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
나는 고양이다. 이름은 아직 없다.
어디서 태어났는지 도무지 알 수가 없다. 어두침침하고 눅눅한 곳에서 야옹야옹 울고 있었다는 것만 기억하고 있다. 나는 거기서 처음으로 인간이라는 것을 보았다. 더욱이 나중에 들으니, 그것은 서생이라는, 인간 중에서도 가장 흉포한 종족이었다고 한다. 이 서생이라는 것은 때로 우리를 잡아 삶아 먹는다는 이야기이다. 그러나 그 당시에는 아무런 생각도 없었기 때문에 별로 무섭다고도 생각하지 않았다. 다만 그의 손바닥 위에 올려져 스르르 들어 올려졌을 때 어딘지 두둥실한 느낌이 들었을 뿐이다. 손바닥 위에서 조금 안정을 찾고서 서생의 얼굴을 바라본 것이, 이른바 인간이라는 것을 처음으로 본 순간이었을 것이다. 그때 참 묘한 것이라고 생각했던 느낌이 지금도 남아 있다. 첫째, 털로써 장식되어야 할 얼굴이 반질반질해서 꼭 주전자 같았다. 그 후로도 고양이를 꽤 만났지만 이런 불구는 한 번도 마주친 적이 없다. 게다가 얼굴 한가운데가 너무 튀어나와 있고, 그 구멍 속에서 때때로 뭉게뭉게 연기를 내뿜는다. 연기가 꽤 코를 찌르고 무척 괴로웠다. 이것이 인간이 피우는 담배라는 것임을 이제야 겨우 알았다.
이 서생의 손바닥 안쪽에서 잠시 기분 좋게 앉아 있었는데, 얼마 후 엄청난 속도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서생이 움직이는 것인지 나만 움직이는 것인지 알 수 없지만 눈이 마구 돌아갔다. 속이 메스꺼워졌다. 도저히 살아남지 못하겠다고 생각하고 있으니, 쿵 하는 소리와 함께 눈앞에 불꽃이 튀었다. 그때까지는 기억하고 있지만 그 이후의 일은 아무리 생각해내려 해도 알 수가 없다.
문득 정신이 들어 보니 서생은 없었다. 많이 있던 형제들도 한 마리도 보이지 않았다. 가장 중요한 어미도 모습을 감추어 버렸다. 게다가 이제껏 있던 곳과는 달리 무작정 밝아서 눈을 뜨고 있을 수가 없을 정도였다. 이거 뭔가 이상하다 싶어 느릿느릿 기어 나가 보니 몹시 아팠다. 나는 짚단 위에서 갑자기 대나무 숲 속으로 내던져진 것이었다.
겨우겨우 대나무 숲을 기어 나오니 앞쪽에 큰 연못이 있었다. 나는 연못 앞에 앉아서 어떻게 하면 좋을까 생각해 보았다. 별다른 묘안이 떠오르지 않았다. 잠시 후 울면 서생이 다시 데리러 오지 않을까 싶었다. 야옹, 야옹 하고 시험 삼아 울어 보았지만 아무도 오지 않았다. 그러는 사이 연못 위를 사그락사그락 바람이 스쳐 지나가며 날이 저물어 갔다. 배가 몹시 고파왔다. 울고 싶어도 목소리가 나오지 않았다. 어쩔 수 없이 먹을 것이 있는 곳까지 걸어가자고 마음먹고 살금살금 연못을 왼쪽으로 돌기 시작했다. 아무래도 무척 괴로웠다. 거기를 참고 무리하게 기어 나가니 겨우 어딘지 사람 냄새 나는 곳에 닿았다. 여기로 들어가면 어떻게든 되겠지 싶어 대나무 울타리의 무너진 틈새로 어느 집 안으로 기어들었다. 인연이란 참으로 묘한 것으로, 만약 이 대나무 울타리가 무너져 있지 않았더라면 나는 끝내 길가에서 굶어 죽었을지도 모른다. 한 그루 나무의 그늘이라는 말은 정말 맞는 말이다. 이 울타리 구멍은 오늘날까지도 내가 이웃집 삼색 고양이를 방문할 때의 통로가 되고 있다. 자, 집 안에는 숨어들었지만 이제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 그러는 사이에 어두워지고, 배는 고프고, 춥기는 춥고, 비까지 내리기 시작하여 더 이상 한 순간도 지체할 수가 없게 되었다. 어쩔 수 없이 아무튼 밝고 따뜻해 보이는 쪽으로 쪽으로 걸어갔다. 지금 생각해 보면 그때 이미 집 안으로 들어와 있었던 것이다. 여기서 나는 그 서생 이외의 인간을 다시 볼 기회를 만나게 되었다. 처음으로 마주친 것이 오상이었다. 이 사람은 이전의 서생보다 한층 더 거칠어서 나를 보자마자 갑자기 목덜미를 틀어쥐고 밖으로 내던졌다. 이거 안 되겠다 싶어 눈을 감고 운명에 맡기고 있었다. 하지만 배고프고 추운 것은 도저히 참을 수가 없었다. 나는 다시 오상의 빈틈을 노려 부엌으로 기어 올라갔다. 그러자 곧 또 내던져졌다. 나는 내던져지면 기어 올라가고, 기어 올라가면 내던져지기를, 아마도 네댓 번 반복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때에는 오상이라는 사람이 정말 싫어졌다. 얼마 전에 오상의 꽁치를 훔쳐서 이 앙갚음을 해주고 나서야 겨우 가슴이 후련해졌다. 내가 마지막으로 내쫓기려 할 때, 이 집 주인이 시끄럽다며 무슨 일이냐고 하면서 나왔다. 하녀는 나를 대롱대롱 매달아 주인 쪽으로 향하며, 이 노숙 고양이 새끼가 아무리 내쫓아도 내쫓아도 부엌으로 기어 올라와서 곤란하다고 했다. 주인은 코 아래쪽의 검은 털을 비비 꼬면서 잠시 내 얼굴을 바라보더니, 이윽고 그렇다면 안에 두라고 말하고는 안쪽으로 들어가 버렸다. 주인은 별로 말이 없는 사람으로 보였다. 하녀는 억울한 듯이 나를 부엌으로 내던졌다. 이리하여 나는 마침내 이 집을 내 보금자리로 삼기로 결정한 것이었다.
