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오회 수재출신 군사가 기묘한 계책을 내어 일시에 현달하고 남녀의 정으로 다시 시를 짓고 대면하여 정을 피우다
사(詞)에 이르되:
얼굴의 홍조 스러지고, 몸은 쇠하여 기력이 진하되,
가슴 속 재학(才學)은 오히려 남아 있도다.
때로 말을 들어 계책을 따르니,
필부(匹夫)도 왕왕 봉작을 받는도다.
성정으로 정이 생겨나고,
미인을 누가 아니 사랑하리오,
추파(秋波)는 굳게굳게 눈썹 먹과 이어지도다.
짝지어 줄 것도 없고 주선할 것도 없으니,
되는 대로 모두 풍류의 태도로다.
「답사행(踏莎行)」의 곡조에 맞추어
봉의(鳳儀)가 경사(京師)로 올라간 일은 잠시 접어두기로 한다. 이제 창전(昌全)이 두씨(杜氏)와 함께 차사(差使)를 따라 밤낮으로 행로를 재촉하여 연경(燕京)에 이르고, 다시 동관(潼關)을 나서서 온갖 신고(辛苦)를 겪고 무수한 풍상(風霜)을 다 겪으며 오랜 날을 지난 끝에 비로소 변새(邊塞)에 당도하였다. 차사는 객점(客店)을 하나 빌려 투숙하고, 이튿날 수부(帥府)에 투도(投到)하기로 작정하였다. 창전에게 이르되: 「내일 투도를 해야 하니, 범사를 일찍이 장만하여야 하오. 준비가 소홀하면 내일 고초를 당할 것이오.」
창전은 이 말을 듣고 마음이 황황하여, 부득이 후한 예물을 갖추어 사람을 시켜 안으로 통하게 하였다. 그런 후 이튿날 차사와 함께 투도하니, 총병(總兵) 주중문(周重文)이 과연 알아채고서 내문(來文)을 열람한 뒤 곧 비준(批准)하였다. 또 회문(回文)을 내어 이르되: 「군로(軍路)에서 부상을 당하였으니 태형을 가하기는 불편하다. 우선 명부에 올려 대오(隊伍)에 편입시키고, 후일에 공을 세우면 속죄를 허락하리라.」 창전은 서둘러 머리를 조아려 사례하고 물러나, 부득불 술을 갖추어 대오의 형제들을 청하여 대접하였다. 이틀 후 해차(解差)가 작별하고 돌아갔으니 이는 더 말할 것이 없다.
그런데 이 대오의 사람들은 창전이 본래 수재(秀才) 출신의 선비임을 보고 그다지 구박하지 아니하였다. 서찰(書札)이나 문서 쓰는 일이 있으면 모두 창전이 나서서 수고하였고, 창전에게 거친 일이 생기면 여러 사람이 모두 와서 거들었다. 이리하여 창전과 두씨는 서로 편안히 지내며 고초를 겪지 않았다. 어느덧 일 년여가 지나자 각 영(營)의 병정들이 창전이 글씨를 잘 쓴다는 것을 알게 되어, 고향에 다니러 가는 청가(請暇), 병을 고하는 청병(請病), 군량(軍糧)을 청하는 것, 의갑(衣甲)을 청하는 것 등 온갖 수본(手本)을 모두 창전에게 와서 써달라 하였다. 필체는 단정하고 해서(楷書)가 분명하며 문법(文法) 또한 명료하였으니, 총병 주중문이 보는 족족 사리에 맞고 법도에도 어긋남이 없다 하여 허가하지 않는 것이 없었다. 마음속으로 어렴풋이 생각하되: 「군영(軍營)의 우직한 병사들은 대개 글자를 모르거늘, 이 수본들을 누가 써주는 것인고? 수시로 사람을 시켜 수소문하고 싶었으나, 군무(軍務)에 마음이 쏠려 번번이 놓치고 말았도다.」
하루는 한 병정이 술을 과하게 마시고 주정을 부리며 만나는 사람마다 때리고 물건이란 물건은 다 빼앗았다. 누군가 총병 주중문에게 고하니, 수하 병사를 시켜 이튿날 아침 일찍 그를 결박하여 데려오게 하였다. 그 병정은 한밤중에 술이 깨어 장주(將主)가 자신을 잡으러 한다는 것을 알고 혼비백산하였다. 속으로 생각하되: 「장주께서 가장 진노하시는 것이 주정이거늘, 잡혀가면 목이 잘린다는 것은 말할 것도 없고 결박하여 매질을 해도 죽을 것이다.」 창전이 쓴 수본이 효험이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으므로, 밤을 새워 창전을 찾아와 수본을 써주어 죄를 벗어나게 해달라고 청하였다.
