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회 고독한 충절을 믿어 위기에 피 흘리며 싸우고, 협의(俠義)와 효심에 기대어 벗을 맺어 흉적을 제거하다
나라가 위태롭고 갑옷이 하늘 끝까지 가득하니, 길에는 유리(流離)하는 이들의 원망 소리 일어나도다.
기울어진 산은 누가 기둥돌이 될 것인가, 핏빛으로 물든 바다 온통 창생이로다.
오랑캐 평정함에 장군의 명령 보이지 않고, 한을 씻음에 오직 효자의 기를 뽑을 뿐이로다.
굽어보고 우러러보니 사람으로 하여금 경모(景慕)를 일으키게 하나니, 절부(節旄)가 진정 수염 달린 남자들을 부끄럽게 하는도다.
울창하게 얽힌 나무뿌리를 만나지 않고서는 예리한 기구를 분별하기 어렵고, 나라가 위태롭고 어지러운 때를 만나지 않고서는 충효(忠孝)를 알아볼 수 없다. 나라 일의 패망은 다만 책임을 떠미는 자는 많고 떠맡는 자는 적으며, 탐욕스러운 자는 많고 충의(忠義)로운 자는 적은 데서 비롯된다. 높은 자리에 앉아 있는 자는 지방의 일을 아랫사람에게 맡기고, 아랫사람이 된 자는 또 관직이 낮고 지위가 작아 일이 자기에게서 나오지 않는다 하여, 이리저리 모면하려 하고 구차하게 명을 따를 뿐이다. 옛사람이 이르기를: "감히 도적을 군부(君父)에게 물려주지 않는다"라 하였으니, 그것을 누가 알겠는가?
문관이 된 자는 이르기를: "내 직분은 장부 작성과 기일 맞추기일 뿐이니, 군마(戎馬)의 일이 나와 무슨 상관이 있는가." 무장이 된 자는 이르기를: "무부(武夫)가 힘써 싸우다 들판에서 죽으면 유생(儒生)이 붓을 잡아 그 뒤에서 논하여, 공과 죄의 경중을 사실에 맞게 따지지 않고 다만 영웅들의 기개를 꺾을 뿐이니, 조정이 사람을 그르치는데 어찌 굳이 몸을 바쳐야 하는가." 옛사람이 이르기를: "문관이 돈을 사랑하지 않고 무관이 죽음을 아끼지 않으면 천하가 태평하리라"라 하였으니, 또 그것을 누가 알겠는가?
진영(陣營) 사이에 함께 나아가 상관의 명을 함께 이행함에 이르러서는, 혹 용감히 앞장서거나 혹 두려워 물러서며; 겉으로는 서로 뿔처럼 받치는 형세를 이루나 실은 관망하는 마음을 품는다. 한 사람이 공을 세우면 이르기를: "내가 실로 아무 진영을 견제하였으므로 아무개가 나아가 요해처를 박격하였고, 내가 실로 적의 형세를 나누었으므로 아무개가 적의 빈틈을 찌르고 전군이 승리를 취하였다." 만에 하나 불행히 중과부적(衆寡不敵)으로 전군(全軍)이 무너지고 몸을 잃으면 이르기를: "아무개가 형세를 헤아리지 않고 홀로 깊이 들어가다가 몸을 잃고 나라를 욕되게 하였으니, 오직 나만이 어려움을 알고 물러나 보전할 수 있었다"라 하여, 그 패배를 죽은 자에게 넘기고, 자신의 원군을 보내지 않은 죄는 모두 은폐하는 것이다. 또 몸을 온전히 하고 처자를 보전하려는 문신이 있어, 그 단점을 틈타 공격하여 스스로 장수를 제대로 거느리지 못하고 공취(攻取)할 계책이 없다는 책임을 모면하는 것이다. 문무가 이와 같으니 도적을 어찌 평정하겠으며 백성이 어찌 편안하겠는가?
태평을 이루려면, 관직의 높낮이를 막론하고 사람마다 반드시 죽겠다는 마음을 품어야 하니, 해를 입은 자는 모두 원수를 갚고 치욕을 씻으려는 뜻이 있어야 도적을 제거하기 쉬울 것이다. 그러므로 예로부터 편벽되이 황금 띠를 두르고도 나라를 위해 목숨을 버리지 못하는 이가 있는가 하면, 난을 당하여 굴복하지 않는 이가 도리어 비천한 관리 중에서 나오기도 하였다. 큰 깃발 아래에서도 기발한 계책으로 적을 멸하지 못하였는데, 적을 죽이고 장수를 사로잡는 이가 도리어 효자 중에서 나오기도 하였다. 이는 당시 책임을 모면하고 두려워 물러서는 신하들로 하여금 부끄럽고 수치스러움을 느끼게 할 만하다.
사서(史傳)에 전해지기로, 명조(明朝) 태조 고황제(太祖高皇帝)께서 가짜 한(漢)나라를 깎아 없애고 가짜 오(吳)나라를 섬멸하며, 북쪽으로 중원을 취하시니 굳세고 강한 병사와 장수들이 날로 진영 간에 있었다. 그 나머지 새로 평정한 주현(州縣)에는 다만 약간의 수비 병사만 있고, 문관 몇 명도 그저 혼탁하게 있을 뿐이었다. 이것은 천하를 처음 평정하여 두루 살피기 어려운 까닭이었다. 이 때문에 곳곳에 아직 도적이 있었다.
