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회 가짜 정숙한 여인, 남편 그리워 절개를 잃다 짐승 같은 동포, 성을 속여 아내를 기망하다
《남가자(南柯子)》:
잘못 시집가도 원망 마오, 정결한 마음 두견에 맡겨두오. 만약 숨긴 일을 남에게 말한다면, 향 훔치는 방탕한 자 어둠 속에서 간계 꾸미리. 어찌하여 남을 따라 달아났는가, 누구와 함께 잠자리 하는지 알면서도. 비록 옛 인연 이루었다 해도, 이미 얼마나 많은 더러움을 받았으니 씻기 어렵구나.
여자가 이미 혼인을 약속한 뒤에 중간에 변고가 생겨 혼인을 이루지 못하고 다시 개가하는 일이 흔히 있다. 만약 개가하기를 거부하고 절개를 지키다 죽는다면 그것이 상책이다. 만력(萬曆) 연간에, 수놓는 여인들을 징발한다는 헛소문이 돌아 한때 온통 떠들썩하였다. 시집보내려는 자는 미처 보내지 못하고, 장가들려는 자는 미처 들이지 못하여, 얼마나 많은 착오가 빚어졌는지 알 수 없었다. 그때 청전현(青田縣)에 한 사람이 있었는데, 외지에서 돌아오다가 이 소문을 듣고 곧 길 위에서 딸을 어느 농부의 아들에게 허혼하였다. 길에서는 예물로 줄 물건이 없어 옷고름 한 가닥으로 증표를 삼았다. 집에 돌아오니 또 부유한 집에서 청혼을 해왔고 그 어머니가 허락하였다. 저녁이 되자 부유한 집에서 가마를 보내 신부를 맞이하러 왔다. 여자는 아버지가 먼저 허락하셨다며 어머니의 명을 따르지 않고, 품속에 작은 칼을 지니고 있다가 혼인 가마 안에서 스스로 찔러 죽었다. 현관이 이 소식을 듣고 그 정렬을 기리어 사당을 세워 제사를 지내게 하고, 그 남편을 묘지기로 임명하였다. 이는 천 명 중에서 하나를 가릴 만한 인물이니 애석하게도 그 성씨를 잊어버렸다. 그다음으로는, 부득이하여 다시 시집가되 끝내 전 남편을 생각하다 죽는 경우가 있다.
예컨대 양국(梁國)의 어느 여인은 이미 혼인을 약속한 상태였다. 그 남편이 장사 차 외지에 나가 몇 년이 지나도 돌아오지 않자, 부모가 강제로 개가시켰다. 비록 다른 집으로 시집가긴 했으나 종일토록 전 남편을 그리워하다 울울히 병들어 죽었다. 남편이 돌아와 아내가 자기를 그리워하다 죽었다는 말을 듣고 마침내 여인의 묘소에 이르러 무덤을 파고 관을 열었더니 여인이 소생하였다. 두 사람은 함께 집으로 돌아갔다. 나중에 남편이 이 사실을 알고 관청에 나아가 송사를 벌였다. 관리가 말하였다. "이는 예사로운 일이 아니니 통상의 도리로 판단할 수 없다." 마침내 전 남편에게 돌려보냈다. 곧바로 죽지는 못하고 또 빈부와 나이에 마음이 흔들려, 비록 아버지의 명을 잊지는 못하였으나 몸을 더럽히는 경우도 있다. 설령 처음 약혼자를 그리워하는 마음이 있다 해도, 이 역시 크게 칭찬받을 것은 못 된다.
예전에 율양현(溧陽縣) 서문(西門)에 한 양반이 있었는데 성은 탕(湯), 이름은 곤원(坤元)이요 호는 소춘(小春)이었다. 나이는 불과 이십 남짓으로, 생김새가 청수하고 풍채가 소탈하여 속기가 전혀 없었다. 동문(東門) 쪽에는 풍현(馮玄)이라는 부자가 있었는데 아들은 없고 딸 하나만 있었으니, 이름은 숙낭(淑娘)으로 이미 스무 살에 가까웠다. 풍 노인은 탕소춘이 인물이 반듯하고 장래에 실패하지 않을 것이라 여겨, 딸을 그에게 데릴사위로 맞이하고 싶었다. 이에 중매인을 탕 씨 집에 보내 혼인을 청하였다. 탕 씨 집 부모는 빈부가 맞지 않는다 하여 감히 허락하지 못하였다. 중매인이 여러 차례 오가며 풍 노인의 뜻을 전하자 그제야 허락하였다. 그러나 허락은 했어도 말로만 그럴 뿐, 당장 손을 써서 혼인을 이룰 형편이 못 되었다. 일 년이 지나자 풍 씨 집에서 또 중매인을 보내 혼인을 재촉하였다. 탕 씨 집에서는 말하였다. "풍 사돈의 호의는 감사하나, 마침 이 몇 년간 형편이 여의치 않아 예물을 보내지 못하였습니다. 빈손으로 어찌 혼인을 이룰 수 있겠습니까?" 중매인이 말하였다. "사돈께서 먼저 말씀하시기를, 오직 댁 아드님이 데릴사위로 들어오기만 하면 예물은 따지지 않겠고 오히려 예물을 보내 도련님을 모시러 오겠다고 하셨습니다." 탕 씨 집 부모가 이 말을 듣고 기뻐하며 말하였다. "그렇다면 풍 사돈 편에서 날을 잡아 주시면 그만입니다." 중매인이 풍 노인에게 회답을 전하자 곧 9월 15일을 택하여 혼인을 치르기로 정하였다. 이것이 6월의 일이었다.
