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화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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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1회 사(詞)를 쓰다 원한을 담아 잃어버리니 그윽한 정이 드러나고 혼인을 청하는 예물이 당도했다는 소식에 놀라 죽을병이 들다

사(詞)로 이르기를:

정(情)이란 말하기 어려우니, 모름지기 시의 목청으로 새어 나오지 않도록 막아야 하리라.

시의 목청이라 함은, 그림자를 보고 소리를 들음이니, 가볍고 가볍게 흘러 새나가는도다.

혼인이란 등나무와 칡이 얽히듯 맺어진다 하건만,

어찌 알리오, 그 밖에 따로 꽃가지의 사연이 있음을.

꽃가지의 사연이여, 그것이 벗 사이의 기쁨이 아닐진대, 곧 영원한 작별이 되리로다.

                     「억진아(憶秦娥)」의 곡조에 맞추어

  이야기하건대, 상(常) 총진(總鎭) 상용(常勇)은 창(昌) 참군(參軍)이 자기 아들의 문장에 찬사를 붙인 것을 보고 기쁨을 이기지 못하였다. 마침내 오취(吳趨)를 찾아가 말하기를, "청이 있어 폐를 끼치고자 하오." 하니, 오취가 황망히 물었다. "어떠한 일이옵니까? 어서 가르쳐 주시옵소서." 상용이 말하기를, "소제(小弟)의 마음속에, 실로 창(昌) 소저를 아들의 며느리로 맞이하고자 합니다. 오랫동안 창 노인의 안목이 높다 하여 걱정하였고, 또한 제 아들의 글이 거칠고 얕아 그의 마음을 움직이지 못할까 두려워하였습니다. 그런데 이제 창 노인의 비평과 찬사를 보오니, 창 노인의 마음이 반드시 어느 정도 움직였을 것입니다. 이제 그 마음이 움직인 때를 틈타 좋은 중매를 통해 혼사를 청하면, 혼인이 이루어질 수 있는 기틀이 있을 것입니다. 좋은 중매를 생각건대, 선생이 아니면 안 될 것입니다. 그러하기에 특히 청하는 것입니다." 오취가 황급히 공손히 인사를 올리며 말하기를, "대인께서는 태산북두(泰山北斗)의 존귀함을 지니셨고, 영공랑(令公郎)은 빙청옥윤(氷淸玉潤)의 명성을 갖추었사오니, 만학생이 다시 세 치 혀를 놀리면 자연히 열에 아홉은 이루어질 것입니다. 다만 어리석은 소견으로는, 대인께서 또 한 통의 서한을 동관(同寅)께 보내시어, 그로 하여금 중간에서 주선하게 하시면, 두 곳에서 힘을 쓰니 마땅치 않음이 없을 것입니다." 상용이 말하기를, "선생의 이 말씀이 지극히 묘하오이다. 내 곧 서신을 쓰리다." 하고는 작별하고 나가서 사람을 시켜 서신을 쓰게 하였으니 이는 더 말할 나위 없다.

  이야기하건대, 창(昌) 소저는 아버지가 그녀로 하여금 문장을 살펴보게 한 이후로 마음속이 몹시 불쾌하였다. 이때 소저는 이미 열일곱 살이 되었으니, 이렇게 생각하였다. "나의 그 당(唐) 생원, 이때 바야흐로 약관(弱冠)의 나이에 있으니, 대개 이미 입반(入泮)한 지 오래일 것이다. 청청한 유생의 옷깃에, 계수나무 가지는 꺾이기 쉬운 법. 다만 생각건대 그는 이미 과(果)를 던질 만한 용모를 갖추었으니, 그의 부모는 당연히 배필을 골라 혼인을 맺어 현재의 즐거움을 누리게 하려 할 것이다. 어찌 나와 같이 뜨는 부평초처럼 생사가 정해지지 않은 사람 때문에 그로 하여금 언약을 지키며 짝을 잃은 채 지내게 하려 하겠는가? 이는 절대로 있을 수 없는 이치다. 그러나 내가 보건대 저 당 생원은 사람됨이 비록 나이는 어리나 십분 지극히 성실하여, 그 말이 금석(金石)과 같았다. 이미 나와 평생의 언약을 맺었으니, 어찌 저버리려 하겠는가? 설령 부모가 강요하더라도, 아마 그도 마음을 배신하여 박정한 사람이 되려 하지 않을 것이다."