강서(江西)에는 도원(桃源) 여러 산이 있어 각기 산골이 있었다. 도적 무리가 그 안에 웅거하여 때로는 주현을 엿보고 때로는 향촌을 약탈하였다. 나원현(羅源縣)에 두 도적 우두머리가 있었으니, 하나는 진백상(陳伯祥)이라 하고 하나는 왕선(王善)이라 하는데 가장 흉악하고 사나웠다. 그 부하에 장파사(張破四) 등 악독한 도적들이 있어 방자하게 날뛰었다.
그때 연강(連江) 순검(巡檢) 유준(劉濬)이라는 이가 있었는데, 의기(意氣)가 영민하고 재략(才略)이 제법 있어 나라를 위해 한 가지 일을 하려는 사람이었다. 아들이 있었으니 이름을 유련(劉璉)이라 하였는데, 사람됨이 담력과 지혜를 갖추고 활쏘기와 말타기를 익혔으며, 호걸들과 사귀기를 좋아하였다. 아버지를 따라 임지에 있으면서 지방에 재식(才識)이 있는 자는 모두 마음을 기울여 사귀고, 궁병(弓兵) 중에 힘이 세고 기변(機變)이 있는 자는 모두 복심(腹心)으로 거두어들여, 나라를 위해 한 가지 일을 하려는 생각이 있었다.
그러나 그때 나라의 제도가 아직 정해지지 않아, 문관은 사리를 도모하여 세금을 더 거두고 사건을 처리하면서 벌금을 받는 등 한결같이 돈을 긁어모았다. 성지(城池)가 무너지고 인심이 흩어져도 크게 상관하지 않았다. 무관은 무를 중시하는 시대를 믿어 방자하게 굴기도 하였다. 병사를 훈련시키지 않고 무기를 예리하게 하지 않아도 그다지 마음을 쓰지 않았다. 실로 이른바:
탐욕이 폐부를 꿰뚫고, 허약함이 골수에 들어찼도다. 장작 위에 불씨를 올려두었으니, 처마 밑에서 지저귀며 편안히 앉아 있는도다.
그 유 순검이 이런 광경을 보고 마음속으로 맞지 않았다. 다만 혹 소홀한 점이 있을까 하여 매우 진지하게 살폈다. 보갑제(保甲制)를 엄하게 시행하여, 못된 짓을 하는 자들로 하여금 먼저 용납되지 않도록 하였다. 도박과 놀고먹음을 금하였으니, 사람이 가난하면 반드시 도적이 된다고 하였다. 창기(娼妓)를 금하였으니, 그들이 도적의 은신처라 하였다. 또 자신의 부하 중에서 늙고 약한 자는 모두 내보냈으니, 훈련을 감당할 수 없고 일을 일으켜 도적을 빌미로 속인다고 하였다. 도적과 짜고 전리품을 나누는 자는 모두 조사하여 무겁게 처벌하니, 진(鎭) 안의 도적이 깨끗이 사라졌다. 부하가 비록 많지 않더라도 모두 사람마다 용감하였다. 위아래 모두 그를 비웃으며 말하였다, 이 관리는 발탁(行取)을 바라는 것 같다고. 이것을 알지 못하였으니:
관직에 높낮이가 있더라도 충성을 바치는 의리는 같도다.
문을 지키고 밤에 딱딱이를 치는 이도, 역시 수비의 공이 있도다.
부하에 유호(姚虎)라는 궁병(弓兵)이 있었는데, 평소 한 목수의 아내와 간통하여 밤에 오고 낮에 돌아가면서 이 목수가 방해가 되었다.
하루는 이웃집이 도둑을 맞았는데, 현장에 사다리 한 개가 남겨져 있었으니, 이는 목수가 남에게 팔려고 만들어 둔 것이었다. 관아에서 장물을 조사하러 나와 집 아래 침대 밑에서 묻어 둔 동구(銅具)와 주석 그릇 몇 점을 발견하였는데, 잃어버린 물건 목록에 있는 것이었다. 아내가 관아에 나와 처음에는 부인하다가 나중에는 모두 남편이 훔쳐 와서 자신이 묻어 두었다고 진술하였다. 그러나 목수는 그날 밤 다른 집에서 상량(上樑) 작업을 하였으며 동료들의 증언이 분명하다고 괴로이 주장하였다. 순검은 안에 무언가 부정이 있다는 의심이 들어, 아내가 대답하려 할 때마다 유호 쪽을 곁눈질로 바라보는 것을 보았다. 유호가 "빨리 자백하지 않겠느냐!"고 소리치면 아내는 죽자고 남편을 물고 늘어졌다. 순검은 잠시 문 밖에 데려가 두라 하고, 다시 이웃 사람들을 불러 평소 인품을 조사하게 하였다. 아내와 남편을 문 밖으로 데리고 나가고 유호를 불러서 말하였다: "내 관아가 비록 작더라도 체통이 있다. 네가 어찌 내 앞에서 술수를 부려 아녀자를 놀라게 하느냐!" 크게 노하여 열 대를 치고 반드시 잡아들이기로 하였다. 