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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6회 남경성에서 군신이 도망쳐 흩어지다 서진관에서 부부가 재회하다

이야기인즉, 남경의 홍광황제(弘光皇帝)는 옹립된 이래 날마다 마(馬)·완(阮)의 참소에 귀를 기울이며 훈풍전(薰風殿) 안에서 연극을 보고 노래를 가르치며 조정은 날로 어지러워졌다. 그런 줄도 모르고 진(鎭)을 이동시켜 강을 막다가 북쪽 군사가 빈틈을 타 강을 건너 회수(淮水)를 쳐들어와 양주를 포위하게 하였고, 사가법(史可法)은 밤새 급보를 올렸지만 인심은 흉흉하였다. 남경의 신민(臣民)은 모두 지킬 의지가 없었고, 마사영(馬士英)과 완대성(阮大鋮)은 숨어 종적이 없었다. 홍광이 훈풍전에서 연극을 보다가 홀연 북쪽 군사가 강을 건너 곧 남경성 아래에 이를 것이라는 소식을 듣자, 온몸이 부들부들 떨리고 손발을 어찌할 바를 몰랐다. 급히 사람을 시켜 등불을 끄게 하고 보따리를 챙겨, 빈비(嬪妃)를 이끌고 성문을 빠져나가 몰래 달아났다. 마사영은 천자가 달아났다는 말을 듣고 역시 즉시 귀중품을 챙겨 가솔을 데리고 도망쳤다. 그런데 뜻밖에 몽둥이를 든 난민 한 패를 만나 그들이 크게 소리쳤다. "간적 마사영이 백성을 궁핍하게 하고 재물을 탕진해 놓더니, 오늘 부녀자를 데리고 재물을 싸 들고 어디로 도망가려느냐?" 일제히 몽둥이를 들어 때려눕히고, 부녀자를 빼앗고 재물을 약탈하여 뿔뿔이 흩어졌다. 사영이 땅에 엎드려 있는데, 완대성도 말을 타고 날듯이 달려오다가 사영이 땅바닥에서 신음하는 것을 보고 물었다. "노 상국(老相國)은 아직도 도망치지 않고 여기서 무엇을 하십니까?" 사영이 말했다. "난민들이 가솔과 재물을 빼앗아 가고, 맞아서 쓰러져 움직이지 못하고 있소!" 대성이 말했다. "큰일이다! 만생(晩生)의 가솔과 행장이 뒤에 있는데, 저들에게 빼앗기지 않았는지 돌아가서 맞이해야겠소." 막 몸을 움직이려 하는데, 난민들이 몽둥이를 들고 부녀자를 밀고 짐을 들어 오며 말했다. "이것은 완대성의 가산인데, 방금 빼앗아 왔으니 다들 나눠 가집시다!" 대성이 듣고 급히 소리쳤다. "이런 대담한 놈들, 어찌 우리 완 나리 가산을 빼앗느냐?" 여러 사람이 말했다. "당신이 바로 완대성이오? 딱 잘 됐다!" 몽둥이 한 방에 때려눕히고 옷을 벗기며 말했다. "목숨이나 살려주어라. 빨리 계아항(雞鵝巷) 고자항(褲子襠)으로 가서 이 두 사람의 집을 불태워라." 하고 와르르 흩어졌다.

마·완 두 사람은 하나는 허리를 다치고 하나는 팔뚝이 부러져 모두 일어나지 못하고 있었다. 위급하고 어려운 처지에 있을 때, 마침 양문총(楊文驄)이 말을 타고 왔다가 두 사람을 보고 말에서 내려 물었다. "두 분은 어찌하여 이 지경에 이르셨소?" 두 사람이 말했다. "난민들에게 모조리 빼앗기고 겨우 목숨만 건졌소." 문총은 사람을 시켜 옷을 가져다 두 사람에게 입히고 말했다. "마침 한가한 말 한 필이 있으니, 두 분이 같이 타고 성을 나가 목숨을 부지하시오!" 두 사람은 말에 올라 떠났다. 문득 구백문(寇白門)·정타낭(鄭妥娘)도 날듯이 달려가는 것이 보였다. 양문총이 보고 말했다. "두 분도 궁에서 도망쳐 나온 것이오? 향군(香君)은 어찌 보이지 않소?" 두 사람이 말했다. "그는 발이 작아 걸을 수가 없어서 가마 한 채를 세내어 먼저 갔소." 홀연 어떤 사람이 외치는 소리가 들렸다. "양 나리, 북쪽 군사가 강을 건너 쳐들어오고 황제께서 달아나시어 궁인들이 다 흩어졌습니다!" 용우(龍友)가 고개를 들어 보니 심공헌(沈公憲)·장연예(張燕銳) 두 사람이었다. 과연 그렇다는 것을 확인하고는 옷을 갈아입고 여러 사람과 함께 진회(秦淮)를 향해 왔다.

