 결코 하지 않겠습니다. 바로 노야께서는 소인의 부모 관리로서 바로 풍속을 바로잡고 기강을 밝히셔야 하는데, 어찌 소인에게 이런 일을 하게 하십니까?" 지현이 듣고 크게 노하였다. "이 어리석은 놈이 도리어 나를 말하는구나!" 정식에게 곤장 삼십 대를 쳐서 피를 흘리게 하였다. 서씨 집에서 예물을 당에서 주고받으라 하였다. 정식이 크게 소리쳤다. "노야! 소인을 죽이려면 죽이시오. 예물은 받지 않겠고 누이는 결코 그에게 시집보내지 않겠습니다!" 지현이 말하였다. "이런 강퍅한 종놈 같으니!" 뺨을 치게 하고 또 뺨을 사십 대 치게 하였다. 정식은 오직 굽히지 않았다. 현관이 한참 생각하다 말하였다. '나도 어리석었구나. 독무에서 혼인 날짜를 취해 보고하라 하였으니, 나는 그저 혼인만 이루면 되지 예물 받고 안 받고를 내가 왜 따지는가!' 정식을 옥에 가두었다. 패 두 개를 뽑아 포졸 네 명을 보내 정씨를 즉시 관아로 데려오게 하였다.

달 아래 노신선도 관장의 힘이요,

빙인(氷人)도 하졸을 보내는구나.

격문 한 장을 빌려와,

혼인을 이루는 부적으로 쓰는구나.

차인이 집에 이르렀다. 오씨 부인이 얼른 딸의 방으로 달려가 말하였다. "이 일을 어찌하면 좋겠느냐? 아버지의 임종 말씀을 잊지 마라!" 정씨가 말하였다. "딸에게 방도가 있으니 어머니는 걱정 마십시오. 한 번 죽음으로 두 어버이의 은혜에 보답하는 것이 어렵지 않으니, 결코 강포한 무리에게 몸을 잃지 않겠습니다." 조용히 머리를 빗고 세수한 뒤, 상자를 열어 새 옷을 꺼내 입었다. 밖에서는 네 명의 포졸이 우레처럼 소리 지르며 독촉하였으나 정씨는 못 들은 듯하였다. 속옷을 모두 꿰매어 합치고 겉에 매듭을 단단히 묶었다. 어머니가 말하였다. "관아에 뵐 때는 청삼(靑衫)을 입어야 한다." 하여 청의(靑衣) 한 벌을 걸쳤다. 또 자신의 서탁(書卓)에서 먹을 갈아 종이 한 장을 꺼내어 몇 글자를 쓰고 소매 속에 간직하였다. 영전에 나아가 아버지의 영구에 울며 작별하였다. 또 어머니에게 절하였는데 어머니는 울어 말을 잇지 못하였다. 또 형수에게 말하였다. "오빠와 형수님을 번거롭게 하였습니다. 첩이 불행하여 형수님을 끝까지 모시지 못하게 되었으니 운명입니다. 『시경』에 이르기를 '어찌 밤낮으로 부지런하지 않으리오마는, 가는 길에 이슬이 많음이 두렵구나' 하였습니다. 첩은 하루의 목숨을 훔쳐 천고의 웃음거리가 되기를 차마 할 수 없습니다. 집에 늙으신 어버이가 계시니 부디 잘 모셔주십시오." 형수도 울며 말하였다. "시어머니 봉양은 내게 맡기시고, 시아버지의 유언은 그대에게 있습니다." 가마 앞에 이르렀다. 차인들이 속으로 탄복하였다. '과연 대단한 여인이구나! 서씨 집에서 이를 탐낼 만도 하구나.' 앞뒤로 몰려 현 앞으로 달려갔다.

교묘한 계책으로 흑룡의 소굴을 뚫고,

깊은 모략으로 조개를 열어 태를 벗기네.

밝은 빛 햇빛에 발걸음 비추며,

밤의 구슬 탈취하러 오는구나.

이쪽 서씨 집에서는 여인이 잡혀 나온 것을 알고, 지현이 반드시 당에서 넘겨주어 혼인하게 할 것이라 여겼다. 사람을 보내 집으로 돌아가 잔치를 준비하고 친척과 이웃을 초대하며, 고악대도 고용하였다. 서씨 집 도련님은 머리를 감고 세수하고 안팎으로 새 옷을 갈아입어 신랑이 될 준비를 하였다. 가마꾼들이 한달음에 현 앞에 데려다주어 현관이 즉시 집으로 보내주기를 고대하였다. 이리저리 목을 빼고 두리번거리며 많은 웃음거리가 되었다.

