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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회 어진 부모 재주와 용모로 혼인을 맺고 장난기 어린 아이 성정과 정을 함께 부리다

시왈(詩曰):

청려(靑藜)의 아름다움은 하늘에서 나왔거니와, 동관(彤管)의 재주 많음도 우연이 아니로다.

용렬한 풍속에 물들면 늙어서야 배움을 얻고, 향기로운 재주는 어린 나이에 좌중을 놀래킴이라.

만약 백설(白雪)이 날아 용이 된 뒤에라면, 반드시 죽마(竹馬)를 타던 양춘(陽春)의 앞에서 빛을 토하리라.

우연히 한때에 기이하게 만남을 괴이히 여기지 말라, 삼생(三生)의 인연이 원래 아름다운 혼연(婚緣)이었으니.

이야기인즉 전조(前朝) 남직예(南直隸) 송강부(松江府) 화정현(華亭縣)에, 창전(昌全)이라는 수재(秀才)가 있었으니, 자(字)는 천우(天佑)라 하였다. 그 선대는 원래 계주(薊州) 군적(軍籍) 출신이었으나, 부친이 일찍이 효렴(孝廉)에 거(擧)되었으므로 마침내 송강에 입적(入籍)하게 되었다. 이 창전은 어릴 때부터 학당에 들어갔으나, 그 후 부모가 잇달아 세상을 떠나고 가산(家産)이 날로 기울어, 다만 박전(薄田) 몇 이랑만을 남겨 두어, 하인 창검(昌儉)으로 하여금 관리하게 하고 소작료를 받아 글 읽는 비용에 충당하였다. 그 아내 두씨(杜氏)는 매우 어질고 정숙하여, 부부가 함께 살아가는 것이 제법 화목하였다. 마흔 무렵이 되어서야 비로소 아들 하나를 얻어 이름을 창곡(昌谷)이라 짓고 자(字)를 약허(若虛)라 하였다. 이 창곡은 태어날 때부터 얼굴이 봄 눈처럼 희고 몸은 가을 산처럼 빼어나, 포대기에 싸인 때부터 영특함이 남달랐고, 여섯 살이 되자 창전은 속된 선생에게 배워 그를 그르칠까 염려하여 마침내 곁에 두고 직접 가르쳤다. 이 창곡은 천성이 총명하여, 한번 가르치면 곧 알고, 알면 곧 능히 해내었으며, 외운 것은 잊지 않았다. 일곱 살이 되어 사서(四書)를 이미 다 읽었다. 창전이 그 자질이 비범함을 보고 곧 작문(作文)을 지도하였는데, 시사가부(詩詞歌賦)는 아직 가르치지도 않았는데 입을 열면 문장이 이루어졌다.

어느 날 갑자기, 밖에서 떠들썩한 소문이 들려오기를, 오늘 서문(西門) 밖 금향리(錦香裡)에서 성대한 집회가 열려 많은 사람들이 구경을 간다 하였다. 창곡이 이를 듣고는 창검으로 하여금 데려가 달라 졸랐다. 두씨가 말하였다. "집회에는 사람이 많거늘, 너 같은 어린아이를 창검 혼자 어찌 돌볼 수 있겠느냐? 더군다나 창검은 할 일이 있어 너를 데려갈 틈도 없느니라." 창곡은 오로지 가고 싶은 마음뿐이라, 어머니가 보내주지 않는다는 말을 듣고는 눈물을 글썽이며 시름겹고 슬픈 표정을 지었다. 부친이 이 모양을 보고 차마 마음이 아파, 말하였다. "아가, 울지 말거라. 아침 밥을 먹은 뒤에 내가 직접 데려가 보여 주마." 창곡은 아버지가 데려가 주겠다는 말을 듣고는 기쁨에 넘쳐 어머니에게 서둘러 밥 차려 달라 재촉하였다. 두씨가 새 옷 두 벌을 꺼내 갈아입혀 주니, 옥으로 빚은 사람 같이 단장한 창곡이 아버지를 따라 문을 나서 금향리를 향하였다.

