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화영

글자 크기

읽기 모드

제십육회 비화영 부부의 작은 해후, 옥쌍어 부모의 대단원

사패(詞牌):

하늘의 뜻은 참으로 뒤집힌 것이 아니로다, 사람 마음의 선량함을 보고자 함이라.

처음과 끝이 한결같아, 죽어도 산 듯 변치 않으니, 비로소 해로함을 이루도다.

동쪽은 살이요, 서쪽은 뼈이나, 이 만남은 기이하게도 맞아떨어지는구나.

한순간에 꿰뚫어 보고, 한순간에 토로하니, 예나 지금이나 드문 일이로다.

「하성조(賀聖朝)의 곡조에 맞추어」

이야기하건대, 단(端) 방안(榜眼)이 상소를 올려 어지(御旨)를 받들어 고향에 성친(省親)하게 되어, 마침내 봉의(鳳儀), 왕 부인(王夫人)과 함께 길을 떠났다. 조정의 동관(同官)들이 봉의가 출발한다는 소식을 듣고, 또 단 방안이 임금의 은전으로 귀향함을 알게 되어, 모두 와서 봉의와 단창(端昌)을 전별하고 나서야 경성을 떠났다. 한 사람은 어사(御史)요, 한 사람은 한림(翰林)이니, 노상이 매우 영화로웠다. 부(府)와 주(州)와 현(縣)을 지날 때마다 모두들 멀리서부터 마중 나와 배웅하였다.

얼마 지나지 않아 임청(臨淸)에 거의 이르렀는데, 봉의는 미리 사람을 보내어 예전에 살던 집을 찾게 하였다. 뜻밖에도 집들이 모두 남에게 점거되어 있고 하인들은 다 도망쳐 버린 것이었다. 집을 차지하고 살던 자들이 봉의가 다시 벼슬을 얻었다는 소문을 들었고, 또 새로 과거에 급제한 단 방안과 함께 돌아와 집을 찾는다는 말을 듣고는, 겁에 질려 혼비백산하여 밤새워 짐을 싸서 떠났다. 하인들이 즉시 봉의를 알현하니, 봉의는 끝내 탓하지 않고, 마침내 부인과 조카를 데리고 집에 들어가, 다시 하인 몇을 불러 집안을 정돈하였다.

단 방안은 방 안에서 지난날 소저와 달빛 아래 시를 짓던 일을 떠올리며, 번번이 길게 탄식하여 말하였다. "물건은 남아 있으나 사람은 가고 없으니, 참으로 헛된 말이 아니로다!" 또 당(唐)씨 가문의 조분(祖墳)이 있는 곳을 수소문하여, 곧 사람을 시켜 예물을 갖추어 제사 지내러 보냈다. 제례가 매우 정성스러워, 이에 임청 성 안팎의 사람들이 구경하러 몰려와서야, 단 방안이 당희요(唐希堯)의 양자로서 오늘 대관(大官)이 되어 돌아와 조상께 제사 지내는 것임을 알았다. 또한 그가 어릴 적에 볼 수 없게 되어 남에게 납치되어 성(姓)을 바꾸었음도 알게 되었다. 다만 당희요가 어디로 갔는지 아무도 알지 못하는 것이 안타까울 뿐이었다. 이 까닭에 사람마다 부러워하고 칭송하였다.

또 며칠이 지나자, 일찌감치 양주(揚州)의 아역(衙役)들이 봉의를 맞이하러 왔다. 단창은 마침내 봉의, 왕 부인과 함께 고향을 떠났고, 며칠이 안 되어 경내에 이르렀다. 봉의의 속관(屬官)들이 모두 나와 영접하였고, 직속 부하가 아닌 자들도 단 방안이 함께 왔기에 모두 뒤섞여 함께 영접하니, 그 번화함이 한층 더하였다. 봉의가 아문(衙門)에 들어서자, 단 방안도 며칠을 머물다가 봉의와 왕 부인에게 이별을 고하고 홀로 송강(松江)으로 향하였다. 단 방안은 일등 관선(官船)에 올랐으니, 그 위풍이 당당하기 그지없었다.

화정현(華亭縣)에 이르자, 현관(縣官)이 사람을 보내어 영접하였다. 단창이 집에 도착하여 부모를 배알하였다. 이윽고 하객들이 문에 가득하고 지현(知縣)도 찾아와 배견하니, 며칠이 분주하였다. 주천작(朱天爵)이 와서 단거(端居)를 만나 말하였다. "영공자(令公子)께서 오늘 영광스럽게 귀향하셨으니, 전일 배 안에서 소제(小弟)가 드린 말씀을 인형(仁兄)께서 필히 처리하셨겠지요. 한 말씀 주시면, 창형(昌兄)께 가서 아뢰겠습니다." 단거는 아들에게 미처 말해 두지 못하였으므로, 할 수 없이 얼버무려 대답하였다. "소제 쪽에서는 마다할 것이 없습니다. 허나 혼사(婚事)는 반드시 먼저 여자 집에서 말을 꺼내야 하니, 형께서 창형 댁에 가서 허락을 받아 오신 연후에 일을 진행하십시오."

주천작이 서둘러 창(昌)씨 댁으로 가자, 창전(昌全)이 나와 맞아들였다. 주천작이 먼저 말하였다. "단 방안이 이미 영광스럽게 귀향하였습니다. 소제가 전일 직접 뵈었을 때, 그 용모를 자세히 살펴보니, 반안(潘安)도 미치지 못하고, 재주는 소식(蘇軾)과 유종원(柳宗元)을 넘으니, 더 말할 나위도 없습니다. 게다가 나이 방관(弱冠)에 불과한데 이미 봉황지(鳳凰池)에 이르렀습니다. 가장 기쁜 것은 지금까지 아직 장가를 들지 않은 것입니다. 소제가 전일 약조한 일을, 인형께서 이미 숙고하셨을 것이라 여겨, 한 말씀 주시어 소제가 단형(端兄)께 전달하여 납폐(納幣)를 서두르게 하고, 도요(桃夭)의 시를 읊게 해 주소서."

