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화선

글자 크기

읽기 모드

제1회 매화를 보러 도원에 자리를 차지하고, 묵란을 그려 규방 처자에게 아호를 내리다

사(詞)에 이르기를:

공자(公子)는 진릉(秦陵)에 타향살이를 하다가, 마침 남국의 가인(佳人)을 만났네.

간신의 원한 품은 참소가 끼어들어, 원앙 한 쌍의 정다운 진을 흩어 놓았도다.

천지가 뒤집히고 세상이 뒤바뀌어, 때마침 무도한 혼군(昏君)을 만났구나.

열녀(烈女)의 선혈이 부채 위에 남아 있어, 서진관(棲真觀) 안에서 마음 따라 살아가네.

《서강월(西江月)》

이야기는 명(明)나라 숭정(崇禎) 말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그 무렵 한 선비가 있었으니, 성은 후(侯), 이름은 방역(方域), 자(字)는 조종(朝宗)이라 하였으며, 하남(河南) 귀덕부(歸德府) 출신이었다. 대대로 관료 집안을 이어온 문벌 세가(世家)로, 조부는 태상(太常)을 지냈고, 부친은 사도(司徒)를 역임하였다. 그 용모의 빼어남은 과일을 던지며 구경하는 이가 수레를 가득 메울 정도요, 그 재주의 드넓음은 일곱 걸음 만에 시를 짓는 일도 거뜬히 당해낼 만하였다. 다만 이자성(李自成)의 도적 떼가 횡행하는 통에 남쪽 과장(科場)에서의 시험이 불운하게도 낙방으로 끝났다. 전쟁의 봉화가 아직 가라앉지 않으니, 물가에 몸을 의탁하여 호숫가에 임시 거처를 마련하고, 날마다 오직 시를 짓고 술을 마시며 스스로를 달래었다. 책 읽는 틈을 타 책을 쓰다듬으며 스스로 탄식하기를: "나 후조종은 나이 벌써 약관(弱冠)인데, 타향에서 글을 읽어도 공명(功名)을 이루지 못하고, 고향은 아득히 멀며, 게다가 마음에 드는 여인도 없고 좋은 인연도 맺지 못하였도다. 이를 생각하니 길게 탄식하지 않을 수가 없구나!" 다행히 의흥(宜興)의 진정생(陳定生)과 귀지(貴池)의 오차미(吳次尾)가 결사(結社)의 벗으로서 채익(蔡益)의 서점 안에 함께 기거하여, 때때로 왕래하니 쓸쓸하지만은 않았다.

어느 날, 일찍이 진(陳)·오(吳) 두 벗과 함께 치성(冶城) 도원에 가서 매화를 보기로 약속하였다. 때마침 날씨가 맑고 화창하여, 옷을 갈아입고 일찍 길을 나섰다. 이에 글 시중드는 아이를 불러 거처를 지키게 하고, 자신은 문밖을 나서 치성 도원으로 향하였다. 보니 푸른 풀이 하늘에 넘실거리고 녹색 버드나무가 온 땅을 뒤덮었으며, 놀러 나온 사내들과 아낙들이 삼삼오오 각기 맑은 술을 가지고 와 즐기지 않는 이가 없었다. 한창 구경하던 중, 문득 누군가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후 형, 약속을 지키는 사람이라더니, 과연 일찍 오셨군!" 조종이 고개를 들어보니, 진·오 두 사람이었다. 서로 읍(揖)을 올리며 인사를 나누었다. 조종이 차미에게 물었다. "차 형, 유적(流賊)의 소식을 아시오?" 차미가 답하였다. "어제 저보(邸報)를 보니, 유구(流寇)가 관군을 잇달아 패퇴시키며 점점 경사(京師)를 압박하고 있다오. 저 영남후(寧南侯) 좌량옥(左良玉)은 아우와 세의(世誼)를 맺은 사이요 또 마음을 터놓은 벗인데, 지금은 이미 군대를 거두어 양양(襄陽)으로 돌아갔다 하니, 중원에 사람이 없는지라 대세는 물어볼 것도 없소이다!" 세 사람이 함께 길게 탄식하였다. "이리도 험악한데, 어느 날에야 평정이 되겠는가?" 진생(陳生)이 두 사람에게 말하였다. "평정이 언제 될지는 모르되, 봄빛은 참으로 사람의 마음을 끄는구려. 우리 이 흥을 타서 일단 유람이나 하세!" 세 사람이 나란히 치성 도원을 향해 걸어가던 중, 홀연 진씨의 글 시중 아이가 허겁지겁 달려와 아뢰었다. "여러 상공(相公)님들, 가실 것 없습니다! 지금 위 공자(魏公子)와 서 공자(徐公子)께서 손님들을 초청하여 꽃 구경을 하고 계시느라 큰 도원 전체가 이미 꽉 찼으니, 돌아가십시오!" 세 사람이 이 말을 듣고 흥이 꺾여 걸음을 멈추고 서성거렸다. 참으로:

