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0회 부채에 물든 핏자국을 인연 삼아 스승에게 낭군을 찾아 달라 부탁하다 — 악공과 기녀를 검열하는 자리에서 술을 따르며 간신에게 욕을 퍼붓다
앞서 말한 대로 향군은 꽃다운 얼굴을 부딪혀 상처를 입고 어미가 대신 시집을 간 뒤로 다시는 누각 아래로 내려가지 않으며 홀로 날마다 스승이 후랑을 찾아 일찍 돌아오기를 기다렸다. 어느새 한 달 남짓 시간이 흘렀다. 어느 날 누각 위에서 지난 일들을 떠올리며 가슴 한켠이 시리도록 쓰려 두 줄기 눈물이 흘러내리며 말하였다. "어제는 고육지계(苦肉之計)로 절개를 지켰건만 지금은 홀로 빈 누각을 지키니 벗해 줄 이가 누구인가? 후랑이 화를 피해 떠난 뒤 어느 곳을 떠돌고 있는지 알 길 없고, 어미는 나 대신 재난을 떠안고 갔으니 언제 돌아올지 알 수 없구나. 밤낮으로 마음을 놓을 수 없으니! 오늘은 홀로 앉아 무료하니 후랑의 시 적힌 부채를 꺼내 한 번 펼쳐 보리라. 보아하니 부채가 온통 핏방울에 더럽혀졌구나. 후랑, 후랑, 그대는 내가 그대를 위해 절개를 지키고 있는 줄 알기나 하는지!" 이에 부채를 앞에 두고 한바탕 울다가 어느새 졸음이 쏟아져 부채를 경대 위에 눌러 두고 잠깐 졸았다.
때마침 소곤생(蘇昆生)과 양룡우가 걱정이 되어 함께 문안을 왔다. 문 안으로 들어서니 누각 위가 조용하여 아무 소리도 없었다. 두 사람은 말하였다. "향군이 누각에서 내려오지 않으니 우리가 함께 올라가 이야기나 나누세." 누각에 올라 보니 향군이 경대 앞에 기대어 잠들어 있었다. 양룡우가 말하였다. "향군이 울적하고 아파서 경대에 기대어 졸고 있으니 굳이 깨우지 말세." 곤생이 부채가 앞에 펼쳐져 있는 것을 보고 집어 들어 살펴보다가 놀라며 말하였다. "이 부채 면에 어찌 이리 많은 붉은 점이 있소?" 양룡우가 말하였다. "지난날 얼굴에서 뿜어진 피에 더럽혀진 것 같소. 이곳에 말려 두었구려." 이내 부채를 집어 들어 보니 핏방울이 매우 선명하고 짙어 말하였다. "이 핏자국을 살려 가지와 잎을 더하여 꾸며 주면 어떨까. 다만 물감이 없으니 어찌하나?" 곤생이 말하였다. "화분의 풀을 꺾어 즙을 짜면 물감 대신 쓸 수 있지 않겠소?" 양룡우가 말하였다. "더없이 좋구려!" 이에 한 사람은 즙을 짜고 한 사람은 부채에 그림을 그렸다. 얼마 지나지 않아 그림이 완성되자 두 사람은 크게 웃으며 말하였다. "이것이 꼭 꺾인 복숭아꽃 가지가 되었으니 참으로 桃花扇(도화선)이라 할 만하구나." 향군은 막 잠들었다가 두 사람의 소리에 잠이 깨어 고개를 들어 보고 말하였다. "손님들, 실례가 많았습니다." 이어 두 사람을 앉도록 청하였다.