창전이 이 말을 듣고서 홀연 탄식하며 말하였다. "전일 인형의 높은 견해를 받들어 마음으로 깊이 맞는다 여겼습니다. 다만 그 중에 인연이 박한 것이 한스러울 뿐입니다." 주천작이 놀라 물었다. "영애(令愛)의 현숙함으로 단 방안의 재화(才華)에 짝을 삼으니, 두 재인이 만나는 것은 천재일우(千載一遇)라 할 것입니다. 응당 한 단락의 좋은 인연이거늘, 무슨 박함이 있겠습니까?" 창전이 다시 탄식하여 말하였다. "전일 큰 가르침을 받들어 즉시 처에게 자세히 말하였습니다. 또 단 조카를 만나 보니, 소제도 진심으로 마음에 들었습니다. 뜻밖에도 처가 소녀에게 말하였더니, 소녀가 실로 따르기를 원치 않는 것이었습니다. 그 안의 사정은 자세히 말하기 불편합니다. 그래서 소제가 주장할 수 없어, 다만 그 뜻을 따를 수밖에 없었습니다."

주천작이 다시 놀라 물었다. "예로부터 혼배(婚配)란 남녀가 기뻐하여야 이루어진다 하나, 또한 반드시 부모의 명과 매파의 말을 기다리는 것입니다. 어찌 부모가 되어 주장할 수 없다는 이치가 있겠습니까? 창형의 말씀은 참으로 천고에 독창적인 기담이라 하겠습니다." 창전은 그저 탄식할 뿐이었다. 주천작이 말하였다. "인형께서 이미 그 사람을 박하게 여겨 약조를 지킬 생각이 없으시다면, 어찌 시원스럽게 거절하지 않고, 도리어 영애에게 핑계를 대시는 것입니까?"

창전은 주천작이 재촉하는 것을 보고 할 수 없이 말하였다. "이 일은 소제가 깊이 원하는 바인데, 어찌 핑계라 하십니까? 실로 소녀는 어릴 적부터 이미 정혼한 사람이 있습니다." 주천작이 말하였다. "이미 정혼한 사람이 있다면, 지금 그 사람은 어디에 있습니까?" 창전이 말하였다. "지금 그 사람이 천애(天涯)에 있어 만나기 매우 어렵지만, 소녀가 정절을 지키며 갖은 권유에도 돌아서지 않습니다. 소제가 참군(參軍)으로 있을 때, 상 총진(常總鎭)이 아들을 위해 며느리를 구하였는데, 그때 소제가 소녀의 전날 사정을 미처 살피지 못하고 잘못 허락하였습니다. 소녀가 이를 듣고 발설하지는 않았으나 스스로 단식하여, 꽃이 시들고 잎이 말라 쓰러지듯 숨이 끊어질 지경에 이르렀습니다. 다행히 천록(天祿)이 다하지 않아 혼이 돌아왔습니다. 거듭 추궁하여 물어서야 비로소 그 마음이 곧고 성정이 굳세어, 오직 한 사람만을 따를 줄 알고 다른 것은 알지 못함을 알았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시집을 보내지 않으면 오랜 빙약(聘約)을 떨쳐내기 어렵고, 억지로 시집보내려 하면 소녀는 오직 죽음뿐이었습니다. 두 가지 모두 어려운 처지에, 소제는 이미 화를 감내하기로 하였는데, 다행히 주 총융(周總戎)이 계책을 내어 오얏으로 복숭아를 대신하는 방법으로 겨우 면할 수 있었습니다. 또 바람 소리가 새어 뒷날 시비(是非)가 될까 염려하여, 소제를 위해 상소를 올려 귀향하게 하여 그 생각을 끊게 하였습니다. 인형께서 전일 배 안에서 논하실 때, 소제가 어물어물 시원히 사양하지 못한 것은, 다만 상 자무(常子武)는 무부(武夫)라 소녀가 원하지 않을 것이지만, 지금 단 조카는 한림 정갑(鼎甲)이요 또 젊고 풍류스러우니, 혹 또 달리 여길 수도 있겠다 여겼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제 처에게 넌지시 살펴보게 하였던 것입니다. 소녀가 빙상송백(氷霜松柏) 같아 절개만 논하고 사람은 논하지 않아, 단 조카를 상 자무와 같이 본다 하니, 소제는 어쩔 수 없었습니다. 이로 인해 인형께도 실례를 범하고, 단형께도 실례를 범하였습니다."

주천작이 듣고 나서야 놀라며 말하였다. "알고 보니 영애에게 이런 곡절이 있고 또 이런 정절과 열행(烈行)이 있으니, 참으로 경이롭습니다. 다만 한 가지 말씀드리자면, 만약 정혼한 사람이 어디 있는지 알 수 있다면 기다리는 것도 가하겠으나, 지금 그 사람의 소식을 모르고 생사도 알 수 없으니, 어찌 재녀(才女)가 천지간에 헛되이 살게 할 수 있겠습니까? 이 또한 인형의 마음에 미결로 남은 큰 일이니, 급히 해결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창전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하였다. "인형의 말씀이 옳으니, 잠시 소제가 다시 상의해 보겠습니다." 주천작이 이에 작별하고 돌아갔다.

다음 날, 단거를 만나러 와서 말하였다. "소제는 매파가 하기 쉬운 줄만 알고 이 일을 떠맡았는데, 알고 보니 입술이 닳고 혀가 마르도록 수고하였습니다." 단거가 웃으며 말하였다. "인형께서 수고를 원망하지 마시고, 다만 수고하고도 공이 없을까 더 원망하시지 않도록 걱정됩니다." 주천작이 말하였다. "수고한 이상 반드시 성공해야지요." 단거가 눈살을 찌푸리며 말하였다. "이 성공이 이루어지기 어려울 듯합니다. 오늘 아침 소제가 인형의 뜻을 자세히 소아(小兒)에게 말해 주었더니, 당연히 기꺼이 따를 줄 알았는데, 알고 보니 소아가 듣고 한사코 거절하니, 대망(台望)에 부응하지 못하게 되었습니다."