그런데 뜻밖에도 7월이 되자 풍 노인이 유행병에 걸려 며칠 만에 세상을 떠났다. 상을 치른 뒤 외인들이 풍 씨 집에 재산과 혼수가 있는 것을 보고 앞다투어 중매인을 보내 청혼하였다. 풍 씨 집에서는 풍 노인 생전에 탕소춘과 이미 약속하였으므로 함부로 바꾸기 어려워 다른 청혼은 받아들이지 않았다. 탕 씨 집에서는 풍 노인이 죽고 나니 빈부가 맞지 않는 데다 예물도 보내지 않았으니 필시 변경이 있으리라 여겨 아예 거론하지 않았다. 몇 달이 또 지났다. 숙낭에게는 숙부 풍기(馮奇)가 있었는데 조카딸이 나이가 차도록 의지할 어른이 없는 것을 보고 홀로 나서서 숙낭을 남문(南門) 쪽의 한 수재(秀才)에게 후처로 시집보냈다. 그 수재는 성이 전(錢), 이름이 암(岩)이요 자는 관민(觀民)으로 나이가 마흔 살 가량이었다. 집안이라고는 사방이 텅 비어 날마다 뱃속의 몇 구절 글월로 훈장 노릇을 하며 살아가고 있었다.
시집온 지 사흘이 지나 전암이 한가로이 숙낭에게 물었다. "낭자, 당신 아버님이 살아 계실 때에는 어엿한 부자이셨는데, 어찌하여 이 나이가 되도록 시집을 보내지 않으셨습니까?" 숙낭은 이 물음을 듣자 봄 내음 고운 눈썹이 절로 찌푸려지고 옥 같은 눈물이 가만히 흘러내렸다. 고개를 끄덕이는 한편 한숨을 내쉬면서도 말은 하지 않았다. 전암은 그 모양이 무슨 까닭인지 알 수 없어 웃는 낯으로 다정스레 몇 번이나 불렀다. "낭자, 무슨 속마음이라도 있으면 나한테 말해 주면 안 될까요? 어쩌면 내가 당신의 근심을 덜어드릴 수 있을지도 모릅니다." 숙낭은 또 한숨을 내쉬며 말하였다. "이 말은 당신에게 해서는 안 되는 것이랍니다. 말한들 소용이 없어요. 말해 무엇 하겠어요?" 전 수재는 이 한마디를 듣고 더욱 어리둥절하여 천 번, 만 번 불러대며 말해달라고 조르자, 숙낭이 말하였다. "당신은 내게 무슨 속마음이 있다고 생각하세요? 다름이 아니오라, 예전에 아버지가 살아 계실 때 저를 동문의 탕소춘에게 허혼하시고 6월에 날을 잡아 9월 15일에 혼인을 치르기로 하였는데, 뜻밖에도 7월에 아버지께서 돌아가셨습니다. 탕 씨 집에서는 예물을 보내지 않았다 하여 아무 말도 없었고, 그 한 가닥 인연은 동쪽으로 흘러가는 물처럼 사라져버렸답니다. 말하면 말할수록 서글픈 마음을 금할 수가 없네요." 말을 마치고 다시 눈물을 뚝뚝 흘렸다.
생각해보라. 이 말은 비록 숙낭의 착한 마음씨에서 나온 것이지만 마음속에 담아 두었어야 했다. 일단 입 밖에 내면 두 마음을 품은 여인이 되어버리는 것이다. 전 수재는 워낙 솔직한 사람이라, 만약 간사한 자였다면 얼마나 많은 의심과 불쾌함을 품었겠는가. 전 수재는 오히려 웃으며 말하였다. "그 말은 이제 더 꺼낼 필요가 없습니다. 원래 부부가 될 인연이라면 이리저리 굴러다니다가 저절로 만나게 되고, 인연이 없다면 맺어졌다 해도 결국 갈라지게 되지요. 소위 전생의 인연이란 것은 사람이 따질 수 없는 것이니, 울어 무엇 하겠습니까?"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풍 씨 집에서 사흘째 되는 날 보내는 예물 상자가 왔다. 숙낭은 눈물을 닦고 수심 어린 얼굴을 기쁜 얼굴로 바꾸어 일어나 예물 상자를 챙기고 나누어 보낼 것을 정리하느라 그날은 별 말이 없었다.
닷새째 되던 날, 같은 시사(詩社)의 친구들과 몇몇 제자들이 돈을 모아 술자리를 마련하여 전 수재의 신방을 축하해주었다. 술자리 중에 여러 친구들이 말하였다. "전 형, 듣기로는 형수님의 혼수가 꽤 두텁다 하던데, 천금은 족히 되리라 봅니다. 노형이야말로 하루아침에 일어선 셈이군요." 전 수재가 말하였다. "분위기는 그런 것 같긴 한데 어디 천금이나 되겠습니까. 제 아내에게는 또 사정이 있어서 자세히 살펴보지 못하였으니 정확히 얼마인지는 알 수가 없습니다. 어찌 일어섰다 하겠습니까?" 친구들이 웃으며 말하였다. "처녀인 여자가 무슨 사정이 있겠습니까? 아마 형의 나이와 생김새가 맞지 않아서겠지요. '다만 내 몸이 너무 늦게 태어난 것이 원망스러우니, 노랑의 젊은 시절을 뵙지 못하였구나.' 전 형은 이에 어떻게 답하겠습니까?" 전 수재가 말하였다. "그게 아닙니다." 친구들이 말하였다. "그렇다면 대체 무슨 까닭입니까? 닷새 엿새 만에 속마음을 털어놓았다니, 남에게 말 못 할 것은 아닌 듯한데, 형은 어찌하여 숨기고 말하지 않습니까?" 전 수재는 여러 사람이 캐물어서 놀림을 감당할 수 없게 되자 하는 수 없이 숙낭의 말을 일일이 여러 사람에게 털어놓았다.
