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0회 단랑(端郞)은 보고(報告)를 읽고 유리(流離)함에 놀라 상사(相思)로 죽고자 하고, 창녀(昌女)는 문장을 평하며 도습(盜襲)을 의심하여 감식(鑒識)이 귀신과 같도다
사(詞)에 이르되:
이별이 오래되어, 다시는 그의 안부를 알지 못하노라.
삼(參)과 상(商)이 서로 어긋나고 묘(卯)와 유(酉)가 엇갈림을 말하노니,
이 병은 사람을 갑절이나 더하게 하도다.
거짓을 자랑하되 낯두꺼운 줄 알지 못하고,
도습(盜襲)하고서도 허물이 없다 여기도다.
어찌 알았으랴, 밝은 마음이 도리어 능히 분별하여,
당시의 추태를 낱낱이 드러낼 줄을.
「알금문(謁金門)의 곡조에 맞추어」
이야기하노니, 상용(常勇)이 주중문(周重文)의 말을 들은 후로 창(昌) 소저(小姐)가 재주가 많음을 알고, 꾀를 내어 아들의 며느리로 맞아들이려 생각하였다. 먼저 선생과 의논도 해야 하고 아들의 학문도 살펴보아야 하겠기에, 곧장 서방(書房)으로 걸어 들어갔다. 이 선생의 성은 오(吳)요 이름은 추(趨)인데, 과거도 없는 공명(功名)만 있는 감생(監生)이었다. 그는 오로지 아첨하는 재주만 있어, 상 총병(常總兵)에게 글 읽는 아들이 있음을 알아내고 어느 권세 있는 자를 통하여 천거받아 왔다. 상 총병은 또한 사람을 알아보는 눈이 없어, 기쁜 마음으로 그를 머물게 하였다. 비록 날마다 상기(常奇)에게 글을 가르치고 문장을 짓게 하였으나, 다만 형식적으로 일을 처리할 뿐이었다.
그 날은 뜻밖에도 상용(常勇)이 서방으로 들어오는 것이 보였는데, 학생의 공부를 살피러 왔다고만 생각했으나, 자신도 모르게 깜짝 놀랐다. 상용을 보자마자 거듭 허리를 굽혀 읍하며 말하였다: "근래에 영공랑(令公郞)의 학업이 매우 볼 만하여, 마침 요즈음의 가작(佳作)을 올려 보이려던 참이었습니다." 상용이 말하였다: "그건 잠시 접어두시오. 내 오늘 한 가지 일이 있어 선생과 상의하고자 하오. 만약 일이 이루어지면, 우리 부자(父子)가 은덕을 잊지 않을 것이오."
오추(吳趨)는 상용이 공부를 살피지 않겠다는 말을 듣고 마음속으로 이미 한 짐을 내려놓았다. 또 할 말이 있다 하니 일시에 담이 커졌다. 다시 한 번 허리를 굽히며 말하였다: "노선생(老先生)께서 무슨 분부이신지요? 만생(晩生)이 비록 계책은 진평(陳平)만 못하고 지혜는 자방(子房)만 못하오나, 힘쓸 곳이 있다면 비록 탕화도화(赴湯蹈火)라도 사양치 않겠습니다."
상용이 크게 기뻐하며 무릎을 맞대고 마주 앉아 말하였다: "오늘 본진(本鎭)이 주인옹(周寅翁) 처소에서 술을 마시며 전날에 지은 수문(壽文)에 대하여 이야기하였는데, 그것이 결코 창 참군(昌參謀)의 붓이 아니라 도리어 그 영애(令愛)의 작품이라 하더이다. 이것이 나의 애재(愛才)하는 마음을 움직여, 그와 혼인을 맺어 그 영애를 소아(小兒)의 부인으로 삼고자 하오. 만약 일이 이루어진다면 재주 있는 사내와 아름다운 여인이 함께 백설양춘(白雪陽春)을 읊조릴 것이니, 어찌 규중(閨中)의 아름다운 이야기가 아니겠소? 본진의 문벌(門楣)로서 두터운 빙폐(聘幣)를 아끼지 아니하고 예로써 청하며, 그 사이에 다시 어진 중매(仲媒)를 청하여 혼사를 이룬다면, 이루어지지 않을 리가 없을 것이오. 지금 본진이 염려하는 바는, 창 노인이 이미 이런 재색(才色)을 지닌 딸을 두었으니 스스로 마음에 두고 재주 있는 사위를 구하고 있을 터이오. 그 딸이 전날 지은 수문은, 본진이 비록 깊이 이해하지는 못하나, 듣건대 실로 매우 볼 만하다 하더이다. 그러나 소아는 평소 선생의 다듬음을 입었으니, 재주가 과연 어떠한지 알 수가 없소이다. 다만 설령 재주가 있다 하더라도, 과거(科甲)의 일이나 처리할 수 있을 것이오. 시문(詩文)과 잡학(雜學)에 이르러서는 아직 정미(精妙)하지 못할까 걱정이오. 만약 창 노인을 만났을 때 뜻밖의 요구가 있다면 어찌 응하겠소? 미리 방비하지 않을 수 없소. 선생이 본진을 위하여 계책을 내어 줄 수 있겠소?"