  소저는 몇 번이나 스스로 달래고 또 몇 번이나 스스로 탄식하니, 어느새 눈썹이 찡그려지고 향기와 아름다움이 줄어들었다. 춘휘(春輝)는 소저가 무정하고 기운이 없는 것을 보고 대략 그 연유를 짐작하였으나, 단지 소저가 봄을 그리워하며 때를 놓쳐 감상(感傷)하는 것이라 여겼고, 그 밖에 다른 마음의 사연이 있는 줄은 알지 못하였다. 이에 백방으로 위로하여 소저의 기쁨을 이끌어 내려 하였다. 어느 날, 소저는 무료함이 극에 달한 나머지 「도원억고인(桃源憶故人)」의 소사(小詞) 한 수를 지어 번민을 달래려 하였다. 소저는 다 짓고 나서 보니 몹시 흡족하였다. 이렇게 생각하였다. "우리 두 사람이 훗날 과연 다시 만날 수 있다면, 내가 이토록 죽음을 참고 삶을 훔쳐 온 것도 헛되지 않으리라." 막 정사(淨寫)하려는 참에, 뜻밖에 추소(秋素)가 달려와 말하기를, "마님께서 갑자기 병환이 나셨으니, 소저께서 급히 가서 살펴보셔야 하옵니다." 소저는 이를 듣고 놀라, 황망히 사(詞)를 소매 속에 감추고 어머니의 방으로 가서 문안을 드렸다. 두씨(杜氏)가 신음하고 있는 곁에서 소저가 한참 동안 간호하고 나서야 점차 깨어나 조금 정신이 드는 듯하였다.

  얼마 지나지 않아 창전(昌全)도 황급히 달려와 한바탕 안부를 물었다. 두씨가 차도를 보이자 그제야 안심하고 물러났다. 두씨는 소저가 방 안에서 하루 종일 바쁘게 움직인 것을 보고 말하기를, "내 아픔은 이제 가라앉았다. 너는 방으로 돌아가 쉬거라, 쉬어라." 하였다. 소저는 어쩔 수 없이 자기 방으로 돌아와 저녁 밥을 먹고, 하루 동안의 노고로 막 자리를 정리하고 잠자리에 들려는 찰나, 문득 낮에 지은 사(詞)가 생각나 황급히 소매 안을 더듬어 보았으나 보이지 않았다. 마음속으로 놀라며 생각하기를, "사 속에 그윽한 정이 드러나 있거늘, 만약 누가 주워 아버지 눈에 들어가면, 여자아이가 외도에 빠진다고 할 것이니, 어찌해야 하는가!" 황급히 춘휘와 추소를 불러 말하기를, "내가 낮에 사 한 수를 지어 소매 속에 넣었는데, 이제 보이지 않는다. 틀림없이 마님 방에서 잃어버린 것이니, 너희 둘이 속히 가서 찾아오는 것이 긴요하다."

  두 사람이 몸을 돌려 막 가려는데, 중문에 이르니 이미 자물쇠가 잠겨 있었다. 두 사람은 어쩔 수 없이 돌아와 소저에게 고하였다. 소저는 이를 듣고 애가 탔다. "내가 직접 가서 열어 달라고 하마." 하고는 곧 춘휘·추소와 함께 방문을 나서다가, 문득 다시 생각하기를, "부모님께서 이미 주무시는데, 밤중에 이유도 없이 놀라게 하는 것은 여자아이로서 할 일이 아니다." 하고는 다시 방으로 돌아와, 두 사람에게 방 안에 등불을 켜게 하고 여기저기 찾아다녔으나, 자정이 될 때까지 찾아도 종이 한 장 글자 한 자 보이지 않았다. 소저는 어쩔 수 없이 그냥 잠자리에 들었으나 밤새 눈을 붙이지 못하였다. 과연 이러하였으니:

마음의 사연이 마음을 마음으로 버티지 못하게 하여,

저도 모르는 사이에 묵묵히 사(詞) 속에 드러나고 말았네.

사(詞)를 잃어버려 남의 눈에 띄니,

사사로움이 없다 하여도 사사로움이 있음이라.

  이야기하건대, 창전(昌全)은 다음 날 아침 일찍 일어나니, 뜻밖에 시녀가 마당을 쓸다가 글씨 쓴 종이 한 장을 주워 올리는 것을 보았다. 창전은 이를 보고 황급히 받아 살폈다. 읽어 보니, 다름 아닌 딸이 쓴 사(詞) 한 수였다. 그 위에 이렇게 쓰여 있었다.