여러 친구들은 이 이야기가 좀 거북하다 싶어 모두 말이 없었다. 그 중에 여린(餘琳)이라는 자가 있었는데 나이가 불과 스물다섯여섯으로, 평소 하는 일마다 유달리 교활한 꾀가 있었다. 그는 전암의 말을 들으며 한편으로는 속으로 계산을 하고 있었다. 이는 전 수재가 지나치게 부주의한 것이었다. 숙낭이 전 수재에게 그 말을 한 것만으로도 이미 그 마음이 전 수재에게 있지 않음이 드러난 것인데, 여러 사람에게까지 알려졌으니 어찌 남에게 간파되어 꾀어 내려는 마음을 불러일으키지 않겠는가! 이는 분명 전 수재 스스로 개를 울타리 안으로 끌어들인 것이었다.
그날 술자리가 끝나고 각자 흩어졌다. 마침 열흘쯤 지나 단오절이 되었다. 여린은 전암이 훈장으로 있는 주인집에서 절기 술자리가 있을 것임을 알고, 일부러 점심때에 전 씨 집을 어슬렁거리며 찾아갔다. 살펴보니 과연 전암이 없었다. 그는 낮은 목소리로 물었다. "계신 분이 있습니까?" 숙낭이 안에서 물었다. "누구세요?" 여린이 말하였다. "저는 서문에 사는 탕소춘이라 합니다. 전 선생님께 뵐 말씀이 있어서 왔습니다." 숙낭은 탕소춘이라는 말을 듣자 가슴 밑바닥에서 무언가가 치밀어 올라왔다. 얼른 하던 일을 내던지고 중문 어귀로 나와 살펴보니, 과연 훤칠하고 멋진 인물에 나이도 젊었다. 이 잘생긴 젊은이를 보자 갑자기 전암의 나이 든 모습이 역겨워졌다. 그래서 말하였다. "관인께서는 잠깐 앉아서 차 한 잔 드십시오." 여린은 이 반응에서 앞서 들은 말이 틀리지 않음을 알아채고 기뻐하며 자리에 앉았다.
숙낭은 그가 정말 탕소춘인 줄만 알고 한 발짝 나아가 말하였다. "관인, 진짜로 탕소춘이세요?" 여린이 능청스럽게 웃으며 말하였다. "탕소춘이 무슨 대단한 이름이라고 남이 사칭을 하겠습니까?" 숙낭이 말하였다. "관인께서는 동문의 풍 씨 집과 무슨 인연이 있으신가요?" 여린이 능청맞게 말하였다. "말하자니 기가 막힙니다. 예전에 풍 노인이 살아 계실 때 그 호의로 따님을 저에게 데릴사위로 맞이하려 하셨습니다. 뜻밖에도 날짜를 잡자마자 풍 노인이 돌아가시고 말았습니다. 지금까지 혼인을 이루지 못하여 공연한 이야기거리만 되었습니다." 말을 마치고 한숨을 내쉬었다.
숙낭이 말하였다. "저가 바로 풍숙낭이랍니다. 당신이야말로 아버지 살아 계실 때 마음에 드셨던 사윗감이군요." 울음을 터뜨리며 말하였다. "원수야, 아버지 살아 계실 때 어찌 혼인을 치르러 오지 않으셨나요?" 여린이 말하였다. "집안 형편이 여의치 않아 한동안 그 은전을 마련할 수가 없었습니다. 예물만 보냈더라도 오늘 같은 일은 없었을 텐데요." 숙낭이 말하였다. "가당치도 않은 우리 숙부가 나서서 나를 이 늙은 가난뱅이에게 시집보내 평생을 망쳤습니다." 여린이 말하였다. "전 선생님이 비록 가난한 선비이시긴 하나 훗날은 꼭 발달하실 것입니다. 저 같은 자와 어찌 비기겠습니까. 낭자께서 그분께 시집가셨으니 마님으로 계시는 것이 시골 사내에게 시집온 것보다는 만 배는 나을 텐데, 어찌 도리어 저를 그리워하십니까?" 숙낭이 말하였다. "무슨 말씀이세요! 부부는 나이와 생김새가 어울리고 정과 뜻이 맞아야 합니다. 아버지께서 당신에게 허혼하신 뒤로 나는 오직 당신만을 생각하였습니다. 이런 변고가 생겨 이 늙은 가난뱅이에게 묻혀버릴 줄이야 어찌 알았겠어요!"
보시라. 이 두 마디 말이 바로 전암을 마음에 들어하지 않아 여린을 따라 도망치게 되는 까닭이다. 여린은 말이 통하는 것을 보고 능청스럽게 눈물도 흘리며 말하였다. "이렇게 된 것은 모두 내가 당신을 그르친 탓입니다. 그러나 일이 이미 이렇게 된 이상 말해봤자 소용없고 다만 서글픔만 더할 뿐입니다." 하고는 일어나 가려 하였다. 숙낭이 그의 소매를 붙잡으며 말하였다. "하루도 당신을 그리워하지 않은 날이 없었는데, 오늘에야 겨우 만나게 되었으니 어찌 저를 돌보지 않고 그냥 가실 수 있으세요?" 여린이 다시 앉아 숙낭을 곁에 끌어당기며 말하였다. "낭자께서 이렇게 한결같은 마음으로 저를 잊지 않으셨으니, 이제 한 가지 계책이 있습니다. 차라리 날을 잡아 낭자와 함께 달아나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숙낭이 말하였다. "그 계책이 좋긴 한데, 어디로 가서 몸을 숨겨야 할까요? 안전한 곳이어야 할 텐데요." 여린이 말하였다. "동문에서 오십 리 떨어진 목가장(木家莊)에 제 외삼촌 댁이 있어 넉넉히 머물 수 있고, 아무도 찾아낼 수 없습니다." 숙낭이 말하였다. "일을 꾸물댈 것이 없으니, 오늘 밤 오경(五更)에 후문으로 오셔서 기침 소리를 신호로 삼아 함께 성을 빠져나가는 것이 좋겠습니다." 두 사람이 계획을 정하자 여린은 숙낭을 끌어안고 입을 맞추고는 일어나 돌아갔다. 숙낭은 그를 탕소춘으로 굳게 믿어 소원을 이룰 수 있다고 여기고, 얼른 혼수 물건과 패물을 챙겨 두 개의 큰 보따리를 꾸렸다.
