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개 속의 연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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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날개로 감싼 사랑

능소보전에는 천군이 높은 자리에 단정히 앉아 있고, 자연과 막영, 영윤 등 일행이 양옆에 늘어서 있었다. 그 아래에는 영항과 영람이 나란히 무릎을 꿇고 있었다. 영항은 고개를 숙이고 눈을 내리깐 채 감히 함부로 말하지 못했고, 영람은 부군이 영항을 엄히 벌할까 두려워 조급한 기색이 역력했다.

"부군, 영항을 탓하지 마세요, 모든 것이 영람의 잘못이에요. 영람이 사사로이 도망치지만 않았어도 이 사람과는 아무 상관없는 일이었을 거예요, 다 제 탓이에요! 제가 이 일의 발단이에요."

영항이 얽히지 않았더라면, 저 교만하고 방자한 영람의 성정으로 어찌 이렇게 순순히 고개를 숙이고 잘못을 인정하겠는가?

옆에서 영항은 영람이 죄를 자신에게로 끌어안는 것을 듣고 그 즉시 마음이 다급해졌다.

"영항이 있는 힘을 다해 감춰 준 탓에 일이 이 지경까지 커진 것입니다. 천정의 위엄을 무시한 것은 영항의 잘못입니다. 공주께서는 아직 나이가 어려 바깥세상에 대한 호기심이 넘치셨는데, 영항은 그것을 타이르지도 않고 천정에 알리지도 않은 채 오히려 공주께서 천정의 추격을 피하도록 도왔으니, 잘못은 영항에게 있고 공주께는 없습니다." 그는 몸을 엎드려 이마를 바닥에 대었다.

"천군께 벌을 청합니다."

사람들이 전각에 들기 전, 자연은 이미 천군께 일의 전말을 소상히 아뢰었기에 이때 천군의 마음속에는 이미 나름의 계산이 서 있었다. 어린 두 남녀가 밤낮으로 함께하며 고락을 나누다 보니 어느새 정이 싹텄지만, 천규는 엄중하여 이 또한 함부로 무시할 수 없는 것이었다. 그는 굳이 얼굴을 굳히며 정색으로 말했다. "범계 사람들이 이르기를 '천자가 법을 어기면 서민과 죄가 같다' 하였다. 천정 또한 마찬가지다. 누가 무슨 잘못을 저질렀든 각자 벌을 받아야 하거늘, 어찌 너희끼리 한마디씩 주고받으며 서로 죄를 옮기려 하느냐? 두 사람 모두 뉘우침이 있고 형벌을 피하려 하지 않으니, 그렇다면 마땅히 해야 할 대로 처리할 것이다. 공주도 예외 없이 벌을 받는다."

천군은 전각 곁에 서 있는 신육을 바라보며 다시 말했다. "신 경은 집법관이니 늘 공정하고 사사로움이 없었다. 공주와 영항이 어떤 죄를 받아야 마땅한지 그대가 앞으로 나와 말해 보라."

이 신육이라는 이는 바로 대황자비 신아의 큰오라버니로, 천정 형벌을 관장하는 자였다. 그는 얼굴이 냉엄하기 그지없어, 이것이 타고난 것인지 아니면 오랫동안 형벌을 집행하다 보니 혈육의 정마저 저버리게 되어 그 성정마저 냉엄하게 변한 것인지 알 수 없었다.

그가 앞으로 나서서 무표정하게 말했다. "공주께서는 사사로이 하계로 도망쳐 돌아오려 하지 않으셨고, 체포에 저항하며 천병 십여 명을 다치게 하셨으니 신벌편 두 대를 집행해야 합니다. 영항은 사정을 알고도 알리지 않았으며 공주가 천정의 추격을 피하도록 도왔고, 아울러 공주와 함께 천병을 다치게 하였으니 마찬가지로 신벌편 두 대를 받아야 합니다."

"신벌편 두 대라고?" 영윤의 얼굴이 새까맣게 굳었다. 신벌편은 본디 천족을 대상으로 마련된 형벌로, 법력과 수행이 다소 낮은 천족이라 해도 대개 세 대를 견디지 못했다. 영항은 요족이니 신벌편은 요벌편과 견줄 바가 아니었다. 요벌편은 세 대를 맞아야 겨우 요괴를 본래 모습으로 되돌릴 뿐이지만, 신벌편 세 대라면 아마도 산 채로 혼백이 흩어져 버릴 터였다.

두 대만으로도 어쩌면 요괴 하나를 죽일 수 있을지 몰랐다.

영윤은 마음이 다급해져 입가를 씰룩이며 신육에게 애원했다. "이 아비가 자식을 잘 가르치지 못한 탓이 아니겠소? 소왕이 아들 대신 벌을 받을 수는 없겠소?"

신육은 얼굴을 굳힌 채 요왕을 흘겨보며 말했다. "자기가 저지른 일은 자기가 감당한다는 이치를, 요왕쯤 되시는 분이 어찌 모르시겠습니까?"

법력이 강한 영윤이 도중에 손을 써서 방해할까 저어하여, 신육은 집행장에 이르자마자 한 손에는 채찍을 들고 다른 손으로는 요괴를 묶는 밧줄을 던져 영윤을 단단히 결박했다.

"결례를 범합니다! 요왕!"

신육은 요왕을 다시 눈길조차 주지 않고 낭랑한 목소리로 말했다. "공주를 형대로 올려라."

