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3회 당희요는 조카의 해침을 당해 타향을 떠돌고, 창천우는 벗의 도움을 입어 금의로 고향에 돌아오다
사(詞)에 이르기를:
가문에 불행이 닥쳐, 집안 재산이 타성(他姓)에게로 넘어가는구나. 세 손가락의 사치스러운 욕심이여, 타향에서 새로이 집안을 세우다. 변경의 싸움터에서 목숨을 내걸었으나, 뉘 알았으랴 금의로 고향에 돌아올 줄을. 세상만사에 어려움이란 없으니, 다만 하늘이 눈을 뜨고 굽어보기를 바랄 뿐이로다.
「감자목란화(減字木蘭花)」의 곡조에 맞추어
이야기하건대, 창전(昌全)은 주중문(周重文)의 묘계(妙計) 덕분에 춘휘(春輝)를 딸로 삼아 아가씨로 꾸며 상공자(常公子)의 처로 시집보내었다. 다행히도 상공자는 주색에 마음을 빼앗긴 자라, 춘휘는 창전 부부와 아가씨의 은덕에 감사하며 또한 주색으로써 그를 맞이하니, 상공자는 더없이 즐거워 시재(詩才)를 따질 겨를이 없었다. 혹여 시를 요구할 때에도 오직 춘휘 혼자 지을 뿐이요, 운자(韻字)의 제한도 없고 제목도 없으니, 춘휘는 그저 아가씨가 지어둔 시 몇 수를 베껴 주었다. 상공자는 만심환희(滿心歡喜)하여 부친과 선생에게 가져다 보이니, 선성(先聲)이 사람을 압도하여 누가 감히 칭찬하지 않겠는가? 이쪽에서 행하는 모든 일들을 춘휘는 곧바로 창전에게 몰래 알렸다.
창전은 속으로 생각하였다. '저 사람이 지금은 비록 수월하게 응대하고 있으나, 훗날 어려운 제목이라도 나온다면 문득 탄로나 근본을 캐게 되면 망신이 아니겠는가? 솜덩이로 속인 것임을 알아차린다면 또한 사람을 찾아 나설 것이니, 그 또한 좋지 않을 것이다.' 이에 곧 주중문을 찾아가 낱낱이 고하니, 주중문은 조용히 상소 한 편을 올렸다. 머지않아 과연 명이 내려왔으니, 성지(聖旨)에 이렇게 씌어 있었다.
창전이 변경에 있으면서 여러 차례 공적을 세웠도다. 본래 유임하여 다시 기이한 공을 세우게 함이 마땅하나, 총병관(總兵官)이 연로함을 이유로 거듭 해임을 청하니, 전공(前功)을 생각하여 창전은 관대(冠帶)를 갖추고 고향으로 돌아가되, 특별히 칠품 문관(七品文官)의 예우로 행세함을 허락하노라.
얼마 후 보고가 들어오자, 주중문과 창전은 성은에 사례하였고, 창전은 또한 주중문의 처음부터 끝까지의 발탁지은(拔擢之恩)에 절하며 감사를 표하고 말하였다. "오늘 해골(骸骨)을 거두어 돌아갈 수 있음은 모두 대은인(大恩人)께서 내려주신 것이옵니다." 창전이 집으로 돌아와 알리니 두씨(杜氏)와 아가씨 모두 크게 기뻐하며 남쪽으로 돌아갈 짐을 꾸리기 시작하였다. 상용(常勇)이 소식을 듣고 미리 아들과 며느리를 집으로 보내 전별하게 하였다. 창 소저(昌小姐)는 상공자와 마주치지 않으려 할 수 없이 피하였다.
또 얼마의 시일이 지나 출발 날짜를 정하니, 창전은 상용을 찾아가 하직 인사를 드렸다. 상용 또한 창전에게 와 작별을 고하고 두터운 예물을 많이 보내었으며, 삼백 금(三百金)도 더하였다. 주중문 또한 후한 선물을 보내었다. 창전은 두씨와 딸로 하여금 슬그머니 안채에 들어가 주중문 부인에게 작별 인사를 드리게 한 뒤 길을 떠났다. 아가씨는 눈에 띌까 두려워 부득이 청의(靑衣)로 변장하여 얼굴을 가리고, 춘휘와 서로 마음속 이야기를 나누며 훗날 다시 만날 날을 기약하며 각자 위로하였다. 두 사람은 손을 놓기 아쉬워 서로 눈물을 흘렸다. 아가씨는 부모와 함께 길을 떠났고, 상용은 군사들을 파견하여 관문까지 호송하게 하였다. 이야말로:
지난 이별의 괴로움을 기억하거늘, 오늘의 이별이 이토록 기쁠 줄 뉘 알았으랴.