내 주인은 좀처럼 나와 얼굴을 마주치는 일이 없다. 직업은 교사라고 한다. 학교에서 돌아오면 하루 종일 서재에 들어앉아 거의 나오질 않는다. 집안사람들은 대단한 공부벌레라고 생각하고 있다. 당사자도 공부벌레인 것처럼 보이려 한다. 그러나 실제로는 집안사람들이 말하는 것처럼 근면한 사람이 아니다. 나는 때때로 살금살금 그의 서재를 들여다보지만, 그는 자주 낮잠을 자고 있다. 때로는 읽다 만 책 위에 침을 흘리고 있다. 그는 위장이 약해서 피부색이 연한 황색을 띠고 탄력이 없는 불활발한 징후를 보이고 있다. 그러면서도 밥은 많이 먹는다. 밥을 많이 먹은 후에 타카디아스타제를 마신다. 마신 후에 책을 편다. 두세 페이지 읽으면 졸려진다. 침을 책 위에 흘린다. 이것이 그가 매일 밤 반복하는 일과이다. 나는 고양이이면서도 때때로 생각하는 것이 있다. 교사라는 것은 정말 편한 것이다. 인간으로 태어났다면 교사가 되는 것이 최고다. 이렇게 자도 될 수 있는 것이라면 고양이도 못 할 것이 없다고. 그러나 주인이 말하게 하면 교사만큼 힘든 것은 없다고 하며, 그는 친구가 올 때마다 이런저런 불평을 늘어놓는다.
내가 이 집에 들어왔을 당시에는, 주인 이외의 사람들에게는 매우 인기가 없었다. 어디를 가도 튕겨나서 상대해 주는 사람이 없었다. 얼마나 소중히 여겨지지 않았는지는, 오늘날에 이르기까지 이름조차 붙여주지 않는 것을 봐도 알 수 있다. 나는 어쩔 수 없이, 될 수 있는 한 나를 받아들여 준 주인 곁에 있으려고 힘썼다. 아침에 주인이 신문을 읽을 때는 반드시 그의 무릎 위에 올라탄다. 그가 낮잠을 잘 때는 반드시 그 등에 올라탄다. 이것은 굳이 주인이 좋아서가 아니라 달리 상대해 줄 사람이 없었기 때문에 어쩔 수 없는 것이다. 그 후 여러 가지 경험 끝에, 아침에는 밥통 위, 밤에는 고타쓰 위, 날씨 좋은 낮에는 툇마루에서 자는 것으로 정했다. 그러나 가장 기분 좋은 것은 밤에 이 집 아이들의 이불 속으로 파고들어 함께 자는 것이다. 이 아이들이라는 것은 다섯 살과 세 살인데, 밤이 되면 둘이서 한 이불 속에 들어가 한 방에서 잔다. 나는 언제나 그들 사이에 나를 받아들일 여지를 발견하여 어떻게든 끼어들곤 하지만, 운 나쁘게 아이 중 하나가 눈을 뜨기라도 하면 큰일이 난다. 아이들은 — 특히 작은 쪽이 심술이 나빠서 — 고양이가 왔다, 고양이가 왔다 하며 한밤중에도 큰 소리로 울기 시작하는 것이다. 그러면 그 신경성 위약 체질의 주인이 반드시 눈을 떠서 옆방에서 뛰쳐나온다. 실제로 요전에는 자로 엉덩이를 심하게 얻어맞았다.