오추(吳趨)가 말하였다: "계책을 세울 것도 없습니다. 영공랑의 재주는 문자(文字)로 논하건대 실로 옥당(玉堂)이나 금마(金馬)에도 양보하지 않습니다. 시사(詩詞)에 이르러서는 문인의 여사(餘事)로서, 영공랑은 실로 힘쓰기를 부끄러이 여기는 것입니다. 하물며 시사는 문장과 달라서, 문장은 날로 새로워지는 묘(妙)가 있어 나올수록 더욱 기이하지만, 시사는 다만 꽃이나 풀이니 묵은 말을 훔쳐다 이리저리 꿰맞추고 쌓아 사람의 이목을 현혹시키는 것뿐입니다. 만약 창 소저(昌小姐)가 시재(詩才)가 높음을 자부하여 반드시 영랑(令郞)의 작품을 보려 한다면 그리 어렵지 않습니다. 다만 만생이 고인(古人)의 가장 경발(警拔)한 구절을 가져다 동쪽 것을 서쪽에 갖다 붙이는 식으로 몇 수를 꾸며 내겠습니다. 다시 영공랑의 좋은 문장 몇 편을 보내어 가르침을 청하면, 그의 마음을 복종시키지 못할 리가 없습니다. 이 단단한 인연은 틀림없이 손쉽게 이루어질 것입니다." 상용이 듣고 크게 기뻐하며 말하였다: "선생에게 이런 높은 식견과 기묘한 생각이 있으니, 내 무엇을 근심하리오." 그리고 작별하고 안으로 들어갔다. 바로 이러하였다:
밝은 데서는 시사(詩詞)로 가짜를 진짜로 삼고,
어두운 데서는 문장(文章)으로 가짜를 진짜로 삼는도다.
학생이여, 참된 학문 없음을 탓하지 마라,
청하여 온 선생이 바로 가짜 사람이로다.
상용이 며칠이 지나 청첩(請帖) 두 장을 써서, 사람을 보내어 주 총병(周總兵)과 창 참군(昌參軍) 두 사람을 자리에 초청하였다. 심부름꾼이 명함을 가지고 주 총병 처소에 가서 전달하였다. 주중문(周重文)이 청첩을 보고 심부름꾼에게 말하였다: "전날 노야(老爺)께서 여기 계실 때는 그냥 편한 자리였거늘, 노야께서 이처럼 마음을 쓰시어 다시 나를 청하시니 거절하기도 어렵소. 내일 우리 노야와 창 나리가 함께 가겠소." 심부름꾼이 돌아간 뒤, 주중문은 즉시 사람을 시켜 상용의 청첩을 창전(昌全)에게 전하였다.
이튿날, 창전(昌全)은 주중문이 허락하였으므로 감히 사양하지 못하였다. 즉시 주중문과 함께 말을 타고 왔다. 얼마 지나지 않아 도착하니, 상용이 이미 아들을 데리고 사아(私衙) 안으로 맞아들였다. 다 함께 만나 서로 인사를 나누고 감사를 표한 연후에 자리에 들었다. 상용이 말하였다: "마땅히 성대한 술자리를 베풀어야 하나, 우리는 지기(知己)끼리 마음을 터놓고 이야기하는 터라 그런 세속적인 격식을 차리지 않았소. 언짢게 여기지 마시오." 주중문이 말하였다: "전날은 바빠서 소회(所懷)를 다 못 풀었는데, 오히려 훌륭한 밥상만 폐를 끼쳐 실로 낯이 뜨거웠습니다."
