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장 비 오는 날
창밖에는 비가 신나게 쏟아지고 있었다. 노경(盧璟)은 하인들이 차를 달이는 틈을 타 또다시 월주 청자(越州靑瓷) 찻사발을 집어 들고 장(漿)을 한 사발 따라 마셨다. 하인들도 이제는 대수롭지 않게 여겨 더는 말리지 않았다.
한 해 남짓 전, 노경은 일부러 장안(長安) 서시(西市)까지 나가 호인(胡人)의 손에 있던 유리 그릇을 사들였다. 돌아오는 길에 갑자기 먹구름이 몰려들더니 느닷없이 폭우가 쏟아졌다. 하인들은 몸이 약한 주인이 비바람 속을 무리해서 갈 수는 없다고 여겨 수레를 멈추고 가마터로 들어가, 저희 공자께서 잠시 비를 피하게 해주실 수 있겠느냐고 물었다. 가마 주인은 밖에 퍼붓는 큰비가 참으로 놀랍도록 거센 것을 보고는 두말없이 흔쾌히 승낙했고, 우산까지 몇 자루 빌려주었다.
가마 밖의 화려한 수레에서 달빛처럼 흰 둥근 깃 포삼(袍衫)을 걸친 귀티 나는 공자가 내려섰다. 빗발이 아무리 거세어도, 우산 아래를 걷는 그 몸가짐의 우아함과 맑은 기품은 조금도 덜하지 않았다.
두 명의 종이 우산을 받쳐 들고, 빗물이 그에게 튈까 두려워 오는 내내 빈틈없이 감쌌다. 안으로 들어와 장평(張平)을 보자 노경은 공손히 예를 갖추어 말했다. "비를 피하게 해주시니 주인장께 깊이 감사드립니다. 저는 노경이라 하며, 자는 자화(子和), 항렬은 일곱째입니다."
가마 주인 장평은 눈앞의 공자가 예의가 지극하고 풍채가 준수한 것을 보았다. 자세히 살펴보니 그 포삼은 수수해 보여도 옷감이 가볍고 부드러우며 짜임이 촘촘하여, 한눈에도 예사 물건이 아니었다. 공자가 스스로 노씨라 밝힌 데다 차림새마저 이러하니, 혹 범양 노씨(范陽盧氏)가 아니겠는가?
장평은 다소 놀랐으나 곧바로 답례하며 말했다. "공자께서 과분한 말씀을 하십니다. 손 한 번 쓴 일에 지나지 않으니 마음에 두실 것 없습니다. 저는 장평이라 하고 항렬은 셋째이며, 누이 장녕(張寧)과 함께 이 가마에서 명기(明器)를 굽고 있습니다. 누추한 곳이오나 꺼리지 않으신다면 편히 계시다가 비가 그치기를 기다리시지요."
"저희가 이미 크게 폐를 끼치고 있습니다. 진심으로 감사할 따름인데, 어찌 감히 꺼리겠습니까?"
그것이 두 사람이 처음 만났을 때 주고받은 말이었다. 지금 떠올리니 저도 모르게 입가가 살며시 올라갔다.
당당한 범양 노씨가 우연한 인연으로 예천방(醴泉坊)의 명기 가마터에 발을 들이다니. 그것도 명기 때문이 아니라, 오직 비를 피하기 위해서였다.
장평은 평소 마시는 장을 내오며 조심스럽게 노경에게 물었다. "이것은 저희가 갈증을 달래려 마시는 장입니다. 공자께서 목이 마르신지 모르겠으나, 몇 모금 드셔보시겠습니까?"
"좋지요. 방금 서시까지 다녀온 참이라 과연 목이 좀 마릅니다. 그럼 삼랑(三郎)께 장 한 사발 신세를 지겠습니다."
그 말을 듣고 장평은 얼른 거친 질그릇 사발을 가져다 장을 팔 할쯤 채워 노경에게 건넸다. 노경이 막 받으려 하자 하인이 황급히 그를 막았다.
"공자, 아니 되옵니다. 이렇게 조악한 것을 어찌 공자의 입에 대시겠습니까?"