나는 인간과 함께 살면서 그들을 관찰하면 할수록, 그들은 자기 멋대로인 존재라고 단언하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 특히 내가 때때로 함께 자는 아이들에 이르러서는 말도 못 할 지경이다. 자기 마음대로인 때는 사람을 거꾸로 들거나, 머리에 자루를 씌우거나, 내던지거나, 아궁이 속에 처박기도 한다. 그러면서도 내 쪽에서 조금이라도 손을 대려 하면 집안 전체가 달려들어 쫓아다니며 못살게 군다. 요전에도 잠깐 다다미에서 발톱을 갈았다가 안주인이 몹시 화를 내어 그때부터 쉽사리 방에 들어가지 못하고 있다. 내가 부엌 마룻바닥에서 떨고 있어도 전혀 아랑곳하지 않는다. 내가 존경하는 맞은편 집 시로 군은 만날 때마다 인간처럼 무정한 것은 없다고 말하곤 한다. 시로 군은 요전에 구슬 같은 새끼 고양이를 네 마리 낳았다. 그런데 그 집 서생이 사흘째 되는 날 그것들을 뒷집 연못에 가져가 네 마리 모두 버려왔다고 한다. 시로 군은 눈물을 흘리며 그 자초지종을 이야기한 후에, 아무래도 우리 고양이 족속이 부모 자식 간의 사랑을 온전히 누리고 아름다운 가족적 생활을 하려면 인간과 싸워 이를 섬멸하지 않으면 안 된다고 말했다. 하나하나 지당한 의논이라고 생각한다. 또 이웃집 미케 군은 인간이 소유권이라는 것을 이해하지 못한다며 크게 분개하고 있다. 원래 우리 동족 간에는 말린 정어리 대가리든 숭어 배꼽이든 먼저 발견한 자에게 이것을 먹을 권리가 있는 것으로 되어 있다. 만약 상대가 이 규약을 지키지 않으면 완력에 호소해도 좋을 정도이다. 그런데 그 인간들은 조금도 이 관념이 없는 것 같아서 우리가 발견한 음식은 반드시 그들에게 강탈당하는 것이다. 그들은 그 강한 힘을 믿고 당연히 우리가 먹을 수 있는 것을 빼앗고도 태연하게 있다. 시로 군은 군인 집에 있고 미케 군은 변호사 주인을 두고 있다. 나는 교사 집에 살고 있는 만큼, 이런 일에 관해서는 두 군보다 오히려 낙천적이다. 다만 그날그날을 어떻게든 지낼 수 있으면 그것으로 좋다. 아무리 인간이라도 그렇게 언제까지나 번성하지는 못할 것이다. 이제 마음 길게 먹고 고양이의 시절을 기다리는 것이 좋겠다.
자기 멋대로 이야기하다가 생각이 났으니 잠깐 내 집 주인이 이 자기 멋대로인 성격 때문에 실패한 이야기를 해보자. 원래 이 주인은 무엇이라 할 것도 없이 남보다 뛰어난 능력이 있는 것도 아닌데, 무엇에나 손을 대고 싶어 한다. 하이쿠를 짓고 《호토토기스》에 투고하거나, 신체시를 《묘조》에 내거나, 틀린 것투성이인 영작문을 쓰거나, 때로는 활쏘기에 빠지거나, 謡 노래를 배우거나, 또 어느 때는 바이올린을 뚱뚱 켜거나 하지만, 안타깝게도 어느 것도 이렇다 할 것이 되지 않는다. 그러면서도 시작하면 위가 약한 주제에 이상하게 열심이다. 변소 안에서 謡 노래를 부르고, 이웃에서 변소 선생이라는 별명을 붙였는데도 전혀 개의치 않으며, 여전히 '이것은 다이라노 무네모리로소이다'를 반복하고 있다. 모두들 거 무네모리네 하며 웃음을 터뜨릴 정도이다. 이 주인이 무슨 생각을 한 것인지, 내가 들어온 지 한 달쯤 후 어느 월급날에 큰 꾸러미를 들고 바쁘게 돌아왔다. 무엇을 사 왔나 했더니 수채 물감과 붓과 왓트만이라는 종이로, 오늘부터 謡 노래와 하이쿠를 그만두고 그림을 그릴 결심인 것 같았다. 과연 다음 날부터 한동안은 매일매일 서재에서 낮잠도 자지 않고 그림만 그리고 있다. 하지만 그려낸 것을 보면 무엇을 그렸는지 아무도 알 수가 없다. 당사자도 그다지 잘 되지 않는다고 생각했던지, 어느 날 그 친구로 미학이라는 것을 하는 사람이 왔을 때 다음과 같은 이야기를 하는 것을 들었다.