향군의 문 앞에 이르러 용우가 문을 두드리니, 남영(藍瑛)이 문을 열고 보더니 용우를 보자 급히 불렀다. "향군, 빨리 나오시오, 양 나리가 오셨소!" 향군이 양용우를 보자 인사도 채 나누지 못하고 급히 물었다. "양 나리, 후 낭군의 소식을 아시나요?" 용우가 미처 답하기도 전에 소곤생이 급히 앞으로 나오며 말했다. "향군이 나왔소?" 향군이 물었다. "소 사부(蘇師父)께서는 어디서 오셨소? 후 낭군을 보셨나요?" 곤생이 말했다. "저는 후생이 옥에 갇히자, 특별히 무창(武昌)으로 달려가 좌 영남(左寧南)에게 구해달라 하였습니다. 영남이 중도에 갑자기 죽어, 어쩔 수 없이 경성으로 돌아왔습니다. 홀연 이 소식을 듣고 급히 옥 앞으로 찾아가 보니, 옥문이 활짝 열려 있고 죄수들이 사방으로 흩어져 있었으나, 어찌하여 후생이 돌아오는 것을 보지 못했는지요?" 향군이 말을 듣고 크게 통곡하며 그치지 않았다. 용우와 여러 사람이 한바탕 위로하고 여러 사람과 작별하여 고향으로 돌아갔다. 향군이 이에 곤생에게 말했다. "지난번에 사부를 만 리 길에 수고롭게 하여 후 낭군을 찾아 돌아오셨지만 제가 이미 궁에 들어가 있었고, 오늘 궁에서 나왔는데 후 낭군을 또 만나지 못하네요. 다시 한번 사부의 자비를 바라오니, 저를 이끌어 이곳저곳을 찾아다니셔서 후 낭군과 만나게 해주시면 제가 마음을 놓겠습니다!" 곤생이 말했다. "이 난리통에 어디로 가면 좋을지 모르겠소." 남영이 말했다. "성 동쪽 기하산(棲霞山)은 인적이 드물고, 금의위(錦衣衛) 장요성(張瑤星)이 이곳에 와서 출가하였으니, 후 상공이 혹 이곳으로 피란을 왔을 수도 있소. 나는 요성을 스승으로 삼고 싶은데, 함께 가지 않겠소? 혹여 천연(天緣)이 맞아 후생을 찾을 수도 있지 않겠소? 두 분의 생각은 어떠하오?" 곤생과 향군이 함께 일리가 있다 하여, 이에 짐을 꾸려 함께 기하산으로 왔다.

한편, 후조종(侯朝宗)은 진정생(陳定生)·오차미(吳次尾)·류경정(柳敬亭) 세 사람과 함께 옥에서 도망쳐 나와 강을 따라 달아갔다. 마침 각자 흩어져 도망갈 방향을 의논하고 있는데, 한 노인이 비틀거리며 날듯이 달려오는 것이 보였다. 여러 사람이 물었다. "노형은 어디로 가시려오?" 노인이 말했다. "저는 기하산으로 가서 숭정황제를 위해 불사를 드리러 갑니다. 당신들은 어디로 가시오?" 여러 사람이 말했다. "우리는 경성에서 도망쳐 나와 이 분을 강 건너로 모시고 가려 했는데, 지금 북쪽 군사가 쳐들어오고 있어 북쪽으로는 올라갈 수 없고, 여기서 의논하고 있으나 갈 곳이 정해지지 않았소." 노인이 말했다. "기하산은 아주 외진 곳이니, 공자들께서 갈 곳이 없으시다면 저와 함께 기하산으로 가서 난리를 피하다가 평안해진 다음 돌아갈 계획을 세우시는 것이 어떻겠소?" 조종이 말했다. "일리가 있소!" 이에 진·오와 눈물을 머금고 작별하고, 류경정과 함께 노인 찬례(贊禮)를 따라 기하산으로 왔다. 알고 보니 향군과 소곤생이 남전숙(藍田叔)의 인도로 먼저 기하산에 왔다가, 뜻하지 않게 문을 두드리며 숙소를 구하다가 변옥경(卞玉京)이 보진암(葆真庵)의 암주로 있는 것을 만나 잠시 묵게 되었으니, 더 말할 것도 없다.

