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화영

글자 크기

읽기 모드

제15회 귀양 간 어사 임금 그리워 변방에서 살아 돌아오다 성을 바꾼 귀인 옛 중당을 잊지 못하고 끝내 알아보다

사(詞)에 이르기를:

충신은 오직 바라노니, 조정에서 간신 뿌리 뽑으리라. 누가 몸과 목숨을 아끼리오, 멀리 떠났다 하여도 돌아올 때 있으리. 다시 만나니 얼굴이 달라졌으나, 어디서 실마리를 찾을꼬. 옛 내력을 털어놓고 나서야, 비로소 오랜 인연임을 알았노라.

「보살만(菩薩蠻)」의 곡조에 맞추어

이야기가 이어지나니, 단거(端居)가 의성현(宜城縣)을 떠난 뒤 일로 장강(長江)을 따라 돌아왔다. 바람은 잔잔하고 물결은 고요하여 멀지 않아 집에 닿았다. 가옥을 새로 고치고 조상께 절하며 묘소를 손질한 뒤, 친척과 벗들에게 인사를 돌렸다. 주천작(朱天爵)을 만나고서야 창전(昌全)이 귀향하여 벼슬까지 얻었음을 알게 되어, 마음속으로 놀라기도 하고 기쁘기도 하여 즉시 서둘러 찾아가 절하였다. 창전과 두 사람이 서로 마주하니 이미 살쩍이 쓸쓸히 세어 있었고, 서로 위로하며 묻는 마음이 기쁨에 벅차 넘쳤다. 창전은 이에 이별 동안의 고초를 낱낱이 풀어놓고, 아들을 잃고 다른 아이를 이어받은 일도 말하였다. 지금 성은(聖恩)을 입어 돌아오게 되었으니 목숨이나마 보존하였다고 하였다. 단거가 말하였다. "이별 후 어진 형을 그리워하며 이 생에서는 이미 끝난 줄만 알았는데, 뜻밖에 우리 두 사람이 멀쩡히 무사하여 예전처럼 다시 만나게 되었소. 실로 인생의 요행이로다!" 또한 딸을 잃은 일을 고하였으나, 다행히 아우뻘 되는 이의 자식을 양자로 삼아 노년을 위로받을 수 있다 하였다. 창전이 말하였다. "영식이 어찌 함께 오지 않으셨소?" 단거가 말하였다. "소자가 다행히 과거에 급제하여 지금 또 공거(公車)에 나선 참이라오."

창전은 듣고 크게 기뻐하며 말하였다. "영식이 이처럼 출세하였군요, 이 모두 어진 형이 쌓은 덕 덕분이오. 소제는 이를 이루 부러워하지 않을 수 없소." 단거가 돌아서 물었다. "노형께서 이미 아들을 잃고 아무 소식이 없으시니, 근래 슬하에 무엇으로 위안을 삼으시오?" 창전은 묻는 말을 듣고 눈살을 찌푸리며 말하였다. "소제가 비록 복이 박하여 아들이 있으나 없는 것 같소. 다행히 하늘이 아직 불쌍히 여겨 곤궁한 길 위에서 딸 하나를 이어받았소. 딸이 비록 아들만 못하다 하나, 재주와 정취를 논한다면 오히려 남자보다 낫소이다. 그래서 이것으로 적적함을 조금이나마 달래고 있소." 단거도 기뻐하며 말하였다. "어진 형에게 옥 같은 따님이 있을 줄 몰랐으니, 실로 경하할 일이오." 창전이 탄식하며 말하였다. "소제는 아들 대신 딸을 얻고, 어진 형은 딸 대신 아들을 얻었으니, 이리 뒤집히고 저리 엎어지는 꼴이 실로 사람으로 하여금 헤아릴 수 없게 하는구려." 이어 말하였다. "소자가 당년에 과거를 보러 갈 때 주천작의 도움을 받아 노형의 혼인 승낙을 얻었소. 그런데 우리 두 노인은 아직 살아 있건만, 두 아이들은 도리어 거울 속 꽃과 물속 달처럼 그림자도 없이 사라졌으니, 실로 개탄할 일이오!" 두 사람이 가슴 아픈 대목에 이르러 모두 눈물을 흘리며 흐느꼈다. 한참을 더 이야기한 뒤에야 두 사람은 헤어졌다. 바로 이러하니:

진실인 듯 흐리멍덩 거짓인 체 애달프구나, 눈앞의 어긋남을 귀로 어찌 듣겠는가.

친딸과 친아들을 둘 다 알아보지 못하고, 오히려 남이 하는 말 따라 수양자식이라 하는구나.

