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개 속의 연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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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부자간의 대결

"아누, 소이, 그만두어라." 하늘 가득 오색 상서로운 구름이 모여드는 순간, 아누의 손에 들린 칠채유광검이 문득 튕겨져 나가며 손바닥에 은은한 통증이 일었다. 자연이 표연히 나타나 손가락으로 결을 맺어 거문고 줄을 향해 튕기니, 소이는 어쩔 수 없이 손을 놓아야 했다. 아누가 눈여겨보니, 자신의 칠채유광검을 튕겨 낸 것은 바로 자연의 용어검이었다.

"함부로 굴지 마라." 자연은 아누를 와락 붙잡아 끌어당겨, 두 사람이 나란히 천군 앞에 무릎을 꿇었다. 아누는 이를 원치 않아 몸부림치며 일어서려 했지만, 두 발이 천근만근 무겁게 느껴졌다. 알고 보니 그녀는 이미 자연에게 정신주에 걸려 있었으니, 아무리 다급하게 벗어나려 해도 조금도 소용이 없었다.

"소이도 이리 오너라."

방금 자연에게 밀려 거문고 줄에서 손을 뗄 수밖에 없었던 소이는, 이번에는 강대한 법력에 이끌려 어찌 된 영문인지 미처 알아차리기도 전에 이미 천군 앞에 무릎을 꿇고 있었고, 온몸을 조금도 움직일 수 없었다.

"본군의 착한 아들이 수행이 늘어, 이제는 본군이 친히 펼친 결계마저 풀어낼 수 있게 되었단 말이냐?" 천군은 자연이 자신이 특별히 그를 위해 펼쳐 놓은 결계를 깨뜨린 것을 보고 다소 놀란 기색을 보였다.

"부군께서 친히 펼치신 결계라 소자가 풀기 쉬웠습니다. 아누가 천정에 온 것을 소자는 진작 알고 있었으나, 부군의 수행이 워낙 높으신지라 이제야 겨우 풀 수 있었습니다."

"설아의 딸 이름이 아누란 말이냐?" 천군이 물었다. 그는 오늘에야 비로소 설아에게 이토록 빼어나고 매서운 딸이 있었음을 알게 된 것이었으니, 이 한바탕 싸움이 아니었다면 여태 몰랐을 일이었다.

"그렇습니다." 자연이 공손히 두 손을 모으고 눈을 내리깔았다.

"부군께 아뢰옵니다."

"말해 보아라."

"이번 두 종족 간의 전쟁은 그 발단이 소자와 대황자비 신아에게 있습니다. 신아는 대황자비의 몸으로 체통도 없고 법도도 없이, 소자가 아누를 마음에 두고 있음을 알고는 질투심에 사로잡혀 아수라왕 앞에서 부채질을 하며 그를 노엽게 만들어, 두 종족 사이에 분쟁을 일으켜 소자와 아누의 관계를 깨뜨리려 하였습니다. 소자가 신아에게 경고하였으나 신아는 끝내 미혹을 깨닫지 못하고 마침내 이 지경에 이르렀습니다. 소자가 아뢰는 말씀은 하나하나 모두 사실이니, 부군께서는 자세히 살펴봐 주시옵소서."

"아누는 골육을 잃은 슬픔으로 심신이 어지러워져 부군께 손을 쓰게 되었으니, 이는 큰 불경이라 할 것이나 그 사정은 헤아릴 만합니다. 잘못은 소자와 신아에게 있습니다. 소자가 신아와의 문제를 제대로 처리하지 못하여 그 화가 두 종족에까지 미친 것이니, 이는 저 두 사람과는 무관한 일입니다. 부군께서는 부디 그 두 사람을 용서하여 주시고, 죄를 물으신다면 소자가 기꺼이 벌을 받겠습니다." 말을 마친 자연은 겸손히 머리를 조아렸다.

천군은 그 말을 듣고 미간을 찌푸리며 노기를 띠었다.

"신아가 이토록 방자한 짓을 저질렀단 말이냐?" 천군은 몸을 숙이며 다시 물었다. "만약 내가 저 두 사람을 용서하고 싶지 않다면 어찌하겠느냐?"

"두 사람 모두 아직 세상 물정에 어두워 일 처리에 신중함이 부족했을 뿐입니다. 부군께서 영람과 영항도 용서해 주셨으니, 이 두 어린것들을 굳이 곤란하게 하지 않으실 줄로 압니다. 소이는 모로께서 친히 가르치신 마지막 제자이니, 중을 보지 않아도 부처의 낯을 보아서라도 부군께서는 필시 모로의 체면을 저버리지 않으실 것입니다. 아누의 잘못에 대해서는 소자가 온전히 짊어지겠사오니, 소자가 먼저 화근인 신아를 벌하고 난 뒤, 그다음은 오로지 부군의 처분에 맡기겠습니다." 그는 천천히 몸을 일으켜 돌아서서, 하나둘 다시 모여드는 이들을 향해 낭랑히 소리쳤다. "신씨 가문의 어른들과 신육 신군을 모셔 오라."

