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삼회 부부가 험난한 길에 사랑을 끊어 외아들을 버리고 친척 집에서 즐기다 뜻밖에 악인의 손에 어린 딸을 빼앗기다
사(詞)에 이르되:
궁한 처지에 떠돌아 나아가도 물러서도 참으로 낭패로다. 은정을 나누고 사랑을 끊는다 하였으나 하늘의 뜻이 있음을 누가 알았으리. 비록 어찌할 수 없는 노릇이나 어찌 일찍이 독해(毒害)를 더하였으랴. 한 번의 놀람과 괴이함이 아니었다면 어찌 그 사람을 만나 어울렸으랴.
「상천효각(霜天曉角)」의 곡조에 맞추어
이야기를 계속하리니, 두씨(杜氏)가 주막에 머무르던 중 한밤중에 갑자기 열이 오르고 온몸이 쑤시며 몹시 무거워졌다. 창전(昌全)은 어찌할 바를 몰라 날이 밝기를 기다렸다가 급히 주막 주인에게 말하였다. "어젯밤 아내가 갑자기 병이 드니 매우 걱정스럽습니다. 이 근처에 어느 명의(名醫)가 계신지 알 수 없습니까?" 주인이 말하였다. "앞 거리의 당희요(唐希堯)는 대대로 이름난 의원으로, 오는 손마다 병을 낫게 한다 하옵니다. 마님께서 편찮으시니 그분을 청해 오셔야 마땅할 것입니다." 창전이 말하였다. "명의가 계신다니 노인장께서 사람을 보내어 청해 주신다면 그 은덕이 적지 않겠습니다."
주인은 지체하지 않고 잠시 후 당 선생을 모셔왔다. 당희요가 두씨의 맥을 짚어 보고 말하였다. "이 병은 안으로는 칠정(七情)의 울결(鬱結)을 입고 밖으로는 풍한(風寒)을 감수하여 열이 나고 아프며 혼미한 것입니다. 먼저 '계지탕(桂枝湯)'으로 외감(外感)을 몰아내고, 그런 다음 '이진이기탕(二陳理氣湯)'으로 울결을 흩어 주면 저절로 낫게 될 것입니다." 그러고는 두 첩의 약에 생강 두 조각을 인경(引經)으로 넣어 주었다. 창전은 의원을 전송하고 나서 곧 약을 달이기 시작하였다.
이때 두씨는 혼미한 채로 깨어나지 못하고 있었다. 창전이 약을 달여 두씨를 부축해 일으키고 약을 흘려 넣었다. 그런 다음 편안히 눕혀 두었다. 한참을 자고 나자 이마에 가느다란 땀이 맺히는 것이 보였다. 약이 효험이 있음을 알고 창전은 급히 또 두 잔을 더 먹이고 솜이불로 잘 덮어 주었다. 이윽고 땀이 물결처럼 흘러내렸다. 두씨가 차츰 깨어나니 창전은 기쁨을 이기지 못하여 말하였다. "천지신명께 감사할 따름이오."
이튿날 아침에 두 번째 첩을 복용하니 두씨의 열이 제법 내렸다. 다시 당희요를 청해 맥을 보고 약을 먹기를, 이와 같이 며칠이 지나자 두씨는 비로소 차도를 보였다. 공차(公差)들도 이처럼 병이 중한 것을 보고 출발을 재촉하기 어려워 병이 낫기를 기다리는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두씨의 병이 채 낫기도 전에 창전 또한 병이 들어 다시 며칠이 지나서야 겨우 회복되었다. 당희요는 객지에서 병을 얻은 이들을 가엾이 여겨 날마다 와서 보살피며 아침저녁을 마다하지 않았다. 창전은 비록 병에서 벗어났으나 걸음을 걷기가 여전히 힘들었다. 자리에 앉아 갖가지 고초를 생각하다가 두씨에게 말하였다. "당신과 나, 이 큰 병에 다행히 죽지 않았소. 그러나 생각해 보면 이제 가야 할 변방(邊庭)은 몹시 멀고, 앞길에서 쉴 새 없이 고생을 하다가는 버텨내지 못할 것이니 어찌 될는지 알 수 없소. 우리가 이렇게 유리(流離)하게 된 것은 혹 전생의 팔자에 마땅한 것이어서 어쩔 수 없이 겪어야 하는 것인지도 모르오. 다만 가엾은 것은 아이요. 철없는 어린것이 어찌 나를 따라 이토록 고생을 하는가 하니 마음이 몹시 아프오!"