주천작이 듣고 크게 놀라 말하였다. "이 또한 기이한 일이로다. 영공자는 바야흐로 장가 들 나이에, 큰 등과(登科) 작은 등과를 이루었으니, 누가 원하지 않겠습니까? 영공자는 어찌 굳이 사양하시는 것입니까?" 단거가 말하였다. "이 일은 소제도 당장 다 말할 수 없습니다. 형께서는 소아에게 직접 물어보십시오." 그러고는 사람을 시켜 소 나리를 청해 오게 하였다. 이윽고 단창이 나와 인사를 나누자, 주천작이 말하였다. "창 노백(昌老伯)의 영애는 재주가 사도온(謝道韞)을 넘고, 용모는 서시(西施)를 뛰어넘습니다. 현질(賢姪)은 옥당한원(玉堂翰苑)에 있고 나이도 서로 어울리니, 금슬로 사귀고 종고(鐘鼓)로 즐긴다면, 주남(周南)의 아화(雅化)가 이보다 더할 수 없을 것입니다. 현질은 어찌 정훈(庭訓)을 따르지 않고 거듭 사양하시는 것입니까?"

단창이 얼른 읍하며 말하였다. "소질(小姪)이 어찌 감히 부명(父命)을 어기어 숙녀(淑女)에게 허물을 짓겠습니까? 다만 생각건대, 사람이 천지간에 삶에 있어 절의(節義)가 무엇보다 소중합니다. 사람이 만약 절의를 지키지 않는다면 금수(禽獸)와 무엇이 다르겠습니까? 소질이 감히 노백께 숨기지 않겠습니다. 실로 어릴 때부터 한 재녀가 소질을 가엾이 여겨, 시사(詩詞)로 중매를 삼아 오래전에 종신(終身)의 약조를 맺었습니다. 지금 이 여인이 어디에 있는지 알 수 없어, 만나 볼 길도 없습니다만, 의(義)가 있는 곳이요 정(情)이 매인 곳이니, 소질이 어찌 감히 배신할 수 있겠습니까? 그러므로 나이 스물에 가까워도 금슬의 생각이 전혀 없고, 오직 천애해각(天涯海角)으로 찾아서 이 맹약을 이루고자 합니다. 만약 이룰 수 없다면, 홀로 한평생을 지내더라도 마음을 다하여 기다릴 것입니다."

주천작이 듣고 크게 놀라며 말하였다. "알고 보니 현질이 장가를 들지 않는 것도 의를 지키기 위함이었으니, 실로 창 소저와 더불어 한때의 기이한 이야기로다!" 단거가 얼른 물었다. "창 소저에게 또 어떤 기이한 일이 있습니까?" 주천작이 마침내 창전의 말을 자세히 전하며 말하였다. "창 소저는 절개를 지켜 시집가지 않고, 영공자는 의를 지켜 장가들지 않으니, 어찌 한 쌍의 기이한 이야기가 아니겠습니까?" 단거 부자가 이를 듣고 속으로 기이하다 여겼다. 주천작은 두 집 모두 원하지 않는 것을 보고, 하는 수 없이 잠시 작별하였다. 정히:

절개 있는 여인은 마음으로 시집가지 않으려 하고,

의로운 남자는 어찌 혼인을 이루려 하겠는가.

두 집이 모두 윤리와 예법을 따르니,

괴로운 것은 다만 매파뿐이로다.

이야기하건대, 어느 날 창전은 단 방안이 새로이 돌아온 것을 보고, 마침내 간찰(簡札)을 갖추어 부자(父子)를 초대하였다. 또 사람을 보내어 주천작을 청해 배석하게 하였다. 이때 창전의 원(苑) 안에 해당화가 만발하여, 창전이 마침내 원 안에 자리를 펼쳤다. 오정(午正)이 가까워질 무렵, 단씨 부자가 왔고 주천작도 이르렀다. 네 사람이 자리에 앉아 꽃 아래서 술을 마셨다. 창전은 몇몇 소우(小優)를 불러 청창(清唱)하게 하여, 주흥(酒興)이 한껏 올랐다. 반쯤 취했을 즈음, 주천작이 말하였다. "오래전부터 현질의 시재(詩才)가 뛰어나다고 들었는데, 지금 봄날 낮에 이 꽃 아래 있으니, 현질이 어찌 한 수 지어 오늘의 즐거움을 기록해 주지 않겠습니까?" 창전이 말하였다. "주 형의 고론(高論)이 때에도 맞고 문인(文人)의 풍치(風趣)도 얻었으니, 단 현질이 흥을 내지 않을 수 없겠습니다." 마침내 서동(書童)을 불러 필연(筆硯)을 가져오게 하였다.

서동이 내실로 가니, 마침 창 소저가 서방(書房)에 앉아 책을 읽으며 소일하고 있다가, 서동이 서둘러 필연과 전지(箋紙)를 가져가는 것을 보고 물었다. "필연은 무엇에 쓸 것이냐?" 서동이 말하였다. "어르신이 단 어른, 단 방안, 주 상공(朱相公)과 함께 원 안에서 꽃을 보며 술을 드시는데, 지금 단 방안에게 시를 짓게 하려고 어르신이 필연을 가져오라 하셨습니다." 소저가 이에 생각하였다. '그는 젊은 정갑(鼎甲)이니, 재사(才思)가 당연히 다를 것이다. 다만 어떤 방식으로 짓는지 알 수 없구나.' 다시 생각하다가 말하였다. '내게 방법이 있다.' 마침내 서동에게 일렀다. "네가 나가서, 만약 단 어른이 다 쓰시거든, 슬그머니 가져와 나에게 한 번 보여주어라. 보고 나면 바로 가져다 드리도록 해라." 서동이 명을 받고 갔다.