창전과 단거는 비록 사돈의 인연이 물거품이 되었으나, 환난 속의 좋은 벗이라 날마다 네가 와서 나를 보고 내가 가서 너를 보며 서로 애틋이 아끼고 사랑하였다. 단거는 무사히 귀가하였으므로 즉시 자세히 편지를 써서 사람을 시켜 서울로 올려 아들에게 알렸다. 과거 기간이 지난 뒤, 단거는 조상 위패 앞에 기도를 올려 아들이 빨리 이름을 떨치기를 빌었다. 며칠이 지나지 않아 일찍이 보고가 당도하였다. 보고하되 단창(端昌)이 제6등 진사에 합격하였다 하였다.

단거와 이씨(李氏) 부인이 크게 기뻐하여 보고하러 온 이를 전송하였다. 잠시 후 친척들이 문간을 가득 메우고 모두 선물을 들고 와 축하하였다. 단거는 종일 손님을 맞아 대접하고 크게 술잔을 기울이며 흥겹게 즐겼다. 연이어 보름이 지나도 손님 초대가 끝나지 않았는데, 문득 또 보고가 들어왔다. 단창이 방안(榜眼)에 합격하였다 하였다. 앞서는 그저 진사 하나였으니, 비록 기쁘다 하여도 그다지 신기하지는 않았는데, 이번에 갑자기 방안이 되었다는 보고가 이르니 또 한 차례 떠들썩함이 일었다. 저마다 신기하다 일컫고 사람마다 잘 됐다 하였다. 잠시 후 부(府)와 현(縣)의 관리들도 모두 친히 문 앞에 와 경하하였다. 화정현(華亭縣) 관리는 사람을 시켜 기둥을 세우고 편액을 걸어 사람들이 다투어 보러 와 무척 떠들썩하였으니 더 이상 기록하지 않겠다.

한편 단창은 아버지가 병을 핑계로 귀향했다는 소식을 들은 뒤부터 마음이 안정되지 못하고 의심과 불안 속에 있었다. 그렇다고 가볍게 자리를 떠날 수도 없어 억지로 마음을 굳히고 소식을 기다렸다. 얼마 지나지 않아 집안 하인이 편지를 받들고 찾아왔다. 단창이 황급히 편지를 떼어 보니, 유씨(柳氏) 집안의 혼사를 응낙하기 어려워 아버지가 관직을 버리고 돌아갔다는 사정을 비로소 알게 되어 마음을 놓았다. 그러고는 생각하였다. "상소를 올린 지 거의 석 달이 지나도록 봉 노백(鳳老伯)의 가권은 왜 돌아오지 않는가? 그 까닭이 무엇인지 알 수 없구나." 이에 종일 사람을 밖으로 보내 수소문하였으나 기록하지 않겠다.

한편 봉의(鳳儀)는 길에서 딸을 잃고 난 뒤, 왕 부인(王夫人)과 함께 슬피 울며 역참에 이르러 몸을 의탁하였다. 왕 부인은 딸 생각을 하다가 고향 생각을 하며, 스스로 달래고 스스로 탄식하느라 참으로 풍상을 다 겪고 추위와 더위를 다 견디어냈다. 봉의와 왕 부인은 어찌할 도리가 없어 그저 마음을 안정시키고 참을 수밖에 없었다. 이 무렵 조정의 정직한 충신과 어진 이들은 모두 내쫓기고 파직되었다. 봉의와 친한 이가 있다 하더라도 자신의 몸과 집안이나 지키기 바빴으니, 누가 감히 호랑이 수염을 건드리고 용의 비늘을 거스르는 일을 하려 했겠는가? 봉의 자신도 살아 돌아오기를 바라지 않았다. 조(曹)씨와 석(石)씨 두 권신(權臣)은 그가 살아 돌아오지 못할 것임을 알고 더 이상 뒤쫓지 않았다. 그런 까닭에 봉의는 이곳에서 오히려 영욕도 없이 편안하였다. 다만 변방 진수(鎭守)하는 곳에서 약간의 양식을 지급받아 날을 보냈다. 게다가 그는 어사(御史) 출신이라 사람들도 그를 공경하였다. 그래서 변방의 무장들은 모두 병졸들에게 타일러 역참 근방에서 소란을 피워 그를 놀라게 하지 말라 하였고, 때가 되면 예물을 보내 도움을 주기도 하였다. 그리하여 봉의는 역참 안에서 오히려 편안히 지낼 수 있었다.

