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화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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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9회 향렴의 재녀가 오만한 부친을 대신하여 참된 수문을 짓고, 강장의 용렬한 스승이 어리석은 제자를 위해 거짓 가과를 모으다

사(詞)에 이르기를:

붓과 먹의 풍류로 덕을 기리고 공을 칭송함이 얼마나 묘한가.

달리 풍자와 조롱이 있으되 사람들이 알지 못하게 하노라.

높은 명성을 구하고자 분을 빌려 꽃다운 용모에 바르는도다.

그대여 웃지 마시라, 재주 없어도 묘한 곳이 있으니.

선생의 가르침에 깊이 감사하노라.

우조(右調)「점강순(點絳唇)의 곡조에 맞추어」

이야기하건대, 주중문(周重文)은 상용(常勇)이 모사 창전(昌全)에게 대신 수문(壽文)을 지어 중귀(中貴)에게 하례하러 가도록 청탁하려 하매, 어쩔 수 없이 창전에게 말하였다. 창전은 명을 받들어 감히 지체하지 못하고 서재로 들어가 곧 초고를 잡으려 하였다. 긴 편지지 한 장을 펼쳐 책상 위에 깔고, 먹을 진하게 갈아 오래도록 앉아 생각하다가 비로소 글을 이루려 하였다. 그러나 붓을 들어 막상 쓰려 하니 한 구절도 쓰지 못하였다. 이에 생각하기를, '무릇 수문이란 그 사람에게 칭송할 만한 어짊이 있고, 칭할 만한 덕이 있거나, 혹은 찬양할 만한 공명이 있어야 비로소 붓을 내려 수징(壽徵)으로 삼을 수 있는 것이다. 지금 조길상(曹吉祥)은 불과 환관의 무리일 뿐이니, 그 출신을 따지자면 원래 시정의 무뢰배요, 지금 권력을 훔쳐 전횡함은 다문(奪門)의 공에 기댄 것에 불과하니, 당일에는 한낱 난신(亂臣)이었을 뿐이다. 게다가 지금 거듭거듭 충량(忠良)을 억울하게 함정에 빠뜨리니, 이는 또한 간신(奸臣)이다. 어떤 어짊이며 어떤 덕이 있는가? 또 어떤 공명이 있단 말인가? 나더러 어디서 붓을 대란 말인가?' 하였다. 이에 열 구절을 써내자마자 아홉 구절을 지워버리고, 한 편을 써냈다가 또 두 편 반을 찢어버렸다. 쓰고 또 써도 끝내 글이 이루어지지 않으니, 서재 안에서 오가며 궁리할 뿐이었다.

한참을 생각하다가 다시 앉아 생각하기를, '상용이 비록 총병이나 지키는 곳은 천웅관(天雄關)이다. 나는 그의 부하도 아니니 나와는 아무 상관이 없다. 그냥 사람을 보내 그에게 회답하여 다른 이에게 시키라고 하면 그만이다.' 하고는 곧 일어나 주중문에게 회답하러 가려 하였다. 그런데 마침 창 소저(昌小姐)가 서재 뒤편에 있다가 일찌감치 춘휘(春暉)가 달려와서 말하기를, "나리께서 오늘 서재에서 글을 짓고 계십니다." 하니, 소저는 곧 추소(秋素)를 시켜 다과를 시중들도록 하였다.

추소가 한참 만에 돌아와 말하기를, "나리께서 서재에서 반나절이나 지으셨으나 끝내 지어내지 못하셨습니다. 제가 곁에 있으면 방해가 될까 염려하시어 저를 돌려보내셨습니다." 하였다. 소저가 듣고 생각하기를, '아버지께서 무슨 시문을 지으시기에 이토록 힘이 드신 것일까? 내가 가서 봐야겠다.' 하고는 곧장 벽 뒤로 걸어가 엿보니, 아버지께서 쓰고 또 지우고, 쓰고 또 고치시는 것이었다. 이 모습을 보니 크게 의심스러운 바가 있었다. 홀연 아버지께서 그 종이를 소매에 감추고 밖으로 나가시려 하는 것이 보였다. 소저가 이를 보고 황급히 나와 불렀다. "아버지, 어디 가시는지요? 이토록 급하게."