옥관(玉關)을 살아서 나왔음도 이미 부러운 일이거늘, 더욱 기쁜 것은 손바닥 위의 명주(明珠)가 돌아옴이로다.
창전은 두씨와 아가씨, 시녀 추소(秋素), 그리고 수행원 몇 명과 함께 길을 떠났다. 이번 귀환은 예전의 고초와는 비할 바 없이, 진실로 천지차이였다. 관직은 비록 크지 않으나 어명을 받들어 돌아오는 것이라, 고을에 이르러서도 인부를 부릴 수 있었고 노자 또한 넉넉하여, 흥겨이 밤에 묵고 새벽에 걸으며 길을 재촉하여 남쪽으로 돌아갔으니, 이 이야기는 잠시 접어두기로 하자.
이번에는 당도(唐涂)의 이야기를 하리라. 당도는 당창(唐昌)을 도모하여 죽인 뒤로 날마다 사람을 보내 둘째 아들을 당희요(唐希堯)의 양자로 들여보내고자 하였다. 그러나 당희요는 한사코 거절하였으므로, 당도는 앙심을 품고 매번 그를 해칠 방법을 꾀하였으나 당장 손쓸 곳이 없었다. 마침 봉의(鳳儀)가 경중(京中)에서 세력을 잃었다는 소식을 듣고, 그는 대담해져 당희요를 억압하려 하였다. 다만 당희요가 아저씨뻘이라 함부로 때리거나 고소하기도 어려웠으므로, 그저 일찍 죽기를 빌 뿐이었다. 그런데 당희요는 도무지 죽을 기색이 없으니, 당도는 점점 기다리다 지쳐 날마다 답답하고 불쾌하였다.
하루는 한가로이 거닐다가 문득 그의 절친한 벗 단모(單謀)를 만났다. 단모가 묻기를, "요 며칠 당 형(唐兄)을 뵙지 못하였는데, 얼굴에 재물 복이 가득하니 아드님이 이미 아저씨 댁에 들어가셨는가요?" 당도는 이 말에 곧 미간을 찌푸리며 발을 동동 구르고 말하였다. "말도 마십시오! 소제(小弟)의 심사를 인형(仁兄)은 잘 아시지 않습니까. 내 이미 사람을 시켜 천 번 만 번 설득하였으나, 가증스러운 저 늙은 것이 기어코 허락하지 않습니다. 나는 지금 화가 치밀어 한바탕 몰아붙이고 싶으나 아직 손쓸 곳이 없어, 집에 가만히 앉아 있을 수 없어 기분 좀 풀려고 나왔습니다." 단모가 말하였다. "그러시군요, 아드님이 아직 입적하지 못하셨군요. 저 노인도 참 인정머리가 없습니다. 그 집안 재산을 친조카에게 주지 않으면 누구에게 준단 말입니까? 필시 마음에 둔 사람이 있는 모양인데, 저 노인 정말 막무가내로군요. 노형(老兄)이 화내시는 것도 무리가 아닙니다." 당도가 말하였다. "나는 오직 이 일로 인해 혼자 울화가 치밀어 정신이 없었는데, 오늘 형을 만났으니 같이 가서 한잔 합시다." 이에 단모를 끌고 작은 주점에 들어가 자리를 골라 앉았다.
두 사람이 한참 마주 앉아 술을 마시다가, 당도가 말하였다. "예로부터 '당사자는 미혹된다'고 하였으니, 예전에 소제가 남을 위할 때에는 나름 지모(智謀)가 있었는데, 근래 들어 온통 흐리멍덩하기만 합니다. 단 형(單兄)께서 좋은 계책이 있으시다면 소제를 가르쳐 주시겠습니까?" 단모는 술잔을 쥐고 그저 술만 마실 뿐 전혀 대답하지 않았다. 마치 그 말을 듣지 못한 것 같았다. 또 한참 더 마시다가 문득 손뼉을 치며 말하였다. "있습니다, 있어요! 저 노인의 재산을 원하신다면 독하게 마음먹지 않고 그저 조금씩 이리저리 계산해서는 결코 쓰러뜨릴 수 없습니다. 내게 한 가지 계책이 있으니, 인형께서 내 말대로 행하신다면 틀림없이 저 집안 재산이 모두 인형과 아드님의 것이 될 것입니다."