때는 한낮에 가깝고 날씨는 맑게 갰다. 정씨가 가마 안에서 한마디 물었다. "현까지 얼마나 남았습니까?" 가마꾼들이 모두 웃으며 말하였다. "어서 도착하고 싶은가 봐요." 여러 가마꾼도 함부로 농담을 하였다. "전날 신부 한 분을 모셨는데 가마 안에서 몹시 울었습니다. 내가 듣기 안타까워 '아씨, 도로 모셔다드릴까요?' 하였더니 그 신부가 울음을 그치고 내게 대답하기를 '나는 내가 울고 싶어 울고 당신은 당신 갈 길 가면 됩니다' 하였답니다." 말이 끝나자 뒤쪽 가마꾼이 또 말하였다. "나도 신부를 모신 적이 있었는데, 한창 모시고 가다가 가마 바닥이 낡아서 그만 빠져버렸습니다. 어쩔 줄 몰라 밧줄로 묶자는 사람도 있고, 대장장이를 불러 못을 박자 목수를 부르자는 사람도 있었는데, 시간을 놓칠까 걱정들이었습니다. 그런데 신부가 말하기를 '괜찮아요. 당신들은 밖에서 모시고, 나는 안에서 걷겠습니다' 하였답니다." 서로 웃음과 농담이 그치지 않았다. 그 사이에 알 수 없는 것은 이것이었다.

기러기는 다시 짝을 맺지 않거늘, 능에(鴇)는 음란함을 좋아하는구나.

정절과 음란함은 각기 다른 것이니, 그 마음을 밝히기 어렵구나.

한참 이야기하는 중에 갑자기 바람이 한 차례 불어와 하늘과 해가 다 어두워지고, 모래가 날리고 돌이 구르며 앞을 볼 수 없었다. 이 사람들은 하는 수 없이 가마를 내려놓고 남의 처마 밑에서 바람을 피하며 반 시간 가량을 보냈다. 이것은 아마도 이러하였을 것이다.

비가 내려 하늘이 눈물 흘리고, 천둥이 울어 땅이 애도를 올리네.

서방의 여러 불제자들도, 함께 이 여래 같은 여인을 전송하는구나.

서씨 집 도련님은 신부를 애타게 기다리는 판에 돈까지 써가며 문 앞의 포졸에게 소란 피우지 말라 하였다. 현 앞에는 구경꾼이 산처럼 몰려들었다. 현 앞에 이르자 차인 하나가 먼저 뛰어가 보고하였다. "정국영이 도착하였습니다." 그 몇몇이 여인에게 가마에서 나오라 했으나 아무리 해도 나오지 않았다. 차인이 소리쳤다. "노야가 당에서 기다리십니다. 이렇게 자유롭습니까!" 하고 발을 걷어올렸더니 그만 깜짝 놀랐다. 언제인지도 모르게 여인이 이미 가마 안에서 목을 매어 죽어 있었던 것이다. 얼굴빛은 살아 있는 것 같으나 목은 이미 숨이 끊겼다.

맹세한 말은 엄격하여 둘이 없고, 임종 말씀은 더욱 간곡하였구나.

어찌 수유(須臾)의 죽음을 아끼리오, 몸을 훔쳐 늙은 어버이 부끄럽게 하겠는가.

이 차인이 또 달려 들어가 현관에게 보고하였다. "정국영이 도착하였습니다." 현관이 데려오라 하며 놀라지 말게 하라 하였다. 차인이 말하였다. "죽었습니다." 현관이 말하였다. "헛소리! 도착하였다면서 어찌 죽는단 말이냐? 분명히 말하라!" 차인이 말하였다. "집을 나와 가마에 탈 때는 살아 있었는데, 가마에서 내려오라 하니 이미 죽어 있었습니다." 현관이 발을 구르며 말하였다. "내가 경솔하여 이 여인을 죽게 하였구나. 어서 옥에서 정식을 꺼내어 시신을 거두어 장사지내게 하라." 한편으로 공문서를 써서 독무에 회보하였다. 정식이 옥에서 나와 여동생의 시신을 보고 가슴을 치며 통곡하였다. "훌륭한 누이야, 훌륭한 누이야! 이렇게 정렬(貞烈)하니 내 너를 위해 죽어도 억울하지 않다!"

절의는 산과 언덕보다 무겁고, 몸을 잊어 수모와 원한을 참았구나.

분분히 옥처럼 부서지기를 달게 여기고, 낭낭히 꽃도 유연함을 부끄러워하네.

목숨은 늘어진 실처럼 끊어졌으나, 이름은 화려한 붓으로 남겨지는구나.

아악강(娥江)에 성스러운 여인이 있으니, 응당 고요한 곳으로 발걸음 허락받으리라.