저 영람은 태어난 이래로 비단옷과 산해진미 속에서 마음껏 자유로이 살아왔고, 원하는 것은 무엇이든 손에 넣었으니 어디 이런 고초를 겪어 본 적이 있으랴? 비록 영항을 위해 죄를 인정하기로 각오했다지만, 막상 형벌 앞에 서니 저도 모르게 겁이 났다. 그녀의 손발이 힘없이 떨리고 온몸이 부들부들 떨렸으며 얼굴은 창백하게 질렸다. 한 번 비틀거리는가 싶더니 그녀의 두 발은 이미 땅에서 떨어져, 강력한 흡인력에 이끌려 갑자기 솟아오른 십자철주 위로 던져졌다.

"쇠사슬을 채워라."

영람이 자리에 오른 것을 보고, 신육은 채찍을 쥐지 않은 손을 휘둘렀다. 그러자 어디선가 검고 굵직한 쇠사슬 두 가닥이 순식간에 튀어나와 영람의 양 손목을 단단히 휘감았다. 이 광경에 영람은 그만 겁에 질려 몸을 떨었고 눈물이 방울방울 뺨을 타고 흘러내렸다.

"부군…… 아항……"

작은 공주가 떨리는 목소리로 외쳤다. 그때 문득 신벌편이 공중에서 휘둘리며 허공을 가르는 소리가 그녀를 향해 사납게 몰아쳤다. 그녀는 본능적으로 눈을 감고 고개를 숙인 채 이를 악물었다.

그러나 그 신벌편은 예상과 달리 그녀의 몸에 떨어지지 않았다.

"영람, 겁내지 마시오……" 갑자기 넓은 품이 영람을 굳게 감싸 안았다. 영항은 사람들이 방심한 틈을 타 자신의 몸에는 요괴를 묶는 밧줄이 없다는 것을 이용해 몸을 날려, 그 청천벽력 같은 한 대를 자신의 등으로 대신 받아 냈다.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그는 한 입 가득 피를 토해 냈다.

"아항! 아항!" 영항이 자신을 위해 신벌편을 대신 맞았음을 깨달은 영람은 거의 무너져 내릴 지경이었으나, 몸이 움직이지 않아 놀람과 걱정 말고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안 돼요! 아항!"

이 뜻밖의 사건에 그 자리에 있던 모두가 놀라 소리를 질렀고, 한순간 시끄러운 소란이 끊이지 않았다. 자연이 상수의 귀에 대고 무언가를 당부했지만 아무도 그것을 눈치채지 못했다. 상수는 명을 받고 자리를 떠났고, 이때 영윤은 가슴이 꽉 막혀 오는 것을 느끼며 그 역시 한 모금 시커먼 피를 토해 냈다.

"영항, 내려와!" 신육의 얼굴이 온통 시커멓게 굳은 채 술법을 부려 두 사람을 떼어 놓으려 했지만, 뜻밖에도 영항의 법력이 본디 만만치 않아 스스로 자신의 두 팔을 법력으로 단단히 조여 놓았으니, 신육으로서도 그를 어찌하지 못해 밀고 당기는 대치가 실로 난감한 지경이었다.

"공주…… 공주의…… 채찍은 제가…… 제가 전부…… 전부…… 대신…… 대신 받겠습니다……"

영항이 힘없는 목소리로 신육에게 답했으니, 조금도 물러설 뜻이 없었다.

"전에 흔히…… 듣기를…… '경국지색'이라 하더니…… 그 말이…… 잔치 자리에서…… 그대의 그 한 번의…… 춤을 본 뒤로…… 저는…… 다시는…… 눈을…… 뗄 수 없었습니다……" 영항은 힘겹게 영람을 향해 말을 이어 가다가 다시 한 입 피를 토해 냈다.

"요왕, 양해해 주십시오. 이것은 영항의 뜻이니 저도 그를 어찌할 수가 없습니다, 그저 형을 계속 집행할 수밖에 없습니다." 신육은 이를 악물고 손에 든 신벌편을 다시 매섭게 영항을 향해 휘둘렀다.

"그리하여…… 저는 비로소…… 깊이 깨달았습니다…… 천인이…… 얼마나…… 아름다운지를……" 영항은 마치 자신에게 아직 숨이 붙어 있는 이 순간을 붙들어 영람에게 온 힘을 다해 마음을 전하려는 듯했다. 네 대를 다 맞으면 아마 혼백이 흩어져 버릴 것이니, 이 또한 그의 유언인 셈이었다. 지금이 아니면 다시는 말할 기회가 없을 터였다.

신육의 손에 들린 신벌편이 다시 무자비하게 그의 등에 떨어졌다. 이 한 대에 영항은 그만 원래 모습으로 되돌아가 버렸고, 하늘 가득 깃털이 흩날렸다. 사람들이 자세히 바라보니, 십자철주 위에는 어느새 거대한 금시조 한 마리가 커다란 날개를 활짝 펼쳐 그 아래 영람을 촘촘하고 굳건하게 감싸 보호하고 있었다. 몸의 깃털은 태반이나 빠져 반쯤 벗겨진 등에는 피와 살이 뒤엉켜 시커멓게 타 있었다. 영항이 토한 피와 몸에서 흐르는 피가 하늘 가득 흩날리는 깃털과 함께 땅으로 쏟아져 내리니, 아래 있던 사람들이 모두 놀라 소리를 질렀다.

사람들의 놀란 외침 속에서 영항의 목소리는 점점 희미해져 갔고, 말은 갈수록 흐릿해져 그저 낮은 속삭임만 남았으니 영람조차 알아듣지 못할 지경이었다. 마침내 그는 힘없이 고개를 떨구고 영람의 어깨에 기댄 채 정신을 잃고 말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