당도는 이 말에 크게 기뻐하며 연달아 자초지종을 물었다. 단모가 말하였다. "이 계책은 경솔히 말할 수 없으니, 세 잔을 가득 드신 후에야 말씀드리겠습니다." 당도는 할 수 없이 세 잔을 마저 비웠고, 단모는 그제야 말하기 시작하였다. "제 집에 재작년에 거두어들인 과객이 있는데, 그가 떠돌며 가난한 신세였고 또 완력이 있는지라 심부름꾼으로 두었습니다. 그런데 바른 길을 걷지 않아 버는 돈마다 노름과 계집에 탕진하더니, 이미 병을 얻어 눈앞에 죽을 날이 닥쳐 있습니다. 인형께서 아저씨를 해코지하시려거든, 이렇게 이렇게, 저렇게 저렇게 하셔야만 그가 인형을 찾아오지 않을 수 없을 것입니다. 그때 기회를 타 비집고 들어가실 수 있습니다. 다만 일이 이루어진 뒤에 저를 위한 이 정을 잊지 마시기를 바랍니다." 당도는 이 계책을 듣고 한 번 생각해보니 과연 절묘하였으므로, 당장 말하였다. "소아(小兒)가 뜻을 이룬 후에 백 금(百金)으로 보답하겠습니다." 두 사람이 계략을 정한 뒤 또 한참 마시고, 이튿날 일을 행하기로 약속하고 각자 헤어졌다.
그렇다면 단모의 집에 거두어들인 자가 누구였던가? 바로 송탈천(宋脫天)이었다. 옛날 한때 흥에 겨워 무리를 모아 단(端)씨 가문의 딸을 납치하여 다른 곳에 숨겨두고 장성한 뒤 혼인하려 하였으나, 피신 도중 단씨 딸이 사라져버렸으므로 그대로 고을로 돌아왔던 자이다. 송탈천은 달리 증거가 없어 예전처럼 무뢰배들과 어울려 살아가다가, 어느 날 함께 노름을 하는데 송탈천은 주사위 운이 좋아 연달아 많이 땄다. 그는 영리하게 손을 떼려 하였다. 그러자 상대 무뢰배가 급해져 그의 손을 붙들고 늘어졌다. 한쪽은 계속 하자 하고 다른 쪽은 거절하니 결국 싸움이 벌어졌다. 그 자가 크게 욕하기를, "너는 지금 죽을 죄를 이고 살아가는 놈이니, 내가 관아에 고발하기만 하면 내 손에 죽게 되어 있어."
송탈천은 약점이 드러날까 두려워 당장 태도를 바꾸며 말하였다. "자넨 참 쪼잔하군! 어떻게 지면 이런 꼴을 내보이는가? 예전의 형제 같지 않은 행동이야. 더구나 몸에 돈 한 푼 없으니 무엇으로 내기를 하겠다는 건가?" 그 자가 말하였다. "노름에 져 가난한 것은 하소연할 일 아니고, 내 몸에 아직 옷 한 벌이 있으니 이것을 걸면 어떤가?" 노름판이란 실로 한쪽에선 욕을 하면서도 또 이야기를 하고, 여전히 노름을 이어가는 곳이었다.
송탈천은 노름을 하면서도 마음속이 매우 불쾌하였다. 이날 노름이 끝난 뒤 생각하였다. '단씨 집안의 일은 종내 좋지 않을 것이다. 더구나 그 사람은 이제 벼슬길에 올랐으니, 훗날 다시 문제가 생기거나 어떤 풍문이라도 퍼진다면 곤란해질 것이다. 만약 그 딸이 아직 있다면 관에 넘겨도 납치죄 정도이지 목숨을 잃을 일은 아니겠지만, 지금 그 사람이 사라졌으니 관에 가면 인명사건이 되지 않겠는가? 살인과 다를 것이 무엇인가?' 또 생각하였다. '지금 여기에 있으면 결국 이놈들에게 계속 협박을 받을 것이다. 차라리 타향으로 도망쳐 다시 사업을 꾀하는 것이 어떠리?' 또 생각하였다. '경성(京城)이 넓으니 그곳에 가 몸을 의탁하는 것이 좋겠다.' 이에 노자를 챙겨 아무에게도 알리지 않고 몰래 달아났다. 산동(山東) 땅에 이르렀을 때 길에서 우연히 심부름꾼인 단모를 만났다. 둘이 길에서 이야기를 나누어보니, 송탈천이 친척을 찾아갔다가 만나지 못하여 진퇴양난이라 하였다. 단모는 그가 건장하고 걸음이 빨랐으므로 그를 거두어 심부름꾼으로 삼았다. 그런데 송탈천은 옛 버릇을 고치지 못하여 돈이 생기면 노름과 계집에 탕진하더니, 문득 병을 얻어 죽을 지경이 되었던 것이다.
