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화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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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회 꽃 아래서 정을 나누고 의를 맺어 맹약을 정하고, 악한을 만나고 은인을 만나 도중에 양자를 들이다

사(詞)에 이르되:

재주와 미모를 어찌 남에게 보이랴, 얼굴을 마주하니 서로 사랑하여, 그는 반드시 오래 머물고자 하리. 눈썹 끝에 꽃을 보내지 않더라도, 눈 꼬리에 꾀꼬리와 제비가 날아오르리. 원수를 만나 업신여김을 당하리라 여겼더니, 뜻밖에 은혜의 별이, 마침 또 편의를 베풀어 주는구나. 비로소 알겠노니 천지는 참으로 사심이 없어, 모두가 아름다운 인연을 이루어 주는도다.

                     〔「접련화(蝶戀花)」의 곡조에 맞추어〕

  이야기하건대, 단거(端居)는 그해 자기 차례가 되어 정공(正貢)을 바쳐야 하였다. 그는 비록 공명(功名)에 뜻이 없었고 마음을 달리하여 그만두려 하였으나, 친지와 벗들의 거듭된 권면을 이기지 못하여 마침내 우직한 생각을 하나 품게 되었다. 속으로 헤아리기를, "경사(京師)에는 사람이 많이 모이는 곳이니, 혹 이 기회를 빌려 딸아이를 찾을 수도 있지 않겠는가." 하고는 노자와 행장을 꾸렸다. 또한 창검(昌儉)이 한가로이 있는 것을 보고 길에서 시중들도록 함께 데려가고자 하였다. 창검 역시 상경하여 주인 나리의 소식을 알아볼까 생각하던 참이라 흔쾌히 허락하였다. 이에 좋은 날을 골라 문을 나서 먼 길을 떠났으니, 이는 더 말할 것도 없다.

  한편 봉의(鳳儀)는 경사에서 어사(御史)가 되어 과감히 행동하고 권간(權奸)을 피하지 않으니 사람들이 모두 두려워하였다. 그는 경중(京中)에서 홀로 지내기 불편하여 마침내 집안 하인을 보내어 부인과 소저(小姐)를 경사로 데려오도록 하였다. 며칠이 지나지 않아 하인이 집에 이르러 부인과 소저를 만나 서찰을 올리고 온 뜻을 아뢰었다. 부인과 소저가 크게 기뻐하며 한편으로는 집안일을 처리하여 모두 한 늙은 하인에게 맡겨 돌보게 하고, 또 한편으로는 당희요(唐希堯)에게 알렸다. 당희요는 왕(王) 부인과 소저가 이처럼 먼 길을 떠나게 되었음을 듣고 붙들어 둘 수 없음을 알아, 조씨(趙氏)·당창(唐昌)과 함께 술자리를 마련하여 봉씨 댁에 찾아가 전별하였다. 부인이 이들을 맞아들이며 매우 기뻐하였다.

  당창은 소저를 보자 얼굴에는 기쁜 빛이 돌았으나, 두 사람의 마음속은 몹시 즐겁지 않았다. 어머니 앞에서 말하기 불편하여 거짓으로 원 안에 작약(芍藥)이 한창 피었다 핑계를 대고 함께 가서 보자고 하였다. 원 안에 이르러서야 어찌 꽃을 볼 마음이 있었겠는가? 다만 꽃 아래 앉아 서로 기대어 있을 뿐이었다. 당창이 이에 말하였다. "아름다운 용모가 지척에 있으되 가까이할 방도가 없소. 정이 이미 견딜 수 없는데 문득 멀리 이별한다 하니, 사람이 하늘 끝으로 가면 누가 소식을 전해 주리오? 오직 죽음이 있을 뿐이오. 어진 누이께서 어떻게 나를 가르쳐 주시겠소?" 소저가 말하였다. "오빠께서 걱정하시는 것이 바로 제가 근심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어쩔 수가 없군요. 다행스러운 것은 어머니께서 오빠를 깊이 사랑하시니 전에 하신 말씀이 빈말이 아닐 것입니다. 오빠께서는 마음을 편히 하고 조용히 기다리시되, 절대로 사사로운 정을 드러내어 부모님께 박하게 여겨지는 일이 없도록 하소서. 소첩이 어머니를 따라 경사에 가서 만약 기회가 있으면 반드시 속히 알릴 것입니다." 당창이 말하였다. "어머님과 누이의 마음은 진실하고 변함이 없을 것이나, 다만 이번에 떠나면 날이 갈수록 점점 멀어질까 염려됩니다. 혹 백부(伯父)께서 벼슬길에 아는 이가 많으시어 훌륭한 인물을 만나시어, 누이의 어질고 현명함을 알고서 정으로 구하거나 세력으로 청하게 된다면, 중매쟁이의 힘이 크고 월노(月老)의 재주가 강하여, 한순간에 재주 있고 발 빠른 이에게 빼앗기고 나면, 어찌 그루터기를 지키며 토끼를 기다리는 사람을 실망시키지 않겠습니까?"

