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7회 당희요는 고통을 참으며 때로 악한 조카에게 시달리고, 창천우는 무심코 곤경에 빠진 친인을 구하다
사(詞)에 이르기를:
까닭 없이 공허에 떨어졌으니, 어느새 어린 봉황이 되었도다.
어인 일로 또 바람을 따라 실려, 매화삼농(梅花三弄)의 곡이 되려 하는가.
빼앗고 빼앗기어 혼을 놀라게 하니, 다만 딴 세상을 근심하노라.
등불이 불임을 알게 되는 날에야, 비로소 낙엽이 뿌리로 돌아감을 알리라.
「청평락(淸平樂)의 곡조에 맞추어」
이야기하건대, 단거(端居)는 관선(官船)에 거처하니, 직책은 비록 낮으나 법도는 여느 곳과 같았다. 아역(衙役)들이 이씨(李氏)를 내내(奶奶)라 부르고, 단창(端昌)을 공자(公子)라 하였다. 일행은 흥겹게 장강(長江)을 향해 나아갔다. 얼마 지나지 않아 평안히 신유현(新喻縣)에 도착하였다. 일찍이 학중(學中)의 아역들이 나와 맞이하였다. 이튿날 향을 피워 사당에 참배하고, 먼저 현존(縣尊) 및 동료들을 만나 동당주(同堂酒)를 나누었으며, 또 제생(諸生)들의 폐백과 인사를 받아 수일을 분주히 보내고서야 비로소 한가로움을 느꼈다. 이에 서방(書房)을 꾸려 단창을 가르치려 하였다. 뜻밖에 단창은 과연 고독(苦讀)하지 않아도 되는 사람으로, 책을 한 번 훑으면 곧 알아버렸다. 단거는 그 재성(才性)이 범상치 않음을 알고, 다만 초엿새, 열엿새, 스무엿새에 글짓기만 시키고 그 나머지는 그를 내버려 두었다. 또 스스로 헤아리기를, 나이가 점차 들어가니 시문(時文)의 길이 시류에 맞지 않을까 두려웠다. 제생들의 월과(月課) 문장이 있으면 도리어 단창에게 평론하게 하여 등수를 정하게 하니, 제생들이 모두 기쁘게 복종하며 단 선생의 형문(衡文)이 틀리지 않는다고 칭찬하였다. 이는 잠시 접어두고 이야기하지 않으리라.
그런데 이날 당희요(唐希堯)는 아들 당창(唐昌)을 시험장에 들여보내고 자신은 귀가하였다. 오후가 넘어가자 조씨(趙氏)에게 말하였다. "아이가 시험장에서 고생할 테니, 돌아왔을 때 먹을 음식을 좀 마련해 두시오." 조씨는 그가 평소 좋아하는 것만 골라 몇 가지를 준비하여 기다렸다. 그런데 뜻밖에 저물녘까지 기다려도 돌아오지 않았다. 당희요가 말하였다. "오늘 종사(宗師)께서 어려운 제목을 내셔서 아이가 늦는 것이겠지." 이에 들락날락하며 문간에서 끊임없이 바라보았다. 시험에 들어갔던 동생(童生)들이 문 앞을 줄줄이 지나쳐 가는 것이 보였으나, 오직 당창만이 돌아오지 않았다. 당희요는 기다리다 마음이 타서, 두 사동을 데리고 학도(學道) 앞으로 나가 길목에 서서 하나하나 살펴보았으나 당창은 나타나지 않았다.
어느덧 날이 저물어 아내(衙內)에서 포를 쏘아 문을 닫았다. 잠시 후 아문(衙門) 앞이 적막해졌다. 당희요가 말하였다. "우리가 눈이 어두워 그냥 지나쳤나 보오. 아마 지금쯤 집에 와서 저녁밥도 먹었을 것이오." 돌아서 집으로 오니, 대문이 아직 열려 있고 어둠 속에 조씨가 하인 며느리와 함께 문 앞에 서 있었다. 당희요가 급히 물었다. "아이가 돌아왔소?" 조씨가 말하였다. "아직이에요." 당희요가 당황하여 말하였다. "그럼 어디로 간 것이오!" 조씨가 말하였다. "아직 시험장 안에 있는 것이겠지요." 당희요가 말하였다. "내가 학도가 문을 닫는 것을 보고서야 귀가했는데, 어찌 아직도 시험장에 있을 수 있소!" 다급해진 나머지 곧바로 두 사동을 불러 각각 등롱(燈籠)과 횃불을 들게 하여 반밤을 찾아다니게 하였다. 그러나 모두 돌아와 보이지 않는다고 하였다. 당희요는 어쩔 수 없이 조씨와 함께 방으로 들어가 밤새 눈을 붙이지 못하였다.
