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0장 작별
작업이 차츰 마무리되어 감에 따라 발판의 높이도 점점 낮아져 마침내 가장 아래층에 이르렀고, 왕얼랑은 마침내 높은 곳의 비천을 모두 완성했다. 내일이면 발판을 걷어낼 참이었다. 이제 남은 것은 아미타불(阿彌陀佛)의 연화좌 아래, 땅에 가까운 빈 자리 하나뿐이었다. 그곳은 발판이 필요 없이 호상(胡床)이나 작은 걸상 같은 것만 있으면 충분했다. 서고 웅크리는 자세를 번갈아 쓰기만 해도 능히 마칠 수 있는 일이었다.
그런데 오늘의 소낭자는 어딘가 이상했다. 평소 일을 마치면 그녀는 늘 나직이 "갈게요."라고 말하고는 발판을 내려가곤 했다. 그런데 방금은 평소와 달리 "안녕히 계세요."라는 말을 했다. 목소리가 어찌나 가늘던지, 왕얼랑은 자신이 잘못 들은 것은 아닌지 의심스러울 정도였다.
하지만 설령 잘못 듣지 않았다 한들 어떠하랴?
내일이면 또 만나게 될 것이다. 그는 그렇게 생각했다.
매일 이 시각이 되면 왕얼랑은 내일이 어서 오기를 기다리기 시작했다. 이튿날 첫 햇살이 잠자리에 비쳐 들면 그는 곧바로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한시도 지체하지 않고 오직 하루빨리 소낭자를 보고자 했다.
그래서 그는 서둘러 발판 위의 모든 물건을 정리했다. 무엇 하나 남기지 않도록 조심했으니, 그러지 않으면 발판을 걷어낼 인부들에게 폐를 끼칠 터였다. 이어서 그는 서둘러 집으로 돌아가 일찌감치 잠자리에 들어 기대에 찬 단잠을 자야 했다. 그것이야말로 내일의 작업을 위한 최고의 체력 보충이었다. "낮에 생각한 것을 밤에 꿈꾼다"는 말대로였는지, 이따금 그는 소낭자가 물주머니와 헝겊을 건네주는 꿈을 꾸기도 했는데, 그럴 때면 잠을 자면서도 몸과 마음이 상쾌해지고 피로가 말끔히 가시는 듯했다.
그러나 오늘 밤 꿈에서는, 소낭자는 더 이상 물주머니와 헝겊을 건네지 않았다. 그녀는 오색찬란한 옷을 입고 그를 향해 손을 한 번 흔들더니, 그대로 허공으로 솟구쳐 밤하늘로 뛰어올랐다. 곧이어 공후와 완, 비파, 횡적, 박판, 북소리가 일제히 울려 퍼졌다. 소낭자의 뒤로 구름이 자욱이 흩날렸고, 옷자락은 오색영롱하게 나부끼며 사뿐히 춤을 추었다. 그녀는 비파를 손을 돌려 등 뒤로 옮겨 쟁쟁하게 연주하기 시작했고, 그 아래 여섯 낭자를 이끌며 속세를 벗어난 맑고 청아한 선율을 함께 연주했다. 순식간에 금빛이 찬란히 빛나며 밤하늘을 대낮처럼 환히 밝혔다.
왕얼랑은 눈도 깜박이지 않고 바라보았다. 이토록 아름다운 광경을 인간 세상 어디에서 볼 수 있으랴? 이 모든 것이 너무나도 믿기지 않았으니, 특히 저 반탄비파(反彈琵琶)는 어찌 범인의 힘으로 해낼 수 있는 일이겠는가?
문득 왕얼랑은 깨달았다. 그가 지금 그리고 있는 것이 바로 《관무량수경변(觀無量壽經變)》 속에서 악무로 아미타불께 공양하는 기악천(伎樂天)이 아니던가? 지금 눈앞의 이 광경이야말로 가장 생생한 재현이라 할 만했다.
그런 생각이 미치는 사이, 소낭자는 여섯 낭자를 이끌고 점점 더 높이, 점점 더 멀리 날아올랐다. 소낭자는 고개를 돌려 그를 향해 옅은 미소를 지어 보이고는 이내 자취를 감추었다. 바로 그 순간, 왕얼랑은 꿈에서 깨어났다. 그는 한참을 멍하니 있다가, 마침내 꿈속에서 본 그토록 생생한 인물과 정경을 먼저 그려두기로 했다. 그것이야말로 그의 영감의 원천이었기 때문이다.
방금 그려 둔 어젯밤 꿈의 그림을 품에 지닌 채 동굴에 들어선 왕얼랑은 무심코 예전 발판이 있던 방향으로 시선을 돌렸다. 그러나 순간 그는 발판이 이미 걷혀 나갔다는 사실을 잊고 있었다. 그곳은 이미 텅 비어 있었고, 소낭자도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왕얼랑은 까닭 모를 깊은 상실감이 마음속에 밀려오는 것을 느꼈다. 하지만 이것저것 생각할 겨를이 없었다. 기억이 아직 또렷할 때 서둘러 붓을 들어야 했으므로, 그는 호상을 끌어와 안료와 붓, 벼루와 먹, 물통을 갖추어 놓고 작업을 시작했다. 그렇게 사흘이 지나도록 소낭자는 다시 나타나지 않았다. 왕얼랑은 허탈한 마음으로 그 그림을 들고, 날마다 동굴에서 함께 그림을 그려온 사형사제들과 발판을 세우고 걷던 인부들에게 물어보았다. 저 춤을 이끌던 소낭자가 뉘 집 따님인지, 집이 어디인지 아는 사람이 있느냐고.
동굴 안의 모든 사람들은 그저 서로 얼굴만 마주 볼 뿐, 대답은 하나같이 비슷했다.
그들 중 누구도 이 소낭자를 본 적이 없었다. 게다가 이건 왕얼랑이 그린 기악천이 아니냐, 그런 이가 어찌 동굴 안에 나타날 수 있겠느냐며, 다들 왕얼랑이 대낮에 꿈을 꾸는 것이라고 놀려댔다.
왕얼랑은 포기하지 않고 한나절 넘게 여러 동굴을 오가며 사람들에게 하나하나 물어보았지만, 돌아오는 대답은 늘 매한가지였다. 그들은 왕얼랑이 비천을 그리는 데 너무 몰두한 나머지 밤낮으로 그 생각만 하다가 헛것을 본 것이라며 웃어넘겼다.
왕얼랑은 등을 구부린 채 채색을 앞두고 있던 반탄비파 비천 앞으로 돌아갔다. 그는 멍하니 그녀를 바라보며, 마음속으로 어렴풋이 깨달아 가고 있었다 — 소낭자는 아마 두 번 다시 나타나지 않을 것이라고. 그날 밤의 꿈은 아마도 그녀가 그에게 남긴 이별의 선물이었을 것이다.
왕얼랑은 다시 안료를 갈기 시작했다. 갈다 보니 그가 섞고 있는 것은 물이 아니라 자신의 눈물이었다. 한 방울, 두 방울, 세 방울…… 그는 마침내 벽을 마주한 채 흐느끼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