세 사람은 자리에서 한동안 군무(軍務)를 이야기하고, 또 한동안 조정의 일을 이야기하였다. 모두들 술이 깊이 들었다. 상용이 말하였다: "소제(小弟)가 전날 돌아와 소아(小兒)와 함께 창 소저의 문장을 자세히 읽어 보았는데, 그 묘함을 말로 다 할 수가 없어, 당금(當今)에 견줄 이가 없다 하겠소. 소제의 뜻은 소아로 하여금 그 뜻을 본받아 한 편을 모방하여 경모(景仰)의 뜻을 펴게 하고자 하였는데, 소아가 기어이 붓을 대려 하지 않으니, 주옥(珠玉)이 앞에 있어 스스로 부끄러워하기 때문이라 하더이다." 창전(昌全)이 연이어 겸손하게 말하였다: "소녀의 외롭고 천박한 학문이 다만 낙서(落書)나 할 뿐입니다. 다행히 욕되게 하지는 않았으나, 생각할 때마다 속으로 부끄러움을 이기지 못하거늘, 어찌 감히 노대인(老大人)과 영공자(令公子)의 이런 정중한 대접을 받겠습니까." 주중문이 말하였다: "영공랑은 영준(英俊)한 재사(才士)로서 자연히 천인(天人)을 관통하는 학문을 지녔습니다. 소제가 한 번 보고 즉시 비범함에 놀랐습니다."
상용이 말하였다: "소아가 비록 타고난 바탕이 우매하오나, 다행히 날카로운 뜻으로 고생스럽게 읽었소이다. 문장(文章) 한 도리에 관해서는 제가 비록 알지 못하나, 왕왕 아는 이들의 칭찬을 받음을 보고 부질없이 기뻐하였소이다. 다만 이 곳에 문종(文宗)이 이르지 않아 소아가 매매(每每) 억울함을 토로하더이다. 소제는 필경 그 학력(學力)이 어떠한지 모르겠소이다. 오늘 굳이 노인옹(老寅翁)과 창 참모 선생을 조촐한 자리에 청한 것은, 고로 소아에게 시중들게 하였으니, 실로 노인옹과 창 선생의 가르침을 구하고자 함이오." 주중문이 말하였다: "영랑(令郞)은 신준(神駿)하여, 묻지 않아도 천리마(千里駒)임을 알 수 있습니다."
창전(昌全)은 두 사람이 서로 번갈아 칭찬하는 것을 듣고, 끊임없이 상기(常奇)를 찬찬히 살펴보았다. 상용은 창전이 자주 자기 아들을 엿보는 것을 보고 속으로 매우 기뻐하여 또 말하였다: "소아는 고생스럽게 글을 읽을 뿐만 아니라 또한 한 가지 기이한 점이 있어 남과 다릅니다. 올해 열일곱 살이 되었건만 아직 혼인을 의논하려 하지 않고, 반드시 이름을 이루어 대등(大登)·소등(小登)의 소원을 이루고자 합니다. 소제가 때때로 그를 어리석은 아이가 어리석은 꿈을 꾼다고 웃습니다." 주중문이 말하였다: "예로부터 뜻이 있으면 일이 이루어진다 하였으니, 영공자는 참으로 헤아릴 수 없는 인물입니다." 상용이 말하였다: "오래전부터 창 참군이 반궁(泮宮)에 드신 적이 있다고 들었습니다. 지금 비록 그만두셨으나 문장의 준승(準繩)은 스스로 남아 있을 것입니다. 소아로 하여금 근래의 작품을 베껴 보내어 가르침을 청하게 하겠으니, 한두 가지 가르쳐 주시기를, 가르침을 아끼지 마시기를 바랍니다."
창전(昌全)이 듣고 부득불 말하였다: "영공랑은 웅재(雄才)가 하늘이 내리신 것인데, 만생(晩生)이 어찌 감히 부처 머리에 분뇨(糞尿)를 얹으리이까." 말을 마치고 술잔을 서로 권하여 흥을 다하였다. 그런 연후에 작별하고 말에 올라 돌아갔다. 바로 이러하였다:
가짜를 파는 것은 전적으로 칭찬에 달려 있으니,
재주를 자랑하되 부끄러움을 두려워하지 말지어다.
