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4회 노지현(老知縣)은 성품이 오만하여 하루아침에 귀향하고 소방안(小榜眼)은 재주가 높아 세 차례 급제하다
사(詞)에 이르기를:
마음은 계수나무 같고, 성품은 생강 같아, 늙도록 변치 않도다.
한 자리 벼슬에 낙락하여 탐장하지 않으니, 떠나간들 또 무슨 상관이랴.
재주는 샘처럼 솟구치고, 학식은 산처럼 높으니, 붓을 내리면 절로 문장이 이루어지도다.
만 마디 말을 순식간에 지어 밝은 빛에 바치니, 어찌 이름이 세상에 드높이지 않으리오.
「희천앵령(喜遷鶯令)의 곡조에 맞추어」
한편, 단거(端居)는 왕성미(王成美)와 작별하고 사저(私衙)로 돌아와, 곧 류형존(柳刑尊)이 왕생원(王生員)을 중매로 내세워 자기 아이를 사위로 삼고자 하되 자신이 이미 사양하였고, 다만 아들이 공명을 이룬 뒤에야 의논할 수 있다고 말하였노라 하는 말을 자세히 한 번 이야기하였다. 단창(端昌)이 듣고 마음속으로 몰래 크게 놀라며 생각하였다. '나와 봉소저(鳳小姐)는 이미 생사의 언약을 맺었으니, 오직 공명을 이루기만 기다려 곧 그 종적을 찾아 낙창파경(樂昌破鏡)의 인연을 완성하려 하였다. 어찌 그가 공명을 이룬 뒤에 혼인을 의논하도록 허락할 수 있단 말인가?' 이에 급히 말하였다. "아버님께서는 어찌 아들에게 이미 봉씨 집안과의 혼약이 있다고 바로 말씀하시어, 그 망령된 생각을 끊어 버리지 않으셨습니까?" 단거가 말하였다. "류형존이 너와의 혼인을 원하는 것은 한결같이 아름다운 뜻이다. 더욱이 그는 나의 상관이기도 하니, 어찌 갑자기 그 뜻을 거스를 수 있겠느냐? 공명을 이룬 뒤에 다시 의논하자 미룬 것이 이미 사양의 말이나 다름없다. 그가 뜻을 알아채고 포기한다면, 어찌 흔적 없이 양쪽 모두 편하지 않겠느냐? 만약 공명을 이룬 뒤에 다시 거론한다면, 그때 이미 다른 집에 정혼하였다고 직접 말하더라도 당돌하다는 핀잔을 듣지 않을 것이다." 단창이 듣고 불쾌하여 앙앙불락(怏怏不樂)하였다. 이에 시 한 수를 지어 자신의 뜻을 밝혔다. 그 시에 이르기를:
명화(名花) 흩어지는 한이 이루 다할 수 없으니, 어찌 차마 들덩굴과 한들한들한 등나무에 인연을 맺으리오.
이 달밤의 슬픔을 누구에게 말하리, 홀로 봄바람 곁에 서서 스스로의 괴로움을 달래도다.
소식은 아득하고 소리마저 잠겨 부질없이 눈물만 있으니, 꿈속을 오가는 혼백도 끝내 의지할 데 없도다.
마음의 말이 단단히 매여 있음은 뜻의 말(意馬)이 굳게 묶여서가 아니니, 오래도록 가슴 속에 적승(赤繩)이 이어져 있기 때문이로다.
얼마 지나지 않아 종사(宗師)가 녹과(錄科)를 거행하니, 단창은 일찌감치 과거의 자격을 얻었다. 또 얼마가 지나 시험 날짜가 임박하매, 단거는 이씨(李氏)를 불러 아이의 행장을 꾸리게 하고 사람을 시켜 수행하도록 하여 응시하러 가게 하였다. 단창은 이에 부모에게 하직을 고하고 호광성성(湖廣省城)에 이르러 거처를 정하였다. 얼마 지나지 않아 초팔일(初八日) 첫째 날의 시험이 되었다. 단창은 여러 사람들과 함께 입장하여 시제(試題)가 내려오기를 기다렸으니, 참으로 재주가 높아 양보함이 없었다. 바람과 비가 갑자기 몰아치듯 속히 초고를 잡고, 토끼가 뛰고 매가 내리꽂히듯 재빠르게 정서(淨書)하였다. 다른 이들은 아직 미간을 찌푸리며 붓을 들고 있는데, 단창은 이미 답안을 제출하고 시험장을 나왔다. 몹시 득의양양하였다. 둘째 날, 셋째 날의 시험도 이와 같았다. 시험이 끝나자 곧 하인과 함께 의성(宜城)으로 돌아왔다.