자리에 나아가 필연과 전지를 올리니, 단창이 막 시상(詩想)을 더듬으려 하다가, 홀연 고개를 들어 낙화(落花) 조각들이 파닥파닥 자리 앞에 날아다니는 것을 보았다. 한순간에 지난날이 떠올라 봉(鳳) 소저의 「비화시(飛花詩)」의 묘함이 생각나서, 마침내 붓을 들어 그 이전 시를 그대로 써 내었다. 다 쓰고 나서 창전과 주천작에게 건네어 함께 보게 하였다. 모두 보고 나서 칭찬하였다. "현질이 말 옆에서 즉시 이루었으니, 미리 지어 둔 것과 같습니다. 또한 풍치(風旨)가 소쇄(瀟灑)하고 의미가 심장하니, 참으로 한원(翰苑)의 웅재(雄才)로다." 그러고는 다시 술을 권하여 마시고, 시를 탁자 옆에 놓아 두고 서로 칭찬하다가 다시 술을 마셨다.

뜻밖에도, 이 작은 서동은 소저의 분부를 받들어, 시가 완성된 것을 보고, 슬금슬금 탁자 가까이 가서, 그들이 흥겹게 마시는 틈을 타 필연을 거두는 체하며 시까지 함께 슬쩍 훔쳐 곧장 서방으로 달려가 소저에게 건넸다. 소저가 얼른 펼쳐 보니, 시제(詩題)가 「비화(飛花)」인지라, 마음속 일이 건드려져 그만 눈물이 나왔다. 속으로 생각하였다. '이 방안은 또 어떤 방식으로 지었을까?' 자세히 읽어 가니, 놀랍게도 지난날 봉의 배 위에서 자기가 지었던 것과 글자 하나 다름없었다. 크게 놀라 말하였다. "이 또한 기이한 일이로다! 나의 이 시는 봉 씨 아버지와 어머니만 아시고, 봉 씨 부모 외에는 당씨 오빠와 내가 함께 알 뿐이니, 그 밖에는 아는 사람이 없다. 어찌 이 방안이 훔쳐 베꼈단 말인가? 혹 당씨 표형(表兄)이 이 방안과 친하여 알려 준 것은 아닐까?"

다시 자세히 넘겨 보며 말하였다. "시가 내 것일 뿐만 아니라, 이 필법의 기복(起落)도 완연히 당씨 표형의 서법이로다. 설마 이 방안이 바로 당씨 표형은 아닌가?" 한순간 마음이 어지러워져, 살그머니 원 안으로 들어가 몰래 보고 싶었으나, 다시 생각하였다. '안 된다. 그는 외인(外人)인데 내가 어찌 보러 갈 수 있겠는가?' 다시 한참을 생각하다가 말하였다. '방법이 있다. 어찌 그의 화운시(和韻詩)를 써서 그에게 보내어, 그가 놀라는지 놀라지 않는지 보지 않겠는가. 그러면 그 사람인지 아닌지 알 수 있을 것이다.' 이렇게 계책을 정하고, 마침내 똑같은 전지 한 장을 가져다 그의 행관(行款)대로 그의 화운 「비화시」를 써서 서동에게 주어 가져다 원래 자리에 놓아두게 하였다. 서동이 명을 받들어 놓아두었다.

단창이 술을 몇 잔 마시고도 봉 소저의 「비화시」의 묘함을 잊지 못하여, 다시 전지(箋帖)를 가져다 보았는데, 전지 위에 있는 것이 봉 소저의 원래 「비화시」가 아니라 자기가 봉 소저에게 화답한 「비화시」인 것이었다. 크게 놀라 어찌할 줄 몰라 머리를 흔들고 입으로 외쳤다. "대기(大奇)로다, 대기(大奇)로다! 이 시를 누가 고쳐 썼단 말인가? 고쳐 썼다면, 어찌 내가 봉 소저에게 화답한 「비화시」를 고쳐 쓸 수 있겠는가? 게다가 나의 이 화시(和詩)는 봉 소저만이 아시는데, 설마 봉 소저가 고쳐 쓰신 것은 아닌가? 대기(大奇)로다, 대기(大奇)로다!" 그러고는 창전을 향해 거듭 읍하며 말하였다. "창 노백(昌老伯), 불쌍한 소질은 이 두 편의 시 때문에 몇 번이나 죽으려 하였습니다. 오늘 이 시를 보았으니, 누가 쓴 것인지 분명히 알려 주셔야겠습니다!"

모두들 이를 보고 다들 놀랐다. 창전이 얼른 시전(詩箋)을 가져다 보니, 과연 원래 시가 아니었고, 또 단 방안이 '봉 소저' 하며 부르짖는 소리를 들으니 마음속에 이미 어느 정도 짐작이 가는 바가 있었다. 마침내 말하였다. "현질은 당황하지 마시오. 내가 알아보고 분명히 말씀드리겠습니다." 마침내 시를 들고 안으로 들어가 딸에게 물었다. "이 시를 정말 네가 고쳐 쓴 것이냐?"

소저는 일이 단서가 있음을 보고 감히 발뺌할 수 없어 대답하였다. "정말로 아이가 고쳐 쓴 것입니다." 창전이 말하였다. "어찌 고쳐 쓴 것이냐?" 소저가 말하였다. "이 두 편의 「비화시」는 원래 아이가 그와 처음 맹약을 맺을 때 지은 것으로, 외인은 아무도 알지 못합니다. 그분이 이미 잊지 않고 아이의 원운(原韻)을 쓰셨으니, 아이가 어찌 감히 배신하여 그분의 화시를 쓰지 않겠습니까? 두 시가 서로 증거가 되고 그 사람이 아직 살아 있으니, 아이가 지난날 부모님께 등진 마음이 있었던 것이 헛됨이 아닌 것입니다." 창전이 말하였다. "이와 같이 말한다면, 오늘의 혼인은 거절할 수 없겠구나." 소저가 말하였다. "이 때문에 지켜 왔으니, 어찌 감히 다른 말을 하겠습니까!"

