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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회 새 임금 옹립을 논하니 사공이 서찰로 막고 — 마사영과 완대성이 뜻을 이루다

이야기는 이어지니, 후조종은 향군과 이별한 뒤 사가법을 찾아갔다. 사공은 대대로 친분이 있는 집안의 자제인 데다 간신들에게 해를 입은 처지임을 알고, 그를 막사 안에 머물게 하며 기실(記室)로 삼았다. 이윽고 탐보(探報)가 들어오니: "유적(流賊) 이자성이 신경(神京)을 함락하고 숭정 황제께서 삼월 십오일 매산(煤山)에서 목을 매어 승하하셨습니다." 이 소식에 모두 크게 놀라고 원통해 마지않았다. 또 남경 문무 여러 관원들의 논의가 분분하다는 소문도 들렸으니, 군사를 정비해 북경으로 올라가 복수해야 한다는 이도 있고, 성상이 이미 승하하셨으니 차라리 새 임금을 맞이하여 세운 뒤 다시 수복을 도모해야 한다는 이도 있었다. 주장은 많았으나 일정한 견해를 가진 이는 없었다. 다만 간신 마사영과 완대성이 함께 모의하여 복왕(福王)을 맞이하여 세우자는 의론을 주창하며 이를 공으로 삼아 포상을 받으려 하였다. 조종은 이 말을 듣고 크게 놀라 진위를 알 수 없어, 사가법이 관아로 돌아오기를 기다려 소식을 탐문하기로 하였다.

근심과 의혹에 빠져 있던 참에 사공이 관아로 돌아오자, 조종이 물었다. "사 어른, 이 소식이 어떠하옵니까?" 사공이 길게 탄식하며 말했다. "나 사가법은 본적이 하남이요, 기적(寄籍)은 연경(燕京)에 두고 있소. 진사에 오른 뒤 바로 중원이 다사(多事)한 때를 만났소. 이제 회안 조무에서 남경 병부(兵部)로 승보(陞補)되어 부임한 지 한 달도 채 되지 않아 이 대변(大變)을 만났으니, 만 번 죽어도 할 말이 없소! 지금 비록 이 장강의 험준한 지세를 의지해 겨우 하루하루를 버티고 있으나, 한 달 동안 임금이 없으니 인심이 흉흉하여 날마다 새 임금 맞이를 논하고 있으나 아무것도 결정되지 않고 있소. 북쪽 소식은, 북경을 잃었으나 성상께서는 무사히 바다를 건너 남하하고 계신다는 말도 있고, 성상이 승하하셨으나 태자가 샛길로 남쪽으로 달아났다는 말도 있소. 아무것도 확실하지 않으니 모두 갈피를 잡지 못하고 있는데, 어찌하면 좋겠소?"

이야기하는 중에 홀연 봉양 무의 아문에서 서찰이 한 통 들어왔다. 사공이 뜯어보더니 쌍미를 찌푸리며 말했다. "이 마 요초(馬瑤草)가 또 무슨 옹립 이야기를 하는가. 편지의 뜻을 보니 복왕에 마음이 기울어 있고, 또 성상이 확실히 승하하시고 태자는 행방을 알 수 없다 하는구나. 만약 그것이 사실이라면, 비록 내가 따르지 않더라도 그들은 기어이 스스로 추진할 것이오. 더군다나 복왕은 소목(昭穆)의 항렬 차례로 보아 그다지 어긋나지도 않으니, 오늘 답서를 보내고 내일 연판(聯判)하여 함께 이름을 올리는 것이 마땅하겠소."