단거가 시험장에서 쓴 글을 가져다 보니, 과연 편편마다 기운이 가득하고 신채(神采)가 충만하여 기쁨을 이길 수 없었다. 단창은 관아에 조용히 머물며 소식만 기다렸다. 며칠이 지나지 않아 의성현에 벌써 요란하게 소식이 전해지니, 단지현(端知縣)에게 와서 아뢰었다. "어르신, 하례드립니다. 대공자께서 이미 높이 합격하셨습니다!" 단거는 소식을 듣고 급히 보고서를 가져다 보았다. 아들이 이미 경魁(經魁) 이등으로 합격하였음을 보고 크게 기뻐하여, 마침내 보고를 전한 이를 상주고, 단창으로 하여금 여전히 하인을 데리고 성으로 가서 주고관(主考官)과 방사(房師)에게 배알하도록 명하였다. 모두들 그가 나이 불과 열일곱, 여덟 살이요, 또 관옥(冠玉)처럼 빼어난 용모이며 높은 성적으로 합격하였음을 보고, 배알할 때 매우 후하게 대우하였다. 단창은 또 동년(同年)들을 만나 성에서 며칠 바쁘게 지내다가 비로소 돌아왔다.
한편, 류성(柳星)은 왕성미가 혼인을 의논한 뒤로 마음을 놓고 시험 뒤의 소식을 기다리고 있었다. 팔월 초에 이르러 갑자기 그가 입렴(入簾)하여 시권(試卷)을 열람하게 되었다는 소식을 들으니, 기뻐하며 단창을 합격시키면 혼인을 이루기가 더욱 쉬우리라 생각하였다. 뜻밖에 시험장에서 방을 나누매 그가 외렴(外簾)으로 배정되어 크게 실망하였다. 이제 단창이 거인(擧人) 이등으로 합격하였다는 소식을 듣고 마음속으로 크게 기뻐하며, 이에 사람을 시켜 왕성미를 청하여 와서 말하였다. "단신귀(端新貴)가 이미 용문(龍門)을 뛰어넘었소. 그대의 전날 말이 바로 지금을 두고 한 것이오."
왕성미는 감히 게으르지 못하여, 이에 성대한 예물을 갖추어 단현존(端縣尊)을 찾아뵙고 하례하였다. 단거는 거듭거듭 사양하다가 부득이 받았다. 왕성미가 말하였다. "생원이 오늘 이리 온 것은 첫째로 하례하기 위함이요, 둘째로 공자의 혼사 때문이옵니다. 지난번에 일찍이 노부모 대인(大人)의 허락을 입었나이다. 이제 공랑선생께서 이미 공명을 이루셨으니, 생원이 오늘 약속을 지켜 기꺼이 중매를 서고자 하나이다." 단거가 듣고 놀라며 말하였다. "류형존의 명을 어찌 감히 따르지 않겠소이까? 다만 소자의 인연이 박하여 전부터 이미 정혼한 곳이 있사옵니다. 형존의 아름다운 뜻을 저버리게 되어 죄송하오니, 그대께서 저를 대신하여 한 말씀 올려 주시기 바라옵니다."
왕성미가 듣고 크게 놀라며 물었다. "올봄에 류 노사(老師)께서는, 공자께서 아직 가례(嫁禮)를 올리지 않으셨음을 익히 알고 남몰래 사모하는 마음을 품으시어, 저를 통해 두 집안의 좋은 인연을 맺고자 하셨나이다. 다시 노부모 대인의 약조를 입어 공명을 이룬 뒤에야 의논하기로 하셨는데, 이제 노부모 대인께서 갑자기 정혼이 있다 말씀하시니, 어찌 농담이 아니옵니까?" 단거가 말하였다. "혼인 대사(大事)를 형존 상대(上台)께 일시에 직접 말씀드리기 불편하여, 공명을 이룬 뒤로 미루어 회답하였을 뿐이니, 어찌 농담이라 하겠소?" 왕성미가 또 말하였다. "그러면 청하건대, 공랑의 혼약이 류공보다 먼저 이루어진 것인지 아니면 나중인지, 또 어느 집안과 정혼하셨는지, 중매는 누가 섰는지 자세히 말씀해 주신다면 생원이 전달하기에 편하겠나이다." 단지현이 말하였다. "소자는 어릴 때부터 이미 봉어사(鳳御史)의 버리지 않으심을 입어 그 영애(令愛)를 배필로 허락받았소. 중매를 들여 혼약을 맺은 지 오래되었소이다. 다만 본현(本縣)이 이곳에 대죄(待罪)하고 있고, 봉공(鳳公)께서는 또 먼 변방으로 유배되셔서 아직 납채(納采)를 행하지 못하였을 뿐이오." 왕성미는 단지현의 말이 확실하고 근거가 있음을 보고, 부득이 하직하고 류성에게 돌아가 보고하였으며, 여기서는 잠시 이야기를 멈추기로 한다.