창전이 크게 기뻐하며 다시 밖으로 나와, 웃으며 모두에게 말하였다. "알고 보니 소녀가 지킨 것은 오로지 「비화시」 때문이요, 단 현질이 거절한 것도 「비화시」 때문이었군요. 지금 「비화시」가 날아가고 날아와 여기서 다시 날아 만났으니, 지킨 자와 거절한 자 모두 고진감래(苦盡甘來)가 되었습니다." 단거가 듣고 크게 기뻐하며 말하였다. "이와 같이 말씀하신다면, 소아가 거절한 것이 바로 영애를 위함이요, 영애가 지킨 것이 바로 소아를 위함이었습니다. 예전에는 애써도 얻기 어려웠는데, 오늘은 무심히 만나게 되었으니, 참으로 천연(天緣)의 기묘함이로다!"

창전이 다시 단창에게 말하였다. "현질이 이제 알겠는가?" 단창이 거듭 읍하며 말하였다. "알았습니다!" 주천작이 물었다. "방안이 이미 알았으니, 이 혼사는 거절하겠습니까, 아니겠습니까?" 단창이 다시 읍하며 말하였다. "감히 거절하지 않겠습니다!" 주천작이 이에 크게 웃으며 말하였다. "매파도 성공하는 날이 있구나. 묘하고 묘하다. 이 축하주는 든든히 마실 수 있겠군!" 모두 웃음이 터져, 새로이 기쁘게 마셨다. 모두 마음이 유쾌하여 흠뻑 취하도록 마시고서야 각자 돌아갔다. 정히:

철로 만든 신발이 닳도록 찾아도 보이지 않더니,

얻을 때는 전혀 힘이 들지 않는구나.

창씨와 단씨 두 집이 기꺼이 따르기로 하자, 주천작이 또 양쪽을 중매하여, 일찌감치 단씨 집에서 매우 성대한 납폐를 보냈고, 창씨 집에서는 가장 두터운 혼수를 마련하였다. 길일이 되어, 단씨 집이 잔치를 크게 열어 친지들을 두루 청하였다. 단 방안은 대홍색 원령(圓領) 예복을 입고, 머리에 오사조모(烏紗朝帽)를 쓰고, 허리에 기화은대(起花銀帶)를 두르고, 위에는 황라수산(黃羅繡傘)을 덮고, 높은 준마에 올라타, 앞에는 많은 한림(翰林)의 은과 의장(儀仗)을 늘어놓고, 길에는 생소(笙簫) 소리 시끄럽고 화포(火砲) 소리 하늘에 연이어, 친히 마중 나가 창씨 집 문 앞에 이르렀다. 일찌감치 많은 하인들이 비단 전지와 필연을 받들어, 새 방안에게 「최장시(催妝詩)」를 짓기를 청하였다. 단 방안이 빙그레 웃으며 마 위에 앉아 날듯이 붓을 들어 시 한 수를 썼으니:

날아가는 꽃잎 날아가고 또 날아 돌아오니,

가지 위에 의구히 비단 한 뭉치라.

오늘에야 등불 앞에서 미소 띠고 바라보노니,

꽃이 기쁘게 사람의 기쁨과 딱 마주하는구나.

소저가 보고 크게 기뻐하며 말하였다. "과연 표형(表兄)의 필체로다. 오늘에야 내 소원이 이루어지는구나!" 이에 단장(丹粧)을 마쳤다. 밖에서 거듭 재촉하자 비로소 부모에게 이별을 고하고, 뭇 시첩(侍妾)들에게 옹위되어 가마에 올랐다. 이때 단 방안은 말을 타고 가마 앞에 섰고, 창전은 머리 가마에 탔으며, 소저의 가마 뒤에는 창전의 의장까지 더하여 사람이 더욱 많았다. 오는 길에 떠들썩하고 화려하기가 매우 영화로웠다.

단씨 집에 이르자, 단거가 대청(大廳)으로 맞아들여 신부를 가마에서 내리게 하였다. 시녀(侍女)와 반낭(伴娘)이 소저를 부축하여, 단 방안과 함께 먼저 천지(天地)에 절하고, 또 부모에게 절하고, 그런 다음 동방(洞房)으로 들어갔다. 반낭이 소저의 개두(蓋頭)를 벗기니, 단 방안이 눈길을 훔쳐 보았다. 소저가 지난날보다 더욱 곱게 피어 있었다. 이때는 감히 입을 열 수 없었다. 이윽고 화촉(花燭)을 켜고 좌고(坐褲)를 하며 장막을 걷고 함께 합근(合巹)의 술을 마시니, 단 방안이 마침내 뭇 사람을 방 밖으로 내보내고, 그런 다음 공손히 창 소저를 향해 다시 읍하며 말하였다. "현매(賢妹)와 이별한 이후로, 어리석은 오빠는 잠도 자지 못하고 밥도 먹지 못하며, 이별의 시름을 달랠 길이 없었습니다. 언제나 단장(粧) 앞으로 날아가고 싶었으나, 뜻밖에 환난을 만나 유랑하게 되어 뜻대로 할 수 없었습니다. 후에 현매의 격려의 정에 감동하여 힘써 다행히 일등 합격을 하였고, 즉시 위험을 무릅쓰고 존공(尊公)을 구하였습니다. 오직 현매와 함께 돌아와 가약(佳期)이 얼마 남지 않았기를 기원하였는데, 뜻밖에 현매가 또 길을 잃었습니다. 어리석은 오빠는 인연이 없음을 한탄하여 죽어도 살아도 길이 없었으나, 오직 마음을 굳게 하여 장가를 들지 않음으로써 현매의 정에 보답하였습니다. 오늘 뜻밖에 현매와 이곳에서 재회하게 되었으니, 진실로 뜻밖의 기이한 만남이로다!"