밤새 잠 못 이루고 삼경(三更)쯤 되기를 기다렸다. 그때 후문에서 기침 소리가 들렸다. 탕소춘이 온 줄로만 알고 살그머니 등잔에 불을 붙이고 문을 열고 나와 보니, 한 사람이 문 옆에 쓰러져 있었다. 자세히 비춰보니 탕소춘이 아니라 전암이었다. 어찌 이 시각에 그가 후문 앞에서 기침을 하고 있었던가? 알고 보니 전암이 주인집에서 술을 마셨는데 원래 어느 정도 주량은 있었으나, 신혼이라 이것저것 신경 쓸 일이 많아 주량을 이기지 못하여 진탕 취한 채 돌아오다가 정신을 잃고 후문 밖에 쓰러진 것이었고, 이미 한밤중이 넘어 있었다. 만약 기침을 하지 않고 날이 밝도록 잤더라면, 여린이 왔을 때 감히 일을 벌이지 못하고 그냥 물러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그 기침 소리 하나가 숙낭을 불러내어 문을 열게 하였고, 아직 깨어나지 못한 것을 보고 부축하여 들어가 재웠다. 얼마 지나지 않아 오경이 가까워지자 후문 쪽에서 다시 기침 소리가 들렸다. 숙낭은 이번에야말로 그 사람임을 알고 얼른 보따리를 들고 나가 문을 열었더니 과연 여린이었다. 두 사람은 몹시 기뻐하며 별다른 말도 없이 각자 보따리 하나씩 짊어지고 바람처럼 동문을 향해 달려갔다. 이를 안타까워하는 시가 있다.
옛날의 아름다운 약속 차마 잊지 못하여, 정결한 마음 밤낮으로 탕(湯) 씨를 그리네. 가련하구나, 간사한 사람을 가볍게 따라가, 도잠(陶潛)을 완랑(阮郎)으로 잘못 알았구나.
전 수재는 이튿날 깨어나 술은 깼으나 아직 자리에서 일어나지 못하고 연신 차를 달라고 불렀다. 열 번도 넘게 낭자를 불렀으나 낭자는 오지 않았다. 하는 수 없이 벌떡 일어나 사방을 둘러보니 아내의 그림자조차 없었다. 다시 후문으로 나가 보니 두 짝 문이 활짝 열려 있고 바닥에 기름 등잔 하나가 버려져 있어, 그제야 새도 토끼도 달아났음을 알았다. 얼른 이웃들을 불러 모았다. 이웃들은 전 수재의 새색시가 달아났다는 말을 듣고 이상한 일이라며 모두 연유를 물었다. 전암이 말하였다. "어제 주인집에서 취하여 돌아오다가 후문 앞에 쓰러졌는데, 도리어 아내가 문을 열고 나와 부축하여 들어가 재워주었습니다. 언제 간지는 모르겠습니다." 그 중에 한 사람이 말하였다. "전 선생, 문 밖에 쓰러지셨을 때 문을 두드리셨습니까?" 전암이 말하였다. "두드리지 않았습니다." 그 사람이 말하였다. "문을 두드리지도 않았는데 아주머니가 어찌 알고 나와 문을 열었겠습니까? 분명히 미리 약속이 있었던 것입니다. 바로 그 때 달아난 것이 틀림없습니다."
또 다른 사람이 말하였다. "전 선생이 천 번 만 번 잘못하신 것입니다. 부부가 혼인을 치르면 아무리 큰 일이 있어도 우선 집에 있으면서 한 달쯤 곁에 있어 주어야 합니다. 사흘도 되지 않아 시경을 외고 공자왈을 읊으러 가시고, 새색시를 집에 혼자 쓸쓸히 두셨으니 어찌 버티겠습니까, 당연히 달아나게 되는 것이지요." 전암이 당황하여 여러 이웃에게 물었다. "여러 분, 저 여인이 다시 돌아올 날이 있을까요?" 여러 사람이 웃으며 말하였다. "글 읽는 사람이 하시는 말씀은 다 고지식한 말씀이시군요. 돌아올 마음이 있었다면 애초에 가지 않았겠지요." 전 수재가 말하였다. "여러분 중 누구 한 분이 증인이 되어주신다면, 서둘러 관아에 가서 고소장을 내야겠습니다." 어떤 사람은 고소장을 내는 것이 옳다 하고, 고소하지 않으면 풍 씨 집에서 오히려 할 말이 생긴다고도 하였다. 어떤 사람은 수재가 아내를 잃어놓고 무슨 면목으로 고소하러 가겠느냐, 그냥 수배 방을 붙이라고도 하였다. 또 어떤 사람은 방을 붙이는 것도 보기 좋지 않으니 조용히 행방을 찾아 처리하라고도 하였다. 전 수재는 여러 사람의 말이 엇갈리자 말하였다. "여러분의 뜻을 종합하면 수배 방을 붙이는 것이 나을 것 같습니다." 즉시 방을 써 내려갔는데 요즘 형식과는 달리 열 몇 마디 글이었다. "전암이 부주의하여 이번 단오절 밤에 아내 풍씨 숙낭이 나이는 스물한두 살인데 어떤 간악한 자에게 이끌려 사라졌습니다. 혼수 물건은 한 가지도 남지 않고 패물도 모두 가져갔습니다. 외로운 가난한 선비라 관에 고소할 힘도 없습니다. 만약 사방에 계신 군자께서 행방을 알아내시면 기꺼이 사례은 얼마를 드리겠습니다. 이 방을 붙이는 것이 사실입니다."