도원(桃源)으로 가는 길은 남들이 먼저 차지하였고,

선경(仙境)과 인연이 없으니 우선 돌아가야 할 운명이로다.

세 사람이 글 시중 아이의 말을 듣고 갈 곳을 잃어버렸다. 후조종은 오래전부터 가인을 찾아보려는 마음이 있었던 터라, 진·오 두 사람에게 말하였다. "이런 상황이니, 우리 함께 진회(秦淮)의 수루(水樓)에 가서 미인을 찾아봄이 어떻겠소? 그것도 꽤 흥미롭지 않겠소? 두 형의 생각은 어떠시오?" 오차미가 말하였다. "멀리 갈 것 없소. 형께서 아시오? 태주(泰州)의 류경정(柳敬亭)이 이야기를 잘하기로 유명하여, 일찍이 오교(吳橋)의 범 대사마(范大司馬)와 동성(桐城)의 하 노상국(何老相國)에게 높이 평가받은 이라오. 듣자니 그가 이곳에 머무르고 있다 하는데, 함께 가서 한번 들어보는 것이 어떻겠소?" 조종은 이 말을 듣고 빼기며 불쾌한 기색을 보이며 말하였다. "저 유마자(柳麻子)는 환관의 잔당인 완호자(阮鬍子)의 식객(食客) 노릇을 하고 있소. 그런 자의 이야기는 듣지 않아도 그만이오!" 차미가 말하였다. "형이 아직 모르시는군요. 완호자는 그물을 빠져나간 여생을 보내면서도 물러나 숨으려 하지 않고, 저 바짓가랑이 안에서 여전히 노래하는 기녀(妓女)를 두고 조정의 사람들과 사귀고 있소. 소제가 《진도방란(晉都防亂)》이라는 격문(檄文) 한 편을 지어 그 죄를 공개적으로 성토하였소. 그 무리 가운데 최(崔)·위(魏)의 한 패거리라는 것을 알게 된 문객들은, 이야기가 채 끝나기도 전에 옷자락을 떨치고 모두 흩어져 버렸다오. 이 유마자도 그 가운데 있었으니, 어찌 존경할 만하지 않겠소?" 조종이 이 말을 듣고 깜짝 놀라며 말하였다. "아, 이런 무리 중에도 호걸이 있었군, 마땅히 가서 사귀어 봐야겠소!" 이에 집안 아이에게 길을 안내시켜 다 함께 류마자의 집으로 향하였다.

