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지막 이틀
영수증 서류 묶음을 한 아름 안고 내 자리로 돌아왔다. 제일 먼저 한 일은 손에 든 그 기묘한 물병을 서랍에 집어넣는 것이었다. 정말로 이 물을 다른 사람에게 줄 생각인가? 그렇게 하지 않으면 이틀 후에 죽는 건가? 그리고 내 생의 마지막이 이 자리에 앉아 영수증을 확인하는 것인가. 무기력하게 고개를 내저으며 첫 번째 서류를 집어 들었다. 어쩔 수 없었다. 일은 해야 했다.
오전 내내 단순하고 지루한 일만 반복했다. 저 허황된 일들은 더 이상 생각하지 않으려 했는데 그때 뒤에 앉은 여자 동료 두 명의 잡담 소리가 들렸다. "나 모레 휴가야. 이틀만 더 있으면 안 봐도 되겠다." 막 조금 풀렸던 신경이 다시 한번 팽팽해졌다. 두 동료는 계속 얘기했다. "그럼 이 마지막 이틀, 유언이라도 남길 말 없어? 하하." 더 이상 듣고 싶지 않아 시계를 보니 이미 점심시간이었다. 서둘러 자리에서 일어나 이 숨막히는 사무실 건물을 피해 나왔다.
점심은 무엇을 먹을지 생각하며 바지 주머니의 핸드폰이 갑자기 진동했다. 꺼내 확인하니 또 스팸 문자였다. 스팸 문자는 정말 불쾌한 것인데 이 문자는 특히 더 불쾌했다. "스포츠 속보: XX 대 XX, 마지막 이틀의 생사결." 습관적으로 발신자를 차단하고 문자를 삭제했으며 마지막엔 아예 핸드폰 전원을 꺼버렸다. 이 스팸 문자 때문에 식욕이 완전히 사라졌다. 목적 없이 거리를 걷기 시작했다.
"지지직——" 갑자기 옆에서 짜증스러운 소음이 들렸다. 고개를 돌리니 길가의 한 상점이 외부 스피커를 켜고 있었다. 잡음이 한차례 이어지더니 스피커가 거의 내 귀를 먹먹하게 할 정도의 음량으로 시작됐다. "마지막 이틀. 마지막 이틀. 재고 처분. 전 상품 반값. 마지막 이틀. 마지막 이틀……"
이 소리에 머리가 울렸다. 서둘러 귀를 막고 최대한 빨리 그 자리를 벗어났다. 스피커는 쉬지 않고 반복 재생되며 이틀밖에 안 남았다는 것을 알려주고 있었다.
10분 넘게 걸어 시끄러운 번화가에서 벗어나 공사현장 근처에 이르렀다. 식당도 없고 찐빵 노점 하나만 있었는데 노점 앞에 낡은 골판지가 비스듬히 세워져 있었다. '15원에 한 상자, 한 상자에 10개'라고 씌어 있었다. 가격이 저렴해 근처 일용직 노동자들이 주로 먹는 곳이었다. 식당 갈 기분도 아니었던 터라 한 상자 사서 앉아 점심을 해결했다.
"딸랑딸랑딸랑, 딸랑딸랑딸랑."
막 앉자마자 등 뒤에서 갑자기 방울 소리가 들렸다.
몸을 돌려 보니 방울이 달린 검은 곱슬머리 개 한 마리였다. 개 몸에는 먼지가 잔뜩 묻어 있었고 앞발 하나가 없어 걸음걸이가 좌우로 기울었다. 목의 방울이 계속 울렸다.
찐빵 노점 주인이 개가 오는 것을 보고 찜솥에서 찐빵 하나를 꺼내 던져줬다. 개는 뜨거운 것도 아랑곳 않고 바로 고개를 박고 먹기 시작했다.
"주인장, 개한테 귀한 물건 주시네요." 옆에서 찐빵 먹던 젊은 일용직 노동자 하나가 주인에게 농담을 건넸다.