창전이 물으되: 「자네 집에 노모(老母)가 계시는가?」 병정이 이르되: 「돌아가신 지 오래입니다. 줄곧 홀몸으로 지내다가 불과 며칠 전에야 비로소 아내를 얻었습니다.」 창전이 이르되: 「처자의 군량을 청원한 적이 있는가?」 병정이 이르되: 「아직 청원하지 못하였습니다.」 창전이 이르되: 「그러하다면 살 길이 있도다.」 그리하여 수본 하나를 써서 건네며 또 이르되: 「자네는 다만 이렇게 말하도록 하게 — 가난한 군졸로 장성하여 자식이 없으니 종사(宗祀)가 끊어질까 두려웠사온데, 어제 다행히 군처(軍妻) 한 명을 얻어 아들을 볼 희망이 생겨 종지(宗支)가 이어질 것 같아 마음이 기뻐, 그만 술을 몇 잔 과하게 마시고 말았습니다. 일시에 취하여 정신이 혼미해진 나머지 나리의 금령(禁令)을 어기고 말았습니다. 깨어나 후회하여도 이미 늦었으니 달게 죽음을 받아야 마땅하오나, 다만 나리의 천은(天恩)으로 며칠만 기한을 미루어 주시어 죄인으로 하여금 처자를 돌려보내고 조상의 위패를 불사르게 하신 뒤에 와서 죽음을 받게 하신다면, 이는 실로 나리의 법 밖의 큰 은혜이옵니다.」
그 병정이 이를 외워 두었다가 이튿날 간수에게 결박되어 장주를 뵈러 갔다. 주중문이 보자마자 크게 노하여 꾸짖되: 「이 대담한 놈! 본진(本鎭)에서 줄곧 주정에 금령을 내렸거늘, 어찌 감히 어겼느냐? 죽이지 않고서는 군위(軍威)를 세울 수 없다.」 도부수(刀斧手)를 대기시키라 하였다. 병정이 황망히 아뢰되: 「소인이 올릴 말씀이 있사오니 나리께서 굽어 살펴 주시옵소서.」 간수가 수본을 올리는 한편, 그 병정은 창전이 일러준 말로 애처롭게 울며 고하였다. 주중문이 귀로 듣고 이미 삼분(三分)의 측은한 마음이 생겼다. 다시 수본을 펼쳐 보니 이렇게 쓰여 있었다:
은혜로 법을 너그럽게 하시어 죽음을 유예해 주시기를 간청하는 일:
가난한 군졸 위아래로 외로이 지낸 지 오래이옵더니, 어제 나리의 크신 은혜로 군처(軍妻)를 새로 맞이하여 내조(內助)를 얻게 되고 자식을 볼 희망이 생겨, 일시에 마음이 흡족하여 방종하게 술을 마시고 춤을 추다가 나리의 금령을 어겼사옵니다. 후회하여도 이미 늦었으니 죽음인들 어찌 사양하겠나이까. 다만 기쁨으로 말미암아 허물을 불렀으니 통한(痛恨)을 이길 수 없나이다. 삶을 구하다가 죽음을 얻으니 그 정상(情狀)이 실로 가엾습니다. 오직 바라옵건대 천은(天恩)으로 죽음의 기한을 잠시 늦추시어, 이 가난한 군졸로 하여금 먼저 삼 일간 처자를 편안히 돌보게 하신 뒤 일도(一刀)의 고초를 받게 하여 주시면, 법도 밖의 은혜에 진심으로 감읍하겠나이다. 한없는 애절함을 이기지 못하겠나이다.