어느덧 6, 7년이 지났다. 부부 두 사람은 조정에 자녀도 친척도 없으니 그저 하루하루를 보내며 고향 돌아갈 생각은 감히 바라지도 못하게 되었다. 그러던 어느 날, 봉의는 역참에 앉아 무료함을 이기지 못하여 하인 하나를 데리고 산 앞으로 나가 먼 곳을 바라보았다. 한참을 바라보다가 갑자기 동북쪽을 향해 말하였다. "이쪽으로 가면 바로 황도(皇都)로다. 나는 성은을 입어 죽음을 면하고 나머지 목숨을 부지하였다. 지금 이 사막 밖에 있으니 하늘이 높아 구중궁궐까지 소식 전할 길이 없구나. 지금은 그저 마음으로 대궐을 그리며 신하의 직분을 다할 수밖에 없다." 이어 동북쪽을 향하여 두 무릎을 꿇고 거듭 절하며 "만세!"를 불렀다.

하인은 주인이 이러는 것을 보고 적이 우습게 여겼다. 봉의가 절을 마치자 하인이 그를 부축하여 일으키고, 두루 주위를 한 바퀴 둘러보았다. 봉의가 동남쪽을 가리키며 하인에게 말하였다. "저 흰 구름 끝 너머가 내 고향이로다. 지금 나는 날개가 있어도 돌아갈 수 없구나!" 말을 마치고 고개를 숙여 깊이 생각에 잠겼다. 상념에 빠져 있는 사이, 갑자기 고개를 들어 보니 멀리서 경도(京都) 풍모의 장한 사내 십여 명이 말을 달려 곧장 달려오고 있었다. 산 아래에 이르러 사람이 있음을 보고 큰 소리로 외쳤다. "저기 산 위의 어르신, 유림역(榆林驛)의 봉 대인(鳳大人)이 어디 계신지 아십니까?"

봉의는 갑자기 이 물음을 받고 감히 대답하지 못하였다. 하인은 두려워 가슴이 두근거려 조용히 말하였다. "나으리, 큰일 났습니다! 혹시 경중(京中)에 변이 생겨 교위(校尉)를 보낸 것이 아닐까요? 이 모두 나으리께서 방금 절을 올린 탓인가요? 이를 어찌하면 좋겠습니까?" 봉의가 생각하였다. '조정이 사람을 잡으러 온 것이라면 어찌 하나같이 나를 나으리라 부르겠는가? 필시 다른 까닭이 있을 것이다.' 이에 마음을 굳게 먹고 물었다. "당신들은 그분을 무슨 일로 찾소?" 여러 장한들이 말하였다. "저희는 경중(京中)에서 봉 대인께 영전(榮轉)을 알리고, 부임하시도록 모시러 온 사람들입니다."

하인은 이를 듣고 기뻐 어쩔 줄 모르며 말하였다. "나으리, 이번 한 번 절하신 것이 바로 벼슬이 되었군요." 이어 크게 외쳤다. "봉 대인을 찾으신다면, 바로 이분이 아닙니까!" 여러 사내들이 말하였다. "정말 봉 대인이십니까?" 하인이 말하였다. "어찌 아니겠습니까? 설마 제가 당신들을 속이겠습니까?" 여러 장한들은 사실임을 듣고 일제히 말에서 내려 산 위로 올라와 가지런히 무릎을 꿇고 절하며 말하였다. "나으리, 경하드립니다. 관직을 원래대로 돌려받으셨습니다. 속히 어지(御旨)를 받으십시오." 봉의는 감히 태만할 수 없어 이에 여러 사람들과 함께 역참으로 돌아왔는데, 이때 하인은 이미 먼저 왕 부인께 알려두었다. 봉의는 서둘러 향안(香案)을 차려놓고 은혜에 감사를 올린 뒤, 비로소 조서(詔書)를 뜯어보았다. 보니 다음과 같이 씌어 있었다:

신과(新科) 방안(榜眼) 한림원(翰林院) 편수(編修) 신(臣) 단창(端昌)은 이에 간신을 뿌리 뽑고 어진 이를 천거하는 일로 상소를 올리나이다. 성지를 받들어 주청을 살피건대, 조길상(曹吉祥)과 석형(石亨)이 붕당을 이루어 간악함을 일삼고 그 악행이 매우 뚜렷하오니, 즉시 관직을 삭탈하고 심문에 응하게 하소서. 조씨와 석씨의 죄가 이미 용서할 수 없는 것인즉, 봉의(鳳儀)의 변방 유배는 무고한 것이오니 관직을 원래대로 돌려주소서. 해당 부서에서 처리하기 바라노라.