  아침이고 저녁이고 모두 그냥 버텨 왔건만, 소식은 아득히 하나도 없구나. 흐릿하게 오래 앉아 있다가 흐릿하게 눕고, 눈물도 흐릿하게 흘러내리네. 발은 모두 걷어 올려졌고 둥지도 부서졌건만, 제비와 참새는 여전히 날아와 축하한다 하네. 새로 지은 사(詞)를 예전 사(詞)로 여기고 부르거니와, 아마도 화답해 줄 이 없으리로다.

                     「도원억고인(桃源憶故人)」의 곡조에 맞추어

  창전이 다 읽고 속으로 놀라며 이르기를, "이 계집아이가 어찌 이런 아련한 사(詞)를 지었는가?" 하고 생각하였다. "속담에 이르기를, '딸은 어른이 되면 붙잡아 둘 수 없다' 하였다. 내가 만약 이 사를 들고 따져 물으면, 그때에는 이것저것 얽히고설켜 한번 소문이 나면 부모 자식 간의 정이 어긋날 것이며, 나아가 명예도 손상될 것이다." 또 생각하기를, "그 나이가 이미 계지(笄地)에 이르렀고, 또한 재주와 식견이 뛰어나다. 감회에 젖어 비유를 빌려 쓰는 것은 피할 수 없는 바이거늘, 반드시 다른 뜻이 있는 것은 아닐 것이다. 다만 그가 이 사를 보지 못하면 반드시 놀라고 당황하여, 내가 보았을까 근심할 것이다. 내가 만약 감추어 두면, 서로 만날 때 어색함과 거리낌이 생겨 그가 불안해할 것이다. 차라리 아무것도 모르는 척하고 이 사를 본래 자리에 놓아두어, 그가 스스로 찾아가게 하는 것이 의심과 근심이 없을 것이다. 더욱이 그는 총명한 마음을 가진 여자이니, 이번 일을 겪고 나면 반드시 스스로 뉘우치고 고칠 것이다. 굳이 속속들이 따질 필요가 있겠는가?" 하고는 이 사를 본래 있던 자리에 가져다 놓았다.

  얼마 지나지 않아, 소저는 과연 춘휘를 먼저 보내 문안을 드리게 하면서, 그로 하여금 눈을 여기저기 돌려 살피게 하였다. 그러자 문득 마루 옆에 과연 글씨 쓴 종이 한 뭉치가 있는 것이 보였다. 춘휘는 가리고 숨기며, 마님이 보지 않는 틈을 타서 황급히 돌아가 그것을 주워 소매 속에 감추고는, 나는 듯이 달려와 소저를 뵈었다. 소저는 막 옷을 입고 있었는데, 춘휘가 앞으로 다가와 웃으며 말하기를, "소저, 하루 종일의 걱정이 모두 사라졌습니다!" 하고는 소매 속에서 원래의 사(詞)를 꺼내었다. 소저가 받아 보고는 기쁨을 이기지 못하며 말하기를, "역시 네가 영리하여 일을 잘 처리하는구나." 하고는 또 마님의 용태는 어떠하냐고 물었다. 춘휘가 말하기를, "마님께서는 이미 나으셨습니다."

  잠시 후, 소저는 세수하고 머리 단장을 마치고 나서, 기쁘고 즐거운 마음으로 춘휘와 함께 어머니께 문안을 드리러 갔다. 어머니 방에서 하루 종일 함께 있다가, 저녁이 되어서야 방으로 돌아왔다. 과연 이러하였으니:

잃어버린 양을 잘 찾을 줄만 알았더니,

잃어버린 양을 찾고 나니 이미 마음이 놓이는구나.

자녀들은 남몰래 가리고 꾸밈이 교묘하다 자랑하지 말지니,

부모의 은혜가 실로 깊음을 뉘 알리오.

  이야기하건대, 오취(吳趨)는 상용(常勇)의 부탁을 받고, 이에 서찰을 가지고 종복을 거느린 채, 의기양양하게 말을 타고 주중문(周重文)을 만나러 갔다. 아문(衙門) 밖에 이르러, 먼저 사람을 시켜 상(常) 총진의 명함과 자신의 배알 명함을 들여 전하게 하였다. 얼마 지나지 않아, 벌써 문지기가 나와 말하기를, "어느 분이 오(吳) 상공 나리이십니까? 안쪽 관아에서 만나 뵙겠다 하십니다." 오취는 황급히 말에서 내리고, 종복이 곧 모전(氈) 보자기 안에서 유건(儒巾)과 유복(儒服), 흰 바닥의 검은 가죽신을 꺼내어 오취에게 가지런히 차려 입히고는, 문지기를 따라 아문 안으로 들어갔다.