그리고 아내를 불러들여 말하였다: "네가 궁병과 좋은 짓을 하여 남편을 모함하는구나! 그가 이미 자백하였으니, 사실대로 말하라!" 이 아내는 깜짝 놀라 - 벽에도 귀가 있고 신과 사람이 은밀히 보고 있다는 말이 맞도다 - 한참 동안 말이 나오지 않았다. 순검이 손가락 죄는 도구를 가져오라 하니, 이 목수가 급히 기어 올라와 말하였다: "나리, 소인이 기꺼이 자백하겠습니다. 훔친 것도 저이고 묻은 것도 저이니, 처와는 무관합니다." 순검이 말하였다: "어리석은 놈, 그대가 도리어 그를 위하는데, 그는 그대를 불쌍히 여기지 않는구나." 아내는 순검의 말이 내막을 알고 있음을 보고, 궁병이 이미 자백하였다고 정말로 생각하여 어쩔 수 없이 사다리를 유호가 지고 갔으며 동구와 주석 그릇도 유호가 지고 와서 아내와 함께 묻었다고 말하였다. 순검이 말하였다: "어찌 궁병과 그리 친한가?" 아내가 말하였다: "외사촌 오빠입니다." 순검이 말하였다: "필시 더 연고가 있을 것이다." 또 손가락 죄는 도구를 가져오라 하니, 아내가 어쩔 수 없이 평소 간통하고 남편이 방해가 되어 해치려 한 연고를 모두 고하였다. 목수가 비로소 고개를 조아리며 말하였다: "청천 나리! 나리가 아니었다면 소인의 목숨이 그에게 해를 당할 뻔하였는데, 도리어 그를 좋은 사람이라 여겼습니다. 방금 관아에 뇌물을 쓰려고 그에게 팔백 동전을 주기도 하였습니다." 실로 이러하였으니:
이불을 함께 하였을 줄 누가 알았겠는가, 싸움이 피비린내 날 뻔하였도다. 진(秦)의 밝은 거울이 아니었다면, 어찌 요사한 모습을 볼 수 있었겠는가?
순검이 다시 궁병을 불러내어 말하였다: "아내가 이미 자백하였다. 네가 남의 아내를 간음하고 남을 해치며, 도둑질을 하고 도둑으로 무고하였으니, 무슨 할 말이 있는가!" 유호도 입을 다물고 말을 못하였다. 유호와 아내의 죄가 비록 무겁더라도, 유호는 법에 따라 다만 종도(從盜)로 유배에 해당하고 아내는 간음죄로 태형에 해당하였다. 목수는 풀어 집으로 돌려보냈다. 온 진(鎭)이 신명하다 하였다.
또 하루는 부(府)에서 그에게 응포(應捕)와 함께 강도를 잡으러 나가도록 차출하였는데, 마침 염색집 하나와 은방(銀鋪) 하나를 수색하여 장신구와 의복 몇 가지를 발견하였다. 순검이 그 장신구에 같은 것이 없고 의복에 같은 빛깔이 없음을 보고, 그것을 그 집 가족에게 입혀보니 모두 몸에 맞았다. 순검이 힘껏 변호하여 도적이 아님을 주장하며 압송하려 하지 않았다. 상사가 달가워하지 않았다. 얼마 되지 않아 진짜 도둑이 잡히자, 사람들이 모두 그의 명민함에 탄복하였다. 명민한 사람이 없지는 않으나, 낮은 관리로서 이처럼 지조 있게 견지할 수 있음은 드문 일이었다. 실로 이러하였으니:
다만 마음이 맑아 달처럼 밝은 것만이 아니라, 또한 굳센 뼈가 산처럼 단단함을 흠모하노라.
그때 마침 남들의 시기를 받기도 하였다. 홀연 하루는 행성(行省)에서 패문(牌文)이 내려와, 왕선(王善) 등이 날뛰니 순검 유준(劉濬)이 수어천호소(守禦千戶所) 정천호(正千戶) 주장(周章), 부천호(副千戶) 서옥(徐玉)과 함께 나아가 토벌하도록 명하였다. 유준이 말하였다: "이 무관 무리는 무엇에 쓰겠는가. 이기면 공을 다투고 지면 먼저 무너져 도리어 일을 그르칠 것이다. 다만 상사에서 차출하였으니 역시 함께 가서 기세나 드높여야 하겠다." 궁병 백 명과 향병(鄕兵) 백 명을 점고하여 합류하러 갔다. 마침 두 천호가 이미 병사를 이끌고 도착해 있었다. 순검이 눈여겨 한 번 보고는 또 우습지 않을 수 없었으니:
비단 띠 두른 자들 태반이 젊은이들이요, 창을 멘 이들 대부분이 대식가 노인들이로다.
갑옷과 투구가 감당이 안 되어 비틀거리며 걷고, 활도 시위가 없는 것 같도다.
그들이 가져온 무기를 보니 더욱 기이하였다:
창은 이미 부러져 날카로움이 없고, 칼날은 강철이 보이지 않도다.
두어 자루 버드나무 몽둥이는, 벌레가 갉아 거의 텅 빌 지경이로다.