  소저가 듣고는 얼굴빛이 달라지며 말하였다. "오빠는 어찌 그리 생각이 얕으십니까! '나의 마음은 돌이 아니라 굴릴 수가 없다'는 말을 모르십니까? 어찌 지난날의 맹약을 아이들 장난으로 여기십니까? 부모님께서 깊이 불쌍히 여겨 주시니 아마도 그런 일은 결코 없을 것입니다. 설령 오빠 말씀대로 물이 다하고 산이 막히는 지경이 된다면, 소첩은 죽음으로 오빠를 따르고 결코 구차히 살아남아 오빠의 기대를 저버리지 않겠습니다!" 말을 마치자 말과 안색이 모두 엄숙하였다. 당창이 이를 보고 서둘러 말하였다. "이는 어리석은 형의 지나친 걱정이었소. 누이의 금석같은 말씀을 들으니 부끄러움을 이기지 못하겠소. 이제부터는 삼가 조용히 기다려 좋은 소식을 기다리리다. 앞서 한 당돌한 말은 누이께서 용서해 주시오." 소저가 말하였다. "오로지 오빠의 정이 깊기에 이처럼 멀리까지 걱정하신 것이니 어찌 이상하게 여기겠습니까? 이 일은 잠시 접어두고, 소첩이 보건대 혼인의 일은 매양 공명과 가까이 있습니다. 오빠께서 이미 이러한 재주와 정이 있으시니 어찌 과거 공부에 전심하여 앞길을 도모하지 않으십니까? 더구나 지금 마침 시험 기간이오니, 만약 청운(靑雲)의 뜻이 발 아래서 일어난다면 혼인은 절로 손바닥 안에 있을 것입니다. 오라버니께서 힘쓰시기를 바랍니다."

당창이 듣고 감격함을 이기지 못하여 사례하며 말하였다. "누이께서 이처럼 간곡히 말씀해 주시니, 어리석은 형이 비록 재주가 없으나 어찌 공명에 힘쓰지 않아 누이의 기대를 저버리겠소?" 이때 정자 위에 종이와 붓이 있었기에 가져다 시 한 수를 지었다.

아미(蛾眉)를 가만히 들여다보니,

가득한 모습이 열셋도 되지 않았네.

생각은 모두 슬기로운 마음에서 나오고,

말 없음에도 기이한 이야기가 넘치네.

곱고 어진 성품은 천고(千古)보다 높고,

굳은 마음은 이남(二南)을 넘어서네.

금자(金紫)의 영예가 곁에 없다면,

제 그림자를 돌아봄에도 부끄러우리.

  소저가 이를 보고 당창의 시구가 청신(淸新)함을 보자 감개함을 이기지 못하였다. 즉시 원운(原韻)을 따라 화답시 한 수를 지었다.

귀밑 머리채를 쓸어도 두 그림자이되,

한 마음에 둘도 셋도 없어라.

부드러운 정은 꿈속에서도 지키고,

은밀한 말은 시에 맡겨 이야기하네.

준마(駿馬)는 북으로 달려야 하고,

어리석은 매화는 남쪽에서만 피어나네.

다시 만나는 날 이 시를 꺼내어,

비로소 두 사람 모두 부끄럼 없음을 믿으리.

