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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회 창수재, 조적으로 인해 변방에 수자리 서게 되고 두낭자, 지아비 따라 군을 좇아 새 밖으로 나아가다

사(詞)에 이르되:

날벼락에 뜻밖의 재앙이여, 어찌하여 사람을 가만두지 않는고.

단란히 살던 부부, 붙들려 수자리꾼이 되니, 한 명에 또 한 명,

모래 바람 멀리 날리고, 수레 몰아 오르니 어찌 편히 잠들고 고이 앉으랴.

곱던 얼굴 말할 것도 없거니와, 청춘을 한갓 맡겨두매, 꺾이고 꺾임이 마땅하도다.

위는 「류초청(柳梢靑)의 곡조에 맞추어」

이야기를 풀자면, 창전(昌全)은 포졸이 안으로 들어가 옷 갈아입는 것을 허락하지 않음을 보고 마음속으로 은근히 놀라고 두려웠으나, 곰곰이 생각해 보아도 허물 없음을 알았기에 부득이 포졸과 함께 현청(縣廳)으로 걸어갔다. 먼저 한 사람이 앞질러 들어가 지현(知縣)에게 아뢰었다. 잠시 후 지현이 당(堂)에 좌정하니, 포졸이 마침내 창전을 데리고 당에 올라 아뢰었다. 「도망한 군범(軍犯) 한 명 창전을 이미 포박하여 나리 앞에 데려왔사오니, 나리께서 패(牌)를 거두어 주시기 바랍니다.」

  창전은 갑자기 이 말을 듣고 크게 놀라, 막 예(禮)를 갖추려 하는데, 지현이 이르기를, 「이 예는 행하지 않아도 된다. 본 현은 병부(兵部)의 공문을 받들어 도망한 군졸을 체포하여 변방으로 보내 수자리를 서게 하는 것이다. 네가 이미 명부에 이름이 올라 있으니 바로 도망 군졸이요, 더 이상 생원(生員)이 아니다. 속히 집으로 돌아가 차비를 갖추어라. 본 현이 즉시 장차(長差)를 뽑아 압송할 것이다.」 창전이 이 말을 듣고 얼굴빛이 흙빛처럼 하얗게 질려, 부득이 무릎을 꿇고 아뢰었다. 「소생의 조부께서 시례(詩禮)로 가문을 이으셨고, 소생 또한 외람되이 청금(靑衿)의 반열에 들어 나리의 은혜를 입어 온 지 이미 오래이옵니다. 비록 조상 대대로 본래 군적(軍籍)에 속하였다 하나, 세월이 오래고 멀어 생사(生死)와 대사(代謝)가 거듭되었사오니, 부디 나리께서 소생이 사문(斯文)의 맥을 이은 몸으로 군졸의 노역을 감당키 어려움을 헤아리시어, 기르고 길러 주시기를 간청하오니, 소생이 받은 은혜 결코 얕지 아니할 것이옵니다.」

  말을 마치고 곧 머리를 조아렸다. 정지현(丁知縣)이 이르기를, 「이것이 비록 병부의 공문이나, 받드는 것은 조정의 성지(聖旨)이니, 누가 감히 어기리요? 본 현이 비록 힘써 돌리고자 한들, 명부의 성명이 맞으매 또한 돌릴 수 있는 방도가 없다. 너 하나의 수재(秀才)는 물론이거니와, 비록 높은 벼슬아치 집안이라도 명부에 이름이 올라 있으면 서민의 군적과 마찬가지로 똑같이 압송된다. 구차히 변명하지 말라. 아무래도 사양할 수 없을 것이다.」 말을 마치고 즉시 본래의 포졸에게 그를 집으로 데려가 군처(軍妻)와 함께 압송하게 하였다. 포졸이 즉시 창전을 끌고 현문(縣門)을 나섰다.