칭찬이 효과를 얻는다면,
눈 밝은 이도 고개를 돌리는 법이로다.
주중문(周重文)과 창전(昌全)이 술을 마시고 돌아온 것은 잠시 접어두고 이야기하지 않겠다.
이야기하건대, 단창(端昌)은 단거(端居)의 관아 안에서 이미 열여섯 살로 자라났다. 어느 날 문득 학중(學中)에서 무료하여, 아역(衙役)들과 함께 학중을 나와 한가로이 걷고 있었다. 보니 한 사람이 손에 책 한 권을 들고 걸어왔는데, 단창은 어떤 책인지 알지 못하여 가까이 다가가 빌려 보았다. 그 사람은 한 젊은 상공(相公)임을 보고 연이어 건네주어 보게 하였다. 단창이 보니 바로 진신록(縉紳錄)이었다. 그의 마음속 일을 건드리는 바람에 생각하였다: "봉(鳳) 소저의 부친 봉의(鳳儀)가 서울에서 벼슬을 하고 있으니, 필경 이 안에도 실려 있을 것이다." 그리하여 서울의 각 관아를 세세히 찾아보았으나, 봉의(鳳儀)라는 이름을 보지 못하였다. 마음속으로 놀라며 생각하였다: "혹 외임(外任)으로 승전(陞轉)한 것은 아닐까?" 다시 세세히 살펴보았으나 역시 보이지 않았다.
그래도 처음부터 다시 살펴보려 하였다. 그 사람이 말하였다: "소상공(小相公)은 어느 나리를 찾으려 하십니까?" 단창은 대답도 하지 않고 다시 다 보았으나 끝내 보이지 않았다. 이에 말하였다: "그가 서울에서 벼슬을 하는데, 어찌 이름이 실려 있지 않을까, 이 또한 기이한 일이로다." 그 사람이 말하였다: "소상공께서 모르시는 것이 있습니다. 관직(官職)의 승강(昇降)이 일정하지 않아, 혹은 한직(閑職)이거나, 혹은 죄를 논하여 죽이거나, 혹은 군배(軍配)·유도(流徒)가 되기도 하여, 일 년에 몇 번씩 바뀌니 어찌 일정하겠습니까. 저는 전문으로 조보(朝報)를 전달하는 사람입니다. 소상공께서 어느 나리를 찾으시는지, 저에게 물으시면 곧 알 수 있습니다." 단창이 어쩔 수 없이 말하였다: "나는 친척 봉의(鳳儀)를 찾고 있소." 그 사람이 말하였다: "이 봉의는 서울을 떠난 지 오래입니다." 단창이 급히 물었다: "혹 치사(致仕)하고 귀가한 것은 아닙니까?" 그 사람이 말하였다: "어디 치사(致仕)입니까. 조정에 죄를 지어 오래전에 이미 가권(家眷)이 모두 변방 밖으로 유배 보내어졌습니다."
단창은 홀연 가권이 모두 유배 보내어졌다는 말을 듣고, 놀라서 냉한(冷汗)이 줄줄 흘렀다. 부득불 다시 물었다: "형씨(兄氏), 이 소식이 사실입니까?" 그 사람이 말하였다: "우리는 전문으로 조보(朝報)를 관장하니, 어찌 사실이 아닐 리가 있겠습니까." 진신록을 돌려받아 곧 떠나갔다. 단창은 사실이라는 말을 듣고 소저를 생각하니, 슬픔을 억누를 수가 없었다. 온몸이 녹아내리는 듯하여 걸을 수가 없었다. 이에 아역에게 말하였다: "내 잠시 몸이 불편하니, 한가로이 걷지 않겠다."