길에는 남녀노소 가릴 것 없이 어른 손 잡고 아이 이끌며 집회 구경을 오고 있었다. 창전이 아들을 데리고 여러 사람 틈에 끼어 천천히 걷는데, 겨우 서너 화살 거리를 가지 않아 등 뒤에서 누군가 외쳤다. "천우(天佑) 형, 나도 함께 갑시다." 창전이 돌아보니, 동창(同窓) 벗 주천작(朱天爵)이었다. 창전이 말하였다. "어인 흥으로 형께서도 오셨습니까?" 주천작이 웃으며 답하였다. "좋은 흥취는 남과 함께 나누는 것이거늘, 어찌 소제(小弟)만 없겠습니까?" 그러고는 창곡을 가리키며 물었다. "이 아이가 영공자(令公子)시겠지요?" 창전이 답하였다. "바로 소자(小子)이옵니다. 소자가 보고 싶다 하여 함께 나섰습니다." 그러고는 창곡을 불러 주 아저씨께 읍(揖)하도록 하였다. 창곡이 얼른 나아가 깊이 읍하였다. 주천작이 그 거동의 의젓함과 얼굴의 수려함을 보고 말하였다. "형께서 이런 영특한 아드님을 두셨으니, 훗날 반드시 아버지를 능가하리이다." 두 사람은 담소를 나누며 천천히 걸었는데, 어느덧 멀리서 징과 북소리가 하늘을 울리고, 두 사람은 금향리 장터 안으로 들어섰다.

집집마다 채색 비단을 내걸고 발을 드리웠으며, 수많은 부녀자들이 붉고 푸른 옷차림으로 문전에 서서 집회를 구경하고 있었다. 친척을 집으로 맞아들여 구경하는 이도 있고, 먼 일가친척이 스스로 찾아온 이도 있었다. 그러므로 집집마다 문 앞에는 온통 여인네들이 들어차 매우 북적였다. 또한 허랑방탕한 젊은이들이 끊임없이 오가며, 발 틈새로 훔쳐보거나 누각 위에서 멀리 바라보기도 하였다. 두 사람은 창곡을 데리고 있어 사람들 사이를 비집고 들어가기가 불편하여, 빈자리를 찾아 서려 하였으나 집집마다 가득 찼다. 오직 한 집 문 앞의 처마가 조금 넓어, 그 집 문 앞 죽발(竹簾) 밖에 자리를 잡았다.

잠시 후 거리에 사람들이 물밀 듯 밀려오며 "온다! 온다!" 외쳤다. 한참을 기다리니, 선명한 깃발들이 일진 일대씩 나타나고, 이장(里長)의 사화(社火)가 저마다 이야기 속 인물을 분장하여 춤추며 나왔다. 그 뒤를 수많은 누각 장식이 따르는데, 소동파(蘇東坡)가 적벽(赤壁)을 유람하는 모습을 꾸민 것도 있고, 도연명(陶淵明)이 국화를 감상하는 것도 있고, 장생(張生)이 불전(佛殿)을 유람하는 것도 있어, 구경꾼들이 모두 둘러서서 바라보았다. 주천작이 이를 보다가 갑자기 크게 웃으며 말하였다. "소동파, 도연명이 이런 모습이란 말인가?" 그러고는 문득 입에서 한 구절이 흘러나왔다.

  천고(千古)의 고아한 현인들이, 얼굴 바꾸고 머리 꾸며 속인이 되었구나.

주천작이 막 이 구절을 읊자, 옆에서 듣고 있던 창곡이 곧바로 응답하여 한 구절을 대었다.

  무리 지은 건달들이, 어깨를 으쓱하고 등을 굽히며 재주 있는 선비를 흉내 내는구나.