날이 밝자 사방에 사람을 풀어 찾아보았으나 흔적도 없었다. 조씨가 말하였다. "혹시 아이가 시험장 안으로 들어가지 못한 것은 아닐까요?" 당희요가 말하였다. "무슨 소리요! 내가 분명히 학문(學門)까지 들여보냈는데." 조씨가 말하였다. "아이가 어리고 처음 바깥에 나온지라 길을 몰라, 혹 어느 집에 잘못 들어가 붙잡혀 있는 것인지도 모르오. 어서 방(榜)을 써서 사람을 시켜 사방에 알리면 혹 소식이 있을 것이오. 그렇지 않으면 어찌 하겠소!" 말을 마치고는 아이 이름을 부르며 통곡하기 시작하였다. 당희요도 눈물을 머금고 여러 장의 쪽지를 써서 사람들을 성 안팎으로 내보내 외치게 하였다. 며칠을 계속 외쳤으나 전혀 소식이 없었다. 조씨는 울음을 그치지 못하였고, 당희요도 어찌할 방도가 없었다.
어느 날 문득 당도(唐涂)가 찾아와 당희요를 보며 말하였다. "조카가 듣기에 아저씨 아드님이 시험을 보러 가셨다가 어찌하여 보이지 않게 되었다 하옵니까?" 조씨가 곧 전후 사정을 말하였다. 당도가 웃으며 말하였다. "분명 나이가 어려 길을 잃어 임청(臨淸) 부두로 흘러들어 사람에게 납치되어 팔린 것이겠지요. 어차피 피를 나눈 자식도 아니잖습니까! 숙부, 숙모께서는 울어 무엇 하시겠습니까? 몸 관리가 중요하지요." 조씨는 그 말이 귀에 거슬려 상대도 하지 않고 방으로 들어가 울었다. 당도는 숙부와 숙모 모두 자신을 거들떠보지 않자 그냥 돌아갔다.
얼마 뒤 당도는 사람을 시켜 당희요에게 와 말하게 하였다. "지금 영식(令息)의 소식이 전혀 없으니 슬하가 적막하시겠지요. 종족 중에 가장 가까운 이는 오직 조카 당도뿐이니, 그도 친 가지(親枝)가 됩니다. 그에게 두 아들이 있으니, 그 중 하나를 후사(後嗣)로 삼으시면 세월을 달랠 수 있을 것이옵니다. 더욱이 아들 없이 조카를 세우는 것은 예나 지금이나 상례(常例)이옵니다. 이토록 그리워하고 우시다가 만일 불측(不測)한 일이 생기시면 그때 가서 다툼이 일어날 때 좋지 않은 일이 많을 것이옵니다." 당희요가 말하였다. "내가 듣기로 아들을 세우는 것은 어진 사람을 세우는 것만 못하니, 전에 그 됨됨이를 보면 뒤를 알 수 있소. 지금 내 조카가 비록 친 가지이나, 사람됨이 단정치 못하니 어질지 못함이 분명하오. 지금 이러하니 그 뒤의 사람들도 아마 군계일학이 되지는 못할 것이오. 와서 집안에서 구박받느니, 차라리 단호히 오지 못하게 막는 것이 낫소. 더욱이 내 근골(筋骨)이 아직 건장하니 죽을 처지가 아니오. 당창의 생사도 아직 확실한 소식이 없소. 훗날 집으로 돌아오기라도 하면 그를 어디에 두겠소? 차라리 외로운 처지를 달게 받더라도 결코 남의 짐을 짊어지지 않겠소."