한편, 단창은 거인에 합격한 뒤 마음속으로 매우 기뻐하며, 즉각 상경하여 소식을 수소문하지 못함을 한스러워하였다. 뜻밖에 종일토록 이 동년들의 왕래에 시달려 한 시도 한가하지 못하니, 부득이 부모에게 말씀드렸다. "아들이 다행히 일등을 하였으나, 상경하여 회시(會試)를 보지 않을 수 없사옵니다. 집에 있으면 응접하는 일이 너무 번거로우니, 일찍 상경하여 절에 조용히 머물며 한가로이 서사(書史)를 익혀 학업에 매진함이 나을 듯하옵니다. 임박하여서야 가게 되면 허겁지겁 달려가게 되니 마땅치 않사옵니다."
단거와 이씨는 그 말이 이치에 맞다 여겨 부득이 채비를 갖추어 하인 단경(端敬)과 단근(端勤)을 딸려 보내 길에서 시중들게 하였다. 단창은 이에 부모에게 하직 절을 올리고 하인을 이끌고 길을 떠났다. 노중에 장강(長江)을 거슬러 오르면서 단창은 마음속으로 생각하였다. '내가 이제 상경하니 임청(臨淸)을 지나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그때 당가(唐家) 부모를 찾아뵐 수 있으리라. 하지만 몇 해를 헤어져 있었으니, 두 분이 어떤 상황이신지 알 수 없구나. 만나 뵈었을 때 나의 옛 모습을 기억하지 못하실까 두렵기도 하다! 자세히 설명하면 한바탕 놀라고 기뻐하실 것이다.' 이런 생각이 들자, 당장에라도 날아가고 싶은 마음이 간절하였다. 이에 뱃사공에게 분부하였다. "내게 급한 일이 있어 일찍 임청에 닿아야 하니, 힘껏 빨리 가 주시오." 뱃사공은 공자의 분부를 받고 감히 지체하지 않았다.
얼마 지나지 않아 산동(山東)의 나루터에 이르니, 하인이 일찌감치 교마(轎馬)를 세내어 북경을 향해 나아갔다. 또 며칠을 가다가 단공자가 물었다. "앞으로 임청까지 얼마나 남았느냐?" 단경이 아뢰었다. "앞으로 하루 길밖에 남지 않았사옵니다." 다음 날이 되자 단공자는 가마 안에서 눈을 부릅뜨고 당장에라도 닿기를 바랐다. 이에 가마에서 내려 단경의 말을 탔으니, 가마 안만큼 편안하지는 않았으나, 말 위에서 바라볼 수 있어 마음의 번뇌를 흩을 수 있음이 다행이었다. 어찌하랴, 가면 갈수록 멀어지는 듯하더니, 해가 산마루에 지고서야 마침내 임청에 이르렀다. 찾아뵙기에 불편한지라 부득이 여관에 묵었다. 단창은 밤새 잠들지 못하였다.
다음 날 이른 아침, 밥 먹기도 기다리지 못하고, 단근을 여관에 남겨 행장을 지키게 하고는, 스스로 단경만 데리고 문을 나서 길을 따라 찾아 나섰다. 어찌하랴, 임청은 땅이 넓고 사람이 많아 거리가 복잡하였다. 단창이 이곳을 떠난 지 몇 해밖에 되지 않았으나 임청에 있을 때 나이도 어렸고 또 그리 외출도 하지 않았으니, 어찌 당시의 집 모양과 골목 길을 기억할 수 있겠는가? 이에 어리둥절하여 이리저리 걸어 다니기만 하였다. 단경이 물었다. "상공께서는 이리저리 다니시니, 누구를 찾으시는지 모르겠사옵니다." 단창이 말하였다. "나에게 지극한 친척 한 분이 이곳에 계시니, 급히 얼굴을 봬야겠다." 단경이 말하였다. "상공께서 친척을 찾으신다면 이름과 사는 곳이 없사옵니까?" 단창이 말하였다. "내 어릴 때 이곳에 살았으니 골목은 기억이 날 것도 같았는데, 뜻밖에 동쪽도 아니고 서쪽도 아니어서 완전히 잊어버렸구나." 단경이 말하였다. "상공께서 사는 곳을 모르신다면, 이름만 기억하고 계시면 찾기 쉬울 것이옵니다." 단창이 말하였다. "이 친척의 성은 당씨(唐氏)다." 단경이 말하였다. "그러면 물어보기 좋겠습니다." 이에 만나는 사람마다 물었더니, 앞쪽에 있다는 사람도 있고, 뒤쪽을 가리키는 사람도 있었다. 두 사람이 마침내 찾아가면, 또 전혀 다른 당씨였다.