이날, 단모는 당도와 계략을 정하였다. 이튿날이 되자, 사람을 시켜 송탈천을 들것에 실어 당희요의 집으로 데려가 말하였다. "소제(小弟)가 듣건대 선생께서 기사회생(起死回生)의 의술이 있으시다 하기에, 오늘 사제(舍弟)가 병이 들어 특별히 왕진을 청하러 왔습니다. 만약 완쾌하신다면 마땅히 후사(厚謝)하겠습니다." 당희요는 이에 망(望)·문(聞)으로 안색을 살피고, 이어서 부(浮)·침(沈)으로 맥을 짚어 일일이 진찰하였다. 그러고는 말하였다. "영제(令弟)의 병은 혈이 말라 신이 흩어지고 기(氣)가 다하여 맥이 미약합니다. 이는 불치지증(不治之症)이니, 약을 드실 필요 없이 빨리 데려가시는 것이 중요합니다."
단모는 거짓으로 눈물을 닦으며 말하였다. "의원에게는 환자를 위해 살을 베어내는 마음과 사람들을 구제하는 인술(仁術)이 있다 들었습니다. 지금 사제는 아직 숨이 붙어 사지도 움직이는데, 선생께서 어찌 이토록 냉정하실 수 있습니까!" 이에 거듭 당희요에게 약을 써달라 빌었다. 당희요는 그 사정에 못 이겨 할 수 없이 한 제(劑)를 지어 주었다. 단모가 말하였다. "저희 집이 여기서 매우 멀고, 소제는 빨리 낫기를 바라니, 한 각(刻)이라도 빠를수록 좋습니다. 선생의 약탕관을 빌려 여기서 달여 먹이게 해주십시오." 당희요는 그 사정이 간절함을 보고 할 수 없이 빌려주었다. 그런데 단모는 품 안에 이미 군신(君臣)의 이치를 어긴 독약을 숨겨 두었다가 몰래 섞어 넣고, 금세 달여내었다. 송탈천에게 연달아 들이부으니, 조금 지나지 않아 송탈천이 큰 소리를 한 번 지르며 폐부(肺腑)가 터져 죽고 말았다. 이야말로:
탈천의 죽음은 옛 죄를 갚은 것이요, 화가 희요에게 미치는 것은 훗날의 인연이로다.
눈앞에 빠져나간 것이 있다 말하지 말라, 하늘은 끝내 아무도 용서하지 않느니라.
단모는 송탈천이 죽은 것을 보고 크게 소리치며 떠들기 시작하였다. "이런 의원이 다 있나, 사람을 약으로 죽여놓다니!" 이어 앞으로 나아가 당희요를 한 손으로 붙들며 말하였다. "내 멀쩡한 형제가 그대와 무슨 원수이기에 천리에 어긋나게 약으로 죽였단 말이오!" 당희요가 말하였다. "내 처음부터 영제의 병은 구할 수 없다 하여 약 쓰기를 꺼렸는데, 그대가 거듭 청하기에 한 첩을 지어주었소. 더구나 내가 지어준 것은 모두 좋은 약이오. 그대가 어찌 나를 속이려 하오?" 단모가 크게 노하며 말하였다. "헛소리 마시오! 지금 사람이 그대 집에서 죽어 있는데도 아직 말로만 강변하는 것이오! 관아에 가서 곤장을 맞지 않으면 순순히 자백하지 않겠다는 것이오."
좌우 이웃들은 인명 사건에 관련된 일임을 알면서도, 평소 단모가 좋은 사람이 아님을 알기에 감히 나서서 말리지 못하였다. 단모는 씩씩거리며 현청(縣廳)으로 달려가 아는 자를 찾아 고독살인(蠱毒殺人)이라 하여 고소장을 썼다. 지현(知縣)이 이를 수리하고 비첨(飛簽)을 내어 포졸 네 명을 보냈는데, 모두 단모와 친한 자들이었다. 단모는 또 사람을 통해 지현 앞에서 바람을 넣었고, 네 명의 포졸이 이리 같고 범 같이 당씨 집으로 달려와 당희요를 관아로 끌고 가려 하였다.
이때 당도는 이미 아저씨 집에 와 조정에 나선 척하고 있었는데, 현청 포졸들이 들이닥치자 각기 공문을 전달하였고 포졸들은 즉시 당희요를 출발시키려 하였다. 당도가 거듭 정을 빌어 잘잘못을 조율하고 포졸들이 수고비를 받은 후에야 하루이틀 늦추어 관아에 나오기로 허락하였다. 지현은 또 사람을 보내 중간에 손을 써 당희요를 협박하기를, "대감께서 인명 중사(重事)로 보시니, 보는 즉시 사형을 판결하실 것입니다"라고 하였다.