그러고는 아이를 품에 안고 말하였다. "내 아들아, 내 아들아, 네가 설령 복이 없다 하더라도 부귀한 집에 태어나지 못할지언정 보통 평민의 집에서라도 태어났다면 우리 집에 태어나 이 군적(軍籍)의 고초를 받는 것보다는 나았을 것을." 말을 마치자 눈물이 흘러내렸다. 두씨가 말하였다. "지금 생각해 보니, 우리의 고생은 살든 죽든 더 말할 것도 없소. 지금 놓지 못하는 것은 오직 이 아이뿐이오. 지금 이 정을 버리지 못해 아이와 함께 죽는다 한들, 차라리 그 정을 끊고 사랑을 참아 남에게 맡기는 것만 못하오. 아이 혼자 살아남아, 혹시 창씨(昌氏) 집안이 끊어질 운이 아니라면 재난을 벗어나 훗날 장성하여 근본을 찾고 창가(昌家)의 후대를 이을 것이오. 우리가 비록 죽더라도 저승에서도 마음이 편할 것이오. 만약 또 다시 하늘의 은총으로 우리가 살아서 다시 만난다면 그것 또한 알 수 없는 일이오. 만약 눈앞의 아쉬움에만 매달린다면, 앞길은 날이 갈수록 멀어지고 내일 이역(異域)에 이르러 우리 둘이 일단 세상을 떠나면 아이는 황막한 이국의 땅에 버려져 살아도 죽음과 다름없게 되오. 중원(中原) 고토(故土)에 남겨 두는 것만 못하니 그래도 희망이 있을 것이오. 지금 아이를 가엾이 여기고 불쌍히 여겨 굳이 돌려보내지 않으면 오히려 아이를 해치는 것이오."
창전은 듣고서 연신 고개를 끄덕이며 말하였다. "현명한 아내의 말이 지극히 옳소. 다만 당장 막막한 길 위에서 누구에게 맡길 수 있을지 알 수 없소." 두씨가 말하였다. "그렇게 말하기는 했으나 천천히 마음을 쓰는 수밖에 없고, 조급하게 서두를 일은 아니오." 이리하여 날마다 조리를 하며 차츰 걸을 수 있게 되었다. 공차들이 출발을 재촉하기 시작하자 창전은 또 두씨에게 말하였다. "우리 두 사람이 병을 앓았을 때 당희요가 고쳐 주었으니 그가 비록 인덕을 쌓은 것이라 하나 우리가 사례도 없이 떠날 수 있겠소." 두씨가 말하였다. "사례를 하는 것은 마땅하나 후한 예물이 없으니 그저 밥 한 상 대접하여 우리 마음을 표시하는 것으로 충분할 것이오." 창전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하였다. "그렇소." 그러고는 급히 은자(銀子)를 꺼내어 주인에게 내주며 말하였다. "저희가 당 선생의 힘으로 깊이 목숨을 보존하였으니 보답할 길이 없어 번거로우시더라도 간단히 술과 안주를 마련하여 그를 초대해 주셨으면 합니다." 주인이 승낙하고 곧 준비를 갖추었다. 잠시 후 당희요를 청해 오니, 창전은 거듭 그 의술의 오묘함에 감사를 드리고, 이어 공차와 주인까지 합하여 다섯 명이 한 자리에서 함께 마셨다.