문 앞에 이르러 집안 아이가 문을 두드리자, 저 류마자가 문을 열고 보니 진정생(陳定生) 등 세 상공이었다. 이에 집 안으로 청하여 차례로 자리를 정하고 물었다. "이분은 누구신지요, 뵌 적이 없는 얼굴이군요?" 오차미가 말하였다. "이분은 하남(河南)의 후조종으로, 지금의 명사(名士)이시오! 오래전부터 청담(淸談)을 흠모하여 특별히 가르침을 받으러 왔습니다." 류마자가 말하였다. "당치 않습니다, 당치 않아요! 상공들께서는 모두 글 읽는 군자(君子)로 널리 두루 알아 모르는 것이 없으신 분들인데, 오히려 이 늙은이의 속된 이야기를 들으러 오셨다니!" 세 사람이 말하였다. "지나치게 겸손하실 것 없습니다. 한 수 가르쳐 주시길 청합니다!" 류마자가 이에 말하였다. "이렇게 왕림해 주셨으니 노한(老漢)도 감히 사양하기 어렵습니다만, 다만 연의(演義)의 빈 말들이 귀에 들어오기 어려울까 걱정됩니다. 어쩔 수 없으니, 상공들께서 읽으신 《논어(論語)》 한 장을 이야기하겠습니다." 이에 탁자를 가운데로 옮기고, 손에 북채와 목탁을 들고, 《대사지적제(大帥摯適齊)》 한 장을 처음부터 끝까지 이야기하였다. 진정생이 말하였다. "참으로 훌륭하오! 요즘 시험 강의가 어찌 이처럼 통쾌할 수 있겠소? 진정 절묘한 기예로다!" 차미가 말하였다. "경정(敬亭)이 이제 막 완 씨 집안을 나와서 다른 주인을 찾으려 하지 않으니, 그래서 직접 몸으로 법(法)을 보여주는 것이라오." 후조종이 말하였다. "내가 보기에 경정은 인품이 고결하고 흉금이 활달하여, 우리 무리 중의 사람이라오. 이야기는 그의 여기(餘技)일 뿐이오!" 경정이 여러 사람의 칭찬을 듣고 몸을 일으켜 말하였다. "노한(老漢)의 변변치 않은 이야기인데, 터무니없는 칭찬을 받으니 부끄럽습니다, 부끄러워!" 조종이 다시 경정에게 물었다. "어제 완 씨 집에서 함께 나온 분들이 몇이나 되셨습니까?" 경정이 답하였다. "가운데 분들은 다들 흩어졌고, 오직 노래를 잘하는 소곤생(蘇昆生)만이 이웃에 머무르며 지금 청루(靑樓) 원내에서 노래를 가르치고 있습니다." 조종이 원내에서 노래를 가르친다는 말을 듣고 마음이 일찌감치 움직여, 다시 경정에게 말하였다. "이 사람도 꼭 찾아뵙고 싶은데, 부디 안내해 주시길 바랍니다!" 말을 마치고, 세 사람이 경정에게 작별을 고하고 한번 읍을 올린 뒤 흩어졌다. 이 후조종은 속으로 청루를 찾아가겠다는 뜻을 세웠으나, 다만 경도(京都)에서 어느 곳이 제일가는 집인지 알 수가 없었다.

이야기인즉, 도성의 두 진회(秦淮)는 한 굽이 양쪽 강가 모두 버드나무 거리요, 화려한 누각이 즐비하여, 연화(煙花) 풍월의 집들이 가득 자리하고 있었다. 그 가운데 한 포주(鴇主)가 있었으니, 성은 이(李), 표자(表字)는 정려(貞麗)라 하였으며, 연화계의 오묘한 부문에서 풍월의 우두머리였다. 양딸 하나를 길러내었는데, 나이 겨우 열여섯으로, 온화하고 가냘프며 작아서, 이제 막 자개로 장식된 연회 자리를 함께하기 시작하였을 따름이요; 부드럽고 어여쁘며 수줍음이 많아, 아직 연밥 장막 안에는 들어가지 않은 몸이었다. 비록 청루에 있었으나 아직 동정(童貞)을 지키고 있었으며, 게다가 천성이 정절(貞節)하고 착하여 결코 가볍게 손님을 만나지 않았다. 이곳에 파직된 현령(縣令)이 하나 있었으니, 양문총(楊文驄)이라 하고 표자는 용우(龍友)로, 봉양(鳳陽) 독무(督撫) 마사영(馬士英)의 매부(妹丈)였으며, 일찍이 바짓가랑이 안에 사는 완대성(阮大鋮)과 의형제를 맺은 사이였다. 원래 이정려와는 옛 친분이 있어 때때로 원내를 드나들었다. 정려의 딸이 매우 빼어남을 보고, 어느덧 처녀 때를 다 채울 나이가 되었으되 아직 장식해 줄 이가 없었는지라, 늘 마음을 써서 대신 젊고 재주 있는 선비, 풍류스러운 사내를 구하여 데려다 단장해 주려 하였으니, 이는 말할 나위도 없었다. 지금 봄빛이 화창하여 용우는 한가한 참에 이정려의 집에 가서 한담으로 무료함을 달래려 하였다. 문 안으로 들어가 보니, 원내에서 (여럿이) 환히 웃으며 술을 마시고 있어 진한 봄빛이 원 안 가득하여 참으로 황홀하였다. 이에 소리쳤다. "정려 언니, 집에 있소?" 정려가 부르는 소리를 듣고 양용우임을 알아보니, 옛 친분이라 이내 딸의 규방 다락 위로 청하였다.