당희요는 한 사람 충직한 노인이라 평생 관아 문을 들어본 적이 없는 자였다. 이제 이 무리들에게 여우가 호랑이 위세를 빌려 한바탕 겁을 주니, 완전히 갈피를 잡지 못하고 당황하여 어쩔 줄 몰랐다. 오히려 당도가 양쪽을 조율한다는 명목으로, 지현에게 천 냥을 보내야 한다 하면서 그 절반을 먼저 삼켰다. 또 단모에게 삼백 냥을 보내 스스로 장례를 치르고 고소를 취하하게 한다 하면서, 당도는 또 그 절반을 챙겼다. 이리하여 당희요라는 넉넉한 집안이 이 가짜 인명 사건 하나로 순식간에 아무것도 없게 되었다. 집과 전답이 모두 남의 손에 넘어갔고, 다만 작은 방 한 칸을 얻어 거처할 수밖에 없었다. 당도는 오직 아저씨의 가업을 삼키려 하였건만, 뜻밖에 단모의 거짓이 진짜가 되어 아저씨의 가업을 되려 다른 사람에게 넘겨주고 말았다. 이야말로:
자식 없으면 끝내 숙질(叔姪)이 친해야 하거늘, 한 나무에 꽃이 피면 봄을 함께 나누어야 하리.
어찌하여 독을 써서 뿌리째 뽑아내어, 마른 장작처럼 남에게 보내버리는가.
당희요는 비록 억울하게 가산(家産)을 탕진하였으나, 오히려 자신의 의술이 훌륭하니 언젠가는 회복할 날이 있으리라 여기며, 종일토록 오히려 조씨(趙氏)를 위로하였다. 그런데 이 한 차례 시비가 지난 뒤 멀고 가까운 곳에 소문이 퍼져, 모두들 당희요가 사람을 약으로 죽인다 하여 누가 감히 목숨을 걸고 그를 찾아오겠는가? 당희요의 생업은 전혀 없어지고, 기물을 팔아 날을 보냈다.
일 년여가 지나 점점 의식(衣食)을 감당하기 어려워졌다. 그제야 밖에서 사람들이 두려워하여 청하러 오지 않는다는 것을 알았다. 당희요는 의술이 통하지 않자 할 수 없이 조씨에게 명성이 나빠져 청하러 오는 이가 없다 하였다. 조씨가 말하였다. "내 들으니 '이곳에서 사람을 머물게 하지 않으면, 사람을 머물게 하는 곳이 또 있다'고 하였습니다. 이 곳 명성이 이미 나빠졌고 좋은 친척도 없으니, 봉씨 가문도 관직을 잃고 타향으로 쫓겨났습니다. 우리도 이곳을 떠나 다른 곳으로 옮기는 것이 낫지 않겠습니까?" 당희요가 말하였다. "다른 곳으로 가는 것은 좋으나, 낯선 곳이라 불편한 점이 많을 것이오." 조씨가 말하였다. "제 남동생 조발(趙拔)이 양주(揚州)의 염상(鹽商) 집에서 장사를 하고 있습니다. 그에게 가 의탁하면 어떨까요?" 당희요는 한참 생각하다가 말하였다. "당신 말이 맞소."
부부가 짐을 꾸리고 배 한 척을 빌려 중요한 물건을 실었다. 머지않아 배를 띄워 황하(黃河)를 따라 회안(淮安)까지 간 다음 얼마 지나지 않아 양주에 도착하였다. 당희요는 처남 조발을 찾아내었고, 조발은 희요를 보고 크게 기뻐하며 급히 누이를 맞이하여 집에 머물게 하였다. 다행히 조발의 장사가 꽤 잘 되었으므로, 당희요는 양주에서 다시 의업(醫業)을 시작하였다. 점차 이름이 나기 시작하였고, 조발이 또 그를 염상 집에 소개해주니 생업이 흥성하여 부부가 아주 좋은 나날을 보냈다. 이야말로:
고향에서 거처를 잃은 비탄이 가득하였건만, 타향에 또 다른 하늘이 있으리라고는 말하지 않았구나.
비록 한때 독한 해침을 당하였으나, 대개 가는 곳에는 전생의 인연이 있는 법이로다.
당희요가 양주에 자리 잡은 이야기는 여기서 잠시 접어두기로 하자.
이번에는 창전이 두씨 및 아가씨와 함께 길을 가는 이야기를 하리라. 며칠 길을 가지 않아 동관(潼關)을 넘고 경사(京師)를 지나 일로 평안하게 산동 경내로 들어섰다. 창전은 두씨와 의논하여 아들을 찾아봐야 하니 지체할 수 없다 하였다. 오래지 않아 임청(臨淸)에 이르러, 창전은 가속(家屬)을 편히 자리 잡게 한 뒤 홀로 옛날의 밥집 주인을 찾아갔다. 창전은 주인을 향해 가볍게 읍하며 말하였다. "현주인(賢主人)은 소제를 아직 알아보시겠습니까?" 주인은 창전을 위아래로 훑어보았으나, 창전의 수염과 머리카락이 모두 희고 걸음걸이가 당당하여 도무지 기억이 나지 않았다. 이에 말하였다. "귀하신 분이신데 소인이 당장 기억이 나지 않습니다." 창전이 웃으며 말하였다. "소제가 지난날 귀 점포에 머물렀을 때 현주인께서 직접 소아(小兒)를 당씨 집에 데려다 주셨지요. 나는 변경에서 공을 세워 참군(參軍)의 직을 받았습니다. 성은을 입어 귀환하게 되었고, 오늘 이곳에 이른 것은 하나는 현주인의 옛날 은정에 감사드리려 함이요, 둘은 소아를 만나보고 한 번 뵐 수 있도록 안내해주시기를 청하고자 함입니다."