"갈증을 달래는 물건일 뿐인데, 조악하다는 말이 어디서 나오느냐?" 노경은 분명 언짢은 기색이었다. 그는 거친 질그릇 사발을 받아 들고 우아하게 한 모금 들이켰다.
"과연 좋은 것이로군. 입안이 촉촉해지고 갈증이 가신다." 그의 눈이 반짝였다.
장평은 고개를 끄덕이며 웃음을 지어 보이고는 노경에게 편한 자리에 앉으시라 청했다. 방 안에는 네모난 탁자 하나에 긴 걸상과 둥근 걸상, 그리고 등나무 의자가 몇 개 놓여 있었다. 노경은 가까이 있는, 탁자에 붙은 긴 걸상을 골라 앉았다. 사발을 탁자 위에 올려두기에도 편하리라 여긴 것이다. 하인이 그 뜻을 알아채고 이내 소매로 걸상을 닦으려 하자, 노경은 또다시 언짢아졌다.
"걸상이 깨끗하여 먼지 하나 없거늘, 무엇 하러 그러느냐?" 그렇게 말하고는 하인을 물러나게 한 뒤, 스스로 포삼 자락을 살짝 추스르고 의젓하게 자리에 앉았다.
그때 장녕이 쟁반을 들고 안에서 나왔다. 쟁반 위에는 장이 담긴 주전자와 거친 질그릇 사발 몇 개가 있었으니, 하인들에게 나누어주려는 것이었다. 그녀는 먼저 쟁반을 탁자 위에 내려놓고 노경에게 예를 갖추어 인사했다. 고개를 숙이다가 노경의 신발이 젖은 것을 보고, 조금 전 하인들이 저희 공자의 몸이 좋지 않다고 하던 말이 떠올라 입을 열었다. "공자의 신발이 빗물에 젖었습니다. 먼저 신과 버선을 벗으시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아녕이 화롯불을 피워 집 앞 처마 아래 두겠으니, 따르는 분들께서 말리시면 감기에 드시지 않을 것입니다."
"아니…… 그럴 것까지야. 너무 예에 어긋나는 일이오." 노경은 그 말을 듣고 낯빛이 다소 붉어졌다.
"저희 같은 데에 무슨 법도가 그리 많겠습니까? 날이 더울 때면 오라비는 웃통을 벗고 도기를 굽는걸요! 맨발쯤은 아무것도 아닙니다." 장녕은 부드러운 말씨로 노경을 다독였다.
하인들은 이 말을 듣고 보물이라도 얻은 듯했다. 사실 그들 역시 젖은 신과 버선을 신은 공자가 감기에 들까 걱정하던 참이었다. 공자는 본래 몸이 약해, 몸이 튼튼하고 살가죽이 두꺼운 저희 같은 아랫사람과는 달랐다. 다만 예법에 막혀 있으니, 범양 노씨의 가풍 아래에서 어찌 그리 마음대로 할 수 있겠는가? 그리하여 속에만 담아둔 채 감히 권하지 못했던 것이다. 이제 낭자가 말을 꺼내주자 그들은 얼른 맞장구를 쳤다. "바로 그렇습니다. 공자, 어서 신과 버선을 벗으시지요. 저희가 처마 아래에서 말려 다시 신으시게 하면 될 일입니다."
이리하여 여럿이 입을 모아 권하는 통에 노경도 마침내 고개를 끄덕이고, 하인들이 신과 버선을 벗기도록 허락했다. 장녕은 화롯불을 피웠을 뿐 아니라 깨끗한 천까지 가져와, 하인들이 노경의 두 발을 닦아줄 수 있게 했다. 노경은 처음부터 끝까지 고개만 숙인 채 몹시 어색한 얼굴이었다……
그러나 지금의 그는 더없이 편안했다. 제 집에 있을 때보다도 오히려 더 편안할 정도였다.
범양 노씨 가문에서 사는 데에는 무엇 하나 부족한 것이 없었다. 오직 하나 부족한 것이 바로 '편안함'이었다. 그것이 지난 한 해 남짓 그가 부지런히 가마터를 드나든 이유 가운데 하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