  이때 두씨(杜氏)는 지아비가 포졸과 함께 현청으로 들어가는 것을 보고 마음속으로 생각하였다. 「현감께서 좋은 뜻으로 청하신 거라면 어찌하여 명첩(名帖)도 보이지 않았는가? 또 어찌하여 포졸이 돌아서는 것을 허락하지 않았는가? 일이 의심스럽다.」 즉시 가인(家人) 창검(昌儉)을 불러 현청에 가서 소식을 알아오게 하였다. 창검은 주인의 상황을 보고 허겁지겁 달려와 주모(主母)에게 고하기를, 「큰일 났습니다! 상공께서 현관에게 충군(充軍)으로 판결을 받으셨습니다!」 두씨는 듣고도 믿지 않아 크게 노하며 말하기를, 「이 종놈아, 허튼소리 마라! 상공께서 일찍이 법을 어기신 일도 없거늘, 어찌 이리도 큰소리로 호들갑을 떨며 헛소리를 하는 것이냐?」

  창검은 주모가 믿지 않음을 보고 마침내 소리 높여 울며 아뢰었다. 「마님! 참으로 상공께 큰일이 생겼습니다! 현관이 조정의 성지를 받들어 도망한 군졸을 색출하고 있사옵니다. 저희 조상이 본래 군적이었다 하며, 마님께서도 군처라 하옵니다. 지금 포졸이 상공을 압송하여 귀가하였으니, 곧 길을 떠나야 한다 하옵니다!」 두씨는 사실임을 듣고 혼백이 하늘 밖으로 날아갈 듯 놀라, 크게 울부짖었다. 「가문의 불행이로다, 뜻밖의 재앙이 홀연히 닥쳐왔으니! 어찌 하루아침에 이 지경에 이르렀는고?」 한창 울고 있는데 홀연히 지아비가 포졸과 함께 돌아오는 소리가 들렸다. 두씨는 안팎을 가릴 겨를도 없이 허겁지겁 당(堂) 안으로 달려 나왔다. 창전은 두씨를 보고 다리가 꺾여 넘어지듯 주저앉으며, 눈물이 샘물 솟듯 흘러내렸다. 이르기를, 「나는 조적(祖籍)에 이름이 올라 있으니 충군하는 것이 마땅하다. 어찌 현처(賢妻)를 연루시켜 그 또한 면하지 못하게 하였는고!」 말을 마치고 두 사람은 한바탕 대성통곡하였다.

  창곡(昌谷)은 곁에서 부모가 가슴 아프게 우는 것을 보고 따라 소리 높여 울기 시작하였다. 이웃 사람들이 그 집에서 갑자기 곡성이 일어남을 듣고 모두 와서 무슨 일이냐 물어, 군적이 있어 변경으로 압송되어 성을 지키고 군졸이 되어야 한다는 사실을 비로소 알았다. 모두들 말하기를, 「창 상공은 선비 중의 선비요, 마님 또한 일찍이 문밖 출입에 익숙지 않으신 분인데, 어찌 그 길을 가실 수 있겠는가?」 또 성지(聖旨)가 내려 사람을 요구하니 면할 수 없음을 알고 모두 서로 권하기를, 「지금은 울어 보아야 소용이 없소. 어서 요긴한 것들을 챙기는 방도를 의논하시오.」 포졸들이 재촉하며 어서 길을 떠나라 독촉하니, 창전이 거듭 슬피 빌어 며칠만 기한을 늦춰 달라 하였다. 포졸이 고함치기를, 「이 중한 일을 모르는 것이냐. 이는 성지를 받들어 군범을 압송하는 일이니, 종사(宗師)의 과거 시험과는 비할 바가 없다. 누가 감히 잠시라도 머뭇거리겠느냐? 네가 만일 사리를 모르면 내 손을 쓸 수밖에 없다.」 하고는 밧줄을 꺼내어 창전의 목에 씌우려 하였다.