두 천호가 순검더러 속관(屬官)의 예를 행하라 하였다. 순검이 말하였다: "문무관은 서로 통할하지 않는다." 피차 빈객으로 만나고 진병(進兵)을 의논하였다. 주 천호가 말하였다: "내 들으니 도적의 세력이 매우 크고 산이 또 험준하며, 진백상과 왕선 두 적이 지략이 많다 하오. 만약 싸우다가 예기(銳氣)가 한번 꺾이면 이후 떨치기 어려울 것이오. 지금은 병사를 산 아래에 머물며 그들의 땔감 구하고 물 긷는 것을 끊어 부드럽게 포위하여 이 도적들을 곤하게 하는 것이 낫소. 이 도적들이 안으로 양곡이 없고 밖으로 구원병이 없으면, 항복하지 않으면 죽을 것이니, 이것이야말로 만전지책이오." 서 천호가 말하였다: "이 산은 지극히 넓고 우리 병사는 매우 적으니, 어찌 그들을 포위하겠소? 차라리 산 입구까지 쳐들어가 어영부영 몇 개의 수급이나 얻어 상사에게 보고하는 것이 낫소. 그렇지 않으면 시일이 오래 걸려 상사가 나무랄 것이오." 유 순검이 말하였다: "병법에 이르기를: 병이 많으면 대규모로 정벌한다. 당당하고 정정당당하게, 먼저 귀순을 명하고 그 후에 불복하는 자를 토벌한다. 병이 적으면 기습하여 토벌한다. 불의에 기습하여 도적의 소굴을 곧장 공격한다. 이제 겨우 천여 명의 병사를 얻었으니, 포위하거나 끊어 그들이 스스로 쓰러지기를 기다릴 수 없다. 출병하여 한 번 나가면서도 몇 개의 수급을 얻을 수 없다면, 양민을 마구 죽이는 것이다. 지금의 계책으로는, 먼저 사람을 보내 귀순을 권하여 그 마음을 느슨하게 하고, 한편으로는 화속히 쳐들어가 그 대비가 없는 것을 기습하는 것이 낫소. 이 두 수괴를 잡거나 죽이면 지방의 후환을 영원히 끊을 수 있소." 주 천호가 말하였다: "내 생각엔 부드럽게 포위하는 것이 상책이오." 서 천호가 말하였다: "내 생각엔 그저 군대의 위세를 과시하다가 그 후에 그들이 나오지 못하게 하는 것이 좋소." 요컨대:
재주가 용렬하고 싸우기 두려워하며, 힘이 겁쟁이인지라 머무르기를 좋아하는도다.
길거리에 집을 짓고, 다투어 논쟁만 그치지 않도다.
유 순검이 말하였다: "부드럽게 포위하거나 위세를 과시하는 것은 결국 결말이 없소. 내 듣건대 두 도적 중에 진백상이 가장 사나워 본채에 틀어박혀 있다 하오. 나는 이제 한편으로 왕선의 귀순을 유도하고, 한편으로 가벼운 병사로 깊이 들어가 진백상을 기습하겠소. 이 도적을 사로잡으면 다른 도적들이 낙담할 것이오." 주 천호가 말하였다: "예로부터 전투는 위험한 수이오." 서옥이 말하였다: "유 순검이 가려 한다면 모두 한 번 시험해 봅시다." 진병을 의논하여 결정하였다.
탐지하기로 진백상의 본채가 산 북쪽에 있고 왕선이 산 남쪽에 있으며, 동서 소로에 각각 소채(小寨)가 지키고 있었다. 유 순검이 말하였다: "진백상의 본채가 산 북쪽에 있어 산 남쪽을 병풍으로 삼고 동서를 날개로 삼으니, 필시 크게 방비하지 않을 것이오. 동산(東山)의 소채는 산길이 험준하여 우리 병사가 앞으로 나아갈 수 없다고 얕보고 있을 것이오. 차라리 밤을 틈타 먼저 동채(東寨)를 빼앗고 곧장 산 북쪽으로 향하는 것이 낫소. 본채가 한번 무너지면 무리가 저절로 흩어질 것이오." 유 순검이 본부를 거느리고 선봉이 되고, 서옥이 두 번째 진으로 모두 산 동쪽으로 향하였으며; 주장은 산 남쪽으로 향하여 왕선을 견제하게 하였다. 또 사람을 시켜 산 서쪽에서 깃발을 꽂고 포를 쏘게 하여 허장성세를 만들었다.
한 문관이 당당히 논하며 싸우려 하자, 두 천호도 어쩔 수 없이 응했으나, 그들은 다만 이렇게 생각할 뿐이었다: 이기면 공을 나누고, 지면 스스로를 지키겠다. 어찌 감히 앞장서서 모진 일을 당하겠는가.
오경(五更)에 출병하였다. 순검 부자가 부하를 거느리고 덩굴을 잡고 험한 곳을 건너 도적의 채(寨)를 곧장 공격하였다. 과연 도적들이 험함에 의지하여 방비하지 않다가 그 부자에게 선두로 쳐들어감을 당하여 수많은 도적을 베어 죽였다. 유 순검이 채를 불태우라 명하였다: "한편으로는 밖에서 우리가 이미 적채를 무너뜨린 것을 알게 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각 곳의 도적들이 동채가 이미 무너진 것을 알아 먼저 그 마음을 서늘하게 하기 위함이오." 또 사졸들을 거느리고 본영을 향해 곧장 달려갔다.
갑옷이 찬 시내 안개에 물들고, 창은 가파른 산봉우리 구름을 찌르는도다.
맹세코 용맹한 병사들을 몰아, 한 싸움에 고립된 무리를 베리로다.