심부름꾼은 말이 먹히지 않자 돌아가서 당도에게 자초지종을 고하였다. 당도는 크게 노하여 욕하였다. "내 저 늙은 개뼈다귀가 내 손에 죽지 않고서는 호한이라 할 수 없다! 남의 피붙이를 날것으로 끌어다 자기 적친(嫡親)으로 삼더니 이미 뒤집어진 것도 모자라서, 지금 그림자도 없어진 마당에 아직도 죽을 마음이 없단 말이냐!" 이에 또 생각하였다. "그의 마음을 죽이는 것도 어렵지 않다. 이렇게 이렇게 하면 되겠구나." 이에 사람들을 시켜 사방에 소문을 퍼뜨리기를, 어떤 사람이 당창이 죽은 것을 보았다고 하였다. 이 소문이 잇달아 전해지자, 당희요와 조씨는 어쩔 수 없이 그것을 사실로 믿고 스님 몇을 불러 초혼(招魂)하고 위패를 세우며 부부가 크게 울었다. 참으로 이러하도다:
살아생전 살 찢기는 사랑을 말하려 말라,
죽은 뒤에도 남은 것은 오직 눈물뿐이로다.
친소(親疏)가 이리 멀리 떨어져 있으니,
이 안의 은의(恩義)는 스스로 알 따름이로다.
당도는 날마다 사람을 시켜 당희요에게 자신의 아들을 후사로 세우라고 말하게 하였다. 이는 잠시 접어두고 이야기하지 않으리라.
그런데 봉의(鳳儀)는 왕 부인(王夫人) 및 소저와 함께 경성에 있어 벼슬이 풍헌(風憲)으로서 제법 위엄이 있었다. 다만 그의 성품이 강직하여, 중관(中官) 조길상(曹吉祥), 석형(石亨) 등이 탈문(奪門)의 공을 믿고 권세를 안팎으로 기울여 충량한 이들을 내쫓고 모함하는 것을 보았다. 봉의는 분기를 이기지 못하여, 이에 십삼도(十三道) 어사(御史)를 규합해 연명(聯名)으로 석형(亨) 등의 불법을 탄핵하였다. 조씨와 석씨가 권세를 가졌으므로 몰래 조칙(詔勅)을 위조하여 봉의 등을 옥에 가두고 금의위(錦衣衛)로 하여금 회심(會審)하여 극형에 처하게 하였다. 다행히 그날 맑은 하늘에 뜻밖에 천둥이 크게 치고 폭우가 쏟아지며 성 안의 나무들이 모두 뽑히어 경사(京師)가 두려움에 떨었다. 그제야 비로소 칙령이 내려 봉의 등을 석방하였다.
조씨와 석씨는 봉의가 수괴(首魁)임을 알고, 봉의를 섬서(陝西) 유림역(榆林驛)의 역승(驛丞)으로 좌천시켰다. 봉의는 旨意가 내려옴을 보고 감히 머뭇거릴 수 없어, 왕 부인과 소저를 데리고 별처럼 밤새 성을 빠져나가 부임하러 떠났다. 자, 이 유림역이라는 곳이 대체 어떤 곳인가? 원래 하투(河套) 사막과 인접한 곳으로 인적이 드물고 성곽도 없으며 인가도 없어, 가옥이라고는 관부(官府) 아문의 몇 칸 초가뿐이었다. 병마가 지나다닐 때면 그냥 달아나기 일쑤였다. 더욱이 이 역승 자리는 감히 하려는 사람이 없었다. 역중에서 접응하는 자들은 무장과 병졸들뿐이었다. 조금이라도 느리면 군정(軍情)을 무시한다 하고, 예물을 갖추지 않으면 죽이겠다 베겠다 하여 원억을 풀 곳도 없었다. 지금 조씨와 석씨 두 사람이 그를 극히 미워하되 대놓고 죽이기는 불편하므로, 봉의를 이 곳 역승으로 귀양 보내어 결국 죽음을 피하지 못하게 한 것이었다. 봉의가 어찌 알겠는가? 다만 천하 어디든 서로 같거니 하여, 설령 좋고 나쁨이 있더라도 이 지경까지는 생각지 못하였다.