주천작이 아무 생각 없이 읊은 것인데, 갑자기 창곡이 즉각 대구(對句)를 지어내자 크게 놀라, 창전에게 말하였다. "알고 보니 영공자께서 이렇듯 어린 나이에 이처럼 민첩한 재주를 지니셨군요! 또한 정교하고 확실하기가 오랜 세월 공부한 노선비라도 일시에 이리 짓지는 못할 것이니, 참으로 기이한 동자(童子)로소이다!" 주천작이 막 창곡을 찬탄하고 있을 때, 등 뒤에서 누군가 말하는 소리가 들렸다. "이 대구를 맞추는 것, 그리 어렵지도 않군요." 주천작이 급히 돌아보니, 어른이 아니라 늙은 하인이 어린 여자아이를 안고 발을 걷고 나와 집회를 구경하고 있었다. 다시 그 어린 여자아이를 보니, 나이는 여섯 일곱 살쯤 되어 보이고, 얼굴이 마치 꽃송이 같이 아름다웠다. 주천작이 보고는 놀라는 한편 기쁘기도 하여, 물었다. "꼬마 아가씨, 이 대구 맞추기가 어렵지 않다 하였으니, 어찌 한 구절 대지 않으시렵니까?" 그 어린 여자아이는 당황함이 없이 침착하게 곧바로 입에서 한 구절을 대었다.

  세 집뿐인 시골 촌한(村漢)들이, 눈썹을 그리고 분을 바르며 아름다운 여인 행세를 하는구나.

창전과 주천작 두 사람은, 안겨 있는 어린 여자아이마저 기묘한 대구를 지어냈다는 것을 듣고 크게 놀랐다. 급히 어느 집 아이인지 물어보려 하였으나, 이미 집회 행렬이 지나가고, 그 하인은 여자아이를 안고 발 안으로 들어가 버린 뒤였다. 발 앞으로 걸어가 물어보려 하였으나, 발 안은 온통 내택(內宅)의 여인네들이라 어찌 입을 열겠는가? 발 가에서 머뭇거리고 있을 때, 한 사람이 발 안에서 걸어 나와 두 손을 모아 읍하며 말하였다. "알고 보니 두 분 어른께서 여기 계셨군요."

이 사람이 누구인고 하니, 원래 두 사람의 동학 벗으로서, 성은 단(端)이요 이름은 거(居)이며 자(字)는 무권(無倦)으로, 성 밖에 살고 있었다. 이곳이 바로 그의 자형(姊兄) 댁이었다. 누나가 그를 불러 집회를 보러 오라 하여, 처자식을 데리고 이리 온 것이었다. 그는 발 안에서 이미 한참 동안 지켜보고 있었으나, 두 사람을 안으로 청하기가 불편하여 못 본 척하고 있었다. 그런데 갑자기 그 어린 학생이 민첩하고 정교하게 대구를 짓는 것을 듣고는, 나가서 어떤 사람인지 물어보려 마음먹었다. 뜻밖에 딸 용고(容姑)마저 대구를 하나 지어내되 막상막하이니, 더욱더 기뻐졌다. 또한 주천작이 쉬지 않고 찬탄하는 소리를 들으니, "어찌 일시에 이처럼 재주 있고 아름다운 남녀 아이 한 쌍이 있을꼬, 참으로 기이한 일이로다" 하고 단거(端居)는 기쁨을 이기지 못하여 마침내 발을 걷고 걸어 나왔다.