연도에서 또 총포를 쏘아 허장성세를 만들었다. 유 순검이 여전히 선두에 섰다. 뜻밖에 본채에서 동채의 함성이 크게 일어남을 들은 관군이 기습한다는 것을 알고 급히 병사를 내보내 구원하려다 마침 맞닥뜨렸다. 양쪽이 칼을 휘두르며 한 곳에서 뒤엉켜 싸웠다. 유 순검의 병사가 비록 적으나 모두 정예하고 용감하여 싸움이 대등하였으나, 다만 서 천호의 병사가 와서 지원해 주기를 기다렸다. 뜻밖에 서 천호는 동채에서 많은 금과 비단과 자녀들이 버려져 있는 것을 보고, 장졸들에게 나누어 진영으로 보내게 하고 서둘러 전진하지 않았다. 주 천호는 산 남쪽에서 다만 산채를 바라보며 깃발을 흔들고 함성을 지를 뿐이었다. 이로 인해 남채(南寨)에서는 그들이 무능함을 알고 절반은 지키고 절반은 본채를 구원하러 보냈다. 서채(西寨)와 합세하여 도합 두 부대의 신선한 병력이, 또 동채에서 무너진 패잔병들까지 합세하여 일제히 포위해 들어왔다. 눈에 보이기에 유 순검은 이미 포위 속에 있어 빠져나갈 수 없었다.
초가(楚歌) 소리 들판에 가득하고, 해하(垓下)에 이미 겹겹이 포위되었도다. 힘 다하여 오추마도 떠나기 어렵고, 영웅의 기력이 다해가는도다.
이때 부하 중 사오 할이 전사하였으나 순검은 여전히 힘껏 도적을 죽이라고 외쳤다. 도적들도 결사의 싸움을 두려워하여 멀리서 포위하며 화살과 돌로 몰아붙였다. 순검이 싸우는 중에 미처 막지 못하여 비스듬한 방향에서 화살 하나가 날아와 마침 왼 볼을 맞추어 말에서 떨어졌다. 유련(劉璉)이 급히 와서 부축하는데 도적들이 이미 다투어 앞으로 몰려들어 잡아 버렸다. 도적의 무리가 벌떼처럼 모여들어 그 부자와 부상당한 몇몇 병사들을 채 안으로 압송하였다. 두 도적 두목이 이미 위에 앉아 있었다. 진백상이 말하였다: "네가 무슨 관리이기에 감히 와서 우리 채를 공격하는가?" 순검이 말하였다: "나는 명을 받들어 도적을 토벌하러 왔소. 아쉽게도 마음을 같이 하여 힘을 합칠 자가 없어 너희에게 잡혔으니, 다만 빨리 죽을 뿐이오." 진백상이 말하였다: "이제 빠름과 늦음도 네 마음대로 되지 않는다. 다만 네가 무슨 큰 관리이기에 어떤 큰 힘이 있기에 호랑이 수염을 잡아당기는가?" 순검이 말하였다: "역신(逆臣)과 역도(賊徒)는 사람마다 죽일 수 있으니, 관직의 높낮이를 물을 것이 없소! 후군이 오지 않은 것이 아쉬울 따름이니, 만약 왔다면 너희들은 이미 가루가 되었을 것이오." 왕선이 말하였다: "아직 우리가 너를 가루로 만들지도 모른다! 일단 가두어 두라." 순검이 욕하였다: "이 반역하는 도적 놈들아, 나를 죽일 수는 있으나 결코 욕을 줄 수는 없다. 빨리 나를 죽여라!" 천 명이고 만 명이고 이런 욕을 퍼붓자, 도적 두목 장파사를 성나게 하였으니 그가 말하였다: "우리가 이곳에서 성을 공격하고 땅을 빼앗으면서 한 사람도 잃지 않았는데, 그가 스스로 와서 우리 형제 백여 명을 죽였으니, 결코 용납할 수 없다."
유련은 광경이 좋지 않음을 보고 말하였다: "우리 아버님은 조정의 명관이니, 너희들이 그를 죽이면 죄를 취하는 것이다. 나 대신 기꺼이 죽겠노라." 꼭 안고 놓지 않았다. 순검이 말하였다: "나는 결코 살아 돌아갈 이치가 없다. 너는 가서 상사에게 고하고, 급히 병사를 보내 이 도적들을 토벌하게 하라." 장파사가 말하였다: "이 놈을 남겨 두어도 소용없다. 내가 먼저 너를 베어, 네 상사가 어떻게 우리를 토벌하러 오는지 보겠다!" 진백상의 지시를 기다리지도 않고 유 순검을 칼 한 번에 베어 죽였다.
시름 구름이 들판 사방에 일어나고, 붉은 피가 개풀에 뿌려졌도다.
솔바람이 산들산들 부니, 아직도 도적 꾸짖는 소리가 들려오는 듯하도다.
이때 유련이 통곡하여 기절하였다가 도적들을 크게 꾸짖으며 함께 죽기를 원하였다. 장파사가 또 그를 베려 하였다. 다만 몇 도적이 말하였다: "충신을 이미 해쳤으니, 효자까지 해쳐서는 안 된다." 유련과 몇몇 잡힌 부하들이 유 순검을 산 안에 임시로 장사 지냈다. 유련이 그곳에서 묘를 지키려 하였다. 도리어 향병 두목 오건(吳健)과 궁병 중 진력(陳力)이 말하였다: "공자(公子)님, 지금 밖에서는 나리께서 순국하신 소식을 전혀 모릅니다. 공자님이 이곳에 계셔도 당장 원수를 갚기 어려우니, 차라리 나리의 말씀대로 상사에게 나아가 병사를 청하여 복수하는 것이 낫습니다. 저희들이 이곳에 남아 내응하여 나리와 공자님의 중하게 여겨주신 은혜에 보답하겠습니다." 세 사람이 또 귀에 대고 낮은 목소리로 한참 의논하였다.