봉의는 다 보고 나서 놀랍기도 하고 기쁘기도 하였다. 기쁜 것은 원래 관직을 그대로 되찾고 고향으로 돌아갈 수 있게 된 것이었고, 놀란 것은 단(端)씨 성의 이 새 방안이 아직 젊어 일찍이 얼굴도 본 적 없고 친척도 아닌데 어찌 목숨을 걸고 나를 구해주었는가 하는 것이었다. 이 은혜와 덕은 진실로 이 세상에 살아있는 한 잊을 수 없을 것이라 하였다. 또 생각하였다. '그는 새로 벼슬에 나선 이로서 담력이 있어 나의 뜻을 이어받았다. 또한 임금을 감동시켜 간신을 제거하였으니, 그 한 조각 충성된 간담은 나보다 열 배나 낫다. 조정에 이런 충신이 있으니 실로 사직의 복이로다.' 이에 왕 부인에게 자세히 알려주었다.

왕 부인 또한 말하였다. "이 분은 평소 일면식도 없으면서 생사를 피하지 않고 우리 두 사람이 영예로이 고향으로 돌아갈 수 있게 해주었으니 정말 고마운 일이오. 훗날 집에 돌아가거든 나무를 깎아 그분의 위패를 모시고 절해도 오히려 부족할 것이오." 이에 부부가 기뻐하며 행장을 꾸렸다. 이 소식이 퍼지자 무장들은 봉의가 칙령을 받들어 입경하여 다시 어사가 된다는 사실을 알고, 평소 공을 속이거나 불법을 저지른 일이 있는 자들은 그가 입경해 뒤에서 이러쿵저러쿵 말할까 봐 두려워 일시에 모두 와서 전송하며 저마다 후한 선물을 내놓았다. 봉의는 노자가 없었으므로 그저 웃으며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 이에 왕 부인과 함께 자리를 털고 일어나 북경을 향해 길을 떠났다. 바로 이러하니:

그 때 먼 곳으로 귀양가니 수심에 어찌할 수 없었는데, 오늘 살아 돌아오니 웃음에 소리가 있도다.

만 번 죽어도 사양치 않음이 큰 절개를 지킴이요, 하루아침에 풀려남이 곧 거듭 태어남이로다.

봉의는 얼마 지나지 않아 도성에 닿았다. 경성에서 아직 먼데도 그 몇몇 심부름꾼들이 일찍이 말을 달려 먼저 성안으로 들어가 각 아문(衙門)과 부(府)와 현(縣)에 알리니, 한편으로는 사람을 시켜 그의 아문을 정돈하고, 한편으로는 성을 나와 맞이하러 나갔다. 이윽고 봉의를 맞아들였다. 봉의는 감히 먼저 아문으로 들어가지 않고 공관(公館)을 빌려 하룻밤을 쉬었다.

이튿날 오경(五更)에 즉시 입조(入朝)하여 사은 조현(朝見)을 올렸다. 조현을 마치고 왕 부인과 함께 아문으로 들어갔다. 잠시 후 동료들이 배견하러 와 저마다 한 차례씩 경하하였다. 봉의가 객을 문 앞까지 전송하고 막 대청 복도로 들어서는데, 문지기가 일찍이 와서 아뢰기를, 신과(新科) 방안 단 대인(端大人)께서 배견하러 오셨는데 지친(至親)이라 하시며 명함이 여기 있다 하였다. 봉의는 방안 단창이라는 말을 듣고, 마침 그를 찾아가 사례하려 생각하고 있었는데 뜻밖에 그가 먼저 왔구나 하였다. 또 지친이라 한다는 말을 듣고 서둘러 명함을 받아보니, 이와 같이 씌어 있었다. '우표질 소서(愚表姪 小壻) 단창(端昌) 돈수백배(頓首百拜)'라 하였다.

봉의는 이를 보고 저도 모르게 크게 놀라며 속으로 생각하였다. '내 친척 중에 이 성씨는 없다. 연가(年家)에도 보이지 않는다. 또 소서(小壻)라 칭하였는데, 나는 시집 간 딸이 없다.' 또 생각하였다. '내 비록 딸 하나를 얻었으나 이미 흩어져 버렸다. 당초 혼인을 약속한 일도 없는데 어찌하여 소서 두 글자를 썼는가?' 한때 마음이 놀랍고 의혹스러워 오히려 접견하기가 불편하였다. 이에 하인에게 말하였다. "나가서 단 대인께 여쭈어라. 우리 나으리께서 은혜가 매우 깊으신데, 처음 도착하여 조정 일이 아직 끝나지 않아 미처 찾아뵙지 못하셨다고. 잠시 후 즉시 친히 찾아가 뵙겠다고 하여라." 하인이 황급히 나와 단 방안의 가마 앞으로 달려가 나으리의 말씀을 그대로 전하였다.