술자리가 무르익을 즈음, 당희요가 물었다. "소제(小弟)가 보기에 창형(昌兄)은 말을 함부로 하지 않고 행동거지가 예의 바르니 겸겸(謙謙)한 군자이십니다. 어찌하여 법을 어기시어 부인과 함께 이토록 먼 전장(戰場)으로 귀양을 가시게 되었습니까?" 창전은 물음을 듣고 눈물을 참지 못하며 말하였다. "소제의 고초는 일시에 함부로 남에게 말할 수 없었습니다. 이미 하문(下問)하시니 감히 말씀드리지 않을 수 없습니다. 소제가 비록 재주는 없으나 학교에 이름을 올린 바 있습니다. 다만 조적(祖籍)이 원래 군정(軍丁)이었던 까닭에 갑자기 성지(聖旨)를 받들어 구섭(勾攝)되었으니 이 때문에 길 위를 떠돌며 이 고초를 받는 것입니다." 당희요가 말하였다. "그런 연고였군요!" 그러고는 탄식하며 말하였다. "문관을 무관으로 채우는 것은 문무(文武) 모두를 해치는 것이니 이는 조정의 폐정(弊政)입니다. 그러나 이미 성지를 받들었으니 사양할 수도 없습니다. 창형께서는 기개 있게 나아가실 수밖에 없습니다. 지나치게 슬퍼하시면 또 병이 날까 염려됩니다." 창전이 말하였다. "우리 부부의 죽고 사는 것은 이미 도외시하였습니다. 다만 집을 떠날 때 차마 떼어놓지 못해 어린 아들을 데려왔는데, 이 지경에 이르고 보니 걸음마다 위험이 도사리고 있어 데려가자니 안전을 보장할 수 없고 맡기자니 맡길 사람이 없어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있습니다." 당희요가 물었다. "영랑(令郎)은 올해 몇 살이 되었습니까?" 창전이 말하였다. "올해 여덟 살입니다." 당희요가 말하였다. "창형은 남방 사람이신데 이제 북방으로 가시면 변방의 바람이 거세어 버텨내기도 쉽지 않을 것인데, 하물며 영랑은 곱게 기른 어린 나이이니 어찌 감당하겠습니까. 이번 길은 참으로 함께 가기에 적합하지 않으니 아이를 남겨두시는 것이 낫겠습니다. 맡길 사람이 없음을 걱정하신다면, 소제가 올해 쉰이 되도록 아들딸이 없습니다. 창형께서 싫다 하지 않으신다면 영랑을 소제가 맡아 양육하여 장성한 뒤에 다시 근본을 찾도록 해도 무방할 것입니다. 창형의 생각은 어떠하십니까?"
창전은 듣고서 크게 기뻐하며 말하였다. "인형(仁兄)께서 측은지심(惻隱之心)으로 받아들여 성심으로 키워 주신다면 재생(再生)의 부모와 같습니다! 우리 부부가 이 길을 가다 타향에서 죽더라도 눈을 감을 수 있을 것입니다! 무엇이 불가할 것이 있겠습니까!" 당희요는 창전이 기꺼이 승낙하는 것을 보고 크게 기뻐하며 말하였다. "내일이 좋은 날이니 소제가 댁으로 찾아가겠습니다." 창전은 곧 아들 창곡(昌谷)을 데리고 나와 인사를 시켰다. 인사가 끝나자 자리 곁에 앉혔다. 당희요는 눈썹이 청수하고 눈매가 수려한 것을 보고 무척 기뻐하였다. 이에 모두 함께 흥겹게 마시고 즐거이 헤어졌다.
당희요는 작별하고 귀가하여 마님 조씨(趙氏)에게 이러저러하게 청수한 학생이 있다고 알렸다. 조씨는 듣고서 기쁨을 이기지 못하여 당장 데려다가 아들로 삼고 싶어 하였다. 이 편 주막 안주인도 두씨 앞에서 당가(唐家)의 재산이 넉넉하고 친척 중에 벼슬한 이가 있으며 마님이 어질고 현숙하다고 칭찬하였다. 창전 부부는 듣고서 기뻐하였다.
하룻밤이 지나 이튿날 점심 후, 네 명의 하인이 예물을 잔뜩 들고 오고, 그 뒤를 빈 가마 두 채가 따라와 창전과 두씨를 모시러 왔다. 또 세 장의 진홍색 명함이 왔는데 두 명의 공차와 주인을 오후에 초대하는 것이었다. 두씨는 한편으로는 주인을 시켜 예물을 정리하게 하고, 한편으로는 곧 아들과 함께 한 채의 가마에 올랐다. 창전도 한 채에 올라 주막 문을 떠나 큰 거리를 돌아 당가로 향하였다. 당가 문 앞에 이르니 당희요와 조씨가 이미 문 앞에 나와 두 부부가 가마에서 내리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조씨는 창곡을 보자 과연 몹시 청수하여 급히 손을 내밀어 가마에서 나오는 것을 부축하고 시녀에게 안아 데려가게 하였다. 그런 다음 창전과 두씨를 청하여 대청으로 맞아들였다.