창 소저도 아녀자의 태도를 보이지 않고 말하였다. "천첩(賤妾)은 현형(賢兄)의 버리지 않음을 입어 달 아래서 맹약을 맺고, 실로 경성에 들어가 약조를 이루기를 바랐습니다. 누군가 부친을 따라 먼 곳으로 유배 가다가 도중에 길을 잃게 될 줄 알았겠습니까. 또 은덕 있는 부모님의 보살핌을 받으니, 점점 멀어지고 소원해졌습니다. 뜻밖에 상 총진(常總鎭)이 구혼(求婚)을 하여, 부친이 내막을 모르시고 혼사를 잘못 허락하셨습니다. 마침내 소매(小妹)는 단식하여 죽게 되었으나, 은인(恩人)이 계책을 내어 비(婢)를 부인으로 대신 보내어, 첩을 죽음 가운데서 되살아나게 하였습니다. 또 사직(賜職)을 받아 이곳에 오게 되었습니다. 스스로 평생을 절의를 지키며 살겠다 여겼는데, 어제 또 단 방안의 구혼 때문에 거절을 애써 했습니다. 다시는 단 방안이 바로 현형이실 줄 생각하지 못하였습니다. 참으로 하늘이 맺어 준 인연이요, 인력(人力)이 미칠 바가 아닙니다!"

두 사람이 앞뒤의 일을 다 말하고 나서 기쁨을 이기지 못하여, 합환(合歡)의 술을 다 마시자, 단 방안이 웃으며 말하였다. "옛날에는 어린아이였으나, 이제 모두 다 자랐습니다. 이제 예전처럼 거절할 수는 없겠지요." 말을 마치고 두 사람이 서로 바라보며 웃었다. 단 방안이 가까이 다가가서 마침내 창 소저의 띠를 풀고 옷깃을 헤쳐, 소금장(銷金帳) 안으로 안아 들어가, 함께 동심(同心)을 맺어 양왕(襄王)의 꿈으로 나아갔다. 진실로:

오래 가문 끝에 단비를 만나고,

타향에서 옛 지기(知己)를 만난다.

동방에 화촉을 밝히는 밤이요,

금방에 이름이 걸리는 때로다.

단 방안과 창 소저의 신혼의 즐거움은 잠시 논하지 않겠다.

이야기하건대, 봉의가 양주 임지에 있을 때, 어느 날 문지기 아역이 들어와 아뢰었다. "밖에 나리의 표제(表弟) 당희요(唐希堯)께서 뵙기를 청하십니다." 봉의가 이를 듣고 크게 기뻐하며, 얼른 청해 들어오게 하였다. 후아(後衙)로 맞아들여 왕 부인을 만나게 하고, 각자 이별의 고통을 하소연하였다. 봉의가 즉시 말하였다. "표질(表姪)이 환난을 만나 단씨 집에 양자로 가서, 지금 방안에 급제하여 한림에 발탁되었습니다. 나 부부가 그의 힘으로 구출되었습니다. 당초 영자(令子)가 어릴 적에 나의 소녀와 약조하여 종신의 인연을 맺었습니다. 뜻밖에 소녀가 전에 도중에 길을 잃었고, 표질도 크게 실망하여, 또 자네가 어디 있는지 알 수 없다는 말을 들었으며, 전일 나와 함께 경성을 떠나 임청(臨淸)에 꽤 오래 머물며 조분(祖塋)에서 한 번 성묘하였습니다. 또 나와 함께 여기 부임하였다가, 지금 화정현으로 성친하러 갔습니다. 성친한 후에 바로 자네를 찾아올 것입니다."

당희요는 홀연 아들이 있다는 말을 듣고 이미 천만 가지 기쁨이 솟았고, 또 방안에 급제하여 이토록 영화롭다는 말을 듣자 참으로 즐거움이 끝이 없었다. 왕 부인이 즉시 사람을 시켜 조씨(趙氏)를 아문으로 청해 들어와 함께 살면서, 전후 사정을 알렸다. 조씨도 크게 기뻐하였다. 얼마 지나자, 마침 화정현으로 가서 아들을 만나려고 하는데, 뜻밖에 단 방안이 이미 사람을 시켜 서찰을 보내어, 소저의 일을 알려 왔다. 문지기가 전달하자, 봉의가 뜯어 다 읽고 나서 기쁨을 이기지 못하며 말하였다. "알고 보니 내 딸아이를 누가 거두어 주었고, 지금 표질이 찾아 이미 결혼하여 성친하였구나."

왕 부인이 듣고 크게 기뻐하며 말하였다. "딸아이와 조카가 이미 만나 혼인을 이루었으니, 참으로 크게 기쁜 일입니다. 우리 지친(至親)들이 어찌 함께 가서 자세히 확인하지 않겠습니까. 그것도 인생의 쾌사(快事)입니다. 더욱이 화정도 여기서 멀지 않다고 들었습니다." 봉의, 당희요, 조씨가 모두 말하였다. "옳습니다, 옳습니다." 봉의가 마침내 아역에게 분부하였다. "본원(本院)이 공무로 출타한다." 마침내 왕 부인과 당희요 부부와 함께 배에 올랐다.

며칠이 안 되어 화정현에 이르렀다. 봉의가 사람을 보내어 단창에게 알리니, 단창이 부친에게 아뢰었다. "봉 노백(鳳老伯)이 바로 창 소저의 친부이십니다." 단창이 얼른 배로 먼저 가서 영접하였다. 배에 이르러 즉시 선실 안으로 들어가 봉의를 만나려다, 뜻밖에 중간 선실로 막 들어서는데, 왼편에 수염이 희끗희끗한 노인 한 분이 서 있고, 오른편에 은빛 실로 상투를 튼 노파 한 분이 서 있는 것을 보고, 단창이 뵙고는 크게 놀랐다. 속으로 생각하였다. '이 두 분은 머리카락이 희지만 얼굴이 흡사 나의 당가(唐家) 부모님과 같은데, 어찌 여기 계신단 말인가?' 갑자기 황급하여 감히 선뜻 나아가 알아볼 수 없었다.