방을 다 쓰고 붙이러 사람을 찾으려던 차에 마침 옆집 노파가 지나갔다. "전 선생, 서두르지 마세요. 아주머니를 꾀어 간 사람에 대해 노인이 좀 알고 있습니다." 전 수재가 말하였다. "어머니, 알고 계신다면 대체 누구입니까?" 노파가 말하였다. "사람을 본 적은 없습니다. 다만 어제 낮에 노인이 집에서 떡을 뜯고 있는데, 누군가 전 선생을 찾아와 서문에 사는 탕소춘이라고 하더이다. 아주머니가 그를 만나 이야기를 하다가 울기도 하고, 두 사람이 한참 이야기를 나누다가 돌아갔습니다. 아마도 그 사람이 꾀어간 것 같습니다." 전 수재는 이 말을 듣고 손으로 탁자를 탁 치며 말하였다. "사실이군요! 아내가 아버지 살아 계실 때 탕소춘에게 허혼하였다가 지금껏 그리워한다고 하였으니, 분명 두 사람이 원래 왕래가 있었던 것입니다. 틀림없이 그 기회를 타서 달아난 것입니다. 서문에 가서 소식을 알아보고 여러분과 의논하겠습니다." 노파가 또 당부하였다. "만약 아주머니를 만나더라도 절대 노인이 말했다고 하지 마세요. 돌아왔을 때 탓을 들을까 걱정됩니다."
전암이 노파와 작별하고 단숨에 서문으로 달려가 탕 씨 집을 물었다. 좌우 이웃들에게 자세히 물어보아도 아무런 소식이 없었다. 전암이 또 물었다. "어떻게 생긴 사람이 탕소춘입니까?" 막 물음이 끝나기도 전에 안에서 한 젊은이가 걸어 나왔다. 이웃이 말하였다. "저 사람이 바로 탕소춘입니다." 전암이 자세히 보니 그 젊은이는 다음과 같았다.
눈썹이 맑고 눈이 뚜렷하며, 이는 희고 입술은 붉었다. 비록 하후(何侯)처럼 분은 바르지 않았으나 흰 살결은 진평(陳平)에 못지않고, 동중서(董仲舒)처럼 요염함을 흉내 내지 않았으나 풍류는 송옥(宋玉)과 비슷하였다. 유행하는 두건을 쓰고 앞뒤 한 조각씩 걸쳐 제법 소탈하며, 몸에 맞는 몇 벌 옷을 걸쳤는데 반은 새것이요 반은 헌 것이나 매우 단정하였다. 물론 고량자제(膏粱子弟)의 기상 있는 풍모에는 비길 수 없으나, 문물세가(文物世家)의 규모 있고 빼어난 풍채를 잃지도 않았다. 재주 없이 계수(桂樹)를 꺾기란 어렵고, 어찌 감히 꽃을 훔친단 말인가.
전암이 속으로 생각하였다. '이런 어린 녀석이, 길을 걸으면 발소리조차 날까 두려워할 것 같은데, 설마 이런 담력이 있겠는가. 게다가 이런 짓을 했다면 고개를 숙이고 앞뒤를 살피며 당황한 기색이 있어야 하는데 어찌 저렇게 태연하고 여유 있을 수 있는가. 아무래도 그가 아닌 것 같다. 예로부터 "일이 느슨하면 원만해진다"고 하였다. 돌아가서 실상을 좀 더 알아본 다음에 다시 이야기하자.' 하는 수 없이 답답한 마음을 품고 돌아왔다.
마침 노파가 맞이하며 물었다. "소식을 좀 알아보셨습니까?" 전암이 고개를 저으며 말하였다. "이 일은 인연이 없지 않으나 아직 분명하지 않은 점이 있습니다. 양쪽 이웃들도 모두 모른다고 하더군요." 노파가 말하였다. "탕 씨 집에 가서 동정을 살펴보셨어야지요." 전암이 말하였다. "마침 가려고 하였는데 그 소춘이 문 밖으로 나왔기에 자세히 살펴보니 이런 일을 할 사람 같지 않았습니다." 노파가 말하였다. "지금 서둘러 풍 씨 집 족장에게 알리는 것이 좋겠습니다. 나중에 말이 많아지지 않도록요." 전암이 말하였다. "일리 있는 말씀입니다." 몸을 돌려 막 문을 나서는데, 이른바 "좋은 일은 문을 나가지 않고, 나쁜 일은 천 리에 퍼진다"고, 풍기가 이미 알고 맞닥뜨렸다. 전암은 노파가 한 말을 그대로 전하였다. 풍기가 말하였다. "혼수 물건이 좀 남아 있습니까?" 전암이 말하였다. "하나도 남지 않았습니다." 풍기가 말하였다. "이런 꼴을 보니 즉흥적으로 한 일이 아님을 알 수 있습니다. 이제 어렵지 않게 노파의 증언에 근거하여 고소장을 쓰고 관에서 탕소춘을 고발하여 그 사람으로부터 여인을 찾으면 됩니다." 전암이 말하였다. "수재의 아내가 남에게 꾀어졌다고 고소하면 오히려 남들의 웃음거리가 될까 두렵습니다." 풍기가 말하였다. "비록 체면에 관한 일이기는 하나, 아내가 남에게 꾀어졌는데 아예 따지지 않을 도리도 없습니다. 고소하는 것이 옳습니다." 전암이 그 말에 따라 곧 고소장을 작성하고 풍기를 증인으로 세웠다. 이튿날 아침 현에 고소하였다. 현령은 즉시 사람을 보내 탕소춘을 잡아들였다. 소춘의 부모는 아무 영문도 몰랐으나 열 집 패의 이웃들과 함께 관아로 나아갔다.
