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화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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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팔회 창 소저는 여자의 몸으로 남자를 그리워하며 슬피 한 곡조를 읊고 단 공자는 남자의 몸으로 여자를 사모하며 한동안 통곡하다

사(詞)에 이르기를:

만남이란 가장 시고도 달콤하여, 상사(相思)의 맛을 보면 쓰기만 하다네. 어찌하여 마음속에서 토해 내지 못하는가, 토하려 하여도 토해 낼 수가 없구나. 긴 노래와 통곡으로 시름을 달래려 해도, 아무 소용이 없음을 알지 못했네. 기쁘고 즐거운 날을 맞이하려면, 견우와 직녀의 만남이 있어야 하리.

                     「호사근(好事近)의 곡조에 맞추어」

  이야기를 이어가자면, 창전(昌全)이 난군(亂軍) 속에서 봉의(鳳儀)의 딸을 구하여 의녀(義女)로 삼아 관아로 데려와서는 두씨(杜氏)에게 인사를 시키고, 앞서 있었던 일을 자세히 이야기하였다. 두씨는 기쁨을 이기지 못하였으니, 아이의 나이가 비록 어리나 뼈대부터 빼어나고 태어날 때부터 아름다운 자태를 지녔으며, 말씨 또한 온화하고 더욱이 조심성 있고 공경스러운 마음이 있어 마치 친히 낳은 자식과 같았다. 두씨는 그를 사랑하고 아껴 자기 소생처럼 대하였다. 또한 그가 소저의 집안 출신으로 영화와 부귀를 누려 왔음을 알고, 마침내 두 명의 시비(侍婢)를 붙여 시중들게 하였으니, 하나는 춘화(春花)라 하고 또 하나는 추화(秋花)라 하였다.

  창전은 또한 뒷동산 화원 안의 누각 한 채를 깨끗이 단장하여 딸의 침실로 삼았다. 또 자신이 읽던 서책들을 모두 그 누각 아래에 쌓아 두고, 정갈하게 꾸며 서재로 만들었으니, 안에는 도서가 가득 꽂혀 눈에 닿는 것마다 찬란하였다. 창전은 주중문(周重文)에서 보내 오는 문서와 붓글씨 관련 일이 있을 때면 이 서재에서 교열하고 글을 썼다. 소저는 그 안에 거처하며 마음껏 책을 펼쳐 보아 매우 기뻐하였다. 또한 시비들의 이름이 너무 속되다 하여, 춘화를 춘휘(春暉)로, 추화를 추소(秋素)로 고쳐 불렀다. 나이로 따지면 열세넷쯤 되어 소저와 비슷하였다. 둘 중에서 춘휘가 더욱 재빠르고 영리하여 소저의 마음에 더 들었으므로, 소저는 종종 그에게 책을 읽히고 몇 글자를 익히게 하였다. 이로써 춘휘는 도리를 어느 정도 알게 되어 다른 이들과 달랐다. 소저는 바느질 틈틈이 서책과 역사를 펼쳐 적막함을 달래었다.

  이 봉(鳳) 소저를 논하자면, 구사일생으로 목숨을 건진 뒤 이제 편안함을 얻었으니 만사를 내려놓을 만도 하였다. 그러나 인심이란 가장 활발하여 일률적으로 말할 수 없다. 고난에는 고난의 경지가 있고 안락에는 안락의 경지가 있으니, 고난의 경지에 처해 있을 때는 스스로 살아남기도 겨를이 없어 다른 이를 생각할 틈이 없다. 남을 생각하지 못한다 하여 무정하다거나 배은망덕하다 할 수는 없다. 그러나 안락의 경지에 처하고서 갑자기 전에 받았던 은의(恩義)를 아랑곳하지 않는다면, 그런 사람은 금수만도 못한 것이다.