「아무래도 잘 그려지질 않아. 남의 것을 보면 아무것도 아닌 것 같은데 직접 붓을 들어보면 이제 새삼스럽게 어렵다는 것을 느끼게 돼.」이것은 주인의 회포이다. 정말 솔직한 말이다. 그 친구는 금테 안경 너머로 주인의 얼굴을 바라보며,「처음부터 잘 그려지는 것은 아니지, 우선 실내에서 상상만으로 그림이 그려질 리가 없어. 옛날에 이탈리아의 대가 안드레아 델 사르토가 말한 적이 있어. 그림을 그리려면 모든 것을 자연 그대로 사생하라. 하늘에는 별이 있고, 땅에는 이슬꽃이 있고, 나는 것에는 새가 있고, 달리는 것에는 짐승이 있고, 연못에는 금붕어가 있고, 고목에는 겨울 까마귀가 있다. 자연은 이 하나의 거대한 활화이다 라고. 어때, 자네도 그림다운 그림을 그리려면 사생을 좀 해보는 게 어떻겠나?」
「어, 안드레아 델 사르토가 그런 말을 한 적이 있나? 전혀 몰랐어. 정말 맞는 말이야. 실로 그렇지.」하고 주인은 무턱대고 감탄하고 있다. 금테 안경 뒤에는 비웃는 듯한 웃음이 보였다.
그 다음날 나는 평소처럼 툇마루에서 기분 좋게 낮잠을 자고 있었는데, 주인이 예사롭지 않게 서재에서 나와 내 뒤에서 무언가를 연신 하고 있다. 문득 잠이 깨어 무엇을 하는가 싶어 잠깐 가느다랗게 눈을 떠 보니, 그는 일심불란하게 안드레아 델 사르토를 흉내 내고 있다. 나는 이 모습을 보고 저도 모르게 실소를 금할 수 없었다. 그는 친구에게 놀림을 당한 결과, 우선 맨 처음으로 나를 사생하고 있는 것이었다. 나는 이미 충분히 잤다. 하품이 나서 견딜 수 없었다. 하지만 모처럼 주인이 열심히 붓을 들고 있는데 움직이면 미안하다 싶어 꼼짝도 않고 참고 있었다. 그는 지금 내 윤곽을 그려 얼굴 근처에 채색을 하고 있다. 나는 솔직히 말해둔다. 나는 고양이로서 결코 일류 출신이 아니다. 등이며 털의 결이며 얼굴 생김새이며 감히 다른 고양이보다 낫다고는 결코 생각하지 않는다. 그러나 아무리 못생긴 내가 보기에도, 지금 주인에게 그려지고 있는 것 같은 이상한 모습과는 도저히 생각되지 않는다. 첫째로 색이 다르다. 나는 페르시아 고양이처럼 노란빛을 머금은 연한 회색에 옻칠한 것 같은 줄무늬 피부를 가지고 있다. 이것만큼은 누가 봐도 의심할 여지가 없는 사실이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지금 주인의 채색을 보면, 노란색도 아니고 검은색도 아니고, 회색도 아니고 갈색도 아니고, 그렇다고 이것들을 섞은 색도 아니다. 그저 어떤 색이라고밖에 표현할 길이 없는 색이다. 그 위에 불가사의한 것은 눈이 없다는 것이다. 물론 이것은 자는 것을 사생한 것이니 무리도 없지만, 눈다운 것조차 보이지 않으니 소경 고양이인지 자는 고양이인지 판연하지 않은 것이다. 나는 마음속으로 조용히, 아무리 안드레아 델 사르토라도 이래서는 어쩔 수 없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그 열심에는 감복하지 않을 수 없다. 될 수 있으면 움직이지 않고 있어 주려 했지만, 아까부터 오줌이 마렵다. 몸속 근육이 꿈틀거린다. 더 이상 한 순간도 지체할 수 없는 처지가 되었으므로, 어쩔 수 없이 실례하고 두 발을 앞으로 힘껏 뻗고 고개를 낮게 내밀어 아─아 하고 크게 하품을 했다. 이렇게 되고 보면, 이제 얌전히 있어도 소용없다. 어차피 주인의 계획은 이미 망쳤으니까, 이왕이면 뒤쪽으로 가서 볼일을 보자 생각하며 느릿느릿 기어 나갔다. 그러자 주인이 실망과 분노가 뒤섞인 목소리로 방 안에서「이 바보 자식!」하고 고함을 질렀다. 이 주인은 사람을 욕할 때는 반드시 바보 자식이라고 하는 게 버릇이다. 다른 욕 하는 법을 모르는 것이니 어쩔 수 없지만, 지금까지 참아온 사람의 심정도 모르고서 무턱대고 바보 자식 소리는 버릇없다고 생각한다. 그것도 평소에 내가 그의 등에 올라탈 때 조금이라도 좋은 얼굴을 해준다면 이 욕지거리도 감수하겠지만, 내 편에 도움이 되는 일은 아무것도 기분 좋게 해준 적도 없는데, 오줌 누러 일어선 것을 바보 자식이라고 하는 것은 심하다. 원래 인간이라는 것은 자기의 힘을 믿고 모두 거만하게 굴고 있다. 인간보다 조금 더 강한 것이 나타나서 혼내 주지 않으면 앞으로 어디까지 거만해질지 모른다.
이 정도의 자기 멋대로는 참겠지만, 나는 인간의 부덕에 관해 이것보다 몇 배나 슬퍼해야 할 소식을 들은 적이 있다.