용우가 다락 위로 올라와서 사방 벽에 수없이 많은 시편(詩篇)을 바라보고 막 감상하려 할 때, 마침 정려의 딸이 아침 화장을 막 마치고 요염하게 앞으로 걸어와 만복(萬福)의 인사를 올렸다. 용우가 정려에게 칭찬하며 말하였다. "따님을 며칠 못 봤더니, 더욱 빼어나졌소!" 아직 자리도 잡기 전에 다시 벽을 바라보며 "칭찬이 틀리지 않았소." 왼쪽 시 조각을 보다가 놀라며 말하였다. "장천여(張天如)·하이중(夏彝仲) 같은 이름난 분들도 모두 제목을 써 주었으니, 소관(小官)도 화운(和韻) 한 수를 지어야겠소." 종이와 붓을 가져다 잠시 읊조리다가 다시 말하였다. "당해 내지 못하겠으니, 그냥 숨기겠소. 잠시 묵란(墨蘭) 한 폭을 그려 흰 벽을 꾸미겠소!" 또 오른쪽에 남전경(藍田敬)이 그린 주먹 크기의 괴석(怪石)을 보고는 말하였다. "이건 명인(名人)의 그림이니, 내가 돌 옆에 쓰면 그의 배경이 되어 돋보이겠구나." 잠시 후, 묵란을 다 그리고 정려에게 물었다. "따님의 아호(雅號)가 무엇이오? 낙관(落款)을 써야겠소." 정려가 웃으며 말하였다. "나이가 어려 아직 아호가 없으니, 양 나리께서 두 글자를 내려 주시길 바라옵니다." 용우가 잠시 생각하다가 말하였다. "《좌전(左傳)》에 이르기를: 난초는 나라의 향기가 있다고 하였으니, 그냥 향군(香君)이라 부름이 어떻겠소?" 정려가 말하였다. "참으로 훌륭합니다, 양 나리께 감사드립니다!" 용우가 또 웃으며 말하였다. "이제 다락 이름도 생겼소이다." 이에 낙관을 쓰기를: "숭정(崇禎) 계미년(癸未年) 중춘(仲春), 우연히 매향루(媚香樓)에서 묵란을 그려 향군의 미소를 얻고자 하노라. 귀주(貴州) 양문총(楊文驄)이 쓰다." 정려와 향군이 일어나 감사를 드리며 말하였다. "그림과 글씨 모두 훌륭하니, 쌍절(雙絶)이라 할 만합니다! 이 좋은 그림이 있으니, 이 누각이 빛을 발하게 되었습니다!" 이에 사람을 시켜 술상을 마련하여 용우와 함께 봄 경치를 감상하며 즐겼으니, 이에 대해서는 더 이야기하지 않겠다.