  주중문(周重文)은 이미 서찰의 뜻을 알고 있었으므로, 황급히 걸어 나와 맞이하며 말하기를, "선생께서 왕림하셨는데 미처 마중 나오지 못하였으니, 죄가 크옵니다." 오취가 좌우로 하여금 붉은 자리를 깔고 큰 예로써 배알을 행하려 하자, 주중문이 황급히 붙잡으며 말하기를, "선생은 아무개 동관(同寅)의 사범(師範)의 존귀함을 지니셨으니, 곧 본진(本鎭)과 동격이옵니다. 어찌 배알의 예를 행할 이치가 있겠습니까. 더욱이 선생은 평소 명망이 높으시고 또한 태학(太學)에 계시니, 빈객과 주인의 예를 행함이 마땅하거늘, 어찌 지나치게 하겠습니까." 오취가 말하기를, "대인의 명성은 온 누리에 떨쳐졌거늘, 만학생(晩學生)은 말학(末學)에 불과하오니, 상하의 격이 현격하여, 배알의 예를 행하고 우러르는 정성을 조금이나마 펼치지 아니할 수 없사옵니다."

  두 사람이 재삼 사양하다가, 먼저 사제(師弟)의 예를 행하고, 다음으로 빈객과 주인의 예를 행하였다. 자리를 잡고 차를 마신 뒤, 오취가 일어나 공손히 한 마디 하기를, "만학생은 저의 주인의 명을 받들어 대인께 배알하오니다. 생각건대 저의 주인의 공랑(公郎)은 영준하고 약관(弱冠)의 나이에 있사옵니다. 대인께서도 이전에 이미 보신 바 있사옵니다. 이제 저의 주인께서 창(昌) 공에게 따님이 계신다는 소식을 들으셨는바, 계(笄)의 나이에 이른 숙원(淑媛)으로, 오래전부터 재화(才華)를 독차지하시고도 아직 시집을 가지 않으셨다 하옵니다. 저의 주인께서는 흠모하는 마음이 지극하여, 관저(關雎)의 짝으로 청혼하고자 하옵니다. 다만 만학생이 체모가 비루하고 말이 사람을 감동시키지 못하여, 창(昌) 참군께 중시를 받지 못할까 염려되옵니다. 그러하기에 대인께 서찰을 올려, 대인의 적극적인 힘을 빌려 참모에게 잘 말씀드려, 진진(秦晉)의 좋은 인연을 맺게 해 주시기를 청하옵나이다. 재주가 홀로 남지 않고 두 현인이 나란히 피어난다면, 저의 주인만이 대인의 덕에 감사할 뿐 아니라, 만학생도 이를 통해 영광을 나누어 갖게 될 것이옵니다." 하였다.

  주중문이 말하기를, "상(常) 동관의 영공랑(令公郎)은, 전에 한 번 보는 순간 곧 그가 준수한 공자(公子)임을 알아보았소. 창(昌) 참모의 따님은, 정숙한 아름다움은 오래전부터 들었거니와, 사화(詞華)도 본래 뛰어나시니, 참으로 한 시대의 가인(佳人)이시오. 만약 사라와 칡이 얽히듯 인연을 맺는다면, 재자가인(才子佳人)이니 참으로 천추의 성대한 일이오이다. 선생은 돌아가 동관께 전해 주시오. 본진(本鎭)이 기꺼이 도끼를 잡고 나서겠소이다. 훗날 붉은 실을 맺는 좋은 소식을 곧 알리겠소이다." 오취가 말하기를, "대인의 흔쾌한 허락을 받아, 돌아가 저의 주인께 고하면 감사함이 그지없을 것이옵니다. 삼가 재계하고 좋은 소식을 기다리겠나이다." 하고는 곧 작별을 고하고 나가서 상(常) 총진에게 회보하였으니 이는 더 말할 나위 없다.