주천작이 보고서야 비로소 단거임을 알았다. 웃으며 말하였다. "이런 사람 같으니, 어찌 안에 숨어서 한 마디 불러주지 않으셨소?" 단거가 말하였다. "이곳이 우리 자형 댁이라서, 누나가 소제와 계수(季嫂)를 불러 집회를 보러 왔는데, 집회 구경에 정신이 팔려 두 어른을 미처 보지 못하였습니다. 실례, 실례." 주천작이 웃으며 말하였다. "그것은 그렇다 치고, 방금 대구를 지은 꼬마 아가씨는 누구의 따님이오? 어찌 저토록 민첩한 재주를 지녀 사람의 마음을 빼앗을꼬!" 단거가 웃으며 말하였다. "그것이 바로 소제의 딸이오. 장난삼아 지껄인 것이니 어찌 두 어른의 칭찬을 감당하겠습니까." 그러고는 창곡을 가리키며 말하였다. "이 어린 학생이 지은 가구(佳句)야말로 한 글자 한 글자가 구슬이라 할 만하오. 혹시 천우(天佑) 형의 영랑(令郞)이 아니시오?" 창전이 말하였다. "바로 소자(小子)이옵니다. 망언(妄言)으로 추태를 보인 것이니 스스로 부끄러울 따름인데, 이제 영애(令愛)의 묘구(妙句)를 들으니 소제는 더 이상 시를 짓지 못하겠소이다. 소제와 형께서 사귄 것이 얕지 않은데, 이런 규수(閨秀)가 있는 줄은 몰랐습니다. 형은 참으로 잘 감추어 두셨다 하겠소이다."

주천작이 또 물었다. "따님은 올해 몇 살이오?" 단거가 대답하였다. "소제에게는 이 딸 하나뿐이오. 올해 겨우 일곱 살이오이다." 주천작이 또 물었다. "따님은 몇 월 생이오?" 단거가 대답하였다. "삼월이옵니다." 창전이 말하였다. "알고 보니 소자와 동갑이군요. 소자가 영애보다 한 달 위이옵니다." 주천작이 창곡을 가리키며 말하였다. "이런 재주 있는 총각이 있으니, 바야흐로 이런 아름다운 아가씨와 짝이 되어야 마땅하오. 오늘 뜻하지 않은 대구 한 쌍에 천연(天緣)이 크게 드러났소. 더군다나 두 사람의 대구 속에 재주 있는 총각과 아름다운 아가씨가 은밀히 서로 맞아떨어지니, 자연히 좋은 한 쌍이 될 것이오. 이 혼연(婚緣)을 눈앞에서 그냥 지나쳐서는 아니 될 것이오. 내 지금 두 사람이 허락하든 아니 하든 따지지 않고, 기어이 월하노인(月下老人)이 되어 두 사람을 사돈으로 맺어주고자 하오. 어떻소?"

한창 이야기하는데, 또 한 무리의 집회 행렬이 다가와 징과 북소리가 하늘을 울리자, 구경꾼들이 일제히 앞으로 밀려들었다. 행렬이 지나간 후, 단거가 창곡을 데리고 발 안으로 들어가 여러 친척들에게 보여주었다. 여러 친척들은 밖에서 그를 장차 단씨 집안의 사위로 삼겠다는 말이 오간다는 것을 듣고, 저마다 기뻐하며 이씨(李氏)에게 말하였다. "단 아주머니, 이런 훤칠한 사위를 맞게 되셨으니, 아가씨가 이토록 총명한 것이 헛되지 않겠군요. 두 사람을 견주어 보면, 총각은 재주 있고 아가씨는 용모가 고우니, 참으로 옥으로 빚어 만든 한 쌍 좋은 부부로소이다." 그리고는 창곡에게 단 아주머니, 곧 이씨에게 읍하도록 하며 말하였다. "이분이 바로 너의 장모님이시다."

창곡이 이 말을 듣고 공손히 두 번 읍하고, 또 여러 부인들에게도 읍하였다. 여러 부인들이 장난스레 가리키며 말하였다. "이 아가씨가 바로 너의 각시다. 너희 두 사람은 마땅히 서로 인사를 나눠야지." 그리하여 창곡을 오른쪽에 세우고 용고(容姑)를 왼쪽에 세워 두 번씩 읍하게 한 뒤, 나란히 앉혀 발 밖의 집회를 구경하게 하였다. 여러 부인들이 갖가지 다과(茶果)를 가져다 두 아이에게 먹이며, 쉼 없이 단 아주머니 앞에서 창씨 집 학생의 좋은 점을 칭찬하니, 이씨 역시 매우 흡족해하였다.