창전은 딸이 묻는 것을 보고 어쩔 수 없이 몸을 돌려 말하였다. "내가 한 편의 글을 지어야 하는데, 명절(名節)에 관련되고 도리에 어긋나 붓을 내리기 어렵다. 반나절이나 지으려 했으나 끝내 지어낼 수 없어 사양하러 가려는 것이다." 소저가 물었다. "어떤 글인지요?" 창전이 말하였다. "수문이다." 소저가 말하였다. "수문이라면 보통의 사교적인 글일 텐데, 무슨 어려운 점이 있기에 아버지께서 이토록 힘드신 것인지요?" 창전이 말하였다. "수문 자체는 짓기 어렵지 않으나, 지어서 간신 조길상에게 수를 올려야 하기 때문에 어려운 것이다." 그러고는 상용이 주중문을 통해 청탁한 일을 소저에게 낱낱이 알렸다.

소저는 조길상이라는 이름을 듣자 놀라며 속으로 생각하였다. '예전에 봉 씨(鳳氏) 집안의 아버지께서 다만 조석(曹石)에게 거슬렸다는 이유로 부자가 이산되고 거의 목숨이 위태로울 뻔하셨다. 지금 아버지께서 또 상 진수(常鎭守)를 위해 대필하기를 거부하신다면, 혹날 이 소식이 권간의 귀에 들어간다면 예전의 전철을 되밟지 않겠는가?' 이에 아버지께 말씀드렸다. "범사에는 경(經)과 권(權)을 함께 쓰는 것이 귀합니다. 경이란 상도(常道)를 지켜 변하지 않는 것이요, 권이란 경에 반하되 도에 합하는 것입니다. 조길상은 권간 소인이라 경시할 수 있으니 중하게 여길 것이 없습니다. 만약 스스로 글을 지어 아첨하고 비위를 맞춰 총영(寵榮)을 도모한다면 이는 옳지 않습니다. 그러나 지금 아버지께서 지으시는 수문은 이웃 진수(鎭守)가 아버지의 재주를 흠모하여 중히 구하는 것일 뿐입니다. 또 자신이 그 관할이 아님을 알기에 감히 가볍게 청하지 못하고 본 진수를 통해 완곡히 구하였으니, 가히 예를 다했다 이를 만합니다. 지금 아버지께서 붓을 굽혀 지으신다 해도 이는 주 진수의 명을 받든 것이요, 상 진수의 명을 받든 것이 아닙니다. 주 진수의 명을 받든다면 권세에 아부하는 마음이 아니요, 상 진수의 명을 받들지 않는다면 총애를 바라는 뜻이 아님이 분명합니다. 이를 함으로써 윗사람이 하면 아랫사람도 따른다는 직분상 당연한 일이니 또 무엇이 걱정이겠습니까? 만약 굳이 상도를 고집하여 사양하고 짓지 않는다면, 이웃 진수는 비록 통속이 없더라도 본 진수가 위탁하고 부탁한 사람에게 어떻게 그 뜻을 돌이킬 수 있겠습니까? 아버지께서는 다시 세 번 생각하셔야 합니다." 창전이 말하였다. "아이의 말이 진실로 옳다. 다만 간인에게 칭찬할 바가 없으니 붓 내리기가 어려운 것이다." 소저가 말하였다. "예부터 수문은 모두 허된 칭찬입니다. 만약 반드시 실다운 공과 실다운 덕을 구하여 축수해야 한다면 천하에 수문이란 없을 것입니다. 다만 현자의 그림자를 빌려 비유하면 될 뿐입니다. 아버지께서 정히 하기 싫으시다면, 소녀가 초고를 잡고 아버지께서 윤색하시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창전은 듣고 크게 기뻐하며 말하였다. "아이가 또 글을 지을 수 있다니 믿기지 않는구나. 어디 한번 지어보거라." 소저가 말하였다. "소녀가 능히 글을 짓는 것이 아니라, 다만 아버지를 대신하여 이 공사를 해결하고자 하는 것뿐입니다." 그러고는 서책상 가까이 앉아 먹을 갈고 붓을 들어 백지를 펼치고는 거침없이 써 내려갔다. 창전은 곁에서 딸의 이런 거동을 보며 이미 크게 놀랐다. 이어 그가 쭉쭉 써 내려가는 것을 보니 더욱 경악하였다. 소저가 한 구절을 써내면 그는 곁에서 고개를 끄덕이며 훌륭하다 칭찬하고, 두 구절을 써내면 그저 묘하다고만 하였다. 이윽고 소저가 다 짓고 아버지께 드리니, 창전은 다시 자세히 읽어본 후 그만 크게 놀라고 크게 기뻐하며 말하였다. "아이가 이토록 영특하고 지혜로울 줄이야! 진실로 천재이며 참된 재녀(才女)로다." 소저가 말하였다. "소녀가 어찌 즐거이 하려 했겠습니까? 다만 예전에 봉 씨 집안 아버지께서 화를 입으심이 또한 이 사람에게서 비롯되었습니다. 이제 소녀가 아버지를 대신해 붓을 든 것은, 전철을 거울삼아 아버지께서 명철하게 보신하시기를 바라기 때문입니다. 아버지께서 고쳐 주시기 바랍니다."