  주중문은 이어 창전(昌全)을 청하여 이 일을 자세히 알려 주었다. 그리고 권하며 말하기를, "따님의 재주에 상(常) 공자의 재주를 짝짓는 것은, 두 재주가 서로 어울리니, 양홍(梁鴻)과 맹광(孟光)에 비해 무엇이 다르겠소? 더욱이 상 공자의 준수한 아름다움은 이전에 이미 보았고, 참된 재주는 어제 또 살펴보았소. 내가 보기에 이 좋은 인연은 비단처럼 아름다우니, 잃어버려서는 아니 되오." 하였다.

  창전이 이를 듣고 한동안 마음을 정하지 못하였다. 어쩔 수 없이 말하기를, "소녀의 변변치 못한 자질이 어찌 어울리겠소이까." 하니, 주중문이 말하기를, "상(常) 동관은 이미 따님의 재주와 어짊을 알고 있으니, 그러하기에 이렇게 생각하는 것이오. 또 무엇을 겸양하시오이까? 선생은 돌아가 내외와 따님과 상의해 보시오." 창전은 물러나 돌아와 두씨(杜氏)를 만나, 상(常) 총진이 주중문에게 서찰을 보내고, 또 사람을 중매로 보낸 이 일의 전후 사정을 이러이러하게, 이러이러하게, 한 차례 이야기하였다. 그리고 말하기를, "내가 보건대 상(常) 공자는 인물이 풍후하고 문재(文才)도 볼 만하외다. 더욱이 아이가 점점 자라니, 다시 때를 미루면 표매(標梅)의 탄식을 면치 못할 것이오이다. 더욱이 이곳에서 재주 있는 사람을 고르려 하면, 이 사람 외에는 다시 얻을 수 없을 것 같소이다." 두씨가 말하기를, "당신의 견해가 틀리지는 않지만, 내 생각에는 아직 마땅치 않은 점이 있습니다."

  창전이 황급히 물었다. "이는 어째서입니까?" 두씨가 말하기를, "자식을 기르는 것은 노후를 의지하기 위해서입니다. 당신과 나는 이곳에 있으나, 이 또한 오래 머물 곳이 아닙니다. 만약 지금 바로 여기에서 혼인을 정하면, 훗날 그가 승진하여 이사하거나, 내가 귀향하게 된다면 어찌하겠습니까? 서로 멀리 떨어지면 어쩔 수 없지 않겠습니까?" 창전이 말하기를, "내가 들으니 그는 북직(北直) 사람으로 이곳에서 벼슬살이를 하고 있으니, 나중에는 자연히 돌아갈 것이오. 나 역시 예전과 같지 않아 고향으로 돌아갈 기회를 찾아야 할 것이오. 만약 모두 함께 경성(京城)으로 돌아간다면 서로 만나기도 어렵지 않을 것이오. 다만 내가 꺼리는 것은, 상용(常勇)이 권문(權門)의 사람이라 끝내 화(禍)가 있을까 걱정되는 것이오."

  두 사람이 이야기를 나누는 사이, 이미 추소(秋素)가 낱낱이 듣고 있다가, 노인(老人)께서 소저를 상(常) 총병(總兵)의 아들에게 시집보내려 한다는 것을 알고는 기쁨을 이기지 못하였다. 두 사람의 이야기가 끝나기도 기다리지 않고, 곧 몸을 돌려 날듯이 달려와 소저를 뵈었다. 웃음을 참지 못하고 연신 웃다가, 끝내 웃으며 말하기를, "소저, 축하드리옵니다!" 소저는 갑자기 '축하'라는 말을 듣고, 깜짝 놀라며 말하기를, "이 못된 것이, 어찌 이리 무례한가! 내가 날마다 깊은 규방에 있으니, 화(禍)는 쉬이 오는 것이 아니요, 기쁨도 쉬이 이르는 것이 아니다. 어찌 감히 내 앞에서 이런 터무니없는 말을 하는가? 참으로 가증스럽구나." 추소가 또 웃으며 말하기를, "소저, 과연 축하드리옵니다! 소녀가 방금 방에서, 노인(老人)께서 마님께 소저의 혼사를 말씀하시는 것을 들었는데, 노인께서 이미 소저를 상(常) 공자에게 허혼하셨습니다. 이 어찌 소저의 하늘처럼 큰 기쁜 일이 아니겠사옵니까?"