내 집 뒤에 열 평 남짓의 찻밭이 있다. 넓지는 않지만 산뜻하고 기분 좋게 햇살이 드는 곳이다. 집안 아이들이 너무 시끄러워 편히 낮잠을 잘 수 없을 때나, 너무 지루하고 배가 좋지 않을 때 같은 경우에는, 나는 언제나 여기에 나와 호연지기를 기르는 것이 버릇이다. 어느 초겨울의 고요한 날 오후 두 시경이었는데, 나는 점심 후 편히 한숨 자고 나서, 운동을 겸해 이 찻밭으로 발길을 옮겼다. 차나무 뿌리를 하나하나 킁킁 맡으며, 서쪽 삼나무 울타리 곁까지 갔더니, 마른 국화를 짓누르고 그 위에 큰 고양이가 전후불각이 되어 자고 있다. 그는 내가 가까이 다가오는 것도 전혀 알아채지 못하는 것인지, 또 알면서도 전혀 무심한 것인지, 크게 코를 골며 길게 몸을 늘어뜨리고 자고 있다. 남의 정원에 슬며시 들어온 자가 이렇게까지 태평하게 잘 수 있는 것인가 하고, 나는 속으로 그 대담한 배짱에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그는 순수한 검은 고양이이다. 막 오정을 지난 태양은 투명한 광선을 그의 피부 위에 내리쬐어, 반짝이는 보들보들한 털 사이에서 보이지 않는 불꽃이라도 타오르는 것처럼 느껴졌다. 그는 고양이 중에서 대왕이라고 불릴 만한 위대한 체격을 가지고 있다. 나의 두 배는 확실하게 된다. 나는 감탄의 마음과 호기심에 앞뒤를 잊고 그의 앞에 우뚝 서서 여념 없이 바라보고 있었는데, 고요한 초겨울 바람이 삼나무 울타리 위로 나온 오동나무 가지를 가볍게 흔들어 서너 장의 잎이 마른 국화 덤불에 떨어졌다. 대왕은 번쩍 그 둥글고 둥근 눈을 떴다. 지금도 기억하고 있다. 그 눈은 인간이 귀하게 여기는 호박이라는 것보다도 훨씬 아름답게 빛나고 있었다. 그는 꼼짝도 하지 않는다. 두 눈 속 깊은 곳에서 쏘는 듯한 빛을 내 작고 왜소한 이마 위에 모으고서,「거 뭐야?」하고 말했다. 대왕치고는 말이 좀 상스럽다고 생각했지만 그 목소리 깊은 곳에 개도 꺾을 수 있는 힘이 담겨 있었으므로 나는 적잖이 두려움을 느꼈다. 그러나 인사를 하지 않으면 위험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에「나는 고양이다. 이름은 아직 없다.」하고 되도록 태연한 척 냉연히 대답했다. 그러나 이때 내 심장은 확실히 평소보다 격렬하게 두근거리고 있었다. 그는 크게 경멸하는 투로「뭐, 고양이? 고양이가 어이없기도 하지. 도대체 어디 사는 거야?」상당히 방약무인하다.「나는 여기 교사 집에 있다.」「어차피 그런 줄 알았다. 엄청나게 말랐구만.」하고 대왕답게 기염을 토한다. 말투로 보아하니 좋은 집 고양이 같지도 않다. 그러나 기름기 넘치게 살찐 것을 보면 좋은 것을 먹고 있는 것 같고, 풍요롭게 살고 있는 것 같다. 나는「그쪽은 대체 누구야?」하고 묻지 않을 수 없었다.「나는 마구간집 구로야.」당당하기 짝이 없다. 마구간집 구로는 이 근방에 모르는 자가 없는 난폭한 고양이이다. 그러나 마구간집인 만큼 힘만 세고 전혀 교양이 없어서 별로 아무도 교제하지 않는다. 동맹하여 경원하는 대상이 된 녀석이다. 나는 그의 이름을 듣고 좀 남세스러운 느낌이 드는 동시에, 한편으로는 약간의 경시의 마음도 생겼다. 나는 우선 그가 얼마나 무학인지 시험해 보려고 다음과 같은 문답을 해보았다.
「도대체 마구간집과 교사 중 어느 쪽이 더 대단할까?」
「마구간집이 강한 건 뻔하지. 네 집 주인 좀 봐, 뼈와 가죽뿐이잖아.」
「너도 마구간집 고양이답게 꽤 강해 보이는군. 마구간집에 있으면 좋은 것을 먹을 수 있는 것 같군.」
「뭐, 나는 어디를 가더라도 먹을 것에 불편한 적이 없어. 너도 찻밭만 뱅글뱅글 돌지 말고, 잠깐 내 뒤를 따라와 봐. 한 달도 안 돼서 몰라볼 만큼 살이 찔 거야.」
「나중에 그렇게 부탁하도록 하지. 그러나 집은 교사 쪽이 마구간집보다 큰 것 같던데.」
「쓸데없는 소리. 집이 아무리 커도 배의 도움이 될 건 없잖아.」
그는 크게 화가 난 듯이, 가늘게 쪼개 놓은 한대쪽 같은 귀를 연신 팰쭉거리며 성난 듯 가버렸다. 내가 마구간집 구로와 지기가 된 것은 이때부터이다.