주중문이 다 읽고 한참을 측은하게 여기더니 비로소 물으되: 「네가 새로 처를 얻은 것이 정말 사실이냐?」 병정이 이르되: 「온 영(營)이 다 알고 있사오니, 어찌 감히 거짓말을 하겠나이까.」 주중문이 이르되: 「새로 장가를 든 뒤 기쁨에 지나쳐 술을 마신 것이니 정상이 용서할 만하다. 이번만 용서하거니와, 다시 주정을 부리면 결단코 용서하지 아니하리라. 결박을 풀어주어라.」 병정이 풀려나 머리를 조아리기를 그치지 않았다. 주중문이 이르되: 「죄는 용서하겠노라. 네 이제 사실대로 이르거라. 이 수본을 누가 대신 써주었느냐?」 병정이 이르되: 「창전(昌全)에게 부탁하여 쓴 것이옵니다.」 주중문이 다시 물으되: 「이 창전은 작년에 성지(聖旨)를 받들어 송강부(松江府) 화정현(華亭縣)에서 잡혀온 그 군범(軍犯)이냐?」 병정이 이르되: 「바로 그 사람이옵니다.」
주중문이 이를 듣고 즉시 그 병정을 보내며 사람을 시켜 창전을 불렀다. 이윽고 창전이 불려 오자, 주중문이 물으되: 「그대가 군중(軍中)에 온 이래, 본진(本鎭)이 그대의 내력을 묻지 않았소. 오늘 자세히 말해 보오. 재주와 능력에 따라 일을 맡기겠소.」 창전이 물음을 받고 부득이 머리를 조아려 아뢰되: 「죄인 어려서부터 글을 읽어 이미 반궁(泮宮)에 입학하였사옵니다. 다만 조상이 군적(軍籍)에 올라 있고 제명(除名)이 되지 않았사온 까닭에 성지를 받들어 잡혀 와 변방에 충실하게 된 것이옵니다. 그리하여 나리의 군전(軍前)에서 주구(走狗)의 수고나마 다하게 되었나이다.」
주중문이 듣고 탄식하여 이르되: 「과연 그대가 문인(文人) 출신이기에 이 수본들을 사리에 맞게 잘 쓴 것이로구나. 본진(本鎭)은 본래 선비를 중히 여기거늘, 어찌 그대를 이리 천대하였던가. 그대는 이제부터 본진(本鎭) 좌우에 따르며 문서를 처리하시오. 다시는 대오(隊伍)를 따라 돌아다닐 필요가 없소.」 창전이 연거푸 절하며 사례하였다. 이로부터 창전은 날마다 내아(內衙)에서 문책(文冊)을 정리하고, 오고 가는 서찰(書札)과 사륙문(四六文)을 모두 창전이 초고(草稿)를 잡으니, 주중문이 그의 문리(文理)가 맑고 빼어남을 보고 몹시 기뻐하였다. 전에 같은 반(班)에 있던 벗들도 상관이 그를 중히 여기는 것을 보고 모두 와서 아첨하였으나, 창전은 아랑곳하지 않고 오직 조심스럽게 봉공수법(奉公守法)할 따름이었다.