  소저는 이 말을 듣고, 혼백이 몸에서 빠져나가는 듯 놀라, 시녀가 보는 것도 개의치 않고 대번에 뚝뚝 눈물을 흘리며 말하기를, "박명한 홍안이 이 지경에 이르렀는가? 이곳에서 겨우 목숨을 이어온 것도 이미 혼이 나간 것과 같은데, 이제 또 이런 일이 생기니, 이는 내 넋을 빼앗는 것이로다!" 하고는 한동안 앉지도 서지도 못하고 오직 눈물만 흘렸다. 춘휘·추소는 갑자기 소저의 이런 모습을 보고 모두 영문을 알 수 없었다. 춘휘가 재삼 위로하였으나, 소저는 끝내 한 마디도 하지 않았다. 오직 눈물을 머금은 채 말하기를, "이처럼 박명하니, 어찌 억지로 할 수 있겠는가. 너희 둘은 내 마음을 헤아려, 부모님께 알리지 말아야 한다." 하고는 소저가 마침내 자리에 들어 잠을 청하였다. 춘휘·추소는 모두 어쩔 줄을 몰라, 춘휘가 추소를 원망하고 추소가 또 춘휘를 원망하였다. 소저가 어찌 이토록 상심하는지 알 수 없었으나, 또한 감히 노인(老人)과 마님께 알릴 수도 없어, 어쩔 수 없이 방 안에서 시중을 들며 잠시도 자리를 떠나지 않았다. 소저는 오직 울적하게 반쯤 자다 반쯤 앉아 있을 뿐이었으니, 과연 이러하였다.

  아미(蛾眉)와 매미 날개 같은 귀밑털이 바야흐로 봄을 맞이하였건만,

  한 생각이 어긋나니 죽음과 이웃하게 되었도다.

  여자아이의 성품이 낮은 것이 아니요,

  이 가운데서 명절(名節)을 참으로 알기 때문이로다.

  이야기하건대, 창전(昌全)의 뜻은 비록 가부간에 있었으나, 주중문이 중매를 서서 주선하는 것을 감당하지 못하여, 사양할 수가 없어 마침내 흔쾌히 응낙하였다. 주중문은 크게 기뻐하며, 곧 답서를 써서 창(昌) 참모는 스스로 부족하다 하여 감히 높은 곳에 짝을 구하지 못하겠다고 하였으나, 소제(小弟)가 곡절을 무릅쓰고 중매를 서서 허락을 받아냈다고 하였다. 상용은 서찰을 보고 기쁨을 이기지 못하며, 곧 온 사람에게 말하기를, "돌아가서 두 분 노인께 많이 절하고, 내일 먼저 사람을 보내 좋은 날을 받겠다고 전하라. 이쪽에서는 곧 예를 갖추어 보내겠다." 하였다. 온 사람은 스스로 주중문과 창전에게 회보하였으니 이는 더 말할 나위 없다.

  이야기하건대, 상(常) 공자는 아버지가 자신을 위해 혼담을 의논하였다는 것과, 창(昌) 집안에서 허락하였다는 것을 알고, 또한 창 소저가 시(詩)와 글에 능하다는 것을 알고는 기쁨을 이기지 못하며 말하기를, "나의 재학(才學)은 그저 그런 수준인데, 이제 만약 그를 아내로 맞이하면, 훗날 시문(詩文)이 있을 때마다 모두 그가 대신 지어 줄 것이다. 즉 내일 학정(學政)의 고사(考査)가 있더라도, 당연히 그가 대신 지어 줄 것이다. 그의 내조의 재주를 얻었으니, 나 또한 의연히 재자(才子)가 되는 것이 아니겠는가? 다만 그의 인물과 자색(姿色)이 어떠할지 모르겠구나." 하고는, 다시 생각하기를, "예로부터 재주와 용모는 겸비하기 어렵다 하였다. 옛날 소동파(蘇東坡)의 매제인 소씨 소매(蘇家小妹)의 인물도 그저 평범하였다. 나는 이제 다만 재주를 기뻐하니, 인물이 좀 못하더라도 그만이다." 하였다. 마음이 흡족한 곳에 이르니, 선생이 중매를 섰기 때문에, 날마다 선생에게 아버지로 하여금 날을 잡아 예물을 보내도록 재촉해 달라고 하였다. 상용은 이에 날을 잡아, 오취로 하여금 직접 가져다 주게 하여 정중함을 보이고자 하였다. 또한 날이 아직 이르다 하여, 바로 가는 것은 마땅치 않으니, 때가 되면 보내기로 하였으니 이는 더 말할 나위 없다.