현관이 전후 사정을 묻자 탕소춘은 풍 노인 생전에 혼인을 약속한 일을 낱낱이 말하고, 오늘의 도망은 자기가 알지 못하는 일이라 하였다. 현관이 낯빛을 굳히며 말하였다. "이전에 그런 일이 있었다면, 오늘의 꾐은 사실이다." 그리하여 어린 새내기 젊은이를 생사람 납치범으로 만들어 족쳐서 사람을 내놓으라 하였다. 이웃들이 모두 억울함을 호소하였으나 현관은 들은 체도 않았다. 부모는 아들이 이 억울한 고초를 당하는 것을 보고 마루청에 이마를 찧으며 애걸하였다. "노야(老爺)께서 며칠만 말미를 주시어 사람을 찾게 해주신다면 하늘의 은혜이옵니다." 현관은 이 말을 듣고 탕소춘을 열 집 패의 이웃들에게 보증을 세워 밖에 두었다. 한창 더 분부를 내리려는 차에 순포전사(巡捕典史)가 당에 올라와 인사를 올렸다. 전사는 예를 마치고 물었다. "대감, 이것은 어떤 사건이옵니까?" 현관이 말하였다. "사람을 꾀어 납치한 것이오." 전사가 탕소춘을 한 번 훑어보며 말하였다. "이 소년이 누군가를 꾀어냈습니까, 아니면 누군가에게 꾀어진 것입니까?" 현관이 말하였다. "이 사람은 이름이 탕소춘이요, 비록 나이는 어리나 담력은 엄청나서, 초닷새 밤에 전 생원의 아내를 꾀어냈소. 이에 전 생원이 소장을 제출하였는데 아직 심리하지 못하였소." 전사가 고개를 숙이고 잠시 생각하다 말하였다. "대감, 이 일은 전사(典史)가 좀 의심스러운 점이 있어 이 사람의 짓이 아닐 수도 있습니다." 현관이 말하였다. "귀하께서 혹 소식을 들으신 것이 있소?" 전사가 말하였다. "전사도 소식을 들은 것은 없습니다. 다만 초엿새 오경에 전사가 성 밖 순찰을 마치고 돌아와 동문으로 들어서려는데, 한 남자가 한 여인과 함께 어깨에 각각 보따리를 짊어지고 황급히 성을 빠져나오고 있었습니다. 그때 전사가 두 사람을 자세히 살펴보니 두 사람이 좀 당황한 기색으로 급히 가버렸습니다. 전사는 마음속으로 의심스럽기는 하였으나, 그 사람들의 인물이 점잖아 보여 도망자 같지 않아 잡지 않았습니다. 이제 보니 그 여인이 전 형의 아주머니인 것 같습니다. 그런데 함께 달아난 남자는 이 사람과는 생김새가 전혀 다릅니다." 현관이 이 말을 듣고 자신도 의심스러워졌다. '이 일을 내가 잘못 판단한 것인가?' 하고는 말하였다. "도주자를 잡는 것은 원래 귀 직분의 일이니, 이제 수고스럽더라도 좀 더 수색해주신다면 이 억울한 사람을 풀어줄 수 있겠소." 전사가 흔쾌히 응낙하고 그 자리에서 작별하고 나왔다. 현관은 탕소춘을 밖에 보증으로 두고 닷새 뒤에 다시 비교하라 명하였다. 여러 사람이 감사하며 물러났다. 이를 기리는 시가 있다.
새벽 각笛 소리에 한 필 말 타고 오더니, 다급한 중에도 간사함 알아보았구나. 한마디 말로 억울한 옥사 밝혔으니, 더욱이 달아난 자 잡아 중매도 섰구나.
전사가 관아로 돌아와 후회가 밀려왔다. 당상에서는 선뜻 응낙하였으나, 당장 어디 가서 사람을 잡아온단 말인가? 한창 방법을 생각하고 있는데, 당 위에 있던 사람이 와서 말하였다. "대감께서 후당에서 어르신을 맞아 말씀 나누고 계십니다." 전사는 속으로 생각하였다. '이제 막 분부를 내렸는데 벌써 들어가 보고를 드려야 하는가?' 얼른 의관을 정제하고 후당으로 들어가 인사하였다. 현관이 말하였다. "내 관아에 역(易) 수에 정통한 친구가 있소. 아까 들어와서 그 일을 점쳐 보니, 달아난 여인은 동남쪽 오십 리 이내 나무 가까운 곳에 있다 하오." 문지기 하나가 말하였다. "동문에서 오십 리에 목가장(木家莊)이 있으니, 혹 그 두 사람이 거기 숨지 않았을까요? 귀 관아에서 급히 다녀오시면 오늘 가고 내일 돌아올 수 있을 것입니다." 전사는 당상의 명을 받들어 편복으로 갈아입고 포졸들을 이끌고 말에 올라 동문을 나섰다. 얼마 가지 않아 목가장 가까이 이르렀다.
밭을 갈던 농부 몇이 전사를 알아보고 얼른 호미와 써레를 내던지며 가까이 와서 절하였다. "나리, 오늘은 어떤 일로 시골에 내려오셨습니까?" 전사가 말하였다. "당상의 명을 받들어 목가장에 한 죄인을 잡으러 왔다. 여러분은 바쁠 테니, 지금은 바로 파종할 때니 농사에 방해가 되지 않도록 각자 가시오." 그 중 두 사람이 목가장 사람이라 물었다. "나리, 우리 마을에서 어떤 사람을 잡으러 오셨습니까?" 전사가 말하였다. "도망자를 잡으러 왔소." 두 사람이 말하였다. "혹시 목장의 외조카 여 대랑(餘大郞)이 아닙니까?" 전사가 말하였다. "바로 여대요. 초엿새에 한 여인과 함께 왔다 하더이다." 두 사람이 대답하였다. "과연 한 여인과 함께 왔습니다. 나이도 많지 않고, 모두 장에 있습니다." 전사는 그 두 사람의 안내를 받아 목가장으로 들어갔다. 장의 사람들은 전사가 직접 잡으러 온 것을 보고 무슨 천하의 큰일인가 싶어 불똥이 튈까 두려워하며, 얼른 여린과 풍씨를 모두 내보냈다. 이때 날이 이미 저물어, 전사는 두 사람을 장의 사람들에게 맡기고 장에서 하룻밤을 묵었다. 장 사람들이 닭을 잡고 양을 도축하여 성대하게 대접한 것은 두말할 나위도 없다. 다음 날 아침 일찍 포졸들에게 두 사람을 당에 압송하게 하였다. 지현은 전사가 사람을 잡아 오자 크게 기뻐하였다.