봉의가 관문을 나선 지 거의 한 달이 되어, 어느덧 땅은 넓고 사람은 드문 곳에 이르러, 마른 양식을 준비하여 길에서 요기할 수밖에 없었다. 온갖 신고를 다 겪었다. 봉의가 부인에게 말하였다. "나는 조정의 큰 은혜를 입어 간신을 제거하려다 권간(權奸)에게 거슬려 죽을 것을 각오하였소. 그런데 이제 황상의 은혜를 입어 역관(驛官)으로 제수받았으니, 참으로 재생(再生)의 은혜요. 감히 떠돌이의 고단함을 사양하리오. 다만 부인과 아이가 함께 이 고생을 받으니 내 마음이 편치 않소." 왕 부인이 말하였다. "어른께서 어찌 그런 말씀을 하십니까? 부부는 환란 속에서 함께해야 하는 것이 당연한 이치옵니다. 만약 전날 갑자기 불측한 일이 생겼더라면, 아내가 어찌 혼자 살 수 있었겠습니까? 지금 가엾은 것은 계집아이뿐이옵니다. 저를 따라 이 고생을 하게 하여 편안히 거처하지 못하고 이리 유리(流離)하게 하니, 저는 차마 볼 수가 없사옵니다." 말을 마치고 슬며시 눈물을 흘렸다. 소저가 말하였다. "어머니, 그건 잘못 생각하신 것이옵니다. 소녀가 만약 두 어른의 구원이 없었더라면 이미 오래전에 구렁에서 죽었을 것이옵니다. 이제 부모님의 양육의 은혜를 입으니 친부모보다 더하옵니다. 환난이 있어 대신할 수 있다면 그것이 바라는 바이옵니다. 다만 소녀가 한낱 여자아이로 대신할 방도가 없음이 한스러울 뿐이옵니다. 더욱이 아버지께서 나라를 위해 충성을 다하시니, 소녀가 따라다니며 효도를 다할 수 있다면 죽어도 향기롭고 전에 없어졌던 것보다 훨씬 나을 것이옵니다. 부모님께서는 어찌 소녀만 가엾게 여기시옵니까? 소녀를 아프고 가려움도 관계없는 사람으로 보시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봉의와 왕 부인은 그의 이런 굳은 뜻을 듣고 이루 말할 수 없이 기뻤다. 그리하여 비록 길에서 고생하였으나 세 사람이 각자 마음을 편히 하고 행정을 서둘렀다. 그런데 어느 날 오아령(烏鴉嶺)에 이르렀을 때, 홀연 길 위에 남녀가 동서로 도망치는 것이 보였다. 봉의가 이상함을 보고 급히 사람을 시켜 물어보게 하였다. 모두들 말하였다. "어른, 앞에서 병마가 쳐들어오고 있어 나아갈 수 없사옵니다." 봉의가 급히 어떤 병마냐고 묻자, 하인이 말하였다. "모두들 하는 말이, 흑산(黑山) 총병(總兵)이 군량을 착복하여 병마가 고함치다 본관을 죽였다 하옵니다. 일시에 반란이 일어나 아무도 제어하지 못하는지라 사방에서 사람을 죽이고 있사옵니다. 백성들이 해를 입어 달아나고 있사오니, 어른께서도 속히 피하셔야 하옵니다. 목숨이 중하옵니다."
봉의와 왕 부인이 이 말을 듣고 크게 놀라 얼굴빛이 변하여, 급히 수하들에게 피할 길을 찾으라 하였다. 일시에 낯선 길에서 마음이 당황하여 이 피난민들을 따라 어지러이 달렸다. 달리는 사이에 홀연 먼지가 하늘을 뒤덮으며 한 무리의 병마가 쏟아져 나와 보이는 사람마다 베었다. 백성들이 일제히 소리를 지르며 모두 내달리고 각자 제 목숨만 챙겼다. 이때 아이들 울음과 여인들 통곡, 아비를 부르고 어미를 찾는 소리가 한꺼번에 뒤엉키며 밀치고 치이는 통에, 어느새 봉의의 가마 세 채가 두 패로 갈라졌다. 수하들은 어찌 돌아볼 겨를이 있으랴, 두 채를 들고 그대로 날아가듯 달아났다.