  이야기하건대, 창 소저는 추소(秋素)가 기쁜 소식을 전한 이후로, 연달아 사흘 나흘 동안 물 한 모금 밥 한 술 입에 대지 않았다. 마음속으로는 오직 죽음으로써 자신의 뜻을 보이려 하였다. 춘휘가 재삼 음식을 권하였으나, 소저가 말하기를, "내 뜻은 이미 결정되었으니, 너희는 억지로 강권하지 말아라." 하고는 말을 마치고 눈물을 삼키었다. 춘휘는 소저의 이런 모습을 보고 마음이 참으로 차마 볼 수 없어, 이에 울며 말하기를, "소저께서는 꽃다운 나이에 앞길이 아직 멀고 멀거늘, 어찌 이처럼 스스로를 괴롭히십니까? 소녀가 소저를 모신 지도 이미 여러 해가 되었습니다. 소저께서 시녀로 대하지 않으시고 정이 골육과 같아, 말 못 하는 것이 없었사옵니다. 소저께서 오늘 이렇게까지 병이 드셨으니, 무슨 마음의 사연이 있으신지, 저에게 대략 한두 가지 말씀해 주셔도 무방하옵니다. 만약 힘이 닿는 일이라면, 혹 소저의 시름을 조금이나마 덜어 드릴 수 있을지도 모르옵니다." 소저가 길게 탄식하며 말하기를, "아름다운 꽃이 떨어지면 다시 가지로 오르기 어렵습니다. 이제 일이 이미 이와 같이 되었으니, 말한들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네가 만약 오랜 함께한 정을 생각한다면, 이제 너에게 더 바랄 것이 없다. 너는 다만 나를 위해 상(常) 가의 소식을 알아봐 주어라. 만약 날짜가 정해지거든 속히 와서 알려라. 그것만으로도 네 정성을 충분히 볼 수 있을 것이다." 하고는 말을 마치니, 코와 입의 숨결이 가물가물하였다.

  춘휘는 소저의 상태가 매우 위중함을 보고, 어쩔 수 없이 노인(老人)과 마님께 가서 고하기를, "소저께서 갑자기 병이 나셨는데, 매우 위독하십니다." 하였다. 두 사람이 이를 듣고 크게 놀라며 말하기를, "소저가 병이 났거든, 이 못된 것이 어찌 진작 와서 알리지 않았는가! 병이 깊어져서야 비로소 와서 고하다니." 춘휘가 말하기를, "소저께서 재삼 노인(老人)과 마님께 놀라게 하지 말라 하셨습니다. 그러하기에 천비(賤婢)가 감히 함부로 전하지 못하였습니다. 천비도 별일 없을 줄만 알았는데, 뜻밖에 병이 이 지경에 이르렀습니다." 창전과 두씨가 함께 소저를 보러 갔다. 소저는 살이 빠지고 얼굴이 누렇게 뜨며 숨이 가물가물하였다. 두씨는 소저가 하루아침에 이렇게 된 것을 보고 참지 못하고 크게 울며 말하기를, "아이야, 이토록 중한 병이 들었건만, 우리 부모가 전혀 모르고 있었구나!" 창 소저는 전혀 입을 열지 않고, 다만 손을 저으며 오직 눈물을 흘릴 뿐이었다. 창전이 황급히 의원을 불러 약으로 치료하게 하고, 또 춘휘·추소 두 사람에게 소저가 병이 난 경위를 추궁하였으나, 모두 알지 못한다고 하였다. 창전과 두씨는 밤낮으로 놀라고 당황하여 은밀히 눈물을 흘렸으니, 과연 이러하였다.

  다만 아이가 바야흐로 꽃다운 나이에 있음만 알았지,

  그 마음이 딴 곳에 매여 있는 줄은 알지 못하였네.

  만약 아득하고 조용한 그 속을 묻는다면,

  부모라 해도 또한 헛되이 알 뿐이로다.