당희요와 조씨도 그의 오사원령(烏紗圓領) 차림에 기상이 헌앙함을 보고, 감히 선뜻 부르지 못하였다. 봉의와 왕 부인이 이미 후선실(後船室)에서 걸어 나와 말하였다. "조카야, 이분이 네 부모님이신데, 어찌 나아가 배알하지 않느냐?" 단창이 과연 자기 부모님이라는 말을 듣고 나서야 앞으로 달려나가, 왼손으로 부친 당희요의 손을 잡고, 오른손으로 모친 조씨의 손을 잡고서, 무릎을 꿇고 통곡하며 말하였다. "불초한 아이가 환난을 당한 이후 수년 간 모시지 못하고, 항상 부친과 모친을 그리워하였습니다. 오늘 다행히 등과하여, 작은 은혜나마 갚을까 하였는데, 뜻밖에 부모님이 멀리 피신하시어 찾을 곳이 없었습니다. 만 번 죽고 싶은 심정으로 눈물 흘리다가 뜻밖에 표매(表妹)를 만나게 되었습니다. 어릴 때 집에서 약조가 있었고, 지금 또 은부모님의 거듭된 권면으로, 마침내 권의(權宜)에 따라 혼인을 이루었습니다. 지금 두 대인께서 알리지 못한 죄를 용서해 주시기 바랍니다."

당희요와 조씨가 단창을 끌어안고 통곡하며 말하였다. "당일 네가 과장(科場)에 들어가고 돌아오지 않아, 우리 두 사람은 네가 그립고 보고 싶어 간장이 끊어지는 듯 매우 가슴이 아팠다! 이생에 다시 만나지 못할 줄로만 알았는데, 네 봉 노백을 만나서야 비로소 아들이 높이 급제했음을 알았고, 또 네가 표매와 혼인한 것도 알게 되어 이보다 더 기쁜 것이 없어, 특히 너를 보러 온 것이다. 더욱이 네가 뜻을 세워 이름을 이루어 우리 두 사람의 바람을 저버리지 않은 것이 기쁘구나." 말을 마치고, 마침내 단 방안을 부축하여 일으켰다. 단거도 왔으니, 모두 서로 만났다. 단창이 즉시 그 연유를 알렸다. 단거는 비로소 두 사람이 아들의 친부모임을 알고 오늘 다시 만나게 되어 또한 크게 기뻐하였다. 마침내 맞이하여 집으로 청해 들었다.

이날은 마침 만월(滿月)이었다. 창전과 두씨(杜氏)가 모두 내실에 있다가, 홀연 먼저 사람이 와서 아뢰는 소리를 들었다. "소 나리가 가서 봉 어르신을 배에서 영접하시다가, 뜻밖에 생신부모(生身父母)를 만나시어, 지금 함께 오십니다." 창전이 놀라면서도 기뻐하며, 얼른 나와 영접하여 먼저 봉의를 정중히 안으로 청해 들이고, 다시 두 번째로 단창이 새로이 인정한 부친을 맞아들였다. 앞으로 나아가니 한 노인이었는데, 어렴풋이 임청에서 탁고(托孤)를 맡겼던 당희요처럼 보였다. 다만 갑작스러운 상황에 감히 선뜻 알아보지 못하고 있는데, 뜻밖에 그 노인이 창전을 보고는 일찌감치 놀라며 의심스러워하며 물었다. "어르신은 혹시 수 년 전 임청에서 뵌 적 있는 창 선생이 아니십니까?" 창전이 이에 크게 기뻐하며 말하였다. "어르신이 창전을 알아보신다면, 어르신이 과연 나의 좋은 벗 당희요이시군요!"

두 사람이 서로 알아보고 크게 놀라며 크게 기뻐하였다. 마침내 함께 대청으로 들어와 각자 서로 인사를 나누었다. 창전이 이에 말하였다. "소제가 다행히 딸 하나를 얻어, 방안을 사위로 맞아들이게 되어 스스로 영화롭게 여겼습니다. 뜻밖에 소녀가 원래 봉 노친옹(老親翁)의 영애(令愛)요, 지금 또 뜻밖에 소서(小婿)가 당 노친옹의 영자(令子)이니, 지금 보건대 소제의 영화는 실로 두 노친옹께 빛을 빌린 것이 많습니다."

당희요가 이를 듣고 하하 크게 웃으며 말하였다. "창 친옹(親翁)께서 '소제가 빛을 빌렸다' 하시지만, 실은 소제야말로 창 친옹께 빛을 빌린 것입니다. 창 친옹, 이 방안의 아들이 누구인지 아시겠습니까? 바로 창 친옹께서 옛날 소제에게 양자로 보내 주신 아들입니다!"

창전이 이를 듣고 몹시 놀라며 기뻐하여 말하였다. "알고 보니 소서(小婿)가 사위가 아니라, 도리어 내 친아들 창곡(昌谷)이었구나, 대기(大奇)로다, 대기(大奇)로다!" 단거가 두 사람의 전말을 듣고 또한 크게 놀라며 말하였다. "이렇게 보니, 소아(小兒) 단창(端昌)은 내 아이가 아니라, 도리어 내 옛날의 사위인 것이로구나, 대기(大奇)로다, 대기(大奇)로다!"

이야기가 아직 끝나지 않았는데, 단창이 나와 말하였다. "아이의 장인어른이 도리어 부친이 되시고, 부친이 도리어 장인어른이 되시니, 이미 기이한 일이거니와, 알고 보니 단씨 집 며느리가 도리어 창씨 집에서 원래 정한 며느리요, 창씨 집 양녀(養女)가 도리어 단씨 집 친딸이니, 더욱 기이하지 않습니까?"