의리 두터워 마음에 다름이 없고, 원한 깊어 뜻이 편치 않도다.
장작에 누워 쓸개를 맛보며 원한 씻기를 기약하니, 굴에 들어가 이무기를 베리로다.
그날 계획을 마치고, 다음 날 왕선과 진백상을 찾아가 말하였다: "우리 아버지는 이미 돌아가셨으니 함께 죽기를 원할 뿐, 결코 여기서 구차히 살지 않겠습니다." 왕선이 진백상에게 말하였다: "이 사람을 여기 머물러 두어도 소용없고, 나가더라도 해가 되지 않을 것이니 그냥 보내주자." 이로써 그를 구금하지 않았다. 유련이 또 이 두 사람과 계획을 의논하고 아버지의 장지(葬地)에서 통곡하며 말하였다: "아버님께 영이 있으시거든, 아이가 이 원수를 갚고 관과 함께 고향으로 돌아갈 수 있도록 해 주소서."
술 한 잔 드리지 못하는 연이 없어, 눈물 천 줄기를 뿌리도다.
효자의 마음 어둡지 않으니, 어렵고 위태로운 상황에서도 반드시 이루리로다.
유련이 산을 나왔다. 두 천호는 이미 문서를 올리기를: "순검 유준이 공을 탐하여 명을 어기고 도적의 소굴에 경솔히 들어가 생사를 알 수 없다. 본소(本所)의 군사가 적어 외부가 약하니, 철수하여 재거(再擧)를 도모하기를 청한다." 하였다. 행성에서 그것을 믿어 철수를 허하였다.
유련이 먼저 본부(本府)를 만났다. 지부(知府)가 말하였다: "그대 아버지가 경솔히 나아가다 패한 것이오. 이제 그대 말로는 항복하지 않고 순직하였다 하니, 자신의 잘못을 속죄할 수 있겠소. 복수라는 것은 사사로운 일 같소. 내 이곳에서 어찌 감히 그대를 위해 병사를 일으키겠소?" 다음 날 다시 청하러 갔다. 지부가 말하였다: "병(兵)은 흉하고 전(戰)은 위험하니, 나는 결코 감히 도발하여 화를 부르지 않겠소. 내 이곳에서 시신을 운구할 은자 몇 냥을 보태줄 테니, 그대는 돌아가시오." 유련이 말하였다: "불효자는 다만 원수를 갚기를 원할 뿐, 어찌 감히 친상을 이용하여 이익을 꾀하겠습니까?"
그지없이 크신 어버이 은혜 무겁거늘, 천금도 한번 던지면 가볍도다.
함께 나라 위해 덮어줌을 허락함을 바라지 않으면, 황천에서 눈을 감지 못하리로다.
다시 가도 지부가 상대하지 않았다. 간곡히 간청하다가, 다시 두 천호를 찾아가 장례비와 상조금으로 몇 냥씩을 얻어냈다. 효자의 제목을 모두 엉뚱하게 알아버렸다. 유련은 어쩔 수 없이 다시 행성에 호소하였다. 행성이 말하였다: "유준은 위엄을 손상시키고 나라를 그르쳤으니, 우리 이곳에서 마침 상소하여 탄핵하려 하였다. 이제 그냥 따지지 않겠소." 한바탕의 불씨가 물을 만난 격이었다. 유련이 말하였다: "아버님은 이미 동채를 무너뜨리셨는데, 후군이 이어 왔다면 본채를 공격하여 섬멸할 수 있었습니다. 다만 지원이 없어 순국하게 된 것입니다." 행성이 말하였다: "그것도 그대의 일방적인 말이오." 유련이 다시 병사 출동을 청하였다. 행성이 말하였다: "출병이라는 것은 사소한 것이 아닌데, 어찌 천백 명의 목숨으로 그대 한 사람의 사정을 따를 수 있겠소!" 통곡하며 간청하여도 다만 "해당 부(府)가 조사하고 의논하라"는 한 마디뿐이었다. 한 번 의논하고 한 번 올리면 며칠이 지나, 이 일은 그냥 묻히고 말았다.
백성 대하기를 이리가 삼키듯 하고, 일을 보면 거북이가 움츠리듯 하는도다.
이러한 당사자가 어찌 하겠는가, 진정(秦庭)에서 통곡한 이를 저버렸도다.
유련이 말하였다: "이 광경을 보니, 아버님의 원수를 그냥 체념하고 마는 것인가!" 어쩔 수 없이 다시 연강(連江)으로 가서 평소에 사귀던 호걸들에게 통곡하며 호소하였다. 과연 평소에 사람을 진실되게 알아보았으므로, 모두 의기(義氣)가 발하여 말하였다: "이런 눈먼 관리와 늙은 군사들로는 아무 일도 되지 않을 것이다. 그들과 함께 일을 도모하면 도리어 제약을 받을 것이다. 우리들만 이곳에서 공자님의 원수를 갚고 치욕을 씻어, 이 도적 놈들을 난도질해야겠다!"