  이웃 사람들이 서둘러 말리며 이르기를, 「이 사람아, 성급히 굴지 말고, 천천히 차분히 상의해 보자.」 포졸은 말리는 이가 있음을 보고 또한 손을 멈추며 말하기를, 「상의할 것도 없소. 다만 즉각 길을 떠나는 것이 요긴하오.」 그중 나이 든 이웃 왕애천(王愛泉)이 이르기를, 「관아에서 선행을 닦아야 하는 법이오. 오늘 창 상공은 스스로 법을 어긴 것이 아니라, 다만 조상의 군적으로 인해 연루되었을 뿐이오. 이미 고향을 등지고 떠나야 할 처지이니, 노자를 마련할 방도를 찾게 해 주어야 출발을 할 수 있지 않겠소. 두 분 포졸 역시 이리 오신 마당에 예를 다해야 하지 않겠소?」 포졸이 말하기를, 「이 노인장은 말이 제법 이치에 맞구려. 우리가 이른 아침부터 지금까지 걸어왔는데, 차 한 잔 구경도 못 하였소. 어찌 우리더러 굶주린 채 기다리라는 것이오!」 왕애천이 이르기를, 「가련하도다! 저 일가가 온통 하늘이 무너지도록 울고 있으니, 누가 여러분을 돌볼 겨를이 있겠소? 앉으시오. 우리가 대신 차려드리겠소.」

  이웃 사람들이 일제히 손을 모아 잠시 후 술과 밥을 모두 마련하여 포졸들을 먹도록 대접하였다. 창전 내외와 세 식구는 한데 엉켜 울고 있으니, 어찌 배가 고픈지 부른지를 알겠는가? 이미 장 아주머니, 이 아줌마가 말려 부득이 밥 한 그릇씩을 먹었다. 왕애천이 창전을 향해 이르기를, 「관부의 기한이 촉박하니, 상공께서 사람을 보내어 기한 연장을 청하려면, 먼저 포졸들을 잘 달래 주어야 그들이 이러쿵저러쿵 떠들어 마음을 어지럽히지 않을 것이오.」 창전이 이르기를, 「소제는 지금 마음이 이미 어지러워 갈피를 잡지 못하고 있소. 무슨 좋은 방도가 있겠소! 노장께서 두루 수습해 주시기를 바랄 뿐이오. 소제는 명에 따르겠소.」 왕애천이 이르기를, 「돈을 보면 포졸이라도 고양이와 쥐가 함께 잠드는 법이오.」 하고는 주장하여 창전에게 은자(銀子) 여덟 냥을 모아 두 봉지로 나누어 봉하게 하니, 각 봉지 겉에는 다섯 냥이라 쓰고 소매 속에 넣고 나왔다.

  포졸들이 막 식사를 마치고 말하기를, 「우리 밥은 다 먹었소. 그 두 사람을 불러 현청에 가서 당(堂)에서 압송 문서를 받도록 하시오.」 왕애천이 온 얼굴에 웃음을 띠며 말하기를, 「아문(衙門)의 일이란 위를 속이되 아래는 속이지 않는 법이오. 두 분께서 창 상공을 사오 일만 머물게 해 주신다면 넉넉히 높은 정을 보여 주시는 것이오.」 포졸 한 명이 벌떡 뛰어일어나 소리치기를, 「이는 조정의 군범이오! 내야 그를 너그럽게 봐주고 싶지만, 나리와 어르신께서 우리 두 사람을 너그럽게 봐줄지 모르지 않소.」 하고는 밧줄을 들고 뒷마당으로 달려가려 하였다. 왕애천이 서둘러 웃음을 띠며 가로막으며 이르기를, 「형씨, 성급히 굴지 마시오. 내 할 말이 있소.」 하고는 소매 속에서 두 봉지의 은자를 꺼내어 탁자 위에 올려놓았다.