단창이 다급해서 어쩔 줄 모르다가, 길가에 한 노인이 햇볕을 향해 앉아 짚신을 삼고 있는 것을 보았다. 이에 가까이 다가가 물었다. "어르신께 여쭙겠습니다. 이 근처에 당씨 성을 가진 분이 계시는데 어디에 사시는지요?" 그 노인은 그저 고개를 숙이고 짚신 삼는 일만 할 뿐, 전혀 대답하지 않았다. 단경이 말하였다. "아마 이 노인이 귀가 좀 어두우신 모양입니다. 상공께서 크게 물어보시지요." 단창은 어쩔 수 없이 한 걸음 더 다가가 손으로 살며시 그의 등을 두드리며 말하였다. "저는 길을 지나는 사람인데 당가(唐家)를 찾고자 하니, 아시는지요?"
그 노인이 갑자기 누가 묻는 것을 보고서야 비로소 손에 든 짚신을 멈추고 고개를 들어 보니 한 상공이었다. 급히 몸을 일으키며 말하였다. "황공하고 황공합니다. 탕(湯)씨는 바로 앞에 있으니, 제 친척이옵니다." 단창은 그가 과연 귀머거리임을 알고, 부득이 다시 물었다. "제가 묻는 것은 당(唐)이지 탕(湯)이 아닙니다." 그 노인이 히죽히죽 웃으며 가리켰다. "이쪽으로 꺾어 들어가 세 번째 집이 바로 낭(郎)씨 집입니다." 단창도 웃음을 참지 못하며 큰 소리로 말하였다. "제가 묻는 것은 당(唐)이지 낭(郎)이 아닙니다!"
그 노인이 그제야 알아듣고, 히죽히죽 웃으며 말하였다. "알고 보니 당(唐)씨로구먼. 하지만 이 근방에는 당씨 성이 꽤 많다오. 어느 당씨를 묻는 것인지 모르겠군요." 단창이 말하였다. "제가 묻는 것은 의원(醫員)을 업으로 삼는 당희요(唐希堯)입니다!" 그 노인이 듣고 급히 물었다. "소상공, 이 당희요를 어찌 찾으시는지요?" 단창이 말하였다. "그분은 저의 지극한 친척으로 여러 해를 만나지 못하였기에 찾아뵙고자 합니다." 그 노인이 말하였다. "이 당희요는 안 계십니다."
단창이 안 계신다는 말을 듣고 깜짝 놀라며 물었다. "왜 안 계신 것입니까? 혹시 돌아가신 것은 아닌가요?" 그 노인이 말하였다. "아미타불, 어찌 사람에게 저주를 내리시는지! 불쌍한 것. 상공께서 다른 사람에게 물으셨다면 모를 것이오. 나 늙은이는 이 당희요와 어릴 때부터 서로 알고 지냈는데, 가련하게도 그에게 아들이 없어 간신히 양자를 얻었더니, 또 남에게 모해(謀害)를 당하여 죽고 말았다오." 단창이 급히 물었다. "왜 남에게 모해를 당하여 죽었는지 아시는지요?" 노인이 말하였다. "다름 아니라 그에게 당도(唐涂)라는 조카가 있어 숙부의 재산을 빼앗으려 하였는데, 숙부가 들인 이 양자가 매우 총명하여 부(府)와 현(縣)에서 모두 장원을 하니, 조카의 시기를 샀다오. 입장(入場)하는 날을 기다려 날이 채 밝기도 전에 당도 부자가 흉악한 짓을 저질러 성 밖으로 끌어내어 때려죽였다오. 당희요 집에서는 전혀 알지 못하였다오. 가련하게도 그 내외는 밤낮으로 그리워하며 일곱여덟 차례는 죽을 뻔하고 또 울다가 죽을 뻔하였다오."