즉시 당에 나가 원래 차인을 불러 전 생원과 탕소춘 등을 심문하였다. 지현은 먼저 여린을 데려오게 하고 전암을 불러 물었다. "이 여인이 당신의 아내가 맞소?" 전암이 말하였다. "바로 생원의 아내입니다. 아내를 이미 찾았으니 꾀어간 사람도 잡아오셨습니까?" 현관이 말하였다. "여기 있소." 전암이 말하였다. "부디 한 번 보게 해주십시오." 현관이 여린을 데려오도록 하였다. 전암이 여린을 보자 발을 구르고 가슴을 치며 소리쳤다. "원래 당신이었군요! 원래 당신이었군요!" 여린은 자신의 잘못을 알고 고개를 숙이고 감히 말하지 못하였다. 현관이 말하였다. "이 자와 아는 사이요?" 전암이 말하였다. "노야, 말씀드리기가 민망합니다. 이 여린은 원래 생원과 같은 시사(詩社)의 친구였습니다. 생원이 혼인한 지 닷엿새 만에 여러 친구들이 술자리를 마련해 축하해주었습니다. 생원은 그때 이 의관을 걸친 짐승이 자리에 있을 줄 어찌 알았겠습니까. 술자리 중에 우연히 아내의 혼인 사정을 말하게 되었는데, 이 자가 어떻게 해서인지 아내를 꾀어갔습니다." 현관이 한편으로는 씩 웃으면서 여린을 불러 물었다. "친구의 집에서도 이런 짓을 해서야 되겠는가. 네가 어떤 말로 풍씨를 꾀었으며, 풍씨는 한 번도 본 적이 없는데 어찌하여 기꺼이 따라 달아났는가? 사실대로 말하라. 만약 얼버무리면 먼저 협봉(夾棒)을 쥐게 하겠다." 여린이 말하였다. "소인은 전 생원이 자기 아내가 원래 탕소춘에게 허혼되었으나 혼인을 이루지 못하였고 마음속으로 끝내 잊지 못한다고 한 말을 들었습니다. 소인이 단오날 일부러 전 생원 댁에 갔는데 풍씨가 나와 물으시기에 소인이 탕소춘이라고 속였습니다. 풍씨가 이를 사실로 믿어 옛 약속을 이루려 함께 달아나기를 자원하였습니다. 순간적으로 나쁜 생각이 들어 그날 밤 오경에 함께 떠나기로 약속하였습니다." 말이 채 끝나기 전에 탕소춘이 곁에 무릎을 꿇고 여린에게 머리를 크게 들이박으며 말하였다. "당신이 내 이름을 빌려 그를 꾀어가고는 나를 이렇게 맞고 두드리게 만들었군요!" 현관이 말하였다. "시끄럽게 굴지 마라. 반드시 억울함을 풀어주겠다." 전암이 말하였다. "노야, 이는 탕소춘을 탓할 수 없는 일이고, 생원의 마음도 미안하기만 합니다."
현관이 풍씨에게 물었다. "어찌하여 한순간에 그의 간계를 듣고 따라 달아났는가?" 숙낭은 부끄러움을 참고 눈물을 머금으며, 아버지 살아 계실 때 탕소춘에게 데릴사위로 허혼한 일을 자세히 말하였다. 현관이 전암에게 말하였다. "전 생원, 앞으로 나오시오. 풍씨의 말에 따르면 혹 당신이 처음에 강제로 그를 취한 것이 아니오?" 전암이 말하였다. "생원의 집은 사방이 텅 비어 돈도 없고 세력도 없으니, 어찌 감히 강제로 취하겠습니까. 그 숙부 풍기가 자처하여 생원에게 후처로 시집보낸 것입니다. 이제 아내 운운하기도 어렵게 되었습니다. 이 풍씨는 한결같이 탕소춘에게 돌아가고 싶어 하니, 생원이 집에 두었다가는 훗날 또 다른 변고가 생길 것입니다. 노야께서 작정하셔서 풍씨를 탕소춘에게 주어 두 사람의 옛 약속을 완성시켜 주시기를 바랍니다." 현관이 웃으며 말하였다. "그렇게 말하기는 하지만, 마음으로는 그렇지 않은 것이 아닌가요?" 전암이 말하였다. "생원이 비록 가난한 수재이지만 일말의 기개가 있습니다. 한번 결정하면 다시 바꾸지 않겠습니다. 게다가 아내가 이미 몸을 더럽혔으니 도리상 다시 합하기 어렵습니다." 현관이 말하였다. "그렇기는 하오. 그러나 사람을 탕에게 돌려보내는 이상 혼례 재물은 당신에게 돌려주어야 하오. 탕소춘 앞에서 재물을 돌려받은 뒤 데려가 혼인을 이루는 것이 마땅하오." 전암이 말하였다. "생원이 처음 풍씨를 맞이할 때 원래 예물을 주지 않았습니다. 지금 탕 씨 집에서 은을 돌려보내게 하면 아내를 이익으로 팔게 되는 것입니다. 훗날 친구들이 알면 가난하여 아내를 팔았다고 할 테니 도리어 좋지 않습니다. 노야께서 당에서 풍씨를 탕소춘에게 넘겨 혼인을 이루게 해주시면 생원으로서는 오히려 체면이 서고 깔끔하기도 합니다." 현관이 말하였다. "이런 일은 참으로 보기 드문 일이니, 족히 형의 의기를 알 수 있소. 여린은 양가 여인을 간사하게 꾀었으니 율법에 명문이 있어 결코 용서할 수 없소." 좌우를 호령하여 여린을 잡아다 곤장 서른 대를 치고, 영남의 역마소(驛馬所)로 발배하여 삼 년 동안 근무하도록 하였다. 풍씨는 탕소춘이 데려가 부부가 되도록 허락하였다. 두 사람이 감사하며 절하였다. 대문을 나와 작은 가마를 불러 풍씨를 태우고 돌아갔다. 전 수재는 스스로 돌아갔다.