대청 한가운데에는 이미 천지신명을 모시는 지마(紙馬)가 공양되어 있었고, 대청 바닥에는 붉은 양탄자가 깔려 있었다. 당희요가 먼저 창전에게 네 번 절을 올리고 또 두씨에게도 예를 갖추어 네 번 절하였다. 창전과 두씨도 조씨에게 절을 올리고, 창전은 두 의자를 가운데에 나란히 놓아 당희요와 조씨를 앉게 한 다음, 창곡을 데리고 여덟 번 절을 올렸다. 절이 끝나자 조씨가 두씨를 데리고, 시녀가 창곡을 안고 안채로 들어갔다. 당희요는 곧 천지 지마를 태우고 또 하인을 시켜 친지 이웃 몇 사람을 청해 동석하게 하고, 안에도 몇 분의 여자 손님을 청해 두씨를 모시게 하였다. 잠시 후 손님들이 다 모이자 자리에 올라 즐겁게 마셨다. 한밤중이 되어서야 비로소 헤어졌다. 창전은 주막이 걱정되어 공차와 함께 돌아갔다. 두씨는 당가에 남아 하룻밤을 묵었다. 조씨와 두씨 두 사람은 이야기가 매우 잘 통하였다. 바로 이러하도다:
서로 만나 이 정이 진실로 참되다면 비록 친척이 아니더라도 친척인 것을.
천애(天涯)에 의지할 곳 없음을 슬퍼하다가 이 땅에 또 사람을 붙들어 줄 줄 누가 알았으랴.
당희요는 창곡을 양자로 삼으면서 그 본성(本姓)을 없애기 아까워 당(唐) 씨 성을 하나 더 하고 '곡(谷)' 자를 빼어 '당창(唐昌)'이라 부르게 하였다. 조씨는 두씨를 붙들어 며칠을 계속 머물게 하였다. 공차들이 비록 출발을 재촉하러 오기는 하였으나 당희요의 후한 선물을 받은 탓에 몹시 다그치지는 못하였다. 오히려 창전이 먼저 당희요를 찾아와 말하였다. "아들이 받아들여져 양육받게 되어 우리 부부는 앞길에 마음을 놓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 또한 사랑해 주시니 감히 작별을 고할 엄두가 나지 않습니다만, 전도(前途)가 아직 멀고 압해(押解)를 오래 지체할 수 없으니 부득이 하직을 고해야겠습니다." 당희요가 말하였다. "다시 만나기 어려우니 실로 이별하기 아쉽습니다. 며칠 더 쉬다 가시는 것이 좋겠습니다." 창전이 말하였다. "성지(聖旨)가 급히 변방을 채우려 한다고 들었습니다. 만약 길에서 오래 지체하여 성지를 어기면 죄에 죄가 더해지니 어찌 더 괴롭지 않겠습니까. 이제 결연히 떠나야 하며 더 이상 늦출 수 없습니다." 당희요가 말하였다. "그렇게 말씀하시니 어찌 감히 억지로 붙잡겠습니까. 그런데 날짜는 잡으셨습니까?" 창전이 말하였다. "내일로 정하였습니다."
당희요는 더 이상 붙들 수 없음을 알고 부득이 다시 술자리를 마련하여 공차와 주인을 청해 이별을 나누었다. 술자리에서 당희요는 거듭 공차에게 부탁하여 길에서 잘 보살펴 줄 것을 간청하였다. 또 은 열 냥을 두 사람에게 노자로 주었다. 공차들은 천만이나 기뻐하였다. 이튿날 창전과 두씨가 당희요 부부에게 작별을 고하였다. 창곡은 갑자기 부모가 가려 한다는 것을 듣고 옷자락을 잡아당기며 땅바닥에 굴러 대성통곡하며 창전을 놓으려 하지 않았다. 두씨도 한바탕 크게 울며 말하였다. "부모 된 입장에서 어찌 너를 떠나고 싶겠느냐! 그러나 너를 떠나면 살고, 떠나지 않으면 죽는 것이니 이것 또한 어쩔 수 없는 일이란다." 창곡이 말하였다. "아이는 차라리 부모를 따라 죽겠습니다. 부모를 떠나 사는 것은 원하지 않습니다." 창전이 말하였다. "너는 죽어서는 안 된다. 네가 죽으면 창가(昌家)의 후대가 끊어진다. 그러므로 너를 이 곳에 남겨두는 것이니, 네가 지금 이 곳에 있는 것이 친부모보다도 낫다. 마땅히 지극한 효(孝)로 섬기고 내 말을 저버리지 말아라."