한편, 후조종과 류경정은 찬례와 함께 곧장 기하산을 향해 왔다. 며칠을 걷자 기하산 땅에 이르렀다. 찬례가 말했다. "여기가 기하산이오. 일찍 도관(道觀) 하나를 찾아 숙소를 정하시오." 조종이 고개를 들어 보니 암자 하나가 있어 말했다. "문을 두드려 숙소를 빌리는 것이 어떻겠소?" 찬례가 즉시 문을 두드리니, 옥경이 물었다. "누구시오?" 찬례가 말했다. "저는 남경에서 온 사람으로, 보암(寶庵)에 잠시 짐을 풀게 해주시기를 청합니다." 옥경이 말했다. "이곳은 여도(女道)의 거처라 손님을 머물게 하지 않소!" 경정이 말했다. "우리는 떠돌이 승도(僧道)와 다르니, 잠시 머무는 것이 무슨 상관이겠소?" 향군이 말했다. "이 사람 참 귀찮게 구는군요!" 옥경이 말했다. "상대하지 말고, 향주(香廚)로 가서 재식(齋食)이나 하러 갑시다." 여러 사람은 안에서 응답이 없자 한참을 기다리다가 그냥 앞으로 걸어갔다.

한참 걷고 있는데, 홀연 한 도인이 광주리를 들고 오는 것이 보였다. 찬례가 말했다. "저기 사람이 오는구나." 이에 앞으로 나아가 읍하며 말했다. "노 신선께서는 저희가 산에 오는 불사(佛事)를 드리러 온 사람들인데, 감히 도관에 잠시 짐을 풀 수 있도록 방편을 베풀어 주시기를 청합니다." 도인이 고개를 들어 자세히 보더니 놀라며 말했다. "이 공자는 하남의 후 공자를 닮았소?" 경정이 답했다. "그 분이 아니면 누구겠소?" 도인이 다시 한번 살펴보며 말했다. "노형은 혹시 류경정이 아니오?" 조종이 말했다. "바로 그 분이오!" 경정과 조종이 자세히 살펴보고 말했다. "그대는 혹시 정계지(丁繼之)가 아닌가, 어찌 출가하였소?" 계지는 출가하게 된 연유를 한바탕 이야기하고 여러 사람에게 말했다. "저 앞 멀지 않은 곳이 제가 수련하는 곳이니, 잠시 머무시는 것이 어떠하겠습니까?" 찬례는 두 사람이 옛 사람을 만난 것을 보고 이에 작별을 고했다. "두 분이 이미 옛 사람을 만났으니, 저는 백운암(白雲庵)으로 가겠습니다." 한번 읍하고 떠났다. 정계지가 조종과 경정을 이끌며 가는 길에 이별의 이야기를 나누다가 향군 이야기가 나오자, 조종이 눈물을 머금고 말했다. "향군이 궁에 들어가 소식이 없소." 경정이 말했다. "궁중 사람들이 흩어졌으니 향군도 마땅히 궁에서 나왔을 것이오. 형세가 안정된 다음에 소식을 알아봅시다!" 이야기를 나누는 사이 이미 계지의 암자에 이르러 편안히 머물며 며칠이 지났다.

