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회 우원외가 만년에 아들을 얻고 악독한 마씨가 남편을 꼬드겨 재산을 빼앗으려 하다
이야기인즉, 천손이 운금궁 길쌈실 안에서 앞날을 생각하고 지난날을 돌이키다가 슬픔이 밀려오는 곳에 이르면 절로 한숨이 새어 나오고, 속세에서 고초를 겪고 있을 금동이 안쓰러워 옛 정을 되새기며 선녀의 침상에 몸을 눕힌 채 스르르 잠들어 날이 밝도록 깊이 잠들었다. 이른 아침에 일어나니 눈물 자국이 아직 남아 있었고, 감시하던 선아가 부드럽게 위로하는 말을 건넸다. 그로부터 해가 가고 날이 가며 종일 길쌈을 하였으니, 이 이야기는 잠시 접어두기로 하자.
이야기를 바꾸어, 정월 초육일이 되어 옥황상제의 성탄일이 이르자, 삼십삼천 두솔궁에 반도대회가 열렸다. 여러 신선 성관들과 요지성모, 운금성모, 관음대사, 팔동신선, 선동선녀들이 일단이 되어 옥황상제를 에워싸고 소요련(逍遙輦)에 모시어 오색구름을 타고 두솔궁에 이르니, 태상노군이 조복(朝服)을 갖추고 어가를 맞이하였다. 어련(御輦)에서 내려 보좌에 오르시니 여러 신선들이 조현하며 성수무강을 빌었다. 노군이 금단을 바치고 여러 신선들이 사은을 드렸으며, 반도대회에 선악(仙樂)이 울려 퍼지니 삼십삼천의 번화하고 거룩한 광경은 이루 다 말로 표현할 수 없었다.
이 가락은 마땅히 천상에 있어야 할 것이니, 인간 세상에서 몇 번이나 들을 수 있으랴.
여러 신선들의 만수 축하가 끝나고 선악이 그치자 옥황상제가 자리에서 일어나시고, 노군이 어가를 배송하였다. 옥황상제는 다시 소요련을 타고 환궁하셨고, 여러 신선들은 각자 구름을 타고 흩어져 갔으니, 더 말하지 않겠다.
다시 말하건대, 태백금성이 어명을 받들어 열두 번째 금동을 데리고 푸른 구름 한 조각을 타고 천하(天河)를 지나 남천문(南天門)에 이르렀다. 하계를 사방으로 굽어보니 눈꽃이 여섯 잎으로 펄펄 날리고 있었으니, 이는 오곡풍등(五穀豐登)의 조짐임을 즉시 알아보고 금동에게 말하였다. "올해 하계는 물자가 넉넉하고 백성이 편안하며 강이 맑고 바다가 잔잔하구나. 다만 속세에 태어나려면 인지(人地) 둘 다 알맞은 곳을 골라야 신체를 안착시킬 수 있느니라." 말을 마치고 손가락을 꼽아 헤아려보니, 마땅히 하계의 중주(中州, 지금의 하남성이라 부르는 곳으로, 하남이 화하의 가운데에 있어서 중주라 한다)로 내려가야 할 것이었다. 그 하남에 낙양부 낙양현 우가장(牛家莊)이라는 곳이 있는데, 우원외(牛員外)라는 이가 살았다. 가산이 풍요하고 본처는 일찍 세상을 떠났으며, 아들이 하나 있어 이름은 우금성(牛金成)이라 하고, 며느리는 마씨(馬氏)를 맞아들였다. 이후 우원외는 아들이 불효하고 며느리가 어질지 못하여 다시 이씨(李氏)를 후처로 들였다. 삼 년이 지나도록 아이를 낳지 못하다가 문득 태기가 있어 해산이 가까워지고 있었다. 그래서 태백금성은 남천문에서 이미 헤아려 알고 있었으니, 우가(牛家)에 내려갈 수 있음을 알았다. 금동과 함께 남천문을 나서 구름에서 내려와 곧장 하남으로 향하였다.
잠깐 사이에 낙양부 지경에 이르러 우가장 우원외의 집에 곧장 이르러 구름을 멈추었다. 태백금성이 즉시 맑은 바람 한 줄기를 일으켜 금동을 내려보내 태(胎)에 들게 하였다. 금동은 고초를 받을 날이 이미 이르렀음을 알고 절로 눈물이 비오듯 흘렀으며, 태백금성에게 슬피 하소연하였다. "소동(小童)이 오늘 내쫓기게 된 것이 이전의 잘못을 뉘우치지 않은 것은 아니오나, 일이 다가오자 돌이킬 수도 없게 되었습니다. 다만 어려운 날이 차는 날에 성관(星官)께서 그때 천정으로 이끌어 올려 주신다면, 소동은 그 홍은(鴻恩)에 깊이 감사드리겠습니다!" 태백금성이 고개를 끄덕이며 허락하였다. 순식간에 금동이 바람을 따라 내려갔다. 태백금성은 금동이 작별하여 속세의 태(胎)에 들어가는 것을 보고 즉시 몸을 일으켜 다시 구름을 타고 천궁으로 돌아가 통명전에 복명하였으니, 더 말하지 않겠다.