  그러므로 채문(彩文) 소저가 창전과 두씨를 부모로 삼아 몸 붙일 곳을 얻어 편안히 지내며 나이도 점차 들어 가게 되니, 어찌 지난 일을 생각하지 않겠는가? 때로는 친부모를 생각하였으니, 헤어진 지 수년이 지나 변란을 당한 이후 어떤 괴로움을 겪고 계신지, 얼마나 그리워하실지, 필시 나를 죽은 줄로 여기고 계시리라 싶었다. 이 생에서 다시 만날 기약이 없을 터인데, 내가 이 멀고 먼 곳에 살아 있음을 어찌 알겠는가. 불쌍하게도 이제 연로하신 데다 나를 대신하여 봉양할 형제도 없으시고, 더욱이 수년간 생사조차 알 수 없으니 어찌 마음이 아프고 괴롭지 않겠는가. 또한 봉의의 부모를 생각하자면, 그 양육의 은혜가 실로 낳아 주신 것보다 더하였다. 그분들은 오직 螟蛉(나방의 애벌레, 즉 양자나 양녀)으로 딸을 삼아 노년의 즐거움을 누리려 하셨건만, 뜻밖에 귀양길에 함께 가다가 또 난병(亂兵)에게 떼어지고 말았다. 다행히 나는 어려서 죽지 않았지만, 그분들은 길을 떠돌면서 겉으로는 분명 관원이건만 실은 주머니가 텅 비었을 것이다. 만약 난병을 만난다면 뇌물로 바칠 금은도 없으니, 병사의 칼에 상하지 않더라도 도랑에서 굶어 죽으실 것이다. 설령 살아남으셨다 해도 지금 어디 계신지 알 길이 없으니, 내가 이렇게 편안히 다른 부모를 섬기고 있음을 전혀 모르시겠지.

  이런 생각에 이르면 눈물이 방울방울 흘러내렸다. 또한 친부모의 일을 지금의 부모께 말씀드리고 싶었지만, 처음 만났을 때 이미 봉씨 집안의 부모로 인정되어 소저라 불리고 있었다. 만약 지금 사실을 말한다면 자칫 교묘한 말로 속였다는 오해를 살 수도 있었다. 또 봉씨 부모의 은혜를 생각하면 창씨 부모 앞에서 행방을 수소문해 달라 청하고 싶었지만, 이 자식이 여기서 저를 그리워한다는 의심을 살까 두렵기도 하였다. 그렇게 되면 일도 이루지 못하고 은의(恩義)마저 어그러질 것이었다. 그저 마음속으로만 그리워할 뿐이었다. 또 생각하기를: 「하늘이 나에게 이토록 뛰어난 재주를 주셨건만, 또 나로 하여금 이쪽이 온전하면 저쪽이 모자라게 하시니, 어찌 내 팔자가 이리도 기구한가!」

  이런 생각을 할 때마다 참으로 마음이 아팠다. 또한 표형(表兄) 당창(唐昌)을 처음 만났던 날을 생각하였으니, 그가 지극한 정성으로 사랑하고 시 속에 은밀히 마음을 담아 말없이 뜻을 전하여 서로 사모하게 되고, 두 사람이 일생을 약속하였던 일이 떠올랐다. 이별 무렵 깊이 얽히고 간곡히 당부하였으며, 그것을 평생의 혼약으로 여기며 마음이 서로 편안하였다. 그런데 헤어진 지 얼마 되지 않아 뜻밖의 재앙이 닥쳐 떠돌이 신세가 되어 낯선 땅에 처하게 되었다. 그는 편안히 글을 읽고 있을 것이니, 분명 이 일을 알지 못할 것이다. 만약 이 변고를 전해 듣는다면 필시 내가 구슬처럼 부서지고 꽃잎처럼 시들었다 여길 것이다. 더욱이 그는 정이 깊고 의리가 두터우니, 마땅히 고요한 밤에도 잠 못 이루고 짧은 등잔불 앞에서 한없이 슬퍼할 것이며, 환한 낮에도 무료하여 시서(詩書)를 펼쳐 보다가 슬픔을 참지 못할 것이다. 내가 도리어 이곳에서 무사히 지내고 있음을 어찌 알겠는가. 세상사는 무상하니, 나는 이미 재앙을 당하였고, 그 표형은 지금 이 순간 어떤 상태에 있는지 알 수 없다. 지금 소식을 전하고 싶어도 하늘 남쪽과 땅 북쪽으로 멀리 떨어져 아득하기만 하니, 어찌 지기(知己)의 기대에 부응할 수 있겠는가. 진실로 슬프다 하겠다. 이로 인해 날마다 그리워하고 달이 지나도록 사모하면서도, 감히 마음껏 토로하지 못하고 오직 바느질을 멈추고 말없이 홀로 거닐며 고개를 숙일 뿐이었다. 비바람이 내리고 꽃이 피었다 지는 때면 더욱 시름이 더하였다. 그러므로 때때로 경치에 기대어 심회를 달래며 시를 읊었다.