창전은 듣고 더욱 크게 기뻐하며 말하였다. "아이가 또 앞일을 생각하고 뒷일을 헤아리니, 비단 어질 뿐 아니라 효성스럽기까지 하구나. 이 글은 더 이상 더하거나 뺄 것이 없으니, 아이가 옮겨 써 주거라." 소저는 곧 먹을 갈아 단정한 해서체로 쓰기 시작하였다. 마침 모친이 걸어오시자, 창전은 황급히 낱낱이 알렸다. "만약 여식이 이런 기이한 재주를 갖추지 않았다면 하마터면 내가 총융(摠戎)에게 죄를 지을 뻔하였소. 그간 전혀 몰랐는데 오늘에야 비로소 알았소." 두씨(杜氏)는 듣고 또한 크게 놀라고 크게 기뻐하며 말하였다. "알고 보니 딸이 또 문묵(翰墨)에도 능통하구나." 그러고는 한숨을 쉬며 말하였다. "다만 내 친자식을 잃어버려 생사를 모르니 애석하기만 하다. 만약 두 사람이 배필이 된다면, 어찌 한 쌍이 아니겠는가?" 창전이 말하였다. "창곡(昌谷)이 무사하다면 이제 반드시 아내가 있을 것이오." 두씨가 말하였다. "딸이 이미 재녀이니, 모름지기 한 재랑(才郎)을 가려 짝지어 당신과 나의 노년을 즐겁게 하는 것이 좋겠습니다." 이윽고 소저가 글 옮겨 쓰기를 마쳤다. 창전은 다시 자세히 읽어보니, 구절마다 칭찬하면서도 구절마다 조길상에게 딱 맞아떨어지지 않음을 보고 매우 기뻐하였다. 곧 소매에 감추고 주중문을 만나러 갔다. 주중문은 서둘러 받아들고 펼쳐 보니, 그 글에 이르기를:

대중귀 태감 조 노공공(曹老公公) 오십 화탄(華誕)을 삼가 축하하며:

예로부터 수를 기리는 데에 시경에서는 대나무와 소나무의 무성함을 읊었습니다. 소나무의 무성함은 이미 오래된 찬사이나, 이는 불과 보통 초목의 수명을 기르는 것일 뿐이니 어찌 대귀인(大貴人)께 잔을 올리기에 족하겠습니까. 대귀인의 이름은 남산과 나란하고, 명성은 북두보다 높으시니, 자연히 이가 빠지고 머리가 희어지는 노인들과는 다르십니다. 마땅히 갑자(甲子)를 넘어서도 복을 빌어 드려야 할 것입니다. 저는 이로써 조 노공공의 장수가 불후할 것임을 압니다. 조 노공공께서는 일월(日月)에 의지하여 계시니 어찌 일월의 빛을 나누지 않겠습니까. 일월의 빛이 다하지 않으면 노공공의 수도 다하지 않을 것임을 알 수 있습니다. 노공공께서 구중(九重)을 출입하시니 자연히 구중의 총애를 이어받으셨습니다. 구중의 총애가 쇠하지 않으면 노공공의 수도 쇠하지 않을 것임을 알 수 있습니다. 더욱이 순양(純陽)은 내양(內養)의 것이니, 진단(眞丹)은 누설됨이 없어 실로 장생(長生)의 묘결이라, 장차 그 자리에서 신선이 되실 것입니다. 어찌 반드시 유가(儒家)처럼 헛되이 덕과 공을 끌어다가 이로써 훗날 거북과 학의 장수를 바랄 필요가 있겠습니까. 설령 그것을 따른다 하여도, 노공공의 덕과 공이 기이하고 위대하십니다. 안으로는 한 사람의 알아주심을 얻으시고, 밖으로는 만민의 입에 울려 퍼지니, 어찌 유가에서도 칭할 수 없는 것이겠습니까. 이로써 수를 논하자면, 수가 어찌 다함이 있겠습니까? 무부(武夫)는 글에 밝지 못하오니 삼가 질박한 말로 화봉(華封)의 뒤를 이을 따름입니다. 요지(瑤池)와 봉래산(蓬萊島)에서 복숭아가 익어 수가 더해진다는 황당한 말은 감히 함부로 올려 아첨에 가까워지지 않겠습니다.

주중문은 다 읽고 나서 박자를 맞추며 칭찬하기를 그치지 않았다. "일월에 의지하고 구중을 출입한다는 것이 미묘하게 칭찬하였구나. 조 태감이 이것을 보면 기뻐하지 않을 리 없다. 상 인옹(常寅翁)이 이 좋은 글을 얻어 가서 축수하면 그 영광이 한층 더할 것이오. 다만 선생의 평소 글은 단정하고 박대하였는데, 오늘은 어찌하여 또 일종의 영수매미(靈秀媚美)한 묘함이 있는지 모르겠소? 보는 이로 하여금 안색이 달라지게 하니, 참으로 경이롭고 사랑스럽소." 창전은 듣고 그저 입을 가리고 웃었다. 주중문은 그가 웃음에 까닭이 있음을 보고 곧 물었다. "창 선생은 어찌하여 웃음을 머금고 있으시오? 혹시 본 진이 그 글을 알지 못하고 칭찬이 적절치 못하다며 웃으시는 것은 아니오?" 창전이 말하였다. "노 총융께서는 촛불처럼 밝은 안목으로 속까지 다 들여다보셨습니다. 학생이 또 어찌 웃지 않겠습니까?"

주중문은 그가 말하는 것이 두루뭉술함을 보고 더욱 의심이 생겼다. 이에 말하였다. "선생은 성실하고 곧은 군자로, 평소 숨기는 바가 없으셨는데, 오늘은 어찌 이토록 삼키고 뱉지 않으시오?" 창전은 주중문이 간곡히 묻는 것을 보고 어쩔 수 없이 말하였다. "학생이 대인의 위촉을 받아 곧 응해 가르침을 받들려 하였습니다. 그런데 일시에 흥이 사라져 붓을 내리지 못하였습니다. 소녀가 이것을 보고 제가 명을 어겨 죄를 얻을까 염려하여, 주제를 모르면서 대신 이 글을 지어 책임을 때우려 하였습니다. 생각지도 않게 대인께서 잘못이라 여기지 않으시고 도리어 칭찬해 주시니, 또 법안(法眼)으로 영수매미(靈秀媚美) 네 글자를 말씀하시니 터럭만큼도 어긋남이 없습니다. 그래서 학생이 자기도 모르게 놀라고 기뻐하며 실소를 한 것입니다."