또 한참을 구경하다 집회가 끝나갔다. 창전이 돌아가려 하자, 단거가 말하였다. "이곳이 저의 자형 댁인데, 소제도 반 주인 노릇은 할 수 있지요. 두 어른께서 잠시 안으로 들어오시겠습니까?" 주천작이 웃으며 말하였다. "형이 지금 훌륭한 사위를 얻었으니, 먼저 중매인에게 기쁨의 술 한 잔 대접하셔야 하지 않겠소?" 그러고는 한 손으로 창전을 잡아끌어, 세 사람이 함께 대청(大廳)으로 들어갔다. 잠시 후 안에서 차를 내왔고, 단거가 곧 하인에게 간단한 술상을 차리도록 분부하였다. 주천작이 물었다. "자형(姊兄) 어른의 성함은 어찌 되시오? 이 자리에 청하여 뵐 수 없겠소?" 단거가 대답하였다. "자형은 성이 백(柏)인데, 초(楚) 땅에서 장사하다 아직 돌아오지 않으셨습니다. 조카가 아직 어려 모시고 함께하기 어렵습니다."

얼마 안 되어 많은 안주가 차려졌는데, 모두 친척들을 대접하려고 준비해 두었던 것이었다. 세 사람이 자리를 잡고 술을 기울였다. 이때 창곡은 이미 안에 있는 부인들에게 붙잡혀 안에서 식사를 하고 있었다. 세 사람이 한참 마시자, 주천작이 말하였다. "우리 세 사람은 모두 동학(同學)으로 실로 남다른 사이이오. 이제 두 분이 사돈을 맺었으니, 이후로는 지친(至親)이 되는 것이오. 내가 중매를 섰는데, 옛말에 이르기를 '아홉 자식도 중매를 잊지 않는다' 하였으니, 앞으로 친우(親友)의 정이 면면히 끊이지 않을 것이오." 창전이 말하였다. "소제의 처지가 한미(寒微)하여, 진실로 어르신 문호(門戶)에 누가 될까 두려워 감히 입을 열지 못하였던 것이오이다." 주천작이 말하였다. "형이 틀리셨소. 예로부터 혼인에 재물을 논하는 것은 군자가 부끄러이 여기는 바이오. 또 이르기를 '잘 시집보내려는 자는 오직 신랑만 본다' 하였소. 이제 영랑이 이런 천재를 지녔으니, 훗날 반드시 구름 사다리를 안정적으로 오르어 우리들을 훨씬 능가할 것이오." 단거가 말하였다. "소제에게는 딸 하나뿐이오. 실로 훌륭한 사위를 가리고자 하였는데, 오늘 다행히 공자(公子)를 만나 대구 한 번에 내가 흠모하고 감탄하게 되었소이다. 훗날 앞날이 넓게 펼쳐질 것은 진실로 주 형(朱兄)의 말씀과 같소이다. 딸이 군자에게 시집갈 수 있게 된다면, 이것이 내가 깊이 바라는 바이오이다."

주천작이 이 말을 듣고 크게 기뻐하며 말하였다. "단 형의 말이 진심에서 우러난 것이니, 한 말씀으로 정하기로 합시다. 창 형은 지나치게 겸손하지 마시오." 또 창전에게 물었다. "형은 혹시 지금 몸에 빙물(聘物)을 지니고 계시오?" 창전이 말하였다. "소제가 우연히 외출하여 실로 지참하지 못하였소이다." 단거가 말하였다. "옛사람은 실 한 가닥으로 정혼을 하였으니, 경중(輕重)이나 다과(多寡)에 있는 것이 아니오이다." 창전이 잠시 생각하다가 말하였다. "소자 몸에 하나 있기는 한데, 빙물로 삼을 수 있을지 모르겠소이다." 주천작이 바삐 물었다. "영랑이 지닌 것이 무엇이오?" 창전이 말하였다. "소자가 지닌 것은 선대로부터 전해온 한옥(漢玉) 한 덩어리인데, 솜씨 있는 장인이 한 쌍의 쌍어(雙魚)로 다듬어 놓은 것이오이다. 소제가 집안의 보물로 간직해 왔던 것인데, 이것으로 정혼의 징표를 삼는다면 좋겠소이까?" 주천작이 말하였다. "이것이야말로 더없이 훌륭한 보물이오. 이런 흠 없는 아름다운 옥이 있으니, 그들 부부가 어수지친(魚水之親)을 이루게 해주는구려. 바로 온교(溫嶠)의 옥경대(玉鏡臺)와도 같은 것이오. 어찌 안 되겠소?" 그러고는 단거에게 말하였다. "형은 들어가서 따님을 데리고 창 학생과 함께 나오시오. 내게 방도가 있소이다."