곧 관아로 돌아와 서방(書房)으로 들어가 멍하니 앉아 조용히 생각하였다: "어찌하여 우리 두 사람의 인연이 이토록 박하여 거듭 마장(魔障)을 만나는가! 하늘이 이미 우리를 단원(團圓)시키지 않으신다면, 어찌 애당초 서로 알지 못하게 하지 않으셨는가? 이미 우리 두 사람을 만나게 하여 정이 깊어지게 하셨으면, 어찌 또 우리 두 사람을 이리도 뒤엎고 뒤집어 놓으시는가? 생사(生死)를 알 수 없고 만날 방도도 없으니, 나는 남쪽에 있고 그대는 북쪽에 있어 구사일생(九死一生)이로다. 이것이 무슨 뜻인가? 혹 이 단단한 인연이 끝내 바랄 수 없는 것인가?" 또 생각하였다: "봉 소저(鳳小姐)는 아름다운 꽃이요 가냘픈 버들 같으니, 유연(柔嫩)한 자태가 깊은 규방의 금옥(金屋) 같은 곳에 간직되어 있어도 오히려 견디기 어려울 터인데, 지금 일순간에 풍상(風霜)을 무릅쓰고 멀리 변방을 돌아다니며, 변새(邊塞)의 쓸쓸한 곳에서 눈을 들어도 친척이 없어 상심한들 누구에게 말하리오? 자연히 유장(柔腸)이 寸斷되고 깊은 한(恨)이 천단(千端)이 될 터이니, 어찌 허리가 여위고 옥 같은 얼굴이 상하는 것을 면하겠는가. 봉 소저가 이미 한 몸이 이러하거늘, 나 단창(端昌)은 또 이 목숨을 무엇에 쓰리오? 하물며 봉 소저의 정의(情義)가 매우 깊으니, 내가 그를 생각하는 것처럼 그도 나를 생각하지 않을 리 없다."
단창(端昌)이 이에 생각이 미치자, 눈물이 흘러내리는 것을 참을 수가 없었다. 하인이 저녁밥을 들여왔으나 그는 끝내 먹지 않고 옷을 입은 채로 쓰러져 잠들었다. 초경(更)이 넘어 잠들었는데, 보니 하늘 가득 달빛이 창으로 비쳐 들어왔다. 단창이 생각하였다: "내 어찌 일어나 이 달빛을 향하여 한 번 빌어 기도하지 않으리오." 드디어 일어나 뜰로 나가 가만히 서안(書案)을 옮기고, 화로 안이 아직 따뜻한 것을 보고 즉시 향을 더 피우고, 깊이 달빛을 향하여 절하며 빌었다: "항아(嫦娥)여, 항아(嫦娥)여, 그대는 광한궁(廣寒宮)의 선녀(仙女)로다. 설령 나 단창(端昌)이 동서로 떠도는 것을 돌보지 않는다 해도, 봉 소저가 변방에서 유리(流離)하는 고초는 가엾이 여겨야 하리라. 속히 고향으로 돌아갈 수 있게 하시어, 우리 두 사람이 단원(團圓)할 땅이 되게 하여 주소서."
기도를 마치고, 단창은 달빛이 매우 아름다운 것을 보고 달 아래에서 거닐었다. 또 처음에 소저와 맹세를 맺을 때도 역시 같은 달이었음을 생각하였다. 옛날에는 우리 두 사람을 쌍으로 비추더니, 오늘은 나 홀로 외롭게 비추는구나. "그대가 여기서 나를 비추니, 또한 가서 그를 비추지 않는다고는 할 수 없으리라. 이미 나를 비추는 수고를 하는 바에야, 어찌 우리 두 사람을 가엾이 여겨 각자의 마음속 이야기를 전해 주지 않아, 내가 그대의 깊은 은혜에 감사하게 하지 않으시는가?" 말하고 생각하고 나서, 다시 달을 향하여 절하였다. 벌써 달 그림자가 서쪽으로 기울어 오경(五鼓)이 다 되어 있었다. 단창은 무료하기 그지없어 부득불 침상에 올라 외롭고 처량하게 잠들었다. 문득 봉 소저(鳳小姐)가 서방으로 걸어 들어와 단창을 향하여 웃으며 말하였다: "오라버니, 내 왔어요." 단창이 보고 크게 기뻐하며 급히 일어나 말하였다: "오늘에야 내 좋은 인연이 이루어지는구나." 막 이별 후의 고정(苦情)을 이야기하려 할 때, 홀연 닭 울음소리에 잠이 깨니, 단창은 여전히 침상에 있었다. 문득 한숨을 쉬며 말하였다: "금계(金雞)가 원망스럽도다, 이제 나더러 어디 가서 찾으라는 말인가?" 꿈속에서 소저의 아름다운 얼굴을 다시 떠올리며 한 번 더 그려보고자 하였으나, 어찌 된 일인지 머리는 도끼로 쪼개는 듯하고 온몸에 열이 올라 어지럽고 멍하여 자는 것도 아니고 깨어 있는 것도 아니었다. 바로 이러하였다:
인생에서 가장 괴로운 것은 상사(相思)이니,
은밀한 아픔과 사사로운 고통은 오직 스스로만 아는 것이로다.