단창은 황급히 가마에서 내려와 웃으며 말하였다. "나는 당신 나으리의 지친인데, 어찌 이리 서먹하게 대하오?" 이어 시비를 따지지 않고 곧장 대청으로 걸어 올라갔다. 하인이 감히 막지 못하고 황망히 봉의에게 알렸다. 봉의는 어쩔 수 없이 급히 나가 맞이하였는데, 멀리서 보니 이 단 방안은 매우 젊어 겨우 18, 9세에 불과하였으나 얼굴은 백설 같고 입술은 붉게 빛나며, 또 오사모(烏紗帽)를 쓰고 대홍(大紅) 단령포(團領袍)를 입어 더욱 빼어나 보였다. 빙긋이 웃으며 걸어와 말하였다. "노백(老伯)께서는 여전히 어리석은 조카 사위를 알아보시겠습니까?" 따라온 하인은 이미 붉은 담요를 펼쳤고, 단 방안은 황급히 의자를 중간에 옮겨 놓고 봉의에게 앉으시기를 청하였다.

봉의는 그가 이렇게 부르는 것을 보고, 또 그가 매우 친밀하게 대하는 것을 보고, 또 그가 간곡히 절하려는 것을 보았으나 한때 도무지 영문을 알 수 없었다. 어쩔 수 없이 황급히 그를 붙잡으며 말하였다. "학생이 변방으로 쫓겨나 반드시 죽을 것이라 여겼습니다. 대은인의 큰 힘으로 하늘을 돌려 흉악한 무리를 제거하고 이 노인을 구해내셨을 뿐 아니라 아울러 원래 관직까지 돌려주셨습니다. 임금에게 보고한 것은 충(忠)이요, 위기를 도운 것은 의(義)이니, 대은인이 이렇게 젊으면서 이 같은 충의를 갖추어 진실로 옛 사람에 비견할 만합니다. 오늘 아침 조현을 마치고 나서 바로 찾아뵈어 한 번 절하려 하였는데, 뜻밖에 대은인께서 도리어 예를 먼저 베풀어 주시니 학생이 몹시 송구합니다." 말을 마치고 황급히 함께 절하려 하였다.

단창이 황급히 부축하며 웃으며 말하였다. "존비(尊卑)의 예는 예로부터 정해진 것인데, 어찌 문란하게 할 수 있겠습니까? 여전히 노백께서 상석에 앉으시고, 어리석은 조카가 배견하는 것이 바른 법도이오이다." 봉의가 말하였다. "잠시 은혜는 제쳐두십시오. 대은인은 옥당(玉堂) 금마문(金馬門)의 한림(翰林) 명류(名流)이신데, 어사에게 절할 이치가 없습니다." 단 방안이 말하였다. "어리석은 조카와 노백은 원래 지친 사이이오니 명분이 관계되어 배견을 청하는 것입니다. 노백께서는 어찌 외인으로 여겨 두루뭉술하게 말씀하십니까? 생각건대 노백께서 일시에 어리석은 조카를 알아보지 못하시는 것 같습니다. 들어가서 노백모(老伯母)를 만나보시지요, 노백모께서는 자연히 알아보실 것입니다."

한편 말하면서 한편 안채로 들어가 부인을 만나려 하였다. 봉의는 더욱 놀라고 당황하여 황급히 잡아끌며 말하였다. "대은인, 잠시 앉으시어 분명히 여쭈어볼 것이 있습니다. 그런 뒤에 만나봐도 늦지 않습니다. 이 학생이 귀양 가 있는 동안 여러 해가 혼미하였고 지난 일이 모두 아득합니다. 그러나 자세히 생각해보건대 어떤 연줄도 귀 성씨는 없었습니다. 비록 딸 하나가 있으나 당년에 실로 누구에게도 허혼한 적이 없는데, 대은인은 어느 문파이시며 소녀와 어디서 언약을 맺으셨는지 자세히 가르쳐주셔야 학생의 의혹을 풀 수 있겠습니다."

단 방안은 물음을 받고서야 빙긋이 웃으며 말하였다. "노백의 의혹이 원래 틀리지 않습니다. 어리석은 조카는 본래 단씨가 아닙니다. 단(端)이라는 성씨는 난리를 당한 뒤 은인의 아버지께 거두어져 따른 성씨입니다. 이전의 가부(家父)는 실은 당씨(唐氏) 성이요, 영애 소저의 혼인 역시 당씨 집안에 있을 때 노백모와 직접 의논하여 정한 것입니다. 단씨 집안의 일이 아니옵니다. 노백께서 노백모께 여쭤보시면 어리석은 조카가 소서라 한 것이 거짓말이 아님을 아시게 될 것입니다."