하루는 관외(關外)에 긴급한 사태가 보고되어, 다른 진(鎭)의 수장들이 잇따라 전패(戰敗)하였다 하였다. 주중문이 보고를 받고 경황 중에 어찌할 바를 몰랐다. 구원을 보내자니 마땅한 계책이 없었고, 구원을 보내지 않자니 조정에서 관망(觀望)하고 나아가지 않는다는 죄를 물을까 두려웠다. 이리하여 울울하고 기쁘지 아니하였다. 창전이 그 뜻을 헤아리고 기회를 틈타 한 계책을 올리되: 「지금 적군이 멀리서 와서 각 진(鎭)을 연거푸 무너뜨렸으니, 반드시 교만하여 더 침범해 올 것입니다. 이제 나리께서 군사를 이끌고 구원하러 가시되, 굳이 정면으로 싸울 필요가 없사옵니다. 다만 기병(奇兵)을 어지러이 흩어진 돌무더기 숲 뒤에 매복시켰다가 적군이 지나쳐 올 때 중간에서 돌출하면, 적군이 수미(首尾)를 서로 돌볼 수 없어 자연히 대승을 거두시리이다.」
주중문이 듣고 크게 기뻐하며 몰래 군사를 이끌어 어지러운 돌무더기 숲 뒤에 매복하였다. 과연 적군이 승세(勝勢)를 타고 쳐들어오되 전혀 경계하지 아니하였다. 홀연 주중문의 복병이 뛰쳐나와 적군을 칠 조각 여덟 조각으로 찢어 열에 여덟아홉이나 되는 수를 소멸하니, 적군은 밤을 새워 도주하였다. 주중문이 큰 공을 세워 기쁨을 이기지 못하고, 한편으로는 첩보(捷報)를 올리고 한편으로는 군사를 거두어 진(鎭)으로 돌아오며, 또 한편으로는 술을 갖추어 창전을 청하여 수고를 치하하였다. 창전이 재삼 사양하여 이르되: 「비천한 자가 거의 죽을 처지에서 은주(恩主) 대인의 너그러운 용서를 입어 막하(幕下)에 몸을 붙이고 고문에 대비하게 되었나이다. 비록 뼛가루가 되어도 높고 두터운 은혜를 만분의 일도 갚기 어려울 터이온데, 자그마한 일에 힘을 다한 것을 어찌 감히 수고라 하여 은주(恩主)의 하사(下賜)를 받겠나이까.」 주중문이 이르되: 「군중(軍中)의 직위는 일정함이 없으니, 오직 공을 논하여 상을 주어야 하오. 이제 그대가 이 기묘한 계책을 내어 위엄을 세우고 적을 제압하여 적군으로 하여금 간담을 서늘하게 하였소. 비록 황상(皇上)의 혁혁한 위령(威靈)을 빌린 것이라 해도, 실은 그대의 묘책으로 이루어진 것이오. 본진(本鎭)이 어찌 그대의 공을 빼앗아 자기 공으로 삼아 현인(賢人)을 방해하고 나라를 해치는 사람이 되겠소? 이번의 대첩을 보고하는 표문(表文)에, 이미 그대의 이름을 올려 성람(聖覽)에 들이었소. 오래지 않아 성명(聖命)이 내리면 자연히 나아갈 자리가 있을 것이니, 어찌 여전히 예전 일을 고집하겠소?」
창전이 주중문의 언사(言辭)가 당당하여 조금도 허식(虛飾)이 없음을 보고, 사례를 드리고 석방(席旁)에서 모시며 함께 술을 마셨다. 서로 문답하는 사이 자못 즐거웠다. 오래지 않아 과연 성명(聖命)이 내려, 창전은 주중문 군중(軍中)의 참모직(參謀職)에 실제 임명되었다. 주중문은 공을 가로채지 않고 현인을 감추지 않아 진심으로 나라를 위하였으니, 세 계급을 연달아 올랐다. 주중문과 창전이 함께 사은(謝恩)하고 나자, 창전이 재삼 절하며 주중문의 발탁해 준 은공에 감사하였다. 주중문이 내아(內衙)의 누방(樓房) 절반을 창전에게 거처로 내어 주었다. 창전은 이에 두씨(杜氏)를 내아로 맞아들여 함께 기거하였다. 이로부터 창전은 출입할 때 말을 타고 아역(衙役)을 거느리니, 일시에 부귀를 누리게 되었다. 변방에서의 일은 이만 접어두기로 한다. 정히 이러하니:
군적에 오를 때엔 변방에서 죽으리라 생각하였건만,
누가 알았으랴, 서생(書生)이 도리어 공을 세울 줄을.
이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하늘에 명이 있음을 알았으니,
구태여 괴롭게 궁통(窮通)을 헤아릴 필요 없도다.
이제 봉의(鳳儀)가 경사(京師)에 올라간 후, 왕 부인(王夫人)이 집에서 가사를 돌보는 이야기를 하자. 예전에는 혼자 지내며 적적함을 느꼈는데, 이제 채문(彩文) 소저(小姐)가 딸로 곁에 있어 외롭지 않았다. 더욱이 채문 소저는 성품이 영특하고 효성이 지극하여 매사가 어머니의 뜻에 맞으니, 왕 부인은 그를 친딸처럼 아꼈다.
