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 신씨 집안의 풍파
사실 방금 영람의 그 한바탕 소란으로 자연은 겨우 가라앉았던 상처가 다시 도졌으니, 지금 그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그저 "정양"뿐이었다. 결코 일부러 신아를 천 리 밖으로 밀어내려는 것이 아니었지만, 신아 또한 사람을 살뜰히 헤아릴 줄 아는 이는 아니었다. 그녀는 집안도 크고 사업도 큰 신씨 가문에서 나고 자랐는데, 그 집안은 남자가 많고 여자가 적어 딸자식이라면 저마다 보배처럼 귀히 여겨졌다. 신아 아래로 한참 지나서야 막내 여동생이 태어났으니, 그녀는 그야말로 애지중지 자란 몸이었다. 언제나 남들이 그녀를 위해 헤아려 주었을 뿐, 그녀가 남을 위해 헤아려 준 적이 어디 있었으랴? 어려서부터 원하는 것은 무엇이든 손에 넣었고, 심지어 자연조차도 그녀의 안하무인격인 기세에 눌려 집안 어른들이 죽기 살기로 천군에게 매달려 사혼을 얻어 낸 것이었으니, 그녀가 어찌 남을 배려할 줄 알겠는가? 방금 자연이 부드러운 목소리로 영람을 달래는 모습을 지켜보면서도, 정작 그녀에게는 눈길 한 번 주지 않으니 마음속이 온통 불만으로 가득 찼다. 예를 갖추어 몸을 굽혀 인사한 뒤, 그녀는 분한 마음을 안고 물러났다.
속에 잔뜩 화를 쌓아 둔 채 자신의 처소로 돌아온 신아를, 상아는 저 멀리서부터 그 노기를 느끼고는 일부러 시종들을 물리치고 허리를 잔뜩 굽힌 채 마중 나갔다.
"왕비 마마 돌아오셨습니까?" 방금 자연이 신벌편 두 대를 맞아 몸이 편치 않은 상태로 상수의 부축을 받아 침전으로 돌아갔다는 소식을 듣고, 신아는 황급히 그쪽으로 달려갔었다. 목적지가 대전하의 침전이었기에 상아는 눈치껏 따라나서지 못했다. 대전하의 침전은 그녀는 말할 것도 없고 대황자비 마마조차 허락 없이는 함부로 들어갈 수 없는 곳이었으니, 그녀가 어찌 감히 그 금기를 넘을 수 있으랴?
"내 꼴이 우스운가 보지?" 신아는 그 속에 쌓인 분을 풀어낼 곳이 없던 참이라, 이렇게 제 발로 걸려든 재수 없는 사람을 결코 그냥 넘길 리 없었다.
"상아는 감히 그러지 못합니다." 신아가 필시 자신에게 화풀이를 하리라는 것을 진작 짐작했던 상아는 그저 굽실굽실 비위를 맞추며 허리를 더욱 낮게 숙일 수밖에 없었다.
"뭐가 감히 그러지 못한다는 거야? 진작부터 내가 쫓겨 돌아올 줄 알고 여기서 좋은 구경거리라도 기다리고 있었던 거지?" 연이어 세 마디 질책이 쏟아지니, 상아의 무릎은 어느새 굳어져 급기야 그 자리에 무릎을 꿇고 말았다.
"왕비 마마, 노여움을 푸십시오! 상아는 결코 감히 그러지 않습니다!" 상아는 그렇게 말하며 다시 몇 번이나 이마를 바닥에 찧었다.
"내가 대체 누구한테 밉보인 걸까? 자연은 다른 이한테는 다 좋으면서 유독 나만은 반기지 않아, 내가 그의 아내인데도 정작 나만 마치 남 취급을 당하는 것 같아." 그렇게 말하며 그녀는 손을 세게 휘둘러 탁자 위의 물건들을 죄다 바닥에 쏟아 버렸다.
"왕비 마마……" 탁자 위의 물건들이 온통 바닥에 흩어지니, 상아의 얼굴빛은 더욱 창백해졌다. 사실 그녀는 대전하의 침전까지 따라가지 않았으니 정확히 무슨 일이 있었는지는 알지 못했지만, 자신을 모시는 이 왕비 마마의 성정만은 훤히 알고 있었다.
"넌 왕비 마마라고 부르는 것 말고 대체 무슨 쓸모가 있는 거야?"
"소인은…… 소인은…… 왕비 마마를 잘 모시지 못했습니다…… 소인의…… 소인의…… 잘못입니다……" 상아는 바닥에 엎드린 채 감히 일어나지 못했다. 그러나 이토록 비굴하게 굴어도 신아의 노기는 조금도 가라앉지 않았다.
신아는 말할수록 화가 치밀어 문득 몸을 돌려 밖으로 걸어 나갔고, 상아는 그 모습을 보고 몸을 일으켜 따라가려 했다.