  포졸은 은자임을 보고, 또 위에 다섯 냥이라 쓰여 있음을 보고 곧 말을 잃었다. 다른 하나가 이르기를, 「왕 노인장, 무슨 뜻이오?」 왕애천이 이르기를, 「감히 별다른 청을 드리려는 것이 아니오. 다만 두 분께서 관부 앞에서 편의를 봐주시어, 창 상공이 며칠 여유를 얻어 노자를 마련할 수 있게 해 주시면 그만이오. 압송할 때는 원래부터 두 분이시니, 노상에서 잘 보살펴 주심을 의지할 수밖에 없으며, 따로 작은 예도 갖추겠소. 이 두 봉지는 먼저 차비(茶費)로 받아 주시오.」 그 포졸 하나는 만면에 웃음을 띠며 말하기를, 「왕 노인장, 우리 이 형제가 성급히 굴었다 하여 그리 탓하지 마시오. 대저 성지(聖旨)를 받드는 일이란, 지체하면 상사(上司)의 꾸지람을 받고, 관부의 뜻대로만 따르면 인정이 없다 말을 들으니, 이래저래 포졸 노릇이 정말 어렵소이다. 이제 창 상공의 이 딱한 모습을 보니 나도 마음이 아프오……」

  그러면서 다른 포졸을 향해 말하기를, 「형제, 이리 와 보게! 모든 일을 이 왕 노인장 체면을 보아서라도 하세. 어쩔 수 없이 우리가 책임을 좀 지고 대신 아뢰어 보고, 관부가 허락하지 않으면 다시 의논하세. 이것은 창 상공이 자네에게 보내는 술값이니, 솔직하게 받으면 그쪽도 마음 놓을 것이네.」 하고는 한 봉지를 그의 손에 건넸다. 왕애천은 그가 스스로 받기 거북해하는 것을 보고 그 봉지를 그의 소매 속에 찔러 넣으며 이르기를, 「모든 일을 두 분께 부탁하오.」 두 포졸은 만면에 웃음을 띠며 말하기를, 「이리 감사하오. 우리가 관부에 여쭙고 다시 와서 알려 드리겠소.」 하고 포졸들은 문밖으로 나갔다.

  잠시 후 친척과 친구들이 창 씨 집에 이런 큰 변고가 생겼다는 소식을 듣고 모두 문안하러 왔다. 또 잠시 후 주천작(朱天爵)과 단거(端居)도 왔다. 여럿이 의논하여 공소장(公呈)을 내어 잔류시키려 하였다. 창전이 이르기를, 「이는 소제 조상이 남긴 누(累)이요, 이제 또 성상의 성지를 받들었으니, 어찌 감히 거역하겠소? 여러분의 가엾이 여기는 마음을 입었으나, 실로 힘쓸 방도가 없소이다.」 여럿이 곰곰이 생각하니 실로 어쩔 방법이 없었다. 부득이 거듭 위로의 말을 건네고 하직하여 돌아갔다.

  창전이 눈물을 머금고 단거와 주천작을 향해 이르기를, 「우리 세 사람이 함께 글방에서 공부하였고, 또 기꺼이 버리지 않으시어 아이들의 혼사를 맺었소. 다만 오래도록 친정(親情)이 이어지기를 바랐건만, 뜻밖에 이 멀리 떠나는 대난(大難)에 걸려들었으니, 이 생에는 서로 만날 기약이 없소. 또한 생사조차 알 수 없소. 내가 이제 자세히 생각해 보니, 이 혼약은 끝내 그림의 떡이 될 것이니, 차라리 오늘 원래의 빙폐(聘幣)를 돌려 영애(令愛)로 하여금 다른 명문을 택하게 함으로써, 형이 훗날 반자(半子)가 동쪽을 지탱하는 의지를 갖게 함만 못하겠소.」

  말을 마치고 흐느껴 소리를 낼 수가 없었다. 단거가 이르기를, 「형은 어찌 이런 말씀을 하시오! 예로부터 혼약을 맺음은 한마디 말의 허락으로도 생사를 함께하는 것이오. 더욱이 소제와 형은 오래도록 도의(道義)를 두터이 해왔으니, 마땅히 윤리강상(倫理綱常)으로써 변치 않아야 할 것이오. 어찌 패륜(悖倫)의 선례를 따르겠소? 일찍이 내리신 빙폐는, 비록 천금이라 하더라도 영원히 옮길 수 없는 것이오. 이제 형이 이곳을 떠나신다 하나, 반드시 오래도록 이역(異域)에 머무시지는 않을 것이오. 만일 하늘의 다행함을 입어, 성상의 마음 헤아릴 수 없으니, 백성의 고통을 어여삐 여기시어 고향으로 돌아오도록 윤허하실 수도 있는 것이오. 더욱이 영식(令息)은 아직 어리나 이미 이러한 재질과 기상을 갖추었으니, 반드시 못 속의 물건이 아닐 것이오. 훗날 뜻을 이루어 소녀와 다시 만나게 되는 날도 알 수 없는 일이오. 형은 안심하고 떠나심이 좋을 것이오.」