영리한 마음이 모두 꿰뚫어 안다 말하지 말라,
정(情)에 관계되는 일이 이에 이르면 또한 어리석어지는 법이로다.
이튿날이 되어 단창(端昌)은 밥 먹을 때가 지나도록 잠을 잤다. 관동(館童)이 오래 자는 것을 보고 부득불 와서 재촉하였다. 보니 단창의 얼굴이 발갛게 달아오르고 귀가 붉어져서 얼버무리며 대답을 못 하였다. 관동이 급해져서 쏜살같이 노야(老爺)와 마님께 달려가 알렸다. 단거(端居)와 이씨(李氏)가 연이어 급히 서방으로 들어와 살펴보니, 단창이 자면서 물음에도 대답하지 않았다. 즉시 의원(醫員)을 청하여 치료하였는데, 다행히 단창의 원신(元神)이 충족하여 손상을 입지 않았으므로, 한 달여를 조리한 뒤에야 비로소 회복하였다. 단창은 단거(端居) 부부의 은혜로운 양육하는 정이 깊음을 보고 생각하였다: "나는 지금 한 몸에 세 성(姓)의 깊은 은혜를 받았다. 바라는 것은 오직 이 한 몸뿐이다. 내가 만약 하루아침에 이 몸을 버린다면, 어찌 천지 사이의 큰 죄인이 아니리오. 봉 소저와의 좋은 인연도 현재는 비록 이산(離散)되어 있으나, 생각건대 그는 반드시 굳게 지킬 것이다. 세상의 일은 헤어졌다가 합치고 합쳤다가 헤어지는 법이니, 이 또한 이치상 반드시 있는 일이다. 차라리 아직 봉 소저가 이별할 때 한 말을 따라, 만약 공명(功名)을 얻게 된다면, 그때에는 세 성(姓)의 은혜에 보답할 수 있고, 봉 소저가 떠도는 종적도 내 또한 찾을 수 있으리라. 이 시각에 부질없이 죽어서는 한 가지도 쓸모가 없다." 이로부터 마음을 다잡고, 굳게 마음먹어 글을 읽으며 과거 날짜를 기다렸다. 바로 이러하였다:
앞날을 생각하여 스스로 죽기를 각오하였다가,
뒷날을 생각하고서야 비로소 일을 이루는 것이 귀함을 알았도다.
만약 일을 이루고 뜻을 얻으려 한다면,
이 가운데 오묘한 경지는 곧 공명(功名)이로다.
이야기하건대, 단거(端居)의 몇몇 문생(門生)이 서울에서 연이어 과거에 합격한 뒤 모두 각각 사림(詞林)에 들어갔다. 단 노사(端老師)의 감상(鑒賞)이 틀리지 않은 힘을 감사히 여겨 서로 상의하고, 다 함께 힘을 써서 관리 선발을 맡은 이에게 사정을 밝혔다. 선발 시기가 되자 가만히 슬그머니 단거(端居)를 호광(湖廣) 양양부(襄陽府) 의성현(宜城縣) 지현(知縣)으로 선발시켰다. 며칠이 되지 않아 신유현 학중(新喻縣學中)에 소식이 전해지자, 단거는 속으로 생각하였다: "나는 공생(貢生)으로서 이 학중에 있으면 족하다. 지금 또 서울에 아는 이도 없고 나 또한 연줄 닿을 힘도 없는데, 홀연 이런 좋은 승진을 얻었으니, 실로 황상(皇上)의 은혜와 조상의 도움이 끝이 없음을 감격해할 따름이다." 이에 보고(報告)를 가져온 이를 보내고, 또 반 달이 지나지 않아 이미 의성현(宜城縣)의 아역(衙役)이 맞으러 왔다. 이번 영접은 지현(知縣)의 기상으로서 전과 크게 달랐다. 단거(端居)는 이에 가권(家眷)을 데리고 길을 떠나 부임하였다. 단거가 부임한 뒤 정사(政事)를 처리하고 민심(民心)을 체찰하여, 맑기가 물과 같았다. 백성들이 기뻐하며 복종하지 않는 이가 없었다. 이는 잠시 접어두고 이야기하지 않겠다.