하루는 당희요(唐希堯)가 봉씨 댁에 찾아와 왕 부인에게 문후를 여쭈되: 「표형(表兄)께서 경사에 올라가신 후, 가서(家書)가 온 적이 있사옵니까?」 왕 부인이 이르되: 「어르신이 경사에 오르시기 전에 편지가 왔는데, 이미 어사(御史) 직에 오르셨다 하더이다.」 당희요가 이르되: 「그러하시다니 참으로 경하할 일입니다. 일전에 표형수(表兄嫂)께서 영귀(榮歸)하셨고, 또 현명한 표질녀(表姪女)를 한 분 들이셨는데 미인이요 재주도 많다 들었습니다. 저의 처가 꼭 만나보고 싶어 하나, 표형수께서 막 귀가하셔서 여러 일을 정리하셔야 할 것 같아 오늘까지 미루었습니다. 처가 독촉하여 하는 수 없이 내일로 날을 잡아 특별히 왕림해 주시기를 청하러 왔습니다. 친척의 정의를 나누었으면 합니다.」 왕 부인이 이르되: 「저도 숙모님을 오래 뵙지 못하여 마침 그런 생각이 있었사옵니다. 다만 일이 있어 지체하다 못 왔습니다. 이제 어르신이 경사에서 벼슬하시는데, 장차 저도 경사로 올라오게 되면 더욱 만나기 어려울 것입니다. 숙모님께서 내일 청해 주시니 내일 반드시 가겠습니다. 또 숙모님이 현명한 표질을 들이셨는데 아주 빼어나다 하니, 저도 한번 보고 싶습니다.」 약속을 정하고 당희요는 돌아갔다.
이튿날 왕 부인이 과연 채문 소저와 함께 두 채의 가마를 타고 당씨 댁으로 갔다. 조씨(趙氏)가 황급히 나와 맞이하고 서로 인사를 나누며 안부를 물었다. 조씨가 채문 소저를 자세히 살펴보며 이르되: 「과연 표질녀가 이토록 빼어나게 아름다우니, 진정 재주 있는 숙녀로다.」 즉시 술을 갖추어 대접하도록 명하였다. 왕 부인이 표질이 왜 보이지 않는지 물으니, 조씨가 이르되: 「학당에 있습니다.」 하고는 서둘러 사람을 보내 당창(唐昌)을 불러 오게 하여 왕 부인께 절하고 또 채문 소저와도 인사를 나누게 하였다. 왕 부인이 당창을 보니 과연 용모가 맑고 수려하여 사랑스러웠다. 이에 물으되: 「질아(姪兒)가 올해 몇 살이냐?」 조씨가 대답하되: 「열한 살입니다.」 왕 부인이 이르되: 「질녀와 같은 나이로구나.」
말이 끝나자 자리에 들었다. 소저는 어머니 곁에 앉고 당창은 조씨 곁에 앉아 각자 술을 마셨다. 당창이 봉 소저(鳳小姐)가 몹시 아름다운 것을 보니, 검은 머리카락이 어깨에 드리우고 빼어난 아름다움이 선명하여, 심상한 여자와는 다름을 느껴 쉬지 않고 훔쳐보았다. 말이라도 건네고 싶었으나 낯이 설어 입을 열기 어려웠다. 마음속에 두근거림이 그치지 않았다. 눈이 마주치는 순간에는 한동안 얼굴이 붉어지고 귀가 달아올라 온몸이 어찌할 바를 모르는 지경이 되었다. 마음속으로 가만히 생각하되: 「봉씨 집 여동생이 이토록 표준(標準)하게 생겼단 말인가? 책에서 일컫는 미인이란 것도 이에 지나지 않을 것이다. 내가 만약 그와 부부가 된다면, 낭재여모(郎才女貌)의 한 쌍 가연(佳緣)이 아니겠는가?」
채문 소저는 그가 하도 쳐다보아 부득이 고개를 돌려 다른 곳을 바라보았다. 당창이 보지 않으면 그도 가만히 훔쳐보며 마음속으로 은근히 감탄하되: 「참으로 준수한 낭군이로다. 만약 여자 옷으로 꾸민다면 어찌 절색(絶色)의 여자가 아니겠는가? 이제 보니 두 눈이 형형하고 열 손가락이 섬섬하며, 또한 유연함이 눈빛 속에 흐르니 보는 사람의 마음을 홀리도다. 훗날 이런 아름다운 지아비를 얻는다면 비로소 나의 재주를 저버리지 않는 것이리라.」 두 사람은 한참을 서로 바라보며 모두 연모(戀慕)의 정을 품게 되었다.