단거가 안으로 들어가 두 아이를 데리고 나왔다. 창전이 그 딸을 보니, 드리운 비단 같은 머리카락에 좁은 궁혜(弓鞋)를 신어, 매우 사랑스러웠다. 또한 두 아이가 마치 종일 함께 어울려 온 사이처럼 히히덕거리며 웃고 있었다. 주천작이 자리에서 일어나 말하였다. "오늘 영신회(迎神會)가 열리는 날이 바로 길일(吉日)이오. 창 학생으로 하여금 악부(岳父)께 절하게 하고, 단 아가씨로 하여금 공공(公公), 즉 시아버지께 절하게 합시다." 단거가 크게 기뻐하며 급히 전단(氈單)을 가져오도록 하였다.

이때 여러 부인들이 모두 후당(後堂)에서 지켜보고 있었다. 잠시 후 붉은 담요를 깔자, 주천작이 두 아이를 이끌어 창전에게 사배(四拜)를 올리게 하고, 또 단거에게도 사배를 올리게 하였다. 그러고는 창곡의 허리에서 옥어(玉魚)를 풀었다. 과연 옥의 빛깔이 영롱하고 제작이 정교하였다. 그것을 단거에게 건네주니, 단거가 보고는 비록 옥 한 덩어리이나 이미 비목어(比目魚) 두 마리로 만들어져 있었다. 감탄하며 찬탄하였다. "참으로 세가(世家)의 옛 물건이로다. 이것을 얻으면 연성(連城)의 보물 못지않겠구나." 주천작이 다시 받아 용고(容姑)에게 건네며 말하였다. "쌍어로 정혼을 정하였으니, 너희 두 사람이 훗날 화목한 가정을 이루고 자손이 번성하여, 금장자고(金章紫誥)의 봉작(封爵)을 받도록 하여라." 그러고는 두 아이가 서로 마주 사배를 올리게 하고, 또 안으로 들어가 장모와 아주머니들에게도 절하게 하였다.

절이 끝나자 창곡이 비로소 밖으로 나와 자리에 앉아 술을 마셨다. 한쪽은 훌륭한 사위를 얻었고 한쪽은 아름다운 며느리를 맞게 되었으니, 두 사람 모두 크게 기뻐하며 주천작의 중매 공을 감사하였다. 두 사람이 서로 사돈이라 부르며 또 한참을 더 마시다가, 해가 이미 기울어짐을 보고 창전과 주천작이 비로소 단거와 작별하고, 아들을 데리고 성 안으로 향하였다. 반쯤 와서 창전이 또 주천작과 헤어져, 아들과 함께 천천히 집으로 돌아왔다. 두씨를 보고는 아들의 정혼 일을 처음부터 끝까지 소상히 알렸다. 두씨도 매우 기뻐하였다. 이로부터 창씨와 단씨 두 성(姓)이 자녀 간의 혼인을 맺어 더욱 친밀하게 왕래하였다. 명절마다 예물을 보내고 받으며 왕래가 끊이지 않았으니, 이에 대해서는 더 이상 기술하지 않겠다. 참으로:

  생전에 연꽃이 나란히 피었을 터이니,

  오늘에야 쌍어로 옥전(玉田)에 씨 뿌렸도다.