기개가 해와 달을 어둡게 하고, 효심이 천지를 감동시키는도다.
고래 소굴을 말끔히 쓸어버려, 신귀(神鬼)의 원통함을 씻으리로다.
효자가 땅에 엎드려 여러 사람에게 절하며 감사하였다. 각자 은밀히 모여 때를 기다려 거사하기로 하였다.
한편 진백상과 왕선은 유 순검을 죽인 이후로 관군을 아이 장난처럼 여겨, 감히 자신들을 바로 보지 못할 것이라 여기고 마음 놓고 약탈하였다. 진력과 오건이 모두 귀순하였다. 진력은 진백상을 따르고 오건은 왕선을 따르며, 모두 작은 공로를 세워 심복이 되어 그들을 인도하며 말하였다: "인근 마을 백성들이 가난하고 어려우니, 관군이 물러간 틈을 타 나누어 먼 곳의 수로와 육로의 상인들을 약탈하는 것이 낫겠습니다. 얻은 물건을 인근 마을 백성들에게 싸게 팔면, 인근 백성들이 모두 우리의 귀와 눈이 되어 외부 소식을 우리가 모두 알 수 있을 것입니다." 두 사람이 도리어 그들에게 식견이 있다 하여, 때때로 심복 도적 두목들에게 사람을 거느리고 멀리 나가 약탈하게 하고, 인근 백성들을 불러 모아 거래를 허락하였다. 유련은 먼저 오건과 진력 두 집의 친족들을 상인으로 꾸며 산에 들어가 오건, 진력과 몰래 소식을 주고받게 하였다. 실로 이러하였으니:
상인들 모두 정예 병사요, 배 안에는 백의(白衣)가 매복하였도다.
웃기도다 저 여우와 쥐 같은 무리들, 어떤 계책으로 겹겹이 포위를 빠져나갈까.
이때 시월 수확 시절이 되어, 두 도적의 심복들과 힘 있는 자들이 나누어 나가 약탈하니 진영이 텅 비었다. 진백상은 새로 얻은 미인 하나가 있어 한창 즐거운 때였다. 장파사에게는 유련이 계획을 세워, 힘이 있는 몇 사람을 보내 많은 물건을 지고 가서 그에게 주인 노릇을 하도록 청하고 그의 문호(門戶)를 살피게 하였다. 나머지 유련을 돕는 사람들은 각자 대나무 광주리 안에 유황과 질산염, 예리한 칼날을 가지고 나누어 사방 산채 좌우에 배치하였다.
약속한 날이 되어, 유련과 몇몇 호걸들이 묶음이 단단하고 각자 단도를 차고 동쪽 길로 갔다. 유련이 곧바로 장파사의 집으로 달려갔다. 이쪽에서는 진백상과 왕선의 본채로 나누어 달려갔다. 이경(二更) 무렵, 함성이 한 바탕 일어나 사방 산이 모두 호응하였다. 각 볏가리, 대나무 집, 초가집에 불길이 일제히 일어났다.
짙은 연기가 달의 굴을 어둡게 하고, 빽빽한 불꽃이 모두 노을빛이로다.
순식간에 용맹한 병사들의 땅이, 모두 기와 조각 더미로 변하였도다.
장파사가 함성이 일어나는 것을 듣고 급히 일어나 여러 사람을 불러 함께 본채를 구하러 가려 하였다. 큰 문을 막 열려는데, 유련이 소리쳤다: "못된 도적 놈, 어디로 도망가느냐!" 칼로 찔러 땅에 쓰러뜨렸다. 여러 사람이 협력하러 왔다. 유련이 "산 자를 남겨야 한다"고 하자, 여러 사람이 그 집 안으로 달려 들어갔다. 뜻밖에 그 집에 먼저 묵고 있던 행상들이 이미 그의 처자를 모두 죽여 버렸다. 이는 이러하였으니:
주고받음이 모두 하늘의 이치이거니, 흉악한 무리가 스스로 재앙을 불렀도다.
천년에 길이 남을 악명을 더하였으니, 뼈를 가루로 만들어도 누가 슬퍼하랴.
진백상은 채 안에서 한창 미인을 안고 달게 잠들어 있다가, 진력에게 꿈속에서 꽁꽁 묶였다. 왕선이 급히 옷을 걸치고 채에서 나가려는데, 몇 사람이 칼을 들고 쳐들어오자 급히 채 뒤로 돌아갔다가, 불빛 속에 오건이 서 있는 것을 보고 급히 외쳤다: "나를 살려라, 나를 살려라!" 오건이 말하였다: "내가 널 살려주러 왔다." 가까이 달려들더니 머리를 한 번에 낚아채어 왕선을 땅에 쓰러뜨렸다. 뒤에서 사람들이 달려와 역시 꽁꽁 묶었다. 오건과 진력이 크게 외쳤다: "채 안에 억지로 끌려온 양민이 많으니, 마구 죽이지 말라!" 그래도 삼분의 일을 죽이고 날이 밝았다.
유련이 진백상과 왕선 두 도적 두목을 거느리고, 이 호걸들과 진력, 오건이 논공행상을 받으러 가게 하였다. 금과 비단, 자녀, 무기는 명단을 작성하여 관아에 넘겼다. 각 채는 모두 불태워 후에 다시 모여 결집하는 것을 끊었다. 다만 장파사는, 유련이 데려가 아버지를 임시로 장사 지낸 곳에서 배를 갈라 심장을 도려내어 제물로 바쳤다.