주중문은 이 수문이 그의 딸이 지은 것임을 듣고 크게 놀랐다. 물었다. "정말로 영애(令愛)께서 지으신 것이오?" 창전이 말하였다. "실로 소녀가 지은 것입니다." 주중문이 말하였다. "영애께서 이런 신선 같은 재주가 있으시니, 참으로 남자들로 하여금 부끄럽게 하는구려. 지금 또 소 씨 집안의 한 낭자를 보는 것 같소." 다시 물었다. "영애께서 청춘(靑春)이 몇이나 되오?" 창전이 말하였다. "소녀가 올해 열여섯입니다." 주중문이 또 놀라며 말하였다. "알고 보니 영애께서 아직 어리시구려. 혼약이 되어 있습니까?" 창전이 말하였다. "하나는 아직 나이가 찼다 하기 어렵고, 또 하나는 변방 땅이라 택할 만한 사윗감이 없어 아직 의논하지 못하였습니다." 주중문이 말하였다. "재주는 예로부터 얻기 어렵다 탄식해 왔는데, 지금 이런 재녀가 있으니, 반드시 이런 재랑이 구할 것이오. 장래에 두 사람이 서로 배우(配偶)가 된다면 하늘과 땅이 재주를 낸 오묘함을 헛되이 하지 않을 것이오. 만약 소홀히 하여 재주 없는 자에게 시집보낸다면, 이는 헛되이 난 것이오. 앞으로 선생께서는 스스로 중히 여기시어, 반드시 삼가 훌륭한 사윗감을 가려야 묘할 것이오." 창전은 듣고 감격함을 이기지 못하였다. 바로 이러하니:

흘러넘치는 열여섯은 바로 꽃다운 나이,

하물며 재주 많으니 더욱 가련하여라.

사씨(謝氏)의 참된 옥수(玉樹)가 아니라면,

붉은 실(紅絲)로 함부로 맺으려 생각 마라.

주중문은 다음 날 이 원고를 봉하여 상 총병(常總兵)에게 서찰을 써서 뜻을 전하였다. 상 총병은 곧 명필을 가려 옮겨 쓰게 하여 비단 족자로 꾸미고, 또 선생을 시켜 자세하게 목록을 작성하게 하여, 예물과 함께 수십 명의 집사를 딸려 경사(京師)로 보내 조길상에게 배수(拜壽)하러 가게 하였다. 다시 얼마간 지나, 흑산령(黑山嶺)의 변란 이후 군에 오래 양식이 없게 되어, 각처 총병관(總兵官)들이 모두 가까운 곳에서 양식 지급하는 날짜를 상의하게 되었다. 상용과 주중문 두 곳이 서로 멀지 않아, 상용이 마침내 여러 용맹한 장수들을 데리고 주중문을 만나러 왔다. 주중문은 맞아들여 양식 지급 날짜를 결정하였다. 공사가 끝나자 주중문은 곧 술자리를 마련하여 내아(內衙)로 들어와 융숭히 대접하였다. 술자리가 무르익자 주중문은 모사 창전을 불러 서로 인사하게 하였다. 창전은 상용을 보고 속례(屬禮)를 행하려 하였다. 상용이 거듭거듭 양보하며 말하였다. "예로부터 모사(參謀)는 원래 통속이 없습니다. 게다가 창 형은 황상이 흠의하여 뽑은 분이라 남들과 다릅니다. 지금 또 주 인옹의 군중에서 일을 맡고 계시니 어찌 예를 넘을 수 있겠습니까?" 창전은 그래도 빈주(賓主)의 예를 행하였다.

세 사람이 자리에 앉아 한창 마시는 사이에, 상용이 거듭거듭 전날의 수문이 묘함을 칭찬하였다. "창 참모(昌參謀)는 이 한 편의 글로도 이미 그 깊은 학문과 큰 재주를 알 수 있습니다. 지금 또 만나 뵈니 크게 소원을 이루었습니다. 다만 이 글이 경도(帝都)에 전해져 만약 조 중귀의 발탁을 받는다면, 창 참모께서는 또 한 번의 기이한 만남이 있을 것이니 어찌 참모에 그치겠습니까?" 창전은 듣고 그저 연신 읍을 하며 말하였다. "소생은 감히, 감히 당치 않습니다." 주중문은 이때 술 뒤에 흥이 높아져 있었고, 또 상 총병의 극찬을 들으니 크게 기뻐하며 웃으며 말하였다. "이 글은 실로 창 참모의 붓이 아닙니다."