  당창은 그의 재주와 정이 민첩하고 뛰어나 반점의 경박함도 드러내지 않음을 보고 이미 한없이 감탄하였다. 또한 그가 은근히 격려하며 뜻을 다짐하고 함께하겠다고 한 것을 보고 감격함을 이기지 못하였다. 말하기를, "누이의 정은 깊은 못물 같고 맛은 순한 술 같아, 어리석은 형으로 하여금 마시기도 전에 이미 마음이 취하게 하는구려." 하면서 한편으로 말하고 한편으로는 이미 마음이 흔들리고 정신이 달아나 스스로를 억제할 수가 없었다. 몸을 가까이하고 싶었으나 어쩔 수 없이 가슴속이 마치 작은 사슴이 마구 날뛰는 듯하여 오직 두 눈으로 멍하니 소저를 바라볼 뿐이었다. 소저가 그의 이러한 모습을 보고 이에 말하였다. "오빠는 어찌 이처럼 깊은 정을 드러내십니까? '혈기가 아직 안정되지 않았을 때의 경계'를 들어 보지 못하셨습니까? 더구나 지금 이미 맹약을 정하였으니 돌아오는 날이 있을 것입니다. 만약 '관저(關雎)'의 사모함을 상간복상(桑間濮上)의 구함으로 삼으신다면, 소첩은 결코 이를 취하지 않을 것입니다."

당창이 듣고 꿈에서 깨어나는 듯하였다. 연거푸 말하였다. "누이의 말씀은 참으로 글자마다 구슬과 옥이니, 어찌 가슴에 새겨 따르지 않겠소!" 이에 지었던 두 편의 시를

서로 바꾸어 주어 훗날 다시 만날 때의 증거로 삼아 간직하였다. 두 사람은 원 안에서

또 잠시 앉아 있다가 사람이 오는 것을 보고서야 방으로 돌아왔다. 다행히 왕 부인은

조카를 사랑하고 또 딸을 사랑하여, 둘 다 어린 나이임을 보고 두 사람이 원 안에서 꽃

구경하며 놀도록 내버려 두고 조금도 의심하지 않았다. 두 사람이 이처럼 맹약을 정하고

맹세를 세운 줄 어찌 알았겠는가? 이야말로:

남녀에게는 예로부터 큰 욕심이 있거늘,

하물며 재주 있고 아름다우며 또 다정함이랴.

어느 날 아침 꽃 그늘 아래서 이별을 고하니,

서로 바라보며 감모(感慕)의 정이 일어남을 어찌 면하리오.

또 이틀이 지나 왕 부인이 집안일 처리를 마치고 즉시 행장을 꾸려 출발하였다. 당희

요와 조씨가 모두 전별하러 왔으나, 오직 당창과 채문(彩文) 두 사람만은 임별(臨別)의

순간에 이르러 한 마디 말도 할 수 없었다. 오직 표정이 처량하고 어두울 뿐, 각자 손으

로 가만히 가슴을 가리킬 따름이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왕 부인이 소저와 함께 출발하

여 하인들을 거느리고 일제히 북을 향해 떠나갔다. 당창은 부모와 함께 방금 집으로 돌

아왔으나 한동안 멍하니 그리워하며 잃어버린 것이 있는 듯하였다. 그러나 또한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이야말로:

다시 만날 날이 언제인지 알지 못하고,

살아서의 이별이 바로 이 순간이로다.

비록 쇠와 돌 같은 마음이라도,

어찌 서로 그리워하지 않을 수 있으리오.

  한편 단거는 창검의 시중을 받으며 두 사람이 길에서 수륙(水陸)을 함께 이용하여 하루 이틀이 아닌 날을 보낸 끝에 경사에 이르렀다. 이때 천하의 공생(貢生)들이 모두 모여들어 선발 기일이 빨랐으므로, 단거는 부득이 무리를 따라 기다렸다. 선발 기일이 되었으나 사람은 많고 자리는 적어, 게다가 운동하고 끼어드는 사람들에게 빼앗기고 말았다. 단거는 한낱 가난한 선비로 끼어드는 데도 능하지 않고 운동할 재력도 없어 한때는 선발되지 못하여 부득이 경사에서 기다렸다. 또 반년을 기다린 끝에야 마침내 임강부(臨江府) 신유현(新喻縣) 유학교유(儒學敎諭)에 선발되었다. 며칠 지나지 않아 문빙(文憑)을 받고 경사를 나서게 되었다.