"저리 비켜! 내 눈앞에서 얼쩡거리지 마, 보기만 해도 화가 나니까!" 말을 마치자마자 성큼성큼 걸어가 버리니, 상아는 따라가지도 안 따라가지도 못하는 진퇴양난에 빠졌다.
"신가로 돌아갈 테니 따라오지 마라."
신아가 이렇게 말하는 것을 듣고서야 상아는 겨우 숨을 돌렸다. 신가로 돌아간다면 따라가지 않아도 별일 없을 터였으니, 그녀는 남몰래 숨을 내쉬고는 몸을 일으켜 바닥에 흩어진 물건들을 정리했다. 그리고 신아는 씩씩거리며 곧장 신가로 돌아갔다.
아마도 오늘 신아는 운수가 사나웠던 모양이다. 집을 나서기 전 손가락으로 점 한 번 짚어 보지도 않았으니, 하필 이때 그녀의 큰오라버니 신육이 마침 집으로 돌아와 있었다는 것을 알 리 없었다. 자연에게 두 대의 채찍을 내리쳐야 했던 그 일로 마음이 몹시 괴로웠던 신육의 얼굴은 본디 근엄한데다 지금은 더욱 새까맣게 굳어, 대청에 앉은 채 언짢은 기색을 감추지 못하고 있었다. 아래 하인들은 그 모습을 보고 하나둘 멀찍이 피했으니, 분명 천족 사람인데도 스스로를 마치 염라대왕처럼 사람도 귀신도 두려워하는 존재로 만들어 버린 셈이었다. 하필이면 바로 이 순간에 신아가 잔뜩 화를 안고 신가로 뛰어들어 왔으니, 두 사람 모두 각자의 화약고에 부딪힌 격이라 신가 대청 위로는 순식간에 먹구름이 뒤덮이고 폭풍전야의 기운이 감돌았다.
신아가 들어오는 것을 보자마자 신육은 화가 치밀어 꾸짖었다. "지금이 어느 때인데? 대전하께서 다치셨는데 너는 자택전에 있지 않고 신가로 뭘 하러 돌아왔느냐? 대황자비씩이나 되어서 어찌 이리도 경중을 모르느냐?"
사실 신육의 이 질책도 딱히 틀린 말은 아니었으니, 객관적으로 보아도 이는 합당한 요구였다. 그러나 신아는 방금 스스로 자연에 대해 잘못 오해한 탓에 온갖 억울함을 자초해 이성을 잃은 상태였고, 어머니를 찾아가 하소연이라도 하여 위안을 얻으려 했는데, 뜻밖에도 어머니를 보기도 전에 이 큰오라버니라는 큰 산부터 먼저 마주치게 된 것이었다. 그녀의 큰오라버니는 소문난 냉철함과 사사로움이 없기로 유명하여 오직 시비만을 따질 뿐, 정情이나 신분이나 지위 따위는 전혀 개의치 않는 사람이었다.
설령 신아에게 자연을 실질적으로 도울 뛰어난 능력이 없다 하더라도, 다친 남편을 내버려 두고 홀로 신가로 돌아와서는 안 되는 일이었다.
"오라버니가 뭘 안다고 그래요? 대전하는 애초에 제 보살핌 따위 반기지도 않아요. 영람이 오니까 극진히 챙겨 주면서, 저한테는 거들떠보지도 않고, 상처 치료에 방해된다며 귀찮아하기까지 하는데. 대체 누가 그이의 아내인지 모르겠네요." 신아는 신육의 질책을 듣고 자신도 되받아치는 목소리를 더욱 높였다.
"너 정말 지나치구나, 십일공주하고까지 질투를 하다니? 이번 일을 겪고 나서 십일공주가 찾아와 문안 인사드리고 은혜에 감사드리는 것은 당연한 인지상정이거늘, 그 아이는 대전하의 친누이가 아니냐, 너는 그 아이한테까지 질투를 부리느냐? 대황자비씩이나 되어서 그리도 속이 좁다니, 어찌 천하 만백성을 마음에 품으신 대전하와 짝이 될 수 있느냐? 너는 그저 그분의 발목이나 잡을 뿐이다!"
"오라버니는 대체 누구 오라버니예요? 자기 여동생을 이렇게 말하다니? 이렇게 말해서 오라버니한테 뭐가 좋아요? 대전하가 천하 만백성을 마음에 품으셔서, 저는 그 '만백성'에도 못 들어가는 게 당연한 거예요? 그이는 남한테는 다 잘하면서 저한테만 안 잘한다고요……"
"그만해라!"