봉의는 이를 듣고 한참 동안 혼미하다가, 당씨라는 성을 듣고서야 비로소 놀라 물었다. "대은인은 혹 나의 표제(表弟) 당희요(唐希堯) 집안이 아니시오?" 단 방안이 황급히 대답하였다. "당희요가 바로 가군(家君)이십니다." 봉의는 표제 당희요의 아들이라는 말을 듣고 다시 놀라고 또 기뻐하며 황급히 말하였다. "그렇다면 당신은 실로 내 표질(表姪)이구나." 단 방안이 말하였다. "진실로 그렇지 않다면 어찌 감히 망령되이 인척이라 하겠습니까?" 이어 절하려 하였다. 봉의가 말하였다. "잠깐, 너의 백모를 먼저 만나본 뒤에 해도 늦지 않다."

두 사람이 기쁜 마음으로, 봉의가 단창의 손을 잡고 함께 안채로 들어가 크게 외쳤다. "부인, 어디 계시오? 어서 나와 만나보시오." 왕 부인이 황급히 걸어나오자, 봉의는 곧 손으로 단 방안을 가리키며 말하였다. "부인, 이 사람을 알아보시겠소? 바로 나의 조카요, 표제 당희요의 아들이며, 상소를 올려 나를 구해준 은인이오."

부인이 듣고 크게 기뻐하며 황급히 앞으로 나아가 자세히 알아보고 말하였다. "맞습니다, 맞아요. 말씀해주지 않으셨더라면 알아보지 못했을 것입니다." 단 방안은 봉의와 왕 부인에게 윗자리에 앉으시도록 청하고 네 번 절하였다. 왕 부인이 말하였다. "몇 해 이별하고 난 뒤 어진 조카가 이렇게 다 컸구나. 지금 또 황가(皇家)의 한림이 되었으니 숙부와 숙모가 실로 복이 많구나. 다만 어진 조카는 어찌하여 성을 바꾸었는지 모르겠다." 단 방안은 이에 이별한 뒤 남에게 해를 입어 이름과 성을 바꾸게 된 전말을 처음부터 끝까지 다시 한 차례 이야기하였다. 또 입경하여 회시(會試)에 응하면서 부모님을 찾아보았으나 만나지 못하였고, 지금 또 사방으로 사람을 보내 수소문하고 있으나 아직 소식이 없다는 것도 말하였다. 이야기를 마치고 나서 세 사람은 저마다 눈물을 흘렸다.

단 방안이 눈물을 닦으며 또 물었다. "어진 표매(表妹)는 근래 이미 다 자랐을 텐데, 감히 한번 만나뵐 수 있겠습니까?" 왕 부인은 단 방안이 표매를 만나게 해달라 청하는 것을 듣고 저도 모르게 처연히 얼굴빛이 변하였다. "나의 어진 조카야, 아직도 표매를 물으려 하는구나. 내 권하건대 묻지 않는 것이 나을 것이다!" 단창이 듣고 크게 놀라며 말하였다. "백모께서 이런 말씀을 하시니 더없이 이상합니다. 조카가 어찌 묻지 않겠습니까? 그 당시 「영비화(詠飛花)」의 시를 화답하여 노백의 칭찬을 받았습니다. 후에 「영비화(詠飛花)」의 시를 이어 짓고 노백모의 사랑을 받아 부부가 되리라는 말씀도 노백모께서 공언하셨습니다. 「장상사(長相思)」의 사(詞)로 또 은밀히 표매와 맹약을 맺었습니다. 하물며 소조(小姪)는 이 맹약이 있었기에 전패유리(顛沛流離) 구사일생(九死一生)의 때에도 잠시도 감히 잊지 않았습니다. 과거에 급제하여 득의한 때에도 감히 저버리지 않았습니다. 이제야 겨우 노백과 노백모가 새외(塞外)에서 돌아오시고, 소조도 다행히 등과(登科)하였거늘, 어찌하여 표매에 대해서는 도리어 물어서는 안 된다 하십니까? 정말 이상하고 이상합니다!"