창곡은 듣고서 비로소 말을 멈추었다. 그러나 통곡하기를 그치지 않아 울음이 하늘을 덮고 땅을 뒤덮는 듯하였다. 두 손으로 두씨를 잡고 놓지 않으려 하였다. 두씨는 두 번째 옥어(玉魚)를 꺼내어 그의 가슴 앞에 매어 주며 말하였다. "이 물고기가 짝을 이루게 되면 너의 부부도 반드시 짝을 이룰 것이요, 부모도 또한 다시 만날 날이 있을 것이다." 모두가 울음을 그치지 못하는 가운데서도 공차와 마부가 거듭 재촉하는 바람에 창전과 두씨는 부득이 마음을 굳게 먹고 창곡을 내버려두고 문을 나섰다. 다시 주막으로 돌아가 행장을 꾸려 출발하였다. 이어 당희요와 조씨가 또 아들을 데리고 와서 배웅하였다. 당희요는 또 몰래 창전에게 은 오십 냥을 건네어 노자로 쓰게 하고, 또 음식을 많이 싸 주었으며, 경계 밖까지 배웅하고서야 비로소 작별하였다. 바로 이러하도다:
세상의 온갖 슬프고 괴로운 일, 죽음의 이별과 삶의 이별 외에 달리 없도다.
창전과 두씨는 공차를 따라 길을 나섰다. 비록 아들 생각이 간절하였으나 그래도 잘 맡긴 것이 다행스럽고 길에서 아이를 돌봐야 하는 마음의 짐을 더은 만큼 도리어 몸이 가볍고 근심이 없어진 듯하여, 산을 넘고 고개를 지나며 밤에 자고 새벽에 걸으면서 일로 평안히 나아가니, 이 이야기는 잠시 접어두기로 하자.
이제 이야기를 바꾸어 단거(端居)로 돌아가리니, 그는 창전과 이별한 뒤 집으로 돌아와 몹시 쓸쓸하고 슬펐으나 어찌할 방도가 없었다. 이에 창가(昌家)의 옥어를 딸에게 주어 잘 간수하게 하였다. 용고(容姑)는 곧 단단히 가슴 앞에 매어 놓고 틈나는 대로 꺼내 완상(玩賞)하였다. 단거는 집에서 오직 딸을 가르치는 것을 일로 삼았다. 겨를이 생기면 고금의 열녀(列女) 이야기며 가부(歌賦)와 시사(詩詞)를 풀어 가르쳤다. 다행히 딸이 매우 총명하여 가르치면 곧 깨닫고 말하면 곧 알아들었다. 단거는 몹시 흡족해하였다.
어느 날 문득 한 쌍의 자주빛 제비가 진흙을 물고 들보 위에 오가며 날아다니는 것이 보였다. 매우 사랑스러워 딸에게 말하였다. "내 아이야, 네가 종일 시 배우는 것을 보면서 네가 얼마나 익혔는지 모르겠구나. 오늘 내가 보니 좋은 시 제목이 있으니 네가 한 수 지어 나에게 보여줄 수 있겠느냐?" 용고가 말하였다. "아버지께서 어떤 좋은 제목을 갖고 계십니까? 말씀해 주시면 생각해 보겠습니다." 단거는 진흙을 물고 있는 제비를 가리키며 말하였다. "이 '자연루소(紫燕壘巢)', 즉 자주빛 제비가 둥지를 짓는다는 제목이 퍽 운치가 있구나. 네가 이미 시를 배우려 하니 자세히 모사해 보거라."
용고는 아버지의 명을 받들어 곧 서재에 가서 편지지에 한 수를 써서 아버지에게 올려 보며 말하였다. "거칠게 쓴 것이니 아버지께서 고쳐 주시기 바랍니다." 단거는 보고서 먼저 깜짝 놀라며 말하였다. "벌써 다 지었구나." 급히 받아 보니 위에 이렇게 쓰여 있었다:
자연루소(紫燕壘巢) - 자주빛 제비가 둥지를 짓다
화려한 들보에 돌아와 옛 보금자리를 찾으니, 떨어지는 꽃과 날리는 버들솜에 오래도록 진흙이 없었네.
못가의 향기 물 곁에 의지해 기꺼이 멀리서 물고 오고, 바람 잔잔해 발 사이로 날아들어 한 둥지 이루려 하네.
재잘재잘 함께 지어 위아래를 나누며, 나란히 함께 깃들어 높낮이를 두려워하지 않네.
규방의 여인 우두커니 서서 날갯짓 바쁜 것을 바라보노니, 그림자 들보에 이르는데 어느새 해는 서산에 기울었네.