단창이 말하였다. "당도가 모해한 일을 그가 어찌 당신에게 말했겠습니까?" 그 노인이 말하였다. "그가 어찌 사람에게 말하려 하였겠소? 다만 뒤에 당가(唐家)의 은자를 가로채어 두 아들이 고르게 나누지 못해 다투며 떠들다가 사실이 드러난 것이오. 내가 그 사이에서 조정하였기에 알게 된 것이라오." 단창이 또 물었다. "그런 일은 그렇다 치고, 이제 당희요께서는 어떻게 지내시는지요?" 노인이 말하였다. "뒤에 조카가 건달들과 짜고 인명(人命) 사건을 그에게 뒤집어씌워, 잘 있던 가산(家産)을 몽땅 날려 버리고 몸붙일 곳이 없게 되었다오. 근래에 들으니 아랫길로 친척에게 의탁하러 갔다 하더이다."
단창이 또 물었다. "이제 어느 곳에 계신지 아시는지요?" 노인이 말하였다. "그 조카를 피해 조용히 떠났으니, 어찌 행선지를 말했겠소?" 단창이 또 물었다. "그 조카는 이제 어떻게 되었습니까?" 노인이 말하였다. "악인에게는 하늘의 응보가 있는 법, 그는 온 집안이 역병에 걸려 죽고 말았다오." 단창이 또 물었다. "이 근처에 봉어사(鳳御史) 어른이 계셨는데, 지금 집에 계신지요?" 노인이 말하였다. "이 봉 어른은 몇 년 전에 원수들의 함정에 빠져 이미 관외(關外)의 역승(驛丞)으로 좌천되시어 가속(家屬)과 함께 떠나셨다오." 단창이 또 물었다. "그 집에는 아직 사람이 있는지요?" 노인이 말하였다. "봉 어른이 떠나신 뒤로 하인들이 주인 없이 각기 사방으로 흩어지고, 집과 재산은 모두 남에게 빼앗겼다오."
단창은 두 집안이 모두 이러함을 듣고 참으로 울 수도 웃을 수도 없어 연거푸 몇 번 탄식하였다. 이 노인이 한나절이나 말을 한 것을 보고 하인에게 은자 다섯 푼을 꺼내어 그에게 상으로 주게 하였다. 그 노인은 은자를 받고 마음속으로 기뻐하며 반절 정도 읍(揖)을 올리며 말하였다. "상공의 상사(賞賜)에 감사드립니다. 다음에 친척을 찾으시려거든 저한테만 오십시오." 단창은 허탕을 치고 어찌할 수 없어 속으로만 흐느끼며 탄식하였다. 부득이 여관으로 돌아와 또 하룻밤을 보냈다. 이 밤 여관에서야말로 참으로 이러하였다:
다시 와서 옛이야기 나누기를 바랐더니, 다시 옴이 도리어 허사임을 몰랐도다.
생각하고 또 생각하매 마음이 부서질 듯, 어찌 꿈속 혼백인들 편안할 수 있으리오.
다음 날, 단창은 부득이 길을 떠났다. 오래지 않아 장안(長安)에 이르러 사람을 시켜 거처를 구하고 행장을 정돈하였다. 마음속으로는 비록 희요(希堯)를 그리며 울적하였으나, 시험 날짜가 임박하였기에 부득이 공부에 힘쓰며 기다렸으니 이야기는 잠시 멈추기로 한다.
한편, 왕성미는 단지현에게 이러한 말을 들은 뒤 급히 류형존에게 가서 자세히 아뢰었다. 류성이 듣고 크게 노하여 말하였다. "단지현이 심히 무례하도다! 나는 형청(刑廳)의 관원인데 너 같은 지현과 혼인을 맺는다 해도 그것이 너를 욕되게 함이 아니다. 나 진사(進士) 출신의 천금 소저(小姐)가 너 이 늙은 공생(貢生)의 아들과 혼인을 맺는다 함이 어느 쪽이 가볍고 어느 쪽이 무겁단 말이냐? 어찌 세상 인심을 조금도 모른단 말인가? 내가 사랑하는 것은 다만 이 어린 소의 새끼일 따름이라. 그는 봉의(鳳儀)와 약조가 있다 하는데, 더욱이 이 봉의는 조정을 거슬러 관외(關外)에 수년을 유배되어 있거니, 이 혼약이 어디서 비롯된 것인가? 봉의와 약조가 있다면 처음 혼의가 오갈 때 왜 분명히 말하지 않았느냐? 오늘 와서 또 얼버무리며 핑계를 대는가? 이는 아들이 새로 합격하여 나와 혼인 맺기를 달가워하지 않기에 이리저리 구실을 삼아 나를 능멸하는 것이다. 너는 지금 내 관할 아래 있으면서 어찌 이리 가당찮은가? 그만두자. 오늘 다시 그대에게 수고를 끼쳐 가서 그에게 말하여라. 봉가(鳳家)와의 혼약이 있든 없든 간에, 설사 봉의의 딸이 있다 하더라도 이미 관외에 여러 해이니 생사도 모르는 터이다. 근래에는 어느 역승의 아들에게 시집갔는지도 모른다. 설사 이 여자가 아직 있다 하더라도 변방의 바람과 서리에 꽃다운 모습이 수척해졌을 것이니, 옥당금마(玉堂金馬)의 배필로는 감당치 못할 것이다."