왕 부인은 그가 이토록 애절하게 말하는 것을 보고 저도 모르게 목 놓아 통곡하며 단창을 한 손으로 잡고 말하였다. "나의 유정유의(有情有義)한 조카야! 네 표매를 내 이미 허혼하였는데, 어찌 물어서는 안 된다 하겠느냐? 다만 가여운 것은 네가 너무 늦게 물어, 지금은 물어봐도 소용이 없구나." 단창이 놀라 말하였다. "어찌하여 소용이 없습니까? 백모께서 빨리 조카에게 말씀해주십시오." 왕 부인이 다시 통곡하며 말하였다. "나의 효순한 딸아! 나의 가련한 딸아! 오직 너와 함께 가고 함께 돌아오기를 바랐건만, 누가 알았으랴, 반길에서 잃어버려 이토록 나를 괴롭힐 줄을!" 봉의도 곁에서 저절로 눈물을 흘리며 흐느꼈다.

단 방안은 이를 보고 황급히 놀라 물었다. "두 어른께서 이렇듯 슬퍼하시니, 혹 표매에게 무슨 불측한 일이 생긴 것입니까?" 왕 부인은 그저 울 뿐 말을 잇지 못하였다. 봉의가 말하였다. "내가 연이어 좌천을 당하며 딸을 데리고 역참으로 향하다가 중도에 이르렀는데, 뜻밖에 천웅관(天雄關)에서 병변이 일어나 병사와 백성들이 뒤엉켜 소란을 피우는 사이 딸을 잃었다. 또 사나운 자에게 짓밟혀 죽었는지, 아니면 다른 곳에 떠돌고 있는지 알 길이 없구나. 이 늙은 부부로 하여금 울고 또 울며 그리워하고 또 그리워하여 지금껏 혼백이 편치 않구나."

말을 마치자 왕 부인은 더욱 통곡하였다. 단 방안은 이를 듣고 놀라 안색이 흙빛이 되고 사지가 풀렸다. 주르르 눈물이 굴러 흘러내리는 것을 금하지 못하고 말하였다. "소저여! 소저여! 어찌 나와 그대의 박명(薄命)이 이와 같단 말인가! 아직 기억하노니 달빛 아래에서 시를 이어 짓고 맹약을 맺으며 생사를 같이하리라 다짐하였건만, 이제 마침내 그 말이 허언이 되었단 말인가! 수년 간 그리워하고 잠자리에서도 잊지 못하였던 것이 모두 헛되이 흘러가버리는 것이 아니란 말인가?" 말을 마치고 슬피 통곡하며 흐느껴 소리를 내지 못하였다.

봉의와 왕 부인은 그가 이러는 것을 보고 진실로 그를 불쌍히 여겼다. 이에 눈물을 닦고 스스로 울음을 그치며, 돌아서서 그를 위로하였다. "소녀의 복이 박하여 어진 조카의 봉관(鳳冠)을 받들지 못하게 되었다. 지금 어진 조카는 아직 청춘이니 자연히 복된 인연이 있을 것이다. 제발 마음을 터놓으시게." 단 방안이 말하였다. "조카는 오직 소저를 위하여 떠돌며 병을 안고 살기를 바라지 않을 지경이었습니다. 지금 죽지 않은 것은 실로 이 혼인 인연을 이루기를 바랐기 때문입니다. 이제 뜻밖에 영원한 이별이 되었군요. 그 당시 조카가 소저와 맹약을 맺으며 원래 남자는 의를 지키고 여자는 절개를 지키자 하였으니, 지금 소저의 생사를 막론하고 저는 오직 마음을 굳게 하여 장가들지 않을 뿐입니다!"

봉의가 어쩔 수 없이 위로하며 말하였다. "어진 조카가 이미 난리 속에서 죽지 않았거늘, 어찌 소녀가 하늘 끝 어디엔가 있지 않음을 알겠는가? 소녀가 어진 조카와 이렇듯 혼인을 원하는 사사로운 마음이 있었다면, 그 한 결 같은 진심을 하늘이 결코 저버리지 않을 것이다! 게다가 세상의 기기괴괴한 일이 적지 않으니, 혹 여전히 서로 만날 수 있는 날이 있을지도 모르지 않겠는가? 또한 어진 조카가 비록 한림에 있으나 실로 기다릴 나이가 되어 있다. 지금 내가 이미 돌아왔으니 바로 수소문할 수 있을 것이다." 단 방안은 이 지경에 이르러 어찌할 도리가 없어 눈물을 거두고 작별 인사를 하려 하였다. 왕 부인이 붙잡으며 말하였다. "우리 세 사람이 경중(京中)에 있으니 실로 외롭고 쓸쓸합니다. 조카는 이리로 이사 와 함께 살며, 함께 방법을 의논하여 찾아봅시다." 단 방안도 차마 떠나기 어려워 어쩔 수 없이 하인을 시켜 거처의 행리(行李)를 가져오게 하여 머물게 되었으니 더 이상 기록하지 않겠다.