이야기하건대, 상용(常勇)이 주중문(周重文)과 창전(昌全)을 청한 뒤, 주중문이 입에 가득 자기 아들을 칭찬하는 것을 보고 또 창전이 정성스럽게 주목하는 것을 보고, 기쁨을 이기지 못하였다. 이 혼사(婚事)가 십분 이루어질 것 같다 생각하였다. 이에 오추(吳趨)를 불러 상기(常奇)가 평소에 지은 문장을 좋은 것만 골라 몇 편 베끼게 하여, 창전에게 보내어 그가 그 재주에 탄복하게 하려 하였다. 오추는 입에 가득 응낙하고 감히 게을리하지 않아, 이에 각판된 문장(刻文) 중에서 이름난 좋은 문장을 몇 편 골랐다. 또 상기가 필사(筆寫)하는 것이 능숙하지 못할까 염려하여, 솜씨 좋은 이를 구하여 대신 단정하게 쓰게 하였으니, 모두 열다섯여섯 편으로 참으로 편마다 금수(錦繡) 같아 매우 득의하였다. 모두 상기의 이름을 써 넣고 상 총진(常總鎭)에게 올리며 말하였다: "이 몇 편의 문장은 실로 영공자의 가작(佳作)으로서, 참으로 비단 같은 마음과 수놓은 입이요, 종이 가득 아름다운 글이옵니다. 원수(元首)를 빼앗을 솜씨로 한 가인(佳人)을 얻는 것을, 소생이 그 이루어짐을 눈앞에서 보겠습니다."
상 총진이 크게 기뻐하며 즉시 봉하게 하여 사람을 보내어 전달하게 하였다. 심부름꾼이 주 총진(周總鎭) 관아로 들어왔다. 주중문(周重文)이 뜯어보니 상 총진의 아들의 몇 편 문장으로서, 창 참군에게 보내어 살펴보게 하는 것이었다. 주중문은 이에 직접 창전(昌全)을 찾아가 말하였다: "상 인옹(常寅翁)이 선생이 문사(文士)임을 알고, 이제 그 공자(公子)의 문장을 보내어 가르침을 청하니, 선생은 자세히 비평을 더해 주시면, 선생이 문장을 아는 것을 보여 줄 수 있겠습니다."
창전(昌全)이 받고 감히 사양하지 못하여, 이에 문장을 서방(書房)으로 가져가 자세히 읽어 나갔다. 과연 편마다 노련하고 뛰어났다. 이에 속으로 생각하였다: "내 전날 그 아들이 젊고 성실함을 보고 그런가 보다 하였다. 그러나 상 총진이 너무 자랑한다 여겨 다만 아비가 자식을 너무 사랑하는 것이려니 하였는데, 뜻밖에 그 가슴속에 과연 이러한 문재(文才)를 지녔으니, 이후 앞길은 진실로 헤아릴 수 없구나." 또 생각하였다: "내 딸아이가 지금 비녀 꽂을 나이가 되었으니, 만약 훗날 이와 같은 재인(才人)을 사위로 맞이한다면, 나 또한 근심이 없겠다." 이에 다시 자세히 읽어 나가며 매우 득의하여 손에서 놓기를 아까워하였다. 또 생각하였다: "재인은 만나기 어렵고 이 기회를 놓쳐서는 안 된다. 하물며 나는 이역(異域)을 떠돌고 있으니, 어디서 사람을 고르리오? 이 무관(武弁)들의 자질(子姪)들은 다만 강한 활과 큰 말이 그들의 본령(本領)일 뿐이다. 이런 문재(文才)를 지닌 아들은 실로 얻기가 쉽지 않다. 다만 그 두 사람의 인연이 어떠할지 알 수 없구나." 또 생각하였다: "내 이제 먼저 이 문장을 가져가 딸아이에게 보여 평가하게 하자. 그가 어떻게 하는지를 보리라. 그가 만약 마음에 들어 한다면 내 자연히 방도가 있다." 즉시 추소(秋素)를 불러 말하였다: "가서 소저를 청하여 와서 말씀을 드리라."