  어느 날 문득 춘휘가 말하였다: 「화원에 백화(百花)가 활짝 피었사옵니다. 소저께서 잠시 수놓는 일을 멈추시고 나가 거니시는 것이 어떻겠사옵니까? 봄빛이 사람을 비웃지 않도록 하시지요.」 소저는 이 말을 듣고 마침 갈 곳이 없어 무료하던 차에, 춘휘와 함께 화원으로 나가 한가로이 거닐었다. 춘휘가 소저를 이끌어 동서로 구경하였으나, 비록 꽃길이 굽이굽이 이어지고 정자와 누각이 굽이쳐 있었지만, 자세히 보면 봄빛이 음울하고 꽃향기가 쓸쓸하기만 하였다. 붉은 빛이 가지마다 가득하여도 요염하고 고운 경치는 전혀 없었다. 소저가 이를 보고 자못 불쾌해하며 춘휘에게 물었다: 「내 듣기로 초목이 때를 만나면 반드시 눈부시도록 아름답고 향기가 사람을 감쌓다 하여, 꽃 아래에서 발길을 멈추고 차마 떠나지 못한다 하더구나. 지금 화원의 꽃들은 곱다 하면서도 곱지 않고, 화사하다 하면서도 화사하지 않으며, 향기롭다 하면서도 향기롭지 않으니, 무슨 까닭인지 모르겠구나.」 춘휘가 웃으며 대답하였다: 「소저께서는 모르시나 보군요. 무릇 땅이 남북으로 나뉜다 함이 빈말이 아니옵니다. 수토(水土)가 남북에 따라 다르옵니다. 남방의 수토는 윤택하고 지기(地氣)가 온화하여 초목도 온화하게 자라고, 북방의 수토는 건조하고 지기가 메말라 초목도 메마르게 자라옵니다. 그러하기에 옛날부터 황하 언덕의 얼음이 녹을 때 장안(長安)의 꽃은 진다 하였으니, 이는 시절이 다른 것이 아니라 실은 땅이 다른 것이옵니다. 이 땅에는 원래 꽃을 심지 않았는데, 이 꽃들은 모두 주(周) 노야께서 남방 사람이신지라 거금을 아끼지 않으시고 옮겨 오신 것이옵니다. 그러하니 복숭아와 살구라 이름은 갖추었으나 꽃빛은 결국 평범하기만 한 것이옵니다.」

  소저는 이 말을 듣고 속으로 고개를 끄덕이며 옳다 여겼으나, 도리어 마음이 더욱 울적해졌다. 문득 지난날 당창과 꽃 아래에서 나누었던 말이 떠올라 참지 못하고 몇 방울 눈물을 흘렸다. 그러나 춘휘에게 들킬까 두려워 억지로 고개를 숙여 몰래 닦았다. 그러나 이미 춘휘가 알아채고 얼른 말하였다: 「소저께서 한껏 마음을 여시기 좋은 때인데, 어찌하여 도리어 시름이 더하시옵니까? 소저께서 혹 달리 마음에 품으신 일이 있으시다면 춘휘에게 말씀해 주소서. 무방하옵니다.」 소저는 물음을 받자 어쩔 수 없이 둘러대며 말하였다: 「우연히 경치에 마음이 움직인 것이니, 나 자신도 알지 못하겠고 실로 다른 뜻은 없다네.」 춘휘는 소저의 흥이 다 사라진 것을 보고, 함께 수방(繡房)으로 돌아왔다. 바로 이러하도다:

  복숭아는 열매 맺으려 꽃잎을 날리고, 버들은 그늘 이루려 솜털을 토해 낸다.   까닭 없이 공연히 눈물 흘린다 여기지 마소, 마음 아픈 이에게는 마음 아픈 사연이 있는 법이거늘.