평생의 원한을 모두 풀어, 황천 아래의 혼령을 편안하게 하였도다.
시신에 채찍질한 오자서(伍子胥)를 자랑하나니, 천년토록 잊지 않고 외우리로다.
또 큰 관을 하나 만들어 아버지를 담았다. 자신은 참최복(斬衰服)을 입고 여러 벗들도 모두 시마복(緦麻服)을 입어 상여를 내었다. 산에서 실어 나와 여러 사람에게 절하며 감사하였다. 그들이 한마음으로 동정하여 아버지의 원수를 갚아준 것을 고마워하였다. 여러 사람이 그와 함께 행성을 만나러 가자고 하자 그가 말하였다: "나는 할 일을 다 하였거늘, 다시 그를 만나 무엇 하겠는가!" 그대로 고향으로 돌아갔다. 도리어 여러 사람이 전날 아버지의 순국한 절개와 근일 유련이 계략을 세워 도적을 사로잡은 일을 글로 써서 본부에 신청하였다. 본부는 전날 도발하기 두려워하다가 이에 이르러 감히 공을 차지하였다. 문서를 내어 전달하면서 "또 본부가 오래전부터 향용(鄕勇)을 익혀 협력한" 한 마디를 덧붙여 자신에게 갖다 붙였다. 행성이 상소하면서 "본성이 엄히 수비하게 하여 도적이 이미 산림에 숨어 감히 날뛰지 못하였다"는 한 마디를 더하고, 뒤에 이르기를: "이것은 모두 성상의 천위(天威)와 여러 신하들의 발동에 힘입은 것이요, 해당 부현의 훈련의 공도 또한 무시할 수 없다"라 하였으니, 이것도 쌓인 관례(慣例)였다.
피 흘리며 싸운 병사들은 몰고, 공을 논하는 것은 모두 높은 관리들이로다.
영웅은 한 목숨을 버리기 어렵고, 용렬하고 겁쟁이는 금 수달 피 장식 쉽게 얻도다.
당시 명조 태조 고황제께서는 상벌이 가장 엄명하셨다. 성지(聖旨)를 받들어, 유준(劉濬)에게 동지(同知)를 증직하고 그 지방에 사당을 세워 제사를 지내게 하였다. 유련에게는 지현(知縣)을 제수하였다. 그 나머지 현좌(縣佐)와 순검에게는 각각 차등 있게 작록(爵賞)을 주었다. 행성과 본부는 평소 토벌하지 못하다가 남의 힘에 의지하여 일을 이루었으므로 공로를 서술하지 않고 도리어 훈계를 받았다. 주장(周章)과 서옥(徐玉)은 진중에서 물러서 유준을 빠지게 하였으므로, 자세히 조사하여 정법(正法)에 처하였다. 진백상과 왕선은 반란을 꾀하고 관리를 죽였으므로 즉시 회동하여 처결하였다. 이로써 알 수 있으니:
나라를 그르침에 가볍게 용서하지 않고, 충정(忠貞)에는 반드시 신원이 있도다.
해와 별이 법과 경계를 밝히니, 말을 올려 각자 인(仁)을 구하게 하노라.
이 절목으로 보건대, 신하 된 자가 죽음을 버릴 수 있다면, 비록 몸을 온전히 보전하지 못하더라도 마침내 사책(史冊)을 빛낸다. 아들 된 자가 죽음을 버릴 수 있다면, 마침내 원수를 갚고 치욕을 씻을 수 있으니, 어찌 천하가 안녕하지 않을까 두려워하랴. 요컨대 사람이 목숨을 아끼면 도리어 목숨을 보전하지 못하고, 신체와 가정을 아끼면 도리어 신체와 가정을 보전하지 못하는 것이다.
만약 당시 관리들이 평소의 재망(才望)으로 사람을 복종시키고, 어려움에 임하여 자기 한 몸을 아끼지 않았다면, 저절로 도적을 무너뜨리고 성을 지킬 수 있었을 것이다. 백성이 재물을 가볍게 여기고 베풀기를 좋아하며 서로 결속하여 마음을 합치고 힘을 모은다면, 결국 도적을 죽이고 가재를 보전할 수 있는 것이다. 다만 명나라 말기에 관리들이 조정이 한 분을 더하면 그 기세를 빌려 한 분을 더하고; 조정이 오 분을 징수하면 십 분을 더 징수하였다. 대납(帶納)과 추가 징수, 미리 거두는 화모(火耗)까지, 사람들의 마음을 원한과 분노로 채워 놓았다. 또 대호(大戶)가 삼배 오배씩 이자를 받아 제 이익만 도모하였으니, 가난한 백성이 어디 가들 가난해지지 않겠는가? 도적이 오기 전에 먼저 어지러워지니, 도적이 오면 틈을 타 이익을 도모하게 되는 것이다.
만약 사람마다 유 순검처럼 지략과 용기로 충성을 다하고, 무장들도 협력하여 서로 돕고; 사람마다 유 효자처럼 가산을 털어 원수를 갚고 협객을 모아 도적을 멸한다면, 도적 무리를 어찌 섬멸하기 어렵겠는가. 다만 귀감이 있어도 사람들이 배우려 하지 않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