방금 아누가 남천문에 들어왔음을 알게 되자, 자연은 천군이 펼쳐 놓은 결계를 풀면서 한편으로는 상수에게 명하여 신씨 가문 관계자들을 진법 부근에 대기시키도록 하였다. 신육은 진작부터 신아가 무슨 짓을 저질렀는지 알고 있었고, 방금은 신아가 대전하께서 마음에 둔 여인을 죽이려 드는 것까지 제 눈으로 직접 보았으니, 더는 할 말이 없었다. 대황자비의 몸으로 이미 완전히 그 자격을 잃은 것이었다. 부모와 족장은 신아를 아끼는 마음이 있었지만, 그녀가 이토록 미쳐 날뛰어 오늘 같은 참담한 일을 불러일으킨 것을 눈앞에서 보고서야, 어찌 감히 더 무슨 말을 할 수 있으랴? 그들은 고개를 떨군 채 앞으로 나섰고, 얼굴에는 하나같이 부끄러운 기색이 가득했다.

"대황자 자연이 이 자리에서 천계의 백성들에게 고하노라. 대황자비 신아는 비의 자리에 오른 지 오래되었으되 소생이 없었음에도 조금도 부끄러워할 줄 모르더니, 본전이 아수라 공주 아누를 마음에 두고 있음을 알고서는 도리어 질투심을 품어, 두 종족 사이에 전쟁을 일으키기를 서슴지 않아 피가 강을 이루고 곡소리가 들판을 뒤덮으며 온 세상이 폐허가 되게 하였다. 게다가 아누 공주가 애통함에 겨워 넋을 잃고 아무런 방비도 없는 틈을 타 등 뒤에서 몰래 습격하여 그녀를 죽음으로 몰아넣으려 하였다. 이 두 가지 큰 죄는 하나하나가 용서받을 수 없는 것이니, 체통도 법도도 없고 그 덕이 지위에 맞지 않아 이미 대황자비로 있을 자격이 없다. 이 순간부로 신아의 대황자비 자리를 폐하고, 황실옥보에서 그 이름을 지워 신씨 가문으로 돌려보낸다. 신씨 가문이 은밀히 신아의 부정한 일을 도운 것에 대해서는 본전이 잠시 추궁하지 않을 것이나, 앞으로 반드시 신아를 잘 가르치고 훈계하여 지난 허물을 씻도록 하라."

선포를 마치고 자연은 신씨 가문의 족장과 신육을 바라보며 물었다. "신씨 가문은 이의가 있는가?"

가슴이 아프고 애석하기 그지없었으나, 신아의 일에 대해 대전하께서 죄를 신아 한 사람에게만 물으신 것은 이미 관대한 처분이었고 신씨 가문에는 화가 미치지 않았으니, 이 자리에서 신씨 가문 사람들이 어찌 감히 이의를 내겠는가? 신육은 마음속으로 진작부터 알고 있었다. 신아의 성정으로 보아 비의 자리에서 폐해지는 것은 시간문제였을 뿐, 그동안은 대전하의 너그러움 덕분에 신아를 참아 낼 수 있었던 것이다. 이제 큰 화를 빚어냈으니 어찌 만회할 여지가 있으랴?

신아는 이때 이미 약려로 옮겨져 그 자리에 없었으니, 어쩌면 그 자리에 없는 것이 그녀에게 남은 마지막 자존심을 지켜 주는 셈이었는지도 몰랐다.

"대전하께 아룁니다, 신씨 가문은 이의가 없습니다." 신씨 가문 사람들이 말했다.

그 자리에 있던 사람들이 술렁이는 가운데 신씨 가문 사람들이 참담한 얼굴로 물러난 뒤, 자연은 몸을 돌려 천군을 마주하고는 관을 벗고 비녀를 풀며 몸에 지닌 옥패마저 끌러 바닥에 내려놓고는, 다시금 무릎을 꿇고 머리를 조아렸다. 한 갈래 검은 머리카락이 폭포처럼 그의 몸을 타고 흘러내렸다.

"화근인 신아를 처결하였으니, 소자는 이제 부군께 죄를 청하러 왔습니다."