주인은 이 말을 듣고서야 그 옛날 군인으로 있던 창전임을 기억해냈다. 또 벼슬을 하고 어명으로 귀환한다는 말을 듣자, 급히 카운터에서 걸어 나와 절하며 말하였다. "아, 창 나리(昌爺)이시군요! 소인은 예전부터 창 나리가 복 있는 분이라 하였는데, 과연 그리되셨군요. 축하드립니다, 경하드립니다!" 연거푸 허리를 굽혀 절하였다. 창전은 약간의 사례를 건네고 앉아 말하였다. "여쭙건대 현주인, 소아가 요즘 당씨 집에서 잘 지내고 있습니까?" 주인이 말하였다. "창 나리, 말씀드리기 민망합니다. 나리가 떠나신 후 참으로 뽕밭이 바다가 되고 바다가 뽕밭이 될 만큼 화복(禍福)이 무상하여 사람이 생각조차 못 할 일들이 있었습니다."
창전은 그 말이 흐릿하고 분명하지 않자 놀라며 말하였다. "혹시 소아가 당씨 집에서 무슨 불측(不測)한 일이 있었습니까? 부디 명확히 말씀해주십시오." 주인은 할 수 없이 말하였다. "당일 영랑(令郞)은 당씨 집에서 매우 잘 지냈고 또 매우 총명하였습니다. 그런데 그해 시험이 있을 때 영랑의 재주가 뛰어나 부(府)·현(縣) 모두 수석을 차지하였습니다. 도(道)에서 치르는 시험에 들어가셨는데, 사람이 많은 와중에 미아가 되고 말았습니다. 당씨 집에서 사방으로 찾았으나 종내 행방을 알 수 없었습니다. 그 후 변고가 있었다는 말도 전해졌는데, 진위를 알 수 없었습니다."
창전은 이 말을 듣자 참을 수 없이 통곡하였다. "아, 소아가 이미 죽었구나! 나는 오직 돌아오면 다시 만날 수 있으리라 믿었건만, 뜻밖에 내가 거듭 살아 돌아왔는데 너는 이미 세상을 떠났구나! 예전에 아들을 그리워하고 생각하던 것들이 결국 한바탕 큰 꿈이었도다!" 주인이 말하였다. "일에는 이미 정해진 것이 있고 사람에게는 수요(壽夭)가 있습니다. 창 나리도 너무 슬퍼하지 마십시오." 창전은 눈물을 거두고 말하였다. "오늘 이 소식을 들었으나, 그래도 당 형(唐兄)을 찾아가 예전의 정을 사례하는 것이 옳을 것입니다. 현주인께서 한 번 안내해주시면 고맙겠습니다." 이에 곧 일어나려 하였다.
주인이 급히 붙들며 말하였다. "창 나리, 잠깐만요. 지금 당씨 집은 이미 예전 같지 않으니 가실 필요가 없습니다." 창전이 말하였다. "이것은 어찌된 까닭입니까? 부디 알려주십시오." 주인은 이에 당도가 가업을 가로채고, 당희요는 인명 사건으로 가산을 모두 날린 일을 이야기해 주었다. 또 그가 벌써 타향으로 이사하여 친척에게 의탁하러 갔다는 소식도 들었다고 하였다. 창전은 듣고 나서 크게 슬퍼하였다. 할 수 없이 작별하고 두씨를 찾아와 아들이 행방불명된 일과 당씨 집의 소식을 알렸다. 두씨는 슬픔에 눈물을 흘렸으나, 객점에 있는지라 큰소리를 낼 수 없었다.