조종은 복왕을 세우자는 말을 듣고 큰 소리로 외치며 말했다. "어른, 그것은 잘못된 생각이옵니다! 복왕은 소생의 고향에 분봉(分藩)된 왕이라 소생이 가장 잘 알고 있으니, 결단코 세워서는 안 됩니다! 그에게는 세 가지 큰 죄가 있어 세상 사람들이 다 알고 있거늘, 어른께서는 아직 들으시지 못하셨습니까? 소생이 하나씩 아뢰겠사오니, 어른께서 살펴보시기 바랍니다. 복왕은 신종(神宗)의 총애받는 아들이요, 모비(母妃) 정씨(鄭氏)는 음사(淫邪)하고 무법하여 태자를 해치고 스스로 세우려 하였습니다. 후계자 자리를 도모하고 왕위를 찬탈하려 한 것이 첫째 큰 죄옵니다. 또한 성품이 교만하고 사치스러워 분봉 당시 내부(內府)의 금전을 몰래 빼돌려 넘치도록 싸서 가지고 갔으며, 도적이 하남을 핍박할 때는 한 푼도 아까워 군량을 내놓지 않아 나라와 집안이 모두 망하게 되었습니다. 재물에 탐닉하여 나라를 그르친 것이 둘째 큰 죄옵니다. 그 부왕(父王)이 도적의 손에 죽어 시신도 미처 거두지 못하였는데, 그는 차마 마음을 강하게 먹고 멀리 달아났다가, 이 난리를 틈타 민간의 처녀들을 취하였습니다. 어버이를 잊고 여색을 탐한 것이 셋째 큰 죄옵니다. 이 세 가지 죄가 있어 임금의 덕이 결여되었거늘, 어찌 왕업을 도모할 수 있겠습니까? 더욱이 다섯 가지 불가(不可)의 이유가 있사옵니다. 첫째, 거가(車駕)의 존망(存亡)이 소문마다 다르오니, 하늘에 두 해가 없고 백성에게 두 임금이 없는 법입니다. 둘째, 성상께서 정말 붕어하셨다면 사직에는 아직 태자의 감국(監國)이 있거늘, 어찌 저장(嫡長)을 버리고 곁가지를 구하겠습니까? 셋째, 중흥의 임금은 꼭 항렬 순서에 구애받을 것 없이 영걸한 이를 방문하여 세워 수복을 도모하는 것이 바른 이치입니다. 넷째, 강한 번진(藩鎭)들이 이 소식을 듣고 틈을 타 다른 이를 세운다면 서로 공격하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다섯째, 소인배들이 옹립한 공을 빌미로 권력을 마음대로 휘두르면 그 화가 또한 적지 않을 것이옵니다." 사공이 이 말을 듣고 크게 깨달은 듯 말했다. "옳소, 옳소! 세형의 높은 견해가 깊고 원대하오! 전날에 부사 뇌연조(雷縯祚)와 예부(禮部)의 주표(周鑣)도 이와 같은 논의를 하였소이다. 그럼 세형이 수고스럽겠지만 이 세 가지 큰 죄와 다섯 가지 불가의 논을 써서 회신하여 주시구려." 조종이 명을 받들어 즉시 사람을 시켜 촛불을 밝히고 먹을 갈게 하였다. 화전(花箋)을 펼쳐 붓을 들고 사공 앞에서 회신 한 통을 일필휘지로 써 내려간 다음, 봉투를 봉하고 도서(圖書)를 찍어 외반(外班)에게 분부하여 서찰 전달자를 돌려보냈다. 이에 이르되:

뭇 간신들은 오직 영화와 부귀만을 바라거늘,

오직 한 사람만이 홀로 감히 충직한 말을 올리는구나.