단거는 다 읽고 크게 기뻐하며 칭찬하였다. "내 아이의 시가 이미 묘경(妙境)에 들어섰구나! 이 시는 구상이 풍취(風趣)가 있고 묘사가 정공(精工)하다. 만약 남자였다면 사단(詞壇)에 한 자리를 당당히 차지할 만하다." 이로부터 용고는 종일 시사(詩詞)를 다루고 어느덧 열 살이 되었는데 인물이 갈수록 수려하게 자랐다. 어머니 이씨(李氏)가 용고에게 말하였다. "여자가 시문(詩文)에 능한 것은 진실로 좋은 일이나, 훗날 남편을 내조하고 집안을 다스리는 데 있어서는 반드시 바느질과 길쌈, 방아 찧는 일 같은 살림을 몸소 해야 하는 것이 근본이다. 만약 오로지 글만 낙서하며 온종일 눈을 읊기만 한다면, 비록 운치가 있다 하더라도 자칫 한 가지만 이루고 오히려 여자의 본분을 잃게 된다. 반드시 아울러 행해야만 온전히 갖추었다 할 것이다."
용고는 어머니의 가르침을 듣고 바느질과 같은 여공(女工)도 배우기 시작하였다. 원래 어머니 이씨가 가르쳤는데 뜻밖에도 총명한 사람은 솜씨가 뛰어나 한 번 익히면 곧 능숙해졌다. 얼마 되지 않아 용고가 수놓은 바느질이 선명하고 교묘하며 영롱하여 보는 사람의 눈을 빼앗을 지경이 되어 어머니도 따르지 못하였다. 자수가 싫증날 때에는 또 산수화초(山水花草)를 그리고 바둑과 거문고도 배우며 심심풀이로 삼았다. 그리하여 못하는 것이 없고 하나하나 모두 능숙하였다. 이 소문이 퍼져나가 화정(華亭) 한 현(縣)에 단가(端家)의 작은 딸이 미모에 다재다능하다는 것을 모르는 이가 없게 되었고, 신사(縉紳) 집안으로 자제가 있는 곳에서는 모두 며느리로 맞이하고 싶어 매파를 보내어 청혼하였다. 단거는 한결같이 사양하며 말하였다. "이미 정혼한 곳이 있습니다."
얌전한 집안이라면 그만두는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그런데 뜻밖에도 이 말이 이 사람에게서 저 사람에게로 전해지고 칭찬이 되풀이되는 가운데 어느 사악한 자의 마음속에 불길을 당기고 말았다. 이 사람의 성은 송(宋)이요, 별호는 탈천(脫天)이었다. 원래 좋은 집안 출신이었으나 바른 것을 배우기 싫어하여 날마다 빈둥빈둥 놀다 가산을 탕진하고, 또 무뢰배들과 어울려 날마다 삼사오명씩 몰려다니며 노름과 음주를 일삼고, 오로지 남의 집에 일이 있는지 탐문하여 패거리를 끌어모아 시비를 일으키고 분쟁을 만들었다. 그리하여 이삼십 세가 되도록 처자식이 없었다. 그가 이제 사람들이 전하는 말을 듣자니 단가의 딸이 표준(標緻)하고 총명하며 시화(詩畫)가 뛰어나다 하였다. 그는 곧 불량한 마음을 먹고 속으로 생각하였다. '내가 이 나이가 되도록 아직 가정을 이루지 못하고 입에 풀칠하기도 어렵다. 이 단가의 딸을 내가 데려다 아내로 삼는다면 평생 쓰고도 남지 않겠는가?' 또 생각하였다. '듣자니 향반(鄕宦) 집안에서 청혼하여도 모두 거절하였다 하니, 내 지금 이 꼴로 어떻게 기꺼이 나에게 시집오겠는가? 그의 아버지를 따져보면 고작 수재(秀才)에 불과하고 내 아버지도 당초에 수재였으니 문벌도 크게 차이나지 않는다. 비록 나이가 매우 어려 당장 혼인하기는 불편하다 하나 어찌어찌 데려다 두고 몇 년을 기다린들 어떠랴. 더 크면 다른 사람에게 빼앗기지 않겠는가?' 이리저리 생각해도 마음에 좀 찜찜한 것이 있었다.
며칠을 생각하다가 문득 떠오르는 것이 있었다. '됐다, 생각이 났다! 부드럽게 하는 것이 억지로 하는 것만 못하고, 드러내놓고 하는 것이 몰래 하는 것만 못하다. 오로지 기회를 틈타 납치하는 것만이 손에 넣을 수 있는 방법이다.' 계획을 세우고 나서 날마다 단가 문 앞 가까이에서 탐색하였다. 이 날 마침 일이 생기려는 운명이었으니, 단거의 매형 백견(柏堅)이 호광(湖廣)에서 장사를 하고 돌아와 몹시 의기양양하였다. 일로 평안히 집에 이르러 연극을 올려 신에게 사례하고, 사람을 보내어 처형 이씨와 조카딸 용고를 보러 오라고 청하였다.