  주천작이 이르기를, 「창 형은 이 시점에 시종(始終)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으니, 삼가는 군자이시오. 단 형의 금석(金石)처럼 변치 않는 뜻은 우정을 보여줌에 충분하오. 소제가 보건대, 오늘 창 형이 길을 떠나심에 관산(關山)이 만 리요 노정(路程)이 험준하오. 만일 영식을 데리고 함께 간다면, 자칫 하나 더 돌보아야 하는 짐이 될 것이오. 두 분이 이미 사돈을 맺었으니, 영식을 단 형에게 맡겨 키워 성인이 되게 하여, 훗날의 제영(緹縈)으로 삼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이오. 그러면 창 형이 마음 놓고 떠나실 수 있을 것이오.」 단거가 이르기를, 「인형(仁兄)의 논의가 만전(萬全)이라 하나, 소제가 보건대 만만 가당치 않은 일이 있소이다.」

  주천작이 묻기를, 「어찌 가당치 않다는 것을 아시오?」 단거가 이르기를, 「창 형과 형수는 이 한 핏줄만을 두고 있소. 이제 먼 길을 떠나 눈에 아는 이 하나 없는 곳에서, 이 아이가 있으면 적막함을 달랠 수 있을 것이오. 훗날 조금이나마 자라 의지가 될 수도 있소. 이제 만일 하루아침에 이 아이를 버리고 떠난다면, 당장은 아무렇지 않은 듯하나, 저 객점에서 처량한 변방의 외롭고 쓸쓸한 때를 당하면, 반드시 더욱 뼈아프게 그리워하게 될 것이오. 그때 하늘 끝을 바라보아도 아버지는 아이를 볼 수 없고, 어머니는 친자식을 그리워하나, 후회해도 이미 늦을 것이오. 지금 창 형이 비록 세정(世情)을 달관하여 아이에 대한 정(情)을 보이지 않으신다 하나, 형수의 자식을 아끼고 그리워하는 마음이 전전(輾轉)히 수심에 잠길 때, 만나려 해도 방도가 없으면, 질병의 걱정이 없다고 장담할 수 있겠소? 아직 다 말하지 못한 것이 있소이다.」

  창전이 이 말을 듣고 감격을 이기지 못하며 이르기를, 「단 형이 이처럼 깊이 생각해 주시니, 어리석은 부부의 감사함이 이루 말할 수 없소이다. 이제 걱정되는 것은 노자가 넉넉하지 못함이오, 어찌하면 좋겠소?」 하고 이르기를, 「내 이제 집과 동산과 쓰던 물건들을 목록으로 적을 것이니, 두 분께서 사람을 찾아 처분해 주시기를 바라오.」

  오후가 지나자 포졸이 돌아와 말하기를, 「우리가 얼마나 많이 애를 써서 돌렸는지 모르오. 나리께서 겨우 사흘 후 출발을 허락하셨소. 속히 차비를 갖추되, 기일에 차질이 없도록 하시오.」 포졸이 떠났다. 주(朱)·단(端) 두 사람이 즉시 작별하고 각자 사람을 찾아 물건을 처분하러 나갔다. 창전은 집에서 한바탕 짐을 꾸리고, 가인(家人) 창검에게 이르기를, 「너는 우리 집에서 두 대를 섬겼건만, 내가 너에게 변변히 잘 해준 것이 없구나. 내가 이제 멀리 떠나니 집안의 살림은 없어진 것이나 다름없다. 너도 몸 둘 곳이 없게 되었다. 내가 떠난 뒤에는 네 스스로 네 일을 도모하고 남의 집에 굳이 있을 것 없다.」