창 소저가 춘휘와 함께 화원에서 꽃을 보고 방으로 돌아온 뒤, 더욱 아무 흥도 없고 무기력하여 스스로 가라앉힐 수가 없었다. 이에 규방의 사모함을 한 벌의 사곡(詞曲)으로 지어, 궁상(宮商)의 음률에 맞추고 현악에 얹어 쌓인 울분을 달랬으니:

십이홍(十二紅)

「산파양(山坡羊)의 곡조에 맞추어」 은빛 병풍에 기대어 거닐며 깊이 생각하다, 문득 두 사람이 서로 기대는 장면이 떠오르네. 나는 일찍이 그가 누구인지도 몰랐거늘, 그는 이미 놀라며 기뻐하면서도 겸손히 사양하였다네.

「오경전(五更轉)의 곡조에 맞추어」 몰래 살피고 세세히 알아보건만 왕래가 없었거늘. 어찌하여 하루아침에 하늘에서 내려온 듯 나타났는가. 마침내 스스로 친척인 척 가탁하여, 꽃처럼 웃는 얼굴로 마주하였구나.

「원림호(園林好)의 곡조에 맞추어」 젊고 어린 나이에, 어깨까지 드리운 긴 머리카락. 자태는 날아갈 듯 가볍고, 분 바른 향기로운 얼굴.

「강아수(江兒水)의 곡조에 맞추어」 혐의와 원망을 조금도 피하지 않고. 동생이니 오빠니 부르며, 그저 철없는 어린아이로 여겼다네.

「옥교지(玉交枝)의 곡조에 맞추어」 아버지를 속이고 어머니를 달래어, 그 영리한 마음속에 불량함을 감추었거늘. 정을 부려 곧장 심장에 파고드니, 어찌 눈이 상하고 눈썹이 찡그려지는 것을 돌아보겠는가.

「오공양(五供養)의 곡조에 맞추어」 한때 내 마음이 흔들림을 비웃었건만, 일찌감치 그들을 원앙(鴛鴦)으로 인정하고 말았다. 둘이 함께. 이미 금슬(琴瑟)을 함께, 세세히 궁상(宮商)을 가려내었다네. 설령 이별의 노래가 울려 퍼진다 해도, 나뉘기를 원하지 않으리라.

「호저저(好姐姐)의 곡조에 맞추어」 어리석게도 함께 노래 부를 것을 바랐건만, 아, 잠깐 사이에 꽃은 달아나고 버들은 바빠졌다네.

「옥산퇴(玉山頹)의 곡조에 맞추어」 동쪽 집은 귀양가 흩어지고, 또 일찍 서쪽 집은 장애에 올라탔네. 떠돌며 정처가 없으니, 솜털처럼 뒤숭숭하다. 그의 종적이 누구 곁에 있는지 알 수 없구나.

「포자최(鮑者催)의 곡조에 맞추어」 그의 성씨가 당(唐)임을 기억하며, 몇 번이나 그 이름이 향기롭기를 바랐는가. 시서(詩書)는 행장(行藏)을 저버리지 않으리라 믿건만.

「천발탁(川撥桌)의 곡조에 맞추어」 비록 음신(音信)이 끊겼다 해도. 이 은정(恩情)을 어찌 차마 잊겠는가, 나는 다만 마음을 굳게 잡아야 하리, 나는 다만 마음을 굳게 잡아야 하리.

「가경자(嘉慶子)의 곡조에 맞추어」 설령 이 생에 저버린다 해도 무방하리라, 비화음(飛花吟)을 단랑(檀郎)으로 여기겠노라. 비화영(飛花詠)을 단랑으로 여기겠노라. 온 세상 홀로 바라보더라도, 오직 그 하나만을 인정하리라.