이야기인즉, 용우가 마침 다락 위에서 술을 마시며 이야기를 나누는데, 홀연 다락 아래에서 누군가 혼잣말하는 소리가 들렸다. "나는 완 씨 집을 나온 뒤, 차라리 기녀관에 들어와 이 미인의 교사(敎師) 노릇을 하는 것이, 저 의자(義子) 노릇하고 빌붙어 사는 것보다 낫지 않겠는가! 참으로: 한가로이 취관(翠館)에서 앵무새를 길들이고, 게을리 붉은 대문 앞에서 모란꽃을 구경하노라. 오늘은 노래곡(歌曲)을 연습시킬 날이니, 다락 위로 올라가야겠다." 다락 위로 올라오다가 용우를 보고 놀라 말하였다. "양 나리께서 여기 계신 줄 몰랐으니, 영접하지 못하여 죄송합니다, 죄송해요!" 용우가 소곤생(蘇昆生)임을 알아보고 이내 놀라 물었다. "그대가 완 씨 집을 나온 뒤 그동안 어디 계셨소? 오랫동안 가르침을 받지 못하다가 오늘 이렇게 만나게 되니 정말 다행이오, 다행이야!" 이에 서로 예를 갖추고 자리를 권하였다. 자리에 앉자, 용우가 물었다. "곤생은 어떻게 짬을 내어 여기서 한가롭게 노시오?" 곤생이 채 대답하기 전에, 정려가 곧 용우에게 말하였다. "이분은 본원(本院)에서 청하여 소녀에게 노래를 가르치러 오신 소 선생으로, 이미 보름이 넘었습니다." 용우가 이 말을 듣고 말하였다. "따님이 참으로 절세의 국색(國色)인데, 다시 곤생이 노래와 사곡(詞曲)을 가르쳐 기예를 익히게 되었으니, 이름난 기녀가 되는 것은 걱정이 없겠소." 다시 곤생에게 말하였다. "이리도 훌륭한 제자를 얻게 된 것을 축하하오, 참으로 경하(慶賀)드립니다! 묻겠소, 곤생이 전하는 것이 어떤 곡사(曲詞)이오?" 곤생이 말하였다. "옥명당사몽(玉茗堂四夢)입니다." 용우가 다시 물었다. "얼마나 익혔소?" 곤생이 말하였다. "《모란정(牡丹亭)》을 반절 익혔습니다." 이에 향군에게 말하였다. "양 나리께서 계신 이 기회에, 나와 함께 불러서 지도를 받아 보거라!" 향군이 곧 의자를 옮겨 곤생과 가까이 앉아, 배운 곡사를 하나하나 노래하였는데, 하나도 흠잡을 데가 없었다. 그 양용우를 기쁨이 가득한 얼굴로 만들어, 정려에게 말하였다. "따님이 아주 영리하여, 목소리와 용모가 모두 빼어나니, 만약 장식해 줄 이가 나타난다면 참으로 재자가인(才子佳人)이요, 천생연분의 배필이 될 것이오!" 이에 곤생에게 말하였다. "어제 하남(河南) 사도공자(司徒公子) 후조종을 만났소. 주머니가 제법 두둑하고 재주 있는 풍류남아(風流男兒)로, 나이 스물한 살인데, 바로 여기서 이름난 기녀를 물색하는 중이라오. 곤 노형은 아시오?" 곤생이 말하였다. "그분은 저희 고향의 세가(世家) 자제로, 과연 재자(才子)이시지요." 용우가 말하였다. "어제 우연히 따님의 혼사 이야기가 나왔을 때, 조종이 무척 마음이 움직이는 듯하였는데, 정 낭자(貞娘)가 맞아들일 생각이 있는지 모르겠소?" 정낭이 말하였다. "그런 공자(公子)가 와 주신다면 더할 나위 없이 좋은데, 어찌 싫다고 하겠어요? 양 나리께서 최선을 다해 이 일을 성사시켜 주시길 바라며, 그리하시면 당연히 감사드리겠나이다!" 용우가 이 말을 듣고 매우 흡족하였다. 다시 몇 잔을 마신 후, 이내 일어나 향군과 곤생에게 작별을 고하고 다락을 내려가 버렸다. 정낭은 자기 방에 더 머물며 가볍게 술을 마시며 봄빛을 즐겼다. 곤생도 자기 방으로 돌아갔다. 참으로:

원 안 가득 버들꽃이 발(簾) 앞에서 춤을 추고,

한 잔의 향기로운 술은 맛이 유독 오래도록 남누나.

후생(侯生)과 향군이 언제가 되어야 만날 수 있을지는, 다음 회에서 알 수 있으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