그 후 나는 자주 구로와 만났다. 만날 때마다 그는 마구간집에 걸맞은 기염을 토했다. 아까 내가 들었다는 부덕 사건도 사실은 구로에게서 들은 것이었다.
어느 날 평소처럼 나와 구로는 따뜻한 찻밭 속에 드러누우며 여러 가지 잡담을 하고 있었는데, 그는 여느 때의 자랑 이야기를 새로운 것처럼 반복한 후에, 나에게 다음과 같이 질문했다.「너는 지금까지 쥐를 몇 마리나 잡아봤어?」지식은 구로보다 훨씬 발달해 있다고 생각하지만 완력과 용기에 이르러서는 도저히 구로에 비할 바가 못 된다고 각오는 하고 있었지만, 이 질문을 받았을 때는 역시 체면이 좋지 않았다. 그러나 사실은 사실로 거짓말을 할 수는 없으니, 나는「실은 잡으려 잡으려 하면서 아직 잡지 않았어.」하고 대답했다. 구로는 코끝에서 빳빳하게 뻗어 있는 긴 수염을 가느다랗게 떨며 몹시 웃었다. 원래 구로는 자랑하는 만큼 어딘가 부족한 점이 있어서, 그의 기염을 감탄하는 척 목구멍을 꾸르륵 울려 주의 깊게 들으면 대단히 다루기 쉬운 고양이이다. 나는 그와 친해지고 나서 바로 이 요령을 알아챘으므로, 이 경우에도 어설프게 스스로를 변호하여 더욱 형세를 나쁘게 하는 것도 어리석은 일이니, 아예 그에게 자신의 공적 이야기를 떠들게 해서 얼버무리는 것이 최선이라고 마음먹었다. 그래서 얌전하게「자네는 연륜이 있으니 꽤 잡았겠지.」하고 꼬드겨 보았다. 과연 그는 결함 속으로 당당히 돌격해 왔다.「그렇게 많지는 않지만 서너 십 마리는 잡았겠지.」하는 것이 그의 득의양양한 대답이었다. 그는 계속해서「쥐 백 이백 마리는 혼자서 언제든지 상대하겠지만, 족제비라는 녀석은 당할 수가 없어. 한번 족제비를 향해서 호된 꼴을 당했거든.」「어, 그렇군.」하고 장단을 맞춰 준다. 구로는 큰 눈을 깜빡이며 말한다.「작년 대청소 때였어. 내 주인이 석회 자루를 들고 툇마루 아래로 기어들었더니 이봐, 큰 족제비 녀석이 당황해서 튀어나왔지?」「흠.」하고 감탄해 보인다.「족제비라고 해봤자 뭐 쥐보다 조금 큰 정도의 거야. 이 놈 하는 마음으로 쫓아가서 결국 개울 속으로 몰아넣었지 뭐야?」「잘했네.」하고 칭찬해 준다.「그런데 이봐, 이제 잡으려는 참에 녀석이 마지막 방귀를 뀌지 않겠어. 냄새가 지독한지 지독하지 않은지 그 후론 족제비를 보면 속이 메스꺼워져.」그는 이 대목에 이르러 마치 작년의 악취를 지금도 느끼는 것처럼 앞발을 들어 코끝을 두세 번 쓰다듬었다. 나도 약간 딱한 마음이 들었다. 조금 기운을 북돋워 주려고 생각하고「그러나 쥐라면 자네한테 노려보이면 백 년 됐겠지. 자네는 너무 쥐 잡기의 명인이라 쥐만 먹는 것이라서 그렇게 살이 쪄서 색이 좋은 것이겠지.」하고 구로의 기분을 맞추기 위해 한 이 질문은 불가사의하게도 반대의 결과를 낳았다. 그는 한숨 쉬며 탄식한다.「생각하면 보람이 없어. 아무리 애써 쥐를 잡아도 ─ 인간이라는 녀석처럼 뻔뻔한 것은 세상에 없어. 남이 잡은 쥐를 몽땅 가져가서 파출소에 갖다 주지 않겠어. 파출소에선 누가 잡은 건지 모르니까 그때마다 오 전씩 주지. 우리 주인은 나 덕분에 벌써 한 냥 오 전쯤 벌었는데도 변변한 것을 먹인 적도 없어. 이봐, 인간이라는 것은 체면 좋은 도둑이야.」무학한 구로도 이 정도의 이치는 알겠다고 보이는지 상당히 화가 난 모습으로 등 털이 곤두서 있다. 나는 좀 기분이 나빠져서 적당히 그 자리를 얼버무리고 집으로 돌아왔다. 이때부터 나는 결코 쥐를 잡지 않겠다고 결심했다. 그러나 구로의 수하가 되어 쥐 이외의 음식을 뒤지러 다니지도 않았다. 좋은 것을 먹기보다 자고 있는 편이 기분이 좋다. 교사 집에 있으면 고양이도 교사 같은 성질이 되는 것 같다. 조심하지 않으면 이제 곧 위가 약해질지도 모른다.