  창검이 이 말을 듣고 대성통곡하며 땅에 엎드려 절하며 이르기를, 「소인이 어려서부터 상공의 거두심을 입었으나, 일찍이 개마(犬馬)의 힘도 못 다하였습니다. 이제 몸소 멀리 따라가 모시고 싶으나, 노상의 노자가 넉넉하지 못할까 두렵습니다. 부득이 오늘의 이별을 감내하며, 감히 함께 가지 못하겠습니다. 다만 먼저 돌아가신 어르신의 분묘가 이곳에 있으니, 하루아침에 제사를 지낼 이가 없게 됨이 심히 마음 아프옵니다. 상공께서 멀리 떠나신 후 소인이 혹 묘소 곁에 몸을 의탁하여, 춘추(春秋)의 제사에 빠짐이 없도록 하겠습니다. 보은(報恩)의 마음을 조금이나마 다하고자 함이옵니다. 만일 하늘이 가엾이 여기시어, 훗날 작은 상공께서 크게 되어 고향에 돌아오시면, 소인이 어부(漁父)의 인도처럼 길을 잃지 않도록 이끌겠습니다.」 말을 마치고 대성통곡하였다. 창전도 눈물을 흘리며 말하기를, 「원래 네게 이토록 공경하는 마음과 효성스러운 뜻이 있어 나를 위해 이리 해줄 수 있구나. 너는 바로 우리 창 씨 가문의 후손이로다. 내 이제 밭 다섯 무(畝)를 남기고, 동쪽 작은 방 세 칸을 너에게 주어 거처하게 하겠다. 이제 너도 성을 바꾸지 말고, 내가 너와 아예 형제의 호칭으로 부르겠다.」

  말을 마치고 즉시 읍(揖)을 갖추며 이르기를, 「나를 대신하여 제사를 주관하여라. 그 은혜를 잊지 않겠노라.」 창검이 서둘러 머리를 조아리니, 창전이 한 손으로 그를 부축해 일으켜, 동쪽 작은 방을 그의 거처로 삼게 하였다. 또 처분하지 못한 세간살이와 쓰던 물건들을 모두 그에게 넘겨주었다. 또 밭 다섯 무를 그의 명의로 돌렸다. 이튿날 주(朱)·단(端) 두 사람이 찾아와, 합하여 은자 백여 금(金)에 팔았으니, 창전이 이를 받았다. 사흘째 날이 되자 포졸이 이미 와서 재촉하였다. 창전은 포졸과 함께 현청으로 가서 당(堂)에서 압송 문서를 받아 귀가하여 두씨 및 아들과 함께 길을 떠났다. 친구·친척·이웃들이 모두 나와 작별을 고하였다.

  주천작과 단거 두 사람이 진강(鎭江)을 지나도록 배웅하였다. 두 사람이 포졸에게 거듭 당부하였다. 단거가 은자 다섯 냥을 꺼내어 포졸에게 건네며 이르기를, 「창 상공이 떠나심에 노상에서 두 공차(公差)의 보살핌을 바라오니, 감사함이 이루 말할 수 없소.」 주천작 역시 두 냥을 술값으로 건네니, 포졸이 입에 가득 수락하였다. 두 사람이 회안(淮安)까지 더 배웅하려 하자, 창전이 거듭 사양하며 이르기를, 「천 리를 배웅하여도 마침내 이별을 고해야 하는 법이오. 이처럼 함께 가면 도리어 내 마음이 편치 않소.」 두 사람은 어쩔 수 없어 부득이 한바탕 통곡하고, 창전은 두씨 및 아들과 함께 두 사람에게 절하며 작별을 고하였다. 창검은 이별을 차마 못 이기어 더 멀리 배웅하려 하였으나, 창전이 간곡히 사양하며 이르기를, 「네가 하루라도 일찍 돌아가면 내가 도리어 마음이 놓인다.」 세 사람은 어쩔 수 없이 눈물을 뿌리며 작별하고 각자 앞길을 잘 보중하라 당부하였다. 이야말로:

  이별에 서로 손을 나누니 참으로 가련하고,

  벗의 도리가 이와 같아야 비로소 어진 것이로다.