하룻밤이 지나 이튿날 출발하여, 길에서 이리저리 지체하며 마침내 송강부(松江府) 화정현(華亭縣)에 이르렀다. 이때 산천은 예전과 같건만 사람들의 얼굴은 전혀 달랐다. 창전이 집에 돌아오니 다행히 창검(昌儉)이 아직 있었다. 창검은 갑자기 노 상공(老相公)이 돌아오심을 보고 더없이 기뻐하며, 급히 창전을 따라 배에 올라 안주인에게 절하였다. 두씨가 이르기를, "너는 소저에게도 절하거라." 창검이 절하고 나서야 상공이 이제 벼슬길에 올랐음을 알았다. 이에 기쁜 마음으로 인부를 불러 행장을 집 안으로 옮겼다. 창전과 두씨는 이제 고향 땅에 돌아왔음이 기쁘기 그지없었다. 예전 옛 벗과 친척들이 창전이 돌아왔다는 소식을 듣고, 또 그가 변경에서 공을 세워 벼슬하고 어명으로 돌아왔다 하니 매우 영예로운 일이라 하여 모두들 와 경하하였다. 주천작(朱天爵)을 만나서야 단(端)씨 집안도 딸을 잃었으며, 지금 그 사람은 벼슬길에 나아가 임지로 갔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창전은 옛집이 좁고 낮음을 보고 주천작에게 부탁하여 큰 집을 사 들어가 살았으니, 이 이야기는 잠시 접어두기로 하자.
이번에는 단거(端居)가 이성현(宜城縣) 지현이 된 이야기를 하리라. 단거는 관직에 있으면서 청렴결백하여 쉽사리 소장(訴狀)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설령 받아들이더라도 대부분 화해로 이끄니, 진실로 소송이 간소하고 백성이 편안하였다. 이때 단창(端昌)은 이미 열여덟 살이었다. 단거는 그가 성장하였으나 아직 혼사를 의논하지 못함을 보고 자주 권면하였으나, 단창은 봉씨 가문 소저와의 약속이 있어 의리를 저버리지 않으려 하였다. 단거는 억지로 강요할 수 없음을 알고 그냥 두었다. 마침 그해 학사(學使)가 순시하였으므로, 단거는 즉시 공문을 갖추어 학사에게 알렸다. 임지에서 따라와 공부하는 자식이 응시를 기다린다 하니 학사가 허락하였다.
오래지 않아 단창은 거뜬히 합격하였다. 또 며칠이 지나 이번에 새로 합격한 자들과 함께 학사에게 인사를 드리러 갔다. 그 가운데 단창만이 나이가 어렸는데, 흰 말에 붉은 술을 달고 타니 남달리 보기 좋았다. 아버지가 임지에 있는지라 각 향신(鄉紳)과 동료 관원들이 모두 색채 깃발을 보내 경하하였다. 단창은 학사에게 사례하고, 단거는 아들로 하여금 동료 관원과 향신의 집에 두루 인사를 다니게 하였다. 단창은 먼저 부존(府尊)과 형존(刑尊)에게 절하러 갔다.
이 형존(刑尊)은 진사(進士) 출신으로 사천(四川) 사람이니 성은 유(柳), 이름은 성(星)이었다. 딸이 하나 있어 한창 묘령(妙齡)이었으나, 마음에 드는 사위를 얻지 못해 아직 혼기를 넘기고 있었다. 이날 문지기가 명함을 들여오니, 단 지현의 아들 단창이 새로 합격한 수재(秀才)라 하였다. 또 나이가 어리다 하니 한 번 만나보고자 하여 아역(衙役)에게 머물게 하여 면담하라 일렀다. 잠시 후 유 형존이 나와 만나니, 단창이 큰절로 뵈려 하였으나 유성이 거듭 사양하여 자질(子姪)의 예만 행하였다.
유성은 단창이 과연 젊고 청수함을 보고 마음속으로 매우 기뻤다. 이에 말하였다. "현질(賢姪)은 높은 재주를 지녔으니 이번 가을 계수나무 가지를 꺾고, 내년 봄 반드시 장원을 하겠구려." 단창은 감사하며 감히 그럴 수 없다 하였다. 유성이 또 물었다. "현질은 올해 귀하(貴夏)는 얼마나 되셨소?" 단창이 말하였다. "소질(小姪)은 올해 열여덟입니다." 두 사람이 또 잠시 다른 이야기를 나누다가 단창이 작별을 고하였다. 유성은 내아(內衙)로 물러가 속으로 생각하였다. '이 사람이 내 사위가 된다면 소원이 없겠구나.' 이에 단 지현 아문(衙門)에 사람을 보내 중매 이야기를 꺼내려 하였으나, 당장 부탁할 만한 사람이 없었다. 문득 마음에 드는 문생(門生) 왕성미(王成美)가 생각나, 그에게 부탁하지 않으면 성사되기 어려울 것이라 여겨 사람을 시켜 명함을 들려 청하였다.