상용이 듣고 놀라며 말하였다. "북쪽 변방 군중에는 재주가 버선 실처럼 빈약하여, 소제의 군중에는 한 사람도 없고, 노 인옹의 막부에만 창 형 한 분이 계셔 으뜸이라 할 만합니다. 어찌 또 재인(才人)이 있다 하십니까? 재인이 어찌 그리 많습니까? 노 인옹께 청컨대, 이분은 대체 어떤 분이옵니까? 소제가 인사드리면 어떻겠습니까?" 주중문이 또 웃으며 말하였다. "그 사람이 있기는 한데, 서로 매우 가깝습니다. 만약 노 인옹께서 형주(荊州)에서 만나시고자 한다면, 그 사람은 또 멀리 있습니다." 상용이 말하였다. "그 사람이 있다면 멀면 멀고 가까우면 가까운 것이거늘, 어찌 노 인옹께서는 이런 멀고도 가까운 말씀을 하시어 소제로 하여금 바라보며 마음이 달려가고, 흠모하여 침이 넘치게 하십니까? 혹시 노 인옹께서 소제를 무부(武夫)로 보아 문인과 상대할 자격이 없다고 여기시는 것은 아닙니까?"

주중문은 창전을 보며 웃으며 말하였다. "상 인옹께서 이토록 꾸짖으시니 소제가 어찌 감히 다시 숨기겠습니까? 바른 말씀을 드릴 수밖에 없습니다. 말씀드리기는 드리겠으나, 다만 노 인옹께서 처음 들으시면 놀라시고, 다시 돌아 생각하면 기뻐하실까 두렵습니다." 상용이 크게 웃으며 말하였다. "노 인옹께서 이토록 기이하고 이상하게 말씀하시니, 다름이 아니라 그 성가(聲價)를 높여 소제로 하여금 공경하고 탄복하게 하려는 것이지요. 노 인옹께서 부디 빨리 가르쳐 주시어 소제의 한 치 마음이 가슴 속에서 큰 가뭄에 비를 바라듯 하지 않게 해주십시오." 주중문은 숨길 수 없음을 알고 어쩔 수 없이 바른 말을 하였다. "창 참모께서는 비단 문무의 재주를 갖추셨을 뿐 아니라 학문이 매우 깊으십니다. 다만 나이 들도록 아들이 없어 이 딸 하나만 두셔서 마치 손바닥의 구슬처럼 여기시며 가업(箕裘)을 잇게 하셨습니다. 군중의 한가한 때에 가슴 속의 학문을 다 기울여 가르치셨습니다. 뜻밖에 그 영애께서 타고난 총혜함으로 또 능히 아버지의 뜻을 받들었습니다. 아버지의 책을 다 읽어 붓을 내리면 규중(閨中)의 글이 아버지를 능가하려 합니다. 시구와 장편 대부(大賦)가 이루 헤아릴 수 없이 많습니다. 소제도 그간 전혀 몰랐다가, 전일 노 인옹의 가르침을 받고 소제가 창 참모에게 한번 써 주시기를 부탁하였습니다. 뜻밖에 창 참모께서 우연히 작은 병이 나서 명을 받들지 못하게 되니, 그 영애께서 대사를 그르칠까 두려워하여 마침내 아버지를 대신하여 초고를 완성하셨습니다. 소제가 보니 상투적인 틀에서 벗어나 독자적인 정신을 갖추어 매우 경탄하였습니다. 또 그 필묵 너머에 일종의 수매(秀媚)한 기운이 있음을 보고 거듭 물으니[원문 이하 320자 누락]……헛된 이름으로 인해 눈앞에서 놓치는 것은 아닙니까."