왕성미는 어쩔 수 없이 또 단지현을 찾아가 자세히 아뢰며 말하였다. "이 혼인은 실로 문당호대(門當戶對)이옵니다. 더욱이 류 노사의 영애는 용모가 아름답고 어질어 공자의 배필로 충분히 감당할 만하옵니다." 단지현이 말하였다. "소자가 떠날 때 봉가의 혼사는 한 올도 이미 정해진 것이니 죽어도 바꾸지 않겠다 하였소이다. 결코 부귀로써 마음을 바꾸지 않겠다고 하였소. 이는 소자가 의리를 지키는 점이니 본현도 강요할 수 없소이다. 어찌 류형존은 살피지 않고 기어이 파혼하고 새로 혼인케 하려 하는가? 풍화(風化)에 관계되니 마땅히 나올 바가 아니오. 설사 강요할 수 있다 하더라도 남녀가 서로 흠모해야 하는 것이오. 강박하여 이루게 된다면 아마 부모의 교훈이라 할 수 없을 것이오." 왕성미가 부득이 말하였다. "노부모 대인과 공랑의 소견이 물론 틀리지 않사옵니다. 하오나 생원의 생각으로는, 사환의 길이 좁아 좋은 일이 이루어지지 않을까 진실로 우려되옵니다. 류 노사께서 부끄러움이 노여움으로 변하시면 노부모 대인께 해가 될 수도 있사옵니다." 단거가 크게 웃으며 말하였다. "관직을 잘 수행하는지 여부는 스스로 공론이 있는 법이오. 그대가 나를 위해 근심할 필요가 없소이다."
왕성미는 단지현이 완고하고 고집스러움을 보고 부득이 돌아와 자세히 류성에게 아뢰었다. 류성이 발끈 크게 노하여 말하였다. "내가 좋은 뜻으로 그를 대했더니, 그는 도리어 무례하게 나를 대하는구나! 그는 한낱 공생인데, 무슨 힘이 있단 말인가? 상대(上台)가 발탁하여 주었기에 지금껏 편안하게 있었던 것이다." 이에 말하였다. "그대는 돌아가시오. 내게 스스로 방도가 있소. 그가 나에게 빌어야 할 경우가 오지 않을 수 없소이다. 어쩌면 스스로 와서 혼인을 청할지도 모르니, 이 또한 천천히 두고 보사이다." 왕성미는 양쪽이 어긋나 매우 재미없게 느끼며 하직하고 물러났다. 류성은 조용히 마음속으로 꾀를 생각하여 단지현을 한 번 골탕 먹혀 그로 하여금 후회하게 만들고자 하였다.
한 달여가 지나지 않아 마침 안찰사(按察使)가 성(省)에 이르니, 여러 형관(刑官)들이 나아가 뵙자 즉석에서 이미 결판이 난 것과 아직 결판이 나지 않은 적년(積年)의 의심스럽고 어려운 문서들을 여러 형관들에게 내려 보내며 하나하나 심리하여 보고케 하였다. 여러 형관들이 모두 놀라며 서로 얼굴만 바라볼 뿐 감히 말하지 못하였다. 이때 류형관이 앞으로 나아가 무릎 꿇고 아뢰었다. "의성현지현 단거는 평소에 판결을 잘한다 칭해지옵니다. 형관이 데려가서 그로 하여금 심리하여 보고케 하면 마땅하지 않음이 없을 것이옵니다."
안찰사가 듣고 곧 류성에게 내려 보내어 데려가게 하였다. 류성은 관아로 돌아와 쉬운 것만 자기가 남겨 심리하고, 의심스럽고 심리하기 어려운 것들은 모두 의성현지현 단거로 하여금 심리하여 결정토록 하여 도(道)에 보고케 하였다. 단거는 부득이 한 건 한 건 자세히 심리하여 류형청에게 보내면, 류성이 또 되돌려 보냈다. 서너 건을 심리하여도 아직 결말이 나지 않았는데, 류성이 또 수십 건을 보내오니 며칠 지나지 않아 안건이 산더미처럼 쌓였다. 단거는 부득이 천천히 심리해 나갔다. 어찌 당하랴, 류성이 툭하면 안대(按台)의 일이라 지체할 수 없다며 빠른 속도로 사람을 보내어 독촉하였다. 단거로 하여금 낮에도 안심이 안 되고 밤에도 편하지 못하게 만들어, 한 달여를 심리하고 나서야 점차 실마리가 풀렸다.