왕성미가 와 자리에 앉아 말하였다. "모르겠습니다, 노사(老師)께서 문생을 부르심은 어떤 분부가 계신지요?" 유성이 말하였다. "내 듣건대 단 현령의 아드님이 나이 어리고 재주가 많다 하더니, 지금 이미 새로 합격하였구려. 본청(本廳)에 딸이 있어, 평소 규중 가르침을 잘 받았으나 아직 정혼하지 못하였소. 단씨 아드님과 혼인을 맺어 붉은 실로 발목을 묶어주고 싶으나, 당장 중매 설 사람이 없어 현계(賢契)에게 한 번 가주기를 청하고자 하는데, 가능하겠소?" 왕성미가 말하였다. "노사 댁 문호로 이처럼 허락하시니 단씨 부모가 기꺼이 따르지 않을 이유가 없습니다."
왕성미는 하직하고 즉시 단 지현을 찾아가 말하였다. "생원(生員)이 유 노사(柳老師)의 명을 받들어 노부모(老父母) 대감을 뵈러 왔습니다. 유 노사께서 소저 한 분이 계신데 현숙다재(賢淑多才)하고 한창 방년(芳年)이라 하십니다. 전에 영 공자가 출중한 준재임을 보셨고, 머지않아 등영(登瀛)할 것이라 하시며, 또 영 공자가 아직 혼인하지 않으셨음을 아시고는 마음으로 흠모하시어, 숙녀를 군자에게 짝 지어주고자 생원에게 중매를 부탁하신 것이니, 두 성의 가약을 맺어 부부 인연을 이루기를 바라십니다. 노부모 대감께서는 부디 허락하여 주십시오."
단거는 왕성미가 갑자기 혼사 이야기를 꺼내자 크게 망설였다. 이에 한참 침음(沈吟)하다가 말하였다. "본현(本縣)이 변변치 못한 하리(下吏)로서 어찌 감히 황당(黃堂)과 견주겠습니까? 이미 유 형존(柳刑尊)께서 꺼리지 않으시고 아들딸의 혼인 이야기를 꺼내주시니 실로 하늘이 주신 행운입니다. 다만 소아의 성품이 완고하여 공명(功名)을 먼저 이룬 후에야 장가를 들겠다 합니다. 본현이 그 큰소리를 보고 매번 훈계하건만, 그 뜻을 이미 굳혔으니 강요할 수가 없어 이처럼 지체하고 있습니다. 혼인 이야기는 현계께서 소아의 뜻을 형존께 전하고 천천히 의논하도록 해주시면 어떠하겠습니까?"
왕성미는 할 수 없이 물러나 다시 유 형존을 찾아가 자세히 알렸다. 그리고 말하였다. "문생이 헤아리건대 단씨 부모의 뜻은 대략 아들이 공명을 이루기를 간절히 바라시는 데 있는 것 같습니다. 더구나 올해 추위(秋闈)가 이미 가까우니, 시험이 지난 다음을 기다림이 좋을 것 같습니다. 만약 요행히 한 번 급제한다면, 문생이 다시 노사의 명을 받들어 비단 채찍을 삼가 잡겠습니다. 그러면 단씨 부모도 거절하지 못하고, 단 형도 기꺼이 혼인을 이루려 할 것입니다." 유성이 말하였다. "아들이 공명을 이루기를 바라며 금자(金紫)를 구하려는 굳은 마음은 인지상정이오. 다만 자녀의 혼인이란 실로 인생에서 피할 수 없는 일이오. 어찌 한마디 말로 정해두고 추위에 합격하기를 기다렸다가 성대하게 시집을 오게 하면 안 된단 말이오? 현계가 다시 번거롭게 내 말을 자세히 전해주기를 바라오."
이튿날, 왕성미가 다시 단 지현을 찾아와 말하였다. "생원이 어제 노부모 대감의 말씀을 받들어 유 노사께 자세히 알렸더니, 유 노사도 영 공자가 현능하고 뜻이 있다 크게 칭찬하시며, 추위가 가까우니 잠잠히 기다림이 무방하다 하셨습니다. 다만 혼인의 인연을 맺음에 즉시 폐백을 행하지 않더라도 반드시 한마디 말로 정하여야만 마음이 변하지 않는다 하시며, 그리하여 생원에게 다시 노부모 대감의 허락을 구하도록 부탁하셨습니다." 단 지현은 할 수 없이 얼버무려 말하였다. "혼인을 맺는 것이 어찌 원하지 않겠습니까? 다만 늦게 돌아오는 것이 끝내 길하다 하니, 소아가 추위를 기다렸다가 반드시 회답을 드리겠습니다." 왕성미는 단 지현이 이미 허락의 뜻이 있음을 보고 만심환희하여 공손히 읍하고 말하였다. "생원이 삼가 대명을 받들겠습니다. 즉시 유 노사께 복명하겠습니다." 이에 작별하고 나왔다. 이 한 번의 걸음 덕분에 있으리니:
사이(司李)는 재주를 사랑하여 딸을 시집보내고, 현령은 아들을 위해 고향으로 돌아오는구나.
과연 이루어질 수 있을지? 다음 회를 보면 알게 되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