찐빵 노점 주인이 한숨을 내쉬었다. "어느 집에서 버린 개인지, 요즘 맨날 이 주변을 돌아다니네요. 오늘 도시관리원한테서 전화가 왔는데 여기에 유기견이 있는지 확인하는 거였어요. 이틀 안에 사람을 보내 잡아갈 것 같아요. 잡혀가면 이 개는 살기 어려울 텐데. 에이, 나도 어떻게 할 방법이 없고, 마지막 이 이틀간 배라도 실컷 먹이자, 잘 먹고 가야 하니까요."
노점 주인의 이 몇 마디를 들으니 목이 꽉 막힌 것 같아 입에 물었던 찐빵이 삼켜지지 않았다.
젊은 일용직 노동자가 또 말을 시작했다. "에이, 이 개도 정말 불쌍하다. 축 늘어진 저 눈꺼풀 좀 봐, 자기도 오래 못 살 것 같다는 걸 아는 것 같다."
"그러면 먼저 네 자신이나 불쌍히 여겨," 다른 늙은 일용직 노동자가 말했다. "우리 이거 며칠째 일 못 하고 있잖아. 원청이 도망갔다는 소문이 있는데, 이 공사 흐지부지될 것 같아. 그러면 우리 밀린 일당을 못 받을 수도 있는데, 너 그러면 살아나갈 수 있어? 주머니 뒤져봐, 돈이 얼마나 남았어? 너하고 이 개 중에 누가 먼저 가는지 모르겠다."
"빌어먹을! 그 사람들이 감히 내 일당을 안 줘!" 젊은 일용직 노동자가 갑자기 욕을 퍼부었다. "우리 아빠가 맨날 집에 돈 보내라고 하시는데 엄마 입원비가 다 떨어졌다고. 우리 엄마는 이 병 퇴원하면 바로 죽는데, 이 살릴 돈을 그 사람들이 감히 때먹어?"
늙은 일용직 노동자가 고개를 가로저었다. "원청이 도망갔으면 누구 돈도 못 받아. 걔는 네 일당 걱정이고 나발이고 없어."
젊은 일용직 노동자는 들을수록 더 화가 났다. "걔가 내 일당 안 주면 나 가서 목숨 걸고 싸울 거야. 나 못 살게 하면 걔도 못 살게 해."
늙은 일용직 노동자가 또 고개를 저었다. "걔가 도망갔는데 어디 가서 찾아?"
젊은 일용직 노동자가 이를 악물며 이 사이로 또 한마디를 쥐어짰다. "그러면 나 그냥 길에 나가서 아무나 찔러 죽이겠어. 어차피 이런 개 같은 삶도 지겨워. 한 명 죽이면 본전, 두 명 죽이면 이득!"
목소리는 크지 않았지만 온몸이 떨렸다. 슬쩍 이 사람을 봤다. 몇 분 전만 해도 강아지를 보며 마음이 따뜻한 사람이었는데 지금은 눈이 벌겋게 충혈된 흉악한 모습이었다.
다 먹지도 않고 서둘러 남은 찐빵을 들고 도망치듯 사무실로 돌아왔다.
사무실로 돌아와 자리에 앉아 한참 진정한 뒤에야 컴퓨터를 켜고 단조로운 업무를 계속했다. 영수증을 하나씩 시스템에 입력했다. 컴퓨터 화면을 올려다보는 순간 화면에서 이상한 것이 나타나 온몸의 털이 곤두섰다.
화면은 여전히 그 화면, 윈도우 시스템도 정상으로 돌아가고 있었다. 하지만 오른쪽 아래 시계 부분에 나타난 것은 48:00:00이었다.
오늘 이전의 그 '마지막 이틀'들은 그래도 우연이라고 스스로를 달랠 수 있었다. 이 컴퓨터 시간은 정말 설명할 방법이 없었다. 지금 머릿속이 하얀 채 이 48:00:00을 똑바로 바라봤다. 얼마나 오래 바라봤는지 갑자기 이 숫자들이 움직였다. 47:59:59.
가슴이 또 한번 떨렸다. 47:59:58, 47:59:57……카운트다운이 시작됐다. 벽의 괘종시계를 보니 지금은 오후 2시 10분쯤이었다. 딱 어제 인피해골이 집에 와서 내 죽을 날을 선고한 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