주중문이 듣고 이에 말하였다. "상 인옹의 고론(高論)은 자연히 사위를 고르는 좋은 방법입니다. 창 참모께서는 그 묘함을 깊이 생각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창전은 듣고 황급히 상용을 향해 깊이 읍하며 말하였다. "삼가 가르침을 받들겠습니다." 세 사람은 뜻이 맞아 유쾌하게 마음껏 마셨다. 상용은 창전과 더욱 친근감을 느꼈다. 이별할 즈음에도 아쉬운 마음이 많았다. 주중문과 창전이 곧장 원문(轅門) 밖까지 배웅하고 나서야 상용이 작별을 고하고 떠났다. 바로 이러하니:

훌륭한 장사꾼이 깊이 숨기는 것이 실로 맞는데,

어찌하여 가지 하나의 꽃을 가볍게 드러냈는가.

다만 봄바람 같은 얼굴을 삼가지 않았기에,

나들이하는 벌들이 나무에 가득 웅성거리게 되었도다.

알고 보니 이 상용은 북경 사람으로, 다만 조길상에게 아부할 줄 알았기에 이곳의 총병이 되었다. 그에게는 아들 하나가 있어 이름을 상기(常奇)라 하였으니, 올해 열일곱 살이었다. 다만 이 상용은 무관이라 문리에 그다지 밝지 못하였으므로, 아들이 각고하게 글을 읽기를 원하였다. 이에 관금(館金)을 아끼지 않고 이름 있는 선생을 청하여, 상기가 문리에 통달하여 문관이 되기를 원하였으나 그렇지 못하였다. 뜻밖에 이 상기는 인물이 괜찮게 건장하고 복스러운 상(相)이 있었으며 책도 기꺼이 읽기는 하였다. 다만 어쩔 수 없이 자질이 우둔하여 아무리 읽어도 깨치지 못하였다. 올해 열일곱 살인데 겨우 파제·승제(破題·承題)를 하는 수준으로 아직 한 가닥의 맥락도 알지 못하였다. 선생은 상용이 아들을 가르쳐 성명(成名)시키기를 급히 원하는 것을 보고, 어쩔 수 없이 그의 파제(破題)를 구절마다 고쳐 상용에게 보내며 그저 영랑(令郎)이 점점 가경(佳境)에 들어가고 있으며 장차 반드시 대성할 것이라고만 하였다.

상용은 선생이 아들을 칭찬하는 것을 보고 그것을 사실로 믿었다. 아들의 공명을 바랄 수 있고 재자(才子)라 칭할 만하다 여기며, 또 매번 생각하기를, 이 땅에서는 반드시 성명하기 어려우니 경사(京師)에 가야만 두각을 나타낼 수 있을 것이라 하여 자주 아들을 경사로 올려보내려 하였다. 선생이 말하였다. "영랑이 비록 재주는 있으나 아직 충분하지 않습니다. 아직 더 갈고닦은 다음에야 한 번에 성공할 수 있습니다. 옛말에 이르기를, '삼 년을 울지 않다가 울면 사람을 놀라게 하고, 삼 년을 날지 않다가 날면 하늘을 찌를 듯 날아오른다.'고 하였으니, 바로 이를 두고 하는 말입니다." 상용은 어쩔 수 없이 아들을 남겨 다시 가르치게 하였다. 그러나 마음속으로는 아들의 재주가 높다고 진짜로 믿으며, 마침내 재색(才色)을 두루 갖춘 규수를 구해 배필로 삼아야겠다는 생각을 품었다. 비록 이런 뜻은 있었으나, 눈앞에 적당한 사람이 없어 그저 경사에 가서 구하기를 바랐다. 그래서 아들의 일을 인순(因循)하며 미뤄두었다.