천군은 마음속으로 흠칫 놀랐다. 이 맏아들은 평소 일을 하는 데 있어 늘 조급하지도 느긋하지도 않고 나아가고 물러남에 절도가 있었는데, 방금 그가 뭇사람 앞에서 선포한 그 한마디는 신아의 대황자비 자리를 폐한 것에 그치지 않고, 아누가 아수라 공주라는 신분과 그녀가 그가 마음에 둔 여인이라는 사실, 이 두 가지를 천족 전체에 알린 것이나 다름없었다. 이렇게 되고 보니, 그 자신이 아버지인 천군이라 해도 이제는 설아의 딸에게 함부로 다른 마음을 품기가 어려워졌으니, 그것은 명백히 자신의 친아들과 여인을 다투는 꼴이 되기 때문이었다.

본디 그는 삼계의 주인으로서, 삼계 안에서 감히 누가 그와 여인을 다투겠는가? 그해의 아수라왕을 제외하고는, 뜻밖에도 그가 정성을 다해 길러 내어 자랑스러워하던 맏아들이 또 있었단 말인가? 그의 맏아들은 겉으로는 공손히 물러나 가시나무를 지고 죄를 청하는 듯 보였지만, 실은 물러서는 척하며 나아가, 한 걸음 한 걸음 몰아붙이며 한 치도 양보하지 않고 있었던 것이다.

자연에게 대체 무슨 잘못이 있단 말인가? 이번 일에서 잘못한 사람은 신아인데, 그것이 자연과 무슨 상관이란 말인가? 그는 다만 이 일을 빌려 아누가 죄를 묻지 않게끔 힘써 지키고, 또 아누가 자신이라는 이 아버지의 후궁으로 들어오는 일이 없도록 힘써 막으려 했을 뿐, 그뿐이었다.

참으로 그의 착한 아들이로다!

그해 그는 친히 자연에게 훗날 자기 스스로 자신의 혼사를 결정하도록 허락한 바 있었다. 이제 겨우 아들에게 마음에 둔 사람이 생겼고, 후궁 자리 또한 비어 있으며, 슬하에 아직 자식도 없으니, 정으로 보나 이치로 보나 그가 이 아버지의 신분으로 아들이 좋아하는 것을 빼앗을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그렇지 않으면 그가 어찌 삼계의 주인이라 자처할 수 있으랴?

천군은 쓴웃음을 지었다. 어쩌면 빈틈없이 계산하는 이 맏아들이 이번에는 그 자신마저 계산에 넣었는지도 모를 일이었다.

그러나 그의 계산은 하나같이 떳떳한 계략이었지, 그 안에 음모나 술수, 남에게 드러내지 못할 어두운 구석이라고는 없었다. 그가 친히 말한 대로 그는 이미 신아에게 경고를 했었고, 신아는 그럼에도 아랑곳없이 스스로 그 함정 속으로 뛰어들어 신씨 가문마저 끌어들이고 말았으니, 끝내 그녀를 위해 변명해 줄 사람 하나 남지 않게 된 것이었다.

필시 아버지인 그 자신 또한 이 일에서 벗어나지 못할 터였다. 그러나 어쩌겠는가, 자연은 그 자신이 가장 자랑스러워하는 아들이자, 그의 기대를 저버리지 않고 이토록 출중하게 자라났으니. 돌아서서 이 아비마저 계산에 넣었으니, 그는 기뻐해야 할지 슬퍼해야 할지 알 수 없었다.

이 벙어리 냉가슴 같은 손해는 아무래도 감수하지 않을 수 없을 듯했지만, 그는 실로 이 화를 삭이기가 어려웠다. 마치 파리 한 마리를 삼킨 것처럼, 삼키지도 뱉지도 못하는 심정이었다.

자연이 정비 자리마저 미리 비워 두는 것을 눈앞에서 보고 있노라니, 그는 아들의 뜻대로 너무 순순히 흘러가게 두고 싶지도, 아수라왕의 뜻대로 너무 순순히 되게 두고 싶지도 않았다. 어찌 자기 혼자만 이 벙어리 냉가슴을 앓을 수 있단 말인가……

"그만 일어나거라, 남을 대신해 허물을 짊어질 필요는 없다. 모로의 그 마지막 제자도 제법 쓸 만하니 스승의 체면을 저버리지는 않았구나. 나는 그저 그를 한번 시험해 본 것일 뿐이다. 어쨌든 아직 젊어 성미가 다소 조급한 것은 사실이다. 아누 저 계집아이로 말하자면…… 천정을 뒤엎을 뻔했으니 마땅히 그만한 대가를 치러야 하지 않겠느냐." 천군은 마음을 가다듬고 몸을 숙여 자연을 부축해 일으키며 말했다.