양룡우가 말하였다. "며칠 보지 못했는데 상처는 이제 거의 아물었구려." 웃으며 부채를 향군에게 건네며 말하였다. "소생이 그린 부채 하나를 경대에 드리겠소!" 향군이 부채를 받아 보며 말하였다. "이건 제 옛 부채인데 어찌 복숭아꽃 몇 가지가 그려졌지요?" 곤생이 말하였다. "양 나으리께서 아가씨의 핏자국을 살려 그려 넣으신 거랍니다." 향군이 말하였다. "이 복숭아꽃도 명이 짧아 부채 아래로 떨어지는 신세이니, 양 나으리께서 대신 저의 처지를 그려 주신 것에 감사드립니다!" 양룡우가 말하였다. "방금 그려서 드린 것이니 혹 서투른 곳이 있다면 용서하시게. 이 桃花扇이 있으니 음악을 알아보는 주랑(周郎) 같은 이가 있을 것이오. 설마 청춘에 과부살이를 하며 달나라의 항아처럼 홀로 지낼 작정이오?" 향군이 말하였다. "무슨 말씀입니까? 저 관반반(關盼盼)도 기녀였지만 연자루(燕子樓)에 홀로 갇혀 늙지 않았습니까?" 곤생이 말하였다. "향군의 이런 고된 처지가 오늘날 그 짝을 찾기 어렵소이다. 들으니 후랑이 사공(史公)의 명을 받아 고걸(高傑)과 함께 강 방어에 나갔다 하오. 머지않아 내가 고향으로 돌아갈 터이니 그를 찾아 사람을 보내 아가씨를 모셔 오도록 하면 부부가 재회하게 될 것이니, 어떻겠소?" 향군은 이 말을 듣자 엎드려 절하며 말하였다. "스승님, 감사합니다! 부디 일찍 떠나주시기를 바랍니다." 곤생이 말하였다. "내일 노자를 좀 마련하고 채비를 갖추어 떠날 것이니, 아가씨의 편지 한 통이 있으면 좋겠구려." 향군이 말하였다. "지금 제 마음이 어수선하여 글이 되지 않으니 어찌 편지를 쓸 수 있겠어요? 됐습니다, 됐어요! 제 천 가지 시름과 만 가지 고통이 모두 저 부채 끝에 담겨 있으니 이 부채를 보내는 것으로 편지 한 통을 대신하겠습니다." 이에 부채를 잘 싸서 곤생에게 건네며 거듭거듭 당부하고 눈물을 그치지 않았다.
양룡우가 다시 곤생에게 말하였다. "그대는 한 발 먼저 떠나 후랑을 만나거든 이 고된 절개 지킨 이야기를 들려주면 그가 절로 맞으러 올 것이오. 돌아가 행장을 꾸리시게. 노자는 내가 사람을 시켜 보내겠으니 빨리 떠나는 것이 좋겠소!" 곤생이 말하였다. "감사합니다. 내일 출발하면 되겠군요!" 두 사람은 향군과 작별하고 누각을 내려갔다. 참으로:
새 소식을 전하듯 桃花扇을 멀리 부치고
구원(舊院)의 연자루는 여전히 굳게 닫혀 있구나.
앞서 말하였듯 향군은 매향루(媚香樓)에서 고난 속에 절개를 지키며 날마다 스승이 후랑을 찾아 하루빨리 돌아와 재회하기를 기다렸다. 그러던 중 새 임금 홍광제(弘光帝)는 문예를 즐기고 여자 광대를 몹시 좋아하여, 완대성이 바친 《연자전(燕子箋)》을 음악에 붙여 중흥의 한 시대 풍악으로 삼고자 하였다. 이에 왕탁(王鐸)을 내각학사로 보하고 전겸익(錢謙益)을 예부상서로 보하였으며, 완대성을 특별히 발탁하여 내정에서 봉사하게 하였다. 완대성은 날마다 임금 곁에서 총애를 받으며 더욱 아첨이 능숙해져, 이렇게 상주하였다. "신이 올린 《연자전》을 성은으로 채택하시어 궁인들이 소리에 붙여 노래하게 하셨사오나, 익숙지 않은 이보다는 익숙한 이가 낫고 가르쳐 보지 않은 이보다는 교습에 능한 이가 낫사옵니다. 차라리 구원(舊院)과 진회(秦淮) 일대를 널리 수소문하여 그 기녀들과 악사들을 궁으로 불러들여 교연(敎演)하게 하면 어찌 수월하지 않겠사옵니까?" 홍광제는 이 상주를 듣고 용심(龍心)이 크게 기뻐하여 즉시 어지를 내려 진회 구원의 악사들과 기녀들을 이름을 대어 수색 선발하되 한 명도 빠뜨리지 말도록 하였다. 이로 인해 정계지(丁繼之) 등 악사 무리와 변옥경(卞玉京) 등 기녀 무리는 양룡우의 정을 빌려 이름을 지워 선발에서 면하고자 하였다. 완대성이 귀양상공(貴陽相公)에게 아뢰어 양룡우를 통해 그들을 하나하나 불러 교연하게 하였고, 향군 역시 선발 명단에 올랐다.