이야기는 이어진다. 사가법이 마사영에게 회신을 보낸 뒤로는 다시는 옹립 이야기를 꺼내지 않았다. 그런데 완대성은 마사영의 심복인지라, 사가법의 회신을 보고는 또 친히 원문(轅門)에 와서 알현하고자 하며 복왕 옹립을 직접 논의하려 하였다. 사공은 그가 위당(魏黨) 출신임을 알고 단호히 거절하여 만나주지 않았다. 완대성은 풀이 죽어 마사영의 관저로 돌아와 이를 알렸다. 사영이 말했다. "사가법의 편지에는 세 가지 큰 죄와 다섯 가지 불가라는 말이 있고, 형이 직접 가서 면담하려 했으나 거절당하였으니, 보아하니 그는 이 일에 동의하지 않으려는 것이오. 그런데 지금 그가 병권을 쥐고 이런 주장을 내세우면, 고홍도(高宏圖), 강일광(姜日廣), 여대기(呂大器), 장국유(張國維) 등 구경(九卿) 반열의 이들이 누가 감히 마음대로 행동하겠소? 이 옹립 이야기가 성사될지 다소 의문이오." 완대성이 말했다. "사가법이 비록 병권을 쥐고 있으나 일정한 주견이 없으니, 어른께서 서찰을 쓰시어 소제로 하여금 다시 가서 사진(四鎭)의 무신들과 훈척(勛戚) 내시들을 약속하게 하소서. 그들이 기꺼이 행한다면 그대로 거행함이 어떻겠습니까?" 사영이 기뻐하며 말했다. "그것 참 좋소!" 이에 즉시 서찰 한 통을 써서 대성에게 주어 사진을 약속하러 보냈다.

그런데 사진은 원래 마사영이 발탁한 이들인 데다 일정한 주견이 없었다. 약속 서찰을 보자마자 기꺼이 허락하고, 이달 이십팔일에 함께 강도(江都)로 나아가 어가(御駕)를 맞이하기로 약속하였다. 완대성이 서둘러 사영에게 회보하였다. 사영이 또 물었다. "고(高), 황(黃), 이(二) 유(劉) 이외에 또 누가 기꺼이 가려 하오?" 대성이 말했다. "위국공(魏國公) 서홍기(徐鴻基), 사례감(司禮監) 한체주(韓替周), 이과 급사중(吏科給事中) 이고(李沽), 감찰 어사(監察御史) 주국창(朱國昌) 등이 있습니다." 사영이 크게 기뻐하며 말했다. "훈신, 위위, 과도(科道)에도 한 사람씩 있으니, 이제 됐소. 나는 원래 외직(外吏)이고, 저 몇몇 무신과 훈신들은 부원 경료(部院卿僚)를 기다리지 않으니, 지금 표문(表文)을 쓸 때 어떻게 이름을 나열하면 좋겠소?" 대성이 말했다. "그게 뭐가 어렵겠소. 진신록(縉紳錄) 한 권을 찾아와 처음부터 다 베껴 쓰면 그만이오!" 사영이 또 말했다. "그야 그렇다 하더라도, 만약 어가가 도착했을 때 백관이 맞이하러 나오지 않으면 어찌 조정으로 인도하겠소?" 대성이 말했다. "제가 보기에 만조 문무 중에 누가 일정한 주견이 있겠습니까? 어가가 일단 도착하면, 직함을 아뢰러 몰려드는 이들이 자리를 다투느라 밀릴 것이옵니다!" 마사영이 듣고 크게 웃었다. "완 어른의 견해가 지극히 옳소!" 이에 사람을 시켜 진신록 한 권을 가져오게 하여 벼슬 이름을 하나하나 빠짐없이 적어 적고, 의관을 단정히 하고 상자와 보따리를 꾸려 어가를 맞이하러 성을 나설 준비를 하였다.

완대성은 본래 파직된 신분이라 관복을 갖추어 입을 수 없었으므로, 그를 표문 상자를 담당하는 임시 관원으로 삼아 표문 상자를 등에 지고 어가를 맞이하러 가게 하였다. 완대성은 오직 공을 세워 벼슬을 회복하려는 마음뿐이라, 상자를 등에 지는 수치 따위는 아랑곳하지 않고 흔쾌히 표문 상자를 지고 마사영과 함께 성을 나서 강포(江浦)로 향하였다. 이에 이르되:

오직 명리(名利)를 좇아 달려갈 뿐,

사람들이 비웃고 욕해도 나는 부끄럽지 않다.

뒷일이 어떻게 될지는 다음 회에서 풀어내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