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장 닮지 않았다
"닮지 않았다고?" 왕얼랑은 까닭 모를 화가 치밀었다. 그는 스승의 가르침을 한 치도 어김없이 따르며 한 획 한 획 정성을 다해왔는데, 어린 계집아이가 비천이 닮았는지 아닌지 어찌 안단 말인가?
"어디가 닮지 않았소?" 왕얼랑은 결국 소낭자를 놀라게 할까 두려워, 속의 불쾌함을 누르고 애써 부드러운 어조로 다시 물었다.
"표대(飄帶)도, 자세도, 기품도 모두 닮지 않았어요." 소낭자가 진지하게 대답했다.
"닮지 않은 걸 어찌 아시오? 또 어떻게 닮지 않았소?"
"저는 비천을 본 적이 있거든요!"
왕얼랑은 잠시 멍해졌다가 이내 깨달았다. 그녀의 친척 중에 비천을 그리는 화사가 있다면, 비천을 본 적이 있는 것도 이상할 게 없다고.
"화사마다 기법이 다 다르오. 사승(師承)을 따르기만 한다면 저마다 각기 다른 장점이 있을 뿐, 닮고 안 닮고의 문제는 없소." 왕얼랑도 진지하게 대답하며, 어리다고 해서 그녀를 소홀히 대하지 않았다.
"제가 말하는 건 그런 게 아니에요." 소낭자가 다시 단호하게 받아쳤다.
이때 왕얼랑은 다시 조금 언짢아졌다. 설령 다른 화사의 딸이라 해도 이렇게 말하는 것은 무례하기 짝이 없었다. 스승은 사주에서 손꼽히는 벽화사였고, 멀리 중원에서도 수많은 공양인들이 천 리 길을 마다 않고 사주까지 찾아와 벽화를 청하며 불에 대한 정성을 표했다. 이른바 "중을 보지 않고 부처를 본다"는 말처럼, 스승 같은 걸출한 분의 제자로서 비록 스승만큼의 신묘한 재주에는 미치지 못하더라도 그 가르침의 일부는 물려받았을진대, 이 소낭자의 눈에는 어찌 그리 하찮게 보인단 말인가?
막 그렇게 따지려는데, 소낭자가 몸을 일으켜 곧장 아래로 걸어 내려가는 것이 보였다.
"동굴 입구까지 따라오면 알게 될 거예요." 소낭자는 뒤도 돌아보지 않았고, 그 말은 어찌나 가볍게 들리던지 마치 거대한 동굴 전체에 삼켜져 버린 듯했다. 그녀가 내려가는 것을 직접 보지 않았다면, 왕얼랑은 자신이 잘못 들은 것은 아닌지, 어쩌면 소낭자가 애초에 말을 한 적조차 없는 것은 아닌지 의심했을 것이다.
그러나 더욱 놀라운 것은, 소낭자의 목소리만 가벼운 게 아니라 발걸음마저 가벼워서 발판이 조금도 흔들리지 않았다는 점이었다. 왕얼랑은 이 발판을 누구보다 잘 알았다. 그 자신도 발판 위를 걸으면 다소의 소리와 흔들림을 피할 수 없었다. 그런데 눈앞의 이 낯선 소낭자는 마치 발이 땅에 닿지 않는 듯 빠르면서도 안정적이었다. 별다른 수고도 없이 그녀는 능숙하게 땅으로 내려가 동굴 입구에 이르렀다.
과연 오랫동안 화사인 친척을 따라 석굴을 오르내린 아이였기에, 발판 위를 이토록 힘들이지 않고 걸을 수 있고, 어두컴컴한 동굴 안에서도 재빨리 길을 찾을 수 있는 것이리라.
왕얼랑 자신도 어째서 낯선 소낭자를 따라 동굴 입구까지 걸어왔는지 잘 알지 못했다. 그는 잠시 눈부신 햇빛과 살랑이는 맑은 바람에 적응해야 했다.
"보세요." 소낭자는 자신이 걸치고 있던 피백(披帛)을 벗어 바람에 살며시 나부끼게 했다.
"비천이 하늘에서 날며 춤출 때는, 피백이나 옷자락도 바람을 따라 움직여야 마땅하지요."
왕얼랑은 바람에 나부끼는 피백을 멍하니 바라보다가 다시 눈앞의 소낭자를 바라보았다. 머릿속이 순간 아득해졌다. 사막의 햇빛은 유난히 뜨거워 잠시만 더 쬐어도 따가움이 더해지곤 했는데, 그것이 소낭자의 몸에 내리쬐자 오히려 그녀 전체를 유독 환하게 비추는 듯했다. 그는 소낭자가 보여주고 싶었던 것이 바람에 나부끼는 피백이지 그녀 자신이 아니라는 것을 하마터면 잊을 뻔했다. 그래서 그는 슬며시 쓸데없는 시선을 거두고 피백의 율동을 느끼는 데 애썼다.
어쩌면 오랫동안 어두운 동굴 안에서 그림을 그려온 탓에, 그는 자연의 바람이 지닌 힘과 아름다움을 잊고 있었던 것일까. 피백 한 자락이 바람에 살아난 듯 움직이는 모습에, 그는 완전히 넋을 잃고 바라보았다.
말없이 왕얼랑은 다른 동굴들을 돌아다니며 다른 화사들이 그린 비천을 찬찬히 살펴보았다. 한참을 생각에 잠겼다가 다시 말없이 자신의 발판으로 돌아오니, 소낭자는 어느새 원래 앉아 있던 자리에 다시 앉아 있었다. 소낭자는 그를 한 번 흘낏 보았을 뿐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고개를 돌려 다시 조용히 다리를 흔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