  한편 당창은 봉 소저와 이별한 뒤 서재에 앉아 있기는 하였으나 끊임없이 생각하는 것이 마치 진귀한 보물을 잃어버린 것 같아서, 종일 무기력하고 무감각하여 차와 밥도 게을리 먹고 책과 역사도 마음이 없어 그저 서재에 묵묵히 앉아 무료하게 지냈다. 문득 종사(宗師)가 패(牌)를 현(縣)에 보내어 현관(縣官)이 곧 방(榜)을 내걸어 동생(童生)들로 하여금 현에 나아가 시험을 치르도록 하였다. 당희요가 이를 보고 즉시 서재로 들어가 말하였다. "종사께서 곧 임하실 터인데 현관이 알려왔으니 동생들이 시험에 나가야 한다. 너도 가서 한번 시험을 보도록 하여라. 비록 즉시 진학하지 못하더라도 빛을 더할 수는 있느니라." 당창이 듣고 웃으며 말하였다. "아버님께서는 어찌 이처럼 어렵게 말씀하십니까? 소자는 시험을 보지 않으면 그만이지만, 보는 것이라면 공명(功名) 두 글자가 마치 주머니 속에 있는 것과 같으니 어찌 놀라울 것이 있겠습니까!" 당희요가 말하였다. "다만 네가 뜻을 이루기를 바랄 따름이다."

  당창은 속으로 봉 소저가 권면하던 말을 떠올리며 생각하였다. "내가 만약 요행히 이름을 이룬다면 경사에 올라가 그를 한 번 만나는 것이 쉬워질 것이다. 다시 아버님께 편지 한 통을 청하여 당당히 구혼하러 가면, 백모(伯母)께서 안에서 도와 이루어 주실 테니 봉 백부(伯父)가 허락하지 않을 리 없다." 이에 정신을 가다듬어 현고(縣考)의 날이 되자 당희요가 당창을 데리고 학교 문 앞까지 배웅하였다. 당창이 무리를 따라 들어가 제목을 손에 받자마자 생각할 것도 없이 거침없이 써 내려갔다. 한낮도 되기 전에 두 편의 글이 완성되었다. 시권을 내고 나오자 부모가 그가 집에 일찍 돌아온 것을 보고 몹시 기뻐하였다. 며칠이 지나지 않아 현의 방(榜)이 붙었는데 제일명(第一名)이 바로 당창이었다.

  또 한 달여가 지나 부고(府考)가 있었는데, 당창이 들어가 풀밭의 지푸라기를 줍듯 쉽게 또 제일명을 취하였다. 당희요가 매우 득의양양하였다. 일찍이 온 성 안에 소문이 퍼져서 모두들 당 씨 댁 아들이 크게 재주와 학문이 있어 부고와 현고에서 모두 제일명을 취했으니 내일 종사(宗師) 처에서 자연히 틀림없이 수재(秀才)가 될 것이라고 칭찬하고 부러워하였다. 소문이 일시에 퍼지자 이미 재주를 시기하고 재물을 탐하는 소인이 한 명 들고 일어났다. 그가 누구인고 하니, 원래 당희요의 족중(族中) 조카 당도(唐涂)였다. 그는 학문을 이루지 못하고 오로지 아전들과 어울려 지냈으며 아들 둘을 두고 있었다. 당희요 집안이 풍요롭고 자녀가 없는 것을 보고 자주 사람을 시켜 둘째 아들을 당희요에게 양자로 들여 그 재산을 차지하려 하였다. 당희요는 그의 행실이 바르지 않음을 보고 그를 양자로 들이려 하지 않았다. 그런데 문득 당희요가 당창을 양자로 들이는 것을 보고 마음속으로 크게 분노하여 거듭 방법을 꾸며 당희요와 당창을 해치려 하였다. 그러나 봉의가 한번 집에 돌아와 눌러버리자 손을 쓰기 불편하였다. 또한 당창이 나중에 커지면 내 상대가 되지 않으리라 생각하고, 삼촌이 죽기를 기다리면 그 집안의 재산이 결국 자기 것이 될 것이며, 이 외성(外姓)의 사람이 이어받아 가기는 어려울 것이라 여겨 내내 참고 발동하지 않았다.

  오늘 문득 당창이 시험에 응시한다는 소식을 듣고 그는 삼촌이 허울만 꾸미려는 것이라 여겼다. 뜻밖에 현에서 제일명을 취하고 부에서도 또한 제일명이 되어 온 현을 떠들썩하게 만들었다. 아문(衙門)의 사람들이 모두 당도에게 치하하여 말하기를, "영제(令弟)가 재자(才子)이니 장차 틀림없이 진학하고 나중에 거인(擧人)이 되고 진사(進士)가 되는 것도 당씨 가문의 체면이오." 하니, 이 당도는 듣고 더욱 불에 기름을 붓는 것처럼 노여움을 이기지 못하였다. 이에 몰래 계책을 꾸며 그를 해치려 하였으나 한때 방법이 없어 몹시 답답하고 번민하였다.