뜻밖에도 이 날 공교롭게도 이 송탈천이 단가 문 앞에서 탐색하고 있다가, 갑자기 가마 두 채가 문 밖으로 나오는 것이 보였다. 그는 뒤를 따라가 가마를 따르는 하인을 한적한 곳으로 끌어당겨 물었다. "오늘 당신 댁 마님과 아가씨는 어디를 가십니까?" 하인이 말하였다. "오늘은 금향리(錦香裡) 백가(柏家)에서 연극을 올려 소원을 갚으므로 청하러 온 것입니다." 송탈천이 또 물었다. "이 백가는 당신 댁의 어떤 친척입니까?" 하인이 말하였다. "저희 어른 나리의 매형이십니다." 말을 마치고는 바람처럼 가 버렸다.
이 송탈천은 이 소식을 얻고 마음속으로 기뻐하며 곧 달려가 친구 무리를 찾아 말하였다. "오늘 내게 한 가지 일이 있어 여러분의 도움을 청하고 싶소." 무리들이 말하였다. "우리는 골육처럼 정이 깊고 의리가 생사를 함께하는 사이이니 송 형이 일이 있으면 어찌 힘쓰지 않겠소!" 송탈천이 말하였다. "내게 어릴 적부터 정한 혼처가 있는데 이제 내가 가난해졌다 하여 시집오기를 거부하오. 내가 이를 분하게 여겨 여러분에게 힘을 빌려 납치해 오려 하오." 무리들이 말하였다. "대낮에 어떻게 이 짓을 하겠소?" 송탈천이 말하였다. "그게 아니라, 낮에 이 딸이 친척 집에 불려가 밤에 연극을 보게 될 것이오. 밤이 깊으면 흥에 겨워 사람들이 방심하는 틈을 타 탈취하기에 딱 좋소. 뒤쫓아 올까 두렵다면 나갈 때 불을 질러 놓으면 불 끄느라 사람 구할 틈이 없을 것이오."
무리들이 물었다. "어느 집 딸이오?" 송탈천이 말하였다. "바로 이름난 단가의 딸이오." 무리들이 말하였다. "듣자니 이 딸은 나이가 아직 어리다 하던데, 당신같이 이삼십 세 된 사내가 어떻게 혼인을 한단 말이오?" 송탈천이 말하였다. "당신들은 모르는 것이오. 데려오기만 하면 내가 기꺼이 2년을 기다리겠소." 무리들이 말하였다. "강제로 데려오는 것도 흔한 일이니 데려오는 것이야 당신 말대로 하지. 그런데 어디에 숨겨 두려 하오? 혹시 부모에게 알려져 관아에 고발하면 어찌하겠소?" 송탈천이 말하였다. "이것은 어렵지 않소. 내가 이미 작은 배를 구해 두었으니 외딴 곳에 숨겨 두겠소. 2, 3년을 피해 있다가 혼인을 이루고 돌아오면 이미 날 것이 익은 밥이 된 것이니 어찌 다시 빼앗아 갈 수 있겠소?" 무리들이 말하였다. "원래 정혼한 사이라니 당연히 그만이지."
송탈천은 곧 자신과 한패인 작은 배를 구해 금향리 마을 어귀에 먼저 대어 놓고 밤에 배에 오를 때를 기다리게 하였다. 또 술과 고기를 많이 사서 무리들을 대접하였다. 모두 실컷 먹고 취하여 각자 짧은 몽둥이를 챙겨 경계가 지난 뒤를 기다려 사방으로 흩어져 금향리를 향해 갔다.
마을 어귀에 이르러 배가 대어져 있는 것을 보고 서로 눈짓으로 신호를 주고받았다. 송탈천이 무리를 이끌고 차츰 마을 안으로 들어갔다. 백가 문 앞에 이르니 안에서 한창 연극이 열려 왁자하게 떠들썩하였다. 송탈천 일행은 구경꾼들 사이에 섞여 연극을 구경하는 척하였다. 발 안쪽으로 어렴풋이 작은 여자아이가 한 켠에 앉아 있는 것이 보였다. 송탈천은 발 곁에 바짝 붙어 떠나지 않았다. 연극이 한창 무르익어 모두 넋을 잃고 구경하는 때를 기다려, 송탈천이 갑자기 크게 소리쳤다. "공문(公文)을 받들어 강도를 잡노라, 여기 숨어 있었구나!" 무리들은 일제히 마루로 몰려들어 먼저 등불을 쳐서 끄고 아무렇게나 고함을 지르며 말하였다. "빨리 강도를 잡아라, 놓치지 말라!" 몽둥이로 마주치는 사람마다 때렸다.