뜻밖에 류성이 또 많은 건수를 보내오자 단거는 생각하였다. '안대의 심리는 본래 형존의 일인데, 지현과 무슨 상관이 있는가? 이렇게 보내오는 것은 다만 형존이 혼사가 맞지 않음을 빌미로 나를 괴롭히려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내가 만약 다시 눈치를 채지 못하면, 그가 잘못된 점을 찾아 안찰사 앞에서 시비를 일으키기만 하면 내 명성이 망가지지 않겠는가? 더욱이 내 아이는 봉가와의 혼사가 마음속으로 흠모하는 바이니, 여러 차례 죽을 고비를 넘기면서도 오히려 마음에서 잊지 못하고 그 의리를 굳게 지키고 있다. 내가 아비 된 자로서, 어찌 하루아침에 세력을 두려워하여 변절하여 그로 하여금 평생 한을 품게 만들 수 있겠는가? 그렇게 된다면 아비 된 자가 아이를 불의(不義)에 빠뜨리는 것이 아니겠는가? 내가 이곳에서 벼슬을 하여 비록 약간의 명망이 있다 하나, 어찌 이 형존이 나를 힘들게 하는 것을 감당할 수 있겠는가? 그는 상대(上台)의 이목(耳目)이니, 만약 그의 술수에 걸려들면 삭직(削職)되거나 좌천될 것이니, 어찌 망신스럽지 않겠는가? 또한 내 나이 이미 육십에 가까우니, 무엇 때문에 이 덧없는 명성에 연연하는가? 더욱이 내 아이가 내 업(業)을 이을 수 있으니, 아직 움직임이 없을 때를 틈타 병을 핑계로 돌아가서 한가로이 숲 아래에서 여생을 즐기는 것이 어떻겠는가?'
마음을 굳히고 이에 문을 닫고 분부하여 밤새 문서를 작성하여 상사(上司)에게 병을 이유로 사직을 청하였다. 다행히도 상사에서 일찍부터 그의 청렴함을 알고 있어 귀향하여 병을 요양하도록 허락하였다. 병이 나으면 다시 원래의 관직을 보충하도록 하였다. 오래지 않아 문서가 내려오니 단거가 크게 기뻐하며, 이에 모든 일을 후임 관원에게 남겨 주었다. 류성이 갑자기 단거가 병을 핑계로 사직하였다는 것을 알고, 안찰사에게 그를 붙잡아 두려 하였으나, 여러 상사(上司)에서 이미 귀향을 허락하였음을 어찌하랴. 사태를 돌이킬 수 없음을 보고 부득이 포기하였다. 단거는 이에 여러 관원들에게 하직을 고하고 마침내 부인과 함께 하인들을 데리고 길을 떠났다. 의성현의 백성들이 모두 향을 피우고 멀리까지 전송하였다. 단거는 이때야말로 참으로 벼슬이 없으니 온몸이 홀가분하여, 마음껏 자재하게 한 길로 돌아오니 이야기는 여기서 멈추기로 한다. 참으로 이러하도다:
세상을 살아감에 시비를 피하기 어려우니, 사람됨에는 오직 때를 알아야 하리로다.
하루아침에 새장과 굴레를 벗어 던지니, 높은 하늘 위의 기러기와 고니가 나는 것과 같도다.
한편, 단창은 경성(京城)에 자리잡고 자세히 탐문하여, 봉의(鳳儀)가 유림역(榆林驛)에 좌천되어 역승을 하고 있음을 비로소 알게 되었다. 마음속으로 생각하였다. '봉 노백(老伯)께서 아직 살아 계신다면 소저도 자연히 무사할 것이다. 소저가 무사하다면 반드시 나를 위해 절개를 지키고 있을 것이다. 내가 만약 다시 요행히 합격한다면 소저를 만날 가망이 있을 것이다.' 이에 모든 잡념을 내려놓고 거처에서 마음껏 공부에 힘썼다. 시험 날짜가 되어 예전처럼 입장하여 문전(文戰)을 벌였다. 다만 가슴 속에 금수(錦繡)를 감추고 붓 끝에 풍운(風雲)을 띠었으니, 일찌감치 삼장(三場)에서 득의하였다. 발표 날에 이르러 마침내 높이 회시 육등 회괴(會魁)에 합격하였다.