  어찌하여 만나자마자 세 가지 약속을 맺었는고,

  성패(成敗)로써 정연(情緣)을 희롱하려 함이로다.

각설하고, 이때 천하가 비록 전성기라 하나 다만 변강(邊疆)에 양장(良將)이 없어, 마침내 군위(軍威)가 떨치지 못하고 병마(兵馬)가 부족하여 조정이 매우 근심하고 있었다. 각신(閣臣)이 대사마(大司馬)와 의논하여 말하였다. "지금 변방 장수들이 거듭 긴급 문서를 보내어 병력과 장수를 더 보내달라 청하고 있습니다. 만약 장재(將才)를 선발하고 장사(壯士)를 모집하려 하면, 한편으로는 천하를 소란하게 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세월을 허비하여 급한 사태에 대응하지 못할 것이오이다. 지금의 계책으로는, 역년간(歷年間) 군적(軍籍)에서 도망한 자들을 잡아오는 것이 최선이니, 수만에 이르는 그들을 다시 군오(軍伍)에 편입하여 변방을 지키는 데 쓴다면, 병력을 수고롭게 하지 않고도 변경을 영구히 굳게 지킬 수 있을 것이오이다." 조신(朝臣)들이 모두 옳다 하였다. 대사마 왕상(王常)이 곧 이름을 내어 상소를 올려, 상소문 안에 상세히 조목조목 진술하였다. 천자가 보고 용안(龍顏)이 크게 기뻐하며 말하였다. "사방의 쓸모없는 도망자들로써 구변(九邊)의 왕가(王家) 정예 병사를 충원하다니, 참으로 적절하도다." 마침내 이를 비준하여, 담당 관리들로 하여금 헤아려 시행하도록 하였다.

담당 관리들이 성지(聖旨)를 받들어 지체할 수 없어, 곧 도망한 군적(軍籍)을 조사하여 밤새 문서를 작성하고, 사람을 파견하여 역체(驛遞) 기관에 내려 보내어 해당 문서에 따라 각 부(府) 주(州) 현(縣)으로 신속히 전달하여 잡아 올려 보내도록 하였다. 역승(驛丞)이 이것이 성지를 받든 긴급 군사 사안임을 알고 감히 한 시각도 지체할 수 없어, 곧 성(省)에서 부(府)로, 부에서 현(縣)으로 문서가 눈처럼 내려왔다. 이미 문서가 송강부(松江府)에 당도하였다. 부사(府使)가 부문(部文)을 다 읽고는 즉각 초출(抄出)하여 밤새 각 현에 내려보냈다. 화정현(華亭縣) 현관(縣官) 정정거(丁廷舉)가 문서를 받아보니 도망한 군사를 잡아 오는 엄중한 사안이라, 곧 문서에 적힌 성명에 따라 따로 패표(牌票)를 발부하여, 사람을 나누어 각 도(圖) 각 리(里)로 파견하여 추적하였는데, 이에 대해서는 더 이상 기술하지 않겠다.

각설하고, 창전은 단거와 혼약을 맺은 뒤로 며느릿감이 이토록 재주 있음을 기뻐하며, 전심으로 창곡을 훈도하여 빨리 성취하기를 바랐다. 마침내 집 안에 서재를 하나 마련하여 서당을 열었는데, 인근 이웃들이 그가 학식이 깊음을 알고 너나할 것 없이 앞다투어 아들을 보내어 배우고자 하였다. 창전이 여러 차례 사양하다가 겨우 네 명의 학생만을 남겨 창곡과 함께 글을 읽게 하였다.