그날은 마침 을유년 새해 첫날로 사람들은 명절을 맞이하는데 하늘에서 큰 눈이 내렸다. 완대성과 양룡우는 상심정(賞心亭)에서 마사영을 초대하여 술을 마시며 눈을 감상하고, 악사들과 기녀들 한 무리를 자리 앞으로 데려와 검열하려 하였다. 악사와 기녀들 중 오직 정계지와 변옥경은 변장하여 출가해 버렸고, 그 나머지 장연축(張燕筑) 등과 정타랑(鄭妥娘) 등 그리고 향군은 모두 상심정으로 끌려와 검열을 받게 되었다. 향군은 이때 가슴 가득 원망과 분노가 가득하였으나 꾹 참고 억눌러 여러 사람들과 함께 왔다. 검열관이 마사영, 완대성, 양룡우 세 사람임을 알고 속으로 생각하였다. '마침 그들이 한자리에 모였으니 내 가슴속의 말을 토해낼 절호의 기회구나!'
얼마 지나지 않아 길을 비키라는 소리가 들리더니 간신 마사영이 온 줄 알고 기녀들은 향군과 함께 한쪽으로 비켜섰다. 마사영이 가마에서 내리자 완·양 두 사람이 맞아들이며 온갖 추한 아첨을 다하니 보기 민망할 지경이었다. 마사영이 말하였다. "과연 설경이 아름답구나! 이 상심정이야말로 눈 구경을 하기에 딱 맞는 곳이오. 보시오, 눈이 종산(鍾山)을 뒤덮어 둥근 규(珪)와 네모진 옥처럼 빛나니, 이 정자에서 즐기는 것보다 더한 좋은 일이 없소이다!" 세 사람이 한바탕 담소를 나눈 뒤 화로와 술도구와 놀이 기구를 차리도록 하고 이내 술을 마시며 눈을 감상하였다. 몇 순배 돌고 나서 완대성이 수하에게 말하였다. "선발한 기녀들을 다 불렀소?" 바깥에서 무릎 꿇고 아뢰었다. "모두 왔사옵니다." "올라오게 하여 자리 앞에서 검열하라!"