  홀연 어느 날 한 가지 계책을 생각해 내고 크게 기뻐하며 말하였다. "그를 제거하려면 오직 이렇게, 이렇게 해야만 귀신도 모르고 신도 모를 것이다." 계책이 정해지자 오직 때를 기다려 일을 행할 따름이었다. 얼마 시간이 지나 학도(學道)가 순행하여 이르자, 여러 주부현(州府縣)의 동생들이 일제히 와서 시험을 치르지 않을 수 없었다. 오경(五更)이 되어 여러 동생들이 점명(點名)하여 입장하였는데, 당희요가 아들 당창을 데리고 마침 왼쪽 책문(柵門) 옆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점명하여 들어가게 되자 잠시 기다리니 문 위의 아전이 이미 당창을 불렀고, 이에 장 안에서 쓸 물건을 가지고 책문으로 걸어 들어갔다. 당희요는 따라 들어갈 수 없어 부득이 그가 들어가도록 두었다.

  당창이 막 문 앞에 이르러 바야흐로 문으로 들어서려는 순간, 뜻밖에 갑자기 두 사람이 인파 속에서 마구 밀어붙이더니 당창을 밀고 몰아 뒤로 물러나게 하였다. 당창이 뒤로 물러나는 것을 보고 부득이 다시 밀고 들어가려 하였다. 그런데 곁에 어떤 사람이 꽉 붙들어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게 할 뿐만 아니라 일시에 밀고 당겨 곧장 오른쪽에서 원문(轅門) 밖으로 밀려 나왔다. 당창이 당황하여 크게 소리쳤으나, 어찌할 것인가, 사람은 많고 소리는 뒤엉켜 이 동생들은 제각기 들어가기 바빠 어찌 그의 한가한 일을 돌보겠는가?

  당창이 바야흐로 다시 소리치려 하자, 등 뒤의 한 사람이 옷소매로 그의 입을 틀어막아 당창이 소리를 낼 수 없게 하고는 그를 끌어다 으슥한 골목에 들어가 마구 주먹과 발로 때렸다. 가엾도다, 풍류 넘치고 재주와 학문을 겸비한 어린 학생이 순식간에 맞아 죽고 말았다. 어떤 사람이 이러한 독수를 가했는고 하면, 원래 바로 당도(唐涂)였다. 당창이 오경에 입장하는 것을 알고 큰아들과 함께 학도의 문 옆에 섞여 들어가 오직 당창이 오기만을 기다렸다가 손을 쓴 것이었다. 뜻밖에 당창이 과연 오자 당도 부자가 마침내 그를 밀어내어 한바탕 때려죽였다.

  당도는 그가 죽은 것을 보고서야 통쾌해하며 아들에게 말하였다. "이 잡종이 죽었다. 이제 집안의 재산이 모두 네 것이다. 이제 이 틈을 타 하늘이 아직 밝지 않고 다니는 사람이 없으니 업고 성 밖으로 내가면 별일이 없을 것이다." 이에 아들에게 업으라 하였다. 이때 성문이 막 열려 곧장 성문 밖으로 업고 나가 성에서 삼 리 떨어진 한 흙 언덕 옆에 내려놓고 어지러운 풀로 잘 덮어 두었다. 당도 부자는 이에 집으로 돌아갔다.

  한편 이날 단거가 오경에 밥집에서 나와 길을 걷다가 교자(轎子) 하나를 타고 마침 높은 언덕에 이르렀는데, 교부(轎夫)가 걷다 지쳐 교자를 내려놓고 물을 찾으러 갔다. 단거가 교자 안에 앉아 있다가 소변을 보려고 창검에게 교자를 지키게 하고 내렸다. 단거가 언덕 아래로 걸어가 막 소변을 보려는 순간, 문득 풀더미 속에서 누군가 "아이고야" 하고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단거가 깜짝 놀라며 말하였다. "이런 황량한 들판에 어찌 사람이 있어 이처럼 부르짖는가? 필시 일찍 일어난 길손이 남에게 해를 입은 것이로다!" 이에 창검을 불러 말하였다. "빨리 이리 오너라."