교사라고 하면 내 주인도 요즘에 이르러서는 도저히 수채화에서 희망이 없음을 깨달은 것 같아서 십이월 일일의 일기에 이런 것을 써두었다.
○○라는 사람을 오늘 모임에서 처음으로 만났다. 저 사람은 꽤 방탕했다고 하는데 과연 풍류 있어 보이는 풍채를 하고 있다. 이런 종류의 사람은 여자에게 인기를 끄는 것이니 ○○가 방탕을 했다고 하기보다도 방탕을 하지 않을 수 없이 내몰렸다고 하는 것이 적당하겠다. 저 사람의 아내는 게이샤라고 한다, 부러운 일이다. 원래 방탕가를 나쁘게 말하는 사람의 대부분은 방탕을 할 자격이 없는 자들이 많다. 또 방탕가를 자처하는 무리 중에도, 방탕을 할 자격이 없는 자들이 많다. 이들은 어쩔 수 없지도 않은데 무리하게 앞장서서 하는 것이다. 마치 내가 수채화에 있어서처럼 도저히 졸업할 걱정은 없다. 그러면서도 자기만은 풍류인이라고 생각하며 잘도 있다. 요릿집의 술을 마시거나 대합실에 들어가면 풍류인이 될 수 있다는 논리가 성립한다면, 나도 일인분의 수채화가가 될 수 있다는 이유가 된다. 내 수채화 같은 것은 그리지 않는 편이 낫다는 것과 마찬가지로, 우매한 풍류인보다도 시골에서 온 촌뜨기 쪽이 훨씬 낫다.
풍류인론은 좀 수긍하기 어렵다. 또 게이샤 아내를 부럽다 따위 말하는 것은 교사로서 입에 담아서는 안 될 어리석은 생각이지만, 자기의 수채화에 대한 비평안만큼은 확실하다. 주인은 이렇게 자지의 명이 있으면서도 그 자만심은 좀처럼 없어지지 않는다. 이틀 건너 십이월 사일의 일기에 이런 것을 쓰고 있다.
어젯밤 나는 수채화를 그려서 도저히 안 되겠다고 생각하고 아무데나 내던져 두었던 것을 누군가가 훌륭한 액자에 넣어서 상간에 걸어 준 꿈을 꿨다. 자, 액자가 된 것을 보니 나도 갑자기 잘 그려진 것 같다. 매우 기쁘다. 이것이라면 훌륭하다고 혼자 바라보며 지내고 있더니, 날이 밝아 눈을 떠보니 역시 원래대로 서투르다는 것이 아침 햇살과 함께 명확해져 버렸다.
주인은 꿈속에서조차 수채화에 대한 미련을 짊어지고 다니는 것 같다. 이래서는 수채화가는 물론 주인 소위의 풍류인도 될 수 없는 인품이다.
주인이 수채화를 꿈에 본 다음 날, 그 금테 안경의 미학자가 오래간만에 주인을 방문했다. 그는 자리에 앉자마자 개구 제일성으로「그림은 어때?」하고 입을 열었다. 주인은 태연한 얼굴을 하고「자네의 충고에 따라 사생을 힘쓰고 있는데, 과연 사생을 하면 지금까지 신경 쓰지 않았던 물건의 형태나, 색의 정세한 변화 같은 것이 잘 알 수 있게 되더군. 서양에서는 옛날부터 사생을 주장한 결과 오늘날처럼 발전한 것이라고 생각돼. 역시 안드레아 델 사르토야.」하고 일기의 일은 일언도 내지 않고, 또 안드레아 델 사르토에 감탄하고 있다. 미학자는 웃으며「실은 저기, 그거 내가 꾸며낸 거야.」하고 머리를 긁는다.「뭐가?」하고 주인은 아직 속았다는 것을 알아채지 못한다.「뭐가라니 자네가 연신 감복하고 있는 안드레아 델 사르토 말이야. 그거 내가 잠깐 날조한 이야기야. 자네가 그렇게 진지하게 믿으리라고는 생각하지 않았어, 하하하하.」하고 크게 기뻐하는 기색이다. 나는 툇마루에서 이 대화를 들으며 그의 오늘 일기에는 어떤 것이 적혀질 것인가 하고 미리 상상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이 미학자는 이런 적당한 것을 퍼뜨려 사람을 속이는 것을 유일한 즐거움으로 삼고 있는 사람이다. 그는 안드레아 델 사르토 사건이 주인의 감정선에 어떤 반응을 전했는가를 조금도 헤아리지 않는 것처럼 의기양양해서 다음과 같은 것을 지껄였다.「예, 때때로 농담을 하면 사람이 진심으로 받아들이기 때문에 크게 우스꽝스러운 미감을 자극하는 것은 재미있어. 