신육은 정말이지 화가 머리끝까지 치밀어, 신아가 도무지 말이 통하지 않는 사람이라 여겨졌다. 그해 이 누이동생이 죽기 살기로 자연의 정비가 되겠다고 우겼을 때 그는 반대했었다. 대전하처럼 그리도 도량이 넓고 기품이 남다른 분에게, 자기 집안의 이 방자하고 제멋대로인 여동생이 어찌 어울릴 수 있으랴? 그가 천군을 대하는 태도가 경외라면, 대전하를 대하는 태도는 실로 진심에서 우러난 존경과 감복이었다. 천족 전체를 통틀어 보아도 오직 자연만이 그의 눈에 찰 뿐이었으니, 그토록 출중한 이가 신아를 아내로 맞은 것은 실로 그를 헛되이 낭비한 셈이라 할 수 있었다. 신아가 비록 그의 여동생이었지만, 그는 마음속으로 실로 대전하를 위해 억울해했다. 그해 그가 반대의 뜻을 냈지만 집안 어른들 앞에서는 큰 힘을 발휘하지 못했고, 대전하와 사돈을 맺을 수 있다는 것을 다들 한목소리로 신씨 가문이 몇 대에 걸쳐 쌓은 복이라 여겼다. 게다가 대전하는 천족 사람들의 마음속에 천군의 후계자였으니, 만약 대전하가 순조롭게 다음 천군이 되신다면 자기 딸도 자연스레 천후가 될 것이었고, 신가는 더욱더 존귀함이 이를 데 없어질 터였다. 그리하여 온 집안이 필사적으로 천군에게 압력을 넣고 또한 대전하를 거듭 곤란하게 만들어, 우여곡절 끝에 마침내 이 혼사가 성사되었던 것이다.
대전하가 신아를 아내로 맞을 뜻이 없었다는 것은 누가 보아도 다 아는 일이었으나, 신가 사람들 중 그것을 헤아리는 이가 그 말고 또 누가 있었으랴?
"그해 내가 억지로 딴 참외는 달지 않다고 그토록 일러 주었건만 너는 굳이 듣지 않더니, 이제 와 무엇을 원망하느냐? 게다가 대전하의 성정으로 보아 너를 아내로 맞았으니 비록 너를 좋아하지는 않아도 결코 박대하지는 않으실 것이다. 네 뒤에서 늘어놓는 그 숱한 하소연들을 보면, 전부 네 스스로의 문제일 뿐이니 반성할 줄 모르고 매사 남 탓만 하는구나, 그러고도 대황자비의 그릇이라 할 수 있겠느냐?"
"오라버니…… 오라버니……" 신아는 그 말을 듣고 이미 화가 치밀어 어쩔 줄 몰라, 신육을 손가락질하며 한참을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뭐가 오라버니야? 나는 네 큰오라버니거늘 네가 나한테도 이렇게 이빨을 드러내고 발톱을 세우니, 자택전에서는 대체 어떤 모습일지 모르겠구나!" 신육은 신아를 흘겨보았다. 마음속의 불만을 드러내는 것이기도 했지만, 그보다 더 큰 것은 안타까움이었다.
"오라버니가 그러고도 큰오라버니예요? 큰오라버니라는 사람이 자기 여동생을 이렇게 말해요?" 신아는 소매를 뿌리치며 억울함 가득한 얼굴로 몸을 돌려 안으로 들어가려 했다.
"거기 서라! 내 말 아직 안 끝났는데 어딜 가려는 것이냐?" 신육이 크게 손을 휘두르며 술법을 부려 그녀를 다시 끌어당겼다.
"그만하세요! 저는 대황자비예요, 오라버니가 신하 된 몸으로 감히 저한테 이럴 수 있어요?" 신아가 눈을 부릅뜨고 노려보며 이를 갈며 원망스레 말했다.
"네가 그럴 자격이나 되면 좋으련만……" 신아가 대황자비라는 신분을 내세워 자신을 누르려 하는 것을 듣고, 신육은 화가 치밀어 그녀의 뺨을 후려쳤다.
"그건 대전하께서 인자하고 너그러우셔서 너와 시비를 따지지 않으신 것뿐인데, 너는 그것을 대황자비라면 못할 짓이 없다는 뜻으로 여기느냐? 대전하의 아내 된 자로서 마땅히 힘써 그분의 발걸음을 따라잡으려 애써야 하고, 설령 따라잡지 못하더라도 마음을 다해 그분을 헤아리고 이해하며 그분의 뒤에서 힘이 되어 드려야 하거늘, 어찌 날마다 그깟 집안일과 시시비비나 따지고 있느냐? 마음을 고쳐먹지 않으면 언젠가 버림받는 것도 시간문제이니, 그때 가서 후회해도 늦을 것이다."
"오라버니가 저를 때려요?" 신아는 신육이 조금도 사정을 봐주지 않고 뺨을 때리자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 태어나서 지금까지 이런 굴욕을 당해 본 적이 있었던가? 몸을 돌려 큰 소리로 어머니를 불러 댔다.
"신가에서는 내가 네 큰오라버니이지, 네 신하가 아니다. 네가 만약 내 말을 듣지 않고 계속 이렇게 방자하게 군다면, 언젠가는 아버지 어머니도 너를 구해 줄 수 없을 것이니, 오늘 내가 한 말을 잘 새겨듣거라." 말을 마치자 신육은 어이없고 원망 가득한 얼굴을 한 신아를 남겨 둔 채, 노기등등하게 소매를 떨치며 자리를 떠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