송탈천은 재빨리 발 안으로 뛰어들어 용고를 등에 업고 무리를 헤치며 가만히 빠져나왔다. 이 소란에 연극 배우들과 구경꾼들은 모두 탁자 아래로 도망쳐 숨었다. 마주치는 사람은 몽둥이를 맞고 가까이 오는 사람은 매를 맞았다. 이 무뢰배들은 송탈천이 이미 여자아이를 등에 업고 나간 것을 보고 마루에 불을 질렀다. 모두 고함을 치며 밖으로 달려 나가 송탈천을 뒤따라 함께 배에 올라 용고를 선창 안에 가두었다. 무리들이 용고를 협박하며 말하였다. "소리를 내면 죽여 버리겠다." 용고는 이때 혼이 빠져 온몸이 떨려 오직 선창 안에 웅크릴 수밖에 없었다. 이 무뢰배들은 배를 저어 빈들을 향해 아무렇게나 노를 저어 갔다.
이야기를 바꾸어 백가(柏家)로 돌아가니, 갑자기 강도 무리가 들이닥쳐 일시에 놀라 숨느라 바빴다. 이제 강도들이 가고 나니 갑자기 대청에서 불이 일어 오로지 불을 끄는 데 마음을 다하느라 강도의 종적을 쫓을 생각을 못하였다. 급히 불을 끄고 나서 물건을 살펴보니 이것저것 모두 그대로 있고 잃어버린 것이 없었다. 다만 은잔 몇 개만 보이지 않았다. 모두들 말하였다. "천지신명께 감사할 따름이오. 그나마 다행이라 해야지!"
한창 소란스러운데 갑자기 안채에서 요란한 아우성이 들렸다. "사람이 없어졌다!" 백견이 급히 들어가 보니, 처형 이씨가 한 덩어리가 되어 통곡하며 "내 아이야! 어디 갔느냐!" 하며 죽고 싶을 만큼 울고 있었다. 백견이 자초지종을 물어 알고 나서야 강도들이 발 안으로 들이닥쳐 조카딸을 납치해 갔음을 알았다. 백견은 듣고서 크게 놀라며 말하였다. "이도 기이한 일이구나! 이 강도들이 어째서 물건은 빼앗지 않고 오로지 이 어린 아이만 납치해 갔단 말인가? 멀리 가지 못하였을 것이다." 그러고는 여러 사람을 불러 횃불을 들고 사방으로 나누어 추격하게 하였다.
한참을 쫓아다녔으나 어디에도 그림자도 보이지 않았다. 날이 밝도록 소란을 피웠으나 종적이 없었다. 급히 단거에게 알렸다. 단거는 듣고서 놀라움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황급히 달려와 이씨를 보고 한바탕 크게 울었으나 어찌할 방도가 없었다. 몸을 추슬러 귀가하여 곧 현아(縣衙)에 고발장을 올렸다. 포도 문서가 나와 날마다 수사를 재촉하고 또 곳곳에 방문(榜文)을 붙였으나 물 속에서 바늘을 건지는 것과 같이 아무런 소식도 없었다. 이 이야기는 잠시 접어두기로 하자.
이야기를 바꾸어 이 송탈천과 무리들로 돌아가니, 한때의 흥에 겨워 단가의 어린 딸을 납치하여 배에 태우고 밤새도록 날이 밝을 때까지 저어 감히 밖을 내놓지 못하고 오직 갈대숲 안에 숨었다. 용고는 오직 울기를 그치지 않으니, 송탈천은 한 사람을 시켜 언덕에 올라 탐문하게 하였다. 돌아와 말하였다. "단가에서 이미 본 현아에 고발하여 수색인이 방문을 내걸었습니다." 무리들은 듣고서 일제히 놀라며 말하였다. "이 곳은 위험하고 또 울음을 그치지 않으니 물속에 던져 버리고 우리 돌아가는 것이 낫겠소." 송탈천이 말하였다. "여러분이 나를 위해 힘써 주었으니 이제 내게 한 가지 계책이 있소." 바로 이 한 가지 계책으로 인하여:
울던 새는 문득 서쪽 나무로 날아들고, 떠도는 꽃은 또 동쪽 이웃에 이르렀네.
이후 일이 어찌 되었는지 알고자 하면 다음 회를 보면 알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