「요요령(僥僥令)의 곡조에 맞추어」 꽃을 꽂아도 헛되이 눈물만 흐르고, 거울 앞에서도 단장이 이루어지지 않는다. 풍월(風月)이 아름다운들 누가 감상하러 가겠는가, 차갑고 쓸쓸히 한평생을 보내기로 각오하였노라.

「미성(尾聲)」 이 한 몸이 이미 구슬처럼 받들어졌건만, 어찌하여 또 사람을 장사 지내는 일이 생기는가, 결국 하늘의 뜻을 물어봐도 알 수 없구나.

  창 소저가 일시에 다 짓고 나서, 다시 종이에 옮겨 적어 스스로 여러 번 읽었다. 그리고 생각하기를: 「우연히 이것을 지었건만, 정과 말이 너무 드러나 있어 규중 여자의 일이 아니로다. 만약 남에게 유출된다면 어찌 흠 없는 데 티가 아니겠는가?」 없애 버리려 하다가 또 생각하였다: 「지금은 쓸 곳이 없더라도, 훗날 만나게 된다면 이것으로 그리움이 있었음을 증거할 수 있으리라.」 마침내 종이를 방승(方勝) 모양으로 접어 함 안에 잘 간직하고, 잠시 이에 대한 이야기를 접어 두겠다.

  한편 봉의(鳳儀)와 왕 부인(王夫人)은 병마에 쫓기어 각자 목숨을 피하다가 어느덧 소저와 헤어지고 말았다. 왕 부인은 여러 차례 대성통곡하며 사람을 시켜 찾아보았으나 아무런 소식이 없었다. 그러다 주(周) 총병(總兵)이 군사를 이끌어 난병을 평정하고 사방이 안정되었다는 소식을 들은 뒤에야, 봉의는 비로소 왕 부인과 함께 유림역(榆林驛)을 향해 길을 떠났다. 가는 길 내내 외롭고 처량하여 마음이 몹시 언짢았다.

  얼마 지나지 않아 유림역에 도착하였는데, 초가집 두 칸에 불과하고 벽도 허물어져 있었다. 봉의 부부가 이른 지 반나절이 지나도록 마중 나오는 사람이 보이지 않더니, 한참 후에야 거지처럼 보이는 서너 명이 걸어 나왔다. 봉의를 보더니 머리를 조아리며 말하였다: 「소인들이 노야(老爺)께서 멀리 오신 것을 알지 못하여 여러 사람들에게 알리지 못하고, 마중하는 데 소홀함이 있었사옵니다. 다만 노야께서 어찌하여 이 황량하고 고된 곳에 오셨는지 여쭙고자 하옵니다. 더욱이 이 역(驛)이 수리되지 않아 노야께서 어찌 이 고생을 견디시겠사옵니까?」 봉의가 말하였다: 「나 봉의는 어사(御史)의 자리에 있다가 권간(權奸)을 거슬러 죽어야 마땅하였소. 이제 황상(皇上)의 큰 은혜로 이 역승(驛丞)으로 강등되었으니 만행(萬幸)이오. 역지(驛地)가 비록 발 붙이기 어렵더라도 신하로서 당연히 맡은 직분이거늘, 어찌 고생이란 두 글자를 입에 올려 성상(聖上)의 은혜를 저버리겠소. 다만 여러분에게 부탁하여 쑥대라도 가져다 비바람이나 막을 수 있으면 충분히 감사하겠소이다.」

말을 마치고 곧 은자(銀子) 얼마를 꺼내어 그 몇 사람에게 주었다. 이 사람들은 봉의의 말을 들으니 도리에 밝고 인정에 가깝고 또한 잘난 체하지 않는다 하여, 모두 그를 공경하고 가엾이 여겼다. 마침내 여러 사람들에게 알려 모두 와서 역 안을 수리하였다. 며칠이 지나지 않아 말끔하고 깔끔하게 단장되어 봉의 부부가 그곳에 자리를 잡았다. 봉의가 덕(德)으로 이 완고한 백성들을 감화시켰기에 이 역에서 아무 탈 없이 지낼 수 있었다. 바로 이러하도다:

역린(逆鱗)을 건드려 간신을 제거하다 죽을 뻔하였건만, 유배를 내려 주신 것도 성군(聖君)의 은혜로다. 다만 외로운 충심이 부질없이 억눌리어, 다시 임금의 문 앞에 엎드릴 수 없음이 한(恨)스럽구나.