  나라를 떠나 천만 리를 가더라도,

  흰 구름 낮게 드리운 곳에 또다시 가연(家緣)이 있으리라.

  창검은 또 한바탕 대성통곡하고 나서야 창전·두씨·창곡에게 절하며 하직하고 스스로 돌아갔으니, 이는 더 이야기하지 않기로 한다. 이야기를 돌리면, 창전 내외 세 식구가 두 명의 장차(長差)인 왕룡(王龍)과 조호(趙虎)와 함께 같은 배에 올라 그래도 서로 편안하였다. 두씨는 다만 아들과 함께 선미(船尾) 선실에서 잠을 자며 쉬었다. 비록 문 밖 출입에 익숙지 않은 처지였으나, 배 안에 있는 동안은 그래도 편안하였다. 더욱이 이때 막 문을 나선 터라, 온 마음이 다만 고향을 그리워하며 때때로 눈물을 흘렸다. 비록 여러 불편한 것들이 있었으나 아직은 느끼지 못하였다.

  홀연히 하루는 청강포(淸江浦)를 지나고 또 황가영(黃家營)을 지나는데, 선부(船夫)가 큰 키를 내리며 말하기를, 「저는 이미 모셔다 드렸습니다. 앞으로는 모두 육로입니다. 상공께서 언덕에 오르시어 수레를 빌리시든지 짐승을 빌리시든지 하십시오. 내일 제 배는 돌아가야 합니다.」 창전이 이 말을 듣고 부득이 포졸과 함께 언덕에 올라 주인에게 물어 수레 한 대와 짐승 세 필을 빌렸다. 창전이 배에서 내려 두씨에게 알리고, 짐과 물건들을 여관으로 옮겼다. 두씨는 아들을 붙들고 여관으로 들어가 선부를 보내었다. 이에 여관에서 묵으며 내일 이른 아침 서둘러 길을 나설 채비를 하였다.

  이튿날이 되자 두씨는 앞뒤 사정도 알지 못하고 어쩔 수 없이 아들을 안고 수레에 올라 몸을 앞뒤로 고르게 잡았다. 수레꾼이 덜컹덜컹 수레를 밀기 시작하자 두씨는 가슴이 떨리고 간이 서늘해져, 몸이 쉴 새 없이 이리저리 기우뚱거리며, 자신을 돌보랴 아이를 돌보랴, 수레에서 떨어질까 오직 두려울 뿐이었다. 부득이 이르기를, 「이 사람아, 천천히 가거라.」 수레꾼이 이르기를, 「마님, 이곳은 육로이온데, 수로와 달리 어디서나 쉴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저희는 숙소까지 서둘러야 합니다. 첫날은 시간을 맞추어 노중(路中)에 도착해야 하옵니다. 노상에 나쁜 사람이 가장 많사옵니다. 늦게 도착하면 여러 가지 책임을 지어야 할 곳이 있사옵니다. 장난이 아닙니다.」

  두씨가 이를 듣고 어쩔 수 없이 두 손으로 아들을 단단히 안고 수레꾼이 밀어가는 대로 맡겼다. 창전은 포졸과 함께 혹은 앞에 혹은 뒤에서 걸어갔다. 몇 리를 걷자, 처음에는 그래도 진흙 평지였는데, 지금 홀연히 높은 언덕 지대에 이르렀다. 산석(山石)이 종횡으로 높낮이가 고르지 않아, 수레꾼이 그 수레를 한 발 한 발 밀어나가니, 두씨는 수레 위에 앉아 이미 머리가 어지럽고 눈이 캄캄한 터에, 이 순간 더욱 간담이 흔들렸다. 또 누런 모래가 온 얼굴에 날아드니, 두씨는 다만 은근히 흐느껴 울었다. 생각건대 그는 종일 집 안에 있던 몸으로, 비록 종을 부리고 높다란 당(堂)에서 사는 생활은 아니었으나, 그래도 시례(詩禮)의 집안에서 영화롭지도 욕되지도 않게 조용히 지내온 사람인데, 이제 홀연히 이 지경에 이르렀으니, 어찌 눈물 흘리며 슬피 울지 않을 수 있겠는가?