그 말을 들은 아누는 승복할 수 없어 화가 치밀어 천군에게 욕이라도 퍼붓고 싶었지만, 어찌 된 일인지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 알고 보니 그녀는 자연에게 정신주만 걸린 것이 아니라, 자연에게 강제로 금언술까지 당한 것이었다. 소이는 이 순간 아누가 치러야 할 대가가 무엇일지 다소 걱정스러웠지만, 방금 일어난 일들을 하나하나 곰곰이 되짚어 보고는 이내 깨달음을 얻었다. 이 천하에 천군의 손에서 아누를 지켜 낼 수 있는 이는 아무도 없으며, 오직 대전하 자연만이 그것을 해낼 수 있다는 것을.

이때 소이는 비로소 뒤늦은 두려움을 느끼기 시작했다. 천군을 죽인다면 자신의 생사야 상관없었지만, 스승과 아누, 아수라족, 그리고 미무림의 벗들까지도 모두 화를 입을지 몰랐다. 만약 대전하 자연이 때맞춰 막아서지 않았더라면, 아마도 두 사람은 이미 큰 화를 저지르고 말았을 것이었다.

여기에 이르러 그도 결국 마음을 접을 수밖에 없었다. 천군과 그 자신은 동시에 아누를 가질 기회를 잃었지만, 그는 오직 이런 결말이야말로 아누에게 가장 좋은 길임을 알고 있었다.

송곳으로 심장을 찌르는 듯한 아픔이 밀려왔다. 사백여 년 동안 마음 깊은 곳에 품고 목숨을 걸고서라도 지키려 했던 그 여인이, 바로 이 순간 그를 떠나기로 정해진 것이었다. 그러나 그럼에도 그의 마음속에서는 대전하 자연의 과감하고 굳센 결단력과 침착한 지혜에 감탄하지 않을 수 없었다.

"아수라왕을 불러들여 즉시 항서를 올리게 하라. 그 안에 그가 살아 있는 동안은 다시는 천족에 군사를 일으키지 않겠다는 뜻을 명시하도록 하고, 아울러 아누 공주를 대황자의 측비로 바쳐 두 종족의 혼인 관계를 맺도록 하라." 천군은 냉랭한 얼굴로 선포를 마치고는 소매를 떨치며 노기 어린 걸음으로 자리를 떠났다.

"부군께 감사드립니다." 자연이 천군의 뒷모습을 향해 몸을 굽혀 읍하며 절했다.

한편 이때의 아누는 이미 화가 머리끝까지 치밀어 있었다. 어째서 모든 일이 자연 혼자서 뜻대로 주무르는 대로 흘러가야 한단 말인가? 그는 그녀를 옭아매어 놓고서 천군과 한통속이 되어 죽이 맞았으니, 무슨 자격으로 천군이 몇 마디 말만으로 아버지의 뜻을 결정할 수 있단 말인가? 또 무슨 자격으로 그녀를 자연의 측비로 바친단 말인가? 측비는커녕 정비 자리라 해도 그녀는 원치 않았으니, 이는 실로 하늘만큼이나 큰 치욕이었다. 이른바 선비도 참을 수 있는 데는 한도가 있다 했으니, 그녀가 어찌 천군이 이토록 자신의 아버지와 자신을 능멸하도록 두고만 볼 수 있으랴? 게다가 천군은 방금 그녀의 세 오라버니와 일족을 죽였는데, 그녀가 어찌 돌아서자마자 그것을 잊을 수 있으랴? 비록 아버지가 먼저 싸움을 걸었다고는 하나, 이런 결과를 그녀는 도저히 삼킬 수가 없었다.

그러나 그녀는 그저 세상 물정 모르는 어리석은 계집아이일 뿐이었으니, 방금 자연이 오로지 그녀를 지키기 위해 짜낸 계책을 어찌 알았으랴? 그녀는 애당초 천군이 자신에게 마음을 두었다는 사실조차 전혀 알지 못했으니, 방금 그 부자 두 사람 사이에 오간 날카로운 기지와 아슬아슬한 수싸움을 또 어찌 알 수 있었으랴?

본디 천정 황실로 시집가는 일에 강한 거부감을 품고 있던 아누는 지금 더더욱 그것을 증오했다. 그녀는 분명 두 종족의 원한을 풀어 주겠노라 약속했던 자연을 더욱 원망했다. 그는 이제 그 말을 저버렸을 뿐 아니라, 그녀가 아수라 왕정으로 돌아가 가족과 재회하려던 꿈마저 산산이 부수어 버렸고, 이제는 천군에게 맞장구까지 치며 그녀의 아버지와 그녀를 압박하고 있었다. 그녀는 그가 너무나도 미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