요전에 어떤 학생에게 니콜라스 니클비가 기번에게 충고하여 그의 일생의 대저술인 프랑스 혁명사를 프랑스어로 쓰는 것을 그만두게 하여 영어로 출판하게 했다고 말했더니, 그 학생이 또 기억력이 좋은 남자라서, 일본 문학회의 강연회에서 진지하게 내가 이야기한 대로를 반복한 것은 우스웠어. 그런데 그 때의 방청자는 약 백 명 정도였는데, 모두 열심히 그것을 경청하고 있더군. 그것부터 또 재미있는 이야기가 있어. 요전에 어느 문학자가 있는 자리에서 해리슨의 역사 소설 테오파노 이야기가 나왔으니까 나는 그것은 역사 소설 중에서 백미이다, 특히 여주인공이 죽는 대목은 기운이 사람을 습하는 것 같다고 평했더니, 내 건너편에 앉아 있는 알고 있다고 하지 않은 적이 없는 선생이, 그렇지 그렇지 거기는 실로 명문이라고 했어. 그래서 나는 이 사람도 역시 나와 마찬가지로 이 소설을 읽지 않았다는 것을 알았지.」신경 위약성의 주인은 눈을 둥그렇게 뜨고 물었다.「그런 엉터리를 말하다가 만약 상대가 읽었다면 어떻게 하려고?」마치 사람을 속이는 것은 상관없다, 다만 속임수가 드러났을 때는 곤란하지 않냐고 느낀 것 같다. 미학자는 조금도 동요하지 않는다.「뭐, 그때는 다른 책과 혼동했다거나 뭐라거나 말하면 그만이지.」하고 껄껄 웃고 있다. 이 미학자는 금테 안경은 쓰고 있지만 그 성질이 마구간집 구로와 비슷한 데가 있다. 주인은 묵묵히 '일출' 담배를 동그랗게 뿜으며 나한테는 그런 용기는 없다는 것이나 다름없는 얼굴을 하고 있다. 미학자는 그러니까 그림을 그려도 소용없다는 눈길로「그러나 농담은 농담이지만 그림이라는 것은 사실 어렵거든, 레오나르도 다빈치는 문하생에게 사찰의 벽의 얼룩을 사생하라고 가르친 적이 있다고 한다. 과연 변소 같은 데 들어가서 비가 새는 벽을 여념없이 들여다보면, 꽤 그럴싸한 무늬 그림이 자연스럽게 만들어져 있어. 자네 조심해서 사생해 봐 꼭 재미있는 게 나올 테니까.」「또 속이는 것이지.」「아뇨, 이것만큼은 확실해. 사실 멋진 말이 아닌가, 다빈치라도 말할 것 같은 말이잖아.」「과연 멋진 말이기는 해.」하고 주인은 반쯤 항복했다. 그러나 그는 아직 변소에서 사생하지는 않는 것 같다.
마구간집 구로는 그 후 절름발이가 되었다. 그의 광택 있는 털은 점점 빛이 바래고 빠져 오고 있다. 내가 호박보다 아름답다고 평한 그의 눈에는 눈꼽이 가득 끼어 있다. 특히 현저하게 내 주의를 끈 것은 그의 원기의 소침과 체격이 나빠진 것이다. 내가 그 찻밭에서 그와 마지막으로 만난 날, 어떠냐고 물었더니「족제비의 마지막 방귀와 생선가게의 천칭 막대기에는 이제 진저리가 났어.」하고 했다.
붉은 소나무 사이에 두세 층의 붉은빛을 물들인 단풍은 옛 꿈처럼 지고 참석 가까이 번갈아 가며 꽃잎을 떨어뜨린 홍백의 동백꽃도 남김없이 다 떨어져 버렸다. 세 칸 반의 남향 툇마루에 겨울 햇살이 일찍 기울어지고 바람이 불지 않는 날이 거의 드물어지고 나서 내 낮잠 시간도 좁아진 것 같은 기분이 든다.
주인은 매일 학교에 간다. 돌아오면 서재에 틀어박힌다. 사람이 오면, 교사가 싫다 싫다 한다. 수채화도 좀처럼 그리지 않는다. 타카디아스타제도 효능이 없다고 해서 그만두어 버렸다. 아이들은 대견스럽게 쉬지 않고 유치원에 다닌다. 돌아오면 동요를 부르고, 공을 치고, 때때로 나를 꼬리로 대롱대롱 매달기도 한다.
나는 음식을 잘 먹지 않으니 별달리 살이 찌지도 않지만, 대체로 건강하고 절름발이도 되지 않고 그날그날을 보내고 있다. 쥐는 절대로 잡지 않는다. 오상은 아직도 싫다. 이름은 아직 붙여주지 않지만, 욕심을 말하면 한이 없으니 평생 이 교사 집에서 이름 없는 고양이로 끝마칠 생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