왕 부인과 조씨는 이 두 질아(姪兒)와 질녀가 서로 반기는 것을 보고, 어린아이들의 장난으로만 여겨 특별한 뜻이 없다고 생각하였다. 조씨가 봉 소저를 끊임없이 칭찬하고 왕 부인도 당창을 끊임없이 칭찬하며 모두가 서로 기뻐하였다. 왕 부인이 조씨에게 웃으며 이르되: 「숙모님, 저 두 아이를 보시오. 꼭 한 쌍의 옥인(玉人) 같습니다. 만약 부부로 맺어 준다면 진정 더할 나위 없겠습니다. 저 아이들이 자라면 어르신이 돌아오셔서 말씀드리고, 친척끼리 혼인을 맺는다면 참으로 기쁜 일이 아니겠습니까.」 조씨가 이르되: 「부인께서 그리하여 주신다면 질아의 큰 다행이겠습니다.」
당창이 홀연 백모(伯母)가 봉 소저와의 혼인을 허락한다는 말을 듣고 기쁨을 이기지 못하여, 얼른 몸을 일으켜 왕 부인 앞으로 나아가 깊이 읍(揖)하며 이르되: 「백모님, 감사합니다. 한 번 하신 말씀은 사마도 돌이키기 어렵사옵니다.」 왕 부인이 이를 보고 참지 못하고 크게 웃으며 이르되: 「이 아이가 참으로 뻔뻔스럽구나.」 그의 손을 잡으며 이르되: 「걱정하지 마라. 훗날 내 스스로 헤아리리라.」 또 이르되: 「들으니 네 시재(詩才)가 매우 높아, 그 전에 「비화시(飛花詩)」를 지었다 하던데 내 아직 보지 못하였다. 네가 진정 재주가 있거든, 어찌 네 여동생과 함께 한 수 더 지어 내게 보여주지 않겠느냐? 내가 분명히 본 후에 너희 둘 중 누구의 재주가 더 높은지 알게 되면, 혼담을 의논하기에도 좋을 것이다.」
당창이 왕 부인이 시를 짓게 한다는 말을 듣고, 마침 배 속에 재주를 펼치고 싶은 생각이 가득 차 있던 터라 마치 꼭 건드려 준 듯하여, 기쁨이 넘쳐 온몸이 간지러운 것 같았다. 이에 이르되: 「전에 여동생의 「비화시」를 보니 글자마다 풍아(風雅)하고 붓마다 향기롭고 아름다웠습니다. 본래 부끄러운 줄도 모르고 화답하기 어렵사옵나, 봉 아저씨의 거듭되는 인도로 부끄러움을 무릅쓰고 화답하였습니다. 이제 백모님의 명이 계시오니 어찌 사양하겠습니까. 다만 두 사람이 따로 짓는다면 정의(情意)가 서로 이어지지 못할 것입니다. 차라리 현매(賢妹)와 함께 여전히 「비화(飛花)」를 제목으로 삼아 연음(聯吟)으로 한 수 짓는다면, 앞뒤가 서로 호응하여 더욱 친절할 것입니다. 현매는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채문 소저도 마침 재주를 펼치고 싶었고, 또 이 기회에 당창의 학문과 재정(才情)이 진짜인지 거짓인지를 직접 시험해 보고 싶었다. 이에 기꺼이 말하되: 「연구(聯句)는 참으로 좋습니다. 오빠께서 먼저 운(韻)을 일으키시면 소매(小妹)가 이으리이다.」 당창이 이르되: 「현매가 손님이시니, 어찌 나이 어린 형이 먼저 나설 수 있겠습니까?」 왕 부인이 이르되: 「손님이니 아니니를 따지지 말고, 다만 장유(長幼)의 차례로 하거라. 너희 빨리 지어보아라.」 당창이 부득이 이르되: 「여동생이여, 내 먼저 시작하는 것을 용서하오.」 이에 입으로 한 구를 읊조리니:
바람은 가늘가늘, 비는 부슬부슬, [당창] 붉은 향기 석별하며 옛 가지를 떠나도다.