오늘 상용이 마침 주중문의 관아에서 음주하다가 창전의 딸이 수문을 지을 수 있다는 말을 들었다. 이토록 다재하고 또 혼약도 되어 있지 않으니, 마침 그의 뜻에 꼭 맞았다. 크게 기뻐하며 마음속으로 그녀를 며느리로 맞이하려 하였다. 이에 말 위에서 한길을 가며 속으로 생각하였다. '창전이 이런 기이한 딸을 낳을 줄이야, 일찍 구하지 않으면 혹 다른 이에게 빼앗길 것이니 어찌 눈앞에서 그냥 지나치겠는가? 다만 보건대 창전 이 늙은이는 사람됨이 좀 고지식하고 세무(世務)에 다소 어둡다. 그가 이 딸을 두었으니 반드시 사윗감 고르는 데 마음을 쓸 것이요, 반드시 딸의 재정(才情)에 필적할 수 있어야 마음 놓고 허혼할 것이다. 만약 조금이라도 맞지 않으면, 이 늙은이가 그렇다는 것은 말할 것도 없고, 생각컨대 이 딸이 이미 이런 좋은 글을 지을 수 있으니 스스로도 분명 주견이 있을 것이다. 설령 이 늙은이가 허락한다 해도 이 딸이 동의하지 않으면 방법이 없다. 다만 내 아들 가슴 속의 재학(才學)이 과연 어떠한지 모르겠으니, 그녀를 실제로 이길 수 있는지 알 수 없구나.' 이 생각에 이르러 일시에 방법이 없게 되었다.

홀연 또 생각하였다. '나는 총융의 현직(顯職)에 있으니, 장래에 인장을 차고 옥패(玉佩)를 두르며 장수가 되어 제후에 봉해짐을 실로 바랄 수 있다. 그는 비록 참모라 하나 관방(關防)의 인신(印信)도 없으니, 불과 군중의 서기에 지나지 않는다. 참모(參謀) 두 글자는 다름 아닌 사람들이 중히 여기는 명색(名色)일 뿐이다. 내가 만약 위세로 그를 압박한다면 그가 어찌 감히 거역하겠는가? 더구나 내 아들의 경우, 내가 옥패를 두른 후에 그를 경사로 보내 조 중귀에게 한 팔의 힘을 빌린다면, 거인(擧人)과 진사(進士)는 손을 내밀지 않고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힘을 따지자면 비록 정갑(鼎甲)을 바라지 않더라도 이갑(二甲)의 앞자리는 차지할 수 있을 것이다. 이갑이 된다면 한림(翰林)에 선발될 것이니 가장 확실하고 적당하다. 그 딸이 만약 허혼한다면 내 문에 들어오는 즉시 봉관하피(鳳冠霞帔)를 두르고 부인이 될 것이니, 어찌 영광스럽지 않겠는가? 내가 만약 그에게 청혼하러 간다면, 설마 이 늙은이가 이런 경우를 생각하지 않겠는가?' 다시 생각하기를, '다만 재자가인(才子佳人)이란 남자와 여자가 기쁘게 사랑하여 아름다운 이야기를 남겨 사람들의 부러움을 받아야 묘한 것이다. 내가 지금 만약 세력과 이익으로만 압박하여 구한다면, 사람들이 나를 무부라 비웃는 것을 면치 못하리라.'

이리저리 생각해도 이것도 좋지 않고 저것도 맞지 않았다. 홀연 또 생각하였다. '내가 지금 오직 이렇게, 이렇게 해야만 사문(斯文)의 체통을 잃지 않고 모두에게 영광이 될 것이다. 이 늙은이도 할 말이 없을 것이다.' 말 위에서 득의한 생각에 이르러 의기양양하게 본 관아로 돌아왔다. 군사들이 맞아들이자, 상용은 사사로운 내아(內衙)로 들어가지 않고 곧장 서재로 와서 선생과 아들을 보러 갔다. 다만 이 한 번의 방문으로 인해 가르침이 있으니:

혼인의 인연이 만날 듯 만나지 못하고, 좋은 때가 합할 듯 합하지 않는도다.

상용이 과연 창전의 딸을 구하여 며느리로 맞이할 수 있을지 알 수 없으니, 다음 회의 이야기를 들으시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