  봉의와 왕 부인은 잠시 역에서 어렵게 지내게 되었으니, 잠시 이에 대한 이야기를 접어 두겠다.

  한편 단창(端昌)은 부모를 모시고 부임지에 온 뒤, 날마다 서당에서 글을 읽고 문장을 짓는 것으로 일을 삼았다. 부친 단거(端居)는 또 때때로 수재(秀才)들의 월과(月課) 문장을 보내어 단창에게 비평하게 하였다. 단창은 마음에 드는 문장을 추려 다섯 권을 비평하면서 말하였다: 「이 다섯 사람은 이번 과거에 반드시 합격할 것이오.」 부친도 그 말에 따라 다섯 사람에게 통보하였다. 이 다섯 사람은 들으면서도 훈장의 으레 하는 칭찬이려니 하여 마음에 두지 않았다. 그러나 향시(鄕試)의 방이 붙고 나니, 과연 다섯 사람 모두 합격하였다. 이로써 이 다섯 거인(擧人)이 문장으로 알아봐 주었음에 감사하여, 모두 진심으로 단거를 스승으로 섬겼다. 그리하여 말하였다: 「문생(門生)들이 북쪽으로 올라가 연이어 과거에 급제한다면, 반드시 스승께서 오래 굴욕당하지 않도록 하겠나이다. 문생 일동이 힘을 다하여 스승의 □이 되어 감정의 은혜에 보답하겠사옵니다.」 후일 과연 그 보답이 있었다니, 이는 뒷이야기이다.

  한편 이때 단창은 이미 열여섯 살이 되어 점차 성장하고 있었다. 지금 관아에 머물며 비록 단거의 가르침을 받아 친자식과 다름없이 지내고 있었으나, 지난 일과 앞날을 생각하면 자주 몰래 울적해졌다. 늘 생신 부모를 그리워하였으니, 지금 변방에 계시어 얼굴을 볼 수 없었다. 또한 당씨(唐氏) 집 부모께서 나를 어찌 깊이 대해 주셨건만 은혜를 갚지 못하였다고 생각하였다. 이로부터 가슴속이 근심으로 가득 차 책도 제대로 읽히지 않아, 날마다 흐리멍덩하고 답답하게 지냈다. 나가서 기분을 풀고 싶어도 부친의 관위(官威)에 누가 될까 두려워, 오직 서재 안에서 답답하게 앉아 있을 뿐이었다.

  어느 날 문득 관원이 편지 한 통을 들고 들어오니, 단거가 뜯어 보자 왕 상서(王尙書)의 공자가 지은 몇 편의 문장으로, 스승에게 비평을 구하는 것이었다. 단거가 한 번 훑어보고는 서재로 걸어 들어가 아들에게 건네며 말하였다: 「이 몇 편의 문장은 왕 공자가 보내온 것이니, 자세히 칭찬하는 말 몇 마디를 써 주면 내가 사람을 시켜 보내겠다.」 단창이 받아 천천히 살펴보다가 뒤쪽에 이르자 경서(經書)의 제목이 하나 있었다. 단창이 그 제목을 보니, 바로 시경(詩經)의 두 구절이었다: 「기견군자(旣見君子), 불아하기(不我遐棄).」(이미 군자를 만났으니, 나를 멀리하지 마소서.)