높고 낮음에 빛깔 펼쳐 그림인 듯 의심되고, [채문] 동쪽 서쪽 날리어 시를 찾는 듯하도다.
동각(東閣)으로 불려 돌아오니 교태 없이 힘이 없고, [당창] 처마 앞에서 춤추다 약하여 지탱 못 하도다.
온갖 점철(點綴) 원래 옛 모양이요, [채문] 아득히 다함없음이 새로운 자태로다.
거울 앞을 낮이 엿보는 어리석은 남자여, [당창] 책 발 곁에 몰래 기대는 예쁜 아가씨여.
차라리 하늘 가득 강설(絳雪)로 날릴지언정, [채문] 땅에 가득 연지(胭脂)로 흩어지게는 말지어라.
봄을 은밀히 재촉하여도 봄은 오히려 연연하고, [당창] 늘 벌의 바쁨을 따르되 벌은 알지 못하도다.
오경(五更)을 잘못 탓하여 한스러움이 되었고, [채문] 홀연 만점(萬點)에 놀라 바야흐로 수심이 드는 때로다.
만약 공중에 모아 비단을 이룰 수 있다면, [당창] 하늘의 솜씨가 신기하게 이루어 줌을 저버리지 않으리. [채문]
얼마 아니 하여 다 지으니, 두 사람이 서로 보며 웃었다. 왕 부인은 두 사람이 묻고 답하듯 생각할 겨를도 없이 이루어냄을 보고 흡족하여 이르되: 「진정 한 쌍의 재자가인(才子佳人)이로다!」 당창과 소저가 서로 이야기하며 웃었다. 자리가 끝나자, 부인은 소저를 데리고 조씨 방에서 쉬었다. 당창은 아버지와 함께 서방(書房)에서 잠을 자니, 이 당창이야말로 진정 어린 소년으로 춘심(春心)이 처음 동하여 밤새 한잠도 이루지 못하였다.
이튿날 이른 아침, 어머니 방에 들어가 문안을 드린다 핑계를 대었다. 소저가 거울 앞에서 단장(丹粧)하는 것을 보고 그도 거울 앞으로 다가가 어머니더러 머리를 빗겨달라 하며 채문 소저와 멀지 않은 곳에 앉았다. 아슴아슴한 향기가 코를 찌르니, 소저를 바라보며 짐짓 이르되: 「현매는 『모시(毛詩)』 중의 「요조숙녀(窈窕淑女) 군자호구(君子好逑) 구지불득(求之不得) 전전반측(輾轉反側)」이라는 구절을 기억하십니까?」 소저가 이를 듣고 미소 지으며 이르되: 「그것은 기억이 안 납니다. 다만 「기견군자(旣見君子) 불아하기(不我遐棄) 지자우귀(之子于歸) 의기가인(宜其家人)」은 기억합니다.」
두 사람이 은근히 서로 추파를 던졌으나 두 어머니가 어찌 알겠는가? 다만 그들이 책 속의 고전(古典)을 이야기하는 줄로만 알아 조금도 의심하지 않았으니, 두 남매가 이야기하고 웃는 것을 그냥 두었다. 당창은 당면하여 기회를 놓칠까 두려워 서방(書房)으로 몸을 돌려 흰 비단 한 폭을 꺼내어 사(詞) 한 수를 쓴 뒤 소매 속에 넣었다. 어머니와 왕 부인이 앞에 없는 틈을 타, 가만히 소저에게 건네주었다. 소저가 받아 보니 사(詞) 한 수였다. 이에 가만히 읽으니:
마음은 급하고급하고, 눈은 바라고바라오니,
지척(咫尺)이 도리어 하늘 한 끝 같도다.
옥인(玉人)의 정(情)과 성품을 한번 여쭤 보노니,
혹 갈대 언덕에 기꺼이 다가와 줄는지 모르겠도다.