어느 날 이른 아침, 창전이 아직 자리에서 일어나지 않았을 때, 두 명의 청의(靑衣) 차림 사람이 일찍감치 문을 두드렸다. 창검이 문을 열고 물었다. "두 분은 무슨 일로 이리 일찍 오셨소?" 두 차인(差人)이 말하였다. "우리는 대감 어른의 분부를 받들어, 댁의 상공(相公)께 드릴 말씀이 있어 왔습니다." 창검이 이 현의 대감께서 보내신 차인임을 알고 감히 소홀히 할 수 없어, 급히 맞아들이며 말하였다. "우리 상공께서는 아직 주무시니, 두 분은 잠시 앉아 계시오. 제가 들어가 알려드리겠습니다." 두 사람이 대청 손님 자리에 앉자, 창검이 방문 밖으로 다가가 낮은 소리로 말하였다. "밖에 차인 두 명이 왔는데, 현의 대감께서 보내신 분들로 상공을 뵙고자 한다 하며 대청에 앉아 기다리고 있습니다."

창전이 갑자기 이 말을 듣고 생각하였다. "이 또한 이상한 일이로다! 나는 학궁(學宮)에 들어간 이래 공당(公堂)에 발길을 한 번도 한 적이 없고, 또 공사(公事)에 관련된 일도 없는데, 이 정 어버이(父母官)께서 어찌하여 나를 부르시는 것인고?" 그러고는 말하였다. "나가서 회답하기를, 상공은 공문(公門)에 일이 없고, 또 통가(通家)의 세의(世誼)도 아니며 사우(師友)의 교분도 없으니, 가도 되고 안 가도 되는 것이다. 만약 반드시 만나고자 하신다면 이른 아침 당(堂)에 앉으실 때 가겠다 하여라."

창검이 어쩔 수 없이 나가 차인들에게 전하였다. 차인들이 말하였다. "대감께서 즉시 만나시기를 기다리시니, 빨리 들어가 말씀드리시오." 창검이 다시 들어와 말하자, 두씨가 말하였다. "대감이 일현(一縣)의 부모관이신데, 이미 사람을 보내어 청하셨으니, 반드시 의논할 일이 있으실 것이오. 당신도 너무 고집 피우지 마시고 만나보면 어떻겠소? 찾아오신 뜻을 거스르는 것은 좋지 않을 것 같소이다."

창전이 이를 듣고 어쩔 수 없이 일어나 세수하고 빗질한 뒤, 대청으로 나가 두 사람을 만났다. 두 손을 모아 읍하며 말하였다. "정 어버이께서 무슨 일로 소제를 만나고자 하시는지, 두 분이 이리 일찍 수고를 하셨구려." 차인들이 그가 현내에 이름난 수재임을 알고 대번에 얼굴빛을 바꾸기 불편하여, 앞으로 나아가 말하였다. "대감께서 어려운 소송 사건이 있어, 오래전부터 상공이 학식이 깊다는 말씀을 들으시고 한번 만나보시고자 합니다. 지금 대감께서 후당에 앉으시어 즉시 뵙기를 기다리고 계십니다." 창전이 이를 듣고 말하였다. "그렇다면 잠시 들어가 의복을 갈아입고 함께 가겠소이다." 차인들이 말하였다. "그것까지는 하지 않아도 됩니다. 대감께서 지금 후당에 계시니 평상복 차림으로 만나보셔도 무방합니다." 창전이 말하였다. "관장(官長)을 만나는데 어찌 이렇게 할 수 있겠소? 예복으로 갈아입고 가야 마땅하오."

차인들이 그가 안으로 들어가려는 것을 보고 바삐 막으며 말하였다. "상공은 들어가지 않으셔도 됩니다. 만약 더 늦어지면 저희가 문책을 받을까 두렵습니다." 창전이 그들이 이처럼 다급해함을 보고 물었다. "대체 댁의 대감께서 무슨 일로 나를 만나고자 하시는 것이오?" 차인들이 말하였다. "일이 있든 없든 저희는 알지 못합니다. 상공이 만나보시면 자연히 아시게 될 것입니다." 창전은 어쩔 도리가 없어 차인들을 따라 문을 나섰다. 이 한 번 나섬으로 인하여:

  화복(禍福)은 순식간이요, 이별(離別)은 눈 깜짝할 사이로다.

현관을 만나보면 과연 어찌 될 것인지? 다음 회를 보면 알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