  창검이 듣고 곧바로 달려왔다. 단거가 급히 가리키며 말하였다. "이 풀 속에 사람이 부르짖고 있으니 네가 가서 보아라." 창검이 즉시 가서 찾았으나 사람의 그림자가 어디 있겠는가. "사람이 없습니다."라고 하였다. 단거가 사람이 없다는 말을 듣고 막 돌아서려 하는데, 문득 또 "아이고야" 하는 소리가 들렸다. 단거가 발을 멈추며 말하였다. "이것이 사람 소리가 아닌가? 너도 들었느냐?" 창검이 말하였다. "과연 사람 소리입니다. 참으로 이상하군요!" 이에 멈추어 서서 다시 들으니, 문득 또 "아이고야" 하는 소리가 났다. 창검이 얼른 가서 보니, 한 무더기의 어지러운 풀 속에 옷가지가 희미하게 드러나 있었다. 서둘러 말하기를, "여기 있습니다!" 하고는 어지러운 풀을 헤쳐 젖혔다.

  단거도 걸어와서 보니, 한 어린 학생이 풀 속에 누워 온몸이 선혈(鮮血)이었다. 다시 가까이 다가가 자세히 보니, 그 학생이 눈을 뜨고 "아이고, 살려주세요." 하고 불렀다. 단거가 급히 물었다. "너는 어느 댁 학생이냐? 어찌하여 이곳에 누워 있느냐?" 그 학생이 물음을 듣고 두 눈에 눈물을 흘릴 뿐 소리를 낼 수 없었다. 단거가 생각하였다. "보아하니 그의 차림새로는 분명 하인이 아니다. 비록 얼굴에 상처가 있으나 눈썹과 눈이 매우 수려하다. 다만 어떤 사람에게 해를 입어 이곳에 있는지 알 수 없구나." 이에 창검에게 그를 부축하여 일으키도록 하였다. 그 학생은 어찌 발을 딛고 설 수 있겠는가? 부득이 다시 땅에 눕히었다.

  단거가 그를 구하고자 하여 내력을 물은 뒤 집으로 돌려보내려 하였으나, 온몸에 상처가 있어 말을 할 수 없고 두 눈에 눈물만 흘릴 뿐이었다. 단거가 이에 생각하였다. "이 학생은 열두셋에 불과한데 어떤 큰 원한이 있어 이처럼 해를 당하였는가? 혹 친척이 나중에 도리어 그를 학대한 것이 아닐까? 지금 만약 돌려보낸다면 그것은 빨리 죽으라는 것과 같다. 차라리 내가 데리고 가서 조리하여 낫게 한 다음 분명히 물어보고 다시 처리하는 편이 낫겠다." 이에 창검에게 업게 하여 원래 자리로 걸어 돌아왔다. 다시 그를 교자 안에 넣고 단거는 창검의 나귀를 타서 일제히 길을 나섰다.

  선창(船艙)에 이르자 단거는 그 학생을 구하는 일로 혹여 사람이 알아채어 도리어 불미스럽게 될까 두려워 오히려 오래 머물기 불편하였다. 또 일찍 출발하기도 불편하였으나 부득이 배를 거꾸로 빌려 그 학생을 선창 안으로 부축하여 넣고, 창검에게 호두를 많이 사고 또 좋은 술을 사서 그 학생에게 먹이도록 하였다. 이에 배를 출발시켰다. 다행히 황하(黃河)에서 바람과 물이 순조로워 하루 이틀이 지나지 않아 청강포(淸江浦)에 이르렀고, 다시 작은 배로 바꾸어 창검이 일로(一路) 내내 그 어린 학생을 시중들었다. 반달이 지나자 붓기가 빠지고 상처가 아물어 음식을 먹을 수 있게 되었다. 배 안에서 겨우 앉고 걷고 다닐 수 있게 되었다. 단거가 크게 기뻐하며 그에게 물었다. "네 성은 무엇이고 이름은 무엇이냐? 어찌하여 이처럼 사람에게 손상을 당하였느냐?"