이삼 일이 지난 뒤 전암이 또 지현에게 품달하였다. "풍씨의 혼수가 두텁고 모두 목가장으로 가져갔습니다. 비록 몰래 달아난 것이지만 장물은 아니니 마땅히 풍씨에게 돌려주어야 합니다. 차인을 보내 가져와 원주인에게 돌려주시기 바랍니다." 지현이 청원을 허락하여 공차(公差) 두 사람이 가져왔는데 이미 십에서 오륙은 되지 않았다. 이때 지현은 전암의 됨됨이를 중히 여겨 서리에게 분부하여 관매(官媒)로 하여금 좋은 혼처를 알아보게 하였다. 또 몇 가지 공사(公事)를 성사시켜주어 백여 냥의 은자를 벌게 해주었다. 전암은 전보다 기색이 달라졌다.
며칠이 또 지나자 탕소춘이 청의(靑衣)에 소모(小帽) 차림으로 찾아와 지현에게 감사를 드렸다. 지현이 말하였다. "나에게 감사할 것 없소. 전날 포청(捕廳)이 직접 목격하지 않았더라면 하마터면 그대 몸에서 사람을 찾을 뻔하였는데 어찌 세상에 나올 날이 있겠소? 오늘은 포청에 가서 감사해야 하오." 탕소춘이 연신 그러겠다 하고 몸을 돌려 전사에게 인사하러 왔다. 전사가 웃으며 말하였다. "이 억울한 일은 전날 학생이 직접 목격하지 않았더라면 형을 잘못 다스릴 뻔하지 않았겠소? 형은 돌아가서 전 형에게 깊이 감사하시오. 어느 누가 기꺼이 자기 아내를 남에게 가볍게 줄 수 있겠소? 세상에 보기 드문 일이오. 또 저 여린은, 비록 형을 연루시켜 형을 받게 하였으나, 만약 그가 꾀어내지 않았더라면 어찌 형과 풍씨가 만나 혼인을 이룰 수 있었겠소? 이 자야말로 죄의 우두머리이자 공의 으뜸이라 할 수 있소. 또 한 가지 말하자면, 학생이 하룻밤 순찰을 하였는데 도적을 잡은 것이 아니라 형을 위해 중매를 선 셈이 되었으니, 혼인 술자리는 아직 얻어먹지 못하였소. 학생이 다른 날 기꺼이 축하하러 가서 잔치 술 한 잔을 얻어먹어야겠소." 탕소춘이 이미 기뻐서 연신 말하였다. "기다리겠습니다, 기다리겠습니다." 깊이 두 번 읍하고 작별하여 돌아가, 두 자 비단과 은 사 냥을 준비하여 전사에게 드렸다. 전사가 온화한 낯으로 받아들였으니, 이 또한 예의상 당연한 일이요 받는 것이 지나치지 않았다. 이를 증명하는 시가 있다.
도적을 잡아 장물을 나누는 것이 예로부터의 일이지만, 이번에 억울함 밝힘이 가장 훌륭하였구나. 더욱이 혼인의 약속까지 이루어주었으니, 온 세상의 은화로도 어찌 갚을 수 있으랴.
훗날 들리기로 풍숙낭과 탕소춘은 나란히 이십 년을 함께 살며 두 사람이 매우 잘 어울려 자녀도 몇을 두었다 한다. 다만 가볍게 남의 꾐에 넘어가 몸을 더럽히고 또 망신을 당하였으니, 비록 옛 약속을 저버리지 않았다 해도 순결한 마음의 정숙한 여인이라 할 수는 없다. 더구나 "가난뱅이에게 시집가 내 평생을 그르쳤다"는 말까지 하였으니, 만약 전 수재가 젊고 부유하였다면 탕소춘을 그리워하지도 않았을 것이다. 전 수재 또한 부주의하여 가볍게 아내의 사정을 남에게 말한 것이 이 치욕스러운 일의 발단이 되었다. 다행히 의기 있게 달아난 아내도 받아들이지 않고 예물도 요구하지 않아 지현의 신임을 얻어 예기가 꺾이지 않았다. 또한 재산을 좀 늘려 몰락하지 않게 되었으니, 이것도 선한 마음에 선한 보상을 받은 것이다. 여린처럼 의관을 걸친 짐승은 참으로 가증스럽지만, 만약 숙낭에게 이런 마음이 없었더라면, 전 생원이 이 말을 누설하지 않았더라면, 틈새가 없었을 것이니 어찌 파고 들어올 수 있었겠는가? "남이 반드시 나를 업신여기게 되는 것은 내가 먼저 스스로를 업신여겼기 때문이다." 전 생원의 경우가 그것이 아니겠는가? 무측천이 말하였다. "경은 훗날 손님을 청할 때에도 사람을 가려서 청하시오." 보시는 분들은 여기에 이르러 말을 삼가고 교우를 가려야 할 것이다. 당시에 이를 비웃는 시가 있다.
숙낭은 옛 인연에 연연하여, 한 달 사이에 세 번이나 하늘이 바뀌었네. 전자(錢子)의 새 혼인은 합환화 같았으나, 여린은 발배되어 중매 값을 치렀구나. 이탁(李詫)에 의탁하여 절개 잃기 어렵다 뻐기고, 간사함에 따라 바른 자를 희롱함도 현명하지 않구나. 가련하구나, 깨진 단지가 원래 주인에게 돌아갔으나, 설령 풍류라 해도 부끄러움을 면치 못하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