얼마 지나지 않아 수 리를 달려 점점 멀어졌다. 하인들이 그제야 감히 발을 멈추고 앞뒤를 살펴보니, 가마 한 채가 이미 없어져 있었다. 급히 소리쳤다. "어른, 큰일 났사옵니다! 가마 한 채가 없어졌사옵니다!" 봉의가 급히 가마에서 나와 보니, 부인의 가마는 있는데 소저의 가마가 보이지 않았다. 부인의 가마 곁으로 가서 발을 들치고 보니, 부인은 이미 가마 안에서 아래턱이 덜덜 떨리며 다만 염불만 외고 있었다. 봉의가 크게 말하였다. "마님, 큰일 났소! 아이를 잃었소!" 부인은 부름을 받고서야 정신을 차리다가, 딸아이가 보이지 않는다는 말을 듣고 대성통곡하였다. "효성스러운 내 아이야, 내가 너를 얼마나 고생시켰냐!" 한 번 숨이 막혀 손발이 얼음처럼 차가워졌다. 봉의가 한참을 불러서야 겨우 깨어났다. 봉의 역시 눈물을 그치지 못하며, 사람을 보내 소저의 행방을 찾아보려 하였으나 누가 감히 목숨을 버리고 가려 하겠는가? 할 수 없이 그만두었다. 이 곳이 오래 머물 곳이 아님을 알고, 모두 함께 달아나 시골 마을에서 하룻밤을 의탁하였다. 잠잠해지기를 기다렸다가 다시 찾으러 가기로 하고, 이는 잠시 접어두고 이야기하지 않으리라.
그런데 봉 소저의 가마는 함께 가던 중, 홀연 피난민들이 앞의 가마꾼을 밀어 넘어뜨려 그 자리에서 밟혀 다쳤다. 뒤의 가마꾼들은 더 이상 들 수 없게 된 것을 보고, 자신들도 목숨을 챙겨야 했으므로 소저를 돌볼 새도 없이 앞으로 달아났다. 소저는 가마 안에서 가마꾼들이 달아나고 부모도 보이지 않는 것을 보고, 일시에 놀라고 당황하여 가마에서 나와 사람들을 따라갔다. 신발이 작고 발이 섬세한 것도 아랑곳없이 그저 어지러이 걸었다. 그러나 사람이 많아 앞으로 나아가기 어려웠다. 얼마 지나지 않아 사람들이 흩어지고 나니, 오직 그 혼자만 황야에 남아 땅에 앉아 울었다. 홀연 또 한 무리의 병마가 달려오다가 한 어린 여자아이를 보고 죽이지는 않았으나, 말 위에 끼워 앉혀 함께 달려가 마을에서 노략질하였다. 다행히 이 병졸이 그가 어리고 모습이 수려한 것을 보고 해치지 않았다. 이에 물었다. "너는 이 고장 사람이 아닌 것 같은데, 어찌 부모와 헤어진 것이냐?" 채문(彩文) 소저가 전후 사정을 설명하였다. 그제야 이 소저임을 알았고, 또 그 아버지가 충신으로 귀양 간 것을 알게 된 이 병졸은 가엾은 마음이 생겨 음식을 보살펴 주었다. 병마가 동쪽으로 가면 동쪽으로 데려가고, 서쪽으로 가면 서쪽으로 데려갔다. 이는 잠시 접어두고 이야기하지 않으리라.
그런데 흑산령(黑山嶺)의 반란 소식이 일찍이 주중문(周重文)에게 보고되었다. 주중문은 보고를 받고 즉시 병마를 점검하여 와서 토벌하려 하였다. 참모 창전(昌全)이 이때 말하였다. "흑산령의 난은 성을 공격하고 땅을 빼앗는 군대가 아니옵니다. 지금 본관을 죽이고 사방으로 흩어져 노략질하니 모이고 흩어짐이 일정치 않사옵니다. 오합지졸이니, 지금 총대(總台)께서 일여(一旅)의 군사를 이끌고 연도에서 칠 수 있으면 치고 달랠 수 있으면 달래어 곳곳에서 진압하시면, 흑산령의 세력이 저절로 고립되어 격문 한 장으로 평정할 수 있을 것이옵니다. 머지않아 공을 이루게 되실 것이옵니다."