  단창이 문득 이것을 보자, 지난날 봉씨 소저가 하였던 말이 바로 떠올라 참지 못하고 길게 탄식하며 말하였다: 「이 아름다운 인연이여, 천장지구(天長地久)하기를 바랐건만, 소저께서 깊은 정으로 약속을 맺어 주시고 또 큰어머니께서 혼인을 허락해 주셨으니, 장성하면 훌륭한 부마가 될 수 있으려니 하였소. 그런데 내 팔자가 기구하여 갑자기 흉액을 만나, 무슨 원한으로 나를 죽이려 하였는지 알 수 없고, 당씨 집 부모 슬하에 있었다면 소저가 비록 경성에 계시더라도 어떤 구실을 만들어 얼굴이라도 볼 수 있었을 텐데, 뜻밖에 이곳에 흘러들어와 만날 길도 없고, 지금은 또 이름까지 바꾸어 관산(關山)이 멀리 가로막히니 정말이지 대문이 바다처럼 아득하구나.」 또 생각하기를: 「내가 변을 당한 일은 분명 경성까지 전해졌을 것이다. 혹시 소저께서 들었다면, 나의 그 소저는 영리한 마음에 분명 수없이 뒤척이셨으리라. 내가 반드시 죽었을 것이라 여기신다면, 소저의 그 의협스럽고 열렬한 성품으로 나를 위하여 아침저녁으로 슬피 우시다가 憔悴하여 돌아가실 수도 있다. 만약 그런 일이 생긴다면, 내가 아직 구차하게 살아 있으면서 도리어 먼저 소저를 죽음으로 이끄는 것이 아닌가?」 또 생각하기를: 「내 큰어머니야 그를 지극히 사랑하시어 백 번이라도 달래시며 죽음에 이르지 않게 하시겠지만, 소저의 심사는 말하기 어려운 것이어서 유순한 정이 말없이 쌓이면 반드시 나를 위하여 허리가 여위어 가실 것이다.」

  단창은 이런 생각에 이르러 눈물이 흘러내렸다. 문득 한 번 쓰러져 평상에 엎드려 주먹을 치며 울음소리도 나오지 않았다. 마침 서동(書童)이 보고 얼른 안으로 들어가 노야께 아뢰었다: 「상공(相公)께서 서재에서 몇 편의 문장을 보시다가 갑자기 크게 우십니다. 소인이 무슨 까닭인지 알지 못하여 특히 알려 드리러 왔사옵니다.」 이씨(李氏)가 얼른 단거와 함께 서재로 들어가 보니, 과연 단창이 평상에서 얼굴을 가리고 슬피 울고 있었다. 이씨가 평상 앞에 다가가 그를 어루만지며 말하였다: 「아이야, 어찌하여 이토록 슬퍼하느냐? 무슨 일이 있으면 나에게 말하여라.」 단창은 부모가 모두 앞에 있음을 보고 급히 일어나 벌벌 떨며 감히 소리도 내지 못하였다. 단거와 이씨가 거듭 물어도 그는 그저 얼버무릴 뿐이었다.

  단거가 크게 화를 내며 말하였다: 「너는 날마다 성현의 시서(詩書)를 읽으면서, 어찌 감히 부모 앞에서 이렇게 숨기는 것이냐, 이것을 효도라 하겠느냐? 설령 생신 부모를 그리워한다 해도 솔직히 말하면 될 일이거늘, 이렇게 뒤에서 앞에서 울고 불고 하는 것이 무슨 꼴이냐!」 단창은 이 말을 듣고 얼른 무릎을 꿇으며 말하였다: 「소자가 어찌 부모님 앞에서 말하지 않을 수 있겠사옵니까. 다만 그 안에 실로 숨은 사정이 있어 말씀드리기 어려울 따름이옵니다.」 이씨가 그를 일으켜 세우며 눈물을 닦아 주며 말하였다: 「아야, 하고 싶은 말을 바로 하여라. 부모 된 자로서 마땅히 너를 위해 처결해 줄 것이다. 어찌 울어서 몸을 상하게 하느냐.」