한편 단거와 창전 두 사람은 집에서 생사의 갈림에서 다시 만난 것을 여기고, 또 지난날 두 자녀 간의 인연을 생각하니 더욱 예전보다 친밀해졌다. 주천작까지 두 사람의 반상(伴常)이 되어 종일 산을 오르고 물을 찾으며, 달을 보고 꽃을 찾아다녔다. 혹 네가 청하고 혹 내가 초대하며 세 사람은 매우 득의하게 지냈다.

어느 날 함께 배 위에서 주천작이 말하였다. "당초 나는 당신 두 사람이 사돈을 맺어 왕래하기를 바랐는데, 뜻밖에 오늘날 피차 흩어져 빈 꿈이 되어버렸소. 지금 내게 한마디가 더 있는데, 다만 두 분이 들어주실지 모르겠소." 창전과 단거가 한 목소리로 말하였다. "우리는 옛 친구이거늘, 어진 형이 말씀하시면 감히 공손히 듣지 않겠습니까?" 주천작이 말하였다. "근래 들으니 두 분 모두 자녀가 있다 하더군요. 단 형 영식은 비록 크게 출세하였으나 아직 아내를 맞이하지 않았고, 창 형 영애는 비록 이미 장성하였으나 아직 허혼하지 않았다 합니다. 어찌 예전처럼 두 분이 다시 사돈을 맺어 친정이 끊이지 않도록 하지 않으십니까? 예전에는 창씨 아들과 단씨 딸이었는데, 지금은 창씨 딸과 단씨 아들이 되었으니, 음이 양으로 바뀌고 양이 음으로 바뀌었군요. 반복하여 짝을 지으면 어찌 또 하나의 기이한 인연이 되지 않겠습니까? 두 분의 생각은 어떠하신지요?"

두 사람은 이를 듣고 자세히 생각하더니 모두 기꺼이 말하였다. "주 형의 묘론이 나오면 나올수록 더 기이하오. 참으로 중매를 잘하신다 하겠소." 주천작이 물었다. "영식 선생은 언제쯤 영귀(榮歸)하시겠소이까?" 단거가 말하였다. "전날 소자의 편지에 이미 멀지 않아 휴가를 얻어 친정 문안을 드리러 오겠다 하였으니, 아마 멀지 않을 것이오." 주천작이 이어 한마디 덧붙였다. "오늘 이렇게 말씀이 오갔으니, 영식이 영귀하시면 소제가 혼인 잔치 술을 얻어마시게 되겠군요." 세 사람이 크게 웃었다. 바로 이러하니:

옛 사돈을 고쳐 새 사돈 삼으려 하니, 누가 말하리 새 사돈이 옛 사람임을.

하늘의 뜻 뒤얽혀 사람이 알지 못하나니, 한 번 봄을 두 번 봄으로 알아보는구나.

한편 조씨와 석씨 두 사람은 단 방안의 상소로 파직된 뒤, 언관(言官)들도 저마다 하나의 상소, 나의 소장을 올리더니, 며칠이 못 되어 성지를 받들어 처형되었다. 또한 두 사람의 예전 아부하던 당우(黨羽)들을 조사하여 삭직(削職)하고 처벌하니, 상용(常勇)은 일찍이 관직을 삭탈하고 죄를 물었다. 당사자들은 봉의의 충의를 기려 쓸 만하다 하여 그를 회양염원(淮揚鹽院)에 임명하여 수년간의 고초에 보답하였다. 이윽고 명이 내려지자 봉의는 사은 사조(辭朝)하고 문빙(文憑)을 받아 왕 부인과 함께 길을 떠났다.

단 방안은 봉의가 외임(外任)을 받아 머지않아 길을 떠나는 것을 보고, 스스로 경중에서 무료함을 생각하다가 문득 생각하였다. '나도 함께 가서 친정 문안을 드리고 돌아오는 것이 낫지 않겠는가?' 이에 상소를 하나 올려 친정 문안을 위한 휴가를 청하였다. 소장이 올라가자 곧 윤허가 떨어졌다. 단 방안은 윤허를 받고 기쁜 마음으로 봉의·왕 부인과 함께 일제히 경성을 떠났다. 바로 이 일로 인하여 분교(分敎)하니:

쇠 신발을 다 닳도록 찾아 헤맨 끝에, 마침내 배우자를 이루게 되리라.

뒷일이 어떻게 될지 모르겠는가? 다음 회를 보면 알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