  그 학생이 북방 사투리로 말하였다. "소생(小生)의 성은 당(唐)이요 이름은 창(昌)으로, 시험에 응하여 입장하다가 문득 사람들에게 끌려 나가 몹시 맞아 죽을 지경이 되었습니다. 뜻밖에 대인(大人)께서 소생의 목숨을 구하여 주시고 몸을 조리하여 낫게 해 주시니, 은혜가 재생(再生)과 같습니다." 말을 마치고 즉시 절을 하였다. 단거가 급히 부축하여 일으키며 말하였다. "이는 네 목숨이 아직 끊기지 않아 마침 나를 만난 것일 뿐이다." 또 물었다. "당시에 난을 당했을 때 그 사람을 알아볼 수 있었느냐?" 당창이 말하였다. "한밤중이라 알아보기 어려웠고, 오직 귀에 희미하게 '집안의 재산을 차지하게 되었다!'라는 말이 들렸습니다." 단거가 말하였다. "그렇구나! 필시 누군가가 너를 죽이고 재산을 빼앗으려 한 것이다. 너는 올해 몇 살이냐?" 당창이 말하였다. "올해 열셋입니다." 단거가 말하였다. "네가 이미 시험에 응했다 하니, 어떤 경(經)을 공부하였느냐?" 당창이 말하였다. "오경(五經)을 모두 외웁니다." 단거가 몇 가지 경의 문장의 뜻을 물어보니 당창이 즉시 막힘없이 대답하였다.

  단거가 크게 기뻐하며 속으로 생각하였다. "이 아이의 앞날의 전도(前途)가 작지 않겠다. 나는 이제 아들이 없으니 은혜를 베풀어 양자로 삼으면 어떻겠는가?" 이에 말하였다. "너는 이제 죽다 살아났고 또 집을 떠나 나를 따라 이천여 리를 왔으니 돌아가기가 심히 어렵다. 비록 너를 돌려보낸다 해도 이런 원수가 있으니 반드시 또 그 독해를 당할 것이다. 나는 이제 임강부 신유현 유학교유에 선발되었으니 지금 비록 집으로 가더라도 곧 부임할 것이다. 나는 지금 자식이 없어 집안을 이어갈 이가 없으니, 너를 의붓자식(螟蛉)으로 삼고자 한다. 만약 훗날 뜻을 이루면 다시 뿌리를 찾아도 늦지 않을 것이다. 네 마음은 어떠하냐?"

당창이 듣고 급히 무릎을 꿇으며 말하였다. "소자(小子)가 오늘 살아난 것은 실로 대인의

재조지은(再造之恩)으로, 낳아 준 부모와 다를 바 없습니다. 어찌 자식의 효를 다하지 않겠

습니까?" 말을 마치고 땅에 엎드려 네 번 절하며 말하였다. "이제부터 소자 불초(不肖)하오

나 아버지의 훈육을 만 번 바라나이다." 단거가 크게 기뻐하여 그의 네 번 절을 받았다. 배

안에서 부자(父子)의 호칭을 쓰게 되었다. 이야말로:

분명 장인봉(丈人峰)이 하나 있었건만,

도리어 의붓자식으로 먼 종통(宗統)을 잇게 되었네.

사람들이 통쾌하다고 칭하는 날이 되어서야,

비로소 천의(天意)가 묘하게 만나게 해 줌을 알았네.

  단거·당창·창검 세 사람이 며칠 지나지 않아 화정(華亭) 집에 이르렀다. 단거가 즉시 당창에게 어머니 이씨(李氏)에게 뵙도록 하고, 이에 길에서 그를 구하여 아들로 삼게 된 것을 하나하나 아뢰었다. 이씨가 당창을 보니 눈썹과 눈이 맑고 수려하여 매우 사랑스럽게 여겨 기뻐함이 한없었다. 단거가 집에 돌아오자 많은 친척과 벗들이 그가 관직을 얻은 것을 보고 모두 와서 축하하였다. 축하가 끝난 뒤 단거는 또 이씨·당창과 함께 조상의 묘소에 가서 제사를 지내었다.

또 며칠이 지나자 일찍이 임강부 신유현 유학에서 사람을 보내어 맞이하였다. 단거가 집안

일을 처리한 뒤 창검에게 맡겨 돌보도록 하였다. 창검이 감히 사양하지 못하자, 단거는 이에

이씨와 아들 단창(端昌)과 함께 배에 올라 부임 길을 떠났다. 이 한 번의 길로 말미암아 이런

일이 생기게 되니:

관아는 적막하고 관사는 차갑거늘,

지기(知己)의 글이 은혜를 갚음에 감동하였네.

뒷일이 어떠한지 알지 못하겠거든? 다음 회의 이야기를 들어 보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