칠월 보름이 되어 백운암에서 단(壇)을 세워 선제(先帝)를 추모하는 재(齋)를 열었다. 각 암자의 도중(道衆)과 마을 사람들이 모두 찾아와 초례(醮禮)를 거들었다. 변옥경이 이에 향군에게 말했다. "나는 백운암에 가서 법문을 들으려 하니, 그대도 같이 가서 답답함을 풀어보는 것이 어떠하오?" 향군이 흔쾌히 채비를 갖추고 옥경과 함께 앞으로 구경하러 왔다. 뜻밖에 후조종이 정계지와 함께 백운암에 구경하러 왔는데, 암자 안에 도가(道家)도 있고 속가(俗家)도 있어 사람이 북적거리고 어수선하였다. 조종이 사람들 틈에서 한 여인이 수수하고 처연한 차림에 체태(體態)가 향기롭고 아름다운 것을 보고 눈을 고정하고 보면서 속으로 생각했다. '저 여인이 우리 향군 모습을 닮았구나.' 이에 복숭아꽃 부채를 꺼내어 향군을 향해 희롱하였다. 향군은 먼저 조종이 사람들 틈에 서 있는 것을 보았지만 아직 자세히 보지 않았다가, 복숭아꽃 부채를 보자 눈을 고정하고 보더니 참지 못하고 불러 물었다. "저 분이 혹시 후 낭군이 아니신가요?" 조종이 말을 듣고 앞으로 나아가 확인하다 울며 말했다. "그대는 혹시 내 향군이 아닌가?"

두 사람이 만나자 감정을 가누지 못하여, 도량(道場)의 청정함도 아랑곳없고 사람들이 많은 것도 아랑곳없이, 앞으로 달려가 붙들고 목 놓아 울며 이별의 사연을 토로하느라 놓으려 하지 않았다. 장요성이 단 위에서 두 사람의 모습을 보고 크게 꾸짖었다. "이게 무슨 어린아이들이냐, 내 단 아래에서 정을 나누다니!" 정계지가 말했다. "이 분이 후조종입니다." 요성이 듣고 말했다. "후 선생, 나를 알아보시겠소? 옥 안에서 어찌 나왔소?" 조종이 지난 일을 한바탕 이야기하였다. 요성이 또 물었다. "저 여인은 누구요?" 옥경이 말했다. "이 분은 향군으로, 후 상공의 취첩(聘妾)입니다." 요성이 말했다. "여기는 청정한 법단이거늘, 어찌 그대들이 이곳에서 정을 나눌 수 있겠소? 빨리 아래로 데려가시오!" 정계지와 변옥경이 명을 받들어 두 사람을 데리고 내려갔다.

암문을 나서자, 두 사람은 다시 끌어안고 통곡하며 각자 헤어진 후의 일을 이야기하였다. 이에 정계지에게 부탁하여 류경정을 찾아오게 하고, 변옥경이 소곤생을 찾아, 각자 두 사람이 환난 속에서 구해준 은혜에 감사하며 또 계지와 옥경이 받아준 정의에 사례하였다. 이때 전쟁이 어지러워 감히 집으로 돌아가지 못하고, 계지에게 부탁하여 집 한 채를 구해 부부 두 사람이 경정·곤생과 함께 머물며 난리를 피하였다. 훗날 형세가 안정된 다음, 계지와 옥경에게 작별을 고하고 소·류 두 사람을 데리고 집으로 돌아갔다. 강가에 이르러 배를 구하다가 마침 이정려(李貞麗)의 배를 만나, 네 사람이 함께 배에 올라 하남으로 왔다. 집에 이르니 부친이 난리를 피해 종남산(終南山)에 들어가 있어, 이에 류경정과 함께 종남산에 가서 부친을 찾아 돌아왔다. 곤생이 뵈었고, 정려와 향군도 와서 인사하니 온 집안이 다시 모였다. 조종은 공명에 더 이상 뜻이 없어, 향군이 아들 셋을 낳으매 오로지 집안에서 자식을 가르쳤으며, 훗날 모두 각자 이름을 이루어 글의 향기가 끊이지 않았다. 조종과 향군은 모두 팔십 세가 넘도록 장수하다가 세상을 떠났다. 칠언절구 두 수로 기록한다.

시曰:

지나간 일 남조(南朝)의 꿈이여 얼마나 많던가,

흥망이 눈 깜짝할 사이에 가을 벌레 소란스럽다.

다정하기로는 후 공자가 가장이었으니,

복숭아꽃 부채 아래 바람을 달게 받아 살았도다.

또 曰:

명사(名士)와 경성(傾城)의 기질이 서로 통하니,

어찌 권귀(豪貴)가 와서 창과 칼을 일으켰던가.

함(函)을 돌려보내고 다시 전원 살림으로 맞아들여,

마치 서주(徐州) 연자루(燕子樓)의 옛이야기 같도다.