이 창곡은 품 안에 앉아 처음에는 그래도 모친을 달래었으나, 이즈음에는 그 또한

앉아 있기에 지쳐버렸다. 또 모친이 쉬지 않고 눈물을 흘리는 것을 보고 따라 울기

시작하였다. 두씨는 그가 울다가 탈이 날까 두려워 부득이 오히려 거듭 달랬다. 수레꾼이

모자(母子)의 이런 모습을 보고 연유를 물으니, 두씨가 부득이 한 차례 이야기를 해

주었다. 수레꾼도 이기지 못하게 마음이 아파 이르기를, 「마님은 좋은 집안 출신에

남방에서 자라나 문밖 출입이 익숙지 않으신 분인데, 어찌 저희 북방의 고생을 견디시겠습니까?」

하고 수레꾼도 천천히 가기 시작하였다. 이야말로:

변방 지킴은 예로부터 장사(壯士)의 일이어늘,

어찌하여 나라의 일이 이리 크게 어긋났는고.

옛 예에 따라 정병(丁兵)을 붙들어들이니,

마침내 서생(書生)을 용맹한 병사로 삼는구나.

  이처럼 여러 날을 연달아 걸으니, 두씨가 억지로 버티어 내었으나 반쯤 앓고 반쯤 나은 채로 더욱 감당하기 힘들었다. 어느 날 임청(臨淸)에 이르러 여관에 내렸는데, 창전이 주인에게 차와 물을 얻어다가 두씨를 모셔 자리에 뉘었다. 밤이 되어 잠자리에 들자 두씨의 온몸에 열이 오르며 다만 온몸이 쑤시고 아프다고 부르짖었다. 창전은 하루 종일 고생하여 막 깊이 잠들었다가, 홀연히 두씨가 아파하는 소리를 듣고 어쩔 수 없이 일어나 온몸을 문질러 주니, 온몸이 숯불처럼 뜨거웠다. 두씨가 겨우 실낱같은 목소리로 이르기를, 「저는 이제 온갖 고생을 다 겪으며 다만 당신과 함께 변방에 이르러 그래도 앞날이 있기를 바랐사온데, 뜻밖에 병이 들고 말았습니다. 스스로도 매우 중하게 느껴집니다. 여기서 아직도 사오천 리를 더 가야 하는데, 눈에 보이듯 당신과 함께 갈 수 없을 것 같습니다. 다만 창곡이 마음에 걸립니다……」 하고 말을 마치고 대성통곡하였다.

창전은 두씨가 이 한 마디를 하는 것을 듣고, 온몸이 떨리며 이르기를, 「현처여,

보중하시오! 좀 더 참으시오! 노중에 풍사(風邪)를 맞아 이 병이 온 것 같소. 날이

밝으면 내가 의원을 찾아 진찰을 받겠소. 내가 먼저 탕수(湯水)를 구해 마시게 하겠소.」 창전이

방문 밖으로 나가 여관 주인을 몇 번 불렀으나 모두 이미 잠들어 있었다. 창전은 어쩔

수 없이 자리 곁에 앉아 있었다. 두씨는 마침내 인사불성이 되었다. 창전이 몇 번을

불러도 두씨는 겨우 한두 번 대답할 뿐이었다. 바로 두씨의 이 병으로 말미암아, 가르쳐

주는 바가 있으니:

골육이 다시 이별하고, 꽃을 옮겨 나무를 접붙이도다.

두씨의 생사가 어찌 될지 알 수 없으니? 다음 회를 들으시면 알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