주중문은 이를 듣고 크게 기뻐하며 말하였다. "참모의 말이 내 뜻과 깊이 부합하오." 이에 창전을 데리고 함께 군을 이끌어 연도에서 토벌하였다. 투항하는 자는 투항을 받고, 귀순하는 자는 어루만져 곳곳을 평복시켰다. 창전이 또 주중문에게 말하였다. "군중에 투항한 병사 중 민간의 부녀자를 약탈한 자는 숨기지 못하게 하고, 모두 군전(軍前)에 헌납하게 하여 집으로 돌아가게 하는 것이 좋겠사옵니다." 주중문이 즉시 여러 장수에게 전유(傳諭)하였다. "민간의 자녀를 숨긴 자는 참하라." 이윽고 이 귀항한 병사들이 하나하나 내놓으며 감히 숨기지 못하였다. 주중문이 즉시 거처를 심문하여 거민(居民)들에게 알리고 사람을 시켜 찾아오게 하였다.
어느 날 청니파(靑泥壩) 지방까지 추격하였을 때, 한 무리의 난병(亂兵)이 무모하게도 앞으로 나와 싸웠다. 이내 주중문의 강궁경노(強弓硬弩)에 크게 당하여 난병들이 동으로 서로 달아나며 약탈했던 물건들을 모두 내팽개치고 갔다. 군사들이 이를 보고 일제히 다투어 취하려 하였다. 주중문도 단속하지 못하여 크게 노하여 막 호통치려 할 때, 참모 창전이 말하였다. "장수 된 자의 귀함은 병사들이 죽음을 달게 여기게 하는 데 있사옵니다. 만약 아군의 약탈을 군법으로 엄히 다스리면 원망이 생길 것이옵니다. 지금 적이 버린 것을 취하는 것은 무방하옵니다. 금지하는 것은 오히려 원망을 살 수 있으니, 차라리 법을 풀어주어 저들이 죽음을 달게 여기는 마음을 갖게 하는 것이 나을 것이옵니다." 주중문이 이를 듣고 마지못해 그에 따랐다.
창전이 이에 말을 타고 살펴보러 나왔다가, 홀연 한 군졸이 어린 여자아이를 안고 달아나는 것을 보았다. 창전이 보고 급히 외쳐 세우며 말하였다. "장군의 명령에 사람을 데리고 다니는 것은 금지되어 있다! 어기는 자는 즉시 군법으로 다스린다!" 그 군졸은 참군(參軍) 어른이 말하는 것을 보고 주장(主將)에게 고해질까 두려워 이 여자아이를 버리고 달아났다. 창전은 말 위에서 이 어린 여자아이를 보니, 비록 얼굴에 근심이 가득하였으나 삼분(三分)의 아름다움이 배어 있었다. 마음속으로 생각하였다. "이 여자아이는 분명 촌스러운 사람이 아닌데, 내가 구해주지 않으면 반드시 또 다른 사람에게 해를 입을 것이다." 이에 수하에게 분부하였다. "이 어린 여자아이를 데려다 내게 보이라."