이야기인즉, 우원외는 후처 이씨의 해산이 가까워지자 서둘러 산파를 불러 만반의 준비를 갖추게 하였다. 문득 시녀가 보고하였다. "안채에서 이 부인께서 사내아이를 낳으셨습니다." 우원외는 기쁨을 이기지 못하여 서둘러 산파에게 은자 몇 냥을 사례하고 내보냈다. 또 시녀 두 명을 더 고용하여 산모를 전담하여 돌보게 하였다. 다만 우금성 부부는 마음속으로 크게 불쾌하였으나 감히 입 밖에 내지는 못하고 부부끼리만 몰래 이야기를 나누었으니, 결국 어쩔 도리가 없었다. 그저 속으로 그 아버지를 욕할 뿐이었다. '늙어 죽지도 않고, 이미 쉰이 넘어 나이도 많은데 또 아들을 낳다니, 참으로 이를 갈게 하는구나! 이 원한과 분함은 어느 날에나 풀리려나?' 이 쪽 우금성 부부가 속으로 원망하는 이야기는 잠시 접어두기로 하자.
이야기인즉, 금동이 속세에 내려와 사람으로 태어났다. 이씨가 낳은 아들을 산파가 씻기고 포대기에 싸서 침상으로 데려오니 이씨가 한눈에 보고 크게 기뻐하였다. 이때부터 산모를 조리시키며 자연히 세심하게 돌보았다. 눈 깜짝할 사이에 한 달이 지나 만삭의 날이 되었다. 만삭날이 되자 우원외는 집안사람들에게 등불을 켜고 꽃 장식을 달며 탁자와 의자와 병풍과 장막을 산뜻하게 정돈하도록 분부하였다. 친척들과 이웃 고향 사람들이 모두 와서 축하하였다. 이날 대청마루가 몹시 떠들썩하여 배우들의 노래와 춤, 음악과 풍악, 권(拳)을 겨루고 가무를 즐기니 한순간에 온 집안이 떠들썩하게 되었다. 우원외가 또 안채로 들어가 시녀에게 아이를 안아 나오게 하여 (결락된 부분 추후 보완)
세월은 물 흐르듯 흘러 어느덧 봄은 쉬이 지나가고, 우원외가 얻은 어린 아들 금랑(金郎)은 이미 여섯 살이 되었다. 이 수년 동안 우원외는 어린 아들을 온갖 방법으로 감쌌고, 으레 장남 금성과 다툼이 잦았으니, 날이 갈수록 울분이 가슴에 쌓여 마침내 병이 들어 자리에 누웠다. 이씨가 정성껏 시중을 들었으나 이미 화갑(花甲)을 넘긴 나이에 기혈이 쇠하고 정력이 바닥나 있어, 의원을 불러 약을 써도 끝내 효험을 보지 못하고 병세가 날로 더하여 갔으며, 마침내 음식도 들지 못하게 되었다. 날을 이어 금성 부부에게 간호하러 오도록 불렀으나 그들은 거들떠보지도 않을 뿐만 아니라 멋대로 가산을 탕진하였다. 어느 날 이른 아침, 이씨는 우원외의 병세가 이미 깊어 뼈가 드러날 정도로 여위었으니 그저 손을 놓고 기다릴 수밖에 달리 어쩔 도리가 없음을 보았다. 침상 위에 앉아 금랑의 손을 잡고 눈물을 흘리며 말하였다. "낭군의 병세가 깊어 약도 듣지 않고, 장남은 거들떠보지도 않으니, 저는 여자의 몸으로 어쩔 수가 없습니다. 만에 하나 불행한 일이 생긴다면 저더러 어찌하라는 말씀이십니까? 이 어린 원수 같은 녀석을 남겨두고, 비록 가산이 있다 해도 낭군의 장남이 보전하지 않고 멋대로 탕진한다면, 저와 이 어린아이는 어디에 몸을 붙이란 말씀이십니까? 차라리 낭군과 셋이 함께 떠나버리는 것이 낫겠습니다!" 우원외가 위로하며 말하였다. "부인은 쓸데없이 멀리까지 걱정하지 마시오. 죽고 사는 것은 명(命)에 달렸고 부귀는 하늘에 달렸소. 내가 죽더라도 부인은 어린 아들을 이끌어 장성하게 기르시면 되고, 지금 비록 힘들게 가정을 지켜야 하겠지만 어린 아들에게 기댈 수 있다는 희망이 있지 않소. 바라건대 부인은 마음을 넓게 가지시오. 나는 구천 아래에 가서도 망령이 되어 자연히 당신과 아이를 보살필 것이오!" 부부가 한창 이야기를 나누는 중에 문득 장남이 왔다는 보고가 들어왔다.
장남이 무슨 일로 이곳에 왔는지는, 다음 회를 기다려 자세히 이야기하기로 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