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년 회랑 — 중화 문화 이야기집

글자 크기

읽기 모드

제2장 비좁음

노경은 가마터를 자주 드나들 뿐 아니라, 올 때마다 거의 한나절을 보내는지라, 일상에 필요한 것들도 어느새 대부분 이곳으로 옮겨오게 되었다. 범양 노씨인 그가 차 한 잔을 마신다는 것은 그야말로 지극히 공을 들이는 일이었다. 차를 다리는 종이 곁에서 불을 피워 차떡을 뜨겁게 구운 뒤 재빨리 갈아 고운 가루로 체 치고, 화로 위의 물이 차츰 끓어오르면 순서에 따라 차를 달여냈다. 비 오는 날이면 장평 남매가 하던 일 가운데 흙을 이기고, 틀에 넣고, 틀에서 빼고, 이어 붙이고, 다듬고, 세부를 새기는 등의 일부는 실내로 옮겨야 했다. 그러면 안 그래도 넉넉지 않은 공간이 순식간에 견디기 힘들 만큼 비좁아졌다. 양쪽 사람들이 각자 제 일에 바빠, 때로는 오가는 사이에 몸을 비켜야 할 정도였다. 오직 노경 한 사람만이 할 일 없어 좀이 쑤셨다. 그는 때때로 장평 남매 곁으로 다가가 그들이 손에 든 일을 구경했는데, 그 또한 자못 흥미진진하게 볼 만했으나, 늘 남의 빛과 길을 가로막고 있는 탓에 이따금 "거치적거린다"는 눈총을 받기도 했다. 다만 월주 청자 찻사발에 담긴 색과 향과 맛이 모두 완벽한 차를 마실 수 있는 것이, 자기 남매가 몇 생을 걸쳐 쌓은 복이라 여기면, 그들의 눈총도 그저 그 정도에서 그치고 말았다.

애초에 장평이 처음으로 월주 청자를 받아 들었을 때는 흙투성이 손을 몇 번이고 씻은 뒤에야 겨우 청자 찻사발을 집어 들었건만, 노경이 대수롭지 않다는 듯 이렇게 말하는 것을 들었다. "찻사발이 더러워지면 씻으면 그만인 것을. 삼랑, 그리 조심스러워할 것 없소."

그 뒤로 그는 그저 대충 손을 씻고는 월주 청자 찻사발을 집어 들어 단숨에 들이켜곤 했다. 노경은 늘 고개를 저으며 놀리듯 말했다. "삼랑이 그리 소처럼 벌컥벌컥 마시니, 월주 청자에도, 이 좋은 차에도 미안한 일이 아니오? 참으로 풍류를 모르는구려." 그러나 훗날 노경 자신도 차가 다 우러나기를 기다리지 못할 때면 청자 찻사발에 장을 담아 마시곤 했고, 그럴 때면 장녕은 도리어 당신이야말로 풍류를 깨뜨리는 것 아니냐고 되받아쳤다.

그러면 셋은 서로를 마주 보며 웃곤 했다.

작업장은 비좁았지만 그 안에는 큰 편안함이 있었다. 노씨 집안의 습관과 규범이 이곳에도 스며드는 한편, 새로이 생겨나는 방식도 있었다. 월주 청자와 평민들이 매일 마시는 장이 참으로 묘하고도 절묘하게 하나로 어우러졌다. 날이 갈수록 그 어색함마저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그뿐만 아니라 노경은 그림까지 그리기 시작했다. 붓과 먹, 단청 도구까지 서재에서 통째로 "옮겨"왔다. 그다지 크지도 않은 네모난 탁자 위에 붓, 먹, 종이, 벼루, 안료가 한 줄로 늘어서서, 찻사발과 장 주전자와 나란히 자리를 다투었다. 흥이 일 때마다 그는 이 비좁은 방 안의 풍경을 그려냈지만, 그럴 때마다 어김없이 장녕의 항의를 받았다. 자신을 너무 못생기게 그렸으니, 어찌 재림한 서시라 할 수 있겠느냐는 것이었다.

그러나 참으로 서시를 닮은 사람은 오히려 노경 자신이었다. 그는 어려서부터 심장 병을 앓아왔는데, 서시가 눈살을 찌푸리고 가슴을 움켜쥐던 그 모습이 바로 노경의 몸에서 그대로 재현되곤 했다. 그가 문득 눈살을 찌푸린 채 말을 멈추고 손으로 가슴을 누르면, 대개는 심장 통증이 또다시 발작한 것이었다. 하인들은 황급히 달려와 그를 살폈고, 장평 남매도 그제야 하인들이 말하던 "공자의 몸이 좋지 않다"는 말의 참뜻을 비로소 깨달았다.

그러나 노경은 이를 악물고 버텨내고는, 다시 아무 일 없었던 사람처럼 즐거이 차를 마시고 그림을 그리고 이곳저곳에서 남의 일을 거들먹거리며 훼방을 놓았다. 심지어 뒷간에 갈 때조차 하인들이 앞뒤로 둘러싸니, 그야말로 떠들썩하기 그지없었다. 아마도 저희 공자가 뒷간에서 갑자기 발작을 일으켜 행여나 뒷간 구덩이에 떨어지기라도 할까 두려워서였을 터, 그리하여 이토록 요란스럽게, 온 세상이 다 알 만큼 대대적으로 벌어지곤 했다.

장평 남매는 어쩔 도리가 없어 그저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 뒷간 한 번 가는 데에 경조윤의 순행 같은 위세를 부릴 수 있는 이는, 넓은 천하를 통틀어도 저 범양의 노칠랑(盧七郎)밖에는 없을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