모두들 놀라 물었다. "이것이 어찌된 일입니까?" 단창이 말하였다. "방금 창 모친께서 어릴 때 혼인을 약속할 때, 옥 쌍어(玉雙魚) 한 쌍이 있었는데, 하나는 며느리에게 빙표(聘表)로 주고, 하나는 아이의 몸에 달아 주어 비목(比目)의 징표로 삼으셨다 하셨습니다. 후에 환난을 만나 아이를 당 부모께 양자로 보내면서, 이 옥어(玉魚)를 남겨 기념으로 삼으셨다 합니다. 방금 창 모친께서 단 모친과 지난일을 말씀하시다가, 이 옥어를 꺼내어, 단 모친께 그것이 있는지 물으셨습니다. 단 모친께서 딸의 몸에 달려 있었는데, 딸과 함께 잃어버렸다고 하시며 탄식하셨습니다. 뜻밖에 며느리 몸에도 옥어 하나가 달려 있는데, 어릴 때부터 있었던 것이라 하였습니다. 그 아름다움을 좋아하여 지금껏 놓지 못하고 있었다 하였습니다. 꺼내어 맞추어 보니, 두 어(魚)를 한데 모으자 가운데 추뉴(樞紐)가 맞아, 조금도 어긋나지 않았습니다. 이에 비로소 봉 노백이 거두어 키운 딸이 바로 단 부모께서 잃어버린 딸임을 알게 되었습니다. 단 부모의 딸이라면, 어찌 원래 아이가 어릴 때 정한 며느리가 아니겠습니까? 이리저리 뒤집히니, 더욱 기이하지 않습니까?"

모두가 듣고 기이하고 통쾌하다며 그치지 않았다. 얼른 옥어를 꺼내어 보니, 과연 두 개가 합쳐 하나가 되는 보물이었다. 모두 기쁨이 끝이 없어, 이에 말하였다. "여태껏 혼돈스러웠으나, 이제 분명해졌으니, 명분을 모두 바로 고쳐야 합니다." 다시 상소를 올려 이름을 창곡(昌谷)으로 고치고, 창전과 두씨를 생신부모(生身父母)로, 당희요와 조씨를 은양부모(恩養父母)로, 단거와 이씨(李氏)를 장인 장모로 삼았다. 채문(彩文) 소저는 단거와 이씨를 생신부모로, 봉의와 왕 부인을 은양부모로, 창전과 두씨를 시부모로 섬겼다. 새로이 잔치 자리를 마련하여 크게 악기를 울리며, 배알을 한 차례 마치고서야 명분이 바로잡혔다. 정히:

옛날 이별의 슬픔은 끝이 없었으나,

오늘 아침 서로 만나는 기쁨은 비할 데 없도다.

한 번 뼛속까지 추위가 사무치지 않는다면,

어찌 매화의 향기가 코를 찌를 수 있겠는가.

이후로, 창 방안(昌榜眼)은 당희요와 조씨가 멀리 떠나는 것이 안쓰럽고, 단 소저는 봉의와 왕 부인과 헤어지는 것이 싫었다. 봉의, 당희요, 왕 부인, 조씨도 헤어지기 아쉬워하였다. 이에 의논하여 함께 큰 집 한 채를 마련하여 세 성(姓)이 함께 살게 되었다. 봉의는 임지를 떠난 지 오래되어 오래 머물기 불편하여, 할 수 없이 단신으로 부임하여 양주에서 삼 년을 염원(鹽院)으로 지냈다. 다시 명을 받은 후, 곧 치사(致仕)를 청하여 임청으로 돌아가지 않고, 바로 화정으로 와서 함께 동거(同居)하였다.

창 방안도 경성으로 들어가게 되었는데, 창전이 분부하였다. "내가 당초 은인 주중문(周重文)이 없었다면, 어찌 오늘의 영화가 있었겠느냐? 부자(父子)가 어찌 서로 만날 수 있었겠느냐? 네가 지금 경성에 들어가거든, 덕으로 덕에 보답하여야 효도의 도리를 볼 수 있느니라." 창곡이 명을 받들었다. 단 소저도 말하였다. "그 당시 상용(常勇)이 며느리를 구할 때, 춘휘(春輝)가 대신 들어갔습니다. 춘휘가 없었다면, 나는 이미 뼈가 녹고 형체가 사라졌을 것입니다. 어찌 오늘 당신과 부부가 되어 집안의 즐거움을 누리겠습니까? 당신이 이번에 가서 만약 보답할 수 있는 곳이 있거든, 나를 위해 보답해 주세요." 창곡이 허락하고 경성으로 들어가 복명하였다. 벼슬은 이전 직위에 머물렀다.

얼마 지나 당사자 앞에서 추천하여, 주중문(周重文)에게 괘인총병(掛印總兵)을 더하였다. 또 상용(常勇)이 삭직(削職)된 것을 보고, 다시 사람을 부탁하여 상기(常奇)를 입학(入學)하게 하여 춘휘에게 보답하였다. 후에 주씨와 상씨가 이 일을 알게 되었는데, 이 보덕(報德)의 일들이 모두 친척 사이에서 이루어진 것임을 알고, 왕래가 끊이지 않았다. 창곡은 마침내 사람을 시켜 소저를 경성으로 맞아들였다. 후에 창곡은 마침내 대학사(大學士)에 이르렀고, 부모가 연로함을 보고서야 비로소 치사를 청하여 고향에 돌아왔다. 창전은 구십까지 살았고, 봉의, 단거, 당희요는 각각 수를 누리다 차례로 세상을 떠났다. 이씨, 조씨, 두씨는 모두 병 없이 세상을 떠났다. 창곡은 아들 넷을 낳았는데, 둘은 갑과(甲科)에 올랐고 둘은 반궁(泮宮)에 들어갔다. 마침내 세 성의 제사를 나누어 받들게 되었다. 이후 부부 금슬이 더욱 두터워져, 또한 팔십까지 살다 세상을 마쳤다. 지금까지 「비화영(飛花詠)」「옥쌍어전(玉雙魚傳)」으로 전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