현 앞에서 구경하던 사람들 중에 불평을 품은 몇몇이 말하였다. "서씨 집이 열녀를 죽게 하였다!" 하며 그 부자를 찾아 능욕하려 하였다. 서씨 집 사람들도 모두 모습을 감추었다. 여러 사람이 고함을 지르자 현관도 북도 치지 않고 당에서 물러났다. 풍속으로 집 밖에서 죽으면 '냉시(冷屍)'라 하여 집으로 들이지 않았다. 정식이 말하였다. "이는 열녀이니 우리 가문에 욕이 되지 않는다." 마침내 집 안으로 들였다. 어머니와 형수가 모두 와서 시신을 안고 통곡하며 끈을 풀어주었다. 몸에 입은 것은 모두 새 옷이었고, 또 속옷이 모두 꿰매어 합쳐져 있었으므로 옷도 갈아입히지 않았다. 소매 속에서 원래 썼던 종이 한 장이 나왔는데, 바로 이것이었다. "시신은 장씨에게 돌려보내어 아버지의 뜻을 이루어라."

남편이 있으되 아직 시집가지 못하였으나,

같은 무덤에 묻히기를 은밀히 맹세하였구나.

어버이의 뜻이 있기에,

두렵고 조심스럽게 맹세 꼭 이루리라 하였구나.

정식이 즉시 사람을 보내 장 씨 집에 알렸다. 장 씨 부자는 그 의기에 감동하여 모두 와서 염습을 도왔다. 장국진도 관에 엎드려 통곡하기를 아내를 잃은 것처럼 하고, 자최복(齊衰服)을 입고 관 앞에서 부부 예를 행하였다. 날을 잡아 운구하여 장씨 집 조상 묘에 안장하였다.

훗날 장국진은 학교에 들어갔다. 사람들이 와서 중매를 섰으나 모두 거절하였다. 장 수재가 말하였다. "나에게 너 하나뿐인데 어찌 작은 절조에 집착하여 우리 집안의 제사를 끊으려 하느냐?" 일 년여 권유 끝에 겨우 여자 종 하나를 두었다. 일 년 남짓 아들 하나를 낳자 더 이상 함께 자지 않았다. 서재에는 오직 열녀의 신주 하나를 마주하여 두었다. 정식과는 매부와 처남처럼 왕래가 끊이지 않았다. 나중에 거인에 오르고 관직을 선발받아 나가 동지(同知)의 자리에 이르기까지, 끝내 안으로 첩과 잉(媵)을 두지 않고 밖으로는 미동(美童)을 두지 않으며 말하였다. "여자 종을 둔 것은 아버지의 명을 받들기 위함이요, 장가들지 않는 것은 정 노인 부자의 의로움을 저버리지 않기 위함이다."

다만 현 사람들이 현령의 눈치를 보느라 다만 몰래 시와 글로 조문하였을 뿐, 비석이나 현판을 세우지 못하였다. 현관은 독무의 눈치를 보느라 감히 공문서를 올려 정려를 청하지 못하였다. 또한 의심이 병이 되어 정 씨 집 부자 두 사람을 죽게 한 이 한 가지 일을 후회하며, 항상 한 아름다운 여인이 목에 끈을 걸고 앞에 서 있는 것을 보는 병에 걸렸다. 일 년도 안 되어 병을 고하고 고향으로 돌아갔다. 독무는 군수품 낭비로 탄핵을 받아 구금되었다. 왕 향신은 한 푼도 얻지 못하고 또 많은 욕을 받았다. 서씨 집은 횡포와 무단(武斷)으로 군적에 조사를 받아 가산이 모두 탕진되고 그 아들은 거지가 되었다.

정(程) 열녀는 비록 정려를 받지 못하였으나, 도적수(屠赤水) 선생이 그를 위해 전기를 지어주었으니, 이로써 천지와 함께 불후하게 되었다. 바로 한 글자의 포상이 네 글자 현판보다 낫다는 것이다. 그 아버지와 오빠 올케도 모두 한 집안의 절의로서 부록에 실려 영원히 빛을 발한다. 횡포를 부린 서씨와 담력 없이 향신을 받들어 상사에게 아첨하며 관리 하려 한 지현, 청탁을 잘 말한 향관, 청탁을 들어준 독무는 지금 어디 있는가! 오히려 냉소와 경멸을 받을 뿐이다.

이 일을 식견이 없는 사람이 보면 틀림없이 말할 것이다. "어리석은 늙은이, 어리석은 딸이 부유한 집을 놔두고 관에 시달림을 자초하였구나. 서씨 집은 재산과 세력이 있어 관리도 움직일 수 있는데, 수재는 감당하지 못하였지 않는가." 다만 마지막에 가서 저울질해보면, 스스로 분명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