잠시 후 소저가 왔는데, 물었다: "부친께서 어떤 일로 아이를 부르셨습니까?" 창전이 말하였다: "내 상 총병이 그 아들의 몇 편 문장을 보내어 나에게 비평을 하라 하였다. 내 오랫동안 붉은 붓을 잡지 않았더니, 자연히 가시덤불 같아 일시에 자세하고 정확하게 하기 어렵구나. 아이가 나를 위하여 한 번 보아라. 과연 볼 만하거든 아이가 좋은 평을 더하여 그가 내 문장 아는 것을 복종하게 하여라." 소저가 과연 상기(常奇)의 문장을 하나하나 읽어 나갔다. 다 읽고 소저가 말하였다: "이 몇 편의 문장은 비록 모두 과거에 올라 공명을 떨칠 재주를 갖추었고, 편마다 각각의 묘(妙)함이 있으나, 필묵(筆墨)이 들쭉날쭉하고 성정(性情)도 제각각입니다. 한 손에서 나온 것 같지 않으니, 혹 도습(盜襲)의 폐단이 있는 것은 아닌지요?"
창전(昌全)이 듣고 속으로 놀랐다. 이에 말하였다: "아이가 보는 것이 틀리지 않고 논하는 것도 옳다. 그러나 재인의 학문이 깊고 높은 경지에 이르고 필력(筆力)이 활발한 때가 되면, 왕왕 재주를 뽐내어 살아 있는 용과 활발한 범 같으니, 때로는 봄바람에 꽃이 만발하고 버들이 드리운 것 같기도 하고, 때로는 고목(枯木)에 겨울 까마귀처럼 쓸쓸하기도 하거늘, 어찌 한 사람이 일관되게 잡아두기만 하겠느냐? 이 또한 있을 수 있는 일이다. 아이도 너무 의심하지 마라." 소저는 부친이 이렇게 논하는 것을 보고 더 이상 변론하기 어려워, 부득불 말하였다: "부친의 견해가 또 아이보다 높으시옵니다." 창전은 이에 붓을 들어 비평을 더하고 착실하게 칭찬하였다. 이튿날 즉시 사람을 보내어 상용(常勇)에게 돌려보냈다. 바로 이러하였다:
문장을 보는 데 각자 밝은 눈이 있고,
문장을 평하는 데 각자 깊은 마음이 있도다.
가짜로 진짜를 어지럽혀 감상(鑒賞)을 속이니,
지음(知音)이라 할까, 지음(知音)이 아니라 할까.
상용(常勇)은 창전이 문장을 돌려보낸 것을 보고, 또 문장 끝에 비평이 매우 칭찬하는 것을 보고, 기쁨을 이기지 못하였다. 이에 오추(吳趨)를 찾아가 말하였다: "소아(小兒)의 문장에 창 노인이 매우 탄복하였소." 이에 원래의 문장을 오추에게 건네주었다. 오추가 보니, 과연 편 끝에 착실하게 칭찬하는 비평이 있었다. 기뻐서 손발을 덩실덩실 춤추며 말하였다: "어떻습니까? 소생이 원래 영공자의 재주가 크게 늘었다고 하였는데, 이제 그가 보고서 과연 탄복하였습니다. 이제야 만생의 말이 틀리지 않았음을 아셨지요." 상용이 말하였다: "소아의 학문은 실로 선생이 이루어 준 것이오. 그 공이 작지 않으니, 두터이 보답할 것을 도모하겠소이다. 다만 이제 내게 한 가지 일이 있어 선생에게 한 번 행차해 주시기를 번거롭게 하고자 하니, 부디 거절하지 마시오." 오추가 즉시 두 손을 모아 읍하며 말하였다: "대인께서 어떤 일을 부탁하시는지 모르겠습니다." 상용이 이에 천천히 말을 꺼냈다. 이로 인하여 알 수 있으니:
파초(蕉)로 나눈 사슴의 꿈이요,
자두가 복숭아를 대신하여 쓰러지는 것이로다.
뒷일이 어떠한지 알지 못하겠는가? 다음 회를 보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