이에 구백문(寇白門), 정타랑과 향군 등 기녀들이 차례로 나아가 머리를 조아렸다. 마사영이 한 명씩 검열을 마치고 명하였다. "저들을 예부로 보내 당(堂)을 거치게 하라." 완대성이 일어나 아뢰었다. "이 자리에서 술을 시중들게 하려고 데려온 것입니다." 마사영이 말하였다. "두 분의 아취 있는 뜻이 있으시다면 저 나이 어린 것을 남겨 시중들게 하겠소. 이름이 무엇이오?" 바깥에서 무릎 꿇고 아뢰었다. "이정려라 하옵니다." 마사영이 웃으며 말하였다. "이 여자 이름이 정려(貞麗)라 하니, 아름답기는 하겠으나 정결하지는 않을 것이오! 앞으로 나와 술을 따르고 노래를 불러라!" 향군이 고개를 저으며 말하였다. "못 합니다." 마사영이 말하였다. "노래를 못 부르면서 어찌 명기라 불리겠느냐?" 향군은 두 눈에 눈물을 가득 고이며 말하였다. "저는 원래 명기가 아닙니다." 마사영은 이 광경을 보고 물었다. "무슨 사정이 있는 거냐? 말해 보아라!" 향군이 이에 큰 소리로 말하였다. "저의 사정을 말씀드리자면 엉켜 날리는 쑥대처럼 어지럽사옵니다. 지난해에는 저희 부부를 갈라놓고 오늘은 또 저희 모자를 이별하게 하시니, 이처럼 간적들이 원한을 품고 복수를 하며 백성을 구덩이에 빠뜨리니 참으로 유적(流賊)보다도 더 흉악하옵니다!" 마사영이 말하였다. "사정이 그러한가." 완대성이 말하였다. "이 여자도 꽤나 고생을 한 것 같구려." 양룡우가 말하였다. "나으리께서 이곳에서 즐기시는 자리인데 원망만 늘어놓는 것은 그만두거라." 향군이 말하였다. "양 나으리, 나으리는 제 억울하고 고달픈 사정을 아시면서도 한 번 아뢰는 것조차 가치 없다 여기시는군요. 열분께서 들으십시오. 반쪽 남조(南朝)가 오로지 여러분의 부지에 달려 있습니다. 마땅히 군사를 거느리고 장수를 선발하여 원수를 갚고 치욕을 씻어 북경을 수복하여야 비로소 충신이라 부끄럽지 않을 것입니다. 그런데 여러분은 오직 영화와 총애를 구하기에 급급하여 진회의 기녀를 선발하고 청루(靑樓)의 악사를 징발하여 조정을 미혹하고 기쁘게 하는 것을 일삼고 있습니다. 오늘 이 눈 내리는 얼어붙은 산 앞에서도 저희를 불러 술을 따르고 노래를 읊게 하며, 숭정황제께서 목을 매어 돌아가신 원수를 잊고 오늘 한때의 향락만을 꾀하니 어찌 부끄럽지 않고 어찌 원통하지 않겠습니까!" 마사영이 이 말을 듣고 노하여 말하였다. "이 계집이 헛소리를 늘어놓으니 입을 쳐야겠구나!" 완대성과 양룡우가 함께 말하였다. "지금 내각대신이 앞에 계시니 방자하게 굴지 말거라!" 향군이 이에 크게 소리치며 욕하였다. "너희 이 환관 패거리들아, 낯짝도 두껍게 남들 앞에 서서 부끄러운 줄도 모르는구나! 아버지를 부르고 양자를 칭하며 몸을 욕되게 하고 품행을 천하게 하니 같은 조정에 서기 정말 부끄럽다. 너희 오늘 남의 세력을 등에 업고 사람들을 못살게 구는데, 다만 새 임금의 형벌이 너무 너그러워 이 간신들에게 미치지 못하는 것이 한스러울 뿐이다!" 완대성이 이 말을 듣고 노하여 말하였다. "이 대담한 것이 누구를 욕하는 거냐? 어서 끌어내려 눈 속에 던져라. 이 종년이 내각대인 앞에서 이토록 방자하게 구니 우리 모두 죄를 입게 되었다!" 이에 자리에서 내려와 발로 향군을 마구 걷어찼다. 양룡우는 한편으로 완대성을 말리고 한편으로 향군을 일으켜 세웠다. 마사영이 말하였다. "이런 종년 같은 것은 죽여도 무방하나, 오직 내 재상의 도량에 흠이 될까 우려되니 내정으로 보내어 가장 고된 역할을 맡겨라. 끌어내려라. 좋은 아취 있는 모임을 이 년이 망쳐 놓았으니 가소롭고 가소롭다!" 완·양 두 사람은 급히 허리를 굽히며 사죄하였다. "죄송합니다, 죄송합니다! 너그러이 용서해 주시옵소서. 다른 날 온 마음을 다해 보답하겠습니다!" 참으로:
흥이 다하면 봄 눈 자리에서 돌아가야 마땅하거늘
손님이 부끄럽다면 마땅히 미인의 머리를 쳐야 할 것을.
뒷일이 어찌 되는지는 다음 회를 들으시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