창전이 군중으로 돌아오자, 군사가 이 어린 여자아이를 데려와 뵙게 하였다. 창전이 물었다. "보아하니 규중의 귀한 아가씨 같으니 이 변방의 사람은 아닌 듯하구나. 어찌하여 군중에서 부모를 잃은 것이냐? 부모와 고향을 자세히 말하면 사람을 시켜 돌아가게 해주겠다." 이 여자아이는 물음을 받고 급히 무릎을 꿇으며 말하였다. "소녀의 아버지 봉의는 현재 조정에 재임하셨사옵니다. 다만 권간에 거슬려 귀양 보내어져 역관이 되셨고, 부모님을 따라 임지로 가던 중 도중에 흩어져 난군에 사로잡혔사옵니다. 부디 대인께서 거두어 주시면 훗날 보답하겠사옵니다." 창전이 말하였다. "과연 한 분의 귀한 소저이군요. 실례하였소이다." 이내 일어서도록 하여 소저는 곁에 섰다. 창전이 말하였다. "소저의 아버지는 지금 어느 역에 계시오?" 소저가 말하였다. "유림역이옵니다." 창전이 말하였다. "유림역은 여기서 아직 이천여 리나 되고 길도 험하오. 내가 지금 사람을 시켜 돌아가게 하면 어떻겠소?" 소저가 말하였다. "돌아가는 것이야 물론 좋사오나, 전날 흩어질 때 부모님의 생사도 알지 못하고 어디로 표류하셨는지도 알 수 없사옵니다. 또한 길이 멀어 앞길이 험하옵니다. 지금 호굴(虎穴)을 벗어났다 하나 다시 헤아릴 수 없는 못가에 임한 것이옵니다. 부디 대인께서 같은 관리의 정의를 생각하시어 너그러이 거두어 주신다면, 그 의리가 하늘에 닿을 것이옵니다." 말을 마치고 눈물이 흘러내렸다.
창전은 이를 듣고 이루 말할 수 없이 놀랐다. 마음속으로 생각하였다. "이 여자아이가 나이는 어리나 이토록 멀리 내다보는 눈이 있구나." 또 그 말하는 것이 영리하여 매우 측은히 여겼다. 또 생각하였다. "차라리 의녀(義女)로 받아들여 노년을 즐겁게 하는 것이 낫겠다. 다만 그가 마음속에 어떻게 생각할지 모르겠구나." 이에 말하였다. "소저의 생각이 과연 틀리지 않소. 내가 거두어 주는 것은 어렵지 않으나, 다만 내 주장(主將)의 군령이 엄하여 군중에는 부녀자를 데리고 다니는 것을 허락하지 않소. 어기는 자는 군법으로 처벌한다 하였소. 지금 내가 그대를 데리고 간다면, 사사로움이 없는데도 사사로움이 있는 것이 되니 나를 어찌 하란 말이오?"
소저는 그가 사양하며 데려가려 하지 않는 것을 보고, 슬피 울며 뺨에 눈물이 가득하였다. 창전이 말하였다. "그렇다면 좋소! 내게 한 가지 계책이 있어 둘 다 온전히 할 수 있소. 그대가 의(義)를 인정하여 나를 아버지로 모신다면, 비로소 함께 갈 수 있소." 소저는 이를 듣고 크게 기뻐하여, 즉시 창전 곁에 엎드려 사배(四拜)를 드리며 말하였다. "아이가 아버지 대인을 만나 난군 중에서 죽음을 구하시니, 이 은혜와 덕은 실로 재생(再生)에서 나온 것이옵니다." 절을 마치자 창전이 급히 소저를 부축하여 일으키며 말하였다. "내가 아이에게 굴욕을 주려는 것이 아니오. 군중이라 이리할 수밖에 없소이다." 부녀(父女)는 기쁘게 웃었다. 참으로 이러하도다:
잘못 왔나 했더니 도리어 잘못이 아니었고,
하늘의 뜻이 은밀히 보호할 수 있도다.
다만 의녀가 의부(義父)에게 절하는 것으로만 여겼더니,
어느 누가 이 사람이 바로 친 며느리임을 알았으랴.
창전은 봉 소저를 딸로 받아들이고, 또 군중에서 이곳저곳 토벌하고 무마하였다. 얼마 지나지 않아 난군이 모두 평정되었다. 이에 주중문에게 격문을 흑산령으로 보내게 하니, 과연 흑산령의 병장들이 두려워하여 죄를 모두 죽은 본관에게 돌리고 격문에 따라 귀순하였다. 주중문이 귀순을 허락하고 즉시 대열에 편입시켰다. 이에 말방울을 두드리고 사람들이 개선가(凱歌)를 부르며 승전하여 돌아왔다. 창전은 딸을 데리고 와 두씨(杜氏)를 만났다. 다만 이 한 만남으로 인하여 이런 일이 생기리라:
안장을 보고 눈물 흘리며, 만물에 닿아 마음이 상하도다.
봉 소저가 두씨를 만나 또 어찌 되었을지는 알 수 없으니, 다음 회의 이야기를 들을지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