전시(殿試)에 이르러 대책(對策)이 상세하고 분명하며 말이 간절하고 절실하여 용안(龍顔)이 크게 기뻐하였다. 또 그가 나이 어림을 보고 이에 단창에게 방안(榜眼)으로 급제함을 내리셨다. 단창이 합격한 뒤 십분 영예롭게 경성에서 사흘 동안 거리 행진을 하고, 이내 한림원편수(翰林院編修)로 선발되었다. 경성에 있는 여러 관원들이 그의 소년 급제를 보고, 딸 있는 집안마다 사람마다 부러워하며 모두 사람을 보내어 청혼하였다. 단창은 모두 한결같이 정혼한 곳이 있다고 사양하였다. 어찌하랴, 이 집을 거절하면 또 저 집에서 왔다. 단창은 번거로움을 견디지 못하여, 부득이 치록(齒錄)에 처를 봉씨(鳳氏)와 혼인하였다고 기록하니, 여러 사람이 보고서야 비로소 그쳤다.
이때 조길상(曹吉祥)과 석형(石亨) 등이 종일 교만하고 방자하게 대신들을 쫓아내니, 천자도 매우 그들을 박하게 여겼다. 여러 신하들이 비록 상소(上疏)가 있었으나 감히 분명히 말하지 못하고 형식적으로만 응하니, 모두 궁중에 남겨져 발표되지 않았다. 단창이 생각하였다. '봉의가 당시에 좌천된 것은 나와 소저를 만나지 못하게 한 것이다. 조길상과 석형 두 사람이 실로 이 죄의 우두머리이다. 내가 어찌 그들을 탄핵하는 소(疏)를 올리지 않겠는가? 만약 성상의 측은함을 입어 나라를 위하고 또 사사로움을 위하여 봉의를 돌려보낸다면, 내 표매(表妹)가 아버지를 따라 귀경할 것이니 서로 만날 날이 있을 것이다. 만약 공연히 헛되이 바라기만 하면 조금도 이익이 없다.' 이에 두 사람의 악행을 자세히 소(疏)로 작성하여 올렸다.
천자가 크게 기뻐하며 말씀하셨다. "뜻밖에 새로 들어온 소신(小臣)이 이런 담력이 있구나. 권간(權奸)을 피하지 않으니 매우 가상하도다." 이에 두 간신을 즉시 삭직하고, 봉의에게는 흠차(欽差)로 조정에 돌아오도록 내리시어 본래의 직위를 되찾게 하셨다. 성지(聖旨)가 내려지니 누가 감히 따르지 않으리오! 단창이 보고 크게 기뻐하며 말하였다. "뜻밖에 성상께서 간신을 제거함을 허락하시고, 또 장인어른을 돌아오도록 내리시었다. 이 혼약이 모두 성은(聖恩)에서 비롯된 것이로구나!" 이에 대궐을 향해 절하며 사례하였다.
막 단근을 보내어 서신으로 부모에게 알리려 하다가, 갑자기 호광(湖廣)에서 보고가 이르니 단지현이 병을 핑계로 치사(致仕)하였다 하였다. 단창이 깜짝 놀라며 말하였다. "떠나온 지 얼마 되지 않았고, 아버님께서는 비록 연세가 드셨으나 아직 기력이 쇠하지 않으셨는데. 어찌하여 갑자기 병이 드시어 해임까지 하게 되셨단 말인가? 이미 들은 이상 어찌 귀성(歸省)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이에 상소하여 귀가 성친(省親)하려 준비하였다. 또 생각하였다. '아버님께서 환우(患憂)이시라면 왜 가서가 오지 않는가? 혹시 그 안에 또 사연이 있는 것은 아닌가?' 또 생각하였다. '지금 봉 노백께서 이미 귀환을 명받으셨으니, 머지않아 도착하실 것이다. 그가 오는데 내가 간다면, 또 한 번 엇갈리는 것이 아니겠는가? 차라리 잠시 가서를 기다리고, 아울러 노백과 백모(伯母), 소저를 만나 혼인을 밝힌 뒤에, 성친(省親)하고 귀향하여 납채하는 것이 어찌 일거양득이 아니겠는가?' 단창은 이에 경성에서 기다렸다. 바로 이 기다림으로 말미암아, 가르침이 있으리니:
무한한 기쁨을 바라고 기다렸건만, 만나면 모두 수심(愁心)으로 변하도다.
뒷일이 어찌 될지 알 수 없으니? 다음 회를 보면 풀리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