  단창은 어쩔 수 없이 봉 소저와 종신토록 약속을 맺었던 일, 그리고 봉 소저가 인용하였던 시가 오늘 우연히 눈에 띄어 감회가 일었던 일을 자세히 이야기하였다. 그리고 말하였다: 「소자에게 다른 뜻은 없사옵니다.」 단거가 말하였다: 「그렇구나. 그러나 내 생각에 이 아름다운 인연은, 왕 부인과 소저가 이미 이토록 재주를 아끼고 가까이 여기는 마음이 있으니, 이 혼인은 자연스럽게 이루어질 것이다. 다만 봉 공(鳳公)의 가문이 매우 높으니, 데릴사위는 허락하지 않을지도 모른다. 지금 아이가 봉 소저의 그 맹약을 생각한다면, 다만 시서(詩書)에 힘써 위로 나아가기를 구해야 할 것이다. 요행히 한 번 급제한다면, 그때 봉 공에게 직접 청하면, 더욱이 안에 이미 약속이 있으니 허락하지 않을 리 없을 것이다. 지금 헛되이 그리워한들 무슨 소용이 있겠느냐?」 단창이 부친의 말을 듣고 매우 이치에 맞다 여겨, 비로소 기쁜 마음이 생기며 말하였다: 「부친의 가르침이 매우 정확하옵니다. 소자가 어찌 따르지 않겠사옵니까!」 마침내 다시 즐겁게 책을 읽게 되었으니, 잠시 이에 대한 이야기를 접어 두겠다. 바로 이러하도다:

  말없이 묵묵히 일을 마음에 품은 채, 헤어진 그날부터 지금까지.   갈대꽃 핀 밝은 달밤은 어디에 있는가? 다만 시름 속 꿈속에서나 찾을 수밖에 없도다.

  한편 변방의 수비 장수 가운데 성은 상(常)이요 이름은 용(勇)이라 하는 이가 있었는데, 총병(總兵)으로서 천웅관(天雄關)을 지키며 주중문(周重文)과 동료 사이였다. 두 곳의 병마가 서로 호흡을 맞추어 유사시 서로 지원하며 각자 방어지역을 지켰다. 이 상용(常勇)은 조정 내관(內官) 조길상(曹吉祥)이 총애하는 인물이었다. 그리하여 변방을 협수(協守)하게 하고, 공이 있으면 곧 보고하되 모두 자기 공으로 냈다. 상용은 이런 든든한 배경을 갖게 되자 위세가 불타올라 각 변경의 무관들이 모두 정성껏 받들어야 하였다. 받들지 않으면 수시로 꾸짖고, 꾸지람을 받아들이지 않으면 곧 조길상에게 알려 강등이나 전출을 시켰다. 무관들이 그의 압제에 시달리는 일이 허다하였다. 오직 이 주중문만은 변경에서 거듭 공을 세워 이름을 날렸기에 위협하기 어려웠다. 그러므로 상용은 도리어 주중문에게 교류를 청하였고, 주중문도 겸손하고 삼가며 그를 대하였다.

  그해 상용은 자기 주인 조길상의 나이가 오십이 됨을 알고 이 기회에 선물을 바치려 하였다. 이미 반년 전부터 사람을 각처에 보내어 예물과 진귀한 완상품을 빠짐없이 두루 구하였으니, 이번에 효성을 다하여 허리에 옥패를 차는 영예를 얻으려 하였다. 오래 준비하여 모든 예물이 갖추어졌건만, 오직 공덕을 칭송하는 수문(壽文) 하나가 빠졌다. 군중(軍中)에 서기(書記)가 있긴 하였지만 모두 도필리(刀筆吏)의 솜씨라 훌륭하게 찬양하지 못할까 두렵고, 다른 이에게 구하려 해도 마땅한 인재가 없었다. 그러다 문득 주중문 군중의 참모 창전(昌全)이 문재(文才)가 박학함을 떠올리고, 사람을 보내어 명첩(名帖)을 전하며 주중문에게 창전을 시켜 대필해 달라 청하는 것이 어떨까 생각하였다. 참으로 묘한 방법이 아닌가? 마침내 사람을 시켜 주중문에게 서신을 보냈다. 주중문이 보고는 곧 뜻을 창전에게 알렸다. 창전이 어찌 감히 사양하겠는가, 마침내 서신을 받아들고 서재로 들어왔다. 이 일로 인하여 인연이 생기게 될 터이니:

  재주 속에 아름다운 자태가 드러나고, 아름다움 속에 재주가 빛을 발하도다.

  뒷일이 어찌 되는지 알지 못하겠거든? 다음 회에서 이야기를 들으시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