  두씨는 어쩔 수 없이 소저의 방에서 밤낮으로 지키며 재삼 캐물었다. 소저는 오직 짧게 탄식하고 길게 한숨 쉴 뿐 한 마디도 하지 않았다. 두씨가 말하기를, "우리 두 사람이 타향에서 떠돌면서, 실로 네가 자라서 사람이 되어 만년의 즐거움이 되기를 바랐건만. 만약 네가 무슨 일이라도 생기면, 우리 두 사람은 쓸쓸하고 외로워, 살아 있어도 죽은 것과 다름없을 것이다." 하고 말을 마치고는 슬픔을 이기지 못하였다. 소저 역시 끝내 한 마디도 하지 않았다. 창전은 이런 모습을 보고, 이전의 사(詞)가 생각나, 살며시 두씨에게 말하기를, "이런 모습을 보아하니, 혹 아이에게 무슨 마음의 사연이 있어 말하기가 어려워 이 지경에 이른 것이 아닐까?" 두씨는 이 말을 듣고, 다만 딸이 봉(鳳) 집안의 부모를 그리워하는 것이라 의심할 뿐이었으며, 다른 곳은 미처 생각지 못하였다. 이에 또 재삼 물어보고 재삼 위로하였으나, 소저는 오직 고개를 저을 뿐이었다. 창전과 두씨는 방법이 없어, 어쩔 수 없이 아침저녁으로 곁을 떠나지 않고 지켜보았다.

  이야기하건대, 상(常) 총진은 길일(吉日)이 되자, 과연 관가(官家)의 집안이라 일을 처리하기가 쉬워, 일찌감치 많은 예물을 갖추어, 백여 명의 군졸로 하여금 모두 붉은 치장을 하고 들쳐 메고 오게 하였다. 오취(吳趨) 역시 길복(吉服)을 입고 키가 큰 말을 타고, 줄곧 흥겹고 득의양양하게 주(周) 총병(總兵)의 아문을 향해 싣고 왔다. 주중문은 이를 보고, 황급히 사람을 보내 창전을 청하여 상(常) 가의 빙례(聘禮)를 받아보게 하였다.

  이때 창전은 딸아이의 이런 모습을 보고 마음이 어수선하여, 상(常) 가의 좋은 날도 이미 잊어버린 터였다. 이제 갑자기 주중문이 사람을 보내 빙례를 받으러 오라 하니, 한동안 어찌할 바를 몰라, 어쩔 수 없이 두씨와 상의하기를, "이제 상(常) 가에서 예물을 보내왔으니, 만약 공공연히 받으면, 지금 딸아이가 현재 중병에 들었으니, 훗날 만에 하나 잘못이라도 되면 남의 집을 어떻게 보상하겠는가? 만약 받지 않고 돌려보내어 딸아이의 병이 나은 뒤에 보내라 하면, 저쪽은 또 총융(總戎)이고 본관이 주선한 일이니, 어찌 이랬다저랬다 할 수 있겠는가? 일이 양쪽 다 어려우니, 정말 처리하기 곤란하오이다." 두씨 역시 방도를 내지 못하면서도, 또한 딸아이에게 물어보기도 어렵고, 어쩔 수 없이 말하기를, "저들이 흥겹게 보내 왔으니, 하나의 혼인 기쁜 일에 어찌 돌려보내겠소? 혹 이 기쁜 일로 인해 한번 고취되면, 딸아이의 병이 나을지도 알 수 없는 일이오."

  창전은 방법이 없고 또 주중문이 사람을 보내 재촉하는지라, 어쩔 수 없이 걸어 나와 오취를 만나 서로 한바탕 의례적인 말을 나누었다. 주중문이 곧 창전에게 빙례를 확인하여 받으라 하였다. 창전은 어쩔 수 없이 예단 목록에 따라 하나하나 확인하여 받고, 사람을 시켜 안으로 들여보내고는, 곧 온 사람을 접대하였다. 얼마 지나지 않아, 창전이 주중문과 함께 오취를 자리로 초대하였다. 한창 술을 마시는 사이, 안에서 한 사람이 황황히 달려와 창전의 귀에 대고, 무슨 말인지 몇 마디를 조용히 하였다. 창전은 갑자기 크게 놀라며 낯빛이 변하여 말하기를, "소제(小弟)가 자리를 모시지 못하겠습니다." 하고는 몸을 돌려 안으로 달려 들어갔다. 주중문과 오취는 그가 무슨 연유인지 알 수 없어, 황급히 사람을 보내 알아보게 하였다. 얼마 지나지 않아, 그 사람도 놀라고 황황히 달려와 회보하였다. 바로 이 한 마디 때문에, 아마도:

  비단 같은 앞날이, 이미 나는 꽃으로 변하였구나.

  이후 창전(昌全)에게 과연 어떤 일이 생겼는지? 다음 회를 들으면 자연히 알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