「장상사(長相思)」의 곡조에 맞추어
채문이 다 읽고 미소 지으며 이르되: 「오빠는 참으로 너무 다정하시군요.」 이에 금선(金扇) 하나를 집어 한 면에는 산수(山水)와 송죽(松竹)을 그리고, 다른 면에 화답하는 사(詞) 한 수를 써서 당창에게 건네주었다. 당창이 펼쳐 보니 그 사(詞)에 이르되:
파(巴)가 촉(蜀)을 그리워하고, 촉이 파를 그리워하니,
끝이 없다 말하여도 도리어 끝이 있도다.
두 마음의 봄이 하나로 통하기를 기다리면,
자연히 갈대 피리 여섯 관(管)이 홀연 날아오리.
「장상사(長相思)」의 곡조에 맞추어
당창이 다 보고 크게 기뻐하며 이르되: 「과연 현매는 시(詩)에 능할 뿐 아니라 그림에도 정통하구나. 그림 속의 산은 길고 물은 길며 소나무는 곧고 대나무는 무성하니, 담긴 뜻이 실로 깊도다. 이 형이 마음속에 간직하리니, 어느 날인들 잊겠는가!」 소저가 이르되: 「남녀의 정이 일시에 드러났습니다. 오빠는 함부로 누설하지 마시고 종신토록 간직하시옵소서.」 당창이 이르되: 「현매가 이처럼 가엾이 여겨 주시니, 어찌 밤에 기회를 틈타 달 아래 맹세를 나누지 않겠소?」 소저가 이르되: 「그것도 좋습니다.」 두 사람이 한창 말하는 중에 홀연 왕 부인이 걸어와 더 이상 말을 많이 할 수 없어 어물쩍 화제를 돌렸다.
밤이 되자 과연 두 사람은 어머니들이 한창 깊이 이야기하는 틈을 타 가만히 손을 잡고 후원(後苑)의 사람 없는 곳으로 가서 함께 꿇어앉아 맹서를 나누었다. 맹서를 마치고 일어나자 당창이 소저 곁으로 바짝 다가가 점점 친밀하게 굴었다. 소저가 정색하여 밀치며 이르되: 「오빠는 경박하게 굴지 마세요. 뒤에 때가 있을 것입니다.」 홀연 개 짖는 소리가 들려 사람이 올까 두려워 즉시 서둘러 방으로 돌아갔다. 당창은 기쁨이 가득하여 잠자리에 들었다. 이튿날 왕 부인이 소저와 함께 조씨에게 작별을 고하고 귀가하니, 당창이 직접 배웅하였고, 왕 부인이 또 그를 이틀 더 머물게 하였다가 비로소 돌아오게 하였다. 이로부터 당창이 늘 채문 소저를 만나러 왔으니, 이는 더 말할 것이 없다.
이제 단거(端居)와 이씨(李氏)의 이야기를 하자. 딸을 잃은 이후 온종일 울며 사람을 시켜 사방으로 수소문하였다. 때때로 현령(縣令)에게 포교(捕校)를 재촉하여 달라 청하였으나 소식은 묘연하기만 하였다. 일 년이 지나자 하는 수 없이 그만두었다. 부부 두 사람이 몹시 무료하였다.
또 일이 년이 지나, 이 해에 단거가 마침 거공례(擧貢例)에 해당되어 경사(京師)에 올라가 후선(候選)해야 할 때가 되었다. 그 역시 흥치(興致)가 전혀 없어 공명(功名)에 뜻이 없었다. 그러나 여러 벗과 친척들이 재삼 권하니, 단거가 홀연 또 생각하되: 「내가 바야흐로 딸을 찾으려는 참이었으니, 어찌 이 길에 경사에 올라가 도중에 수소문하지 않겠는가? 혹여 하늘이 가련히 여겨 소식이라도 알게 될지 모를 일이다.」 마음을 정하고 노자를 챙겨 경사에 오를 채비를 하였다. 이 한 번의 상경으로 인하여:
가인(佳人)은 만나지 못하고, 도리어 뛰어난 사위를 만나게 되었다.
뒷일이 어찌 되었는지 알 수 없으니, 다음 회를 보면 풀리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